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15 효총선사(曉聰禪師)-수도선사(守道禪師)

태화당 2025. 10. 8. 07:14

靑原下九世

文殊眞禪師法嗣

瑞州洞山曉聰禪師

遊方時在雲居作燈頭 見僧說泗州大聖近在揚州出現 有設問曰 旣是泗州大聖 爲甚麽却向揚州出現 師曰 君子愛財 取之以道 後僧擧似蓮華峯祥庵主 主大驚曰 雲門兒孫猶在 中夜望雲居拜之 住後 僧問 達磨未傳心地印 釋迦未解髻中珠 此時若問西來意 還有西來意也無 師曰 六月雨淋淋 寬其萬姓心 曰 恁麽則雲散家家月 春來處處花 師曰 脚跟下到金剛水際是多少 僧無語 師曰 祖師西來 特唱此事 自是上座不薦 所以從門入者 不是家珍 認影迷頭 豈非大錯 旣是祖師西來特唱此事 又何必更對衆忉忉 珍重 問 無根樹子向甚麽處栽 師曰 千年常住一朝 僧問 如何是離聲色句 師曰 南贍部洲 北鬱單越 曰 恁麽則學人知恩不昧也 師曰 四大海深多少 問 古鏡未磨時如何 師曰 此去漢陽不遠 曰 磨後如何 師曰 黃鶴樓前鸚鵡洲 問 如何是佛 師曰 理長卽就

燈頭; 禪林中司掌燈燭之職稱

君子愛財 取之以道; 禪門拈頌集第一三六七則 拈頌說話曰 君子愛財云云者 傳云 廉士非不愛財 取之有道 貞婦非不愛色 結之以義 苟非其道 廉士不取故以保名 苟非其義 貞婦不爲故以全行

金剛水際; 金剛 金輪 金剛輪 水際 水輪際 世界之成立爲五輪 依俱舍等之說則最下爲虛空輪 其上爲風輪 其上爲水輪 其上爲金剛輪(卽金剛際 地輪也) 此上載九山八海 卽於五大中除火大之一 而爲四輪所成 輪者以此四層各爲周圓之形故也 又大日經疏十四曰 一切世界皆是五輪之所依持 世界成時 先從空中而起風 風上起火 火上起水 水上起地 卽是曼茶羅安立次第世界之成立爲五輪

理長卽就; 若道理殊勝就依從之

 

서주(瑞州) 동산(洞山) 효총선사(曉聰禪師)

유방(遊方)할 때 운거(雲居)에 있으면서 등두(燈頭)가 되었다. 보매 중이 말하되 사주대성(泗州大聖)이 최근에 양주(揚州)에서 출현했다. 설문(設問)함이 있어 가로되 이미 이 사주대성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양주를 향해 출현했는가. 사왈 군자도 재물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취하매 도를 쓴다(君子愛財 取之以道). 후에 중이 연화봉(蓮華峯) 상암주(祥庵主)에게 들어 보이자 암주가 대경(大驚)하며 가로되 운문의 아손이 아직 있다. 중야(中夜)에 운거를 바라보며 예배했다. 주후(住後) 승문 달마가 심지인(心地印)을 전하지 않고 석가가 계중주(髻中珠)를 풀지() 않았는데 이때 만약 서래의를 묻는다면 도리어 서래의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6월에 비가 임림(淋淋; 비가 오는 모양)하면 그 만성(萬姓)의 마음이 관대(寬大; )하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구름이 흩어진 가가(家家)의 달이며 봄이 오매 처처(處處)의 꽃입니다. 사왈 발꿈치 아래가 금강수제(金剛水際)에 이르렀으니 이 얼마인가.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조사가 서래하여 차사(此事)를 특창(特唱)했으나 스스로 이 상좌가 천(; 領會)하지 못했다. 소이로 문으로 좇아 들어온 것은 이 가진(家珍)이 아니며 그림자를 인정하여 미두(迷頭)하니 어찌 대착(大錯)이 아니겠는가. 이미 이 조사가 서래하여 차사를 특창했거늘 또 하필이면 다시 대중(對衆)하여 도도(忉忉)하겠는가. 진중(珍重). 묻되 무근수자(無根樹子)를 어느 곳을 향해 심습니까(). 사왈 천 년에 상주(常住)함이 일조(一朝). 승문 무엇이 이 성색을 여의는 구()입니까. 사왈 남섬부주며 북울단월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이 지은(知恩)하여 불매(不昧)하겠습니다. 사왈 사대해(四大海)의 깊이가 얼마인가.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여기에서 한양(漢陽)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다. 가로되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황학루(黃鶴樓) 앞의 앵무주(鸚鵡洲).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도리가 나으면 곧 따르거라(理長卽就).

燈頭; 선림 중에서 등촉(燈燭)을 사장(司掌; 취급. 관장)하는 직칭.

君子愛財 取之以道; 선문염송집 제1367. 염송설화에 가로되 군자애재 운운한 것은 전()에 이르되 염사(廉士)가 재물을 사랑히지 않음은 아니지만 그것을 취하면서 도가 있고 정부(貞婦)가 색을 사랑하지 않음은 아니지만 그것과 결합하면서 의()를 쓴다. 진실로 그 도가 아니면 염사는 취하지 않는 고로 이름을 보존하고 진실로 그 의()가 아니면 정부가 하지 않는 고로 행실을 온전히 한다.

金剛水際; 금강은 금륜(金輪), 금강륜이며 수제는 수륜제(水輪際). 세계의 성립은 5륜이 됨. 구사 등의 설에 의하면 곧 최하는 허공륜이 되며 그 위는 풍륜이 되며 그 위는 수륜이 되며 그 위는 금강륜(金剛輪; 즉 금강제니 지륜임)이며 이 위에 98해가 실렸음. 5() 중에 화대(火大)의 하나를 제하고 4륜으로 이루어진 바가 됨. ()이란 것은 이 4층이 각기 주원(周圓; 주위가 둥긂)의 형상이 되는 연고임. 또 대일경소14에 가로되 일체 세계는 다 이 5륜의 의지하는 곳이다. 세계가 성립할 때 먼저 공중으로부터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 위에 불을 일으키고 불 위에 물을 일으키고 물 위에 땅을 일으킨다. 곧 이 만다라(曼茶羅)가 차제로 안립한 세계의 성립이 5륜이 된다.

理長卽就; 만약 도리가 수승하다면 나아가 의지하고 그를 따르라.

 

上堂 敎山僧道甚麽卽得 古卽是今 今卽是古 所以楞嚴經道 松直棘曲 鵠白烏玄 還知得麽 雖然如是 未必是松一向直 棘一向曲 鵠便白 烏便玄 洞山道 這裏也有曲底松 也有直底棘 也有玄底鵠 也有白底烏 久立 上堂 僧問 學人進又不得 退又不得時如何 師曰 抱首哭蒼天 僧無語 師曰 汝還知鉢盂鐼子落處麽 汝若知得落處 也從汝問 三十年後 驀然問著也不定 上堂 擧寒山云 井底生紅塵 高峯起白浪 石女生石兒 龜毛寸寸長 若要學菩提 但看此模樣 良久曰 還知落處也無 若也不知落處 看看菩提入僧堂裏去也 久立

看看; 轉眼間

 

상당(上堂) 산승으로 하여금 무엇을 말하게 해야 곧 옳으냐. ()가 즉시(卽是) ()이며 금()이 즉시 고(). 소이로 릉엄경에 말하되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고 고니()는 희고 까마귀는 검다(). 도리어 지득(知得)하느냐.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반드시 이, 소나무는 일향(一向) 곧고 가시나무는 일향 굽었고 고니는 바로 희고 까마귀는 바로 검은 게 아니다. 동산(洞山)이 말하노니 이 속에 또한 굽은 소나무가 있고 또한 곧은 가시나무가 있고 또한 검은 고니가 있고 또한 흰 까마귀가 있다. 구립(久立)했다. 상당(上堂) 승문 학인이 나아감을 또 얻지 못하고 물러남을 또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머리()를 안고 창천(蒼天)이라고 곡()하거라.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네가 발우분자(鉢盂鐼子)의 낙처를 도리어 아느냐. 네가 만약 낙처를 지득(知得)한다면 또한 너의 물음을 좇겠지만 30년 후 갑자기(驀然) 문착(問著)할지 또한 정()하지 못한다. 상당(上堂) ()하다. 한산(寒山)이 이르되 우물 밑에 홍진(紅塵)이 생기(生起)하고/ 고봉(高峯)에 백랑(白浪)이 일어나고/ 석녀가 석아(石兒)를 낳고/ 귀모(龜毛)의 마디마디(寸寸)가 길다/ 만약 보리(菩提)를 배우고자 한다면/ 단지 이 모양(模樣)을 보아라. 양구하고 가로되 도리어 낙처를 아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에 낙처를 안다면 간간(看看) 보리가 승당 속으로 들어간다. 구립(久立)했다.

看看; 눈을 굴리는 사이.

 

上堂 春寒凝冱 夜來好雪 還見麽 大地雪漫漫 春風依舊寒 說禪說道易 成佛成祖難 珍重 上堂 晨雞報曉靈 粥後便天明 燈籠猶瞌睡 露柱却惺惺 復曰 惺惺直言惺惺 歷歷直言歷歷 明朝後日 莫認奴作郞 珍重 因事示衆 天晴葢却屋 乘乾刈却禾 早輸王稅了 鼓腹唱巴歌 問 德山入門便棒 猶是起模畫樣 臨濟入門便喝 未免揑目生花 離此二途 未審洞山如何爲人 師曰 天晴久無雨 近日有雲騰 曰 他日若有人問洞山宗旨 敎學人如何擧似 師曰 園蔬枯槁甚 擔水潑菠稜 師一日不安 上堂辭衆 述法身頌曰 參禪學道莫茫茫 問透法身北斗藏 余今老倒尫羸甚 見人無力得商量 唯有钁頭知我意 栽松時復上金剛 言訖而寂 塔于金剛嶺

因事示衆; 象器箋十一云 雖其事不定 多是有毁逆違難 因此說法 不露言其事 故稱因事也

起模畫樣; 一率先做箇樣子 使後人或學人參學仿效 二裝模作樣 虛妄作爲 多指不能使人眞實悟道的言句作略 此指二

 

상당(上堂) 봄이 추워 응호(凝冱; 結氷)했고 야래(夜來)에 호설(好雪)이었다. 도리어 보느냐. 대지엔 눈이 만만(漫漫)하고/ 춘풍은 의구히 차갑다/ 설선설도(說禪說道)는 쉽지만/ 성불성조(成佛成祖)는 어렵다. 진중(珍重)하라. 상당(上堂) 신계(晨雞)가 새벽을 알림이 신령(神靈; )하나니/ 죽후(粥後)에 바로 천명(天明)이다/ 등롱(燈籠)은 오히려 갑수(瞌睡; 졸다)하는데/ 노주(露柱)는 도리어 성성(惺惺)하다. 다시 가로되 성성(惺惺)하면 바로 성성하다고 말하고 역력하면 바로 역력하다고 말하나니 명조후일(明朝後日)에 종을 인정해 주인으로 삼지(認奴作郞) 말아라. 진중(珍重). 인사시중(因事示衆) 하늘이 개이니 옥사(屋舍; )를 덮고(葢却)/ 건조함을 타고() 벼를 벤다(刈却)/ 일찍 왕세(王稅)를 보내고() 나서/ 배를 두드리며() 파가(巴歌)를 부른다. 묻되 덕산은 입문(入門)하면 바로 방()했으나 오히려 이는 기모화양(起模畫樣)이며 임제는 입문하면 바로 할()했으나 눈을 문질러 꽃을 냄(揑目生花)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 이도(二途)를 여읜다면 미심하오니 동산(洞山)은 어떻게 위인(爲人)하겠습니까. 사왈 하늘이 개여 오래 비가 없더니 근일(近日) 구름이 오름()이 있다. 가로되 다른 날 만약 어떤 사람이 동산(洞山)의 종지를 물으면 학인으로 하여금 어떻게 거사(擧似)하게 하겠습니까. 사왈 원소(園蔬)가 고고(枯槁)가 심하니 담수(擔水)하여 파릉(菠稜)에 뿌려라. 스님이 어느 날 불안(不安; 병이 있음)하자 상당하여 대중에게 고별하고 법신송(法身頌)을 서술해 가로되 참선학도(參禪學道)하며 망망(茫茫)하지 말고/ 법신을 투과함을 물으면 북두(斗藏)에 숨거라/ 내가 이제 노도(老倒; 연로하여 혼란함)라 왕리(尫羸; 瘦弱)가 심하여/ 사람을 보고도 상량(商量)을 얻을 힘이 없다/ 오직 곽두(钁頭; 괭이. 큰 호미)가 있어 나의 뜻을 아나니/ 재송(栽松)할 때 다시 금강(金剛; 金剛嶺)에 오른다. 말을 마치자 적()했다. 금강령(金剛嶺)에 탑을 세웠다.

因事示衆; 상기전11에 이르되 비록 그 일이 부정(不定)이라도 다분히 이는 훼역위난(毁逆違難)이 있어 이로 인해 설법함이다. 그 일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지라 고로 일컬어 인사(因事).

起模畫樣; 1.솔선하여 양자(樣子; 모양) 지어 후인이나 혹 학인으로 하여금 참학하고 본받게 함. 2. 모양을 꾸미고 모양을 지음이니 허망한 작위임. 다분히,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로 오도하지 못하게 하는 언구와 작략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南臺勤禪師法嗣

汝州高陽法廣禪師

僧問 如何是大悲千手眼 師曰 墮坑落壍

 

여주(汝州) 고양(高陽) 법광선사(法廣禪師)

승문 무엇이 이 대비천수안입니까. 사왈 타갱낙참(墮坑落壍; 구덩이에 떨어짐)한다.

 

潭州石霜節誠禪師

僧問 古者道 捲簾當白晝 移榻對靑山 如何是捲簾當白晝 師曰 過淨甁來 曰 如何是移榻對靑山 師曰 却安舊處著 上堂 心外無法 法外無心 隨緣蕩蕩 更莫沉吟 你等諸人 纔上堦道 便好回去 更要待第二杓惡水潑 作甚麽

 

담주(潭州) 석상(石霜) 절성선사(節誠禪師)

승문 고자(古者)가 말하되 발을 걷으니 백주(白晝)에 당했고 걸상을 옮기니 청산을 대했다. 무엇이 이 발을 걷으니 백주에 당함입니까. 사왈 정병(淨甁)을 가져() 오너라. 가로되 무엇이 이 걸상을 옮기니 청산을 대함입니까. 사왈 도리어 구처(舊處)에 두어라(). 상당(上堂) 마음 밖에 법이 없고 법 밖에 마음이 없나니 수연(隨緣)하여 탕탕(蕩蕩)하고 다시 침음(沉吟)하지 말아라. 너희 등 제인이 겨우 계도(堦道)에 올랐거든 바로 돌아감이 좋나니 다시 둘째 구기()의 악수(惡水; 더러운 물)를 기다림을 요해 무엇하리오.

 

德山晏禪師法嗣

鼎州德山志先禪師

僧問 見色便見心時如何 師曰 角弓彎似月 寶劒利如霜 曰 如何領會 師曰 金甲似魚鱗 朱旗如火燄 問 遠遠投師 乞師一接 師曰 不接 曰 恁麽則虛伸一問 師曰 少逢穿耳客 多遇刻舟人 問 大通智勝佛 十劫坐道場 爲甚麽不得成佛道 師曰 貪觀天上月 失却掌中珠 問 軍期急速時如何 師曰 十字街頭滿面塵 曰 爲甚麽如此 師曰 知而故犯 問 如何是無爲之談 師曰 石羊石虎喃喃語 曰 是何言敎 師曰 長行書不盡 短偈絕人聞 問 如何是一稱南無佛 師曰 皆以成佛道

軍期; 軍事方面約定的限期 泛指軍令

 

정주(鼎州) 덕산(德山) 지선선사(志先禪師)

승문 색을 보면 바로 마음을 볼 때 어떻습니까. 사왈 각궁(角弓)의 굽음()이 달과 같고 보검의 예리함이 서리와 같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금갑(金甲; 금으로 장식한 갑옷)이 어린(魚鱗)과 같고 주기(朱旗)가 화염(火燄)과 같다. 묻되 멀고도 멀리서 스님에게 투신했으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구걸합니다. 사왈 접인(接引; )하지 않겠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헛되이 일문(一問)을 폈습니다. 사왈 천이객(穿耳客)을 만남이 적고 각주인(刻舟人)을 만남이 많다. 묻되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이 십 겁 동안 도량에 앉았거늘 무엇 때문에 불도 이룸을 얻지 못했습니까. 사왈 천상의 달을 탐해 보다가 장중(掌中)의 구슬을 잃어버렸다. 묻되 군기(軍期)가 급속(急速)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십자가두(十字街頭)에서 만면(滿面)에 티끌이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알면서 짐짓 범한다. 묻되 무엇이 이 무위지담(無爲之談)입니까. 사왈 석양(石羊)과 석호(石虎)의 남남어(喃喃語; 재잘거리는 말). 가로되 이 무슨 언교(言敎)입니까. 사왈 장행(長行)은 써서() 다하지 못하고 단게(短偈)는 사람의 들음()이 끊겼다. 묻되 무엇이 이 일칭나무불(一稱南無佛)입니까. 사왈 모두 불도를 이룬다.

