五燈會元卷第四
南嶽下三世
百丈海禪師法嗣
洪州黃檗希運禪師
閩人也 幼於本州黃檗山出家 額間隆起如珠 音辭朗潤 志意沖澹 後遊天台逢一僧 與之言笑 如舊相識 熟視之 目光射人 乃偕行 屬㵎水暴漲 捐笠植杖而止 其僧率師同渡 師曰 兄要渡自渡 彼卽褰衣躡波 若履平地 回顧曰 渡來渡來 師曰 咄 這自了漢 吾早知當斫汝脛 其僧歎曰 眞大乘法器 我所不及 言訖不見 師後遊京師 因人啓發 乃往參百丈 丈問 巍巍堂堂從何方來 師曰 巍巍堂堂從嶺南來 丈曰 巍巍堂堂當爲何事 師曰 巍巍堂堂不爲別事 便禮拜問曰 從上宗乘如何指示 丈良久 師曰 不可敎後人斷絕去也 丈曰 將謂汝是箇人 乃起入方丈 師隨後入曰 某甲特來 丈曰 若爾則他後不得孤負吾
●黃檗山; ①位於福建福淸縣城西十七公里處 又稱南山 以盛産黃檗(其樹皮可作藥用與染料用)而得名 唐貞元五年(789) 正幹禪師開山建寺 名般若堂 其後大闢堂宇 歷時八年 改稱建福寺 旋有希運禪師住山 黃檗之名頓顯 此寺遂成爲中國禪宗臨濟派之大道場 宋時頗爲興盛 其後 歷經興衰 明神宗曾賜以萬福禪寺之額 至崇禎十四年(1641) 隱元始重興 後隱元東渡日本 開創宇治大和山 卽取其規模 竝取名爲黃檗山萬福禪寺 [傳燈錄九 宋高僧傳二十 釋氏稽古略三 黃檗山志] ②位於江西宜豐縣西五十七公里處 又稱鷲峰山 唐末 希運禪師至此開山 以其出家於福州黃檗山 故世稱此山爲黃檗山 寺名黃檗寺 又稱靈鷲寺 不久 四方學者望風雲集 往來常有千餘人 唐宣宗曾幸此山 與希運同觀瀑布 竝相對賦詩 從此黃檗宗風盛於江南 又希運之後 有法濟 志因 惟初 惟勝 道全 永泰等相繼住此 山名益著 南宋紹興九年(1139) 高宗曾賜名報恩光孝禪寺 以爲追念其父徽宗之所 至明中葉曾廢毁 然明思宗時 常愚炤通等 曾復興之 [黃檗禪師傳心法要序 隆興佛敎編年通論二十六 佛祖歷代通載二十三]
●沖澹; 沖 和也 澹 恬靜也 [禪林寶訓音義]
●自了漢; 只顧自己修行而絲毫不存濟世利人或敎化他人之念者 亦有以之爲小乘修行者之貶稱
●巍巍堂堂; 容貌莊偉貌 形容大丈夫相
●是箇人; 猶是箇漢 意謂是一箇眞正的丈夫漢 是一箇眞正的參禪者 箇 代詞 相當于這那 又相當于什麽
홍주(洪州)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민인(閩人)이니 어릴 적에 본주(本州) 황벽산(黃檗山)에서 출가했다. 이마 사이가 융기(隆起)한 게 구슬과 같았고 음사(音辭)가 낭윤(朗潤; 밝고 윤택함)했고 지의(志意; 意志)가 충담(沖澹)했다. 후에 천태산(天台山)을 유람하다가 한 중을 만났는데 그와 함께 말하고 웃으면서 마치 예전부터 서로 아는 이와 같았다. 곰곰히 그를 보니(熟視之) 눈빛이 사람을 쏘았다. 이에 함께 가다가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남을 당했다(屬). 삿갓을 버리고 지팡이를 세우고(植) 쉬는데 그 중이 스님을 인솔해 함께 건너려고 했다. 사왈(師曰) 형이 건너고자 한다면 스스로 건너시오. 그가 곧 옷을 걷고(褰) 파도를 디디는데(躡) 평지를 밟는 듯했다. 돌아보며 가로되 건너오시오, 건너오시오. 사왈 에끼(咄), 이 자기만 깨닫는 자(自了漢)로구나. 내가 일찍 알았다면 마땅히 너의 정강이를 쪼갰을 것이다. 그 중이 감탄하며 가로되 진실로 대승법기(大乘法器)로구나. 나는 미치지 못하는 바이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스님이 후에 경사(京師)를 유행(遊行)하다가 사람의 계발(啓發)로 인해 이에 백장(百丈)을 왕참(往參)했다. 백장이 묻되 외외당당(巍巍堂堂)하게 어느 지방으로부터 왔는가. 사왈 외외당당하게 영남으로부터 왔습니다. 장왈(丈曰) 외외당당하게 마땅히 무슨 일 때문인가. 사왈 외외당당하게 별다른 일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예배하고 문왈(問曰) 종상(從上; 從前. 以前)의 종승(宗乘)을 어떻게 지시하시렵니까. 백장이 양구(良久)했다. 사왈 후인으로 하여금 단절되게 함은 옳지 못합니다. 장왈(丈曰) 다만(將) 이르기를 네가 시개인(是箇人)이라 하노라. 이에 일어나 방장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뒤따라 들어가 가로되 모갑이 특별히 왔습니다. 백장이 가로되 만약 그렇다면(爾) 곧 타후(他後)에 나를 저버림(孤負)을 얻지 않을 것이다.
●黃檗山; ①복건 복청현성(福淸縣城) 서쪽 17㎞ 곳에 위치함. 또 명칭이 남산(南山)이며 황벽(黃檗; 그 樹皮는 가히 약용과 염료용으로 씀)이 성산(盛産)하기 때문에 이름을 얻었음. 당 정원 5년(789) 정간선사가 개산하고 사원을 세웠고 이름을 반야당이라 했음. 그 후에 당우(堂宇)를 크게 열어 8년을 역시(歷時)하였고 개칭하여 건복사라 했음. 이윽고(旋) 희운선사(希運禪師)가 있어 주산(住山)했고 황벽의 이름이 돈현(頓顯)했으니 이 사원은 드디어 중국 선종 임제파의 대도량을 이루었음. 송시(宋時) 자못 흥성했고 그 후에 흥쇠를 역경(歷經)했음. 명(明) 신종이 일찍이 만복선사의 편액을 주었으며 숭정 14년(1641)에 이르러 은원(隱元)이 비로소 중흥했음. 후에 은원이 일본으로 동도(東渡)하여 우치(宇治) 대화산(大和山)을 개창하고 곧 그 규모를 취했으며 아울러 이름을 취해 황벽산 만복선사(萬福禪寺)라 했음 [전등록9. 송고승전20. 석씨계고략3. 황벽산지]. ②강서 의풍현 서쪽 57㎞ 곳에 위치함. 또 호칭이 취봉산(鷲峰山)이니 당말(唐末) 희운선사(希運禪師)가 여기에 이르러 개산했음. 그가 복주 황벽산에서 출가했으므로 고로 이 산을 세간에서 일컫기를 황벽산이라 했음. 사명(寺名)은 황벽사며 또 명칭이 영취사였음. 오래지 않아 사방의 학자가 망풍(望風)하여 운집했고 왕래하는 이가 늘 천여 인이 있었음. 당선종(唐宣宗)이 일찍이 이 산에 거둥하여(幸) 희운(希運)과 폭포를 함께 관람했으며 아울러 서로 부시(賦詩)로 상대했는데 이로 좇아 황벽종풍이 강남에 성했음. 또 희운의 뒤에 법제ㆍ지인ㆍ유초ㆍ유승ㆍ도전ㆍ영태 등이 있어 상계(相繼)하여 여기에 거주한지라 산명이 더욱 드러났음. 남송 소흥 9년(1139) 고종이 일찍이 사명(賜名)하여 보은광효선사(報恩光孝禪寺)라 했고 그의 부친 휘종을 추념(追念)하는 장소로 삼았음. 명(明) 중엽에 이르러 일찍이 폐훼(廢毁)했으나 그러나 명 사종(思宗) 시 상우, 소통 등이 일찍이 그것을 부흥했음 [황벽선사전심법요서. 융흥불교편년통론26. 불조역대통재23].
●沖澹; 충(沖)은 화(和)며 담(澹)은 염정(恬靜; 고요함)임 [선림보훈음의].
●自了漢; 단지 자기의 수행만 돌아보고 실터럭만큼도 세상을 건지고 사람을 이롭게 하거나 혹은 타인을 교화할 생각이 있지 않는 자임. 또한 이로써 소승(小乘) 수행자의 폄칭(貶稱)으로 삼음이 있음.
●巍巍堂堂; 용모가 장위(莊偉)한 모양. 대장부상(大丈夫相)을 형용.
●是箇人; 시개한(是箇漢)과 같음. 뜻으로 이르자면 이 1개의 진정한 장부한이며 이 1개의 진정한 참선자임. 개(箇)는 대사(代詞)니 저(這)ㆍ나(那)에 상당함. 또 십마(什麽)에 상당함.
丈一日問師 甚麽處去來 曰 大雄山下採菌子來 丈曰 還見大蟲麽 師便作虎聲 丈拈斧作斫勢 師卽打丈一摑 丈吟吟而笑 便歸 上堂曰 大雄山下有一大蟲 汝等諸人也須好看 百丈老漢今日親遭一口 師在南泉普請擇菜次 泉問 甚麽處去 曰 擇菜去 泉曰 將甚麽擇 師竪起刀 泉曰 祇解作賓 不解作主 師以刀點三下 泉曰 大家擇菜去 泉一日曰 老僧有牧牛歌請長老和 師曰 某甲自有師在 師辭南泉 泉門送 提起師笠曰 長老身材沒量大 笠子太小生 師曰 雖然如此 大千世界總在裏許 泉曰 王老師聻 師戴笠便行
●菌子; 高等菌類 有食用的菌子 如香菇等
●大蟲; 虎也 蟲 對一切動物的通稱 如大蟲長蟲
●身材; 指身體的高低肥瘦
●大千世界; 三千大千世界也 經說 世界有小千中千大千之別 合四大洲日月諸天爲一世界 一千世界名小千世界 小千加千倍名中千世界 中千加千倍名大千世界 ▲俱舍論十一 頌曰 四大洲日月 蘇迷盧欲天 梵世各一千 名一小千界 此小千千倍 說名一中千 此千倍大千 皆同一成壞
백장이 어느 날 스님에게 묻되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가로되 대웅산 아래 균자(菌子; 버섯)를 캐고 옵니다. 백장이 가로되 도리어 대충(大蟲; 범)을 보았느냐. 스님이 바로 범의 소리를 지었다. 백장이 도끼를 집어 쪼갤 자세를 지었다. 스님이 곧 백장을 때려 한 번 후려갈겼다. 백장이 끙끙거리다가(吟吟) 웃고는 바로 돌아갔다. 상당하여 가로되 대웅산 아래 한 대충(大蟲)이 있는데 너희 등 제인은 또한 모름지기 잘 보아라(好看). 백장 노한이 금일 친히 한 아가리 만났다. 스님이 남천(南泉)에 있으면서 보청(普請)하여 채소를 가리는(擇菜) 차에 남천이 묻되 어느 곳에 가느냐. 가로되 택채(擇菜)하러 갑니다. 천왈(泉曰) 무엇을 가지고 가리는가. 스님이 칼을 세워 일으켰다. 천왈(泉曰) 다만 빈(賓)을 지을 줄 알고 주(主)를 지을 줄 알지 못하는구나. 스님이 칼로써 세 번(三下) 점찍었다. 천왈(泉曰) 대가(大家)가 택채(擇菜)하러 가는구나. 남천이 어느 날 가로되 노승이 목우가(牧牛歌)가 있으니 청컨대 장로(長老)가 화(和)하라. 사왈 모갑은 스스로 스승이 있습니다. 스님이 남천에게 고별하자 남천이 문송(門送)하다가 스님의 삿갓을 제기(提起)하고 가로되 장로는 신재(身材)가 헤아릴 수 없이 크거늘(沒量大) 입자(笠子; 삿갓. 子는 조사)는 너무 작구나(太小生; 生은 조사). 사왈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대천세계(大千世界)가 모두(總) 이허(裏許; 內裏. 裏邊)에 있습니다. 천왈(泉曰) 왕노사는(王老師聻). 스님이 바로 삿갓을 쓰고(戴) 갔다.
●菌子; 고등(高等)의 버섯 종류. 식용의 균자가 있으니 향고(香菇) 같은 것 등임.
●大蟲; 범임. 충(蟲)은 일체의 동물에 대한 통칭이니 대충(大蟲)ㆍ장충(長蟲) 같은 것.
●身材; 신체의 고저()高低와 비수(肥瘦)를 가리킴.
●大千世界; 삼천대천세계임. 경에 설하기를 세계가 소천ㆍ중천ㆍ대천의 구별이 있다 했음. 사대주ㆍ 일월ㆍ제천을 합해서 한 세계가 되며 1천 세계를 이름해 소천세계며 소천에 천배(千倍)를 가하면 이름이 중천세계며 중천에 천배를 가하면 이름이 대천세계임. ▲구사론11. 송에 가로되 사대주와 일월/ 소미로(蘇迷盧; 수미산)와 욕천(欲天; 六欲天)/ 범세(梵世; 色界 18天) 각 1천이/ 이름이 1소천계며/ 이 소천의 천배를/ 설해 1중천이라 이름하며/ 이것의 천배가 대천이니/ 다 동일하게 성괴한다.
師在鹽宮殿上禮佛次 時唐宣宗爲沙彌 問曰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僧求 長老禮拜 當何所求 師曰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僧求 常禮如是事 彌曰 用禮何爲 師便掌 彌曰 大麤生 師曰 這裏是甚麽所在 說麤說細 隨後又掌 裴相國鎭宛陵 建大禪苑 請師說法 以師酷愛舊山 還以黃檗名之 公一日拓一尊佛於師前 跪曰 請師安名 師召曰 裴休 公應諾 師曰 與汝安名竟 公禮拜 師因有六人新到 五人作禮 中一人提起坐具 作一圓相 師曰 我聞有一隻獵犬甚惡 僧曰 尋𦏪羊聲來 師曰 𦏪羊無聲到汝尋 曰 尋𦏪羊跡來 師曰 𦏪羊無跡到汝尋 曰 尋𦏪羊蹤來 師曰 𦏪羊無蹤到汝尋 曰 與麽則死𦏪羊也 師便休去 明日陞堂曰 昨日尋𦏪羊僧出來 僧便出 師曰 昨日公案未了 老僧休去 你作麽生 僧無語 師曰 將謂是本色衲僧 元來祇是義學沙門 便打趂出 師一日揑拳曰 天下老和尙 總在這裏 我若放一線道 從汝七縱八橫 若不放過 不消一揑 僧問 放一線道時如何 師曰 七縱八橫 曰 不放過 不消一揑時如何 師曰 普 裴相國一日請師至郡 以所解一編示師 師接置於座 略不披閱 良久曰 會麽 裴曰 未測 師曰 若便恁麽會得 猶較些子 若也形於紙墨 何有吾宗 裴乃贈詩一章曰 自從大士傳心印 額有圓珠七尺身 挂錫十年棲蜀水 浮盃今日渡漳濵 一千龍象隨高步 萬里香花結勝因 擬欲事師爲弟子 不知將法付何人 師亦無喜色 自爾黃檗門風 盛于江表矣
●宛陵; 位於安徽省東南揚子江南岸丘陵地帶的都市 從徽州至杭州的交通要地 唐代裵休招黃檗希運於洪州景德寺 朝夕受敎而錄之 編曰宛陵錄 又大慧宗杲出生削髮地
●拓; 他各切 托起 擧 廣韻 拓 手承物也
●公案; 禪家應於佛祖所化之機緣 而提起越格之言語動作之垂示也 後人稱之名爲公案 又曰因緣 公案者 公府之公文 卽律令也 至嚴而不可犯者 可以爲法 可以斷是非 從上佛祖之垂示 是宗門之正令 以判迷悟者類之 故彼擬名公案 碧巖集 三敎老人序曰 祖敎之書謂之公案者 唱於唐而盛於宋 其來尙矣 二字乃世間法中吏牘語
●本色衲僧; 指本色當行的禪僧 亦作本色衲子 ◆本色; 眞面目 本來面目 本性
●義學; 卽名相訓義之學 理論之學 又稱解學 亦卽有關敎義理論之學問
●七縱八橫; 逆順縱橫自由自在 通達無障礙之意 七或八表示多數 類似用語尙有七通八達 七顚八倒 七凹八凸等
●挂錫; 又作掛錫 行脚僧人棲止于某寺院 或其他適宜之處 稱作挂錫 錫 行脚僧人的拄杖
●蜀水; 祖庭事苑三 蜀水 在今筠州米山縣北三里 桉晉書地理志云 蜀水源出縣內小界山 東流五百九十里 入南昌縣漳水合
●浮盃; 盃 此指小舟
●漳濱; 碧巖錄第十一則種電鈔云 漳水在明南昌縣 乃古洪州也
●江表; 又稱江東 指江南 揚子江以南
스님이 염관(鹽官)의 전상(殿上)에서 예불하던 차였다. 때에 당선종(唐宣宗)이 사미가 되었는데 물어 가로되 부처에 집착해 구하지 않으며 법에 집착해 구하지 않으며 승(僧)에 집착해 구하지 않는다(維摩經 不思議品. 다만 僧을 衆으로 지었음) 했는데 장로는 예배하여 마땅히 무엇을 구하는 바입니까. 사왈 부처에 집착해 구하지 않으며 법에 집착해 구하지 않으며 승(僧)에 집착해 구하지 않으면서 늘 이와 같은 일에 예배한다. 사미가 가로되 예배를 써서 무엇하리오. 스님이 바로 손바닥으로 쳤다. 사미가 가로되 대추생(大麤生; 너무 거칠다)입니다. 사왈 이 속에 이 무엇이 소재(所在)한다고 추(麤)를 설하고 세(細)를 설하느냐, 뒤따라 또 손바닥으로 쳤다. 배상국(裴相國)이 완릉(宛陵)을 진수(鎭守)하면서 대선원(大禪苑)을 건립하고 스님의 설법을 청했다. 스님이 구산(舊山)을 혹애(酷愛)한지라 도리어 황벽(黃檗)으로써 그것을 이름했다. 공(公)이 어느 날 스님 앞에 1존(尊)의 불(佛)을 받들고(拓) 꿇어앉아 가로되 스님의 안명(安名; 이름을 둠)을 청합니다. 스님이 불러 가로되 배휴(裴休). 공(公)이 응낙했다. 사왈 너를 위해(與) 안명(安名)해 마쳤다. 공이 예배했다. 스님이, 6인(人)의 신도(新到)가 있어 5인은 작례(作禮)했고 가운데 1인이 좌구(坐具)를 제기(提起)하여 1원상(圓相)을 지음으로 인해 사왈 내가 듣기로 1척(隻)의 사냥개(獵犬)가 있어 매우 사납다(惡). 승왈(僧曰) 영양(𦏪羊)의 소리를 찾아(尋) 왔습니다. 사왈 영양이 소리 없이 이르거늘 네가 찾는가. 가로되 영양의 적(跡; 발자취)을 찾아 왔습니다. 사왈 영양이 적(跡)이 없이 이르거늘 네가 찾는가. 가로되 영양의 종(蹤; 발자취. 흔적)을 찾아 왔습니다. 사왈 영양이 종(蹤)이 없이 이르거늘 네가 찾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與麽) 곧 죽은 영양입니다. 스님이 바로 쉬러 갔다. 명일 승당하여 가로되 어제 영양을 찾던 중은 나오너라. 중이 바로 나왔다. 사왈 어제 공안(公案)을 마치지 않고 노승이 쉬러 갔다. 너는 어떠한가(作麽生).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장차 이르기를 이 본색납승(本色衲僧)이라 하렸더니 원래 다만 이 의학사문(義學沙門)이로구나. 바로 때리고 쫓아내었다. 스님이 어느 날 날권(揑拳; 주먹을 쥐다. 揑은 捏과 같음. 握임)하고 가로되 천하 노화상이 모두 이 속에 있다. 내가 만약 일선도(一線道)를 놓으면 너희의 칠종팔횡(七縱八橫)하는 대로 좇겠지만 만약 방과(放過)하지 않으면 일날(一揑; 한 번 쥐다)도 쓰이지(消) 않는다. 승문(僧問) 일선도(一線道)를 놓을 시 어떻습니까. 사왈 칠종팔횡(七縱八橫)한다. 가로되 방과(放過)하지 않고 일날(一揑; 한 번 쥐다)도 쓰지(消) 않을 시 어떻습니까. 사왈 보(普). 배상국(裴相國)이 어느 날 스님을 청해 군(郡)에 이르게 하고 해석한 바 1편(編)을 스님에게 보이자 스님이 접수해 자리에 방치하고 조금(略)도 피열(披閱)하지 않았다.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아느냐. 배왈(裴曰) 헤아리지 못합니다(未測). 사왈 만약 바로 이렇게(恁麽) 회득(會得)하면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려니와(較些子) 만약에 지묵(紙墨)에 형상(形象)한다면 어찌 오종(吾宗)이 있겠는가. 배휴(裴休)가 이에 시(詩) 1장(章)을 증정(贈呈)했으니 가로되 대사(大士)가 심인(心印)을 전수(傳受)하심으로부터/ 이마에 원주(圓珠)가 있고 7척의 몸이다/ 괘석(挂錫)하고서 10년 동안 촉수(蜀水)에 쉬다가/ 부배(浮盃; 작은 배를 띄우다)하여 금일 장빈(漳濵)을 건너셨다/ 1천의 용상(龍象; 龍象의 대중)이 고보(高步)를 따르고/ 만 리에 향화(香華)로 승인(勝因)을 맺는다/ 스님을 모시며 제자가 되고자 하나니/ 법을 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부촉(付屬; 付)하실지 알지 못하겠네. 스님이 또한 희색(喜色)이 없었다. 이로부터 황벽문풍(黃檗門風)이 강표(江表)에 성행했다.
●宛陵; 안휘성 동남 양자강 남안 구릉지대에 위치하는 도시. 휘주로부터 항주에 이르는 교통의 요지. 당대 배휴(裵休)가 황벽희운(黃檗希運)을 홍주(洪州) 경덕사(景德寺)에 초청하여 조석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그것을 기록하고 편(編)해 가로되 완릉록(宛陵錄)이라 했음. 또 대혜종고가 출생하고 삭발한 지방임.
●拓; 타각절(他各切; 탁). 탁기(托起; 밀어 일으킴). 거(擧). 광운 탁(拓) 손으로 물건을 받듦이다.
●公案; 선가에서 불조의 소화(所化)의 기연에 응해 격식을 초월한 언어와 동작을 제기하여 수시함임. 후인이 이를 일컬어 공안이라고 이름했음. 또 가로되 인연(因緣)임. 공안이란 것은 공부(公府)의 공문이니 곧 율령임. 지엄하여 가히 범하지 못하는 것이며 가이(可以) 법이 되며 가이 시비를 끊음. 종상의 불조의 수시는 이 종문의 정령(正令)이니 미오자(迷悟者)를 판단함이 이와 유사한지라 고로 그 이름을 본떠 공안이라 함. 벽암집 삼교노인의 서에 가로되 조교(祖敎)의 글을 일컬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당나라에서 창(唱)하고 송나라에서 성했으니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두 글자는 곧 세간법 중의 이독(吏牘; 公文)의 말이다.
●本色衲僧; 본색으로 당행(當行; 주관하여 행함)하는 선승을 가리킴. 또 본색납자로 지음. ◆本色; 진면목. 본래면목. 본성.
●義學; 곧 이름ㆍ형상ㆍ훈고(訓詁)ㆍ의리(義理)의 학문이니 이론의 학문임. 또 칭호가 해학(解學)이며 또한 곧 교의(敎義)의 이론과 관련이 있는 학문임.
●七縱八橫; 역순종횡(逆順縱橫)하며 자유자재하고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의 뜻. 7 혹 8은 다수를 표시함. 유사용어에 오히려 칠통팔달ㆍ칠전팔도ㆍ칠요팔철(七凹八凸) 등이 있음.
●挂錫; 또 괘석(掛錫)으로 지음. 행각하는 승인이 어떤 사원이나 혹 기타 적의(適宜; 적당)한 곳에 서지(棲止)함을 일컬어 괘석으로 지음. 석(錫)은 행각하는 승인의 주장자.
●蜀水; 조정사원3. 촉수(蜀水)는 지금의 균주(筠州) 미산현(米山縣) 북쪽 3리에 있음. 진서(晉書) 지리지(地理志)를 안험하니 이르되 촉수의 수원은 현내(縣內)의 소계산(小界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590리를 흘러 남창현(南昌縣) 장수(漳水)에 들어가 합한다.
●浮盃; 배(盃)는 여기에선 작은 배를 가리킴.
●漳濱; 벽암록 제11칙 종전초(種電鈔)에 이르되 장수(漳水)는 명(明)의 남창현(南昌縣)에 있으니 곧 옛 홍주(洪州)다.
●江表; 또 호칭이 강동이니 강남을 가리킴. 양자강 이남임.
一日上堂 大衆雲集 乃曰 汝等諸人欲何所求 以拄杖趂之 大衆不散 師却復坐曰 汝等諸人盡是噇酒糟漢 恁麽行脚 取笑於人 但見八百一千人處便去 不可圖他熱閙也 老漢行脚時 或遇草根下有一箇漢 便從頂門上一錐 看他若知痛痒 可以布袋盛米供養他 可中總似汝如此容易 何處更有今日事也 汝等旣稱行脚 亦須著些精神好 還知道大唐國內無禪師麽 時有僧問 諸方尊宿盡聚衆開化 爲甚麽却道無禪師 師曰 不道無禪 祇是無師 闍黎不見馬大師下有八十四人坐道場 得馬師正法眼者止三兩人 廬山歸宗和尙是其一 夫出家人 須知有從上來事分始得 且如四祖下牛頭 橫說竪說 猶未知向上關捩子 有此眼目 方辨得邪正宗黨 且當人事宜 不能體會得 但知學言語 念向皮袋裏安著 到處稱我會禪 還替得汝生死麽 輕忽老宿 入地獄如箭 我纔見汝入門來 便識得了也 還知麽 急須努力 莫容易事 持片衣口食 空過一生 明眼人笑汝 久後總被俗漢筭將去在 宜自看遠近 是阿誰面上事 若會卽便會 若不會卽散去 珍重 問 如何是西來意 師便打 自餘施設 皆被上機 中下之流 莫窺涯涘 唐大中年終於本山 諡斷際禪師
●熱鬧; 形容喧鬧繁盛的景象
●橫說竪說; 多方論說 反復喩解 謂施展種種方便 縱橫自在地反復宣講佛法
●關捩子; 又作關棙子 關 關要 棙 鍵 鈕 原爲門鎖 門閂 機軸等意 轉義爲關鍵 在禪宗 轉指參悟奧祕之要訣 子 後綴
●宗黨; 宗族鄕黨
●事宜; 事情的道理
●皮袋; 卽指肉體 所謂身體 猶如於皮袋中藏入一切骨肉臟等物 故又作臭皮袋 臭皮囊
●涯涘; 邊際 界限
어느 날 상당하자 대중이 운집했다. 이에 가로되 너희 등 제인(諸人)이 무엇을 소구(所求)하려고 하느냐. 주장자로써 쫓아내었다. 대중이 흩어지지 않자 스님이 도리어 복좌(復坐; 다시 앉다)하고 가로되 너희 등 제인(諸人)은 모두(盡) 이 술지게미 먹은 놈들(喫酒糟漢)이니 이렇게(恁麽) 행각하면 남에게서 비웃음을 취할 것이다. 단지 8백이나 1천인의 처소를 보고 바로 가니 저(他) 열뇨(熱鬧)를 도모함은 옳지 못하다. 노한(老漢)이 행각할 때 혹 초근(草根) 아래 일개한(一箇漢)이 있음을 만나면 바로 정문상(頂門上)으로 좇아 1추(錐; 송곳으로 찌르다)하고 그를 보아서 만약 통양(痛痒)을 알면 가이(可以; 以는 조사) 포대(布袋)에 쌀을 가득 담아 그에게 공양했다. 가중(可中; 當中)에 모두(總) 너희의 이와 같이 용이(容易)할 것 같으면(似) 어느 곳에 다시 금일사(今日事)가 있으리오. 너희 등이 이미 행각을 일컬으니 또한 꼭(須) 조금(些)의 정신(精神)을 붙여야 좋으리라. 도리어 대당국 안에 선사(禪師)가 없다고 말할 줄 아느냐.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제방에서 존숙(尊宿)이 모두(盡) 취중(聚衆)하여 개화(開化)하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선사가 없다고 말합니까. 사왈 선(禪)이 없다고 말함이 아니라 다만 이 사(師)가 없다. 사리(闍黎)가 보지 못하느냐, 마대사(馬大師) 아래 84인이 도량에 앉음이 있었지만 마사(馬師)의 정법안(正法眼)을 얻은 자는 다만(止) 셋이나 두 사람이니 여산(廬山) 귀종(歸宗; 智常) 화상이 이 그 1인이다. 무릇 출가인은 모름지기 종상래사(從上來事)의 분(分; 分限)이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옳다. 차여(且如; 例擧를 표시) 4조 아래의 우두(牛頭; 法融)는 횡설수설(橫說竪說)했지만 오히려 향상(向上)의 관려자(關捩子)를 알지 못했다. 이 안목(眼目)이 있어야 바야흐로 사정(邪正)의 종당(宗黨)을 변득(辨得)한다. 또(且) 당인(當人)의 사의(事宜)를 능히 체회(體會; 체험하여 理會)하여 얻지 못하고 단지 언어를 배울 줄 알아, 외워서(念) 피대(皮袋) 속을 향해 안착(安著)하고는 도처에서 일컫기를 나는 선(禪)을 안다 하거니와 도리어 너의 생사를 체득(替得; 代替)하느냐. 노숙(老宿)을 경홀(輕忽)하면 지옥에 들어가기가 화살과 같나니 나는 겨우(纔) 네가 문에 들어옴을 보면 바로 식득(識得)해 마친다. 도리어 아느냐. 급히 노력(努力)을 쓰고(須) 일을 용이(容易)하다 하지 말아라. 편의(片衣)와 구식(口食; 食物)을 가지고 일생을 공과(空過)하니 명안인(明眼人)이 너희를 비웃는다. 오랜 후에 모두(總) 속한(俗漢)이 계산하여 가져 감을 입으리라. 의당 원근(遠近)을 스스로 볼지니 이 누구(阿誰)의 면상(面上)의 일인가. 만약 알려거든 곧 바로 알고 만약 알지 못하거든 곧 흩어져 가거라. 진중(珍重).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자여(自餘; 以外. 此外)의 시설(施設)은 모두 상근(上機)에 입힘이며 중하지류(中下之流)는 애사(涯涘)를 엿보지 못했다. 당 대중년(大中年; 847-860)에 본산에서 마쳤다. 시(諡)는 단제선사(斷際禪師)다.
●熱鬧; 훤뇨(喧鬧; 떠들썩함)하고 번성한 경상(景象; 광경. 상황)을 형용.
●橫說竪說; 다방(多方)으로 논설하고 반복하여 유해(喩解)함. 이르자면 갖가지 방편을 시전(施展)하고 종횡자재지(縱橫自在地)에서 반복하여 불법을 선강(宣講)함.