軍期; 군사(軍事) 방면의 약정(約定)의 한기(限期). 널리 군령을 가리킴.

 

黑水璟禪師法嗣

峨嵋黑水義欽禪師

上堂 僧出禮拜 師曰 大地百雜碎 便下座

 

아미(峨嵋) 흑수(黑水) 의흠선사(義欽禪師)

상당(上堂) 중이 나와 예배했다. 사왈 대지가 백잡쇄(百雜碎)되었다. 바로 하좌했다.

 

五祖戒禪師法嗣

洪州泐潭懷澄禪師

僧問 見者是色 聞者是聲 離此二途 請師別道 師曰 古寺新牌額 問 不與萬法爲侶者 是甚麽人 師曰 觀世音菩薩 師一日見僧披衲 師曰 得恁麽好針線 曰 祇要牢固 師曰 打草驚蛇作甚麽 曰 客來須看 師曰 祇有這箇更別有 曰 雲生嶺上 師曰 未在更道 曰 水滴巖間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文殊自文殊 解脫自解脫

 

홍주(洪州) 늑담(泐潭) 회징선사(懷澄禪師)

승문 보는 것은 이 색이며 듣는 것은 이 소리입니다. 이 이도(二途)를 여의고 청컨대 스님이 따로 말씀하십시오. 사왈 고사(古寺)의 신비(新牌)의 이마다. 묻되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관세음보살이다. 스님이 어느 날 납의를 입은 중을 보았다. 사왈 이렇게 좋은 침선(針線; 바느질)을 얻었구나. 가로되 다만 뇌고(牢固)를 요했습니다. 사왈 풀을 때려 뱀을 놀라게 해 무엇하려는가. 가로되 객이 오면 봄을 씁니다(須看). 사왈 다만 저개(這箇)만 있는가 다시 딴 게 있는가. 가로되 구름이 영상(嶺上)에 생기(生起)합니다. 사왈 미재(未在)니 다시 말하라. 가로되 바위 사이에 물방울이 떨어집니다(水滴).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문수(文殊)는 스스로 문수며 해탈(解脫)은 스스로 해탈이다.

 

瑞州洞山自寶禪師

上堂 總恁麽風恬浪靜 那裏得來 忽遇洪波浩渺 白浪滔天 當恁麽時 覓箇水手也難得 衆中莫有把柁者麽 衆無對 師曰 賺殺一船人 僧問 如何是佛 師曰 腰長脚短

 

서주(瑞州) 동산(洞山) 자보선사(自寶禪師)

상당(上堂) 모두 이렇게 풍념랑정(風恬浪靜; 바람과 바랑이 고요함)하니 나리(那裏)에서 얻어왔으며 홀연히 홍파(洪波)가 호묘(浩渺)하고 백랑(白浪)이 도천(滔天)함을 만나면 이러한 때를 당해 저() 수수(水手; 水夫)를 찾더라도 또한 얻기 어렵다. 중중(衆中)에 키(; 저본에 로 지었음)를 잡을 자가 있느냐.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한 배의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一船人).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허리는 길고 다리는 짧다.

 

復州北塔思廣禪師

僧問 如何是衲僧變通之事 師曰 東涌西沒 曰 變通後如何 師曰 地肥茄子嫩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左手書右字 曰 學人不會 師曰 歐頭柳脚

 

복주(復州) 북탑(北塔) 사광선사(思廣禪師)

승문 무엇이 이 납승의 변통지사(變通之事)입니까. 사왈 동용서몰(東涌西沒)한다. 가로되 변통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땅이 비옥하면 가자(茄子; 가지)가 연약하다(; 음이 눈).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좌수(左手)로 우자(右字)를 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구두류각(歐頭柳脚)이다.

 

蘄州四祖端禪師

法身頌曰 燈心刺著石人脚 火急去請周醫博 路逢龐公相借問 六月日頭乾曬却

燈心; 釋名云 槪纖細而銳者 皆可名曰心

 

기주(蘄州) 사조단(四祖端) 선사

법신송(法身頌)에 가로되 등심(燈心)으로 석인(石人)의 발을 찌르매/ 화급히 가서 주의박(周醫博)에게 청했다/ 길에서 방공(龐公)을 만나 서로 차문(借問; 물어봄)하니/ 6월의 일두(日頭; )에 건쇄(乾晒: 乾燥)하게 했다.

燈心; 석명에 이르되 대개 섬세하면서 예리한 것은 모두 가히 이름해 가로되 심()이다.

 

潭州雲葢志顒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古寺碑難讀 曰 意旨如何 師曰 讀者盡攢眉

 

담주(潭州) 운개(雲葢) 지옹선사(志顒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고사(古寺)의 비()는 읽기 어렵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읽는 자가 모두 눈썹을 찌푸린다(攢眉).

 

舒州海會通禪師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柿桶葢椶笠 曰 學人不曉 師曰 行時頭頂戴 坐則挂高壁

 

서주(舒州) 해회통(海會通) 선사

승문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시통(柿桶)에 종립(椶笠; 棕櫚의 잎으로 만든 삿갓)을 덮었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다닐 때 두정(頭頂)에 이고 앉으면 곧 고벽(高壁)에 건다().

 

瑞州洞山妙圓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頭腦相似

 

서주(瑞州) 동산(洞山) 묘원선사(妙圓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두뇌가 상사(相似)하다.

 

蘄州義臺子祥禪師

僧問 如何是義臺境 師曰 路不拾遺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桀犬吠堯

路不拾遺; 路上不拾取他人的遺失物 形容社會風氣好 孔子家語一相魯篇曰 孔子初仕爲中都宰 …… 路無拾遺 器不彫僞

 

기주(蘄州) 의대(義臺) 자상선사(子祥禪師)

승문 무엇이 이 의대경(義臺境)입니까. 사왈 길에서 유실물을 줍지 않는다(路不拾遺).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걸견이 요를 짖는다(桀犬吠堯).

路不拾遺; 노상에서 타인의 유실물을 습취하지 않음이니 사회의 풍기가 아름다움을 형용. 공자가어1 상로편(相魯篇)에 가로되 공자가 처음 벼슬하여 중도재(中都宰)가 되었다 …… 길에서는 습유함이 없었고(路無拾遺) 용기(容器)는 조위(彫僞)가 없었다.

 

明州天童懷淸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眼裏不著沙 曰 如何領會 師曰 耳裏不著水 曰 恁麽則禮拜也 師曰 東家點燈 西家暗坐

 

명주(明州) 천동(天童) 회청선사(懷淸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눈 속에 모래를 붙이지 말아라.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귓속에 물을 붙이지 말아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예배하겠습니다. 사왈 동가(東家)에서 점등(點燈)하고 서가(西家)에서 암좌(暗坐; 어둠 속에 앉다)했구나.

 

越州寶嚴叔芝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土身木骨 曰 意旨如何 師曰 五彩金裝 曰 恁麽則頂禮去也 師曰 天台楖栗

 

월주(越州) 보엄(寶嚴) 숙지선사(叔芝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토신목골(土身木骨)이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오채(五彩; 오색의 문채)에 금으로 장식했다(金裝).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정례(頂禮)하겠습니다. 사왈 천태의 즐률(楖栗)이다.

 

蘄州五祖山秀禪師

僧問 無法可說 是名說法 旣是無法可說 又將何說 師曰 霜寒地凍 曰 空生不解巖中坐 惹得天花動地來 師曰 日出冰消 僧擬議 師曰 何不進語 僧又無語 師曰 車不橫推 理無曲斷

車不橫推 理無曲斷; 車子不能橫著推 道理不能歪曲地評定 喩指做事要按照事物的規律進行 不能違背規律

 

기주(蘄州) 오조산(五祖山) 수선사(秀禪師)

승문 법을 가히 설함 없음이 이 이름이 설법이다. 이미 이, 법을 가히 설함이 없거늘 또 무엇을 가지고 설합니까. 사왈 서리는 차갑고 땅은 얼었다. 가로되 공생(空生; 수보리)은 암중(巖中)에 앉은 줄도 알지 못하거늘 천화(天花)가 땅을 진동(震動)하여 몸을 야득(惹得; 惹起하다)했습니다. 사왈 해가 나오면 얼음이 녹는다. 중이 의의(擬議)하자 사왈 왜 말을 진행하지 않느냐. 중이 또 말이 없자 사왈 수레는 가로 밀지 못하고 도리는 굽게 단정(斷定)하지 못한다(車不橫推 理無曲斷).

車不橫推 理無曲斷; 수레는 능히 가로로 밀지 못하고 도리는 능히 왜곡(歪曲)히 평정(評定)하지 못함. 일을 지으면서 사물의 규율을 살펴서 진행함을 요하고 능히 규율을 위배하지 않음을 비유로 가리킴.

 

襄州白馬辯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水來河漲 曰 如何是法 師曰 風來樹動

 

양주(襄州) 백마변(白馬辯) 선사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물이 오면 내가 불어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바람이 오면 나무가 움직인다.

 

隨州水南智昱禪師

上堂 欲識解脫道 鷄鳴天已曉 趙州庭前栢 打落靑州棗 咄

 

수주(隨州) 수남(水南) 지욱선사(智昱禪師)

상당(上堂) 해탈의 도를 알고자 한다면/ 닭이 울어 하늘이 이미 밝았다/ 조주의 뜰 앞의 잣나무에/ 청주의 대추가 떨어진다(打落). ().

 

福昌善禪師法嗣

安吉州上方齊岳禪師

僧問 如何是菩提 師曰 甎頭瓦子 曰 意旨如何 師曰 苦 上堂 旋收黃葉燒靑煙 竹榻和衣半夜眠 粥後放參三下鼓 孰能更話祖師禪 便下座

 

안길주(安吉州) 상방(上方) 제악선사(齊岳禪師)

승문 무엇이 이 보리(菩提)입니까. 사왈 전두(甎頭; 벽돌)와 와사(瓦子; 기와).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괴롭다(). 상당(上堂) 지금 바로() 황엽을 거두어 청연(靑煙)을 태우고/ 죽탑(竹榻)에 옷을 껴입고(和衣) 반야(半夜)에 잠든다/ 죽 먹은 후 방참(放參)의 세 번의 북()이여/ 누가 능히 다시 조사선을 얘기하는가. 바로 하좌했다.

 

明州育王常坦禪師

僧問 如何是有中有 師曰 金河峯上 曰 如何是無中無 師曰 般若堂前 上堂 千花競發 百鳥啼春 是向上句 諸佛出世 知識興慈 是向下句 作麽生是不涉二途句 若識得 頂門上出氣 若識不得 土牛耕石田 擊禪牀 下座

 

명주(明州) 육왕(育王) 상탄선사(常坦禪師)

승문 무엇이 이 유() 중의 유()입니까. 사왈 금하봉(金河峯) 위다. 가로되 무엇이 이 무() 중의 무()입니까. 사왈 반야당(般若堂) 앞이다. 상당(上堂) 천화(千花)가 다투어 피고 백조(百鳥)가 봄을 욺은 이 향상구(向上句). 제불이 출세하고 지식이 흥자(興慈)함은 이 향하구(向下句). 무엇이(作麽生) 이 이도(二途)에 건너지 않는 구인가. 만약 식득(識得)하면 정문상(頂門上)에 출기(出氣)하려니와 만약 앎()을 얻지 못한다면 토우(土牛)가 석전(石田)을 간다().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潤州金山瑞新禪師

僧問 吾有大患 爲吾有身 父母未生 未審此身在甚麽處 師曰 曠大劫來無處所 若論生滅盡成非 曰 恁麽則周徧十方心 不在一切處 師曰 泥裏撼樁 上堂 世間所貴者 和氏之璧隋侯之珠 金山喚作驢屎馬糞 出世間所貴者 眞如解脫菩提涅槃 金山喚作沸碗鳴 且道恁麽說話 落在甚麽處 故不是取舍心重 信邪倒見 諸人要知麽 猛虎不顧几上肉 洪爐豈鑄囊中錐

和氏; 又作卞和 春秋時楚國人 是和氏璧的發現者

隋侯之珠; 隋 國名 亦作隨 周代諸侯國名 地在今湖北省隨州市一帶 初南食貽元十八曰 搜神記 隋侯行 見有大蛇傷者 救而活之 其後蛇銜珠以報 淮南子所謂隋侯之珠者是也

㞘沸盌鳴; 猶胡言亂語 卑下他人之語

 

윤주(潤州) 금산(金山) 서신선사(瑞新禪師)

승문 나에게 대환(大患)이 있으니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미생(未生)이면 미심하오니 이 몸이 어느 곳에 있었습니까. 사왈 광대겁래(曠大劫來)로 처소가 없나니 만약 생멸을 논한다면 모두 그름을 이룬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시방에 주편(周徧)한 마음이 일체처에 있지 않습니다. 사왈 진흙 속에서 말뚝을 흔드는구나. 상당 세간에서 귀하게 여기는 바의 것은 화씨(和氏)의 벽()과 수후의 주(隋侯之珠)이지만 금산(金山)은 여시마분(驢屎馬糞)이라고 불러 짓는다. 출세간에서 귀하게 여기는 바의 것은 진여ㆍ해탈ㆍ보리ㆍ열반이지만 금산은 항문(肛門; ; 저본에 𡱰으로 지었음)으로 사발을 끓여 울림이라고((𡱰沸碗鳴) 불러 짓는다. 차도(且道)하라, 이러한 설화가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고로 이, 취사심(取舍心)이 무겁고 신사(信邪)하는 도견(倒見)이 아니겠는가. 제인이 알고자 하느냐, 맹호는 궤상(几上)의 고기를 돌아보지 않거늘 홍로(洪爐)가 어찌 낭중(囊中)의 송곳을 주조(鑄造)하겠는가.

和氏; 또 변화(卞和)로 지음. 춘추 시 초국(楚國) 사람이니 이는 화씨벽(和氏璧)을 발현(發現; 찾아냄)한 자임.

隋侯之珠; ()는 나라 이름이니 또한 수()로 지음. 주대(周代) 제후국의 이름이니 땅이 지금의 호북성 수주시(隨州市) 일대에 있음. 초남식이원18(初南食貽元十八)에 가로되 수신기(搜神記) 수후(隋侯)가 가다가 다친 큰 뱀이 있음을 보았고 구제하여 그것을 살렸다. 그 후에 뱀이 구슬을 물어다 보답했다. 회남자에서 이른 바 수후지주(隋侯之珠)란 게 이것이다.

㞘沸盌鳴; 호언난어(胡言亂語; 혼란한 언어)와 같음. 타인의 말을 비하함임.

 

乾明信禪師法嗣

澧州藥山彝肅禪師

僧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曰 大樹大皮裹 曰 出世後如何 師曰 小樹小皮纏 問 如何是不動尊 師曰 四王擡不起

 

예주(澧州) 약산(藥山) 이숙선사(彝肅禪師)

승문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대수(大樹)는 대피(大皮)가 싼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소수(小樹)는 소피(小皮)가 휘감는다(). 묻되 무엇이 이 부동존(不動尊)입니까. 사왈 사왕(四王; 사천왕)이 들어 일으키지 못한다.