●關捩子; 또 관려자(關棙子)로 지음. 관(關)은 관요(關要)며 려(棙)는 열쇠(鍵), 손잡이(鈕). 원래는 문의 열쇠ㆍ문의 빗장ㆍ기축(機軸) 등의 뜻이 되지만 전의(轉義)하여 관건(關鍵)이 됨. 선종에 있어선 전(轉)하여 오비(奧祕; 오묘한 비밀)를 참해 깨치는 요결(要訣; 일의 가장 중요한 방법)을 가리킴. 자는 후철.
●宗黨; 종족(宗族)과 향당(鄕黨; 자기가 태어났거나 사는 시골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
●事宜; 사정(事情)의 도리.
●皮袋; 곧 육체를 가리킴. 이른 바 신체는 마치 피대(皮袋) 속에 일체의 골육(骨肉)과 장기(臟器) 등의 물건을 저장(貯藏)해 넣은 것과 같은지라 고로 또한 취피대(臭皮袋)ㆍ취피낭(臭皮囊)으로 지음.
●涯涘; 변제(邊際). 계한(界限).
福州長慶大安禪師〈號懶安〉
郡之陳氏子 受業於黃檗山 習律乘 甞自念言 我雖勤苦 而未聞玄極之理 乃孤錫遊方 將往洪井 路出上元 逢一老父謂師曰 師往南昌 當有所得 師卽造百丈 禮而問曰 學人欲求識佛 何者卽是 丈曰 大似騎牛覔牛 師曰 識得後如何 丈曰 如人騎牛至家 師曰 未審始終如何保任 丈曰 如牧牛人執杖視之 不令犯人苗稼 師自茲領旨 更不馳求 同參祐禪師 創居潙山 師躬耕助道 及祐歸寂 衆請接踵住持
●律乘; 戒律的敎義
●保任; 一保持 護守 二禪悟之後 須加保持 維護 稱保任
●苗稼; 田禾
●接踵; 禪林寶訓筆說中 接踵者 步履相隨也
복주(福州) 장경(長慶) 대안선사(大安禪師)〈號懶安〉
군(郡)의 진씨(陳氏)의 아들이다. 황벽산에서 수업(受業)하고 율승(律乘)을 학습(學習)했다. 일찍이 스스로 사념(思念)해 말하되 내가 비록 근고(勤苦)하지만 현극(玄極; 현묘하고 지극함)의 이치를 듣지 못했다 하고는 이에 고석(孤錫)으로 유방(遊方)했다. 장차 홍정(洪井)으로 가려는데 길이 상원(上元)으로 났다(出). 한 노부(老父)를 만났는데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스님이 남창(南昌)으로 가면 마땅히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스님이 곧 백장(百丈)으로 나아가(造) 예배하고 문왈(問曰) 학인이 식불(識佛; 부처를 알다)을 구하려고 합니다. 무엇이(何者) 곧 이것입니까. 장왈(丈曰) 소를 타고 소를 찾음(騎牛覓牛)과 매우 흡사(大似)하다. 사왈(師曰) 식득(識得)한 후엔 어떻습니까. 장왈(丈曰) 사람이 소를 타고 집에 이름과 같다. 사왈 미심하오니 시종 어떻게 보임(保任)해야 합니까. 장왈(丈曰) 마치 목우인(牧牛人)이 지팡이를 가지고 그것을 감시(監視)하면서 사람의 묘가(苗稼)를 범하지 않게 함과 같다. 스님이 이로부터(自茲) 지취를 영오(領悟)했고 다시 치구(馳求)하지 않았다. 동참(同參)인 영우선사(靈祐禪師)가 위산(潙山)에 창거(創居; 비로소 거주함)하자 스님이 몸소 경작(耕作)하며 조도(助道)했고 영우선사가 귀적(歸寂)함에 이르자 대중의 청으로 주지(住持)를 접종(接踵)했다.
●律乘; 계율의 교의(敎義).
●保任; 1. 보지(保持). 호수(護守; 수호). 2. 선을 깨친 후 반드시 보지ㆍ유호(維護; 유지하며 수호)를 가함을 일컬어 보임이라 함.
●苗稼; 전화(田禾; 곡물을 가리킴).
●接踵; 선림보훈필설중. 접종(接踵)이란 것은 보리(步履; 발걸음)가 상수(相隨)함이다.
上堂 汝諸人總來就安 求覔甚麽 若欲作佛 汝自是佛 擔佛傍家走 如渴鹿趂陽𦦨相似 何時得相應去 汝欲作佛 但無許多顚倒攀緣妄想惡覺垢淨衆生之心 便是初心正覺佛 更向何處別討 所以 安在潙山三十來年 喫潙山飯 屙潙山屎 不學潙山禪 祇看一頭水牯牛 若落路入草 便把鼻孔拽轉來 纔犯人苗稼 卽鞭撻調伏旣久 可憐生受人言語 如今變作箇露地白牛 常在面前 終日露迥迥地 趂亦不去 汝諸人各自有無價大寶 從眼門放光 照見山河大地 耳門放光 領釆一切善惡音響 如是六門晝夜常放光明 亦名放光三昧 汝自不識取 影在四大身中 內外扶持 不敎傾側 如人負重擔 從獨木橋上過 亦不敎失脚 且道是甚麽物任持 便得如是 且無絲髮可見 豈不見誌公和尙云 內外追尋覔總無 境上施爲渾大有 珍重
●落路; 取道 離開大路而行
●露地白牛; 露地 爲門外之空地 喩平安無事之場所 白牛 意指淸淨之牛 法華經譬喩品中 以白牛譬喩一乘敎法 從而指無絲毫煩惱汚染之淸淨境地爲露地白牛 ▲新華嚴經論二 是故門前之乘對三乘設 露地白牛方明至無依之處 露地者 卽佛地也 爲佛智無依止故 故云露地 白牛者 卽法身悲智也 以法身無相名之爲白 智能觀機悲心濟物 名之爲牛
●露逈逈地; 顯露獨特貌 地 助詞
●六門; 六根門 空谷集第三十七則云 六門六戶六國六出 皆六根之異號也
●任持; 主持 維持
상당(上堂) 너희 제인이 모두 와서 취안(就安; 안녕을 이루다)하며 무엇을 구멱(求覓)하느냐. 만약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너희가 스스로 이 부처이거늘 부처를 짊어지고 옆집으로 달리면서 마치 갈록(渴鹿)이 양염(陽𦦨; 陽焰과 같음)을 쫓음과 상사(相似)하니 어느 때에 상응(相應)함을 얻어 가겠는가. 너희가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단지 허다한 전도(顚倒)ㆍ반연(攀緣)ㆍ망상ㆍ악각(惡覺)ㆍ구정(垢淨)의 중생의 마음이 없으면 바로 이 초심(初心)의 정각불(正覺佛)이거늘 다시 어느 곳을 향해 달리 찾겠는가(討). 소이(所以)로 대안(大安)이 위산(潙山)에 있은 지 30래 년에 위산의 밥을 먹고 위산의 똥을 누면서(屙) 위산의 선(禪)을 배우지 않고 다만 한 마리(頭; 量詞)의 수고우(水牯牛)를 간수(看守)하나니 만약 낙로(落路)하여 입초(入草)하면 바로 콧구멍을 잡아 끌어 돌려(拽轉) 온다. 겨우 사람의 묘가(苗稼; 곡물)를 범하면 곧 편달(鞭撻)하여 조복(調伏)하고 이미 오래되매 가련생(可憐生; 生은 조사) 사람의 언어를 접수하더니 여금엔 변해서 저(箇) 노지백우(露地白牛)가 되어 늘 면전에 있되 종일 노형형지(露逈逈地)라 쫓아내어도 또한 떠나지 않는다. 너희 제인이 각자 무가대보(無價大寶)가 있어서 안문(眼門; 眼孔)으로 좇아 방광하여 산하대지를 조견(照見)하고 이문(耳門; 귓구멍)에서 방광하여 일체의 선악의 음향을 영변(領釆; 領納하여 분변)하고 이와 같이 6문(六門)에서 주야로 늘 광명을 놓나니 또한 이름이 방광삼매(放光三昧)다. 너희가 스스로 식취(識取)하지 못해 그림자가 4대(大)의 신중(身中)에 있으면서 내외를 부지(扶持)하여 경측(傾側; 傾斜)하게 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외나무 다리(獨木橋) 위로 좇아 지나가면서 또한 실각(失脚)하게 하지 않음과 같나니 그래 말하라 이 무슨 물건(什麽物)이 임지(任持)하여 바로 이와 같음을 얻는가(得). 또(且) 사발(絲髮) 만큼이라도 가히 볼 게 없다. 어찌 보지 못하는가, 지공화상(誌公和尙)이 이르되 내외에 추심(追尋)하여 찾으매 모두 없더니 경상(境上)에 시위(施爲)하매 온통 크게 있더라. 진중(珍重).
●落路; 취도(取道)니 대로(大路)를 떠나서(離開) 다님.
●露地白牛; 노지는 문밖의 빈 땅이 되며 평안하고 무사한 장소에 비유하고 백우는 청정한 소를 뜻으로 가리킴. 법화경 비유품 중에 백우로써 1승(乘)의 교법에 비유했음. 이로부터 실터럭만큼의 번뇌와 오염이 없는 청정한 경지를 가리켜 노지백우라 함. ▲신화엄경론2. 이런 고로 문 앞의 수레는 3승(乘)을 상대하여 시설함이며 노지백우라야 비로소 의지함이 없는 곳에 이름을 밝힘이다. 노지(露地)란 것은 곧 불지(佛地)다. 불지는 의지함이 없는 연고니 고로 이르되 노지다. 백우란 것은 곧 법신의 비지(悲智)다. 법신의 무상(無相)을 이름하여 백(白)이며 지(智)라야 능히 기(機)를 보아 비심(悲心)으로 사람을 제도하나니 이름해 우(牛)라 한다.
●露逈逈地; 환히 드러나 독특한 모양. 지(地)는 조사.
●六門; 6근문(根門). 공곡집 제37칙에 이르되 6문(門)ㆍ6호(戶)ㆍ6국(國)ㆍ6출(出)은 모두 6근(根)의 다른 호칭이다.
●任持; 주지(主持). 유지(維持).
僧問 一切施爲是法身用 如何是法身 師曰 一切施爲是法身用 曰 離却五蘊 如何是本來身 師曰 地水火風 受想行識 曰 這箇是五蘊 師曰 這箇異五蘊 問 此陰已謝彼陰未生時如何 師曰 此陰未謝 那箇是大德 曰 不會 師曰 若會此陰 便明彼陰 問 大用現前不存軌則時如何 師曰 汝用得但用 僧乃脫膊 遶師三匝 師曰 向上事何不道取 僧擬開口 師便打曰 這野狐精出去 有僧上法堂 顧視東西不見師 乃曰 好箇法堂 祇是無人 師從門裏出曰 作麽 僧無對 雪峯因入山採得一枝木 其形似虵 於背上題曰 本自天然 不假雕琢 寄與師 師曰 本色住山人 且無刀斧痕 僧問 佛在何處 師曰 不離心 又問 雙峯上人 有何所得 師曰 法無所得 設有所得 得本無得 問 黃巢軍來 和尙向甚麽處回避 師曰 五蘊山中 曰 忽被他捉著時如何 師曰 惱亂將軍 師大化閩城 唐中和三年歸黃檗示寂 塔于楞伽山 諡圓智禪師
●地水火風; 佛敎理論認爲世上萬物 竝由地水火風四種基本原素(四大)組成 以此說明人身無常不實受苦
●受想行識; 五蘊中之四蘊也 此四蘊皆爲心法 故稱曰非色之四蘊
●大用; 指禪法實踐 禪法運用 禪法授受
●黃巢; (820-884) 祖庭事苑二 黃巢 按唐書傳(舊唐書二百黃巢傳) 巢 曹州寃何人 本以販鹽爲事 乾符(874-87 9)中 仍歲凶荒 人飢爲盜 河南尤甚 巢與弟黃揆昆仲八人 率盜數千 依里人尙讓 月餘 衆至數萬 讓乃與群盜 推巢爲王 曰衝天大將軍 仍署官屬 蕃鎭不能制 以至於竊據京師 燔掠宮廟 天子爲之奔走 國號稱齊 年稱金統 朝廷以李克用率官軍討之 中和四年(88 4)五月 大敗之 賊散兗鄆界 巢入泰山 官軍遣將捕之 至狼虎谷 巢將林言斬巢及二弟鄴揆等七人首幷妻子 函送徐州
●惱亂; 煩擾
승문(僧問) 일체의 시위(法身)가 이 법신의 용(用)이라 하니 무엇이 이 법신입니까. 사왈 일체의 시위가 이 법신의 용이다. 가로되 5온(蘊)을 이각(離却)하면 무엇이 이 본래신(本來身)입니까. 사왈 지수화풍(地水火風)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이다. 가로되 이것(這箇)은 이 5온입니다. 사왈 이것은 다른(異) 5온이다. 묻되 차음(此陰; 陰은 五陰)이 이미 물러나고(謝) 피음(彼陰)이 생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차음(此陰)이 물러나지 않았다, 나개(那箇)가 이 대덕(大德)인가.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만약 차음(此陰)을 안다면 바로 피음(彼陰)을 밝힌다. 묻되 대용(大用)이 현전하여 궤칙(軌則)을 두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용득(用得)하거든 단지 용(用)하라. 중이 이에 어께를 벗고 스님을 세 바퀴 돌았다. 사왈 향상사(向上事)를 왜 도취(道取; 말하다. 取는 조사)하지 않느냐. 중이 입을 열려고 하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이(這) 야호정(野狐精)아 나가거라. 어떤 중이 법당에 올라 동서를 돌아보면서 스님을 보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호개(好箇; 箇는 조사)의 법당에 다만 이, 사람이 없구나. 스님이 문 속으로부터 나오며 가로되 뭐라고(作麽). 중이 대답이 없었다. 설봉(雪峯; 義存)이 입산함으로 인해 한 가지의 나무를 채득(采得)했는데 그 형상(形狀)이 뱀과 같았다. 등 위에 제(題)하여 가로되 본래 스스로 천연(天然)인지라 조탁(雕琢)을 빌리지 않는다. 기탁(寄託; 寄)하여 스님에게 주었다. 사왈 본색(本色)으로 주산(住山)하는 사람인지라 또한(且) 도부(刀斧)의 흔적이 없다. 승문(僧問) 부처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 또 묻되 쌍봉상(雙峯上)의 사람이 무슨 소득이 있습니까. 사왈 법에는 소득이 없나니 설사 소득이 있더라도 얻음이 본래 얻음이 아니다(無). 묻되 황소군(黃巢軍)이 온다면 화상이 어느 곳을 향해 회피하겠습니까 사왈 오온산중(五蘊山中)이다. 가로되 홀연히 그에게 사로잡힘(捉著)을 입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뇌란(惱亂)한 장군이다. 스님이 민성(閩城)을 크게 교화했다. 당 중화(中和) 3년(883) 황벽(黃檗)으로 돌아가 시적(示寂)했다. 릉가산(楞伽山)에 탑을 세웠고 시(諡)가 원지선사(圓智禪師)다.
●地水火風; 불교의 이론은, 인식하기를 세상의 만물은 모두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 기본원소(基本原素; 四大)로 말미암아 조성(組成)되었으며 이것으로써 인신(人身)이 무상(無常)하고 부실하여 수고한다고 설명(說明)함.
●受想行識; 5온(蘊) 중의 4온임. 이 4온은 모두 심법이 되는지라 고로 일컬어 가로되 비색(非色)의 4온이라 함.
●大用; 선법의 실천ㆍ선법의 운용ㆍ선법의 수수(授受)를 가리킴.
●黃巢; (820-884) 조정사원2. 황소(黃巢) 당서(唐書; 구당서200 黃巢傳)의 전(傳; 經書의 說明)을 안험컨대 황소는 조주(曹州) 원하(寃何) 사람이며 본래 소금 판매로 일을 삼았다. 건부(乾符; 874-879) 중 여러 해 흉황(凶荒)이라 사람들이 굶다가 도적이 되었는데 하남(河南)이 더욱 심했다. 황소가 동생 황규와 더불어 곤중(昆仲; 昆은 맏이 곤) 8인이 도적 수천을 거느리고 이인(里人) 상양(尙讓)에게 의지했는데 월여(月餘)에 무리가 수만에 이르렀으며 상양이 이에 군도(群盜)와 더불어 황소를 추대해 왕으로 삼아 가로되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라 했고 인해 관속(官屬)을 두었다(署). 번진(蕃鎭)이 능히 제압치 못해 경사(京師; 師는 서울 사. 곧 서울)에 절거(竊據)하기에 이르렀으며 궁묘(宮廟)를 번략(燔掠; 燔은 사를 번. 掠은 노략질할 략)했고 천자가 분주(奔走)했다. 국호를 제(齊)라 칭하고 연호(年號)를 금통(金統)이라 칭했다. 조정에서 이극용(李克用)을 써 관군을 거느리고 그를 토벌했다. 중화 4년(884) 5월 크게 그를 패퇴시키자 도적은 연운(兗鄆)의 경계로 흩어지고 황소는 태산에 들어갔다. 관군이 장병을 보내 그를 체포하려 했고 낭호곡(狼虎谷)에 이르자 황소의 장군 임언(林言)이 황소 및 두 동생인 업(鄴), 규(揆) 등 7인의 머리와 아울러 처자를 베어 서주(徐州)에 함송(函送)했다.
●惱亂; 번요(煩擾; 번거롭고 요란스러움).
杭州大慈山寰中禪師
蒲坂盧氏子 頂骨圓聳 其聲如鐘 少丁母憂 廬于墓所 服闋思報罔極 乃於幷州童子寺出家 嵩嶽登戒 習諸律學 後參百丈受心印 辭往南嶽常樂寺 結茅于山頂 一日南泉至問 如何是庵中主 師曰 蒼天蒼天 泉曰 蒼天且置 如何是庵中主 師曰 會卽便會 莫忉忉 泉拂袖而出 後住大慈 上堂 山僧不解答話 秖能識病 時有僧出 師便歸方丈〈法眼云 衆中喚作病在目前不識 玄覺云 且道大慈識病不識病 此僧出來是病不是病 若言是病 每日行住不可總是病 若言不是病 出來又作麽生〉 趙州問 般若以何爲體 師曰 般若以何爲體 州大笑而出 明日州掃地次 師曰 般若以何爲體 州置帚 拊掌大笑 師便歸方丈
●母憂; 母親的喪事
●罔極; 潙山警策句釋記上 詩云 哀哀父母 生我劬勞 欲報之恩 昊天罔極 經云 若有供養父母 得無量福
●幷州; 今四川省太原
●登戒; 登壇受戒也 受戒者登上戒壇領受戒律 則稱爲登壇受戒 略稱壇戒
●忉忉; 多語 忉 嘮叨(叨亦嘮)
항주(杭州) 대자산(大慈山) 환중선사(寰中禪師)
포판(蒲坂) 사람이며 성이 노씨(盧氏)다. 정골(頂骨)이 둥글게 솟았고(聳) 그 음성이 종과 같았다. 어릴 적에 모우(母憂)를 당해(丁) 묘소(墓所)에 기거(寄居; 廬)했고 복상(服喪; 服)을 마치자(闋) 망극(罔極)에 보은함을 사유하고 이에 병주(幷州) 동자사(童子寺)에서 출가했고 숭악(嵩嶽)에서 등계(登戒)하고 여러 율학(律學)을 학습했다. 후에 백장(百丈)을 참(參)해 심인(心印)을 받았고 고별하고는 남악(南嶽) 상락사(常樂寺)로 가서 산정(山頂)에 결모(結茅; 띳집을 엮음)했다. 어느 날 남천(南泉)이 이르러 묻되 무엇이 이 암중주(庵中主)인가. 사왈 창천창천(蒼天蒼天). 남천이 가로되 창천은 그래 두고 무엇이 이 암중주인가. 사왈 알려거든(會) 곧 바로 알고 도도(忉忉; 말이 많음)하지 마시오. 남천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후에 대자(大慈)에 거주했다. 상당(上堂) 산승은 답화(答話)할 줄 알지 못하고 다만 능히 식병(識病)한다. 때에 어떤 중이 나오자 스님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法眼이 이르되 衆中에서 병이 목전에 있거늘 알지 못한다고 불러 짓는다. 玄覺이 이르되 그래 말하라, 大慈가 識病하는가 식병하지 못하는가. 이 중이 出來함은 이 病인가 이 병이 아닌가. 만약 말하되 이 병이라고 한다면 매일 行住함을 가히 모두 이 병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며 만약 말하되 이 병이 아니라고 한다면 出來하여 또 무엇하겠는가(作麽生)〉. 조주(趙州)가 묻되 반야는 무엇을 체(體)로 삼는가. 사왈 반야는 무엇을 체로 삼는가. 조주가 크게 웃고 나갔다. 명일(明日) 조주가 소지(掃地)하던 차에 사왈 반야는 무엇을 체로 삼는가. 조주가 비를 방치하고 부장(拊掌; 拍掌)하며 크게 웃었다. 스님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母憂; 모친의 상사(喪事).
●罔極; 위산경책구석기상. 시에 이르되 애애(哀哀) 부모여/ 날 낳아 구로(劬勞)하시니/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호천망극(昊天罔極)이다. 경에 이르되 만약 부모에게 공양함이 있으면 무량한 복을 얻는다.
●幷州; 지금의 사천성 태원(太原).
●登戒; 계단(戒壇)에 올라 수계함. 수계자가 계단에 올라 계율을 영수함을 곧 등단수계라고 호칭함. 약칭이 단계(壇戒).
●忉忉; 말이 많음. 도(忉)는 노도(嘮叨; 叨도 또한 嘮임).
僧辭 師問 甚麽處去 曰 江西去 師曰 我勞汝一段事得否 曰 和尙有甚麽事 師曰 將取老僧去得麽 曰 更有過於和尙者 亦不能將去 師便休 僧後擧似洞山 山曰 闍黎爭合恁麽道 曰 和尙作麽生 山曰 得〈法眼別云 和尙若去 某甲提笠子〉 山又問其僧 大慈別有甚麽言句 曰 有時示衆曰 說得一丈 不如行取一尺 說得一尺 不如行取一寸 山曰 我不恁麽道 曰 和尙作麽生 山曰 說取行不得底 行取說不得底〈雲居云 行時無說路 說時無行路 不說不行時 合行甚麽路 洛浦云 行說俱到 卽本分事無 行說俱不到 卽本分事在〉 後屬武宗廢敎 師短褐隱居 大中歲重剃染 大揚宗旨 咸通三年不疾而逝 僖宗諡性空大師
중이 고별했다(辭). 스님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강서로 갑니다. 사왈 내가 너에게 일단사(一段事)를 노고롭게 하려는데 얻겠는가(得否). 가로되 화상이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사왈 노승(老僧)을 가지고(將取; 取는 조사) 감을 얻겠는가. 가로되 다시 화상을 초과하는 것이 있더라도 또한 능히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스님이 바로 쉬었다. 중이 후에 동산(洞山)에게 들어 보이자 동산이 가로되 사리(闍黎)는 어찌 합당히 이렇게(恁麽) 말했는가. 가로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동산이 가로되 얻는다(得)〈法眼이 別云 화상이 만약 가신다면 모갑은 삿갓(笠子)을 들겠습니다(提)〉. 동산이 또 그 중에게 묻되 대자(大慈)가 달리 무슨(什麽) 언구가 있었는가. 가로되 어떤 때 시중(示衆)해 가로되 1장(丈)을 설해 얻음이 1척(尺)을 행해 취함만 같지 못하고 1척을 설해 얻음이 1촌(寸)을 행해 취함만 같지 못하다. 동산이 가로되 나는 이렇게(恁麽) 말하지 않겠다. 가로되 화상은 어찌하겠습니까(作麽生). 동산이 가로되 행해 얻지 못하는 것(底)을 설해 취하고 설해 얻지 못하는 것을 행해 취한다〈雲居(道膺)가 이르되 行時에 說路가 없고 說時에 行路가 없다. 不說不行할 때 합당히 어떤 길(什麽路)을 행하느냐. 낙포(洛浦; 元安)가 이르되 行說이 모두 이르면(到) 곧 本分事가 없고 行說이 모두 이르지 못하면 곧 本分事가 있다(在)〉. 후에 무종(武宗)의 폐교(廢敎)를 당해(屬) 스님이 단갈(短褐)로 은거했고 대중세(大中歲; 847-860)에 거듭(重) 체염(剃染)하고 종지(宗旨)를 대양(大揚)했다. 함통(咸通) 3년(862) 질병 없이 서거(逝去)했다. 희종(僖宗)이 시(諡)하여 성공대사(性空大師)라 했다.
天台平田普岸禪師
洪州人也 於百丈門下得旨 後聞天台勝槩 聖賢間出 思欲高蹈方外 遠追遐躅 乃結茅薙草 宴寂林下 日居月諸 爲四衆所知 創平田禪院居之 上堂 神光不昧 萬古徽猷 入此門來 莫存知解 便下座 僧參 師打一拄杖 其僧近前把住拄杖 師曰 老僧適來造次 僧却打師一拄杖 師曰 作家作家 僧禮拜 師把住曰 是闍黎造次 僧大笑 師曰 這箇師僧今日大敗也 臨濟訪師 到路口先逢一嫂在田使牛 濟問嫂 平田路向甚麽處去 嫂打牛一棒曰 這畜生到處走到 此路也不識 濟又曰 我問你平田路向甚麽處去 嫂曰 這畜生五歲尙使不得 濟心語曰 欲觀前人 先觀所使 便有抽釘拔楔之意 及見師 師問 你還曾見我嫂也未 濟曰 已收下了也 師遂問 近離甚處 濟曰 江西黃檗 師曰 情知你見作家來 濟曰 特來禮拜和尙 師曰 已相見了也 濟曰 賓主之禮 合施三拜 師曰 旣是賓主之禮 禮拜著 有偈示衆曰 大道虛曠 常一眞心 善惡莫思 神淸物表 隨緣飮啄 更復何爲 終于本院 遺塔存焉
●方外; 世界之外 世俗之外 ▲祖庭事苑四 方外 莊子大宗師 孔子曰 彼遊方之外者也 而丘遊方之內者也 方 謂區域也
●遐躅; 遙遠的足跡 指古人的模範行爲
●日居月諸; 指光陰的流逝 居 語助詞 同乎 諸 語助詞
●徽猷; 美善之道 指玄妙的禪道 徽 美也 善也 猷 道也
●嫂; 對朋友妻子或一般婦女的稱謂
●抽釘拔楔; 抽去釘子 拔出木樁 比喩解除妄想疑惑 擺脫俗情迷障 亦作拔楔抽釘
●虛曠; 廣大寬闊
●常一; 始終如一
천태(天台) 평전보안(平田普岸) 선사
홍주(洪州) 사람이며 백장문하(百丈門下)에서 득지(得旨)했다. 후에 천태는 뛰어난 경계(景槩)며 현성이 가끔 출현한다 함을 듣고 사유하여 방외(方外)로 고도(高蹈)하려 했고 멀리서 하촉(遐躅)을 쫓아(追) 이에 띳집을 엮고 잡초를 깎고(薙草) 임하(林下)에 연적(宴寂; 安息)했다. 일거월저(日居月諸)하여 4중(衆)이 아는 바가 되었고 평전선원(平田禪院)을 창건하여 거주했다. 상당(上堂) 신광(神光)이 어둡지 않아/ 만고에 휘유(徽猷)니/ 이 문에 들어 왔거든/ 지해(知解)를 두지 말아라. 바로 하좌했다. 중이 참(參)했다. 스님이 1주장(拄杖)을 때렸다. 그 중이 근전(近前; 앞으로 접근)하더니 주장자를 파주(把住; 움켜쥐어 머물게 함)했다. 사왈(師曰) 노승이 적래(適來)에 조차(造次; 경솔)했다. 중이 도리어 스님을 1주장(拄杖) 때렸다. 작가(作家)로다, 작가로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파주(把住)하고 가로되 이는 사리(闍黎)의 조차(造次)다. 중이 크게 웃었다. 사왈 저개(這箇; 이. 箇는 조사)의 사승(師僧)이 금일 대패(大敗)했다. 임제(臨濟)가 스님을 방문했다. 노구(路口)에 이르러 먼저 한 아주머니(嫂)를 만났는데 밭에 있으면서 소를 부렸다. 임제가 아주머니에게 묻되 평전로(平田路)는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합니까. 아주머니가 소를 한 몽둥이 때리고 가로되 이 축생이 도처(到處)에 달려 이르면서 이 길도 또한 알지 못하는구나. 임제가 또 가로되 내가 그대에게 묻노니 평전로는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합니까. 아주머니가 가로되 이 축생이 다섯 살인데도 오히려 부림을 얻지 못하겠네. 임제가 심어(心語)로 가로되 앞의 사람을 보려고 한다면 먼저 소사(所使)를 보아야 겠구나. 바로 못을 뽑고 쐐기를 뽑는(抽釘拔楔) 뜻이 있다. 및 스님을 뵈니 스님이 묻되 네가 도리어 일찍이 나의 아주머니를 보았는가 또는 아닌가. 제왈(濟曰) 이미 거두었습니다(收下了也). 스님이 드디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제왈(濟曰) 강서의 황벽입니다. 사왈 정지(情知; 思料)컨대 네가 작가를 뵙고 왔다. 제왈(濟曰) 특별히 와서 화상에게 예배합니다. 사왈 이미 상견해 마쳤다. 제왈(濟曰) 빈주지례(賓主之禮)는 합당히 3배(拜)를 베풀어야 합니다. 사왈 이미 이 빈주지례니 예배하거라(禮拜著). 게가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대도(大道)는 허광(虛曠)하고/ 상일(常一)의 진심(眞心)이다/ 선악을 생각하지 말지니/ 정신이 맑아 사물의 밖이다(表)/ 인연 따라 음탁(飮啄)할지니/ 갱부(更復;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본원(本院)에서 마쳤고 유탑(遺塔)이 존채한다.
●方外; 세계의 밖. 세속의 밖. ▲조정사원4. 방외(方外) 장자 대종사(大宗師) 공자가 가로되 그는 방(方)의 밖에서 노니는 자며 구(丘; 공자의 이름)는 방의 안에 노니는 자다. 방(方)은 이르자면 구역임.
●遐躅; 요원(遙遠)한 족적. 고인의 모범행위를 가리킴.
●日居月諸; 광음이 흘러감을 가리킴. 거(居)는 어조사니 호(乎)와 같음. 저(諸; 원음이 저)는 어조사.
●徽猷; 미선(美善)의 도니 현묘한 선도(禪道)를 가리킴. 휘(徽)는 미(美)며 선(善)이며 유(猷)는 도임.
●嫂; 붕우의 처자나 혹 일반 부녀에 대한 칭위(稱謂; 칭호).
●抽釘拔楔; 못을 뽑아서 버리고 나무 말뚝을 뽑아 냄이니 망상과 의혹을 해제(解除)하고 속정(俗情)의 미장(迷障)을 파탈(擺脫; 털어버리고 벗어남)함에 비유함. 또한 발설추정(拔楔抽釘)으로 지음.
●虛曠; 광대하고 관활(寬闊)함.
●常一; 시종여일(始終如一)함.
瑞州五峯常觀禪師
僧問 如何是五峯境 師曰 險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塞 僧辭 師曰 甚麽處去 曰 臺山去 師竪一指曰 若見文殊了 却來這裏與汝相見 僧無語 師問僧 甚麽處來 曰 莊上來 師曰 汝還見牛麽 曰 見 師曰 見左角 見右角 僧無語 師代曰 見無左右〈仰山別云 還辨左右麽〉 又僧辭 師曰 汝諸方去 莫謗老僧在這裏 曰 某甲不道和尙在這裏 師曰 汝道老僧在甚麽處 僧竪起一指 師曰 早是謗老僧也
●瑞州; 江西省高安縣的古稱 漢代以後建城縣 唐代以後高安縣 附近有大愚山眞如寺 小洞山淸居寺 龍化山等 府治西南上高縣有蒙山末山九峰山 府治西新昌縣有洞山良价道場洞山普利院 [大明一統志五十七 讀史方輿紀要八十四] ▲古今韻會擧要 瑞 州名 本唐筠州 …… 宋改瑞州
서주(瑞州) 오봉(五峯) 상관선사(常觀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오봉경(五峯境)입니까. 사왈 위험하다(險).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막혔다(塞). 중이 고별하자 사왈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대산(臺山; 오대산)으로 갑니다. 스님이 한 손가락을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만약 문수(文殊)를 보고 나서 이 속에 돌아온다면(却來) 너와 상견해 주겠다. 중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장상(莊上)에서 옵니다. 사왈 너는 도리어 소를 보았느냐. 가로되 보았습니다. 사왈 좌각(左角)을 보았느냐, 우각(右角)을 보았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대왈(代曰) 견(見)은 좌우가 없다〈仰山이 別云 도리어 左右를 분변하느냐〉. 또 중이 고별하자 사왈 네가 제방으로 가거든 노승이 이 속에 있다고 비방하지 말아라. 가로되 모갑은 화상이 이 속에 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왈 네가 말하라, 노승이 어느 곳에 있느냐. 중이 한 손가락을 세워 일으켰다. 사왈 벌써 이, 노승을 비방했다.
●瑞州; 강서성 고안현의 고칭. 한대(漢代) 이후의 건성현이며 당대 이후의 고안현(高安縣)임. 부근에 대우산 진여사ㆍ소동산 청거사ㆍ용화산 등이 있음. 부치(府治) 서남 상고현에 몽산ㆍ말산ㆍ구봉산이 있고 부치 서 신창현(新昌縣)에 동산양개의 도량인 동산 보리원이 있음 [대명일통지57. 독사방여기요84]. ▲고금운회거요. 서(瑞)는 주명(州名)이다. 본래 당(唐)의 균주(筠州)였다 …… 송에서 서주(瑞州)로 고쳤다.
潭州石霜山性空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如人在千尺井中 不假寸繩 出得此人 卽答汝西來意 僧曰 近日湖南暢和尙出世 亦爲人東語西話 師喚沙彌 拽出這死屍著〈沙彌卽仰山 山後問耽源 如何出得井中人 源曰 咄 癡漢 誰在井中 山復問潙山 潙召慧寂 山應諾 潙曰 出也 仰山住後 常擧前語謂衆曰 我在耽源處得名 潙山處得地〉
●東語西話; 形容漫無目的地隨意講說 亦指言辭多
담주(潭州) 석상산(石霜山) 성공선사(性空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사왈(師曰) 예컨대(如) 사람이 천 척(尺)의 정중(井中)에 있는데 촌승(寸繩)을 빌리지 않고 이 사람을 구출함을 얻는다면 곧 너에게 서래의를 답하겠다. 승왈(僧曰) 근일 호남에 창화상(暢和尙)이 출세하여 또한 사람을 위해 동어서화(東語西話)하더이다. 스님이 사미(沙彌)를 불러 이 사시(死屍)를 끌어내어라(拽出) 했다〈沙彌는 곧 仰山이다. 앙산이 후에 탐원(耽源)에게 묻되 어떻게(如何) 정중(井中)의 사람을 구출함을 얻습니까. 탐원이 가로되 돌(咄), 치한(癡漢)아, 누가 정중에 있느냐. 앙산이 다시 위산(潙山)에게 묻자 위산이 곧 혜적(慧寂)아 하고 불렀다. 앙산이 응낙했다. 위산이 가로되 나왔다(出也). 앙산이 住後에 일찍이(常; 嘗과 통함) 전어(前語)를 들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탐원의 처소에서 득명(得名)했고 위산의 처소에서 득지(得地)했다〉.
●東語西話; 부질없이 목적이 없는 경지에서 뜻대로 강설함을 형용. 또 언사가 많음을 가리킴.
福州古靈神贊禪師
本州大中寺受業 後行脚遇百丈開悟 却回受業 本師問曰 汝離吾在外 得何事業 曰 竝無事業 遂遣執役 一日因澡身命師去垢 師乃拊背曰 好所佛堂而佛不聖 本師回首視之 師曰 佛雖不聖 且能放光 本師又一日在牕下看經 蜂子投牕紙求出 師覩之曰 世界如許廣濶不肯出 鑽他故紙驢年去 遂有偈曰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癡 百年鑽故紙 何日出頭時 本師置經問曰 汝行脚遇何人 吾前後見汝發言異常 師曰 某甲蒙百丈和尙指箇歇處 今欲報慈德耳 本師於是告衆致齋 請師說法 師乃登座 擧唱百丈門風曰 靈光獨耀 迥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本師於言下感悟曰 何期垂老得聞極則事 師後住古靈 聚徒數載 臨遷化剃浴聲鐘告衆曰 汝等諸人 還識無聲三昧否 衆曰 不識 師曰 汝等靜聽 莫別思惟 衆皆側聆 師儼然順寂 塔存本山
●受業; 隨師學習 受敎
●本師; (一)謂根本之敎師 亦卽本緣導師 本從師之意 一般多用於稱呼釋迦如來 與敎主本主本佛同義 (二)弟子尊稱其師 亦稱爲本師 禪錄多稱其受業師爲本師 史記八十樂毅傳 樂臣公學黃帝老子 其本師號曰河上丈人 不知其所出 此指(二)
●執役; 服役 擔任勞役
●如許; 許多 如此
●鑽故紙; 謂看讀經典祖錄
●如如佛; 覺悟如如理體之佛也 又佛體卽如如之理也
●垂老; 將近老年 垂 將也 [禪林寶訓音義]
복주(福州) 고령신찬(古靈神贊) 선사
본주(本州) 대중사(大中寺)에서 수업(受業)했고 후에 행각하다가 백장(百丈)을 만나 개오(開悟)했다. 수업(受業; 受業院이니 곧 大中寺)으로 돌아오자(却回) 본사(本師)가 문왈(問曰) 네가 나를 떠나 재외(在外)하면서 무슨 사업(事業)을 얻었느냐. 가로되 모두(竝) 사업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보내어 집역(執役)하게 했다. 어느 날 몸을 씻음(澡)으로 인해 스님에게 명(命)해 때를 제거하게 했다. 스님이 이에 등을 두드리며(拊) 가로되 좋은 곳(好所)의 불당(佛堂)에 부처가 성스럽지 못하네. 본사(本師)가 머리를 돌려 그를 보았다. 사왈(師曰) 부처는 비록 성스럽지 않지만 다만(且) 능히 방광하는구나. 본사가 또 어느 날 창 아래에 있으면서 간경(看經)하는데 벌(蜂子; 子는 조사)이 창지(牕紙; 窗紙와 같음)에 투신(投身)하며 나가기를 구했다. 스님이 이를 보다가 가로되 세계가 이와 같이(如許) 광활(廣濶)하거늘 탈출을 수긍하지 않고 저(他) 고지(故紙; 경전이나 祖錄)를 뚫으니 여년(驢年)이리라. 드디어 게가 있어 가로되 빈 문으로 나감을 긍정치 않고/ 창에 부딪치니 또한 매우 어리석다/ 백 년 토록 고지를 뚫은들(鑽故紙)/ 어느 날이 출두할 시절이겠는가. 본사가 경을 방치하고 문왈(問曰) 네가 행각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내가 전후로 너의 발언이 이상(異常)함을 보았다. 사왈 모갑이, 백장화상이 저(箇) 헐처(歇處)를 지시함을 입었습니다. 이제 자덕(慈德)에 보답하고자 할 뿐입니다. 본사가 이에 고중(告衆)하여 치재(致齋; 齋하다)하고 스님의 설법을 청했다. 스님이 등좌(登座)하여 백장문풍(百丈門風)을 거창(擧唱)해 가로되 영광(靈光)이 독요(獨耀)하여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났나니 진상(眞常)이 체로(體露)하여 문자에 구애되지 않는다. 심성(心性)이 물듦 없는지라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했나니 단지 망연(妄緣)만 여읜다면 곧 여여불(如如佛)이다. 본사가 언하에 감오(感悟)하고 가로되 어찌 늘그막(垂老)에 극칙사(極則事)를 득문(得聞)함을 기약했겠는가. 스님이 후에 고령(古靈)에 거주하며 무리를 모은 지 몇 해(載)였고 천화(遷化)에 임해 체욕(剃浴)하고 종을 소리 내고(聲鐘) 고중(告衆)해 가로되 너희 등 제인은 도리어 무성삼매(無聲三昧)를 아느냐. 대중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너희 등은 고요히 듣고 다른 사유(思惟)를 하지 말아라. 대중이 모두 기울여 들었다(側聆). 스님이 엄연(儼然)히 순적(順寂; 順世)했다. 탑을 본산에 두었다(存).
●受業; 스승을 따라 학습함. 가르침을 받음.
●本師; (1). 이르자면 근본의 교사임. 또 곧 본연(本緣)의 도사(導師)니 본래 좇는 스승의 뜻. 일반으로 다분히 석가여래의 칭호로 사용함. 교주ㆍ본주(本主)ㆍ본불과 같은 뜻. (2). 제자가 그 스승을 존칭함이니 또한 일컬어 본사라 함. 선록에선 다분히 그 수업사(受業師)를 일컬어 본사라 함. 사기80 악의전. 악신공(樂臣公)이 황제(黃帝)와 노자에게 배웠는데 그 본사의 호를 가로되 하상장인(河上丈人)이다. 그 나온 곳을 알지 못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執役; 복역(服役)이니 노역(勞役)을 담임(擔任)함.
●如許; 허다(許多). 여차(如此).
●鑽故紙; 경전이나 조록(祖錄)을 간독(看讀)함을 말함.
●如如佛; 여여의 이체(理體)를 각오(覺悟)한 불임. 또 불체(佛體)가 곧 여여의 리(理)임.
●垂老; 거의(將) 노년에 가까움. 수(垂)는 장(將)임 [선림보훈음의].
廣州和安寺通禪師
婺州雙林寺受業 自幼寡言 時人謂之不語通 因禮佛次 有禪者問 座主禮底是甚麽 師曰 是佛 禪者乃指像曰 這箇是何物 師無對 至夜具威儀禮問 今日所問 某甲未知意旨如何 禪者曰 座主幾夏邪 師曰 十夏 禪者曰 還曾出家也未 師轉茫然 禪者曰 若也不會 百夏奚爲 乃命同參馬祖 及至江西 祖已圓寂 遂謁百丈 頓釋疑情 有人問 師是禪師否 師曰 貧道不曾學禪 師良久 召其人 其人應諾 師指椶櫚樹子 其人無對 師一日召仰山將牀子來 山將到 師曰 却送本處著 山從之 師召慧寂 山應諾 師曰 牀子那邊是甚麽物 山曰 枕子 師曰 枕子這邊是甚麽物 山曰 無物 師復召慧寂 山應諾 師曰 是甚麽 山無對 師曰 去
광주(廣州) 화안사(和安寺) 통선사(通禪師)
무주(婺州) 쌍림사(雙林寺)에서 수업(受業)했고 어릴 적부터 말이 적은지라(寡言) 시인(時人)이 이르기를 불어통(不語通)이라 했다. 예불하던 차로 인해 어떤 선자(禪者)가 묻되 좌주(座主)가 예하는 것(禮底)은 이 무엇인가(是甚麽). 사왈 이 부처입니다. 선자가 이에 불상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것(這箇)은 이 무슨 물건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밤에 이르자 위의를 갖추어 예배하고 묻되(禮問) 금일 물으신 바는 모갑이 알지 못하오니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如何). 선자가 가로되 좌주는 몇 하(夏; 夏臘)인가. 사왈 10하(夏)입니다. 선자가 가로되 도리어 일찍이 출가했는가 또는 아닌가. 스님이 더욱(轉) 망연(茫然)했다. 선자가 가로되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不會) 백하(百夏)인들 무엇하겠는가(奚爲). 이에 명(命)하여 마조를 동참(同參)했다. 및 강서에 이르니 마조는 이미 원적(圓寂)한지라 드디어 백장을 예알(禮謁)하여 의정(疑情)이 문득 풀렸다. 어떤 사람이 묻되 스님은 이 선사입니까. 사왈 빈도(貧道)는 일찍이 선(禪)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양구(良久)했다가 그 사람을 불렀다. 그 사람이 응낙했다. 스님이 종려수자(椶櫚樹子; 종려 나무. 子는 조사)를 가리켰다. 그 사람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어느 날 앙산(仰山)을 불러 상자(牀子; 子는 조사)를 가지고 오라 했다. 앙산이 가지고 이르렀다. 사왈 도리어 본처(本處)로 보내어라. 앙산이 이를 좇았다. 스님이 혜적(慧寂)아, 하고 불렀다. 앙산이 응낙했다. 사왈 상자(床子)의 나변(那邊)은 이 무슨 물건인가. 앙산이 가로되 베개(枕子)입니다. 사왈 베개의 저변(這邊)은 이 무슨 물건인가. 앙산이 가로되 물건이 없습니다. 스님이 다시 혜적(慧寂)아, 하고 불렀다. 앙산이 응낙했다. 사왈 이 뭣고. 앙산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가거라.
江州龍雲臺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昨夜欄中失却牛
●江州; 今江西省九江
강주(江州) 용운대(龍雲臺)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노승이 어젯밤 난중(欄中; 외양간 속)에서 소를 잃어버렸다.
●江州; 지금의 강서성 구강(九江).
京兆衛國院道禪師
新到參 師問 何方來 曰 河南來 師曰 黃河淸也未 僧無對〈潙山代云 小小狐兒 要過但過 用疑作甚麽〉 師不安 不見客 有人來謁乃曰 久聆和尙道德 忽承法體違和 略請和尙相見 師將鉢鐼盛鉢楮 令侍者擎出呈之 其人無對
●法體; 一有爲無爲諸法之體性也 二敬稱僧人之身 此指二
●違和; 身體不適 有病
●鐼; 鐼子 鉢中之小鉢 卽淺鐵鉢 乃應量器內鍵𨩲 小鉢 次鉢等大小三器之總稱
●鉢榰; 鉢支也 又作鉢搘 支鉢之臺也 ▲四分律四十三 鉢若不正 應作鉢支
경조(京兆) 위국원(衛國院) 도선사(道禪師)
신도(新到)가 참(參)했다. 스님이 묻되 어느 방면에서 왔느냐. 가로되 하남(河南)에서 왔습니다. 사왈 황하(黃河)가 맑더냐 또는 아니냐(未). 중이 대답이 없었다〈潙山이 代云 小小한 여우(狐兒; 兒는 後綴)야, 지나가려고 하거든 단지 지나갈 것이지 의심을 써서 무엇하겠느냐〉. 스님이 불안(不安; 病患)하여 객을 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내알(來謁)하여 이에 가로되 오래 화상의 도덕(道德)을 들었는데(聆) 홀연히 법체(法體)의 위화(違和)를 받드니 간략히 청컨대(略請) 화상은 상견하십시오. 스님이 발분(鉢鐼)을 가져다 발지(鉢榰)를 담아 시자를 시켜 받들고(擎) 나가서 그에게 보이게(呈) 했다. 그 사람이 대답이 없었다.
●法體; 1. 유위무위의 제법의 체성(體性)임. 2. 승인의 몸의 경칭(敬稱)임.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違和; 신체가 쾌적하지 않음. 병이 있음.
●鐼; 분자(鐼子)임. 발중(鉢中)의 소발(小鉢)이니 곧 천철발(淺鐵鉢). 곧 응량기(應量器) 내의 건자(鍵𨩲)ㆍ소발(小鉢)ㆍ차발(次鉢) 등 대소(大小) 3기(器)의 총칭임.
●鉢榰; 발지(鉢支)임. 또 발지(鉢搘; 搘는 버티다)로 지음. 발우를 받치는 대(臺)임. ▲사분율43. 발우가 만약 바르지 않다면 응당 발지(鉢支)를 만든다.
鎭州萬歲和尙
僧問 大衆雲集 合譚何事 師曰 序品第一〈歸宗柔別云 禮拜了去〉
진주(鎭州) 만세화상(萬歲和尙)
승문(僧問) 대중이 운집했습니다. 합당히 무슨 일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사왈 서품제일(序品第一)이다〈歸宗柔(義柔)가 別云 예배하고 가거라〉.
洪州東山慧禪師
遊山見一巖 僧問 此巖還有主也無 師曰 有 曰 是甚麽人 師曰 三家村裏覔甚麽 曰 如何是巖中主 師曰 汝還氣急麽 小師行脚回 師問 汝離吾在外多少時邪 曰 十年 師曰 不用指東指西 直道將來 曰 對和尙不敢謾語 師喝曰 這打野榸漢 師同大于南用到茶堂 有僧近前不審 用曰 我旣不納汝 汝亦不見我 不審阿誰 僧無語 師曰 不得平白地恁麽問伊 用曰 大于亦無語那 于把定其僧曰 是你恁麽累我亦然 便打一摑 用大笑曰 朗月與靑天 大于侍者到 師問 金剛正定 一切皆然 秋去冬來 且作麽生 者曰 不妨和尙借問 師曰 卽今卽得 去後作麽生 者曰 誰敢問著某甲 師曰 大于還得麽 者曰 猶要別人點檢在 師曰 輔弼宗師 不廢光彩 侍者禮拜
●三家村; 指偏僻小村 有三家村裏漢 三家村裏老婆 三家村裏男女等語
●氣急; 呼吸急促
●打野榸; 打 砍取 榸 卓皆切 廣韻 榸 枯木根 打野榸 意謂不向正處行 遊方行脚 多含貶義
●茶堂; 禪林中 在法堂後 寢堂前 住持行禮之處 卽方丈也 [象器箋二]
●平白地; 白白地
●金剛正定; 金剛三昧經通宗記云 以其法性之身 體本堅密 故曰金剛 又以情亡智現 凡聖俱盡 心無動亂 無得無證 無生無滅 卽是金剛正見 若心稱此理 是則名爲金剛正定
●宗師; 一專指傳佛心宗(禪宗)之師 傳正法爲衆所尊崇者 稱曰宗師 二指體得經律論三藏之宗旨 學德兼備 堪爲萬人師範之高僧
홍주(洪州) 동산혜(東山慧) 선사
유산(遊山)하다가 1암(巖)을 보았다. 승문(僧問) 이 암(巖)에 도리어 주인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삼가촌(三家村) 속에서 무엇을 찾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암중주(巖中主)입니까. 사왈 너는 도리어 기급(氣急)하는가. 소사(小師)가 행각하고 돌아왔다. 사문(師問) 네가 나를 떠나 재외(在外)한 지 다소(多少)의 시일이던가. 가로되 10년입니다. 사왈 지동지서(指東指西)를 쓰지 말고 바로(直) 말해 가져 오너라. 가로되 화상을 상대로 감히 속이는 말(謾語)을 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할(喝)하고 가로되 이(這) 타야태한(打野榸漢)아. 스님이 대우(大于)ㆍ남용(南用)과 함께 다당(茶堂)에 이르렀다. 어떤 중이 근전(近前)하여 불심(不審)이라 했다. 남용(南用)이 가로되 내가 이미 너를 용납하지 않았고 너도 또한 나를 보지 않았는데 누구(阿誰)에게 불심(不審)이라 하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평백지(平白地) 이렇게(恁麽) 그에게 물음을 얻지 말아라. 남용이 가로되 대우(大于)도 또한 말이 없는가. 대우(大于; 于)가 그 중을 잡아 머물게(把定) 하고 가로되 이 네가 이렇게 묶고(累) 나도 또한 그러하다. 바로 때려 한 번 후려갈겼다. 남용이 크게 웃고 가로되 낭월(朗月)과 청천(靑天)이다. 대우(大于)의 시자(侍者)가 이르렀다. 스님이 묻되 금강정정(金剛正定)은 일체가 모두(皆) 그러하다. 추거동래(秋去冬來)는 또(且) 어떠한가(作麽生). 시자가 가로되 화상의 차문(借問)이 방애(妨礙)되지 않습니다. 사왈 즉금은 곧 얻지만(得) 간 후엔 어떠한가(作麽生). 시자가 가로되 누가 감히 모갑에게 문착(問著; 著은 조사)하겠습니까. 사왈 대우(大于)는 도리어 얻었는가. 시자가 가로되 오히려 별인(別人)의 점검(點檢)을 요합니다. 사왈 종사(宗師)를 보필(輔弼)하면서 광채(光彩)를 폐(廢)하지 말아라. 시자가 예배했다.
●三家村; 편벽(偏僻; 외지다)한 작은 촌을 가리킴. 삼가촌리한ㆍ삼가촌리노파ㆍ삼가촌리남녀 등의 말이 있음.
●氣急; 호흡이 급하고 짧음(促).
●打野榸; 타(打)는 쪼개어 취함임. 태(榸) 탁개절(卓皆切; 태). 광운 태(榸) 마른 나무뿌리다. 타야태는 뜻으로 이르자면 정처(正處)를 향해 행하지 않고 유방하며 행각함이니 폄하하는 뜻을 많이 머금었음.
●茶堂; 선림 중에서 법당의 뒤, 침당의 앞에 있으며 주지가 행례하는 곳이니 곧 방장임 [상기전2].
●平白地; 백백지(白白地; 공연히. 헛되이).
●金剛正定; 금강삼매경통종기(金剛三昧經通宗記)에 이르되 그 법성의 몸은 체가 본래 견밀(堅密)하기 때문에 고로 가로되 금강이다. 또 정(情)이 망하고 지(智)가 나타나고 범(凡)과 성(聖)을 다 없애고 마음에 동란이 없으며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으며 생도 없고 멸도 없음이 곧 이 금강정견이다. 만약 마음으로 이 이치를 일컬으면 이는 곧 이름해 금강정정(金剛正定)이다.
●宗師; 1. 오로지 부처의 심종(心宗; 禪宗)을 전하는 스님을 가리킴. 정법(正法)을 전해 대중에게 존숭(尊崇)되는 바가 되는 자를 호칭해 가로되 종사임. 2. 경률론(經律論) 3장의 종지(宗旨)를 체득하고 학덕을 겸비(兼備)하여 감(堪; 可)히 만인(萬人)의 사범(師範)이 되는 고승(高僧)을 가리킴.
淸田和尙
與瑫上座煎茶次 師敲繩牀三下 瑫亦敲三下 師曰 老僧敲 有箇善巧 上座敲 有何道理 瑫曰 某甲敲 有箇方便 和尙敲作麽生 師擧起盞子 瑫曰 善知識眼應須恁麽 茶罷 瑫却問 和尙適來擧起盞子 意作麽生 師曰 不可更別有也
청전화상(淸田和尙)
도상좌(瑫上座)와 전다(煎茶)하던 차에 스님이 승상(繩牀)을 세 번(三下) 두드렸다(敲). 도(瑫)도 또한 세 번 두드렸다. 사왈 노승의 두드림엔 저(箇) 선교(善巧)가 있거니와 상좌의 두드림엔 무슨 도리가 있는가. 도왈(瑫曰) 모갑의 두드림엔 저(箇) 방편이 있거니와 화상의 두드림은 어떻습니까(作麽生). 스님이 잔자(盞子; 子는 조사)를 들어 일으켰다. 도왈(瑫曰) 선지식의 눈은 응당 꼭 이러해야 합니다. 다파(茶罷)하자 도(瑫)가 도리어 묻되 화상이 아까 잔자(盞子)를 들어 일으켰음은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가히 다시 별다른 게 있음이 아니다.
百丈山涅槃和尙
一日謂衆曰 汝等與我開田 我與汝說大義 衆開田了 歸請說大義 師乃展兩手 衆罔措〈洪覺範林間錄云 百丈第二代法正禪師 大智之高弟 其先甞誦涅槃經 不言姓名 時呼爲涅槃和尙 住成法席 師功最多 使衆開田 方說大義者 乃師也 黃檗古靈諸大士皆推尊之 唐文人黃武翊撰其碑甚詳 柳公權書 妙絕今古 而傳燈所載百丈惟政禪師 又係於馬祖法嗣之列 悞矣 及觀正宗記 則有惟政法正 然百丈第代可數 明敎但皆見其名 不能辨而俱存也 今當以柳碑爲正〉
●林間錄; 二卷 宋代黃龍派僧覺範慧洪(1071-1128)撰 全稱石門洪覺範林間錄 收於卍續藏第一四八冊 本書爲寂音尊者覺範慧洪禪師之語錄 內容慧洪與林間勝士抵掌淸談有關尊宿之高行 叢林中各種遺訓 諸佛菩薩之微旨 及賢士大夫之餘論等之語要共三百餘篇 此外 慧洪另著有林間後錄一卷 又作林間錄後集 新編林間後錄 此其所撰之石門文字禪卷十七至卷二十之贊銘竝序等 亦收於卍續藏第一四八冊 [禪籍志卷下]
●妙絕; .精妙絕倫
●正宗記; 傳法正宗記 九卷 宋代明敎大師契嵩(1007-1072)著 略稱正宗記 收於大正藏第五十一冊 本書卽繼景德傳燈錄之後 敘述自印度以來諸祖師之傳記 以及支那禪宗師徒面授付法相承之順序 卷一 敎祖釋迦如來之傳 卷二至六 敘述自第一祖摩訶迦葉以降 至第三十三祖大鑑慧能之傳記 竝謂此一傳承爲正統 卷七卷八 慧能門下一三○四人之略傳 卷九 收錄慧能以前各旁系二○五人之事蹟 此外 著者另附有傳法正宗定祖圖一卷 與傳法正宗論二卷於本書之後 三書(共十二卷)合稱爲嘉祐集 [佛祖歷代通載二十八 鐔津明敎大師行業記 釋氏稽古略四]
백장산(百丈山) 열반화상(涅槃和尙)
어느 날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등이 나를 위해(與) 개전(開田)하면 내가 너희를 위해(與) 대의(大義)를 설하겠다. 대중이 개전하여 마치자 돌아와 대의를 설하기를 청했다. 스님이 이에 두 손을 폈다. 대중이 망조(罔措)했다〈洪覺範의 林間錄에 이르되 백장의 제2대 法正禪師는 대지(大智; 百丈懷海의 시호)의 高弟다. 그가 먼저 일찍이 열반경을 외웠고 姓名을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 涅槃和尙으로 呼稱했다. 거주하며 法席을 이룬 것은 스님의 功이 最多였다. 대중을 시켜 開田케 하고 바야흐오 大義를 설한 자는 곧 스님이다. 黃檗과 古靈(神贊) 여러 大士가 모두 推尊했다. 唐 文人 黃武翊이 그의 碑를 지었는데 매우 상세하고 柳公權의 書는 今古에 妙絕하다. 傳燈에 실린 바 百丈惟政 선사를 또 馬祖法嗣之列에 맨(係) 것은 錯誤(悞)다. 및 正宗記를 보매 곧 惟政法正이 있다. 그러나 百丈의 第代는 가히 세었지만(數) 明敎는 단지 모두 그 이름만 보았고 능히 분변하여 모두 存置하지 못했다. 이제 마땅히 柳碑를 正으로 삼는다〉
●林間錄; 2권. 송대 황룡파승 각범혜홍(覺範慧洪; 1071-1128)이 지었음. 전칭이 석문홍각범임간록이며 만속장 제148책에 수록되었음. 본서는 적음존자 각범혜홍선사의 어록이 됨. 내용은 헤홍과 임간(林間)의 승사(勝士)가 저장(抵掌; 손뼉을 치다)하며 청담(淸談)한 것과 존숙의 고행(高行)에 관련이 있는 것ㆍ총림 중의 각종 유훈(遺訓)ㆍ제불보살의 미묘한 지취 및 현명한 사대부의 여론(餘論) 등의 어요(語要) 모두 300여 편임. 이 밖에 혜홍의 다른 저작에 임간후록 1권이 있으며 또 임간록후집, 신편임간후록으로 지음. 이것은 그가 지은 바 석문문자선 권17에서 권20에 이르기까지의 찬명병서(贊銘竝序) 등이며 또한 만속장 제148책에 수록되었음 [선적지권하].
●妙絕; .정묘(精妙)하고 절륜(絕倫)함.
●正宗記;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니 9권. 송대 명교대사(明敎大師) 계숭(契嵩; 1007-1072)이 지었음. 약칭이 정종기며 대정장 제51책에 수록되었음. 본서는 곧 경덕전등록의 뒤를 이어 인도 이래로부터의 여러 조사의 전기(傳記)와 지나(支那) 선종의 사도(師徒)가 면수(面授)하며 부법상승(付法相承)하는 순서에 이르기까지를 서술했음. 권1은 교조석가여래지전(敎祖釋迦如來之傳). 권2에서 6에 이르기까지는 제1조 마하가섭 이강(以降; 이하)으로부터 제33조 대감혜능에 이르기까지의 전기를 서술했고 아울러 이르기를 이 1전승(傳承)이 정통이 된다. 권7, 권8은 혜능의 문하 1,304인의 약전(略傳). 권9는 혜능 이전의 각방계(各旁系) 205인의 사적(事蹟)을 수록했음. 이 밖에 저자가 따로 전법정종정조도(傳法正宗定祖圖) 1권과 전법정종론(傳法正宗論) 2권을 본서의 뒤에 붙여 두었음. 3서(三書; 모두 12권)를 합칭해 가우집(嘉祐集)이라 함 [불조역대통재28. 심진명교대사행업기. 석씨계고략4].
南泉願禪師法嗣
趙州觀音院〈亦曰東院〉從諗禪師
曹州郝鄕人也 姓郝氏 童稚於本州扈通院從師披剃 未納戒便抵池陽 參南泉 値泉偃息而問曰 近離甚處 師曰 瑞像 泉曰 還見瑞像麽 師曰 不見瑞像 祇見臥如來 泉便起坐問 汝是有主沙彌 無主沙彌 師曰 有主沙彌 泉曰 那箇是你主 師近前躬身曰 仲冬嚴寒 伏惟和尙尊候萬福 泉器之 許其入室
●趙州; 一位於河北省西部之都市 卽趙縣 隋謂趙郡 唐名趙州 宋名慶源府 元稱趙州而爲首邑 其地形 西爲太行山脈 前臨河北平原 自古卽爲軍事要地 唐末大中(847-859)年間 趙州從諗禪師 以趙州爲中心 大振南宗禪風 二唐代僧從諗 住趙州城東觀音院 故稱趙州
●曹州; 今山東省定陶西 明一統志二十三山東兗州府曰 曹州在府城西三百里 古豫州之域
●童稚; 童年 幼稚
●納戒; 指通過一定之儀式 領受佛所制定之戒法 又作受戒 稟戒
●有主沙彌; 禪門拈頌集第四○六則 拈頌說話曰 有主者 有主宰也
●躬身; 俯屈身體 以示恭敬
●伏惟; 表示伏在地上想 下對上陳述時的表敬之辭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亦曰東院〉 종심선사(從諗禪師)
조주(曹州) 학향(郝鄕) 사람이며 성이 학씨(郝氏)다. 동치(童稚; 어린 나이)에 본주(本州) 호통원(扈通院)에서 스승을 좇아 피체(披剃)했다. 납계(納戒)하지 아니한 전에 바로 지양(池陽)에 다다라 남천(南泉)을 참(參)했다. 남천이 누워 휴식함(偃息)을 만났는데 물어 가로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사왈(師曰) 서상(瑞像)입니다. 천왈(泉曰) 도리어 서상(瑞像)을 보았느냐. 사왈 서상은 보지 못했으나 다만 누운 여래(臥如來)를 봅니다. 남천이 바로 일어나 앉아 묻되 너는 이 유주사미(有主沙彌)냐, 무주사미(無主沙彌)냐. 사왈 유주사미입니다. 천왈(泉曰) 어느 것이 이 너의 주(主)냐. 스님이 앞으로 다가가서 몸을 굽히며(躬身) 가로되 중동(仲冬)에 엄한(嚴寒)하니 복유(伏惟)컨대 화상은 존후(尊候) 만복(萬福)하십시오. 남천이 법기(法器)로 여기고 그의 입실(入室)을 허락했다.