 

智門祚禪師法嗣

明州雪竇重顯禪師

遂寧府李氏子 依普安院仁銑上人出家 受具之後 橫經講席 究理窮玄 詰問鋒馳 機辯無敵 咸知法器 僉指南遊 首造智門 卽伸問曰 不起一念 云何有過 門召師近前 師纔近前 門以拂子驀口打 師擬開口 門又打 師豁然開悟 出住翠峯 後遷雪竇 開堂日 於法座前顧視大衆曰 若論本分相見 不必高陞法座 遂以手畫一畫曰 諸人隨山僧手看 無量諸佛國土一時現前 各各子細觀瞻 其或涯際未知 不免拖泥帶水 便陞座 上首白椎罷 有僧方出 師約住曰 如來正法眼藏 委在今日 放行則瓦礫生光 把住則眞金失色 權柄在手 殺活臨時 其有作者 共相證據 僧出問 遠離翠峰祖席 已臨雪竇道場 未審是一是二 師曰 馬無千里謾追風 曰 恁麽則雲散家家月 師曰 龍頭蛇尾漢 問 德山臨濟棒喝已彰 和尙如何爲人 師曰 放過一著 僧擬議 師便喝 僧曰 未審祇恁麽 別有在 師曰 射虎不眞 徒勞沒羽

遂寧府; 北宋政和五年(1115) 升遂州爲遂寧府 治小溪(遂寧市區) 南宋理宗寶祐六年(1258) 改遂寧府爲遂寧都督府 元世祖至元十九年(1282) 改遂寧都督府爲遂寧州 [百度百科]

橫經; 一橫陳經籍 指受業或讀書 二橫穿

 

명주(明州) 설두(雪竇) 중현선사(重顯禪師)

수녕부(遂寧府)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보안원(普安院) 인선(仁銑) 상인(上人)에게 의지해 출가했다. 수구(受具)한 후에 강석(講席)을 횡경(橫經)하며 구리구현(究理窮玄)하면서 힐문(詰問)이 봉치(鋒馳)했고 기변(機辯)이 무적(無敵)이었다. () 법기(法器)인 줄 알았고 모두() 남유(南遊)를 지시했다. 처음() 지문(智門)으로 나아가 곧 신문(伸問)해 가로되 일념(一念)도 일으키지 않거늘 어찌하여 허물이 있습니까. 지문이 스님을 부르며 근전(近前)하라 했다. 스님이 겨우 근전하자 지문이 불자로써 입에다(驀口) 때렸다. 스님이 개구(開口)하려고 하자 지문이 또 때렸다. 스님이 활연(豁然)히 개오(開悟)했다. 출세해 취봉(翠峯)에 주()하다가 후에 설두(雪竇)로 옮겼다. 개당일(開堂日) 법좌 앞에서 대중을 돌아보며 가로되 만약 본분으로 상견함을 논하자면 법좌에 높이 오름이 필요하지 않다. 드디어 손으로써 그어 한 번 긋고 가로되 제인(諸人)은 산승의 손을 따라 보아라. 무량한 제불 국토가 일시에 현전(現前)했으니 각각 자세히 관첨(觀瞻)하라. 그 혹 애제(涯際)를 알지 못한다면 타니대수(拖泥帶水)를 면하지 못한다. 바로 승좌(陞座)했다. 상수(上首)가 백추(白椎)하여 마치자() 어떤 중이 금방 나왔다. 스님이 약주(約住)하고 가로되 여래의 정법안장이 금일에 맡겨져 있나니 방행(放行)하면 곧 와력(瓦礫)이 빛을 내고 파주(把住)하면 곧 진금(眞金)이 색을 잃는다. 권병(權柄)이 재수(在手)하고 살활이 임시(臨時)니 그, 작자가 있다면 공상(共相) 증거(證據)하라. 중이 나와 묻되 멀리 취봉(翠峰)의 조석(祖席)을 떠나 이미 설두 도량에 임하셨거니와 미심하오니 이 하나입니까 이 둘입니까. 사왈 말은 천 리에 추풍(追風; 추풍마)을 속임이 없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구름이 흩어져 집집마다 달입니다. 사왈 용두사미한(龍頭蛇尾漢)이로구나. 묻되 덕산과 임제는 방할(棒喝)을 이미 나타냈거니와() 화상은 어떻게 위인(爲人)합니까. 사왈 일착(一著)을 방과(放過)했다.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할했다. 승왈 미심하오니 다만 이러합니까. 다른 게 있습니까. 사왈 범을 쏘아 진짜가 아니면 도로(徒勞) 화살깃만 잠긴다(沒羽).

遂寧府; 북송 정화 5(1115) 수주를 승격해 수녕부로 삼았으며 치소(治所)는 소계(수녕시구). 남송 이종 보우 6(1258) 수녕부를 고쳐 수녕도독부로 삼았음. 원 세조 지원 19(1282) 수녕도독부를 고쳐 수녕주로 삼았음 [백도백과].

橫經; 1. 경적(經籍)을 횡진(橫陳; 가로로 陳設). 수업 혹 독서를 가리킴. 2. 횡천(橫穿).

 

問 吹大法螺 擊大法鼓 朝宰臨筵 如何卽是 師曰 淸風來未休 曰 恁麽則得遇於師也 師曰 一言已出 駟馬難追 僧禮拜 師曰 放過一著 乃普觀大衆曰 人天普集 合發明箇甚麽事 焉可互分賓主 馳騁問答 便當宗乘去 廣大門風 威德自在 輝騰今古 把定乾坤 千聖祇言自知 五乘莫能建立 所以聲前悟旨 猶迷顧鑒之端 言下知宗 尙昧識情之表 諸人要知眞實相爲麽 但以上無攀仰 下絕己躬 自然常光現前 箇箇壁立千仞 還辯明得也無 未辯辯取 未明明取 旣辯明得 能截生死流 同據佛祖位 妙圓超悟 正在此時 堪報不報之恩 以助無爲之化

朝宰; 指朝廷官員

 

묻되 대법라(大法螺)를 불고 대법고(大法鼓)를 치고 조재(朝宰)가 임연(臨筵; 법석에 임함)했으니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청풍이 와서 쉬지 않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을 득우(得遇)했습니다. 사왈 일언(一言)이 이미 나갔으니 사마(駟馬)로도 쫓기 어렵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일착(一著)을 방과(放過)했다. 이에 대중을 널리 보면서 가로되 인천(人天)이 보집(普集)했으니 합당히 저() 무슨 일을 발명(發明)해야 하는가. 어찌() 가히 빈주(賓主)를 서로 나누며(互分) 문답을 치빙(馳騁)해야 바로 종승(宗乘)에 당한다 하겠는가. 광대한 문풍(門風)이 위덕(威德)이 자재하고 금고(今古)를 휘등(輝騰)하고 건곤을 파정(把定)하니 천성(千聖)이 다만 말하되 자지(自知)라 하고 5()이 능히 건립하지 못한다. 소이(所以)로 성전(聲前)에 오지(悟旨)하더라도 오히려() 고감(顧鑒)의 단서(端緖; )를 미()하고 언하에 지종(知宗)하더라도 오히려() 식정(識情)의 겉()을 매()한다. 제인(諸人)이 진실로 상위(相爲)함을 알고자 하느냐. 단지 위로는 반앙(攀仰)함이 없고 아래론 기궁(己躬)이 끊어짐을 써야() 자연히 상광(常光)이 현전(現前)하고 개개가 벽립천인(壁立千仞)일 것이다. 도리어 변명(辯明)함을 얻느냐 또는 아니냐. ()하지 못했거든 변취(辯取)하고 명()하지 못했거든 명취(明取)하라. 이미 변명함을 얻었다면 능히 생사류(生死流)를 끊고() 불조위(佛祖位)에 함께 기대어 묘원(妙圓)이 초오(超悟)하리니 바로() 차시(此時)에 있다. 가히() 갚지 못한 은혜를 갚고 무위(無爲)의 교화에 일조(一助; )하리라.

朝宰; 조정의 관원을 가리킴.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祥雲五色 曰 學人不會 師曰 頭上漫漫 問 達磨未來時如何 師曰 猿啼古木 曰 來後如何 師曰 鶴唳靑霄 曰 卽今事作麽生 師曰 一不成 二不是 問 和尙未見智門時如何 師曰 爾鼻孔在我手裏 曰 見後如何 師曰 穿過髑髏 有僧出 禮拜起曰 請師答話 師便棒 僧曰 豈無方便 師曰 罪不重科 復有一僧出 禮拜起曰 請師答話 師曰 兩重公案 曰 請師不答話 師亦棒 問 古人道 北斗裏藏身 意旨如何 師曰 千聞不如一見 曰 此話大行 師曰 老鼠銜鐵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상운(祥雲)이 오색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두상에 만만(漫漫)하다. 묻되 달마가 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원숭이가 고목(古木)에 운다(). 가로되 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학이 청소(靑霄)에 운다(). 가로되 즉금사(卽今事)는 어떻습니까(作麽生). 사왈 하나는 이루지 못하고 둘은 이것이 아니다. 묻되 화상이 지문(智門)을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너의 콧구멍이 나의 손안에 있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촉루(髑髏)를 천과(穿過)했다. 어떤 중이 나와 예배하고 일어나서 가로되 스님의 답화(答話)를 청합니다. 스님이 바로 방()했다. 승왈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사왈 죄는 중복하여 판결하지 않는다(罪不重科). 다시 1()이 있어 나와 예배하고 일어나서 가로되 스님의 답화(答話)를 청합니다. 사왈 양중공안(兩重公案)이다. 가로되 스님의 답화하지 않음을 청합니다. 스님이 또한 방()했다. 묻되 고인이 말하되 북두 속에 몸을 감춘다.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천문(千聞)이 일견(一見)만 같지 못하다. 가로되 차화(此話)가 대행(大行)할 것입니다. 사왈 늙은 쥐가 철()을 물었다.

 

問 古人道 皎皎地絕一絲頭 祇如山河大地 又且如何 師曰 面赤不如語直 曰 學人未曉 師曰 徧問諸方 問 如何是學人自己 師曰 乘槎斫額 曰 莫祇這便是 師曰 浪死虛生 問 如何是緣生義 師曰 金剛鑄鐵券 曰 學人不會 師曰 閙市裏牌 曰 恁麽則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師曰 列下 問 四十九年說不盡底 請師說 師曰 爭之不足 曰 謝師答話 師曰 鐵棒自看 問 如何是把定乾坤眼 師曰 拈却鼻孔 曰 學人不會 師曰 一喜一悲 僧擬議 師曰 苦

浪死虛生; 糊塗而死 虛度人生 亦作虛生浪死

 

묻되 고인이 말하되 교교지(皎皎地)에 일사두(一絲頭; 는 조사)가 끊어졌다. 지여(祇如) 산하대지는 우차(又且) 어떻습니까. 사왈 얼굴 붉힘이 말 정직함만 같지 못하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두루 제방에 물어라.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승사(乘槎; 떼를 타다)하고 작액(斫額)한다. 가로되 다만() 이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낭사허생(浪死虛生)하는구나. 묻되 무엇이 이 연생(緣生)의 뜻입니까. 사왈 금강으로 철권(鐵券)을 주조(鑄造)했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요시(閙市) 속의 비().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가서 물이 다한 곳에 이르러 앉아 구름이 일어남을 볼 때입니다. 사왈 열하(列下). 묻되 사십구 년 동안 설해 다하지 못한 것을 청컨대 스님이 설하십시오. 사왈 다투면 부족하다. 가로되 스님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사왈 철방(鐵棒)을 스스로 보아라. 묻되 무엇이 이 건곤을 파정(把定)하는 눈입니까. 사왈 콧구멍을 집어 물리쳐라(拈却).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일희일비(一喜一悲). 중이 의의(擬議)하자 사왈 괴롭다().

浪死虛生; 호도(糊塗; 풀을 바른다는 뜻으로 性情이 흐리터분함)하면서 죽음이니 헛되게 인생을 그저 보냄임. 또 허생랑사(虛生浪死)로 지음.

 

問 如何是脫珍御服 著弊垢衣 師曰 垂手不垂手 曰 乞師方便 師曰 左眼挑筋 右眼抉肉 問 龍門爭進擧 那箇是登科 師曰 重遭點額 曰 學人不會 師曰 退水藏鱗 問 寂寂忘言 誰是得者 師曰 卸帽穿雲去 曰 如何領會 師曰 披簑帶雨歸 曰 三十年後 此話大行 師曰 一場酸澁 問 坐斷毗盧底人 師還接否 師曰 殷勤送別瀟湘岸 曰 恁麽則學人罪過也 師曰 天寬地窄太愁人 僧禮拜 師曰 苦屈之詞 不妨難吐 問 生死到來 如何回避 師曰 定花板上 曰 莫便是他安身立命處也無 師曰 符到奉行

 

묻되 무엇이 이 진어복(珍御服; 진기한 御服)을 벗고 폐구의(弊垢衣)를 입음입니까. 사왈 수수(垂手)했으나 수수(垂手)하지 않았다. 가로되 스님의 방편을 구걸합니다. 사왈 좌안(左眼)은 근육을 돋우고 우안(右眼)은 살갗을 긁어낸다(). 묻되 용문(龍門)에 다투어 진거(進擧; 과거에 나아감)하거니와 어느 것이 이 등과(登科)합니까. 사왈 거듭 점액(點額)을 만났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물에서 물러나 비늘을 숨긴다(退水藏鱗). 묻되 적적(寂寂)히 망언(忘言)했는데 누가 이 득자(得者)입니까. 사왈 어모(卸帽)가 구름을 뚫고 갔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도롱이를 입고 비를 띠고 돌아간다. 가로되 30년 후 차화(此話)가 대행(大行)할 것입니다. 사왈 한바탕 산삽(酸澁; 시고 떫음)하다. 묻되 비로(毗盧)를 좌단(坐斷)한 사람을 스님이 도리어 접인하겠습니까. 사왈 은근(殷勤)히 소상안(瀟湘岸)에서 송별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의 죄과(罪過)입니다. 사왈 하늘이 넓고 땅이 좁아 사람을 너무 수심케 한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고굴지사(苦屈之詞; 悲嘆之詞)를 토하기 어려움에 방애되지 않는다. 묻되 생사가 도래하면 어떻게 희피합니까. 사왈 정화판상(定花板上)이다. 가로되 바로 이것이 그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가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부()가 이르렀으니 봉행하라.

 

上堂 僧問 如何是吹毛劒 師曰 苦 曰 還許學人用也無 師噓一噓 乃曰 大衆前共相酬唱 也須是箇漢始得 若也未有奔流度刃底眼 不勞拈出 所以道 如大火聚 近著卽燎却面門 亦如按太阿寶劒 衝前卽喪身失命 乃曰 太阿橫按祖堂寒 千里應須息萬端 莫待冷光輕閃爍 復云 看看 便下座 上堂 僧問 如何是維摩一默 師曰 寒山訪拾得 曰 恁麽則入不二之門 師噓一噓 復曰 維摩大士去何從 千古令人望莫窮 不二法門休更問 夜來明月上孤峯

酬唱; 指機語應對 亦作詶唱 唱酬

祖堂; 禪院中安放供奉祖師(菩提達摩等)像的殿堂

 

상당(上堂) 승문 무엇이 이 취모검입니까. 사왈 괴롭다(). 가로되 도리어 학인이 씀을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허()하며 한 번 허()했다. 이에 가로되 대중 앞에서 함께 서로 수창(酬唱)하려면 또한 모름지기 시개한(是箇漢)이라야 비로소 옳다. 만약에 분류(奔流)에 도인(度刃)하는 눈이 있지 않다면 노고롭게 염출(拈出)하지 말아라. 소이로 말하되 대화취(大火聚)와 같아서 가까이하면 곧 면문(面門; 面部)을 태워버리며(燎却) 또한 태아보검(太阿寶劒)을 어루만짐과 같아서 앞으로 향하면() 곧 상신실명(喪身失命)한다. 이에 가로되 태아(太阿)를 횡안(橫按)하는 조당(祖堂)이 차갑나니 천 리에 응당 꼭 만단(萬端)을 쉬고 냉광(冷光)이 가볍게 섬삭(閃爍)함을 기다리지 말아라. 다시 이르되 보아라, 보아라. 바로 하좌했다. 상당(上堂) 승문 무엇이 이 유마(維摩)의 일묵(一默)입니까. 사왈 한산(寒山)이 습득을 방문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불이지문에 들었습니다(入不二之門). 스님이 허()하며 한 번 허()했다. 다시 가로되 유마대사(維摩大士)가 가서 어디로 나아갔는가(去何從)/ 천고(千古)에 사람으로 하여금 바라보게 해도 궁구하지 못하네/ 불이법문을 다시 물음을 그칠지니/ 야래(夜來)에 명월이 고봉(孤峯)에 올랐다.