●趙州; 1. 하북성 서부에 위치하는 도시니 곧 조현(趙縣)임. 수(隋)에서는 조군(趙郡)이라 일컬었고 당(唐)에선 조주(趙州)로 이름했고 송(宋)에선 경원부(慶源府)로 이름했고 원(元)에선 조주(趙州)로 호칭하면서 수읍(首邑)으로 삼았음. 그 지형은 서쪽으론 태행산맥(太行山脈)이 되고 앞으로는 하북평원(河北平原)에 임(臨)했음. 자고(自古)로 곧 군사요지(軍事要地)가 됨. 당말(唐末) 대중(大中; 847-859)년 간 조주종심선사(趙州從諗禪師)가 조주를 중심으로 하여 남종선풍(南宗禪風)을 크게 떨쳤음. 2. 당대승 종심(從諗)이니 조주성(趙州城) 동쪽의 관음원(觀音院)에 주(住)한지라 고로 호칭이 조주임.
●曹州; 지금의 산동성 정도(定陶) 서쪽이니 명일통지23 산동 연주부(兗州府)에 가로되 조주는 부성(府城) 서쪽 3백 리에 있다. 옛 예주(豫州)의 지역이다.
●童稚; 동년(童年; 어린 나이). 유치(幼稚; 어린 나이).
●納戒; 일정한 의식을 통과하고 불타가 제정한 바의 계법을 영수함을 가리킴. 또 수계(受戒)ㆍ품계(稟戒)로 지음.
●有主沙彌; 선문염송집 제406칙. 염송설화에 가로되 유주(有主)란 것은 주재(主宰)가 있음이다.
●躬身; 신체를 굽혀서(俯屈) 공경(恭敬)을 보임.
●伏惟; 지상에 엎드려 있으면서 생각함을 표시함. 하급(下級)이 상급에 대해 진술할 때의 표경(表敬)의 언사임.
他日問泉曰 如何是道 泉曰 平常心是道 師曰 還可趣向也無 泉曰 擬向卽乖 師曰 不擬爭知是道 泉曰 道不屬知 不屬不知 知是妄覺 不知是無記 若眞達不疑之道 猶如太虛 廓然蕩豁 豈可强是非邪 師於言下悟理 乃往嵩嶽瑠璃壇納戒 仍返南泉 一日問泉曰 知有底人向甚麽處去 泉曰 山前檀越家作一頭水牯牛去 師曰 謝師指示 泉曰 昨夜三更月到牕
●蕩豁; 豁然開朗而心無掛礙
다른 날(他日) 남천(南泉)에게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천왈(泉曰) 평상심(平常心)이 이 도다. 사왈(師曰) 도리어 가히 취향(趣向)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천왈(泉曰) 향하려고 하면(擬向) 곧 어긋난다(乖). 사왈 헤아리지(擬) 않을 때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知). 천왈(泉曰) 도는 지(知)에 속하지 않고 부지(不知)에 속하지 않나니 지(知)는 이 망각(妄覺)이며 부지(不知)는 이 무기(無記)이다. 만약 이 진실로 불의(不疑)의 도에 통달했다면 마치 태허(太虛)와 같아서 확연(廓然)하고 탕활(蕩豁)하거늘 어찌 가히 억지로 시비하겠는가. 스님이 언하에 이치를 깨달았다. 이에 숭악(嵩嶽) 유리단(瑠璃壇)으로 가서 납계(納戒; 수계)하고 그대로(仍) 남악으로 돌아왔다(却返). 어느 날 남천에게 물어 가로되 지유(知有)한 사람은 어느 곳을 향해 갑니까. 천왈(泉曰) 산 앞의 단월가(檀越家)에 한 마리 수고우(水牯牛)가 되어 간다. 사왈 스님의 지시에 감사합니다. 천왈(泉曰) 어젯밤 3경에 달이 창에 이르렀다.
●蕩豁; 휑하게 개랑(開朗)하여 마음에 괘애(掛礙)가 없음.
泉曰 今時人 須向異類中行始得 師曰 異卽不問 如何是類 泉以兩手拓地 師近前一踏踏倒 却向涅槃堂裏呌曰 悔悔 泉令侍者問 悔箇甚麽 師曰 悔不更與兩踏 南泉上堂 師出問 明頭合 暗頭合 泉便下座歸方丈 師曰 這老和尙被我一問 直得無言可對 首座曰 莫道和尙無語好 自是上座不會 師便打一掌曰 此掌合是堂頭老漢喫 師到黃檗 檗見來便閉方丈門 師乃把火於法堂內 呌曰 救火救火 檗開門捉住曰 道道 師曰 賊過後張弓
●明頭; 一明白 頭 後綴 助詞也 如鼻頭 舌頭 念頭 心頭 鉢頭 草頭 苗頭 裏頭 外頭等等 二明白的人 此指一
●暗頭; 暗裏 黑暗處 頭 後綴 助詞也
●堂頭; 指住持也 又謂住持居室也
●救火; 撲滅火災
●張弓; 開弓(拉弓弦)
남천(南泉)이 가로되 금시인(今時人)은 모름지기 이류(異類) 가운데를 향해 행해야 비로소 옳다. 사왈 이(異)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류(類)입니까. 남천이 양손으로써 탁지(拓地; 땅을 밀치다)했다. 스님이 앞으로 다가가 한 번 밟아서 밟아 넘어뜨리고 도리어 열반당(涅槃堂) 속을 향해 가서 부르짖으며 가로되 후회한다(悔), 후회한다. 남천이 시자를 시켜 묻게 하되 저(箇) 무엇을 후회하는가. 사왈 다시 두 번 밟아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남천이 상당(上堂)하자 스님이 나가서 묻되 명두(頭明)에 합합니까(合), 암두(暗頭)에 합합니까. 남천이 바로 하좌하여 방장으로 돌아갔다. 사왈 이 노화상(老和尙)이 나의 1문(問)을 입자 가히 대답할 말이 없음을 바로 얻었다. 수좌(首座)가 가로되 화상이 말씀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나니 스스로 이 상좌가 알지 못했다. 스님이 바로 1장(掌) 때리고 가로되 이 장(掌)은 합당히 이 당두노한(堂頭老漢)이 먹었어야 한다. 스님이 황벽(黃檗)에 이르렀다. 황벽이 옴을 보자 바로 방장문(方丈門)을 닫았다. 스님이 이에 불을 가지고 법당 안에서 부르짖으며 가로되 구화(救火)하라, 구화하라. 황벽이 문을 열어 착주(捉住)하고 가로되 말하라, 말하라. 사왈 도적이 지나간 후에 장궁(張弓)하는구나.
●明頭; 1. 명백. 두(頭)는 후철이니 조사임. 예컨대(如) 비두(鼻頭)ㆍ설두(舌頭)ㆍ염두(念頭)ㆍ심두(心頭)ㆍ발두(鉢頭)ㆍ초두(草頭)ㆍ묘두(苗頭)ㆍ이두(裏頭)ㆍ외두(外頭) 등등. 2. 명백한 사람.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暗頭; 어둠 속. 흑암처. 두는 후철이니 조사임.
●堂頭; 주지를 가리킴. 또 이르자면 주지의 거실임.
●救火; 화재를 박멸(撲滅)함.
●張弓; 개궁(改弓; 활줄을 당김).
到寶壽 壽見來 於禪牀上背坐 師展坐具禮拜 壽下禪牀 師便出 又到道吾 纔入堂 吾曰 南泉一隻箭來也 師曰 看箭 吾曰 過也 師曰 中 又到茱萸 執拄杖於法堂上 從東過西 萸曰 作甚麽 師曰 探水 萸曰 我這裏一滴也無 探箇甚麽 師以杖倚壁便下 師將遊五臺 有大德作偈 留曰 無處靑山不道場 何須䇿杖禮淸涼 雲中縱有金毛現 正眼觀時非吉祥 師曰 作麽生是正眼 德無對〈法眼代云 請上座領某甲情 同安顯代云 是上座眼〉 師自此道化被於北地 衆請住觀音院
●金毛; 金毛師子的略稱 又指文殊
보수(寶壽)에 이르자 보수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선상 위에서 등지고 앉았다. 스님이 좌구를 펴고 예배하자 보수가 선상에서 내려왔다. 스님이 바로 나갔다. 또 도오(道吾)에 이르러 겨우 입당(入堂)하자 오왈(吾曰) 남천(南泉)의 1척(隻)의 화살이 왔구나. 사왈 화살을 보아라. 오왈(吾曰) 지나갔다. 사왈 맞혔다(中). 또 수유(茱萸)에 이르러 주장자를 가지고 법당상(法堂上)에서 동쪽으로 좇아 서쪽에 이르렀다. 수왈(萸曰) 무엇 하느냐. 사왈 탐수(探水; 물을 探索)한다. 수왈(萸曰) 나의 이 속은 한방울(一滴)도 없거늘 저(箇) 무엇을 탐색하는가. 스님이 주장자를 벽에 기대고 바로 내려갔다. 스님이 장차 오대산을 유행(遊行)하려고 했다. 어떤 대덕이 게를 지어 만류(挽留)해 가로되 청산이 도량이 아닌 곳이 없거늘/ 어찌 주장자를 짚고(策杖) 청량(淸涼; 오대산)에 참례함을 쓰리오/ 구름 가운데 비록 금모(金毛)가 나타남이 있더라도/ 정안(正眼)으로 볼 때 길상(吉祥)이 아니다. 사왈 무엇이 이 정안인가. 대덕이 대답이 없었다〈法眼이 代云 상좌에게 청하노니 모갑의 情을 영회(領會)하라. 同安顯(紹顯)이 代云 이 상좌의 눈이다〉. 스님이 이로부터 도화(道化; 도의 교화)가 북지(北地)에 미쳤고(被) 대중의 청으로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 주(住)했다.
●金毛; 금모사자(金毛師子)의 약칭. 또 문수를 가리킴.
上堂 如明珠在掌 胡來胡現漢來漢現 老僧把一枝草 爲丈六金身用 把丈六金身 爲一枝草用 佛是煩惱 煩惱是佛 僧問 未審佛是誰家煩惱 師曰 與一切人煩惱 曰 如何免得 師曰 用免作麽 掃地次 僧問 和尙是大善知識 爲甚麽掃地 師曰 塵從外來 曰 旣是淸淨伽藍 爲甚麽有塵 師曰 又一點也 師與官人遊園次 兔見乃驚走 遂問 和尙是大善知識 兔見爲甚麽走 師曰 老僧好殺
●胡來胡現漢來漢現; 胡人來則現胡人面 漢人來則現漢人面 謂悟道者 隨緣任運平常作爲 心如明鏡機用無礙 亦謂按來機之不同 采取不同的應機作略或接引施設
●丈六金身; 丈六 身長一丈六尺 是通常化身佛之身量也 據諸經所載 佛世之時 凡人之身長約八尺 佛陀倍之 故爲丈六 金身 黃金色之身 謂佛身也 ▲佛說十二遊經 調達身長 丈五四寸 佛身長 丈六尺 難陀身長 丈五四寸 阿難身長 丈五三寸 其貴姓舍夷 長一丈四尺 其餘國皆長丈三尺
상당(上堂) 명주(明珠)가 손바닥에 있음과 같아서 호인이 오면 호인이 나타나고 한인이 오면 한인이 나타난다(胡來胡現漢來漢現). 노승이 일지초(一枝草)를 잡아 장륙금신(丈六金身)의 용(用)으로 짓고(爲) 장륙금신을 잡아 일지초의 용으로 짓는다. 부처는 이 번뇌며 번뇌는 이 부처다. 승문(僧問) 미심하오니 부처가 이 수가(誰家; 何家)의 번뇌입니까. 사왈 일체인에게 번뇌를 준다(與). 가로되 어찌해야 면함을 얻습니까. 사왈 면함을 써서 무엇하랴. 소지(掃地)하는 차에 승문(僧問) 화상은 이 대선지식이거늘 무엇 때문에 소지(掃地)합니까. 사왈(師曰) 티끌이 밖으로부터 왔다. 가로되 이미 이 청정한 가람(伽藍)에 무엇 때문에 티끌이 있습니까. 사왈 또 1점(點)이다. 스님이 관인(官人)과 더불어 유원(遊園)하던 차에 토끼가 보고 이에 놀라서 달렸다. 드디어 묻되 화상은 이 대선지식이거늘 토끼가 보고 무엇 때문에 달립니까. 사왈 노승이 죽이기를 좋아한다(好殺).
●胡來胡現漢來漢現; 호인이 오면 곧 호인의 얼굴을 나타내고 한인이 오면 곧 한인의 얼굴을 나타냄이니 이르자면 오도한 자가 수연(隨緣)하며 임운(任運)하는 평상의 작위(作爲)임. 마음은 명경과 같아서 기용(機用)이 무애함. 또 이르자면 내기(來機)의 부동(不同)을 살펴서 부동(不同)의 응기작략(應機作略) 혹 접인시설(接引施設)을 채취(采取)함.
●丈六金身; 장륙은 신장이 1장6척이니 이는 통상 화신불의 신량(身量)임. 여러 경의 소재(所載)에 의거하면 불세(佛世)의 시절에 평범한 사람의 신장은 약 8척이었고 불타는 배(倍)니 고로 장륙이 됨. 금신은 황금색의 몸이니 불신(佛身)을 말함. ▲불설십이유경. 조달(調達)의 신장은 장오사촌(丈五四寸)이며 불타의 신장은 장륙척(丈六尺)이며 난타(難陀)의 신장은 장오사촌(丈五四寸)이며 아난의 신장은 장오삼촌(丈五三寸)이다. 그 귀성(貴姓) 사이(舍夷)는 신장이 1장4척이다. 그 나머지 나라는 모두 신장이 장삼척(丈三尺)이다.
問 覺華未發時 如何辨眞實 師曰 開也 曰 是眞是實 師曰 眞是實 實是眞 曰 甚麽人分上事 師曰 老僧有分 闍黎有分 曰 某甲不招納時如何 師佯不聞 僧無語 師曰 去 石幢子被風吹折 僧問 陀羅尼幢子作凡去 作聖去 師曰 也不作凡 亦不作聖 曰 畢竟作甚麽 師曰 落地去也 僧辭 師曰 甚處去 曰 諸方學佛法去 師竪起拂子曰 有佛處不得住 無佛處急走過 三千里外 逢人不得錯擧 曰 與麽則不去也 師曰 摘楊花 摘楊花 問 承聞和尙親見南泉 是否 師曰 鎭州出大蘿蔔頭 大衆晩參 師曰 今夜答話去也 有解問者出來 時有一僧便出禮拜 師曰 比來拋甎引玉 却引得箇墼子〈保壽云 射虎不眞 徒勞沒羽 長慶問覺上座云 那僧纔出禮拜 爲甚麽便收伊爲墼子 覺云 適來那邊亦有人恁麽問 慶云 向伊道甚麽 覺云 也向伊恁麽道 玄覺云 甚麽處却成墼子去 叢林中道纔出來 便成墼子 祇如每日出入 行住坐臥 不可總成墼子 且道這僧出來 具眼不具眼〉
●石幢子; 石幢 子 後綴 幢 爲竿柱高出 以種種之絲帛莊嚴者
●摘楊花; 離別的歌曲名 ▲禪門拈頌集第四三○則 拈頌說話云 摘楊花云云者 陶潛詩云 稚子摘楊花 東西傍楊柳 堪笑老翁翁 不得隨他去
●承聞; 禪門拈頌集第四○九則 拈頌說話云 承聞者 在下尊上之稱也 又承他而聞也
묻되 각화(覺華)가 피지(發) 않았을 때 어떻게 진실(眞實)을 분변합니까. 사왈 피었다(開). 가로되 이 진(眞)입니까, 이 실(實)입니까. 사왈 진(眞)이 이 실(實)이며 실이 이 진이다. 가로되 어떤 사람의 분상(分上)의 일입니까. 사왈 노승이 분(分; 分限)이 있고 사리(闍黎)도 분(分)이 있다. 가로되 모갑이 초납(招納; 招引하여 接納)하지 않을 시(時) 어떻습니까. 스님이 듣지 않은 체했다(佯不聞).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가거라. 석당자(石幢子)가 바람이 불어 부러짐을 입었다. 승문(僧問) 다라니(陀羅尼) 당자(幢子)가 범부가 되어 갔습니까. 성인이 되어 갔습니까. 사왈 또한 범부가 되지 않고 또한 성인이 되지 않았다. 가로되 필경 무엇이 되었습니까(作甚麽). 사왈 땅에 떨어져 갔다.중이 고별하자 사왈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제방에 불법을 배우러 갑니다.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부처가 있는 곳에 머묾을 얻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은 급히 달려서 지나가거라. 3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잘못 듦을 얻지 말아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가지 않겠습니다. 사왈 적양화(摘楊花), 적양화. 묻되 승문(承聞)컨대 화상이 남천(南泉)을 친견했다 하니 그렇습니까. 사왈 진주(鎭州)에 대나복두(大蘿蔔頭; 큰 무. 頭는 조사)가 나왔다. 대중이 만참(晩參)했다. 사왈 금야(今夜)는 답화(答話)하여 가겠다. 물을 줄 아는 자가 있거든 나오너라. 때에 한 중이 있어 바로 나와 예배했다. 사왈 비래(比來; 近來) 벽돌(甎)을 던져 옥을 당길려고 했더니 도리어 저(箇) 격자(墼子; 날벽돌. 子는 조사)를 인득(引得)했다〈保壽云 射虎하여 眞이 아니면 徒勞 화살깃이 잠긴다. 長慶이 覺上座에게 물어 이르되 那僧은 겨우 나와 예배했는데 무엇 때문에 바로 그를 거두어 墼子로 삼았는가. 覺云 아까 那邊에 또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慶云 그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覺云 또한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玄覺云 어느 곳이 도리어 墼子를 이루어 갔는가. 총림 중에서 말하되 겨우 出來하매 바로 墼子를 이룬다 하니 祇如 매일 출입하고 행주좌와하면서 모두 墼子를 이룬다 함은 옳지 못하다. 且道하라, 이 중이 出來하매 具眼했는가, 具眼하지 못했는가〉.
●石幢子; 석당(石幢)이니 자(子)는 후철. 간주(竿柱)가 고출(高出)했고 갖가지 사백(絲帛)으로 장엄한 것.
●摘楊花; 이별의 가곡 이름. ▲선문염송집 제430칙. 염송설화에 이르되 적양화 운운한 것은 도잠의 시에 이르되 어린이(稚子)가 버들꽃을 따는데/ 동서 곁에 양류(楊柳)다/ 가히 우습구나 노옹은 늙어/ 그를 따라감을 얻지 못하네.
●承聞; 선문염송집 제409칙. 염송설화에 이르되 승문(承聞)이란 것은 아래에 있으면서 위를 존경하는 명칭이다. 또 그를 공경(承)하며 들음이다.
上堂 金佛不度爐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眞佛內裏坐 菩提涅槃 眞如佛性 盡是貼體衣服 亦名煩惱 實際理地甚麽處著 一心不生 萬法無咎 汝但究理 坐看三二十年 若不會 截取老僧頭去 夢幻空華 徒勞把捉 心若不異 萬法一如 旣不從外得 更拘執作麽 如羊相似 亂拾物安向口裏 老僧見藥山和尙道 有人問著 但敎合取狗口 老僧亦敎合取狗口 取我是垢 不取我是淨 一似獵狗專欲得物喫 佛法在甚麽處 千人萬人盡是覔佛漢子 於中覔一箇道人無 若與空王爲弟子 莫敎心病最難醫 未有世界 早有此性 世界壞時 此性不壞 一從見老僧後 更不是別人 祇是箇主人公 這箇更向外覔作麽 正恁麽時 莫轉頭換腦 若轉頭換腦 卽失却也 僧問 承師有言 世界壞時 此性不壞 如何是此性 師曰 四大五陰 曰 此猶是壞底 如何是此性 師曰 四大五陰〈法眼云 是一箇兩箇 是壞不壞 且作麽生會 試斷看〉
상당(上堂) 금불(金佛)은 화로를 건너지 못하고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지 못하고 이불(泥佛)은 물을 건너지 못하나니 진불(眞佛)은 내리(內裏)에 앉았다. 보리ㆍ열반ㆍ진여ㆍ불성은 모두 이 몸에 붙는(貼體) 의복이며 또한 이름이 번뇌다. 실제(實際)의 이지(理地)에 어느 곳에 붙이겠는가. 일심이 나지 않으면 만법이 때(咎)가 없다. 너희가 단지 구리(究理)하되 삼이십 년 좌간(坐看)하여도 만약 알지(會) 못한다면 노승의 머리를 절취(截取)해 가거라. 몽환(夢幻)과 공화(空華)를 어찌 노고롭게 파착(把捉)하겠는가. 마음이 만약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일여(一如)다. 이미 밖으로 좇아 얻음이 아니거늘 다시 구집(拘執)하여 무엇 하겠는가. 양(羊)과 상사(相似)하여 어지럽게 물건을 거두어(拾) 입속을 향해 둠(安)과 같다. 노승이 보매 약산화상(藥山和尙)이 말하되 어떤 사람이 문착(著者)하면 단지 개 아가리(狗口)를 닫게 한다. 노승도 또한 개 아가리를 닫게 하겠다. 아(我)를 취해 이 구(垢)라 하고 아(我)를 취하지 않음을 이 정(淨)이라 한다면 사냥개가 오로지 물건을 얻어 먹으려고 함과 일사(一似; 一如)하나니 불법이 어느 곳에 있느냐. 천인만인(千人萬人)이 모두 이 부처를 찾는 한자(漢子; 子는 조사)니 가운데에 1개의 도인을 찾아도 없다. 만약 공왕(空王)에게 제자가 되어 주려면 심병(心病)을 가장 치료하기(醫) 어렵게 하지 말아라. 세계가 있지 않았을 때 벌써 차성(此性)이 있었나니 세계가 무너질 때 차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한 번 노승을 본 후로 좇아 다시는 이 별인(別人)이 아니니 다만 시개(是箇)의 주인공(主人公)이다. 저개(這箇)를 다시 밖을 향해 찾아 무엇하겠는가. 바로 이러한 때 전두환뇌(轉頭換腦)하지 말지니 만약 전두환뇌하면 곧 잃어버릴 것이다. 승문(僧問) 듣건대(承) 스님이 말씀이 있어 세계가 무너질 때 차성(此性)은 무너지지 않는다. 무엇이 이 차성입니까. 사왈(師曰) 4대(大)와 5음(陰)이다. 가로되 이것은 오히려 이 무너지는 것(壞底)입니다. 무엇이 이 차성입니까. 사왈 4대와 5음이다〈法眼云 이는 一箇인가 兩箇인가. 이 壞인가 不壞인가. 다만 어떻게 이회하느냐, 시험 삼아 판단해 보아라〉.
師因老宿問 近離甚處 曰 滑州 宿曰 幾程到這裏 師曰 一躂到 宿曰 好箇捷疾鬼 師曰 萬福大王 宿曰 參堂去 師應喏喏 尼問 如何是密密意 師以手掐之 尼曰 和尙猶有這箇在 師曰 却是你有這箇在 僧辭 師問 甚麽處去 曰 閩中去 師曰 彼中兵馬隘 你須回避始得 曰 向甚麽處回避 師曰 恰好 問 如何是賓中主 師曰 山僧不問婦 曰 如何是主中賓 師曰 山僧無丈人 有僧遊五臺 問一婆子曰 臺山路向甚麽處去 婆曰 驀直去 僧便去 婆曰 好箇師僧又恁麽去 後有僧擧似師 師曰 待我去勘過 明日師便去問 臺山路向甚麽處去 婆曰 驀直去 師便去 婆曰 好箇師僧又恁麽去 師歸院謂僧曰 臺山婆子 爲汝勘破了也〈玄覺云 前來僧也恁麽道 趙州去也恁麽道 甚麽處是勘破婆子處 又云 非唯被趙州勘破 亦被這僧勘破〉
●捷疾鬼; 華嚴經音義下 夜叉 此云祠祭鬼 謂俗間祠祭以求恩福者 舊翻爲捷疾鬼也
●勘過; 謂禪人之間試驗對方悟道之深淺 勘 察看 過 助詞
스님이, 노숙(老宿)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는가 함으로 인해 가로되 활주(滑州)입니다. 노숙이 가로되 몇 정(程)에 이 속에 이르렀는가. 사왈 한 번에 달도(躂到; 이르다. 躂은 미끄러지다)했습니다. 노숙이 가로되 호개(好箇)의 첩질귀(捷疾鬼)로구나. 사왈 대왕은 만복하소서. 노숙이 가로되 참당(參堂)하러 가거라. 스님이 응하며 예, 예(喏喏)했다. 니문(尼問) 무엇이 이 밀밀의(密密意)입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두드렸다(掐). 니왈(尼曰) 화상은 아직 이것(這箇)이 있습니까. 사왈 도리어 이 네가 이것(這箇)이 있다. 중이 고별했다. 사문(師問)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민중(閩中)으로 갑니다. 사왈 그 속(彼中)엔 병마(兵馬)가 저지(沮止; 隘)하니 네가 꼭 회피(回避)해야 비로소 옳다. 가로되 어느 곳을 향해 회피해야 합니까. 사왈 흡호(恰好)다. 묻되 무엇이 이 빈중주(賓中主)입니까. 사왈 산승은 부인(婦人; 婦)에게 묻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사왈 산승은 장인(丈人)이 없다. 어떤 중이 오대(五臺; 오대산)를 유람했다. 한 파자(婆子)에게 물어 가로되 대산로(臺山路)는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합니까. 파왈(婆曰) 바로 곧장 가십시오(驀直去). 중이 바로 갔다. 파왈(婆曰) 좋은 스님(好箇師僧)이 또 이렇게 가시는구나. 후에 어떤 중이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사왈 내가 가서 감과(勘過)함을 기다려라. 명일 스님이 바로 가서 묻되 대산로는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합니까. 파왈(婆曰) 바로 곧장 가십시오. 스님이 바로 갔다. 파왈(婆曰) 좋은 스님(好箇師僧)이 또 이렇게 가시는구나. 스님이 귀원(歸院)하여 승중(僧衆; 僧)에게 일러 가로되 대산의 파자를 너희를 위해 감파(勘破)해 마쳤다〈玄覺云 前來의 중도 이렇게 말했고 조주가 가서도 이렇게 말했다. 어느 곳이 이 婆子를 勘破한 곳인가. 又云 조주의 감파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중의 감파를 입었다〉
●捷疾鬼; 화엄경음의하. 야차(夜叉) 여기에선 이르되 제사귀(祠祭鬼)니 이르자면 속간(俗間)에서 사제(祠祭)하며 은복(恩福)을 구하는 자다. 구시(舊時)의 번역은 첩질귀(捷疾鬼)다.
●勘過; 이르자면 선인지간(禪人之間)에 상대방의 오도의 심천을 시험함. 감(勘)은 살펴 봄이며 과(過)는 조사.
問 恁麽來底人 師還接否 師曰 接 曰 不恁麽來底 師還接否 師曰 接 曰 恁麽來者從師接 不恁麽來者如何接 師曰 止止不須說 我法妙難思 師因出路逢一婆 婆問 和尙住甚麽處 師曰 趙州東院西 婆無語 師歸問衆僧 合使那箇西字 或言東西字 或言棲泊字 師曰 汝等總作得鹽鐵判官 曰 和尙爲甚恁麽道 師曰 爲汝總識字〈法燈別衆僧云 已知去處〉 問 如何是囊中寶 師曰 合取口〈法燈別云 莫說似人〉 有一婆子令人送錢 請轉藏經 師受施利了 却下禪牀轉一匝 乃曰 傳語婆 轉藏經已竟 其人回擧似婆 婆曰 比來請轉全藏 如何祇爲轉半藏〈玄覺云 甚麽處是欠半藏處 且道那婆子具甚麽眼 便與麽道〉 因僧侍次 遂指火問曰 這箇是火 你不得喚作火 老僧道了也 僧無對 復筴起火曰 會麽 曰 不會 師曰 此去舒州 有投子和尙 汝往禮拜問之 必爲汝說 因緣相契 不用更來 不相契却來 其僧到投子 子問 近離甚處 曰 趙州 子曰 趙州有何言句 僧擧前話 子曰 汝會麽 曰 不會 乞師指示 子下禪牀 行三步却坐 問曰 會麽 曰 不會 子曰 你歸擧似趙州 其僧却回 擧似師 師曰 還會麽 曰 不會 師曰 投子與麽 不較多也
●鹽鐵判官; 一古代的一個官職 隸屬鹽鐵部 鹽鐵部是三司(鹽鐵 戶部 度支)之一 據舊唐書韋溫傳載 唐文宗李昂(809-840) 任用鹽鐵判官姚勗 [百度百科] 二喩指善能識眞僞分是非的人 又責斥以文字分辨是非的人 此指二
묻되 이렇게 오는 사람(恁麽來底人)을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합니까. 사왈 접인한다. 가로되 이렇게 오지 않는 것(不恁麽來底)을 스님이 도리어 접인합니까. 사왈 접인한다. 가로되 이렇게 오는 자는 스님의 접인을 좇습니다만 이렇게 오지 않는 자는 어떻게 접인합니까. 사왈 그쳐라(止), 그쳐라, 설함을 쓰지 않으리니 나의 법은 미묘하여 사유(思惟)하기 어렵다. 스님이 외출함으로 인해 길에서 1파(婆)를 만났다. 파문(婆問) 화상은 어느 곳에 거주합니까. 사왈 조주(趙州) 동원(東院)의 서(西)입니다. 노파가 말이 없었다. 스님이 돌아와 중승(衆僧)에게 묻되 합당히 어느(那箇) 서자(西字)를 사용해야 하는가, 혹 말하되 동서자(東西字)다. 혹 말하되 서박자(棲泊字)다. 사왈 너희 등은 모두 염철판관(鹽鐵判官)을 지었다(作得). 가로되 화상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까. 사왈 너희가 모두 글자를 알기 때문이다〈法燈(泰欽)이 衆僧과 다르게 이르되 이미 去處를 알았습니다〉. 묻되 무엇이 이 주머니 속의 보배입니까. 사왈 입을 닫아라(合取口)〈法燈이 別云 타인에게 설해 주지 말아라〉. 어떤 한 파자(婆子; 노파)가 사람을 시켜 돈을 보내어 장경(藏經)을 전(轉; 轉讀)하기를 청했다. 스님이 시리(施利)를 접수하여 마치자 도리어 승상(禪牀)에서 내려와 한 바퀴 돌고(轉一匝) 이에 가로되 파자에게 말을 전해 장경을 전(轉)해 이미 마쳤다 하라. 그 사람이 회귀하여 노파에게 들어 보이자 파왈(婆曰) 비래(比來; 요사이) 전장(全藏)을 전(轉)하기를 청했거늘 어찌하여 다만 반장(半藏)을 전(轉)하t셨는가〈玄覺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半藏이 모자라는 곳인가. 且道하라, 저 파자가 무슨 눈을 갖추었기에 바로 이렇게 말하는가〉. 중이 시립(侍立)하던 차로 인해 드디어 불(火)을 가리키며 물어 가로되 이것(這箇)은 이 불이다. 너는 불이라고 불러 지음을 얻지 못한다. 노승이 말해 마쳤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 다시 불을 끼어 일으키고(筴起)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여기에서 서주(舒州)로 가면 투자화상(投子和尙; 大同)이 있다. 네가 가서 예배하고 이를 물으면 반드시 너를 위해 설하리라. 인연(因緣)이 상계(相契)하면 다시 옴을 쓰지 말며 상계(相契)하지 않으면 돌아오너라(却來). 그 중이 투자(投子)에 이르자 투자가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조주(趙州)입니다. 자왈(子曰) 조주가 어떤 언구(言句)가 있었느냐. 중이 전화(前話)를 들었다. 자왈(子曰) 네가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투자가 선상에서 내려와 3보(步)를 다니고는 도리어 앉았다. 문왈(問曰)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자왈(子曰) 네가 돌아가 조주에게 들어 보여라. 그 중이 도리어 돌아와 스님에게 들어 보였다. 사왈 도리어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투자의 이러함(與麽)은 많이 어긋나지 않는다(不較多也).
●鹽鐵判官; 1. 고대의 일개 관직이니 염철부(鹽鐵部)에 예속되었음. 염철부는 이 3사(三司; 염철ㆍ戶部ㆍ度支)의 하나. 구당서 위온전(韋溫傳)의 기재에 의하면 당 문종 이앙(809-840)이 요욱을 염철판관에 임용했음 [백도백과]. 2. 잘 능히 진위를 알고 시비를 분별하는 사람을 비유로 가리킴. 또 문자로 시비를 분변하는 사람을 책척(責斥; 책망하며 가리킴)함임.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有新到謂師曰 某甲從長安來 橫擔一條拄杖 不曾撥著一人 師曰 自是大德拄杖短〈同安顯別云 老僧這裏不曾見恁麽人〉 僧無對〈法眼代云 呵呵 同安顯代云 也不短〉 僧寫師眞呈 師曰 且道似我不似我 若似我 卽打殺老僧 不似我 卽燒却眞 僧無對〈玄覺代云 留取供養〉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庭前栢樹子 曰 和尙莫將境示人 師曰 我不將境示人 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庭前栢樹子 問僧發足甚處 曰 雪峯 師曰 雪峯有何言句示人 曰 尋常道盡十方世界 是沙門一隻眼 你等諸人 向甚處屙 師曰 闍黎若回 寄箇鍬子去 師謂衆曰 我向行脚到南方 火爐頭有箇無賓主話 直至如今無人擧著
신도승(新到僧; 新到)이 있어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모갑이 장안으로부터 오면서 1조(條; 가닥)의 주장자를 가로 메었는데 일찍이 한 사람도 발착(撥著; 건드리다)하지 못했습니다. 사왈(師曰) 스스로 이 대덕(大德)의 주장자가 짧았다〈同安顯(紹顯)이 別云 노승의 이 속에선 일찍이 이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法眼이 代云 하하(呵呵). 同安顯이 代云 또한 짧지 않습니다〉. 중이 사진(師眞; 스님의 肖像)을 베껴(寫) 드렸다(呈). 사왈 그래 말하라, 나와 흡사한가, 나와 흡사하지 않는가. 만약 나와 흡사하다면 곧 노승을 타살(打殺)할 것이며 나와 흡사하지 않다면 곧 진(眞; 초상)을 소각(燒却)하겠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玄覺이 代云 留取하여 供養하겠습니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사왈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栢은 또 측백나무)다. 가로되 화상은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사왈 나는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뜰 앞의 잣나무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발족(發足; 출발)했는가. 가로되 설봉(雪峯)입니다. 사왈 설봉이 무슨 언구가 있어 사람에게 보이던가. 가로되 심상(尋常)에 말하되 온 시방세계가 이 사문의 일척안(一隻眼)이니 너희 등 제인이 어느 곳을 향해 똥을 누느냐. 사왈 사리(闍黎)가 만약 돌아가거든 저(箇) 초자(鍬子; 가래. 삽)를 기탁하겠네.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접때(向) 행각하다가 남방에 이르렀는데 화로두(火爐頭; 화롯가)에 저(箇) 무빈주화(無賓主話)가 있었다. 바로 여금에 이르도록 거착(擧著)하는 사람이 없다.
上堂 至道無難 唯嫌揀擇 纔有語言是揀擇 是明白 老僧不在明白裏 是汝還護惜也無 時有僧問 旣不在明白裏 護惜箇甚麽 師曰 我亦不知 僧曰 和尙旣不知 爲甚道不在明白裏 師曰 問事卽得 禮拜了退 別僧問 至道無難 唯嫌揀擇 是時人窠窟否 師曰 曾有人問我 老僧直得五年分疎不下 又問 至道無難 唯嫌揀擇 如何是不揀擇 師曰 天上天下 唯我獨尊 曰 此猶是揀擇 師曰 田庫奴甚處是揀擇 僧無語 問 至道無難 唯嫌揀擇 纔有語言是揀擇 和尙如何爲人 師曰 何不引盡此語 僧曰 某甲祇念得到這裏 師曰 至道無難 唯嫌揀擇
●分疎; 分辨 辨解
●田庫奴; 意同田厙奴 唐宋時代福建方言 詈語 罵人愚蠢 厙 方言 村莊也 禪籍又作田舍兒 田舍奴 田厙兒 田庫兒等
상당(上堂) 지도(至道)는 무난(無難)하지만 오직 간택(揀擇)을 꺼린다(信心銘 첫머리의 2구). 겨우 어언(語言)이 있으면 이는 간택이며 이는 명백(明白)이다. 노승은 명백 속에 있지 않나니 이 너희는 도리어 호석(護惜)하느냐 또는 아니냐.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이미 명백 속에 있지 않거늘 저(箇) 무엇을 호석합니까. 사왈 나도 또한 알지 못한다. 승왈(僧曰) 화상이 이미 알지 못하신다면 무엇 때문에 명백 속에 있지 않다고 말씀했습니까. 사왈 물은 일을 곧 얻었으니 예배하고 물러가라. 다른 중이 묻되 지도(至道)는 무난(無難)하지만 오직 간택(揀擇)을 꺼린다 하니 이것은 시인(時人)의 과굴(窠窟)입니까. 사왈 일찍이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는데 노승이 바로 5년 동안 분소(分疎; 分辨)를 내리지 못함을 얻었다. 또 묻되 지도(至道)는 무난하지만 오직 간택을 꺼린다 했거니와 무엇이 이 간택하지 않음입니까. 사왈 천상천하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다. 가로되 이것은 오히려 이 간택입니다. 사왈 전고노(田庫奴)야, 어느 곳이 이 간택이냐. 중이 말이 없었다. 묻되 지도(至道)는 무난하지만 오직 간택을 꺼린다 하니 겨우 어언(語言)이 있으면 이는 간택이거늘 화상이 어떻게 위인(爲人)하겠습니까. 사왈 왜 이 말을 인용해 다하지 않느냐. 승왈(僧曰) 모갑은 다만 외어(念得) 이 속에 이르렀습니다. 사왈 지도(至道)는 무난하지만 오직 간택을 꺼린다.
●分疎; 분변(分辨). 변해(辨解).
●田庫奴; 뜻이 전사노(田厙奴)와 같음. 당송 시대 복건(福建)의 방언이니 욕하는 말임. 사람의 우준(愚蠢; 어리석고 꾸물댐)함을 욕함임. 사(厙)는 방언이니 촌장(村莊)임. 선적(禪籍)에 또 전사아(田舍兒)ㆍ전사노(田舍奴)ㆍ전사아(田厙兒)ㆍ전고아(田庫兒) 등으로 지음.
問 如何是道 師曰 墻外底 曰 不問這箇 師曰 你問那箇 曰 大道 師曰 大道透長安 問 道人相見時如何 師曰 呈漆器 上堂 兄弟若從南方來者 卽與下載 若從北方來者 卽與上載 所以道 近上人問道卽失道 近下人問道卽得道 師因與文遠行 乃指一片地曰 這裏好造箇巡舖 文遠便去路傍立曰 把將公驗來 師遂與一摑 遠曰 公驗分明過 師與文遠論義曰鬪劣不鬪勝 勝者輸果子 遠曰 請和尙立義 師曰 我是一頭驢 遠曰 我是驢胃 師曰 我是驢糞 遠曰 我是糞中蟲 師曰 你在彼中作甚麽 遠曰 我在彼中過夏 師曰 把將果子來
●透長安; 通向長安(首都)的路 喩指省悟之路在自家眼前
●下載; 對上載而云 下 從高處到低處 載 運也
●上載; 對下載而云 上 從低處到高處 載 運也
●巡舖; 同巡鋪 防盜防火的哨所
●公驗; 官廳發行的證驗書(證明書) 禪錄中多喩各人本有之淸淨心
●論義; 辯論道法 較量機鋒
●果子; 一果實 二餜子 泛指糖食糕點
묻되 무엇이 이 도(道)입니까. 사왈 담장 밖의 것이다. 가로되 이것(這箇)을 물은 게 아닙니다. 사왈 네가 어느 것(那箇)을 물었느냐. 가로되 대도(大道)입니다. 사왈 대도는 장안으로 통한다(透長安). 묻되 도인(道人)이 상견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칠기를 준다(呈漆器). 상당(上堂) 형제(兄弟)가 만약 남방으로부터 온 자라면 곧 하재(下載)하여 주고 만약 북방으로부터 온 자라면 곧 상재(上載)하여 준다. 소이로 말하되 위와 가까운 사람(近上人)이 문도(問道)하면 곧 실도(失道)하고 아래와 가까운 사람(近下人)이 문도(問道)하면 곧 득도(得道)한다. 스님이 문원(文遠)과 더불어 다님(行)으로 인해 이에 한 조각 땅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 속에 저(箇) 순포(巡舖)를 건조(建造)함이 좋겠다. 문원이 바로 가서 길 옆에 서서 가로되 공험(公驗)을 가지고(把將) 오십시오. 스님이 드디어 한 번 후려갈겨 주었다. 문원이 가로되 공험(公驗)이 분명히 지나갔습니다(分明過). 스님이 문원(文遠)과 논의(論義)해 가로되 투열(鬪劣; 劣等을 다투다)하고 투승(鬪勝; 殊勝을 다투다)하지 않는다. 수승한 자는 과자(果子)를 보낸다(輸). 원왈(遠曰) 청컨대 화상이 입의(立義)하십시오. 사왈 나는 이 1두(頭; 마리)의 나귀다. 원왈 나는 이 나귀의 위(胃)입니다. 사왈 나는 이 나귀의 똥이다. 원왈 나는 이 똥 속의 벌레입니다. 사왈 네가 그 속에 있으면서 무엇을 하느냐. 원왈 내가 그 속에 있으면서 과하(過夏; 여름을 지냄)합니다. 사왈 과자를 가지고(把將) 오너라.
●透長安; 장안(수도)을 향해 통하는 길. 성오(省悟)의 길이 자가의 눈 앞에 있음을 비유로 가리킴.
●下載; 상재(上載)에 상대해 이름이니 하(下)는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에 이름이며 재(載)는 운(運; 운반)임.
●上載; 하재에 상대해 이름임. 상(上)은 낮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에 이름이며 재(載)는 운(運)임.
●巡舖; 순포(巡鋪)와 같음. 도둑을 방지하고 불을 방지하는 초소(哨所).
●公驗; 관청에서 발행한 증험서(證驗書; 증명서). 선록 중에선 다분히 각인이 본래 가진 청정심에 비유함.
●論義; 도법을 변론함. 기봉을 교량(較量)함.
●果子; 1. 과실(果實; 과일). 2. 과자(餜子; 菓子). 널리 당식(糖食; 설탕으로 만든 식품)과 고점(糕點; 케이크ㆍ과자ㆍ빵 따위의 총칭)을 가리킴.
新到參 師問 甚麽處來 曰 南方來 師曰 佛法盡在南方 汝來這裏作甚麽 曰 佛法豈有南北邪 師曰 饒汝從雪峯雲居來 祇是箇擔板漢〈崇壽稠云 和尙是據客置主人〉 問 如何是佛 師曰 殿裏底 曰 殿裏者豈不是泥龕塑像 師曰 是 曰 如何是佛 師曰 殿裏底 問 學人乍入叢林 乞師指示 師曰 喫粥了也未 曰喫粥了也 師曰 洗鉢盂去 其僧忽然省悟 上堂 纔有是非 紛然失心 還有答話分也無 僧擧似洛浦 浦扣齒 又擧似雲居 居曰 何必 僧回擧似師 師曰 南方大有人喪身失命 曰 請和尙擧 師纔擧前語 僧指傍僧曰 這箇師僧喫却飯了 作恁麽語話 師休去 問 久嚮趙州石橋 到來祇見略彴 師曰 汝祇見略彴 且不見石橋 曰 如何是石橋 師曰 度驢度馬 曰 如何是略彴 師曰 箇箇度人 後有如前問 師如前答 又僧問 如何是石橋 師曰 過來過來〈雲居錫云 趙州爲當扶石橋 扶略彴〉
●擔板漢; 擔板者只能看得板的一面 而不能看得另一面 故禪宗用以比喩見解偏執而不能融通全體之人
●塑像; 指用土塑造之佛像或其作法
●叢林; 指僧衆聚居之寺院 尤指禪宗寺院 ▲祖庭事苑二 叢林 梵語貧婆那 此云叢林 大論(大智度論三)云 僧伽 秦言衆 多比丘一處和合 是名僧伽 譬如大樹叢聚 是名爲林 一一樹不名爲林 如一一比丘不名爲僧 諸比丘和合故名僧 僧聚處得名叢林 又大莊嚴論(大莊嚴論經一)云 如是衆僧者 乃是勝智之叢林 一切諸善行 運集在其中 …… 今禪庭稱叢林也
●略彴; 又作掠彴 獨木橋也
신도(新到)가 참(參)했다. 스님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남방에서 옵니다. 사왈 불법이 모두 남방에 있거늘 네가 이 속에 와서 무엇하겠느냐. 가로되 불법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사왈 가령(假令; 饒) 네가 설봉(雪峯)이나 운거(雲居)로부터 왔더라도 다만 시개(是箇; 箇는 조사) 담판한(擔板漢)이다〈崇壽稠(契稠)가 이르되 화상은 據客하여 主人을 둡니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전(殿) 안의 것이다. 가로되 전 안의 것은 어찌 이 이감(泥龕)의 소상(塑像)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그렇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전 안의 것이다. 묻되 학인은 처음(乍) 총림(叢林)에 들어왔습니다.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죽을 먹었는가 아닌가. 가로되 죽을 먹었습니다. 사왈 발우를 씻으러 가거라. 그 중이 홀연히 성오(省悟)했다. 상당(上堂) 겨우 시비가 있으면 분연히 실심한다(纔有是非 紛然失心; 신심명의 2구). 도리어 답화(答話)할 분(分; 分限)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중이 낙포(洛浦; 元安)에게 들어 보이자 낙포가 이를 두드렸다(扣齒). 또 운거(雲居; 道膺)에게 들어 보이자 운거가 가로되 하필(何必). 중이 돌아가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사왈 남방에 대유인(大有人)이 상신실명(喪身失命)했다. 가로되 화상의 거(擧)를 청합니다. 스님이 전화(前語)를 겨우 드는데 중이 방승(傍僧)을 가리키며 가로되 저개(這箇) 사승(師僧)이 밥을 먹어버리고는 이러한 어화(語話)를 짓는구나. 스님이 쉬러 갔다(休去). 묻되 조주의 석교(石橋)를 구향(久嚮; 오래 向하다)했더니 도래하매 다만 약작(略彴)만 보입니다. 사왈 너는 다만 약작만 보고 또 석교를 보지 못하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석교입니까. 사왈 나귀도 건네고 말도 건넨다. 가로되 무엇이 이 약작입니까. 사왈 개개(箇箇)가 사람을 건넨다. 후에 앞과 같은 물음이 있자 스님이 전과 같이 답했다. 또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석교입니까. 사왈 지나오너라(過來), 지나오너라〈雲居錫云 조주는 마땅히 石橋를 扶持하는가. 약작을 부지하는가〉.
●擔板漢; 판자를 짊어진 자(擔板者)는 다만 능히 판자의 한 면만 간득(看得; 득은 조사)하고 능히 다른 한 면은 간득하지 못함. 고로 선종에서 견해가 편집(偏執)하여 능히 전체를 융통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유로 사용함.
●塑像; 흙을 사용하여 소조(塑造; 빚어 만듦)하는 불상 혹 그 작법을 가리킴.
●叢林; 승중(僧衆)이 모여 거처하는 사원을 가리킴. 특히 선종사원(禪宗寺院)을 가리킴. ▲조정사원2. 총림(叢林) 범어로 빈바나(貧婆那)는 여기에선 이르되 총림임. 대론(大論; 대지도론3)에 이르되 승가(僧伽)는 진(秦)나라 말로 중(衆)이며 많은 비구가 한 곳에서 화합함이니 이 이름이 승가(僧伽)다. 비유컨대 큰 나무가 빽빽히 모여야 이를 이름해 숲이라 하고 하나하나의 나무는 숲이라고 이름하지 않음과 같으며 마치 하나하나의 비구는 승(僧. 중 승)이라고 이름하지 않고 여러 비구가 화합해야 고로 승이라 이름함과 같나니 승이 모인 곳이라야 총림이란 이름을 얻는다. 또 대장엄론(대장엄론경1)에 이르되 이와 같은 중승(衆僧)이란 것은 곧 이 승지(勝智)의 총림이니 일체의 모든 선행(善行)이 운집해 그 가운데 있다 …… 지금은 선정(禪庭)을 총림이라 일컬음.
●略彴; 또 약작(掠彴)으로 지음. 외나무다리임.
師聞沙彌喝參 向侍者曰 敎伊去 者乃敎去 沙彌便珍重 師曰 沙彌得入門 侍者在門外〈雲居錫云 甚麽處是沙彌入門 侍者在門外 這裏若會得 便見趙州〉 問僧 甚麽處來 曰 從南來 師曰 還知有趙州關否 曰 須知有不涉關者 師曰 這販私鹽漢 問 如何是西來意 師下禪牀立 曰 莫祇這箇便是否 師曰 老僧未有語在 問菜頭 今日喫生菜 喫熟菜 頭拈起菜呈之 師曰 知恩者少 負恩者多 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曰 無 曰 上至諸佛 下至螻蟻 皆有佛性 狗子爲甚麽却無 師曰 爲伊有業識在
●喝參; 喝 唱的義 謂唱參也 通報我來之義 舊時稱下見上爲參 如參見 參拜
●趙州關; 從容錄第十則 趙州以長沙爲友 以南泉爲師 故勘辨中 非得失勝負之可品格 天下謂之趙州關 ▲祖庭事苑三 趙州關 諗和上示衆云 趙州關也難過 僧云 如何是趙州關 師云 石橋是 又問僧云 甚麽處來 南來 師云 還知有趙州關否 僧云 須知有不涉關者 師云 者販私鹽漢 衆中或以庭前栢喫茶去 爲趙州關 誤矣
●販私鹽漢; 私自販鹽的人 私鹽 與官鹽相對 謂未納鹽稅而私自販運出售的鹽
●業識; 謂依根本無明之惑 而始動本心者 卽指有情流轉之根本識 又作業相 業相識 五意之一 三細之一 據大乘起信論義記中之說 相當於阿梨耶識中之自體分 [入楞伽經二 釋摩訶衍論]
스님이 사미의 할참(喝參)을 듣고 시자를 향해 가로되 그를 가게 하라. 시자가 이에 가게 했다. 사미가 바로 진중(珍重)이라 했다. 사왈 사미는 입문(入門)을 얻었으나 시자는 문밖에 있다〈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에 이 사미는 입문하고 시자는 문밖에 있는가. 이 속에서 만약 會得하면 바로 조주를 본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남방으로부터 옵니다. 사왈 도리어 조주관(趙州關)이 있음을 아느냐. 가로되 관(關)에 건너지 않는 자가 있는 줄 꼭 아셔야 합니다. 사왈 이 사염(私鹽)을 판매하는 놈(販私鹽漢)아.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섰다. 가로되 다만 이것(這箇)이 바로 이것이 아닙니까. 사왈 노승은 말이 있지 않았다. 채두(菜頭)에게 묻되 금일 생채(生菜)를 먹느냐 숙채(熟菜)를 먹느냐. 채두가 채소를 집어 일으켜 보였다. 사왈 은혜를 아는 자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많다. 묻되 구자(狗子; 子는 조사)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없다(無). 가로되 위로는 제불에 이르고 아래로는 누의(螻蟻; 땅강아지와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거늘 구자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없습니까. 사왈 그(伊)는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다.
●喝參; 할(喝)은 창(唱)의 뜻이니 이르자면 창참(唱參)임. 내가 왔다고 통보함의 뜻임. 구시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뵘을 일컬어 참(參)이라 했음. 예컨대(如) 참견(參見)ㆍ참배.
●趙州關; 종용록 제10칙. 조주는 장사(長沙)를 벗으로 삼고 남천을 스승으로 삼은지라 고로 감변(勘辨) 중에 득실승부(得失勝負)의 가당(可當)한 품격이 아닌지라 천하에서 이를 일러 조주관(趙州關)이라 했다. ▲조정사원3. 조주관(趙州關) 심(諗; 從諗)화상이 시중해 이르되 조주관(趙州關)은 또한 통과하기 어렵다. 중이 이르되 무엇이 이 조주관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석교(石橋)가 이것이다. 또 중에게 물어 이르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남쪽에서 옵니다. 스님이 이르되 도리어 조주관이 있음을 아느냐. 중이 이르되 모름지기 관(關)에 건너지 않는 자가 있는 줄 아셔야 합니다. 스님이 이르되 이 사염(私鹽)을 판매하는 놈아. 중중(衆中)에 혹은 정전백(庭前栢)이나 끽다거(喫茶去)로써 조주관을 삼음은 오류임.
●販私鹽漢; 사자(私自; 제 스스로)로 소금을 파는 사람. 사염(私鹽)은 관염(官鹽)과 상대됨. 이르자면 염세(鹽稅)를 납입하지 아니하고 사자(私自)로 판운(販運)하고 내다 파는 소금.
●業識; 이르자면 근본무명의 혹(惑)에 의해 처음으로 본심을 움직이는 것. 곧 유정이 유전(流轉)하는 근본식을 가리킴. 또 업상(業相)ㆍ업상식(業相識)으로 지음. 5의(意)의 하나며 3세(細)의 하나. 대승기신론의기 가운데의 설에 의거하면 아뢰야식 중의 자체분에 상당함 [입릉가경2. 석마하연론].
師問一婆子 甚麽處去 曰 偸趙州筍去 師曰 忽遇趙州又作麽生 婆便與一掌 師休去 師一日於雪中臥 曰相救相救 有僧便去身邊臥 師便起去 問 如何是趙州一句 師曰 老僧半句也無 曰豈無和尙在 師曰 老僧不是一句 師問新到 曾到此間麽 曰 曾到 師曰 喫茶去 又問僧 僧曰 不曾到 師曰 喫茶去 後院主問曰 爲甚麽曾到也云喫茶去 不曾到也云喫茶去 師召院主 主應喏 師曰 喫茶去 問 二龍爭珠 誰是得者 師曰 老僧秖管看 問 空劫中還有人修行也無 師曰 汝喚甚麽作空劫 曰 無一物是 師曰 這箇始稱得修行 喚甚麽作空劫 僧無語 問 如何是玄中玄 師曰 汝玄來多少時邪 曰 玄之久矣 師曰 闍黎若不遇老僧 幾被玄殺 問 萬法歸一 一歸何所 師曰 老僧在靑州作得一領布衫 重七斤
●玄殺; 殺 所八切 所拜切 表示程度深
●一領; 領 量詞 用于衣衾之類
스님이 한 파자(婆子)에게 묻되 어느 곳으로 갑니까. 가로되 조주(趙州)의 죽순을 훔치러 갑니다. 사왈 홀연히 조주를 만나면 또 어떻게 하겠는가. 노파가 바로 1장(掌) 주었다. 스님이 쉬러 갔다. 스님이 어느 날 설중(雪中)에 누워 가로되 상구(相救)하라, 상구하라. 어떤 중이 바로 가서 신변(身邊)에 누웠다. 스님이 바로 일어나 갔다. 묻되 무엇이 이 조주의 1구(句)입니까. 사왈 노승은 반구(半句)도 없다. 가로되 어찌 화상이 없겠습니까. 사왈 노승은 이 1구가 아니다. 스님이 신도(新到)에게 묻되 일찍이 차간(此間)에 이르렀는가. 가로되 일찍이 이르렀습니다. 사왈 차 마시러 가게(喫茶去). 또 중에게 물으매 중이 가로되 일찍이 이르지 않았습니다. 사왈 차 마시러 가게. 후에 원주가 문왈(問曰) 무엇 때문에 일찍이 이르렀다고 해도 이르되 차 마시러 가게, 일찍이 이르지 않았다고 해도 이르되 차 마시러 가게라 하십니까. 스님이 원주를 부르매 원주가 응낙하자 사왈 차 마시러 가게. 묻되 2룡(龍)이 쟁주(爭珠)하면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 노승은 다만 관대(管帶)하여 본다. 문되 공겁(空劫) 중에 도리어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네가 무엇을 일러 공겁이라 하느냐. 가로되 한 물건도 없는 게 이것입니다. 사왈 저개(這箇)라야 비로소 수행이라고 일컬음을 얻거늘 무엇을 일러 공겁이라 하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묻되 무엇이 이 현중현(玄中玄)입니까. 사왈 네가 현(玄)하여 온 지 다소의 시일이냐. 가로되 현(玄)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사왈 사리(闍黎)가 만약 노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거의 현살(玄殺)을 입을 뻔했다. 묻되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사왈 노승이 청주(靑州)에 있으면서 한 벌(一領)의 포삼(布衫)을 지었는데(作得) 무게가 7근(斤)이더라.
●玄殺; 살(殺)은 소팔절(所八切; 살)ㆍ소배절(所拜切; 쇄)이니 정도의 깊음을 표시함.
●一領; 령(領)은 양사니 옷이나 이불 종류에 사용함.
問 夜生兜率 晝降閻浮 於其中間 摩尼珠爲甚麽不現 師曰 道甚麽 其僧再問 師曰 毗婆尸佛早留心 直至如今不得妙 問院主 甚麽處來 主曰 送生來 師曰 鵶爲甚麽飛去 主曰 怕某甲 師曰 汝十年知事作恁麽語話 主却問 鵶爲甚麽飛去 師曰 院主無殺心 師拓起鉢曰 三十年後若見老僧 留取供養 若不見卽撲破 別僧曰 三十年後敢道見和尙 師乃撲破 師在東司上 見遠侍者過 驀召文遠 遠應諾 師曰 東司上不可與汝說佛法 僧辭 師問 甚麽處去 曰 雪峯去 師曰 雪峯忽若問和尙有何言句 汝作麽生秖對 曰 某甲道不得 請和尙道 師曰 冬卽言寒 夏卽道熱 又曰 雪峯更問 汝畢竟事作麽生 僧又曰 道不得 師曰 但道親從趙州來 不是傳語人 其僧到雪峯 一依前語祇對 峯曰 也須是趙州始得〈玄沙聞曰 大小趙州敗闕也不知 雲居錫云 甚麽處是趙州敗闕 若檢得出 是上座眼〉
●知事; 僧院司事務僧之總名 禪院諸役擬朝官 分兩班 都寺 監寺 副寺 維那 典座 直歲諸役爲東班 稱此等僧爲知事 ▲僧史略中 案西域知事僧總曰羯磨陀那 譯爲知事 亦曰悅衆 謂知其事悅其衆也 稽其佛世 飮光統衆於靈鷲 身子涖事於竹林 及沓婆摩羅年甫十六已證應眞 其念身不牢固 請爲僧知事
●東司; 指禪林東序之僧所用之廁所 至後世 成爲廁所之通稱 又稱東淨 後架 起止處 廁所乃至穢之處 應保持淸潔 故稱淨圊(淸之意) 蓋東序之僧所用之廁所 稱爲東司 東淨 對此 西序之僧所用之廁所 則稱爲西司 西淨 又負責淸理廁所之職者 稱爲淨頭 此外 古來廁所又稱雪隱 是因雪竇重顯止於靈隱寺時 曾任淨頭之職 [釋氏要覽下屛廁條 象器箋殿堂類職位類]
●一依; 完全依據
●大小; 一大與小 二同大小大 則偌大 這麽大 那麽大 三置于句末 表疑問 相當于多 大 此指二
●敗闕; 失敗缺陷之義 又受挫 挫敗
묻되 밤엔 도솔(兜率)에 출생하고 낮엔 염부(閻浮)에 강림(降臨)하거늘 그 중간에 마니주(摩尼珠)가 무엇 때문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했느냐. 그 중이 재문(再問)하자 사왈 비바시불(毗婆尸佛) 때 일찍 유심(留心)했거늘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묘(妙)를 얻지 못했다. 원주(院主)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주왈(主曰) 생반(生飯)을 보내고 왔습니다(送生來). 사왈 까마귀가 무엇 때문에 날아갔느냐. 주왈(主曰) 모갑을 두려워 했습니다. 사왈 너는 10년 지사(知事)인데 이러한 어화(語話)를 짓느냐. 원주가 도리어 묻되 까마귀가 무엇 때문에 날아갔습니까. 사왈 원주는 살심(殺心)이 없다. 스님이 발우를 탁기(拓起; 들어 일으킴)하고 가로되 30년 후 만약 노승을 보거든 유취(留取)하여 공양(供養)하고 만약 보지 못하거든 곧 박파(撲破; 쳐서 깨뜨림)하라. 다른(別) 중이 가로되 30년 후 감히 말하건대 화상을 봅니다. 스님이 이에 박파(撲破)했다. 스님이 동사상(東司上; 上은 범위나 방면을 가리킴)에 있으면서 원시자(遠侍者)가 지나감을 보았다. 갑자기(驀) 부르되 문원(文遠)아. 문원이 응낙했다. 사왈 동사상에서 너와 더불어 불법을 설함은 옳지 못하다. 중이 고별했다. 스님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설봉(雪峯)으로 갑니다. 사왈 설봉이 홀연히 만약 묻되 화상이 어떤 언구가 있던가 한다면 네가 어떻게(作麽生) 지대(秖對; 응대)하겠느냐. 가로되 모갑은 말함을 얻지 못합니다.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겨울은 곧 춥다고 말하고 여름은 곧 덥다고 말합디다. 또 가로되 설봉이 다시 너에게 필경사(畢竟事)를 물으면 어떠한가(作麽生). 중이 또 가로되 말함을 얻지 못합니다. 사왈 단지 말하되 친히 조주로부터 왔고 이 전어(傳語)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중이 설봉에 이르러 전어(前語)에 일의(一依)하여 지대(祇對)했다. 설봉이 가로되 또한(也) 모름지기 이는 조주라야 비로소 옳다〈玄沙가 듣고 가로되 大小 조주가 敗闕한 줄도 또한 알지 못했다. 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조주의 敗闕인가. 만약 점검해 냄을 얻는다면 이 상좌의 눈이다〉.
●知事; 승원(僧院)에서 사무(事務)를 맡은 승려의 총명(總名)임. 선원(禪院)의 제역(諸役)은 조관(朝官)을 본떠 양반(兩班)으로 나누었으니 도사(都寺)ㆍ감사(監寺)ㆍ부사(副寺)ㆍ유나(維那)ㆍ전좌(典座)ㆍ직세(直歲)의 제역(諸役)이 동반(東班)이 되며 이들 승려를 일컬어 지사(知事)라 함. ▲승사략중(僧史略中) 안험(按驗)하니 서역(西域)의 지사승(知事僧)을 모두 가로되 갈마타나(羯磨陀那)니 번역하자면 지사(知事)가 되며 또한 가로되 열중(悅衆)이다. 이르자면 그 일을 알아(知) 그 대중을 기쁘게(悅) 함이다. 그 불세(佛世)를 계고(稽考)하니 음광(飮光)이 영취(靈鷲)에서 대중을 통솔하고 신자(身子)가 죽림(竹林)에서 사무에 임(臨; 涖)했으며 그리고 답파마라(沓婆摩羅)는 나이가 겨우 열여섯에 이미 응진(應眞)을 증득해 그가 생각하기를 몸뚱이는 뇌고(牢固)치 못하다 하여 승중(僧衆)의 지사가 되기를 요청했다.