酬唱; 기어(機語)의 응대를 가리킴. 또 수창(詶唱)ㆍ창수(唱酬)로 지음.

祖堂; 선원 중 조사(보리달마 등) ()을 안방(安放)하고 공봉(供奉)하는 전당(殿堂).

 

上堂 春山疊亂靑 春水漾虛碧 寥寥天地間 獨立望何極 便下座 却顧謂侍者曰 適來有人看方丈麽 者曰 有 師曰 作賊人心虛 上堂 十方無壁落 四面亦無門 古人向甚麽處見客 或若道得接手句 許你天上天下 上堂 田地穩密底 佛祖不敢近 爲甚麽擡脚不起 神通游戲底 鬼神不能測 爲甚麽下脚不得 直饒十字縱橫 朝打三千 暮打八百

接手; 接引手段

穩密; 安穩而周密

 

상당(上堂) 춘산(春山)이 첩첩이 어지러이 푸르고/ 춘수(春水)는 허공에 출렁이며 푸르나니/ 요료(寥寥)한 천지 사이에/ 홀로 서서 바라보매 어찌 다함 있으랴. 바로 하좌했다. 도리어 시자를 돌아보며 일러 가로되 아까 방장을 본 사람이 있느냐. 시자가 가로되 있습니다. 사왈 도적이 되면 사람의 마음이 공허하다. 상당(上堂) 시방에 벽락(壁落)이 없고 사면에 또한 문이 없거늘 고인이 어느 곳을 향해 객을 보았느냐. 혹약(或若) 말하되 접수구(接手)를 얻었다 하면 너의 천상천하를 허락하겠다. 상당(上堂) 전지(田地)가 온밀(穩密)한 이는 불조도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거늘 무엇 때문에 발을 들어() 일으키지 못하느냐. 신통으로 유희(游戲)하는 이는 귀신도 능히 헤아리지 못하거늘 무엇 때문에 발을 내림을 얻지 못하느냐. 직요(直饒) 십자(十字)로 종횡하더라도 아침에 3천을 때리고 저녁에 8백을 때린다.

接手; 접인하는 수단.

穩密; 안온(安穩)하면서 주밀(周密).

 

上堂 大衆這一片田地 分付來多時也 爾諸人 四至界畔猶未識在 若要中心樹子 我也不惜 問 如何是諸佛本源 師曰 千峯寒色 曰 未委向上更有也無 師曰 雨滴巖花 上堂 僧問 雪覆蘆花時如何 師曰 點 曰 恁麽則爲祥爲瑞去也 師曰 兩重公案 乃曰 雪覆蘆花欲暮天 謝家人不在漁船 白牛放却無尋處 空把山童贈鐵鞭 師一日遊山 四顧周覧 謂侍者曰 何日復來於此 侍者哀乞遺偈 師曰 平生唯患語之多矣 翌日 出杖屨衣盂散及徒衆 乃曰 七月七日復相見耳 至期盥沐攝衣 北首而逝 塔全身於寺之西塢 賜明覺大師

四至界畔; 田畓或宅地的四方境界

謝家人; 原指玄沙師備 轉指漁夫 禪宗頌古聯珠通集三十一 玄沙因僧問 如何是親切底事 師曰 我是謝三郞 雪竇顯頌 本是釣魚船上客 偶除鬚髮著袈裟 祖佛位中留不住 夜來依舊宿蘆花

 

상당(上堂) 대중이여, 이 일편전지(一片田地)를 분부(分付)하여 온 지 많은 시일이건만 너희 제인이 사지계반(四至界畔)을 오히려 알지 못하여 있다. 만약 중심수자(中心樹子)를 요한다면 내가 또한 아끼지 않겠다.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본원(本源)입니까. 사왈 천봉(千峯)이 한색(寒色)이다. 가로되 알지() 못하오니 향상(向上)에 다시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비가 암화(巖花)에 방울져 떨어진다(). 상당(上堂) 승문 눈이 갈대꽃(蘆花)을 덮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점 찍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상()이 되고 서()가 될 것입니다. 사왈 양중공안(兩重公案)이다. 이에 가로되 눈이 갈대꽃을 덮은 저무려는 하늘에/ 사가인(謝家人)이 어선에 있지 않네/ 백우(白牛)를 놓쳐버려 찾을 곳이 없는데/ 공연히 산동(山童)이 준 철편(鐵鞭)을 잡았다. 스님이 어느 날 유산(遊山)하여 사방을 돌아보며 두루 관람했다(四顧周覧). 시자에게 일러 가로되 어느 날에나 다시 여기에 오겠는가. 시자가 유게(遺偈)를 애걸(哀乞)했다. 사왈 평생 오직 말이 많은 것을 우환으로 여겼다. 익일(翌日) 주장자ㆍ신발ㆍ옷ㆍ발우를 내어 분산(分散; )해 도중(徒衆)에게 미치게 하고 이에 가로되 77일에 다시 상견할 뿐이다. 기일(期日; )에 이르자 관목(盥沐; 목욕)하고 섭의(攝衣)하고는 머리를 북으로 하여 서거했다(北首而逝). 전신(全身)으로 사원의 서쪽 언덕()에 탑을 세웠다. 사시(賜諡; )가 명각대사(明覺大師).

四至界畔; 전답(田畓)이나 혹 택지의 사방의 경계.

謝家人; 원래 현사사비를 가리키나 전()하여 어부를 가리킴. 선종송고연주통집31. 현사가,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친절한 일입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가로되 나는 이 사삼랑(謝三郞)이다. 설두현이 송하되 본래 이 고기 낚는 배 위의 객이거늘/ 우연히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구나/ 조불의 지위 중에 정류해 머물지 않고/ 밤에 의구히 갈대꽃 속에 자노라.

 

襄州延慶山子榮禪師

僧問 如何是隨色摩尼珠 師曰 三箇童兒弄花毬 曰 恁麽則終朝盡日也 師曰 頭白齒落 上堂 僧問 靈光隱隱 月照寒牕 善法堂前 請師擧唱 師曰 聽 曰 此猶是這邊事 那邊事作麽生 師曰 脚下毛生 問 如何是佛 師曰 橫身彰十號 入槨示雙趺 曰 將何供養 師曰 合掌當胷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穿耳胡僧不著鞋

花毬; 有花紋的毬子

終朝; 一早晨 二整天

 

양주(襄州) 연경산(延慶山) 자영선사(子榮禪師)

승문 무엇이 이 수색(隨色)하는 마니주입니까. 사왈 세 개의 동아(童兒)가 화구(花毬)를 희롱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종조진일(終朝盡日; 온종일)입니다. 사왈 머리는 희고 이가 떨어졌다. 상당(上堂) 승문 영광(靈光)이 은은(隱隱)하고 달이 한창(寒牕)을 비추나니 선법당(善法堂) 앞에서 스님의 거창(擧唱)을 청합니다. 사왈 들어라(). 가로되 이것은 오히려 저변사(這邊事)입니다. 나변사(那邊事)는 무엇입니까(作麽生). 사왈 발 아래 털이 생겨났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횡신(橫身)하여 십호(十號)를 나타내고() 입곽(入槨)하여 쌍부(雙趺)를 보였다. 가로되 무엇을 가져 공양합니까. 사왈 합장하여 당흉(當胷)한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귀 뚫은 호승(胡僧)이 신을 신지 않았다(不著鞋).

花毬; 화문(花紋)이 있는 구자(毬子).

終朝; 1. 이른 새벽. 2. 정천(整天; 온종일).

 

洪州百丈智映寶月禪師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窣堵那吒掌上擎 曰 恁麽則北塔的子 韶石兒孫也 師曰 斫額望新羅

 

홍주(洪州) 백장(百丈) 지영(智映) 보월선사(寶月禪師)

승문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 솔도(窣堵; 窣堵波니 탑)를 나타(那吒)가 장상(掌上)에 받든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북탑(北塔; 光祚)의 적자(的子)며 소석(韶石; 雲門文偃)의 아손입니다. 사왈 작액(斫額)하고 신라를 바라본다.

 

韶州南華寶緣慈濟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靑山綠水 曰 未來時還有意也無 師曰 高者高 低者低

 

소주(韶州) 남화(南華) 보연(寶緣) 자제선사(慈濟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청산녹수(靑山綠水). 가로되 미래시(未來時)에 도리어 뜻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높은 자는 높고 낮은 자는 낮다.

 

黃州護國院壽禪師

僧問 如何是一路涅槃門 師曰 寒松靑有千年色 一徑風飄四季香 問 如何是靈山一會 師曰 如來纔一顧 迦葉便低眉

황주(黃州) 호국원(護國院) 수선사(壽禪師)

승문 무엇이 이 일로(一路)의 열반문(涅槃門)입니까. 사왈 한송(寒松)의 푸름은 천년색(千年色)이 있고 일경(一徑)의 바람은 사계향(四季香)을 나부낀다. 묻되 무엇이 이 영산일회(靈山一會)입니까. 사왈 여래가 겨우 한 번 돌아보매 가섭이 바로 눈썹이 처졌다().

 

瑞州九峯勤禪師

僧問 方便門中 請師垂示 師曰 佛不奪衆生願 曰 恁麽則謝師方便 師曰 却須喫棒 上堂 口羅舌沸 千喚萬喚 露柱因甚麽不回頭 良久曰 美食不中飽人喫 便下座

口羅舌沸; 形容費盡口舌

 

서주(瑞州) 구봉근(九峯勤) 선사

승문 방편문(方便門) 가운데 스님의 수시(垂示)를 청합니다. 사왈 부처는 중생의 소원을 뺏지 않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방편에 감사합니다. 사왈 도리어 꼭 끽방(喫棒)해야 한다. 상당(上堂) 구라설비(口羅舌沸)하며 천환만환(千喚萬喚)하거늘 노주(露柱)는 무엇으로 인해 머리를 돌리지 않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미식(美食)이라도 배부른 사람이 먹기엔 맞지 않다. 바로 하좌했다.

口羅舌沸; 구설(口舌)을 소비해 다함을 형용.

 

潭州雲葢繼鵬禪師

初謁雙泉雅禪師 泉令充侍者 示以芭蕉拄杖話 經久無省發 一日泉向火次 師侍立 泉忽問 拄杖子話試擧來 與子商量 師擬擧 泉拈火筯便𢷾 師豁然大悟 住後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舌頭無骨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湯甁火裏煨 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曰 天 曰 出世後如何 師曰 地 上堂 高不在絕頂 富不在福嚴 樂不在天堂 苦不在地獄 良久曰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福嚴; 百福嚴飾

 

담주(潭州) 운개(雲葢) 지붕선사(繼鵬禪師)

처음 쌍천아(雙泉雅) 선사를 참알했다. 쌍천이 시자로 충당하게 하고 파초주장화(芭蕉拄杖話)를 보였는데 오래 경과했으나 성발(省發; 領會)이 없었다. 어느 날 쌍천이 향화(向火)하던 차에 스님이 시립(侍立)했는데 쌍천이 홀연히 묻되 주장자화(拄杖子話)를 시험 삼아 들어라(擧來). 자네와 상량(商量)하겠다. 스님이 들려고 하자 쌍천이 화저(火筯)를 집어 바로 흔들었다. 스님이 활연(豁然)히 대오했다. 주후(住後) 승문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설두(舌頭; )는 뼈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탕병(湯甁)을 불 속에서 굽는다().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천()이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지(). 상당(上堂) 높음이 절정(絕頂)에 있지 않고 부()가 복엄(福嚴)에 있지 않고 낙()이 천당에 있지 않고 고()가 지옥에 있지 않다. 양구하고 가로되 서로 아는 이는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이는 능히 몇 사람인가.

福嚴; 백복(百福)으로 엄식(嚴飾).

 

鄂州黃龍海禪師

僧問 如何是黃龍家風 師曰 看 曰 忽遇客來 如何祇待 師以拄杖點之 問 如何是最初一句 師曰 掘地討天

 

악주(鄂州) 황룡해(黃龍海) 선사

승문 무엇이 이 황룡의 가풍입니까. 사왈 보아라. 가로되 홀연히 객이 옴을 만나면 어떻게 지대(祇待)합니까. 스님이 주장자로써 점 찍었다. 묻되 무엇이 이 최초의 1구입니까. 사왈 땅을 파서 하늘을 찾는다().

 

鼎州彰法澄泗禪師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多少人摸索不著 曰 忽然摸著又作麽生 師曰 堪作甚麽

 

정주(鼎州) 창법(彰法) 징사선사(澄泗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다소인(多少人)이 모색함을 얻지 못한다(摸索不著). 가로되 홀연히 모색하면 또 어떻습니까. 사왈 차마 무엇하겠는가.

 

泉州雲臺因禪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嗔拳不打笑面 曰 如何施設 師曰 天台則有 南嶽則無 問 如何是佛 師曰 月不破五 曰 意旨如何 師曰 初三十一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今日好曬麥 曰 意旨如何 師曰 問取磨頭 上堂 菩薩子 不在內 不在外 不在中間 且道落在甚麽處 良久曰 南贍部洲 北鬱單越

磨頭; 管掌磨院之僧職 負責碾磨穀麥等糧穀 又作磨主 [禪苑淸規四 象器箋職位類]

 

천주(泉州) 운대인(雲臺因) 선사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성난 주먹이 웃는 얼굴을 때리지 않는다. 가로되 어떻게 시설(施設)합니까. 사왈 천태엔 곧 있고 남악에 곧 없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월이 오를 깨뜨리지 않는다(月不破五).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초삼십일(初三十一)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금일 보리를 말리기에 좋다(好曬麥).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마두(磨頭)에게 문취(問取)하라. 상당(上堂) 보살자(菩薩子; 는 조사),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 않나니 차도(且道)하라,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남섬부주며 북울단월이다.

磨頭; 마원(磨院)을 관장하는 승직(僧職). 곡식ㆍ보리 등의 양곡의 연마(碾磨; 갈다. 은 갈 년. 맷돌 년)를 부책(負責; 책임을 짐). 또 마주(磨主)로 지음 [선원청규4. 상기전직위류].

 

福嚴雅禪師法嗣

潭州北禪智賢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匙挑不上 曰 如何是道 師曰 險路架橋 歲夜小參曰 年窮歲盡 無可與諸人分歲 老僧烹一頭露地白牛 炊黍米飯 煑野菜羹 燒榾柮火 大家喫了 唱村田樂 何故 免見倚他門戶傍他墻 剛被時人喚作郞 便下座歸方丈 至夜深 維那入方丈問訊曰 縣裏有公人到勾和尙 師曰 作甚麽 那曰 道和尙宰牛不納皮角 師遂捋下頭帽 擲在地上 那便拾去 師跳下禪牀 攔胸擒住 呌曰 賊賊 那將帽子覆師頂曰 天寒 且還和尙 師呵呵大笑 那便出去 時法昌爲侍者 師顧昌曰 這公案作麽生 昌曰 潭州紙貴 一狀領過

分歲; 除夜 謂舊年去新年來之分界

骨柮; 木柴塊 樹根疙瘩

一狀領過; 謂以一紙令狀 同一處分衆人之罪 領 受也 接受 過 助詞

 

담주(潭州) 북선(北禪) 지현선사(智賢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숟가락으로 들어 올리지 못한다(匙挑不上). 가로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험로에 다리를 가설(架設; )한다. 세야(歲夜; 除夜)의 소참(小參)에 가로되 연궁세진(年窮歲盡; 한 해를 마침)에 가히 제인과 더불어 분세(分歲)할 게 없으니 노승이 한 마리의 노지백우(露地白牛)를 삶고 서미반(黍米飯; 기장쌀로 지은 밥)을 짓고 야채국을 끓이고 골돌화(骨柮)를 태워서 대가(大家)가 먹고 나서 촌전악(村田樂)을 부르리라. 무슨 연고냐, 남의 문호에 기대고 남의 담장에 기대어 다만() 시인(時人)에게 낭()이라고 불러 지음을 입음을 면견(免見)하려 한다. 바로 하좌하여 방장으로 돌아갔다. 야심(夜深)에 이르러 유나(維那)가 방장에 들어가 문신(問訊)하고 가로되 현리(縣裏)에서 어떤 공인(公人)이 이르러 화상을 붙잡으려() 합니다. 사왈 무엇하려고(作甚麽). 유나가 가로되 말하기를 화상이 소를 잡고(宰牛) 피각(皮角)을 납입(納入; )하지 않았답니다. 스님이 드디어 두모(頭帽)를 집어 내려(捋下) 지상(地上)에 던졌다. 유나가 바로 주워 가는데 스님이 선상에서 뛰어내려 가슴을(攔胸) 금주(擒住)하고 부르짖어 가로되 도적아, 도적아. 유나가 모자(帽子)를 가지고 스님의 정수리를 덮으며 가로되 날이 추우니(天寒) 다만() 화상에게 돌려드립니다. 스님이 하하대소(呵呵大笑)했다. 유나가 바로 나갔다. 때에 법창(法昌; 倚遇)이 시자가 되었는데 스님이 법창을 돌아보며 가로되 이 공안이 어떠한가. 법창이 가로되 담주(潭州)의 종이가 비싸니 일장영과(一狀領過)하겠습니다.