●東司; 선림에서 동서(東序)의 승려가 사용하는 바의 측소(廁所; 뒷간)를 가리킴. 후세에 이르러 측소의 통칭이 되었음. 또 명칭이 동정(東淨)ㆍ후가(後架)ㆍ기지처(起止處)임. 측소는 곧 지극히 더러운 곳이므로 응당 청결을 보지(保持)해야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정청(淨圊; 淸의 뜻)임. 대개 동서의 승려가 사용하는 측소는 일컬어 동사(東司)ㆍ동정(東淨)이라 하고 이에 대해 서서(西序)의 승려가 사용하는 바의 측소는 곧 일컬어 서사(西司)ㆍ서정(西淨)이라 함. 또 측소를 청정하게 다스리는 직무를 부책(負責)한 자를 일컬어 정두(淨頭)라 함. 이 밖에 고래로 측소를 또 일컬어 설은(雪隱)이라 하는데 이는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영은사에 머물 때 일찍이 정두(淨頭)의 직무를 맡았기 때문임 [석씨요람하병측조. 상기전전당류직위류].
●一依; 완전히 의거(依據)하다.
●大小; 1. 대와 소. 2. 대소대(大小大)와 같음. 곧 야대(偌大. 저렇게 큰). 저마대(這麽大; 이렇게 큰). 나마대(那麽大; 저렇게 큰). 3. 구말(句末)에 두어서 의문을 표시함. 다(多)ㆍ대(大)에 상당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敗闕; 실패결함(失敗缺陷)의 뜻. 또 수좌(受挫; 좌절을 받음). 좌패(挫敗; 꺾여 패함).
問 如何是出家 師曰 不履高名 不求苟得 問 澄澄絕點時如何 師曰 這裏不著客作漢 問 如何是祖師意 師敲牀脚 僧曰 祇這莫便是否 師曰 是卽脫取去 問 如何是毗盧圓相 師曰 老僧自幼出家 不曾眼花 曰 豈不爲人 師曰 願汝常見毗盧圓相 官人問 和尙還入地獄否 師曰 老僧末上入 曰 大善知識 爲甚麽入地獄 師曰 我若不入 阿誰敎化汝
●眼花; 又作眼華 空華 空花 指空中之華 蓋空中原無華 然眼有病疾者 因眼中有翳 常於空中妄見幻化之華 比喩本無實體之境界 由於妄見而起錯覺 以爲實有
●末上; 玉篇 末 端也 末上有二義 一最初之義 二最後之義 此指二
묻되 무엇이 이 출가입니까. 사왈 고명(高名)을 밟지(履) 않고 구득(苟得; 苟且한 이득)을 구하지 않는다. 묻되 맑디맑아(澄澄) 절점(絕點)일 땐 어떻습니까. 사왈 이 속엔 객작한(客作漢; 날품팔이꾼)을 붙이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의 뜻입니까. 스님이 상각(牀脚)을 두드렸다. 승왈(僧曰) 다만 이것이(這) 바로 이것(是)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이것(是)이거든 곧 탈취(脫取)해 가거라. 묻되 무엇이 이 비로(毗盧; 毗盧遮那)의 원상(圓相)입니까. 사왈 노승은 어릴 적에 출가함으로부터 일찍이 안화(眼花)하지 않았다. 가로되 어찌 위인(爲人; 사람을 위하다)하지 않습니까. 사왈 원컨대 네가 늘 비로(毗盧)의 원상(圓相)을 보아라. 관인(官人)이 묻되 화상도 도리어 지옥에 들어가십니까. 사왈 노승은 말상(末上)에 들어간다. 가로되 대선지식이 무엇 때문에 지옥에 들어갑니까. 사왈 내가 만약 들어가지 않는다면 누가(阿誰) 너를 교화하겠는가.
●眼花; 또 안화(眼華)ㆍ공화(空華)ㆍ공화(空花)로 지음. 공중의 꽃을 가리킴. 대개 공중에 원래 꽃이 없으나 그러나 눈에 병질(질병)이 있는 자가 안중에 가림(翳)이 있음으로 인하여 늘 공중에서 망령되이 환화(幻化)의 꽃을 봄. 본래 실체가 없는 경계가 망견(妄見)으로 말미암아 착각을 일으켜 실유(實有)로 삼음에 비유함.
●末上; 옥편 말(末) 단(端; 처음. 끝)이다. 말상에 두 뜻이 있음. 1. 최초의 뜻. 2. 최후의 뜻.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眞定帥王公𢹂諸子入院 師坐而問曰 大王會麽 王曰 不會 師曰自小持齋身已老 見人無力下禪牀 王尤加禮重 翌日令客將傳語 師下禪牀受之 侍者曰 和尙見大王來 不下禪牀 今日軍將來 爲甚麽却下禪牀 師曰 非汝所知 第一等人來 禪牀上接 中等人來 下禪牀接 末等人來 三門外接 因侍者報大王來也 師曰 萬福大王 者曰 未到在 師曰 又道來也
●眞定; 唐鎭州眞定縣
●王公; 王鎔 五代時偏覇 釋氏稽古略三云 王鎔帥鎭定稱趙王
●客將; 一客籍將領 二指不隸屬於本部之將 三泛指書吏衙役
진정수(眞定帥)인 왕공(王公)이 여러 아들을 데리고 입원(入院)했다. 스님이 앉은 채 물어 가로되 대왕이여 아시겠습니까. 왕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어릴 적부터 재(齋)를 가져 몸이 이미 늙은지라 사람을 보고도 선상에서 내려올 힘이 없습니다. 왕공이 더욱 예중(禮重)을 더했다. 다음날(翌日) 객장(客將)을 시켜 전어(傳語)하자 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그것을 접수했다. 시자가 가로되 화상께선 대왕이 오심을 보고도 선상에서 내려오지 않으시더니 오늘은 군장(軍將)이 왔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선상에서 내려오십니까. 사왈 네가 알 바가 아니니 제일등인(第一等人)이 오면 선상 위에서 접인(接引)하고 중등인(中等人)이 오면 선상에서 내려와 접인하고 말등인(末等人)이 오면 3문(門) 밖에서 접인한다. 시자가 알리되 대왕이 오신답니다 함으로 인해 사왈 만복(萬福)하십시오 대왕이여. 시자가 가로되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사왈 또 오신다고 말하라.
●眞定; 당 진주(鎭州) 진정현(眞定縣).
●王公; 왕용(王鎔; 873-921)이니 오대(五代) 때의 편패(偏覇). 석씨계고략3에 이르되 왕용(王鎔)이 진정(鎭定)을 통솔하며(帥) 조왕(趙王)이라고 일컬었다.
●客將; 1. 객적客籍)의 장령(將領). 2. 본부에 예속되지 아니한 장군. 3. 널리 서리(書吏)와 아역(衙役)을 가리킴.
師到一庵主處 問 有麽 有麽 主竪起拳頭 師曰 水淺不是泊船處 便行 又到一庵主處 問 有麽 有麽 主亦竪起拳頭 師曰 能縱能奪 能殺能活 便作禮 問僧 一日看多少經 曰 或七八 或十卷 師曰 闍黎不會看經 曰 和尙一日看多少 師曰 老僧一日祇看一字 文遠侍者在佛殿禮拜次 師見以拄杖打一下曰 作甚麽 者曰 禮佛 師曰 用禮作甚麽 者曰 禮佛也是好事 師曰 好事不如無 上堂 正人說邪法 邪法悉皆正 邪人說正法 正法悉皆邪 諸方難見易識 我這裏易見難識 問 如何是趙州 師曰 東門西門 南門北門 問 初生孩子還具六識也無 師曰 急水上打毬子 僧却問投子 急水上打毬子 意旨如何 子曰 念念不停留 問 和尙姓甚麽 師曰 常州有 曰 甲子多少 師曰 蘇州有 問 十二時中如何用心 師曰 汝被十二時辰使 老僧使得十二時 乃曰 兄弟莫久立 有事商量 無事向衣鉢下坐窮理好 老僧行脚時 除二時粥飯是雜用心處 除外更無別用心處 若不如是大遠在
●打毬子; 打馬毬
●甲子; 一卽年歲 年紀 二六十甲子之第一 此指一
●十二時辰;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十二個時辰 每個時辰相當於現在的兩個小時
스님이 한 암주(庵主)의 처소에 이르러 묻되 계시는가, 계시는가. 암주가 주먹(拳頭)을 세워일으켰다. 사왈 물이 얕아 이는 배를 댈 곳이 아니다. 곧 갔다. 또 한 암주의 처소에 이르러 묻되 계시는가, 계시는가. 암주가 또한 주먹을 세워일으켰다. 사왈 능히 놓아주고 능히 빼앗고 능히 죽이고 능히 살리는구나. 바로 작례(作禮)했다. 중에게 묻되 하루에 다소(多少)의 경을 보느냐. 가로되 혹 7, 8이며 혹 10권입니다. 사왈 사리(闍黎)는 간경(看經)할 줄 알지 못하는구나. 가로되 화상은 하루에 얼마(多少)를 봅니까. 사왈 노승은 하루에 다만 1자(字)를 본다. 문원시자(文遠侍者)가 불전(佛殿)에 있으면서 예배하던 차에 스님이 보고서 주장자로써 한 번 때리고 가로되 무엇하느냐. 시자가 가로되 예불합니다. 사왈 예불을 써서 무엇하리오. 시자가 가로되 예불도 이 좋은 일입니다. 사왈 좋은 일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 상당(上堂) 정인(正人)이 사법(邪法)을 설하면 사법이 모두 다 바르지만(正) 사인(邪人)이 정법(正法)을 설하면 정법이 모두 다 삿되다(邪). 제방에선 보기는 어렵고 알기는 쉽지만 나의 이 속에선 보기는 쉽지만 알기가 어렵다. 묻되 무엇이 이 조주(趙州)입니까. 사왈 동문ㆍ서문ㆍ남문ㆍ북문이다. 묻되 처음 출생한 해자(孩子; 아기)가 도리어 6식(識)을 갖추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급수(急水) 위에서 타구자(打毬子)한다. 중이 도리어 투자(投子)에게 묻되 급수(急水) 위에서 타구자(打毬子)한다는 의지가 무엇입니까. 투자가 가로되 염념(念念)이 정류(停留)하지 않는다. 묻되 화상은 성(姓)이 무엇입니까. 사왈 상주에 있다(常州有). 가로되 갑자(甲子)가 얼마입니까. 사왈 소주에 있다(蘇州有). 묻되 12시 중에 어떻게 용심(用心)해야 합니까. 사왈 너는 12시진(十二時辰)의 부림을 입지만 노승은 12시를 부림을 얻는다. 이에 가로되 형쩨여, 구립(久立)하지 말지니 일이 있거든 상량(商量)하고 일이 없거든 의발하(衣鉢下)를 향해 앉아 궁리(窮理)함이 좋다. 노승이 행각할 때 이시죽반(二時粥飯)이 이 잡용심처(雜用心處)였음을 제(除)하나니 제한 밖에 다시 다른 용심처가 없었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다면 너무 멀다(大遠在).
●打毬子; 마구(馬毬)를 함.
●甲子; 1. 곧 연세. 연기(年紀; 나이). 2. 60갑자의 첫째.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十二時辰;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12개 시진. 매개(每個)의 시진은 현재의 두 개의 소시(小時)에 상당함.
僧問 如何是古佛心 師曰 三箇婆子排班拜 問 如何是不遷義 師曰 一箇野雀兒從東飛過西 問 學人有疑時如何 師曰 大宜小宜 曰 大疑 師曰 大宜東北角 小宜僧堂後 問 栢樹子還有佛性也無 師曰 有 曰 幾時成佛 師曰 待虛空落地時 曰 虛空幾時落地 師曰 待栢樹子成佛時 問 如何是毗盧師 師便起立 僧曰 如何是法身主 師便坐 僧禮拜 師曰 且道坐者是 立者是 師謂衆曰 你若一生不離叢林 不語五年十載 無人喚你作瘂漢 已後佛也不柰你何 你若不信 截取老僧頭去 師魚鼓頌曰 四大由來造化功 有聲全貴裏頭空 莫嫌不與凡夫說 祇爲宮商調不同 師因趙王問 師尊年有幾箇齒在 師曰 祇有一箇 王曰 爭喫得物 師曰 雖然一箇 下下齩著 師寄拂子與王曰 若問何處得來 但說老僧平生用不盡者 師之玄言 布於天下 時謂趙州門風 皆悚然信伏矣 唐乾寧四年十一月二日 右脇而寂 壽一百二十歲 諡眞際大師
●排班; 依班次或班級排列
●大宜; 大便
●小宜; 小便
●魚鼓; 又稱木魚 魚板 指魚形木製之法器 中鑿空洞 扣之作聲
●宮商; 宮商角徵羽五音之略
●尊年; 一高龄 二敬重老年人
●下下; 每一下 每一次
승문(僧問) 무엇이 이 고불의 마음입니까. 사왈 3개의 파자(婆子; 노파)가 배반(排班)하여 예배한다. 묻되 무엇이 이 불천(不遷)의 뜻입니까. 사왈 1개의 야작아(野雀兒; 兒는 조사)가 동쪽으로 좇아 날아서 서쪽에 이른다(過). 묻되 학인이 유의(有疑)할 땐 어떻습니까. 사왈 대의(大宜; 대변)인가 소의(小宜; 소변)인가. 가로되 대의(大疑)입니다. 사왈 대의(大宜)는 동북 모서리며 소의(小宜)는 승당의 뒤다. 묻되 백수자(栢樹子; 잣나무. 측백나무)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어느 때 성불합니까. 사왈 허공이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가로되 허공이 어느 때 땅에 떨어집니까. 사왈 백수자가 성불할 때를 기다린다. 묻되 무엇이 이 비로의 스승(毗盧師)입니까. 스님이 바로 기립(起立)했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법신의 주인(法身主)입니까. 스님이 바로 앉았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그래 말하라, 앉은 것이 옳으냐(是), 선 것이 옳으냐.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만약 일생 동안 총림을 여의지 않으면서 말하지 않기(不語)가 5년, 10재(載)에 너희를 일러 아한(瘂漢)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후(已後)에 부처일지라도 너희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너희가 만약 믿지 못하거든 노승의 머리를 절취(截取)하여 가거라. 스님의 어고송(魚鼓頌)에 가로되 4대(大)의 유래(由來)가 조화(造化)의 공(功)이니/ 유성(有聲)이 전부 이두(裏頭; 裏面)의 공(空)을 귀히 여긴다/ 범부와 더불어 설하지 않음을 혐의하지 말지니/ 다만 궁상(宮商)의 곡조(曲調)가 같지(同) 않기 때문이다. 스님이, 조왕(趙王)이 묻되 스님은 존년(尊年)인데 몇 개의 이(齒)가 있습니까 함으로 인해 사왈 다만 1개가 있습니다. 왕왈(王曰) 어찌 식물(食物; 物)을 끽득(喫得; 得은 조사)하겠습니까. 사왈 비록 그러히 1개지만 하하(下下)마다 씹습니다(齩著). 스님이 불자(拂子)를 왕에게 기탁하며 가로되 만약 묻되 어느 곳에서 얻어 왔습니까 한다면 단지 말하되 노승이 평생 쓰고도 다하지 않은 것이라 하십시오. 스님의 현언(玄言)이 천하에 전포(傳布)되었고 당시에 이르기를 조주문풍(趙州門風)이라 했고 모두 송연(悚然)하며 신복(信伏)했다. 당 건녕(乾寧) 4년(897) 11월 2일 우협(右脇)으로 적(寂; 입적)했다. 나이는 120세며 시(諡)는 진제대사(眞際大師)다.
●排班; 반차(班次) 혹 반급(班級)에 의해 배열(排列)함.
●大宜; 대변(大便).
●小宜; 소변(小便).
●魚鼓; 또 명칭이 목어ㆍ어판(魚板)이니 물고기 형상의 목제의 법기(法器)를 가리킴. 중심에 공동(空洞; 텅 빈 굴)을 파서 이를 두드리면 소리를 지음.
●宮商; 궁ㆍ상ㆍ각ㆍ치ㆍ우, 5음의 약칭.
●尊年; 1. 고령(高龄). 2. 노년의 사람을 경중(敬重)함.
●下下; 매(每) 1하(下). 매 1차.
湖南長沙景岑招賢禪師
初住鹿苑 爲第一世 其後居無定所 但徇緣接物 隨宜說法 時謂之長沙和尙 上堂 我若一向擧揚宗敎 法堂裏須草深一丈 事不獲已 向汝諸人道 盡十方世界是沙門眼 盡十方世界是沙門全身 盡十方世界是自己光明 盡十方世界在自己光明裏 盡十方世界無一人不是自己 我常向汝諸人道 三世諸佛 法界衆生 是摩訶般若光 光未發時 汝等諸人向甚麽處委悉 光未發時 尙無佛無衆生消息 何處得山河國土來 時有僧問 如何是沙門眼 師曰 長長出不得 又曰 成佛成祖出不得 六道輪回出不得 僧曰 未審出箇甚麽不得 師曰 晝見日 夜見星 曰 學人不會 師曰 妙高山色靑又靑 問 敎中道而常處此菩提座 如何是座 師曰 老僧正坐 大德正立 問 如何是大道 師曰 沒却汝 問 諸佛師是誰 師曰 從無始劫來 承誰覆蔭 曰 未有諸佛已前作麽生 師曰 魯祖開堂 亦與師僧東道西說 問 學人不據地時如何 師曰 汝向甚麽處安身立命 曰 却據地時如何 師曰 拖出死屍著 問 如何是異類 師曰 尺短寸長 問 如何是諸佛師 師曰 不可更拗直作曲邪 曰 請和尙向上說 師曰 闍黎眼瞎耳聾作麽
●擧揚; 擧說 闡揚
●沙門眼; 指禪僧的智慧法眼
●委悉; 知道 知曉 委 確知 悉 知道 了解
●長長; 一常常 經常 二長久
●妙高山; 梵語須彌山 蘇迷盧山 須彌盧山 須彌留山 修迷樓山 略作彌樓山 此云妙高山 好光山 好高山 善高山 善積山 妙光山 安明由山
●而常處此菩提座; 華嚴經六 佛身充滿於法界 普現一切衆生前 隨緣赴感靡不周 而恒處此菩提座
●東道西說; 形容漫無目的地隨意講說 亦指言辭多
●安身立命; 又作安心立命 卽安立身命之意 亦卽盡人事行道 竝隨順天命而安住其心 不爲一切外物所動
●向上; 指由下至上 從末至本 反之 從上至下 從本到末 稱爲向下
호남(湖南) 장사경잠(長沙景岑) 초현선사(招賢禪師)
처음에 녹원(鹿苑)에 거주하여 제1세(第一世)가 되었고 그 후 거처에 정한 곳이 없었다. 단지 인연을 따르며(徇) 접물(接物; 接人)하고 마땅함을 따라(隨) 설법한지라 당시에 그를 일러 장사화상(長沙和尙)이라 했다. 상당(上堂) 내가 만약 일향(一向) 종교(宗敎)를 거양(擧揚)한다면 법당 속에 모름지기 풀의 깊이가 1장(丈)이리라. 일이 불획이(不獲已; 不得已)하여 너희 제인을 향해 말하노니 온(盡) 시방세계가 이 사문의 눈(沙門眼)이며 온 시방세계가 이 사문의 전신(全身)이며 온 시방세계가 이 자기의 광명(光明)이며 온 시방세계가 자기의 광명 속에 있으며 온 시방세계에 한 사람이라도 이 자기가 아님이 없다. 내가 항상 너희 제인을 향해 말하되 삼세제불과 법계의 중생이 이 마하반야(摩訶般若)의 빛(光)이다. 빛을 발(發)하지 않았을 때 너희 등 제인이 어느 곳(什麽處)을 향해 알겠는가(委悉). 빛이 발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尙)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는 소식(消息)이거늘 어느 곳에서 산하국토를 얻어 오겠는가. 때에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사문의 눈(沙門眼)입니까. 사왈 장장(長長) 나옴을 얻지 못한다. 또 가로되 성불성조(成佛成祖)가 벗어남을 얻지 못하고 육도윤회(六道輪迴)가 벗어남을 얻지 못한다. 승왈(僧曰) 미심하오니 저(箇) 무엇(甚麽)을 벗어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본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묘고산색(妙高山色)이 푸르고 또 푸르다. 묻되 교중(敎中)에 말하되 항상 이 보리좌에 거처한다(而常處此菩提座). 무엇이 이 좌(座)입니까. 사왈 노승은 바로 앉았고(正坐) 대덕(大德)은 바로 섰다(正立). 묻되 무엇이 이 대도(大道)입니까. 사왈 너를 빠지게 해버린다(沒却). 묻되 제불의 스승은 이 누구입니까. 사왈 무시겁(無始劫)으로 좇아오며 누구의 부음(覆蔭; 庇護)을 승수(承受)했는가. 가로되 제불이 있지 아니한 이전(已前)은 어떻습니까(作麽生). 사왈 노조(魯祖; 寶雲)가 개당(開堂)하여 또한 사승(師僧)에게 동도서설(東道西說)하여 준다. 묻되 학인이 땅에 의거(依據)하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어느 곳을 향해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느냐. 가로되 도리어 땅에 의거할 땐 어떻습니까. 사왈 사시(死屍)를 끌어내어라(拕出). 묻되 무엇이 이 이류(異類)입니까. 사왈 척은 짧고 촌은 길다(尺短寸長).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스승입니까. 사왈 다시 직(直)을 꺾어 곡사(曲邪)를 지음은 옳지 못하다(不可). 가로되 화상에게 청하오니 향상(向上)을 설하십시오. 사왈 사리(闍黎)가 눈멀고 귀먹어(眼瞎耳聾) 무엇하려느냐(作麽).
●擧揚; 들어 설함. 천양(闡揚).
●沙門眼; 선승의 지혜의 법안을 가리킴.
●委悉; 지도(知道; 알다. 이해하다). 지효(知曉; 알아서 깨달음. 또는 환히 앎). 위(委)는 확지(確知)며 실(悉)은 지도(知道), 요해(了解).
●長長; 1. 상상(常常). 경상(經常; 平常. 常常). 2. 장구(長久).
●妙高山; 범어로 수미산ㆍ소미로산(蘇迷盧山)ㆍ수미로산(須彌盧山)ㆍ수미류산(須彌留山)ㆍ수미루산(修迷樓山)으로 지으며 간략히 미루산(彌樓山)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묘고산(妙高山)ㆍ호광산(好光山)ㆍ호고산(好高山)ㆍ선고산(善高山)ㆍ선적산(善積山)ㆍ묘광산(妙光山)ㆍ안명유산(安明由山)임.
●而常處此菩提座; 화엄경6. 불신이 법계에 충만하여/ 일체중생의 앞에 널리 나타나나니/ 인연 따라 이르러 감응하며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되/ 항상 이 보리좌에 거처한다(而恒處此菩提座).
●東道西說; 부질없이 목적이 없는 경지에서 뜻대로 강설함을 형용. 또 언사가 많음을 가리킴.
●安身立命; 또 안심입명(安心立命)으로 지음. 곧 신명을 안립함의 뜻. 또한 곧 인사(人事)를 다해 행도(行道)하고 아울러 천명(天命)에 수순(隨順)하여 그 마음에 안주하면서 일체의 외물(外物)에 동요되는 바가 되지 않음임.
●向上; 아래로부터 위에 이르고 말(末)로부터 본(本)에 이름을 가리킴. 이와 반대로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고 본으로부터 말에 이름은 일컬어 향하(向下)라 함.
遊山歸 首座問 和尙甚處去來 師曰 遊山來 座曰 到甚麽處 師曰 始從芳草去 又逐落花回 座曰 大似春意 師曰 也勝秋露滴芙蕖 師遣僧問同參會和尙曰 和尙見南泉後如何 會默然 僧曰 和尙未見南泉已前作麽生 會曰 不可更別有也 僧回擧似師 師示偈曰 百尺竿頭不動人 雖然得入未爲眞 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是全身 僧便問 秖如百尺竿頭如何進步 師曰 朗州山 澧州水 曰 不會 師曰 四海五湖皇化裏
●芙蕖; 芙 芙蓉 也作芙蕖 荷花的別名 蕖 芙蕖 荷花的別名
●四海五湖; 又作五湖四海 泛指全國各地 中國大陸四面環海 陸地上有五大湖分布 故泛稱全國各地爲四海五湖
유산(遊山)하고 돌아오자 수좌(首座)가 묻되 화상은 어느 곳에 갔다 오셨습니까. 사왈 유산하고 왔다. 좌왈(座曰) 어느 곳에 이르렀습니까. 사왈 처음 방초(芳草)를 따라갔다가 또 낙화를 쫓아 돌아왔다. 좌왈(座曰) 춘의(春意)와 매우 흡사합니다. 사왈 또한 가을 이슬이 부거(芙蕖; 연꽃)에 방울짐보다 낫다. 스님이 중을 보내어 동참(同參) 회화상(會和尙)에게 물어 가로되 화상이 남천(南泉)을 뵌 후 어떻습니까. 회(會)가 묵연(默然)했다. 승왈(僧曰) 화상이 남천을 뵙지 아니한 이전(已前)은 어떻습니까(作麽生). 회(會)가 가로되 다시 별다른 게 있다 함은 옳지 못하다. 중이 돌아와 스님에게 들어 보였다. 스님이 게를 뵤여 가로되 백 척의 장대 끝(百尺竿頭)에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여/ 비록 그러히 득입(得入)했으나 진(眞)이 되지 않는다/ 백 척의 장대 끝에서 진보(進步)를 써야/ 시방세계가 이 전신(全身)이니라. 중이 바로 묻되 지여(秖如)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어떻게 진보합니까. 사왈 낭주(朗州)의 산이며 예주(澧州)의 물이다. 가로되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사해오호(四海五湖)가 황화(皇化; 황제의 교화)의 속이다.
●芙蕖; 부(芙)는 부용(芙蓉)이니 또 부거(芙蕖)로 지음. 연꽃의 별명. 거(蕖)는 부거니 연꽃의 별명.
●四海五湖; 또 5호4해(五湖四海)로 지음. 널리 전국 각지를 가리킴. 중국대륙의 사면이 환해(環海;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며 육지 위에 5대호(大湖)가 분포된지라 고로 전국 각지를 범칭(泛稱)하여 4해5호라 함.
有客來謁 師召尙書 其人應諾 師曰 不是尙書本命 曰 不可離却卽今祇對 別有第二主人 師曰 喚尙書作至尊得麽 曰 恁麽總不祇對時 莫是弟子主人否 師曰 非但祗對與不祗對時 無始劫來 是箇生死根本 有偈曰 學道之人不識眞 秖爲從來認識神 無始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尙書; 此指官名 最初是掌管文書奏章的官員 始置於戰國時 隋代始設六部 唐代確定六部爲吏 戶 禮 兵 刑 工 各部以尙書侍郞爲正副長官
●本命; 本命元辰之略 指本性 本命 指人出生年之干支 値其干支之星 稱本命星 元辰 謂人之命運受陰陽二星所左右 而以陽八陰六配合卜算 故本命元辰皆爲支配人命運之星 禪宗則將之比喩爲自己之本性
●至尊; 最尊貴 用爲皇帝的代稱
●識神; 分別妄識及虛幻神魂
●本來人; 與本來面目同義 指吾人本來淸淨之自性
어떤 객이 내알(來謁)했다. 스님이 부르되 상서(尙書). 그 사람이 응낙했다. 사왈(師曰) 이는 상서(尙書)의 본명(本命)이 아닙니다. 가로되 즉금 지대(秖對; 응대) 하는 것을 여의어버리고 달리 제2의 주인이 있다 함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사왈 상서(尙書; 저본에 尙袹로 지었음)를 일러 지존(至尊)이라 함을 얻겠습니까.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모두(總) 지대(祇對)하지 않을 때 이 제자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단지 지대(祇對)와 지대하지 않을 때 만이 아니라 무시겁래(無始劫來)로 이것(是箇)은 생사의 근본입니다. 게가 있어 가로되 학도(學道)하는 사람이 진(眞)을 알지 못함은/ 다만 종래(從來)로 식신(識神)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무시겁래(無始劫來)로 생사의 근본이거늘/ 치인(癡人)은 본래인(本來人)이라고 불러 짓는다.
●尙書; 여기에선 관명(官名)을 가리킴. 최초엔 이 문서와 주장(奏章)을 장관하는 관원이었음. 전국 시 처음 설치했고 수대(隋代)에 비로소 6부(部)를 설치했고 당대에 6부를 이(吏)ㆍ호(戶)ㆍ예(禮)ㆍ병(兵)ㆍ형(刑)ㆍ공(工)으로 삼음을 확정했음. 각 부에 상서와 시랑(侍郞)을 정부(正副) 장관으로 삼았음.
●本命; 본명원신(本命元辰)의 약칭(略稱). 본성을 가리킴. 본명(本命)은 사람의 출생년의 간지(干支)를 가리킴. 그 간지의 별을 만남을 일컬어 본명성(本命星)이라 함. 원신(元辰)은 이르자면 사람의 명운(命運)이 음양(陰陽) 2성(星)에 좌우되는 바를 받아 양8 음6의 배합으로 복산(卜算)함. 고로 본명원신은 모두 사람의 명운을 지배하는 별이 됨. 선종에선 곧 이를 가지고 자기의 본성에 비유함.
●至尊; 가장 존귀함. 황제의 대칭(代稱)으로 사용함.
●識神; 분별하는 망식(妄識) 및 허환(虛幻)의 신혼(神魂).
●本來人; 본래면목과 같은 뜻임. 우리 사람의 본래 청정한 자성을 가리킴.
有秀才看千佛名經 問曰 百千諸佛 但見其名 未審居何國土 還化物也無 師曰 黃鶴樓崔顥題後 秀才還曾題也未 曰 未曾 師曰 得閑題取一篇好 問 南泉遷化向甚麽處去 師曰 東家作驢 西家作馬 曰 學人不會 此意如何 師曰 要騎卽騎 要下卽下
●秀才; 秀才是中國古代選拔官吏的科目 亦曾作爲學校生員的專稱 漢武帝改革選官制度 令地方官府考察和推擧人才 卽爲察擧 元封四年(前107) 命公卿 諸州每年各擧薦秀才一名 意爲優秀人才 東漢因避光武帝名諱 遂改稱茂才 三國曹魏時沿襲察擧 復改稱秀才 至南北朝時 擧薦秀才尤爲重視 隋代始行科擧制 設秀才科 唐初沿置此科 及第者稱秀才 後廢秀才科 秀才遂作爲一般讀書人的泛稱 宋代爲士子和應擧者的統稱 明代曾一度采用薦擧之法 亦有擧秀才 明淸時期 秀才亦專用以稱府州縣學生員 [百度百科]
●千佛名經; 有過去莊嚴劫千佛名經 現在賢劫千佛名經 未來星宿劫千佛名經等三部經書 合稱三劫三千佛名經 經書譯者不詳 僅知譯於南朝梁代(502-557) 收於大正藏第十四冊 三部經書各各列出千佛之名 竝說明懺悔滅罪與稱佛名號之功德
●黃鶴樓; 樓名 在湖北省武昌西南邊 ◆黃鶴樓崔顥題; 禪門拈頌集第四九二則 拈頌說話云 黃鶴樓崔顥題云云者 崔顥詩云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鄕關何處是 烟波江上使人愁 李白題云 眼前有景不能道 崔顥題詩在上頭 則崔顥題詩 古今絶唱 無人繼得 ◆崔顥; (704-754) 唐代詩人 開元中進士 累官司勳員外郞 天寶十三載卒
어떤 수재(秀才)가 천불명경(千佛名經)을 보고는 문왈(問曰) 백천제불(百千諸佛)은 단지 그 이름만 보입니다. 미심하오니 어떤 국토에 거주하며 사람(物)을 교화합니까 또는 아닙니까(無). 사왈(師曰) 황학루를 최호가 제(黃鶴樓崔顥題)한 후 수재가 도리어 일찍이 제(題)했는가 아닌가(未). 가로되 미증(未曾; 没有니 있지 않음)입니다. 사왈 한가함을 얻거든 1편(篇) 제취(題取)함이 좋다. 묻되 남천(南泉)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甚麽處)을 향해 가셨습니까. 사왈 동가(東家)에서 나귀가 되고 서가(西家)에서 말이 된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如何). 사왈 타려거든 곧 타고 내리려거든 곧 내려라.