分歲; 제야(除夜). 이르자면 구년은 가고 신년이 오는 분계(分界).

骨柮; 땔감 덩이. 나무뿌리 뭉치(덩이).

一狀領過; 이르자면 일지(一紙)의 영장(令狀)으로 중인의 죄를 동일하게 처분함. ()은 수()니 접수. ()는 조사.

 

南嶽衡嶽寺振禪師

山居頌曰 阿呵呵 瘦松寒竹鎻淸波 有時獨坐磐陀上 無人共唱太平歌 朝看白雲生洞口 暮觀明月照娑婆 有人問我居山事 三尺杖子攪黃河

磐陀; 磐陀石 陀 團狀物

 

남악(南嶽) 형악사(衡嶽寺) 진선사(振禪師)

산거송(山居頌)에 가로되 아하하(阿呵呵)/ 수송(瘦松)과 한죽(寒竹)이 청파(淸波)를 에워쌌다/ 어떤 때는 반타(磐陀) 위에 독좌(獨坐)하는데/ 태평가를 공창(共唱)할 사람이 없다/ 아침엔 구름이 동구(洞口)에 남을 보고()/ 저녁엔 명월이 사바(娑婆)를 비춤을 본다()/ 나에게 거산사(居山事)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석 자의 지팡이로 황하(黃河)를 휘젓는다 하리라.

磐陀; 반타석(磐陀石; 너러바위)이니 타()는 원상(團狀)의 물건.

 

開福賢禪師法嗣

日芳上座

僧問 如何是函葢乾坤句 師竪起拄杖 僧曰 如何是截斷衆流句 師橫按拄杖 僧曰 如何是隨波逐浪句 師擲下拄杖 僧曰 三句外請師道 師便起去 師贊開福眞曰 淸儀瘦兮 可瞻可仰 仰之非親 妙筆圖兮 可擬可像 像之非眞 非親非眞 秋月盈輪 有言無味兮的中的 旣往如在兮覓焉覓 當機隱顯兮絲髮誵訛 金烏卓午兮迅風霹靂

 

일방상좌(日芳上座)

승문 무엇이 이 함개건곤구(函葢乾坤句)입니까. 스님이 주장자를 세워 일으켰다. 승왈 무엇이 절단중류구(截斷衆流句)입니까. 스님이 주장자를 가로 눌렀다. 승왈 무엇이 이 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입니까. 스님이 주장자를 던져 떨어뜨렸다. 승왈 3구 외에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스님이 바로 일어나 갔다. 스님이 개복(開福)의 진(; 肖像)을 찬()해 가로되 청의(淸儀)가 수척(瘦瘠; )함이여/ 가히 첨()하고 가히 앙()하지만/ ()하면 친하지 않다/ 묘필(妙筆)로 그리나니/ 가히 의(; 본뜨다)하고 가히 상(; 形像)하지만/ ()하면 진()이 아니다/ ()하지 않고 진()이 아니니/ 추월(秋月)의 가득한 바퀴다(盈輪)/ 유언(有言)이나 무미(無味)함이여 적(; 진실) 중의 적()이며/ 이미 갔으나 있음과 같음이여 멱()한들 어찌 멱()하겠는가/ 당기(當機)하여 은현(隱顯)함이여 사발(絲髮)의 효와(誵訛)/ 금오(金烏; )가 탁오(卓午; 正午)여 신풍(迅風)이며 벽력(霹靂)이다.

 

報慈嵩禪師法嗣

郢州興陽山遜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髮白面皺 曰 如何是法 師曰 暑往寒來 問 如何是三界外事 師曰 洛陽千里餘 不得舊時書

 

영주(郢州) 흥양산(興陽山) 손선사(遜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머리카락이 희고 얼굴이 주름졌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온다. 묻되 무엇이 이 3() 밖의 일입니까. 사왈 낙양이 천 리 남짓인데 구시(舊時)의 서()를 얻지 못했다.

 

德山遠禪師法嗣

廬山開先善暹禪師

臨江軍人也 操行淸苦 徧游師席 以明悟爲志 參德山 見山上堂 顧視大衆曰 師子嚬呻 象王回顧 師忽有省 入室陳所解 山曰 子作麽生會 師回顧曰 後園驢喫草 山然之 後至雪竇 竇與語 喜其超邁 目曰海上橫行暹道者 遂命分座 四方英衲敬畏之 他日竇擧師出世金鵝 師聞 潛書二偈于壁而去 曰 不是無心繼祖燈 道慙未廁嶺南能 三更月下離巖竇 眷眷無言戀碧層 二十餘年四海間 尋師擇友未甞閑 今朝得到無心地 却被無心趂出山

眷眷; 念念不忘 依戀不舍

 

여산(廬山) 개선(開先) 선섬선사(善暹禪師)

임강군(臨江軍) 사람이다. 조행(操行)이 청고(淸苦; 淸雅하며 刻苦)했고 사석(師席)을 편유(徧游)하며 명오(明悟)로써 의지(意志)를 삼았다. 덕산을 참()했는데 보니 덕산이 상당하여 대중을 돌아보며 가로되 사자(師子)가 빈신(嚬呻)하고 상왕(象王)이 회고(回顧)한다. 스님이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입실하여 이해(理解; )한 바를 진술(陳述)하자 덕산이 가로되 자네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는가. 스님이 돌아보며 가로되 후원(後園)에 나귀가 풀을 먹습니다. 덕산이 그렇게 여겼다. 후에 설두(雪竇)에 이르렀는데 설두가 더불어 말하고는 그 초매(超邁; 超越)를 기뻐했고 명목해 가로되 해상에 횡행하는 섬도자(海上橫行暹道者)라 했다. 드디어 분좌(分座)를 명()했고 사방의 영납(英衲)이 경외(敬畏)했다. 다른 날 설두가 스님을 천거해 금아(金鵝)에서 출세하게 했는데 스님이 듣고서 몰래() 벽에 2()를 쓰고 떠났다. 가로되 이, 조등(祖燈)을 계승함에 무심한 게 아니라/ 도가 영남능(嶺南能)에 섞이지() 못함이 부끄럽다/ 삼경의 달 아래 암두(巖竇)를 떠나니/ 권권(眷眷)하며 말 없이 벽층(碧層)을 연모한다. 이십여 년 동안 사해(四海)의 사이에서/ 스승을 찾고 벗을 간택하느라 일찍이 한가하지 않았다/ 금조(今朝; 금일)에 무심한 경지에 득도(得到)했지만/ 도리어 무심으로 산에서 쫓겨남을 입었다.

眷眷; 염념이 잊지 못함. 연모에 의해 버리지 못함.

 

晩年 衆請滋甚 遂開法開先 以慰道俗之望 開堂日 上首白椎罷 師曰 千聖出來 也祇是稽首讚歎 諸代祖師提挈不起 是故始從迦葉 迄至山僧 二千餘年 月燭慧燈 星排道樹 人天普照 凡聖齊榮 且道承甚麽人恩力 老胡也祇道 明星出現時 我與大地有情同時成道 如是則彼旣丈夫 我亦爾 孰爲不可 良由諸人不肯承當 自生退屈 所以便推排一人半箇先達出來 遞相開發 也祇是與諸人作箇證明 今日人天會上 莫有久遊赤水 夙在荊山 懷袖有珍 頂門有眼 到處踐踏覺場底衲僧麽 却請爲新出世長老作箇證明 還有麽 時有僧出 師曰 象駕崢嶸謾進途 誰信螳螂能拒轍

提挈; 提攜 牽扶

螳螂能拒轍; 祖庭事苑七 螳蜋拒轍 莊子(天地) 季徹謂將閭葂曰 夫子之言於帝王之德 猶螳蜋之怒臂以當車軼 則不勝任矣 說者曰 用小擬大 故不能任 葂 音免 軼 音轍 淮南子人間訓 齊莊公出獵 有一蟲擧足將搏其輪 問其御曰 此何蟲也 對曰 此所謂螳螂者也 其爲蟲也 知進而不知卻 不量力而輕敵 莊公曰 此爲人 而必爲天下勇武矣 迴車而避之

 

만년(晩年)에 대중의 청이 자심(滋甚; 매우 심함)했고 드디어 개선(開先)에서 개법하여 도속(道俗)의 희망을 위로(慰勞)했다. 개당일(開堂日) 상수(上首)가 백추(白椎)하여 마치자 사왈 천성(千聖)이 출래(出來)함은 또한 다만 이 계수(稽首)하고 찬탄함이며 제대조사(諸代祖師)가 제설(提挈)하여 일으키지 못하는지라 이런 연고로 처음 가섭으로 좇아 산승에 이르기까지(迄至) 2천여 년토록 달은 혜등(慧燈)을 비추고() 별은 도수(道樹)를 배열(排列; )하여 인천(人天)이 보조(普照)하고 범성(凡聖)이 제영(齊榮)하다. 그래 말하라, 어떤(甚麽) 사람의 은력(恩力)을 승수(承受)했는가. 노호(老胡; 석가)도 또한 다만 말하되 명성(明星)이 출현할 때 나와 대지의 유정(有情)이 동시에 성도했다. 이와 같은 즉 그가 이미 장부인지라 나도 또한 그러하거늘 누군들 불가하겠는가. 참으로() 제인이 승당(承當)을 불긍(不肯)하고 스스로 퇴굴(退屈)을 냄으로 말미암아 소이로 바로 1인이나 반개(半箇)의 선달(先達)을 퇴배(推排; 排列)하여 출래(出來)하여 체상(遞相) 개발하여 또한 다만 이, 제인에게 저() 증명을 지어주었다. 금일 인천회상(人天會上)에 적수(赤水)에 구유(久遊)하고 일찍이() 형산(荊山)에 있었고 회수(懷袖; 懷抱)에 보배()가 있고 정문(頂門)에 눈이 있고 도처(到處)에서 각장(覺場)을 천답(踐踏)하는 납승이 있지 않느냐. 도리어 청컨대 새로 출세한 장로를 위해 저() 증명을 지어라. 도리어 있느냐, 때에 어떤 중이 나오자 사왈 상가(象駕; 코끼리가 끄는 수레)가 쟁영(崢嶸; 높고 가파른 모양)하며 거만하게 길을 전진하거늘/ 누가, 당랑(螳螂)이 능히 진로를 막음(螳螂能拒轍)을 믿겠는가.

提挈; 제휴(提攜). 견부(牽扶).

螳螂能拒轍; 조정사원7. 당랑거철(螳蜋拒轍) 장자(천지) 계철(季徹)이 장려면(將閭葂)에게 일러 가로되 부자(夫子; 여기에선 장려면을 가리킴)가 제왕의 덕을 말함은 마치 당랑(사마귀)이 노한 팔로 거철(車軼; 과 같음)을 당함과 같아서 곧 감임함을 이기지 못함이다. 설자가 가로되 소를 써서 대에 견주려고() 하는지라 고로 능히 감임하지 못함이다. ()은 음이 면이며 철()은 음이 철임. 회남자 인간훈. 제장공(齊莊公)이 사냥을 나갔는데 한 마리의 벌레가 있어 발을 들어 장차 그 바퀴를 치려고 했다. 그 어자(御者; 마부)에게 물어 가로되 이것이 무슨 벌레인가. 대답해 가로되 이것이 이른 바 당랑이란 놈입니다. 그 벌레됨이 전진만 알고 퇴각을 알지 못하며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적을 경시합니다. 장공이 가로되 이것이 사람이 되었더라면 반드시 천하의 용무(勇武: 용감한 무사)가 되었으리라. 수레를 돌려 그것을 피했다.

 

問 一棒一喝 猶是葛藤 瞬目揚眉 拖泥帶水 如何是直截根源 師曰 速 曰 恁麽則祖師正宗和尙把定 師曰 野渡無人舟自橫 問 如何是露地白牛 師曰 瞎 問 妙峯頂上卽不問 半山相見事如何 師曰 把手過江來 曰 高步出長安 師曰 脚下一句作麽生道 僧便喝 師曰 山腰裏走 問 一雨所潤 爲甚麽萬木不同 師曰 羊羹雖美 衆口難調 問 年窮歲盡時如何 師曰 依舊孟春猶寒 問 更深夜靜時如何 師曰 老鼠入燈籠 問 瞥瞋瞥喜時如何 師曰 適來菩薩面 如今夜叉頭

 

묻되 일방일할(一棒一喝)은 오히려 이 갈등이며 순목양미(瞬目揚眉; 눈을 깜작이고 눈썹을 치켜세움)는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무엇이 이 근원을 직절(直截)함입니까. 사왈 속()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조사의 정종(正宗)을 화상이 파정(把定)했습니다. 사왈 야도(野渡)에 사람이 없고 배가 스스로 가로놓였다. 묻되 무엇이 이 노지백우(露地白牛)입니까. 사왈 눈멀었는가(). 묻되 묘봉정상(妙峯頂上; 須彌頂上)은 곧 묻지 않습니다. 반산(半山)에서 상견하는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손잡고 강을 지나 온다. 가로되 고보(高步)로 장안을 나섰습니다. 사왈 각하(脚下)1구는 어떻게 말하겠는가. 중이 바로 할했다. 사왈 산요(山腰) 속으로 달리는구나. 묻되 일우(一雨)의 소윤(所潤)이거늘 무엇 때문에 만목(萬木)이 부동(不同)합니까. 사왈 양갱(羊羹; 양고기 국)이 비록 맛있지만() 중구(衆口)에 조화(調和; 調)롭기는 어렵다. 묻되 연궁세진(年窮歲盡) 시에 어떻습니까. 사왈 의구히 맹춘(孟春)이라 아직 춥다. 묻되 경(; 야간의 시간 단위)이 깊고 밤이 고요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노서(老鼠)가 등롱(燈籠)에 들어갔다. 묻되 갑자기 성내고 갑자기 기뻐할(瞥瞋瞥喜)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적래(適來; 조금 전)엔 보살면(菩薩面)이더니 여금엔 야차두(夜叉頭)로구나.

 

上堂 一若是二卽非 東西南北人不知 休話指天幷指地 靑山白雲徒爾爲 以拄杖擊香臺 下座 問 雨雪連天 爲甚麽孤峯露頂 師曰 有甚遮掩處 上堂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洛陽城古 曰 學人不會 師曰 少室山高 僧禮拜 師廼曰 佛種從緣起 遂擧拄杖曰 拄杖子是緣 且作麽生說箇起底道理 良久曰 金屑雖貴 落眼成翳 卓拄杖 下座

 

상당(上堂) ()이 만약 옳다면 이()는 곧 그르나니/ 동서남북을 사람이 알지 못한다/ 지천(指天)하고 아울러 지지(指地)하는 얘기를 그칠지니/ 청산과 백운이 도연히 그러하다. 주장자로써 향대(香臺; 香盒)를 치고 하좌했다. 묻되 눈을 내려(雨雪) 하늘에 잇닿았거늘 무엇 때문에 고봉(孤峯)이 정수리를 드러내었습니까. 사왈 무슨 차엄(遮掩)하는 곳이 있으랴. 상당(上堂)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낙양성(洛陽城)이 오래되었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소실산(少室山)이 높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이에() 가로되 불종(佛種)이 연()을 좇아 일어난다. 드디어 주장자를 들고 가로되 주장자는 이 연()이다. () 어떻게 저() 일어나는 도리를 설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예병(瞖病; )을 이룬다.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吉州禾山楚材禪智禪師

臨江軍人也 僧問 佛令祖令 諸方竝行 未審和尙如何 師曰 山僧退後 曰 恁麽則諸方不別也 師曰 伏惟伏惟 問 如何是離凡聖底句 師曰 山河安掌上 曰 恁麽則迥超今古外 師曰 展縮在當人 問 一毫未發時如何 師曰 海晏河淸 曰 發後如何 師曰 徧界無知己 問 如何是和尙說法底口 師曰 放一線道 問 抱璞投師 請師雕琢 師曰 不雕琢 曰 爲甚麽不雕琢 師曰 弄巧翻成拙

 

길주(吉州) 화산(禾山) 초재(楚材) 선지선사(禪智禪師)

임강군(臨江軍) 사람이다. 승문 불령(佛令)과 조령(祖令)을 제방에서 병행(竝行)하거니와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왈 산승은 뒤로 물러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제방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왈 복유(伏惟), 복유. 묻되 무엇이 이 범성(凡聖)을 여의는 구()입니까. 사왈 산하(山河)를 장상(掌上)에 안치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아득히 멀리() 금고(今古) 밖을 초월합니다. 사왈 전축(展縮)이 당인(當人)에게 있다. 묻되 일호(一毫)가 일어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해안하청(海晏河淸)이다. 가로되 일어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편계(徧界)에 지기(知己)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이 설법하는 입입니까. 사왈 일선도(一線道)를 놓는다. 묻되 포박(抱璞)하고 스님에게 투신하오니 스님의 조탁(雕琢)을 청합니다. 사왈 조탁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조탁하지 않습니까. 사왈 교묘를 희롱하다가 도리어() 졸렬을 이룬다.

 

秀州資聖院盛勤禪師

僧問 如何是正法眼 師曰 山靑水綠 問 四威儀中如何履踐 師曰 鷺鶿立雪 曰 恁麽則聞鐘持鉢 日上欄干 師曰 魚躍千江水 龍騰萬里雲 曰 畢竟如何 師曰 山中逢猛虎 天上見文星 上堂 多生覺悟非干衲 一點分明不在燈 拈拄杖曰 拄杖頭上祖師 燈籠脚下彌勒 須彌山腰鼓細卽不問你 作麽生是分明一點 你若道得 無邊刹境總在你眉毛上 你若道不得 作麽生過得羅刹橋 良久曰 水流千派月 山鎻一溪雲 卓拄杖 下座

文星; 一文昌星 又名文曲星 北斗七星中第六開陽星 二相傳文曲星主文才 後亦指有文才的人 此指一

腰鼓; 是一種漢族打擊樂器 漢魏時用之 大者用瓦制 小者用木制 鼓首大而腰細 故名 [百度百科]

 

수주(秀州) 자성원(資聖院) 성근선사(盛勤禪師)

승문 무엇이 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산은 푸르고 물은 초록이다. 묻되 사위의(四威儀) 중에 어떻게 이천(履踐)합니까. 사왈 노자(鷺鶿; 白鷺)가 눈에 섰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종소리를 듣고(聞鐘) 지발(持鉢)하고 해가 난간(欄干)에 오릅니다. 사왈 물고기는 천강(千江)의 물에 뛰고() 용은 만리(萬里)의 구름에 오른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산중에서 맹호를 만나고 천상(天上)에서 문성(文星)을 본다. 상당(上堂) 다생(多生)의 각오(覺悟)는 납의(衲衣; )와 상간(相干)되지 않나니 일점(一點)이 분명함은 등()에 있지 않다. 주장자를 집어 가로되 주장두상(拄杖頭上)의 조사며 등롱각하(燈籠脚下)의 미륵이다. 수미산이 요고(腰鼓)처럼 가는() 것은 곧 너에게 묻지 않거니와 무엇이 이 분명한 일점인가. 네가 만약 말함을 얻는다면 무변찰경(無邊刹境)이 모두() 너의 눈썹 위에 있으려니와 네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라찰교(羅刹橋)을 과득(過得)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물은 천파(千派)의 달을 흐르게 하고 산은 일계(一溪)의 구름을 에워쌌다.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文星; 1. 문창성(文昌星)이니 또 이름이 문곡성(文曲星)이며 북두칠성 중 제6 개양성(開陽星). 2. 서로 전하기를 문곡성(文曲星)은 문재(文才)를 주재한다 함. 후에 또한 문재가 있는 사람을 지칭했음.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腰鼓; 이것은 일종의 한족의 타격악기임. 한위(漢魏) 때 이를 썼고 큰 것은 와기를 사용해 만들고 작은 것은 나무를 사용해 만듦. 북의 머리는 크고 허리는 가는지라 고로 이름했음 [백도백과].

 

潭州鹿苑圭禪師

桂州人也 僧問 如何是道 師曰 吳頭楚尾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騎馬踏鐙 不如步行 問 如何是第一義諦 師曰 胡人讀漢書 上堂 凡有因緣 須曉其宗 若曉其宗 無是無不是 用則波騰海沸 全眞體以運行 體則鏡淨水沉 擧隨緣而會寂 且道兜率天宮 幾人行幾人坐 若向這裏辯得緇素 許你諸人東西南北 如雲似鶴 於此不明 踏破草鞋 未有了日在 參

 

담주(潭州) 녹원규(鹿苑圭) 선사

계주(桂州) 사람이다. 승문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오두초미(吳頭楚尾; 오나라의 머리와 초나라의 꼬리).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기마(騎馬)하여 답등(踏鐙; 鐙子를 밟다)함이 보행(步行)만 같지 못하다. 묻되 무엇이 이 제일의제(第一義諦)입니까. 사왈 호인(胡人)이 한서(漢書)를 읽는다. 상당(上堂) 무릇() 인연이 있으면 모름지기 그 종()을 알아야() 하나니 만약 그 종을 안다면 시()도 없고 불시(不是)도 없다. ()은 곧 파등해비(波騰海沸)하여 진체(眞體)를 온전히 운행하고 체()는 곧 경정수침(鏡淨水沉)하여 수연(隨緣)을 들어() 회적(會寂; 을 모으다)한다. 그래 말하라, 도솔천궁(兜率天宮)에서 몇 사람이 다니고 몇 사람이 앉았는가. 만약 저리(這裏)를 향해 치소(緇素)를 변득(辯得; 辨得)한다면 너희 제인이 동서남북에 구름 같고 학 같음을 허락하려니와(如雲似鶴) 여기에서 밝히지 못하면 짚신을 답파(踏破)하며 마칠 날이 있지 않으리라. ()하라.

 

靑原下十世上

洞山聰禪師法嗣

南康軍雲居曉舜禪師

瑞州人也 少年麤猛 忽悟浮幻 投師出家 乃修細行 參洞山 一日如武昌行乞 首謁劉公居士家 士高行爲時所敬 意所與奪 莫不從之 師時年少 不知其飽參 頗易之 士曰 老漢有一問 若相契卽開疏 如不契卽請還山 遂問 古鏡未磨時如何 師曰 黑似漆 士曰 磨後如何 師曰 照天照地 士長揖曰 且請上人還山 拂袖入宅 師懡㦬卽還洞山 山問其故 師具言其事 山曰 你問我 我與你道 師理前問 山曰 此去漢陽不遠 師進後語 山曰 黃鶴樓前鸚鵡洲 師於言下大悟 機鋒不可觸 住後 僧問 承師有言 不談玄不說妙 去此二途如何指示 師曰 蝦蟇趕鷂子 曰 全因此問也 師曰 老鼠弄猢猻

長揖; 拱手高擧 自上而下行禮

 

남강군(南康軍) 운거(雲居) 효순선사(曉舜禪師)

서주(瑞州) 사람이다. 소년(少年)에 추맹(麤猛)했는데 홀연히 부환(浮幻)을 깨닫고 스승에게 투신하여 출가했고 이에 세행(細行)을 닦았다. 동산(洞山)을 참()했다. 어느 날 무창(武昌)에 가서() 행걸(行乞)했는데 처음() 유공(劉公) 거사가(居士家)를 예알(禮謁; )했다. 거사의 고행(高行)은 당시에 공경하는 바가 되었고 뜻에 여탈(與奪)하는 바에 그것()을 좇지 않음이 없었다. 스님이 당시에 연소(年少)했고 그가 포참(飽參)인 줄 알지 못해 자못 쉽게 여겼다. 사왈(士曰) 노한(老漢)이 일문(一問)이 있는데 만약 상계(相契)한다면 곧 개소(開疏; 勸化文을 열다)하고 계합하지 못할 것 같으면 곧 청컨대 환산(還山)하시오. 드디어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검기가 칠과 같습니다(黑似漆). 사왈(士曰)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조천조지(照天照地)합니다. 거사가 장읍(長揖)하고 가로되 다만 청컨대 상인(上人)은 환산(還山)하시오. 소매를 떨치고 입택(入宅)했다. 스님이 부끄러워하며(懡㦬) 곧 동산(洞山)으로 귀환했다. 동산이 그 연고를 묻자 스님이 그 일을 갖추어 말했다. 산왈(山曰) 네가 나에게 물어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스님이 전문(前問)을 정리(整理; )했다. 산왈(山曰) 여기에서 한양(漢陽)까지의 거리(距離; )가 멀지 않다. 스님이 후어(後語)를 진행했다. 산왈 황학루(黃鶴樓) 앞의 앵무주(鸚鵡洲).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고 기봉(機鋒)을 가히 저촉하지 못했다. 주후(住後) 승문 듣건대() 스님이 말씀이 있어 현()을 얘기하지 않고 묘()를 설하지 않는다. 이 이도(二途)를 떠나() 어떻게 지시(指示)하겠습니까. 사왈 두꺼비(蝦蟇)가 새매(鷂子)를 뒤쫓는다(). 가로되 전부 차문(此問)을 인()했습니다. 사왈 노서(老鼠)가 호손(猢猻)을 희롱한다.

長揖; 공수(拱手)하여 높이 들었다가 위로부터 아래로 내리면서 행례(行禮).

 

上堂 唯一堅密身 一切塵中現 蝦蟇蚯蚓各有窟穴 烏鵲鳩鴿 亦有窠巢 正當與麽時 爲甚麽人說法 良久曰 方以類聚 物以群分 上堂 三峽道無別 朝朝祇麽說 僧繇會寫眞 鎭府出鑌鐵 上堂 不長不短 不小不大 此箇道理是誰境界 咄 上堂 聞說佛法兩字 早是污我耳目 諸人未跨雲居門 脚跟下好與三十棒 雖然如是 也是爲衆竭力 上堂擧夾山道 閙市門頭識取天子 百草頭上薦取老僧 雲居卽不然 婦搖機軋軋 兒弄口㗻㗻 上堂 諸方有弄蛇頭 撥虎尾 跳大海 劒刃裏藏身 雲居這裏 寒天熱水洗脚 夜間脫韈打睡 早朝旋打行纏 風吹籬倒 喚人夫劈篾縛起 上堂 雲居不會禪 洗脚上牀眠 冬瓜直儱侗 瓠子曲彎彎

三峽; 巫峽 瞿塘峽 西陵峽 位於泗川湖北兩省境界揚子江中流 古來難舟行之峽谷

行纏; 僧人於行脚時所繫用之脚絆 又作脚絆

儱侗; 一籠統 含混 不分曉 二直也 長大也 此指二

 

상당(上堂) 유일한 견밀신(堅密身; 佛法身)이 일체의 진중(塵中)에 나타난다. 두꺼비와 지렁이가 각기 굴혈(窟穴)이 있고 오작(烏鵲; 까마귀와 까치)과 구합(鳩鴿; 비둘기)도 또한 과소(窠巢; 둥지)가 있다.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어떤(甚麽)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방소로써 동류를 모으고(方以類聚) 사물로써 무리를 나눈다(物以群分). 상당(上堂) 삼협(三峽)의 길이 다름이 없어/ 아침마다 이렇게(祇麽) 설한다/ 승요(僧繇)는 사진(寫眞; 肖像을 베낌)할 줄 알았고/ 진부(鎭府)에서 빈철(鑌鐵)이 나온다(). 상당(上堂) 부장부단(不長不短)하고 불소부대(不小不大)하나니 차개(此箇)의 도리는 이 누구의 경계인가. (). 상당(上堂) 불법(佛法) 양자(兩字)를 설함을 들으면 벌써 이는 나의 이목(耳目)을 더럽혔다. 제인이 운거(居門)의 문을 넘지() 아니한 전에 발꿈치(脚跟) 아래 좋이 30() 주어야 한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또한 이는 대중을 위해 힘을 다했다(). 상당(上堂)하여 협산(夾山)의 말을 들되 요시문두(閙市門頭)에서 천자를 식취(識取)하고 백초두상(百草頭上)에서 노승을 천취(薦取; 領會)하라. 운거(雲居)는 곧 그렇지 않나니 부녀(婦女; )가 베틀을 흔들며 알알(軋軋; 삐걱삐걱)하고 아동이 입을 희롱해 과과(㗻㗻; 응하는 소리)한다. 상당(上堂) 제방에서 사두(蛇頭)를 희롱하고 호미(虎尾)를 헤치고 대해를 뛰어넘고() 검인(劒刃) 속에 장신(藏身)함이 있거니와 운거(雲居)의 저리(這裏)는 한천(寒天; 추운 날)에 열수(熱水)로 세각(洗脚)하며 야간에 탈말(脫韈; 버선을 벗다)하고 타수(打睡)하며 조조(早朝)에 재빨리() 행전을 매며(行纏) 바람이 불어 울타리가 넘어지면 인부(人夫)를 불러 대껍질()을 쪼개어 묶어 일으킨다. 상당(上堂) 운거는 선()을 알지 못하고 발 씻고 상()에 올라 잠드나니 동과(冬瓜)는 곧아 농동(儱侗)하고 호자(瓠子; . 표주박)는 굽어 만만(彎彎; 굽은 모양)하다.

三峽; 무협ㆍ구당협ㆍ서릉협이니 사천ㆍ호북 두 성() 경계의 양자강 중류니 고래로 주행(舟行)하기 어려운 협곡임.

行纏; 승인이 행각할 때 계용(繫用)하는 바의 각반(脚絆)이니 또 각반(脚絆)으로 지음.

儱侗; 1. 농통(籠統)이니 함혼(含混; 모호함. 명확하지 않음. 비슷한 말 含糊). 분효(分曉; 분명)하지 않음. 2. (; 곧다). 장대(長大)함임.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潭州大潙懷宥禪師

僧問 人將語試 金將火試 未審衲僧將甚麽試 師曰 拄杖子 曰 畢竟如何 師曰 退後著 僧應喏 師便打曰 敎休不肯休 直待雨淋頭

 

담주(潭州) 대위(大潙) 회유선사(懷宥禪師)

승문 사람은 말을 가지고 시험하고 금은 불을 가지고 시험하거니와 미심하오니 납승은 무엇을 가지고 시험합니까. 사왈 주장자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뒤로 물러나라. 중이 응낙(應喏)하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쉬게 할 적엔 쉼을 수긍하지 않더니 바로 비가 머리에 쏟아짐을 기다리는가.