●秀才; 수재는 이 중국 고대 관리를 선발하는 과목이며 또한 일찍이 학교 생원(生員)의 전칭(專稱)으로 지었음. 한무제(漢武帝)가 선관제도(選官制度)를 개혁해 지방 관부(官府)에 인재를 고찰(考察)하고 그리고 추거(推擧; 추천)하게 했으니 곧 찰거(察擧)가 됨. 원봉 4년(前 107) 공경(公卿)과 제주(諸州)에 명해 매년 각기 수재 1명을 거천(擧薦; 천거)하게 했으니 뜻이 우수한 인재가 됨. 동한(東漢)은 광무제의 명휘(名諱)를 피함으로 인해 드디어 무재(茂才)로 개칭했음. 삼국 조위(曹魏) 때 연습(沿襲; 전례를 따라서 함)하여 찰거(察擧; 선발)하면서 다시 수재로 개칭했음. 남북조 때에 이르러 수재를 거천(擧薦)함을 더욱 중시했음. 수대(隋代)에 과거제(科擧制)를 시행(始行)했고 수재과(秀才科)를 설치했음. 당초(唐初) 이 과(科)를 따라서 설치했고 급제한 자를 일컬어 수재라 했음. 후에 수재과를 폐지했으며 수재는 드디어 일반 독서인의 범칭(泛稱)이 되었음. 송대엔 사자(士子; 지식인)와 응거자(應擧者; 과거에 응시하는 자)의 통칭(統稱)이 되었음. 명대에 일찍이 천거(薦擧)의 법을 한 차례 채용했고 또한 수재를 천거함이 있었음. 명ㆍ청 시기 수재는 또한 부주현(府州縣)의 학생원(學生員)의 명칭으로 전용했음 [백도백과].
●千佛名經; 과거장엄겁천불명경ㆍ현재현겁천불명경ㆍ미래성수겁천불명경 등 3부의 경서(經書)가 있으며 합칭하여 삼겁삼천불명경이라 함. 경서(經書)의 역자는 불상이나 다만 남조 양대(502-557)에 번역했음을 앎. 대정장 제14책에 수록되었고 3부의 경서에 각각 천불의 이름을 열출(列出)했으며 아울러 참회멸죄와 칭불명호(稱佛名號)의 공덕을 설명했음.
●黃鶴樓; 누각의 이름. 호북성 무창(武昌) 서남변에 있음. ◆黃鶴樓崔顥題; 선문염송집 제492칙. 염송설화에 이르되 황학루최호제 운운한 것은 최호(崔顥)의 시에 이르되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고/ 이 땅에 공연히 황학루만 남았다/ 황학은 한 번 가자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백운만 천재(千載)에 공연히 유유(悠悠)하다/ 청천(晴川; 해가 비치는 漢江)엔 역력한 한양수(漢陽樹; 은행나무)며/ 방초(芳草)가 처처(萋萋)한 앵무주(鸚鵡洲)다/ 일모(日暮)에 향관(鄕關)은 어느 곳이 이것이냐/ 연파(烟波)의 강 위에서 사람을 수심케 하네. 이백(李白)이 제(題)하여 이르되 눈 앞에 풍경이 있으나 능히 말하지 못하나니 최호의 제시(題詩)가 상두(上頭)에 있다. 곧 최호의 제시가 고금의 절창(絶唱)이라 계득(繼得)할 사람이 없음. ◆崔顥; (704-754) 당대 시인. 개원(開元) 중 진사(進士)며 누관(累官; 공을 쌓아 升官)하여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이 되었고 천보 13재(載)에 마쳤음.
皓月供奉問 天下善知識證三德涅槃也未 師曰 大德問果上涅槃 因中涅槃 曰 問果上涅槃 師曰 天下善知識未證 曰 爲甚麽未證 師曰 功未齊於諸聖 曰 功未齊于諸聖 何爲善知識 師曰 明見佛性 亦得名爲善知識 曰 未審功齊何道 名證大涅槃 師示偈曰 摩訶般若照 解脫甚深法 法身寂滅體 三一理圓常 欲識功齊處 此名常寂光 曰 果上三德涅槃 已蒙開示 如何是因中涅槃 師曰 大德是
●果上; 修行之間曰因位 依修行功而得證之位曰果地 此果地爲因位之上 故又曰果上
호월(皓月) 공봉(供奉)이 묻되 천하 선지식이 삼덕열반(三德涅槃)을 증(證)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未). 사왈(師曰) 대덕(大德)은 과상열반(果上涅槃)을 묻는가, 인중열반(因中涅槃)인가. 가로되 과상열반을 물었습니다. 사왈 천하 선지식이 증(證)하지 못했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爲甚麽) 증하지 못했습니까. 사왈 공(功)이 제성(諸聖)과 제등(齊等)하지 못하다. 가로되 공이 제성과 제등하지 못하거늘 어찌 선지식이 됩니까. 사왈 불성을 환히 보면(明見) 또한 이름하여 선지식이라 함을 얻는다. 가로되 미심(未審)하오니 공(功)이 어떤 도와 제등해야 이름해 대열반을 증(證)했다 합니까.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마하반야의 비춤(照)과/ 해탈의 심심(甚深)한 법과/ 법신의 적멸한 체(體)여/ 삼일(三一)의 이치가 원상(圓常)이다/ 공이 제등한 곳을 알고자 한다면/ 이 이름이 상적광(常寂光)이다. 우왈(又曰) 과상의 삼덕열반은 이미 개시(開示)를 입었습니다만 무엇이 이 인중열반입니까. 사왈 대덕이 이것이다.
●果上; 수행의 사이를 가로되 인위(因位)며 수행의 공에 의해 득증한 지위를 가로되 과지(果地)며 이 과지는 인위의 위가 되므로 고로 또 가로되 과상(果上)임.
月又問 敎中說幻意是有邪 師曰 大德是何言歟 曰 恁麽則幻意是無邪 師曰 大德是何言歟 曰 恁麽則幻意是不有不無邪 師曰 大德是何言歟 曰 如某三明 盡不契於幻意 未審和尙如何明敎中幻意 師曰 大德信一切法不思議否 曰 佛之誠言 那敢不信 師曰 大德言信 二信之中是何信 曰 如某所明 二信之中是名緣信 師曰 依何敎門得生緣信 曰 華嚴云 菩薩摩訶薩以無障無礙智慧 信一切世間境界 是如來境界 又華嚴云 諸佛世尊 悉知世法及諸佛法性無差別 決定無二 又華嚴云 佛法世間法 若見其眞實 一切無差別 師曰 大德所擧緣信敎門甚有來處 聽老僧與大德明敎中幻意 若人見幻本來眞 是則名爲見佛人 圓通法法無生滅 無滅無生是佛身
●圓通; 圓而通於法性之實者 謂之圓通 按楞嚴經五 二十五位菩薩各個皆具圓通 共有六塵六根六識七大等二十五圓通 此外 楞嚴會上二十五聖之中 以觀世音之耳根圓通爲最上 故稱圓通尊 圓通大士
호월(皓月; 月)이 우문(又問) 교중(敎中)에 설한 환의(幻意)는 이 있습니까(有邪). 사왈(師曰) 대덕은 이 무슨 말인가(言歟).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곧 환의는 이 없습니까(無邪). 사왈 대덕은 이 무슨 말인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환의는 이 불유불무입니까(不有不無邪). 사왈 대덕은 이 무슨 말인가. 가로되 모(某)가 세 번 밝힌 것 같으나 모두(盡) 환의에 계합하지 못했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게(如何) 교중(敎中)의 환의를 밝힙니까. 사왈 대덕은 일체법이 부사의(不思議)함을 믿는가. 가로되 부처의 성언(誠言)을 어찌(那)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사왈 대덕이 말한 신(信)은 2신(信)의 가운데 이 어떤 신(信)인가. 이르되 모(某)가 밝힌 바와 같은 것은 2신의 가운데 이 이름이 연신(緣信)입니다. 사왈 어떤 교문(敎門)에 의해 연신(緣信)을 득생(得生; 생함을 얻다)했는가. 가로되 화엄(華嚴)에 이르되 보살마하살이 무장무애(無障無礙)한 지혜로써 일체의 세간경계(世間境界)가 이 여래경계(如來境界)임을 믿는다(信; 화엄경52에 知로 지었음). 또 화엄(47)에 이르되 제불세존이 세법(世法) 및 제불의 법성이 차별이 없어 결정코 무이(無二)임을 모두 안다(悉知). 또 화엄(49)에 이르되 불법과 세간법에 만약 그 진실을 본다면 일체 차별이 없다. 사왈 대덕이 든 바 연신(緣信)은 교문(敎門)에 심(甚)히 내처(來處)가 있다. 노승이 대덕에게 교중의 환의(幻意)를 밝혀 줌을 들어라(聽). 어떤 사람(若人)이 환(幻)이 본래 진(眞)임을 본다면/ 이는 곧 이름하여 견불(見佛)한 사람이다/ 원통(圓通)의 법법(法法)이 생멸이 없나니/ 무멸무생(無滅無生)이 이 불신(佛身)이다.
●圓通; 원만하면서 법성의 진실에 통하는 것을 일컬어 원통이라 함. 릉엄경5를 안험컨대 25위(位) 보살이 각개(各個)가 모두 원통을 갖추었고 공히 6진ㆍ6근ㆍ6식ㆍ7대(大) 등 25원통이 있음. 이 밖에 릉엄회상 25성(聖) 가운데 관세음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최상으로 삼는지라 고로 호칭이 원통존(圓通尊)ㆍ원통대사(圓通大士)임.
月又問 蚯蚓斷爲兩段 兩頭俱動 未審佛性在阿那頭 師曰 動與不動是何境界 曰 言不干典 非智者之所談 祇如和尙言動與不動是何境界 出自何經 師曰 灼然 言不干典 非智者之所談 大德豈不見首楞嚴云 當知十方無邊 不動虛空 幷其動搖 地水火風 均名六大 性眞圓融 皆如來藏 本無生滅 師示偈曰 最甚深最甚深 法界人身便是心 迷者迷心爲衆色 悟時剝境是眞心 身界二塵無實相 分明達此號知音
●阿那頭; 那邊 阿 助詞
●首楞嚴;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十卷 略稱大佛頂經 首楞嚴經 楞嚴經 首楞嚴義疏注經一曰 大唐神龍元年乙已歲(705) 五月二十三日 中天竺沙門般剌蜜帝 於廣州制止道場譯 …… 又據開元中沙門智昇撰釋敎目錄二十卷 其第九云 大佛頂首楞嚴經十卷 大唐沙門懷迪 於廣州譯 迪循州人 住羅浮山南樓寺 久習經論 備諳五梵 因遊廣府 遂遇梵僧未詳其名 對文共譯 勒成十卷 經之題目 紙數文句 與今融本竝不差異
●知音; 語出列子湯問第五 云 伯牙善琴 子期善於聽 伯牙志在高山 子期曰 峩峩兮若太山 志在流水 洋洋兮若江河 伯牙所念 子期必得之 伯牙游太山之陰 逢暴雨 止於巖下 心悲乃鼓琴 作淋雨之操 更造崩山之音 每奏 子期輒窮其趣 伯牙捨琴而嘆曰 善哉 子聽志想像於吾心 吾何逃聲哉
호월(皓月; 月)이 또 묻되 지렁이(蚯蚓)를 잘라 두 조각(段)으로 만들면 양두(兩頭)가 모두 움직입니다. 미심하오니 불성이 아나두(阿那頭; 어느 쪽)에 있습니까. 사왈 동(動)과 부동(不動)은 이 무슨 경계인가. 가로되 언어가 전적(典籍)과 상간(相干)되지 않으면 지자(智者)가 담설(談說)할 바가 아닙니다. 지여(祇如) 화상이 말씀한 동(動)과 부동(不動)은 이 무슨 경계인가 한 것은 어떤 경으로부터 나옵니까. 사왈(師曰) 작연(灼然; 명백)하나니 언어가 전적에 상간되지 않으면 지자가 담설할 바가 아니다. 대덕이 어찌 보지 못하는가, 수릉엄(首楞嚴; 권3)에 이르되 마땅히 알지니 시방의 무변한 부동(不動)의 허공과 아울러 그 동요(動搖)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을 균등(均等)히 이름해 6대(六大)니 자성이 진실하고 원융(圓融)하여 모두 여래장(如來藏)이며 본래 생멸이 없다. 스님이 게를 보여 가로되 가장 심심(甚深)하고 가장 심심하나니/ 법계(法界)와 인신(人身)이 바로 이 마음이다/ 미자(迷者)는 마음을 미(迷)하여 중색(衆色)으로 삼거니와/ 오시(悟時)에 찰경(刹境)이 이 진심(眞心)이다/ 신계(身界; 人身과 法界) 2진(塵)이 실상(實相)이 없나니/ 분명히 이것을 통달하면 호(號)가 지음(知音)이다.
●阿那頭; 나변(那邊; 어느 쪽). 아(阿)는 조사.
●首楞嚴;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이니 10권. 약칭이 대불정경(大佛頂經)ㆍ수릉엄경(首楞嚴經)ㆍ릉엄경임. 수릉엄의소주경1(首楞嚴義疏注經一)에 가로되 대당 신룡 원년 기사세(705) 5월 23일 중천축사문(中天竺沙門) 반랄밀제(般剌蜜帝)가 광주(廣州) 제지도량(制止道場)에서 역(譯)했다 …… 또 개원(開元) 중 사문 지승(智昇)이 지은 석교목록(釋敎目錄) 20권에 의거하자면 그 제9에 이르되 대불정수릉엄경십권(大佛頂首楞嚴經十卷) 대당사문(大唐沙門) 회적(懷迪)이 광주(廣州)에서 역(譯)했다. 회적은 순주 사람이다. 나부산(羅浮山) 남루사(南樓寺)에 거주하면서 오랫동안 경론을 익혔으며 오범(五梵)을 갖춰 안다. 광부(廣府)에 유람함으로 인해 드디어 그 이름이 미상인 범승(梵僧)을 만났는데 글을 대조하며 공역(共譯)해 다스려 10권을 이루었다. 경의 제목과 지수(紙數)와 문구가 지금의 융본(融本)과 모두 차이 나지 않는다.
●知音; 말이 열자 탕문(湯問) 제5에 나옴. 이르되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했고 자기(子期)는 듣기를 잘했다. 백아의 뜻이 고산(高山)에 있으면 자기가 가로되 아아(峩峩; 峩는 높을 아)함이여 태산과 같구나. 뜻이 유수(流水)에 있으면 양양(洋洋)함이여 강하와 같구나. 백아가 생각하는 바를 자기가 반드시 얻었다. 백아가 태산의 음(陰; 北이니 山南을 陽, 山北을 陰이라 함. 반대로 水北을 陽, 水南을 陰이라 함)에 노닐다가 폭우를 만나 바위 아래 쉬는데 마음이 슬퍼서 곧 거문고를 탔다. 임우(淋雨; 淋은 장마 림. 물 뿌릴 림)의 가락(操)을 짓다가 다시 붕산(崩山)의 음을 지었는데 매번 탄주할 적마다 자기가 문득 그 지취를 궁진(窮盡)했다. 백아가 거문고를 놓고 탄식하며 가로되 선재(善哉)로다. 자네의 청지(聽志)로 나의 마음을 상상(想像)하니 내가 어찌 소리를 도주하겠는가.
月又問 如何是陀羅尼 師指禪牀右邊曰 這箇師僧却誦得 曰 別還有人誦得否 師又指禪牀左邊曰 這箇師僧亦誦得 曰 某甲爲甚麽不聞 師曰 大德豈不知道 眞誦無響 眞聽無聞 曰 恁麽則音聲不入法界性也 師曰 離色求觀非正見 離聲求聽是邪聞 曰 如何是不離色是正見 不離聲是眞聞 師示偈曰 滿眼本非色 滿耳本非聲 文殊常觸目 觀音塞耳根 會三元一體 達四本同眞 堂堂法界性 無佛亦無人
●陀羅尼; <梵> dhāraṇī 梵語也 此云總持 能持 能遮 卽能總攝憶持無量佛法而不忘失之念慧力 換言之 陀羅尼卽爲一種記憶術 後世則稱誦咒爲陀羅尼
●耳根; 六根之一 對於聲境而生耳識者 卽耳官也
●堂堂; 全然彰顯的樣子 堂 高顯貌
호월(皓月; 月)이 또 묻되 무엇이 이 다라니(陀羅尼)입니까. 스님이 선상의 우변(右邊)을 가리키며 가로되 저개(這箇; 이. 箇는 조사)의 사승(師僧)이 도리어 송득(誦得)한다. 가로되 달리(別) 도리어 어떤 사람이 송득합니까. 스님이 또 선상의 좌변(左邊)을 가리키며 가로되 저개(這箇) 사승(師僧)이 또한 송득(誦得)한다. 가로되 모갑은 무엇 때문에 듣지 못합니까. 사왈(師曰) 대덕(大德)이 어찌 말함을 알지 못하는가, 진송(眞誦)은 음향이 없고 진청(眞聽)은 들음이 없다.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곧 음성이 법계성(法界性)에 들지 않습니까. 사왈 색을 여의고 구관(求觀)하면 정견(正見)이 아니며 소리를 여의고 구청(求聽)하면 이 사문(邪聞)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색을 여의지 않음이 이 정견(正見)이며 소리를 여의지 않음이 이 진문(眞聞)입니까. 스님이 게를 보여 가로되 눈에 가득하지만 본래 색이 아니며/ 귀에 가득하지만 본래 소리가 아니다/ 문수(文殊)가 늘 촉목(觸目; 눈에 부딪히다)하고/ 관음(觀音)이 이근(耳根)을 채운다(塞)/ 셋을 모으니(會) 원래 일체(一體)며/ 넷을 통달하니 본래 동진(同眞; 동일한 眞性)이다/ 당당(堂堂)한 법계성(法界性)이여/ 부처도 없고 또한 사람도 없다.
●陀羅尼; <범> dhāraṇī. 범어임. 여기에선 이르되 총지(總持)ㆍ능지(能持)ㆍ능차(能遮)임. 곧 능히 무량한 불법을 총섭(總攝)하고 억지(憶持)하여 망실하지 않는 염혜력(念慧力)임.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다라니는 곧 1종의 기억술이 됨. 후세에 곧 송주(誦咒; 주문을 외움)를 일컬어 다라니라 했음.
●耳根; 6근의 하나. 성경(聲境)에 대해 이식(耳識)을 내는 것이니 곧 이관(耳官)임.
●堂堂; 전연(全然; 완전히)히 드러나 환한 양자(樣子; 形狀). 당(堂)은 높이 드러난 모양(高顯貌).
僧問南泉道 三世諸佛不知有 貍奴白牯却知有 爲甚麽三世諸佛不知有 師曰 未入鹿苑時 猶較些子 曰 貍奴白牯 爲甚麽却知有 師曰 汝爭怪得伊 僧問 和尙繼嗣何人 師曰 我無人得繼嗣 曰 還參學也無 師曰 我自參學 曰 師意如何 師有偈曰 虛空問萬象 萬象答虛空 誰人親得聞 木叉丱角童
●知有; 知有此事 又知道 知曉
●貍奴白牯; 貍奴 亦作狸奴黧奴 猫的別稱 白牯 白牛也 玉篇 牯 牝牛 正字通 牯 俗稱牡牛曰牯
●鹿苑; 鹿野苑 爲釋尊成道後初轉法輪之地 卽今之沙爾那斯 位於今北印度瓦拉那西市以北約六公里處 又譯作仙人鹿野苑 鹿野園 鹿野 鹿苑 仙苑 仙人園 關於地名之由來 諸說紛異 出曜經十四以此地乃諸神仙及得道五通之學者遊止之所 非凡夫所居 故稱之爲仙人住處 又謂昔有婆羅奈國王遊獵至此 網鹿千頭 經鹿王哀求以日送一鹿供王食用 王始放群鹿 故地名鹿野苑 大毘婆沙論一八三博採衆說 以佛過去世爲最勝仙人 嘗於此地初轉法輪 故稱仙人論處 以佛未出世或出世時 恆有諸神仙住此不絶 故稱仙人住處 以昔有五百仙人飛行空中 至此處見王之婇女 發欲心而失神通 墮墜於此 故稱仙人墮處 此外 大唐西域記七以鹿王爲代有孕之母鹿捨身就死 因而感動梵達多國王 使王釋放鹿群 竝布施樹林 而稱之爲施鹿林 鹿野苑自阿育王起 卽備受景仰崇拜 八世紀初 玄奘西遊時 此地層軒重閣 連垣周堵 垣中有高二百尺之精舍 其西南有阿育王所建高七十餘尺之石柱 石含玉潤 鑒照映徹 僧徒千餘衆 爲最隆盛之時代 逮至十三世紀頃 先後遭回敎徒與印度敎徒之蹂躪 盡成廢墟 今僅存周壁鏤刻右旋卍字之二層圓塔一座 及以鐵欄圍護之半截阿育王石柱等 [雜阿含經二十三 同三十九 三卷本大般涅槃經中 賢愚經五 四分律三十二 大智度論十六 阿育王傳二 高僧法顯傳 慧琳音義一]
●木叉; 猶木杈 杈 叉狀的用具 頭部有分杈 用來刺物取物
●丱角; 又作丫角 指古時兒童束髮成兩角的樣子
승문(僧問) 남천(南泉)이 말하되 삼세제불은 지유하지 않고(不知有) 이노백고(貍奴白牯)가 도리어 지유(知有)한다. 무엇 때문에 삼세제불이 지유하지 않습니까. 사왈(師曰) 녹원(鹿苑)에 들지 아니했을 때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가로되 이노백고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지유(知有)합니까. 사왈 네가 어찌 그(伊)를 괴이히 여김을 얻는가. 승문(僧問) 화상은 어떤 사람을 계사(繼嗣)했습니까. 사왈 나는 계사(繼嗣)를 얻은 사람이 없다. 가로되 도리어 참학(參學; 參禪學道)합니까 또는 아닙니까(無). 사왈 나는 스스로 참학한다. 가로되 스님의 뜻이 무엇입니까(如何).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허공이 만상(萬象)에게 묻고/ 만상이 허공에게 답한다/ 어떤 사람(誰人)이 친히 득문(得聞)하는가/ 목차(木叉)의 관각동(丱角童)이다.
●知有; 차사(此事)가 있음을 앎. 또 지도(知道; 알다. 이해하다). 지효(知曉; 알아서 깨달음. 또는 환히 앎).
●貍奴白牯; 이노(貍奴)는 또한 이노(狸奴)ㆍ이노(黧奴)로 지음. 묘(猫; 고양이)의 별칭임. 백고(白牯)는 흰 소임. 옥편 고(牯) 빈우(牝牛; 암소)다. 정자통 고(牯) 속칭 모우(牡牛; 수소)를 가로되 고(牯)다.
●鹿苑; 녹야원(鹿野苑; 梵 Mrgadava.)이니 석존이 성도한 후에 처음 법륜을 굴린 땅이 됨. 즉금의 사이나사(沙爾那斯; Sārnāth)니 지금의 북인도 와랍나서시(瓦拉那西市; Benares) 이북(以北) 약 6㎞의 곳에 위치함. 또 번역해 선인녹야원(仙人鹿野苑)ㆍ녹야원(鹿野園)ㆍ녹야(鹿野)ㆍ녹원(鹿苑)ㆍ선원(仙苑)ㆍ선인원(仙人園)으로 지음. 지명의 유래에 관하여선 여러 설이 분이(紛異)함. 출요경14에선 이 땅은 곧 여러 신선 및 득도한 5통(通)의 학자가 유지(遊止)하는 곳이며 범부가 거주할 곳이 아닌지라 고로 이를 호칭하여 선인주처(仙人住處)라 했음. 또 이르기를 옛적에 바라나국왕(婆羅奈國王)이 있어 유렵(遊獵)하다가 여기에 이르러 그물로 사슴 천 마리를 잡았는데 녹왕(鹿王)이 애구(哀求)하며 날마다 한 마리의 사슴을 왕의 식용(食用)으로 보내 공급하겠다 하자 왕이 비로소 군록(群鹿)을 놓아줌을 겪은지라 고로 지명이 녹야원(鹿野苑)임. 대비바사론183에선 많은 설을 널리 채집했음. 불타가 과거세에 최승선인(最勝仙人)이 되었으며 일찍이 이 땅에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린지라 고로 명칭이 선인논처(仙人論處)임. 불타가 출세하지 아니했거나 혹 출세한 때 항상 여러 신선이 있어 여기에 머물면서 단절되지 않은지라 고로 명칭이 선인주처(仙人住處)임. 옛적에 5백의 선인이 있어 공중을 비행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왕의 채녀(婇女; 궁녀)를 보고선 욕심이 발동하여 신통을 잃었고 여기에 떨어진지라 고로 명칭이 선인타처(仙人墮處)임. 이 밖에 대당서역기7에선 녹왕이 잉태(孕胎)함이 있는 어미 사슴을 대체하여 몸을 버려 죽음으로 나아가자 이로 인해 범달다국왕(梵達多國王)을 감동시켜 왕으로 하여금 군록을 석방하게 하고 아울러 수림을 보시한지라 이를 일컬어 시록림(施鹿林)이라 했음. 녹야원은 아육왕(阿育王)으로부터 일어났으니 경앙과 숭배를 비수(備受)했음. 8세기 초 현장이 서유(西遊)할 때 이 땅엔 층헌중각(層軒重閣)이 연원주도(連垣周堵; 담장을 잇고 두름)했으며 담장 중에 높이 200척의 정사가 있었음. 그 서남에 아육왕이 세운 바 높이 70여 척의 석주(石柱)가 있었음. 석주는 옥윤(玉潤; 옥의 윤택)을 머금었고 감조(鑒照)하면 영철(映徹; 비추어 통함)했으며 승도(僧徒)가 1천여 대중이었으니 가장 융성한 시대였음. 13세기 경에 이르러 선후로 회교도와 인도교도(印度敎徒)의 유린을 만나 모두 폐허가 되었음. 지금은 겨우 벽을 두르며 새긴 우선(右旋)의 만자(卍字)의 2층 원탑(圓塔) 1좌(座) 및 철란(鐵欄; 쇠로 만든 난간)으로 위호(圍護)하는 반절(半截)의 아육왕석주 등이 남았음 [잡아함경23, 동39. 3권본대반열반경중. 현우경5. 사분율32. 대지도론16. 아육왕전2. 고승법현전. 혜림음의1].
●木叉; 목차(木杈)와 같음. 차(杈)는 차상(叉狀; 갈라진 형상. 작살 형상)의 용구. 머리 부분에 분차(分杈; 분리된 가지)가 있고 사용하여 물건을 찌르고 물건을 취함.
●丱角; 또 아각(丫角)으로 지음. 고시에 아동이 머리카락을 묶어 양각(兩角)을 이룬 양자(樣子)를 가리킴.
問 如何是平常心 師曰 要眠卽眠 要坐卽坐 曰 學人不會 意旨如何 師曰 熱卽取涼 寒卽向火 問 向上一路 請師道 師曰 一口針 三尺線 曰 如何領會 師曰 益州布 楊州絹 問 動是法王苗 寂是法王根 如何是法王 師指露柱曰 何不問大士 師與仰山翫月次 山曰 人人盡有這箇 秖是用不得 師曰 恰是倩汝用 山曰 你作麽生用 師劈胷與一踏 山曰 㘞 直下似箇大蟲〈長慶云 前彼此作家 後彼此不作家 乃別云邪法難扶〉 自此諸方稱爲岑大蟲
●領會; 猶領解 理解他人所敎 如所敎而開悟 稱爲領解 又作領悟
●倩汝; 倩 七政切 借也
●劈胷; 對著胷 劈 冲著 正對著
●㘞; 用同咄 表示用力之聲 正字通 㘞 一說梵言 㘞之一聲 㘞同咄 ▲玉篇 㘞 牽船聲 正字通 㘞 進船聲 ▲廬山蓮宗寶鑑十 此箇㘞字 一切世人 口中未嘗不說 喩如失物人忽然尋見 不覺發此一聲是㘞字也 宗門多言此字者 蓋尋師訪道之人 參究三二十年 忽然心花發現 會得此事 不覺㘞地一聲 如失物得見 慶快平生 是其字義也
묻되 무엇이 이 평상심(平常心)입니까. 사왈 자려면 곧 자고 앉으려면 곧 앉는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더우면 곧 서늘함을 취하고 추우면 곧 불을 향한다. 묻되 향상일로(向上一路)를 청컨대 스님이 말씀하십시오. 사왈 1구(口; 量詞)의 바늘(針)이며 3척(尺)의 실(線)이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익주(益州)의 포(布)며 양주(揚州)의 견(絹)이다. 묻되 동(動)은 이 법왕(法王)의 묘(苗)며 적(寂)은 이 법왕의 근(根)입니다. 무엇이 이 법왕입니까. 스님이 노주(露柱)를 가리키며 가로되 왜 대사(大士)에게 묻지 않느냐. 스님이 앙산(仰山)과 더불어 달구경(翫月)하던 차에 산왈(山曰) 사람마다 모두(盡) 저개(遮這)가 있지만 다만 이 씀(用)을 얻지 못한다. 사왈 흡시(恰是) 너를 빌려(倩汝) 쓸까 한다. 산왈(山曰) 네가 어떻게(作麽生) 쓰겠는가. 스님이 가슴에다(劈胷) 한 번 밟아 주었다. 산왈(山曰) 화(㘞), 직하(直下; 즉시)에 저(箇) 대충(大蟲)과 같구나〈長慶이 이르되 전엔 피차 작가이더니 후엔 피차 작가가 아니다. 이에 別云하되 邪法은 扶支하기 어렵다〉. 이로부터 제방에서 일컬어 잠대충(岑大蟲)이라 했다.
●領會; 영해(領解)와 같음. 타인이 가르친 바를 이해하고 가르친 바와 같이 개오(開悟)함을 일컬어 영해(領解)라 함. 또 영오(領悟)로 지음.
●倩汝; 청(倩; 천)은 칠정절(七政切; 청)이니 차(借)임.
●劈胷; 가슴에 대착(對著). 벽(劈)은 충착(冲著; 찌르다). 정대착(正對著).