 

杭州佛日契嵩禪師

藤州鐔津李氏子 七歲出家 十三得度 十九遊方 徧參知識 得法于洞山 師夜則頂戴觀音像而誦其號 必滿十萬乃寢以爲常 自是世間經書章句 不學而能 作原敎論十餘萬言 明儒釋之道一貫 以抗宗韓排佛之說 讀之者畏服 後居永安蘭若 著禪門定祖圖傳法正宗記輔敎編上進 仁宗皇帝覧之加歎 付傳法院編次入藏 下詔褒寵 賜號明敎 宰相韓琦大參歐陽脩皆延見而尊禮之 洎東還 熈寧四年六月四日 晨興寫偈曰 後夜月初明 吾今喜獨行 不學大梅老 貪隨鼯鼠聲 至中夜而化 闍維不壞者五 曰頂曰耳曰舌曰童眞曰數珠 其頂骨出舍利 紅白晶潔 道俗合諸不壞 塟於故居永安之左 後住淨慈北磵居簡 嘗著五種不壞贊 師有文集二十卷 目曰鐔津 盛行于世

禪門定祖圖; 具名傳法正宗定祖圖 一卷 宋代雲門宗明敎大師契嵩撰 略稱定祖圖 此是圖文相配之圖集 記載三十三祖之傳法故事 並繪畫三十三祖傳承之圖像 今收錄於磧砂藏第三十七冊 龍藏第一三七冊 大正藏第五十一冊(圖則收於圖像部十) 然圖亦各異 不詳其正 其他如卍正藏第五十九冊 佛敎大藏經第七十一冊則有文無圖

傳法正宗記; 九卷 宋代明敎大師契嵩(1007-1072)著 略稱正宗記 收於大正藏第五十一冊 本書卽繼景德傳燈錄之後 敘述自印度以來諸祖師之傳記 以及支那禪宗師徒面授付法相承之順序 卷一 敎祖釋迦如來之傳 卷二至六 敘述自第一祖摩訶迦葉以降 至第三十三祖大鑑慧能之傳記 竝謂此一傳承爲正統 卷七卷八 慧能門下一三四人之略傳 卷九 收錄慧能以前各旁系二五人之事蹟 此外 著者另附有傳法正宗定祖圖一卷 與傳法正宗論二卷於本書之後 三書(共十二卷)合稱爲嘉祐集 [佛祖歷代通載二十八 鐔津明敎大師行業記 釋氏稽古略四]

輔敎編; 三卷 北宋契嵩撰 收於大正藏第五十二冊鐔津文集卷一至三 闡說佛敎要義 以調和儒釋二敎 契嵩對北宋當時儒家排佛之論力加反駁 而提倡儒佛一致之說 以佛家之五戒(不殺 不盜 不淫 不飮酒 不妄語) 配於儒家之五常(仁 義 禮 智 信) 竝加以說明 計分原敎 勸書 廣原敎 孝論 壇經贊等五篇 宋濂 李之全作序 子柔作後序 嘉祐七年(1062) 與所著傳法正宗定祖圖 傳法正宗記 傳法正宗論等 同時獲准入藏

大參; 參政的別稱

後夜; 卽後分之夜 乃晝夜六時之一 印度之夜間區分爲初中後三時 此爲其後分 相當於寅時 近於日出之時

鐔津; 鐔津文集 十九卷 宋代契嵩(1007-1072)著 收於大正藏第五十二冊 爲明敎大師契嵩之文集 鐔津(廣西藤縣)爲契嵩之生地 故本書名爲鐔津文集 契嵩屬於雲門宗 博通儒佛 對於當時儒家之排佛論 力加反駁 而倡儒佛一致論 卷一至三 輔敎篇 卷四 皇極論與中庸解 卷五至七 論原四十篇 卷八 雜著六篇與書狀 卷九卷十 收錄仁宗皇帝之書狀 卷十一 收錄六祖法寶記敘等序文二十三篇 卷十二 題爲志記銘碑 卷十三 收錄碑記銘表辭等七篇 與述題書贊傳評等十二篇 卷十四至十六 題爲非韓 反駁韓愈等人之排佛論 卷十七卷十八 古律詩一二九首 卷十九 收錄石門惠洪禮嵩禪師塔詩等諸師之詩文 契嵩儒佛一致之思想影響 宋代以後之佛敎甚巨 [大明三藏聖敎目錄]

 

항주(杭州) 불일(佛日) 계숭선사(契嵩禪師)

등주(藤州) 심진(鐔津)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7세에 출가했고 13에 득도(得度)했다. 19에 유방(遊方)하여 지식을 편참(徧參)했고 동산(洞山)에서 득법(得法)했다. 스님이 밤에 곧 관음상(觀音像)을 정대(頂戴)하고 그 호()를 외웠는데 반드시 10만을 채우고 이에 취침(就寢)했으며 일상(日常)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세간의 경서(經書)의 장구(章句)를 배우지 않고도 능했다. 원교론(原敎論) 십여 만 언()을 지었으니 유석(儒釋)의 도가 일관(一貫)임을 밝혀 종한(宗韓)의 배불지설(排佛之說)에 항거했는데 이를 읽는 자가 외복(畏服)했다. 후에 영안란야(永安蘭若)에 거주하면서 선문정조도(禪門定祖圖)ㆍ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ㆍ보교편(輔敎編)을 지어 상진(上進)했는데 인종황제(仁宗皇帝)가 이를 열람하고 가탄(加歎)했으며 전법원(傳法院)에 부촉(付屬)하여 편차(編次)해 입장(入藏)했고 하조(下詔)하여 포총(褒寵)했고 사호(賜號)하여 명교(明敎)라 했다. 재상(宰相) 한기(韓琦)와 대참(大參) 구양수(歐陽脩)가 모두 연견(延見)해 존례(尊禮)했다. 동환함에 이르러(洎東還) 희녕(熈寧) 4(1071) 64일 새벽에 일어나() 사게(寫偈)해 가로되 후야(後夜)의 달이 처음 밝으면/ 내가 이제 기쁘게 독행(獨行)하리라/ 대매로(大梅老)/ 오서성(鼯鼠聲)을 탐수(貪隨)한 것을 배우지 않겠다. 중야(中夜)에 이르러 화()했다. 사유(闍維)하매 무너지지 않은 게 다섯이니. () ()이며 왈 이()며 왈 설()이며 왈 동진(童眞)이며 왈 수주(數珠). 그 정골(頂骨)에서 사리가 나왔는데 홍백(紅白)이며 정결(晶潔)했다. 도속(道俗)이 모든 불괴(不壞)를 합해 고거(故居)인 영안(永安)의 왼쪽에 매장(埋葬; )했다. 후에 정자(淨慈)에 주()한 북간거간(北磵居簡)이 일찍이 오종불괴찬(五種不壞贊)을 지었다. 스님이 문집 20권이 있으니 명목해 가로되 심진(鐔津)이며 세상에 성행한다.

禪門定祖圖; 구명(具名)은 전법정종정조도(傳法正宗定祖圖)1. 송대 운문종 명교대사 계숭(契嵩)이 찬()했고 약칭이 정조도임. 이것은 이 도문(圖文)을 상배(相配)한 도집(圖集)이니 33조의 전법고사(傳法故事)를 기재하고 아울러 33조의 전승(傳承)의 도상(圖像)을 회화(繪畫)했음. 지금 적사장(磧砂藏) 37책ㆍ용장(龍藏) 137책ㆍ대정장 제51(는 곧 圖像部十에 수록됨)에 수록되었음. 그러나 도()는 또한 각기 달라 그 정도(正圖)가 불상(不詳). 기타 예컨대() 만속장(卍正藏) 59책과 불교대장경 제71책엔 곧 문()만 있고 도()는 없음.

傳法正宗記; 9. 송대 명교대사(明敎大師) 계숭(契嵩; 1007-1072)이 지었음. 약칭이 정종기며 대정장 제51책에 수록되었음. 본서는 곧 경덕전등록의 뒤를 이어 인도 이래로부터의 여러 조사의 전기(傳記)와 지나(支那) 선종의 사도(師徒)가 면수(面授)하며 부법상승(付法相承)하는 순서에 이르기까지를 서술했음. 1은 교조석가여래지전(敎祖釋迦如來之傳). 2에서 6에 이르기까지는 제1조 마하가섭 이강(以降; 이하)으로부터 제33조 대감혜능에 이르기까지의 전기를 서술했고 아울러 이르기를 이 1전승(傳承)이 정통이 된다. 7, 8은 혜능의 문하 1,304인의 약전(略傳). 9는 혜능 이전의 각방계(各旁系) 205인의 사적(事蹟)을 수록했음. 이 밖에 저자가 따로 전법정종정조도(傳法正宗定祖圖) 1권과 전법정종론(傳法正宗論) 2권을 본서의 뒤에 붙여 두었음. 3(三書; 모두 12)를 합칭해 가우집(嘉祐集)이라 함 [불조역대통재28. 심진명교대사행업기. 석씨계고략4]

輔敎編; 3. 북송 계숭(契嵩)이 지었고 대정장 제52책 심진문집권1에서 3에 이르기까지 수록되었음. 불교의 요의(要義)를 천설(闡說)하며 유석(儒釋) 2교를 조화했음. 계숭이 북송 당시의 유가의 배불지론(排佛之論)에 대해 힘써 반박(反駁)을 가하고 유불 일치의 설을 제창했음. 불가의 5(不殺不盜不淫不飮酒不妄語)를 유가의 5()에 짝짓고 아울러 설명을 가했음. 합계 원교(原敎)ㆍ권서(勸書)ㆍ광원교(廣原敎)ㆍ효론(孝論)ㆍ단경찬(壇經贊) 5편으로 분류했음. 송렴과 이지전이 서문을 지었고 자유가 후서를 지었음. 가우 7(1062) 지은 바 전법정종정조도ㆍ전법정종기ㆍ전법정종론 등과 함께 동시에 비준(批准)을 얻어 입장(入藏)했음.

大參; 참정(參政)의 별칭(別稱).

後夜; 곧 후분(後分)의 밤이니 곧 주야 6시의 하나. 인도의 야간은 초ㆍ중ㆍ후 3시로 구분하며 이것은 그 후분이 됨. 인시(寅時)에 상당하며 일출할 시간에 가까움.

鐔津; 심진문집(鐔津文集)이니 19. 송대 계숭(契嵩; 1007-1072)이 지었고 대정장 제52책에 수록되었음. 명교대사(明敎大師) 계숭의 문집이 됨. 심진(鐔津; 광서 등현)은 계숭의 출생지가 되는지라 고로 본서를 이름하여 심진문집이라 했음. 계숭은 운문종에 속하며 유불(儒佛)에 박통했음. 당시 유가의 배불론에 대해 강력히 반박을 가하면서 유불일치론(儒佛一致論)을 제창했음. 1에서 3에 이르기까지는 보교편(輔敎篇). 4는 황극론(皇極論)과 중용해(中庸解). 5에서 7에 이르기까지는 논원(論原) 40(). 8은 잡저 6편과 서장(書狀). 9, 10은 인종황제의 서장(書狀)을 수록했음. 11은 육조법보기서 등 서문 23편이 수록되었음. 12는 제목하여 지기명비(志記銘碑)라 했음. 13은 비기명표사(碑記銘表辭) 7편과 술제서찬전평(述題書贊傳評) 12가 수록되었음. 14에서 16에 이르기까지는 제목하여 비한(非韓)이니 한유 등 사람의 배불론을 반박했음. 17, 18은 고율시(古律詩) 129. 19는 석문혜홍례숭선사탑시(石門惠洪禮嵩禪師塔詩) 등 여러 스님의 시문을 수록했음. 계숭의 유불일치의 사상의 영향으로 송대 이후의 불교가 심히 거대했음 [대명삼장성교목록].

 

洪州太守許式

參洞山 得正法眼 一日 與泐潭澄上藍溥坐次 潭問 聞郞中道 夜坐連雲石 春栽帶雨松 當時答洞山甚麽話 公曰 今日放衙早 潭曰 聞答泗州大聖在揚州出現底 是否 公曰 別點茶來 潭曰 名不虛傳 公曰 和尙早晩回山 潭曰 今日被上藍覷破 藍便喝 潭曰 須是你始得 公曰 不奈船何 打破戽斗

 

홍주태수(洪州太守) 허식(許式)

동산(洞山)을 참해 정법안을 얻었다. 어느 날 늑담징(泐潭澄)ㆍ상람부(上藍溥)와 더불어 좌차(坐次)에 늑담이 묻되 듣기로 낭중(郞中)이 말하되 밤에 연운(連雲)한 돌에 앉았고 봄에 대우(帶雨)한 소나무를 심는다. 당시에 동산(洞山)의 어떤 화(甚麽話)에 답했습니까. 공왈(公曰) 금일 방아(放衙; 退衙)가 일렀습니다(). 담왈(潭曰) 듣기로 사주대성(泗州大聖)이 양주(揚州)에서 출현했다는 것에 답했다 하니 그렇습니까. 공왈(公曰) 특별히 점다(點茶)하여 오시오. 담왈(潭曰) 명성을 헛되이 전하지 않았습니다. 공왈 화상은 조만(早晩; 어느 때)에 회산(回山)합니까. 담왈 금일 상람(上藍)이 처파(覷破)함을 입었습니다. 상람이 바로 할했다. 담왈 모름지기 이는 너라야 비로소 옳다. 공왈 배를 어찌하지 못해 호두(戽斗; 두레박)를 타파하는구나.

 

泐潭澄禪師法嗣

明州育王山懷璉大覺禪師

漳州龍溪陳氏子 誕生之夕 夢僧伽降室 因小字泗州 旣有異兆 僉知祥應 齠齓出家 丱角圓頂 篤志道學 寢食無廢 一日洗面 潑水于地 微有省發 卽慕參尋 遠造泐潭法席 投機印可 師事之十餘年 去遊廬山 掌記於圓通訥禪師所 皇祐中仁廟有詔 住淨因禪院 召對化成殿 問佛法大意 奏對稱旨 賜號大覺禪師 後遣中使問曰 才去竪拂 人立難當 師卽以頌回進曰 有節非干竹 三星偃月宮 一人居日下 弗與衆人同 帝覽大悅 又詔入對便殿 賜羅扇一把 題元寂頌於其上 與師問答詩頌 書以賜之 凡十有七篇

; 指孩童 垂髫換齒之時

篤志; 專心一志

回進; 與回答同義 然回進多用於奉上帝王時的用語

 

명주(明州) 육왕산(育王山) 회련(懷璉) 대각선사(大覺禪師)

장주(漳州) 용계(龍溪) 진씨(陳氏)의 아들이다. 탄생하던 저녁에 승가(僧伽)가 강실(降室)함을 꿈꾼지라 인하여 소자(小字; 어릴 적의 )가 사주(泗州). 이미 이조(異兆)가 있은지라 모두() 상응(祥應)임을 알았다. 초친(齠齓)에 출가했고 관각(丱角)에 원정(圓頂)했다. 도학(道學)에 독지(篤志)라 침식(寢食)에도 폐()함이 없었다. 어느 날 세면(洗面)하다가 땅에 물을 뿌렸는데() 조금() 성발(省發; 領會)이 있었고 곧 흠모하며 참심(參尋)했다. 멀리 늑담(泐潭)의 법석으로 나아가 투기(投機)하여 인가(印可)했고 사사(師事)하기 십여 년이었다. 떠나 여산(廬山)에 노닐다가 원통눌(圓通訥; 居訥) 선사의 처소에서 장기(掌記; 기록을 管掌)했다. 황우(皇祐; 1046-1053) 중 인묘(仁廟)가 조칙이 있어 정인선원(淨因禪院)에 주()했고 화성전(化成殿)에서 소대(召對)하며 불법의 대의를 물었는데 주대(奏對)가 성지(聖旨; )에 칭합(稱合; )했고 사호(賜號)하여 대각선사(大覺禪師)라 했다. 후에 중사(中使)를 보내어 문왈(問曰) 겨우 떠나자 수불(竪拂)에 사람을 세웠으나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스님이 곧 송()으로써 회진(回進)해 가로되 마디가 있지만 대와 상간되지 않고/ 3()이 월궁(月宮)에 누웠습니다/ 1인이 일하(日下)에 거처하시니/ 중인과 같지 않습니다. 황제가 열람하고 대열(大悅)했다. 또 불러() 편전(便殿)에서 입대(入對)했는데 나선(羅扇; 비단 부채) 한 자루()를 주며 그 위에 원적송(元寂頌)을 제()했다. 스님과 문답한 시송(詩頌)을 서사(書寫)해 주었는데 무릇 17()이다.

; 어린 아동을 가리킴. 다박머리를 드리우고 이를 갈 때를 가리킴.

篤志; 전심(專心)으로 일지(一志).

回進; 회답과 같은 뜻. 그러나 회진은 제왕에게 봉상(奉上)하는 용어로 많이 쓰임.