●㘞; 용(用)이 돌(咄)과 같음. 힘쓰는 소리를 표시함. 정자통 화(㘞) 일설에 범언(梵言)이다. 화지일성(㘞之一聲) 화(㘞)는 돌(咄)과 같다. ▲옥편. 화(㘞) 배를 끄는 소리다. 정자통 화(㘞) 진선(進船)하는 소리다. ▲여산연종보감10(廬山蓮宗寶鑑十). 이것 화자(㘞字)는 일체의 세인(世人)이 구중(口中)에서 일찍이 설하지 않음이 없다. 유여(喩如; 비유로 예를 듦) 물건을 잃은 사람이 홀연히 심견(尋見)하고는 불각에 이 일성(一聲)을 발함이 이 화자(㘞字)다. 종문에서 이 글자를 많이 말하는 것은 대개 심사방도(尋師訪道)하는 사람이 3, 20년 참구하고는 홀연히 심화(心花)가 발명하여 이 일을 회득(會得)하매 불각에 화지일성(㘞地一聲)함이 잃었던 물건을 득견함과 같아서 경쾌(慶快)한 평생이니 이것이 그 자의(字義)다.
問 本來人還成佛也無 師曰 汝見大唐天子還自種田割稻麽 曰 未審是何人成佛 師曰 是汝成佛 僧無語 師曰 會麽 曰 不會 師曰 如人因地而倒 依地而起 地道甚麽 三聖令秀上座問曰 南泉遷化向甚麽處去 師曰 石頭作沙彌時參見六祖 秀曰 不問石頭見六祖 南泉遷化向甚麽處去 師曰 敎伊尋思去 秀曰 和尙雖有千尺寒松 且無抽條石筍 師默然 秀曰 謝和尙答話 師亦默然 秀回擧似三聖 聖曰 若恁麽 猶勝臨濟七步 然雖如此 待我更驗看 至明日 三聖上問 承聞和尙昨日答南泉遷化一則語 可謂光前絕後 今古罕聞 師亦默然
●光前絕後; 亦曰絶後光前 前後無類比之義 後生無如是賢者 故曰絶後 其賢德光於前世 故曰光前 形容功業偉大或成就卓著 ▲碧巖錄第十四則種電鈔 光前絶後 文選沈休文 齊安陸昭王碑文云 應期誕德絶後光前 善曰 晉起居注曰 安帝詔云 元功聖德起前絶後 世當更無如此賢者 故云絶後 其賢德光於祖考 故云光前也
묻되 본래인(本來人)이 도리어 성불합니까 또는 아닙니까(無). 사왈 네가 보아라, 대당천자(大唐天子)가 도리어 스스로 밭에 씨 뿌리고 벼를 베더냐(種田割稻麽). 가로되 미심하오니 이 어떤 사람이 성불합니까. 사왈 이 네가 성불한다.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예컨대(如) 사람이 땅으로 인해 넘어졌으면 땅에 의해 일어나거니와 땅이 무어라고 말하느냐(地道甚麽). 삼성(三聖; 慧然)이 수상좌(秀上座)를 시켜 문왈(問曰) 남천(南泉)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甚麽處)을 향해 가셨습니까. 사왈 석두(石頭)가 사미가 되었을 때 6조(祖)를 참견(參見)했다. 수왈(秀曰) 석두가 6조를 참견한 것을 물은 게 아닙니다. 남천이 천화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가셨습니까. 사왈 그(伊)로 하여금 심사(尋思)하게 했다. 수왈(秀曰) 화상이 비록 천 척(尺)의 한송(寒松)이 있지만 또(且) 가지를 빼는(抽條) 석순(石筍)이 없습니다. 스님이 묵연(默然)했다. 수왈(秀曰) 화상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스님이 또한 묵연했다. 수(秀)가 돌아가 삼성에게 들어 보이자 삼성이 가로되 만약 이러하다면(恁麽) 오히려 임제 보다 7보(步) 수승(殊勝)하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내가 다시 시험해봄을 기다려라. 명일에 이르자 삼성이 올라가 문되 승문(承聞)컨대 화상이 어제 남천천화(南泉遷化)에 답한 1칙(則)의 말씀은 가위(可謂) 광전절후(光前絕後)라 금고(今古)에 드물게 들었습니다(罕聞). 스님이 또한 묵연했다.
●光前絕後; 또한 가로되 절후광전이니 앞뒤로 유비(類比; 비교)할 이가 없음의 뜻. 후생에 이와 같은 현자가 없으므로 고로 가로되 절후(絶後)며 그 현덕(賢德)이 전세를 빛냈으므로 고로 가로되 광전(光前)임. 공업(功業)이 위대하거나 혹 성취가 탁저(卓著; 탁월하고 현저함)함을 형용함. ▲벽암록 제14칙 종전초. 광전절후(光前絶後) 문선(文選) 심휴의 글. 제(齊) 안륙의 소왕비문(昭王碑文)에 이르되 응기(應期)하여 탄덕(誕德; 賢德을 탄생)하니 절후광전(絶後光前)이다. 선(善)이 가로되 진(晉)의 기거(起居) 주에 가로되 안제(安帝)가 조서로 이르기를 원공(元功; 으뜸 되는 큰 공.)의 성덕(聖德)이 기전절후(起前絶後)다. 세상에서 마땅히 다시는 이와 같은 현자가 없으므로 고로 이르되 절후(絶後)며 그 현덕이 조고(祖考)를 빛냈으므로 고로 이르되 광전(光前)이다.
僧問 如何是文殊 師曰 牆壁瓦礫是 曰 如何是觀音 師曰 音聲語言是 曰 如何是普賢 師曰 衆生心是 曰 如何是佛 師曰 衆生色身是 曰 河沙諸佛體皆同 何故有種種名字 師曰 從眼根返源名文殊 耳根返源名觀音 從心返源名普賢 文殊是佛妙觀察智 觀音是佛無緣大慈 普賢是佛無爲妙行 三聖是佛之妙用 佛是三聖之眞體 用則有河沙假名 體則總名一薄伽梵 問 色卽是空 空卽是色 此理如何 師曰 聽老僧偈 礙處非牆壁 通處沒虛空 若人如是解 心色本來同 又曰 佛性堂堂顯現 住性有情難見 若悟衆生無我 我面何如佛面
●觀音; 觀世音的略稱 玄應經音義五 觀世音 梵言阿婆盧吉低舍婆羅 此譯云觀世自在 舊譯云觀世音或言光世音 竝訛也 ▲妙法蓮華經入疏一 天竺云 婆婁吉低稅 此云觀世音 思益經云 若衆生見者 卽時畢定得於菩提 稱名者得免衆苦 故名觀音 ▲慈恩寺三藏法師傳二 阿縛盧枳多伊濕伐羅菩薩像 唐言觀自在 合字連聲梵語如上 分文而言 卽阿縛盧枳多譯曰觀 伊濕伐羅譯曰自在 舊云光世音 或觀世音 或觀世音自在 皆訛也
●眼根; 六根之一 謂眼能於色境 盡見諸色 瑜伽論云 能觀衆色是也 [三藏法數二十一]
●妙觀察智; 四智之一 住持一切陀羅尼門三摩地門 無礙辯才 說諸妙法故 [翻譯名義集五]
●無緣大慈; 無緣 無對象之謂 佛觀一切皆空 而不以特定之人爲對象 故佛之慈悲特稱無緣大慈 其慈心遍及一切衆生 乃爲慈悲中之最尊者
●薄伽梵; <梵> bhagavat 佛陀十號之一 諸佛通號之一 又作婆伽婆 婆伽梵 此云有德 能破 世尊 尊貴 卽有德而爲世所尊重者之意 在印度用於有德之神或聖者之敬稱 具有自在 正義 離欲 吉祥 名稱 解脫等六義 在佛敎中則爲佛之尊稱 又因佛陀具有德 能分別 受衆人尊敬 能破除煩惱等衆德 故薄伽梵亦具有有德 巧分別 有名聲 能破等四種意義 按佛地經論一 薄伽梵具有自在 熾盛 端嚴 名稱 吉祥 尊貴等六種意義 [大智度論二 淸淨道論七 大乘義章二十]
승문(僧問) 무엇이 이 문수(文殊)입니까. 사왈 장벽(牆壁)과 와력(瓦礫)이 이것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관음(觀音)입니까. 사왈 음성과 어언(語言)이 이것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보현(普賢)입니까. 사왈 중생심이 이것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불(佛)입니까. 사왈 중생의 색신(色身)이 이것이다. 가로되 하사제불(河沙諸佛)이 체(體)가 모두 동일하거늘 무슨 연고로 갖가지 명자(名字)가 있습니까. 사왈 안근(眼根)으로 좇아 근원으로 돌아감(返源)을 이름해 문수며 이근(耳根)이 근원으로 돌아감을 이름해 관음이며 마음으로 좇아 근원으로 돌아감을 이름해 보현이다. 문수는 이 불(佛)의 묘관찰지(妙觀察智)며 관음은 이 불의 무연대자(無緣大慈)며 보현은 이 불의 무위(無爲)의 묘행(妙行)이다. 3성(聖)은 이 불의 묘용(妙用)이며 불은 이 3성의 진체(眞體)니 용(用)은 곧 하사(河沙)의 가명(假名)이 있지만 체(體)는 곧 총명(總名)이 1박가범(薄伽梵)이다. 묻되 색이 즉시 공이며 공이 즉시 색이라 하니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사왈 노승의 게를 들어라. 애처(礙處)가 장벽(牆壁)이 아니며/ 통처(通處)가 허공이 아니다(勿)/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이해하면/ 심색(心色)이 본래 동일하다. 또 가로되 불성이 당당(堂堂)히 현현(顯現; 환히 나타남)했지만/ 주성(住性)하는 유정(有情)은 보기 어렵다/ 만약 중생이 무아(無我)임을 깨치면/ 아면(我面)이 어찌 불면(佛面)과 같은가(如).
●觀音; 관세음(觀世音; 梵 Avalokiteśvara)의 약칭. 현응경음의5 관세음 범언으로 아바로길저사바라는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관세자재다. 구역에 이른 관세음 혹은 말하기를 광세음은 모두 그르다. ▲묘법연화경입소1. 천축에서 이르되 바루길저세는 여기에선 이르되 관세음이다. 사익경에 이르되 만약 중생이 친견하는 자는 즉시, 필경 꼭 보리를 얻으며 명호를 일컫는 자는 뭇 괴로움을 면함을 얻나니 고로 이름이 관음이다. ▲자은사삼장법사전2. 아바로기다이습벌라보살상(阿縛盧枳多伊濕伐羅菩薩像) 당나라 말로는 관자재다. 글자를 합하고 소리를 연결한 범어는 위와 같다. 글을 나누어 말하자면 곧 아바로기다는 번역해 가로되 관(觀)이며 이습벌라는 번역해 가로되 자재(自在)다. 예전에 이른 광세음 혹은 관세음 혹은 관세음자재는 다 그르다.
●眼根; 6근의 하나. 이르자면 눈(眼)이 능히 색경(色境)에 모두 제색(諸色)을 보나니 유가론(瑜伽論)에 이르되 능히 뭇 색(色)을 본다 한 게 이것임 [삼장법수21].
●妙觀察智; 4지(智)의 하나. 일체의 다라니문과 삼마지문(三摩地門)에 주지(住持)하여 무애의 변재로 모든 묘법을 설하는 연고임 [번역명의집5].
●無緣大慈; 무연(無緣)은 대상이 없음을 말함. 불타는 일체가 다 공했음을 관찰했고 특정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지라 고로 불타의 자비를 특칭하여 무연대자라 함. 그 자심(慈心)이 일체중생에 두루 미치며 곧 자비 중에 가장 존귀함이 됨.
●薄伽梵; <범> bhagavat. 불타 10호의 하나, 제불의 통호(通號; 통칭)의 하나. 또 바가바(婆伽婆)ㆍ바가범(婆伽梵)으로 짓나니 여기에선 이르되 유덕(有德)ㆍ능파(能破)ㆍ세존(世尊)ㆍ존귀(尊貴)임. 즉 유덕(有德)하여 세상에서 존중(尊重)하는 바가 됨의 뜻. 인도에 있어선 유덕한 신, 혹은 성자(聖者)의 경칭에 사용됨. 자재(自在)ㆍ정의(正義)ㆍ이욕(離欲)ㆍ길상(吉祥)ㆍ명칭(名稱)ㆍ해탈(解脫) 등의 여섯 뜻을 갖추어 있음. 불교 중에 있어선 곧 부처의 존칭이 됨. 또 불타가 유덕(有德)ㆍ능분별(能分別)ㆍ중인의 존경을 받음ㆍ능히 번뇌 등을 파제(破除)하는 등의 중덕(衆德)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로 박가범은 또한 유덕(有德)ㆍ교분별(巧分別)ㆍ유명성(有名聲)ㆍ능파(能破) 등 4종 의의를 갖추고 있음. 불지경론1을 안험컨대 박가범은 자재(自在)ㆍ치성(熾盛)ㆍ단엄(端嚴)ㆍ명칭(名稱)ㆍ길상(吉祥)ㆍ존귀(尊貴) 등의 6종의 의의(意義)를 갖추고 있음 [대지도론2. 청정도론7. 대승의장20].
問 第六第七識及第八識畢竟無體 云何得名轉第八爲大圓鏡智 師示偈曰 七生依一滅 一滅持七生 一滅滅亦滅 六七永無遷 問 蚯蚓斷爲兩段 兩頭俱動 未審佛性在阿那頭 師曰 妄想作麽 曰 其如動何 師曰 汝豈不知火風未散 問 如何轉得山河國土歸自己去 師曰 如何轉得自己成山河國土去 曰 不會 師曰 湖南城下好養民 米賤柴多足四鄰 僧無語 師示偈曰 誰問山河轉 山河轉向誰 圓通無兩畔 法性本無歸
●第六; 第六識 就唯識論所立八識從眼識數之意識位於第六 故謂爲第六識 亦云第六意識
●第七識; 卽末那識 唯識論所說八識中第七識 以由第八識爲所依 以第八識之見分爲所緣而生之識也 末那識譯爲意 意有思量之義 此識常緣第八識之見分思量 我爲法 故名末那 我法二執之根本也 然則第六識名爲意識 有何分別 彼爲依此末那卽意而生之識 故曰意識 卽依主釋也 此末那卽第七識 故云末那識(卽意識) 是持業釋也 ▲唯識論四 是識聖敎別名末那 恒審思量勝餘識故 此名何異第六意識 此持業釋 如藏識名 識卽意故 彼依主釋如眼識等 識異意故 然諸聖敎恐此濫彼 故於第七但立意名
●第八識; 阿賴耶識之異名 八識(眼 耳 鼻 舌 身 意 末那 阿賴耶識)之一 九識(八識及阿摩羅識)之一 又作阿梨耶識 略稱賴耶 梨耶 舊譯作無沒識 新譯作藏識 或作第八識 本識 無沒識 意謂執持諸法而不迷失心性 以其爲諸法之根本 故亦稱本識 此識爲宇宙萬有之本 含藏萬有 使之存而不失 故稱藏識 又因其能含藏生長萬有之種子 故亦稱種子識 [入楞伽經二 同七 法華經玄義五下 大乘義章三末 華嚴孔目章一 唯識了義燈四本]
●大圓鏡智; 四智之一 佛地經明四智 一大圓鏡智者 如依圓鏡 衆像影現 如是依止如來智鏡 諸處境識衆像影現
●四隣; 周圍的鄰居 周圍鄰近的人
묻되 제6(第六)ㆍ제7식(第七識) 및 제8식(第八識)이 필경 체(體)가 없거늘 어찌하여 명전(名轉; 이름이 轉하다)을 얻어 제8(第八)이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됩니까. 스님이 게를 보여 가로되 칠생(七生)이 일(一)에 의해 멸(滅)하고/ 일멸(一滅)이 칠생(七生)을 집지(執持)한다/ 일멸(一滅)을 멸(滅)하고 또한 멸해야/ 육칠(六七)이 영원히 천이(遷移)가 없다. 묻되 지렁이(蚯蚓)가 끊겨 양단(兩段)이 되면 양두(兩頭)가 모두(俱) 움직입니다. 미심하오니 불성이 아나두(阿那頭; 那邊)에 있습니까. 사왈 망상하여 무엇하랴(作麽). 가로되 그것이 움직이는 것 같음을 어찌합니까. 사왈 너는 어찌 화풍(火風)이 흩어지지 않은 줄 알지 못하느냐. 묻되 어찌해야 산하국토(山河國土)를 전득(轉得)해 자기로 돌아갑니까. 사왈 어찌해야 자기를 전득(轉得)하여 산하국토를 이루어 가는가. 가로되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호남성 아래가 양민(養民)하기 좋나니 쌀은 흔하고 땔감은 많아(米賤柴多) 사린(四鄰)을 풍족히 한다. 그 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게를 보여 가로되 누가 산하의 전(轉)을 묻는가/ 산하를 전하여 누구를 향하는가/ 원통(圓通)은 양반(兩畔)이 없고/ 법성(法性)은 본래 돌아감이 없다.
●第六; 제6식이니 유식론에서 세운 바 8식(識)으로 나아가 안식(眼識)을 좇아서 이를 센(數) 의식(意識)이 제6에 위치하는지라 고로 일러 제6식이라 함, 또한 이르되 제6의식임.
●第七識; 곧 말나식(末那識)임. 유식론에서 설하는 바 8식 중의 제7식임. 제8식이 의지하는 바가 됨으로 말미암아 제8식의 견분(見分)을 소연(所緣)으로 생기(生起)하는 식임. 말나식은 의(意)로 번역하며 의는 사량의 뜻이 있음. 이 식은 늘 제8식의 견분(見分)을 반연(攀緣)하여 사량하면서 내가 법이 된다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말나임. 아법(我法) 2집(執)의 근본임. 그러한 즉 제6식을 이름하여 의식(意識)이니 어떤 분별이 있는가. 그것은 이 말나에 의해 즉의(卽意; 意에 가까이 붙음)하여 나는 식인지라 고로 가로되 의식이니 곧 의주석(依主釋)임. 이 말나는 곧 제7식인지라 고로 이르되 말나식(末那識; 곧 意識)이니 이는 지업석(持業釋)임. ▲유식론4. 이 식은 성교(聖敎)에서 별명이 말나(末那)니 항상 살피면서 사량함이 다른 식보다 수승한 연고이다. 이 이름은 어떻게 제6 의식과 다른가 하면 이것은 지업석(持業釋)이니 식의 이름을 감춘 것과 같아서 식이 곧 의(意)인 연고이다. 그것을 의주석(依主釋)하면 안식(眼識) 등과 같음이니 식(識)은 의(意)와 다른 연고이다. 그러나 여러 성교(聖敎)에서 이것이 그것과 혼람(混濫)할까 염려한지라 고로 제7에는 단지 의(意)의 이름만 세웠다.
●第八識; 아뢰야식(阿賴耶識; 梵 ālaya)의 다른 이름. 8식(八識;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ㆍ말나ㆍ아뢰야식)의 하나. 9식(九識; 8식 및 아마라식)의 하나. 또 아리야식(阿梨耶識)으로 지으며 약칭이 뢰야(賴耶)ㆍ리야(梨耶). 구역에 무몰식(無沒識)으로 지었고 신역에 장식(藏識)으로 지었음. 혹은 제8식ㆍ본식ㆍ무몰식으로 지음. 뜻으로 이르자면 제법을 집지(執持)하여 심성(心性)을 미실(迷失)하지 않음임. 그것이 제법의 근본이 되므로 고로 또 명칭이 본식(本識)이며 이 식이 우주 만유의 근본이 되어 만유를 함장(含藏)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존재해 잃지 않게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장식(藏識)임. 또 그것이 능히 만유를 함장하고 생장하는 종자임으로 인해 고로 또 명칭이 종자식(種子識)임 [입릉가경2, 동7. 법화경현의5하. 대승의장3말. 화엄공목장1. 유식요의등4본].
●大圓鏡智; 4시(智)의 하나. 불지경(佛地經)에 4지(智)를 밝혔음. 1. 대원경지(大圓鏡智)란 것은 원경(圓鏡)에 의해 중상(衆像)의 그림자가 나타남과 같나니 이와 같이 여래지경(如來智鏡)에 의지해 모든 곳의 경식(境識; 客觀的인 外境)의 중상(衆像)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四鄰; 주위의 인거(鄰居; 이웃의 거주지). 주위에 인근한 사람.
華嚴座主問 虛空爲是定有 爲是定無 師曰 言有亦得 言無亦得 虛空有時但有假有 虛空無時但無假無 曰 如和尙所說 有何敎文 師曰 大德豈不聞首楞嚴云 十方虛空生汝心內 猶如片雲點太淸裏 豈不是虛空生時但生假名 又云 汝等一人發眞歸源 十方虛空悉皆消殞 豈不是虛空滅時但滅假名 老僧所以道 有是假有 無是假無 又問 經云如淨瑠璃中內現眞金像 此意如何 師曰 以淨瑠璃爲法界體 以眞金像爲無漏智 體能生智 智能達體 故云如淨瑠璃中內現眞金像
●片雲點太淸裏下; 楞嚴經九 當知虛空生汝心內 猶如片雲點太淸裏 況諸世界在虛空耶 汝等一人發眞歸元 此十方空皆悉銷殞 ◆太淸; 天也 道敎所謂神仙所居之玉淸上淸太淸三宮之一
화엄좌주(華嚴座主)가 묻되 허공은 이 꼭(定) 있음이 됩니까, 이 꼭 없음이 됩니까. 사왈(師曰) 있다고 말해도 또한 옳고(得) 없다고 말해도 또한 옳나니 허공이 있을 때 단지 가유(假有)가 있고 허공이 없을 때 단지 가무(假無)가 없다. 가로되 화상이 설하는 바와 같은 것은 어떤 교문(敎文)에 있습니까. 사왈 대덕이 어찌 듣지 못했는가. 수릉엄경(首楞嚴經)에 이르되 시방허공(十方虛空)이 너의 심내(心內)에 생겨남이 마치 편운이 태청 속에 점 찍음(片雲點太淸裏)과 같다 했으니 어찌 이 허공이 생겨날 때 단지 가명(假名)이 생겨남이 아니겠는가. 또 이르되 너희 등 한 사람이 발진(發眞)하여 귀원(歸源)하면 시방의 허공이 모두 다 소운(消殞; 사라져 없어짐)한다 했으니 어찌 이 허공이 멸할 때 단지 가명이 멸함이 아니겠는가. 노승이 소이로 말하되 유(有)는 이 가유(假有)며 무(無)는 이 가무(假無)다. 또 묻되 경(법화경1)에 이르되 정유리(淨瑠璃) 중내(中內)에 진금상(眞金像)이 나타남과 같다 했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如何). 사왈 정유리를 법계의 체(體)로 삼고 진금상을 무루지(無漏智)로 삼음이니 체가 능히 지(智)를 내고 지가 능히 체를 통달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정유리(淨琉璃) 중내(中內)에 진금상(眞金像)이 나타남과 같다.
●片雲點太淸裏下; 릉엄경9. 마땅히 알지니 허공이 너희의 심내(心內)에 생기(生起)함이 마치 편운(片雲)이 태청(太淸) 속에 점을 찍음과 같다. 하물며 모든 세계가 허공에 있음이겠는가. 너희 등 한 사람이 발진(發眞)하여 귀원(歸元)하면 이 시방의 허공이 모두 다 소운(銷殞; 사라져 없어짐)한다. ◆太淸; 하늘임. 도교에서 이른 바 신선이 거처하는 바의 옥청ㆍ상청ㆍ태청 3궁(宮)의 하나.
問 如何是上上人行處 師曰 如死人眼 曰 上上人相見時如何 師曰 如死人手 問 善財爲甚麽無量劫遊普賢身中世界不遍 師曰 你從無量劫來 還遊得遍否 曰 如何是普賢身 師曰 含元殿裏 更覔長安 問 如何是學人心 師曰 盡十方世界是你心 曰 恁麽則學人無著身處也 師曰 是你著身處 曰 如何是著身處 師曰 大海水 深又深 曰 學人不會 師曰 魚龍出入任升沉 問 有人問和尙 卽隨因緣答 無人問和尙時如何 師曰 困則睡 徤則起 曰 敎學人作麽生會 師曰 夏天赤骨力 冬寒須得被 問 亡僧遷化甚麽處去也 師示偈曰 不識金剛體 却喚作緣生 十方眞寂滅 誰在復誰行
●含元殿; 屬於長安大明宮的第一正殿 本名蓬萊宮 建成於唐高宗龍朔三年(663) 毀於唐僖宗光啓二年(886) 遺址在今陝西省西安市 [百度詞典]
●赤骨力; 一無所有 赤裸裸 多喩蕩盡俗情妄念 明悟本來面目
●緣生; 謂由緣而生也 指一切之有爲法而言 與緣起同 但緣起者爲由其因而立之名 緣生者爲由其果而立之名 ▲祖庭事苑三 緣生 緣生卽十二因緣 亦名十二緣生
묻되 무엇이 이 상상인(上上人)의 행처(行處)입니까. 사왈(師曰) 사인(死人)의 눈과 같다. 가로되 상상인이 상견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사인의 손과 같다. 묻되 선재(善財)가 무엇 때문에 무량겁(無量劫)에 보현의 신중(身中)의 세계를 유행(遊行)해도 주편(周遍)하지 못했습니까. 사왈 네(爾)가 무량겁으로 좇아오며 도리어 유행해 주편함을 얻었는가. 가로되 무엇이 이 보현신(普賢身)입니까. 사왈 함원전(含元殿) 속에서 다시 장안을 찾는구나.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마음입니까. 사왈 온(盡) 시방세계가 이 너의 마음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곧 학인이 몸 붙일 곳(著身處)이 없습니다. 사왈 이 너의 몸 붙일 곳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몸 붙일 곳입니까. 사왈 대해수(大海水)가 깊고 또 깊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어룡(魚龍)이 출입하며 마음대로(任) 승침(升沉)한다. 묻되 어떤 사람이 화상에게 물으면 곧 인연 따라 답합니다만 화상에게 묻는 사람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곤(困)하면 곧 자고 튼튼하면(徤) 곧 일어난다. 가로되 학인으로 하여금 어떻게 이회(理會)하게 하십니까. 사왈 하천(夏天)엔 적골력(赤骨力)이며 동한(冬寒)엔 꼭 입음(被)을 얻는다. 묻되 망승(亡僧)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으로 갔습니까. 스님이 게를 보여 가로되 금강의 체(體)를 알지 못하면/ 도리어 연생(緣生)이라고 불러 짓는다/ 시방이 진실로 적멸이거늘/ 누가 있고(在) 다시 누가 행하는가.
●含元殿; 장안 대명궁(大明宮)에 속한 제1 정전(正殿)이니 본명은 봉래궁이었음. 당 고종 용삭 3년(663)에 건립해 이루었고 당 희종 광계 2년(886)에 헐어졌음. 유지(遺址)는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에 있음 [백도사전].
●赤骨力; 하나도 소유한 게 없음. 적나라(赤裸裸)함. 다분히 속정(俗情)과 망념(妄念)을 탕진하고 본래면목을 환히 깨침에 비유함.
●緣生; 이르자면 연(緣)으로 말미암아 생기(生起)함이니 일체의 유위법을 가리켜 말함임. 연기(緣起)와 한가지나 다만 연기(緣起)란 것은 그 인(因)을 말미암아 세운 이름이 되고 연생(緣生)이란 것은 그 과(果)로 말미암아 세운 이름이 됨. ▲조정사원3. 연생(緣生) 연생은 곧 12인연이니 또한 이름이 12연생(緣生)임.
師讚南泉眞曰 堂堂南泉 三世之源 金剛常住 十方無邊 生佛無盡 現已却還 久依南泉有投機偈曰 今日還鄕入大門 南泉親道遍乾坤 法法分明皆祖父 回頭慙愧好兒孫 泉答曰 今日投機事莫論 南泉不道遍乾坤 還鄕盡是兒孫事 祖父從來不出門 勸學偈曰 萬丈竿頭未得休 堂堂有路少人遊 禪師願達南泉去 滿目靑山萬萬秋 臨濟云 赤肉團上 有一無位眞人 師因有偈曰 萬法一如不用揀 一如誰揀誰不揀 卽今生死本菩提 三世如來同箇眼 誡斫松竹偈曰 千年竹萬年松 枝枝葉葉盡皆同 爲報四方玄學者 動手無非觸祖公
●投機; 又作逗機 卽機機投合之意 指禪師與學人之機 彼此相契 又謂學人徹底大悟而契合佛祖之要機
●赤肉團; 狹義指心臟 廣義則指肉體 赤肉卽動物的肉 宗鏡錄四 且約一心 古釋有四 一紇利陀耶 此云肉團心 身中五藏心也 如黃廷經所明(云云)
●無位眞人; 指徹見本來面目者 卽不墮於菩薩四十二位 五十二位等品位 竝超越凡聖迷悟 上下貴賤等分別 而無所滯礙 已得解脫之人 於禪林 轉指人人本具之眞如佛性
스님이 남천(南泉)의 진(眞; 肖像)을 찬(讚)해 가로되 당당(堂堂)한 남천이여/ 삼세(三世)의 근원이다/ 금강(金剛)이 상주(常住)하며/ 시방에 무변(無邊)하다/ 생불(生佛; 중생과 부처)이 무진(無盡)하나니/ 나타나고 나서 도리어 돌아간다. 오래 남천에게 의지하고 투기게(投機偈)가 있어 가로되 금일 환향(還鄕)하여 대문(大門)에 드니/ 남천이 친히 말하기를 건곤에 두루하다/ 법법(法法)이 분명하여 모두 조부(祖父)며/ 회두(回頭)하니 호아손(好兒孫)에게 참괴(慚愧)스럽다. 남천이 답왈(答曰) 금일의 투기사(投機事)를 논하지 말지니/ 남천이, 건곤에 두루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환향(還鄕)은 모두(盡) 이 아손의 일이니/ 조부는 종래로 출문(出門)하지 않았다. 권학게(勸學偈)에 가로되 만장간두(萬丈竿頭)에서 쉼을 얻지 말지니(未)/ 당당(堂堂)하게 길이 있으나 유행(遊行)하는 사람이 적다/ 선사(禪師)가 남천(南泉)에 도달하여 가기를 원하노니/ 만목(滿目)의 청산이 만만추(萬萬秋)로다. 임제가 이르되 적육단상(赤肉團上)에 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있다. 스님이 인하여 게가 있어 가로되 만법이 일여(一如)니 간택함을 쓰지 말아라/ 일여를 누가 간택하고 누가 간택하지 않는가/ 즉금 생사가 본래 보리니/ 삼세여래가 한가지(同箇; 箇는 조사)의 눈이다. 송죽을 베는(斫松竹) 것을 경계(警戒; 誡)한 게에 가로되 천년죽(千年竹)이며 만년송(萬年松)이니/ 지지엽엽(枝枝葉葉; 가지마다 잎마다)이 모두 다(盡皆) 한가지다/ 사방의 현학(玄學; 佛學)하는 자에게 알리노니/ 동수(動手)하매 조공(祖公; 祖父)을 저촉(抵觸)하지 아님이 없다.
●投機; 또 두기(逗機)로 지음. 곧 기기(機機)가 투합함의 뜻. 선사와 학인의 기(機)가 피차 상계(相契)함을 가리킴. 또 이르자면 학인이 철저히 대오하여 불조의 요기(要機)에 계합함.
●赤肉團; 좁은 뜻으로는 심장을 가리키며 넓은 뜻으론 곧 육체를 가리킴. 적육은 곧 동물의 살(肉)임. 종경록4. 또 일심을 대약(大約)한다면 고인의 해석에 넷이 있다. 1. 흘리다야 여기에선 이르되 육단심(肉團心)이니 신중(身中)의 오장심(五藏心)이다. 황정경에서 밝힌 바와 같다 (운운).
●無位眞人; 본래면목을 철저히 본 자를 가리킴. 곧 보살의 42위(位)와 52위 등의 품위(品位)에 떨어지지 않고 아울러 범성과 미오, 상하와 귀천 등의 분별을 초월하여 체애(滯礙)하는 바가 없으며 이미 해탈을 얻은 사람임. 선림에선 전(轉)하여 사람마다 본래 구족한 진여불성을 가리킴.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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