 

至和中乞歸老山中 乃進頌曰 六載皇都唱祖機 兩曾金殿奉天威 靑山隱去欣何得 滿篋唯將御頌歸 帝和頌不允 仍宣諭曰 山卽如如體也 將安歸乎 再住京國 且興佛法 師再進頌謝曰 中使宣傳出禁圍 再令臣住此禪扉 靑山未許藏千拙 白髮將何補萬幾 霄露恩輝方湛湛 林泉情味苦依依 堯仁況是如天濶 應任孤雲自在飛 旣而遣使賜龍腦鉢 師謝恩罷 捧鉢曰 吾法以壞色衣 以瓦鐵食 此鉢非法 遂焚之 中使回奏 歎不已

宣諭; 宣布命令 曉諭

禪扉; 禪房 指佛寺之門

龍腦鉢; 指以龍腦樹材所製成之鉢

 

지화중(至和中; 1054-1055. 저본에 至中和로 지었음) 산중에서 귀로(歸老; 終老. 養老)함을 구걸하면서 이에 송을 바쳐(; 奉獻. 送上) 가로되 여섯 해 동안 황도(皇都)에서 조기(祖機)를 제창(提唱)하며/ 두 번 일찍이 금전(金殿)에서 천위(天威)를 받들었다/ 청산으로 은둔하러 가면서 기쁨은 무엇을 얻었는가/ 대상자 가득 오직 어송(御頌)을 가지고 돌아간다. 황제가 화송(和頌)으로 윤허하지 않았고 인하여() 선유(宣諭)해 가로되 산은 곧 여여(如如)의 체()이거늘 장차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경국(京國; 京城)에 재주(再住)하면서 다만() 불법을 일으키시오. 스님이 다시 진송(進頌)하여 사양(辭讓; )하며 가로되 중사(中使)가 선전(宣傳)하러 금위(禁圍; 内宮)을 나서서/ 다시 신()으로 하여금 이 선비(禪扉)에 거주하게 하시네/ 청산에서 천졸(千拙)을 숨김을 허락하지 않으니/ 백발(白髮)에 무엇을 가져 만기(萬幾)를 보좌(補佐)하리오/ 소로(霄露; 雲露)의 은휘(恩輝)는 바야흐로 잠잠(湛湛; 深厚貌)하고/ 임천(林泉)의 정미(情味)는 괴롭게 의의(依依)하네/ 요인(堯仁)이 하물며 이, 하늘 같이 넓으시니/ 응당 고운(孤雲)이 자재히 비행함에 맡기십시오. 이미 그러고선 사자를 보내어 용뇌발(龍腦鉢)을 주었다. 스님이 사은(謝恩)하여 마치자 발우를 받들고 가로되 우리의 법은 괴색(壞色)으로써 옷 입고() 와철(瓦鐵)로써 밥 먹나니 이 발우는 비법(非法)입니다. 드디어 불태웠다. 중사가 돌아가 아뢰자 주상이 가탄(加歎)하여 말지 않았다.

宣諭; 명령을 선포함. 효유(曉諭).

禪扉; 선방(禪房). 불사(佛寺)의 문을 가리킴.

龍腦鉢; 용뇌수(龍腦樹)의 재료로 제작해 이룬 바의 발우를 가리킴.

 

治平中上疏丐歸 仍進頌曰 千簇雲山萬壑流 閑身歸老此峯頭 餘生願祝無疆壽 一炷清香滿石樓 英廟依所乞 賜手詔曰 大覺禪師懷璉受先帝聖眷 累錫宸章 屢貢誠懇 乞歸林下 今從所請 俾遂閑心 凡經過小可菴院 任性住持 或十方禪林 不得抑逼堅請 師旣渡江 少留金山西湖 四明郡守以育王虛席迎致 九峯韶公作疏 勸請四明之人 相與出力 建大閣藏所賜詩頌 榜之曰宸奎 翰林蘇公軾知杭時 以書問師曰 承要作宸奎閣碑 謹已撰成 衰朽廢學 不知堪上石否 見參寥說 禪師出京日 英廟賜手詔 其略云 任性住持者 不知果有否 如有 切請錄示全文 欲添入此一節 師終藏而不出 逮委順後 獲於篋笥

手詔; 帝王親手寫的詔書 非常珍貴

聖眷; 爲帝王的寵眷

宸章; 帝王寫的文章

小可; 平常 輕微 可者可否之對 許也

參寥; 雲臥紀譚上 錢塘僧道潛者 以詩見知於蘇文忠公 號其爲參寥子 凡詩詞迭唱更和形於翰墨 必曰參寥 及呂丞相爲奏玅總師名之 後與簡牘 則曰玅總老師 江浙石刻具存者多 莊子大宗師 玄冥聞之參寥 參寥聞之疑始 疏 參 三也 寥 絶也 一者絶有 二者絶無 三者絶非有非無 故謂之三絶也

 

치평(治平; 1064-1067) 중 상소(上疏)하여 개귀(丐歸)했다. 인하여() 진송(進頌)하여 가로되 천족(千簇; 천 떨기)의 운산(雲山)에 만학(萬壑)이 흐르고/ 한신(閑身)이 이 봉두(峯頭)에서 귀로(歸老)할까 합니다/ 여생(餘生)에 무강수(無疆壽)를 원축(願祝)하리니/ 일주(一炷)의 청향(淸香)이 석루(石樓)에 가득하리라. 영묘(英廟)가 소걸(所乞)에 의()하면서 수조(手詔)를 주어 가로되 대각선사 회련(懷璉)은 선제(先帝)의 성권(聖眷)을 받아 거듭() 신장(宸章)을 주셨으며() 여러 번() 성간(誠懇)을 바쳤는데() 임하(林下)로 걸귀(乞歸)하므로 이제 소청(所請)을 좇아 한심(閑心)을 이루게 하노라(俾遂). 무릇 경과하는 소가(小可)의 암원(菴院)에 임성(任性)하여 주지(住持)하고 혹 시방(十方)의 선림(禪林)에서 억핍(抑逼)하여 견청(堅請)함을 얻지 못한다. 스님이 이미 도강(渡江)하자 금산(金山)의 서호(西湖)에 조금 머물렀다. 사명군수(四明郡守)가 육왕(育王)의 허석(虛席)으로써 영치(迎致; 迎請)했다. 구봉(九峯) 소공(韶公)이 작소(作疏)하여 사명(四明) 사람들에게 권청(勸請)했고 서로 더불어 출력(出力)하여 대각(大閣)을 건립해 소사(所賜)의 시송(詩頌)을 감추었고 방()해 가로되 신규(宸奎)라 했다. 한림(翰林) 소공(蘇公) ()이 지항(知杭)할 때 글로써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신규각비(宸奎閣碑)를 지어라는 요청을 받들어(承要) 삼가 이미 찬성(撰成)했습니다. 쇠후(衰朽)한 폐학(廢學)이 알지 못하오라 상석(上石)을 감내하겠습니까. 참료(參寥)의 설을 보건대 선사가 출경(出京)하던 날 영묘(英廟)가 수조(手詔)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간략히 이르자면 임성(任性)하여 주지한다 했는데 알지 못하오라 과연 있었습니까. 있을 것 같으면 절청(切請)컨대 전문(全文)을 녹시(錄示)하십시오. 이 일절(一節)을 첨입(添入)하고 싶습니다. 스님이 마침내 감추고 내어놓지 않았다. 위순(委順; 逝世)한 후에 이르러() 협사(篋笥; 물건을 간직하는 竹器)에서 획득했다.

手詔; 제왕이 친히 손으로 쓴 조서니 비상(非常)한 진귀(珍貴).

聖眷; 제왕의 총권(寵眷; 특별히 사랑하여 돌봄)이 됨.

宸章; 제왕(帝王)이 서사(書寫)한 문장.

小可; 평상ㆍ경미. ()란 것은 가부(可否)의 대(; )니 허().

參寥; 운와기담상. 전당승(錢塘僧) 도잠(道潛)이란 자는 시로써 소문충공(蘇文忠公)에게 견지(見知; 알려짐)되었고 그를 호해 참료자(參寥子)라 했다. 무릇 시사(詩詞)를 질창경화(迭唱更和)하면서 한묵(翰墨; 붓과 먹. 문장)에 형상하면 반드시 가로되 참료(參寥)라 했다. 그리고 여승상(呂丞相)이 주청하여 묘총사(玅總師)로 그를 이름했다. 후에 간독(簡牘)을 주면서 곧 가로되 묘총노사(玅總老師)라 했다. 강절(江浙)에서 석각(石刻)하여 구존(具存; 갖추어 보존)한 자가 많았다. 장자 대종사. 현명(玄冥)은 삼료(參寥)에게서 이를 들었고 삼료는 의시(疑始)에게서 이를 들었다. () ()은 삼()이다. ()는 절()이다. 1자는 절유(絶有)2자는 절무(絶無)3자는 절비유비무(絶非有非無). 고로 이를 일러 삼절(三絶)이라 한다.

 

開堂日 僧問 諸佛出世 利濟群生 猊座師登 將何拯濟 師曰 山高水闊 曰 華發無根樹 魚跳萬仞峯 師曰 新羅國裏 曰 慈舟不棹淸波上 劒峽徒勞放木鵝 師曰 脫却衣裳臥荊棘 曰 人將語試 師曰 慣得其便 僧拊掌 師曰 更𨁝跳 問 聖君御頌親頒賜 和尙將何報此恩 師曰 兩手拓地 曰 恁麽則一人有慶 兆民賴之 師曰 半尋拄杖攪黃河 問 艣棹不停時如何 師曰 淸波箭急 曰 恁麽則移舟諳水勢 擧棹別波瀾 師曰 濟水過新羅 曰 古佛位中留不住 夜來依舊宿蘆花 師曰 兒童不識十字街 問 坐斷毗盧頂 不稟釋迦文 猶未是學人行業 如何是學人行業 師曰 斫額望明月 僧以手便拂 師曰 作甚麽 僧茫然 師曰 賺却一船人 師曰 若論佛法兩字 是加增之辭 廉纖之說 諸人向這裏承當得 盡是二頭三首 譬如金屑雖貴 眼裏著不得 若是本分衲僧 纔聞擧著 一擺擺斷 不受纖塵 獨脫自在 最爲親的 然後便能在天同天 在人同人 在僧同僧 在俗同俗 在凡同凡 在聖同聖 一切處出沒自在 竝拘檢他不得 名邈他不得 何也 爲渠能建立一切法故 一切法要且不是渠 渠旣無背面 第一不用妄與安排 但知十二時中 平常飮啄 快樂無憂 祇此相期 更無別事 所以古人云 放曠長如癡兀人 他家自有通人愛

猊座; 祖庭事苑二 猊座 猊 狻猊也 師子之屬 西方王者所坐之座 猶中國龍牀也 西域記云 君王朝坐 彌復高廣 珠璣間錯 謂師子座也 智論 問云 佛坐師子座 爲佛化作 爲實師子來 爲金銀木石作師子 答曰 是號名師子 非實師子也 佛爲人中師子 佛所坐處 若牀若地 皆名師子座

二頭三首; 指玄妙禪法以外的義理

癡兀; 渾沌無知貌

 

개당일(開堂日) 승문 제불이 출세하여 군생을 이제(利濟)하거니와 예좌(猊座)에 스님이 올라 무엇을 가지고 증제(拯濟)하시렵니까. 사왈 산은 높고 물은 넓다. 가로되 꽃이 무근수(無根樹)에 피고() 물고기가 만인봉(萬仞峯)에 뜁니다. 사왈 신라국 속이다. 가로되 자주(慈舟)는 청파(淸波) 위에 노 젓지 않거늘 검협(劒峽)에 도로(徒勞) 목아(木鵝)를 놓습니다. 사왈 의상(衣裳)을 탈각(脫却)하고 형극(荊棘)에 누웠다. 가로되 사람은 말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사왈 습관으로 그 편의를 얻었다(慣得其便). 중이 부장(拊掌)했다. 사왈 다시 발도(𨁝跳; 펄쩍 뛰다)하는구나. 묻되 성군(聖君)이 어송(御頌)을 친히 반사(頒賜; 下賜)하셨으니 화상은 무엇을 가지고 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사왈 두 손으로 땅을 받친다(拓地).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한 사람이 경사(慶事; )가 있고 조민(兆民)이 의뢰할 것입니다. 사왈 반심(半尋; 四尺)의 지팡이로 황하(黃河)를 젓는구나. 묻되 노도(艣棹; )가 멈추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청파(淸波)가 화살처럼 급하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이주(移舟)하매 수세(水勢)을 알고() 거도(擧棹)하매 파란(波瀾)을 분별합니다. 사왈 제수(濟水)가 신라(新羅)를 지났다. 가로되 고불(古佛)의 위중(位中)에 머물러 멈추지() 않고 야래(夜來)에 의구히 노화(蘆花)에 숙박합니다. 사왈 아동(兒童)은 십자가(十字街)를 알지 못한다. 묻되 비로정(毗盧頂)을 좌단(坐斷)하고 석가문(釋迦文)을 품수(稟受)하지 않아도 오히려 이 학인의 행업(行業)이 아닙니다. 무엇이 이 학인의 행업입니까. 사왈 작액(斫額)하고 명월(明月)을 바라보아라. 중이 손으로써 바로 떨쳤다(). 사왈 무엇하느냐. 중이 망연(茫然)했다. 사왈 일선(一船)의 사람을 속였구나(賺却). 사왈 만약 불법 양자(兩字)를 논한다면 이는 가증지사(加增之辭)며 염섬지설(廉纖之說)이다. 제인이 이 속을 향해 승당(承當)함을 얻는다면 모두 이 이두삼수(二頭三首). 비유컨대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 속에 붙임을 얻지 못함과 같다. 만약 이 본분납승일진대 겨우 거착(擧著)함을 들으면 일파(一擺; 한 번 흔들다)하여 파단(擺斷)하고 섬진(纖塵)도 받지 않고 독탈(獨脫)하여 자재하리니 가장 친적(親的)함이 된다. 연후에 바로 능히 천()에 있으면 천과 같과 인()에 있으면 인과 같고 승()에 있으면 승과 같고 속()에 있으면 속과 같고 범()에 있으면 범과 같고 성()에 있으면 성과 같아서 일체처에 출몰하며 자재하고 아울러 그를 구검(拘檢)함을 얻지 못하고 그를 명막(名邈)함을 얻지 못한다. 왜냐, ()가 능히 일체법을 건립하는 연고이다. 일체법이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이 거()가 아니며 거()가 이미 배면(背面)이 없으니 첫째 허망하게 안배(安排)하여 줌을 쓰지 말아라. 단지 알지니 12시 중에 평상(平常)으로 음탁(飮啄)하고 쾌락하여 근심이 없으며 다만 여기에서 상기(相期)하고 다시 별사(別事)가 없다. 소이로 고인이 이르되 방광(放曠)하며 길이 치올(癡兀)한 사람과 같나니 타가(他家)는 스스로 사람과 통하는 사랑이 있다.

猊座; 조정사원2. 예좌(猊座) ()는 산예(狻猊; 은 사자)니 사자의 무리임. 서방의 왕자(王者; 王道로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 제왕)가 앉는 바의 자리니 중국의 용상(龍牀)과 같음. 서역기에 이르되 군왕의 조정(朝廷)의 자리(와 통함)는 크고() 또 높고 넓으며 주기(珠璣; 는 구슬)가 사이에 섞였으니 이르자면 사자좌다. 지론(智論) 물어 이르되 불타가 사자좌에 앉는다 하니 불타의 화작(化作)이 되는가 실사자(實師子)가 옴이 되는가 금은목석(金銀木石)으로 사자를 만듦이 되는가. 답해 가로되 이는 사자라고 호명(號名)함이지 실사자가 아니다. 불타는 인중(人中)의 사자가 되는지라 불타가 앉는 바의 처소는 상()이거나 땅이거나 다 이름이 사자좌다.

二頭三首; 현묘한 선법 이외의 의리(義理)를 가리킴.

癡兀; 혼돈(渾沌)하여 무지(無知)한 모양.

 

上堂 文殊寶劒 得者爲尊 乃拈拄杖曰 淨因今日恁麽 直得千聖路絕 雖然如是 猶是矛盾相攻 不犯鋒鋩 如何運用 良久曰 野蒿自發空臨水 江燕初歸不見人 參 上堂 太陽東昇 爍破大千之暗 諸人若向明中立 猶是影響相馳 若向暗中立 也是藏頭露影漢 到這裏作麽生吐露 良久曰 逢人祇可三分語 未可全拋一片心 參 上堂 世法裏面 迷却多少人 佛法裏面 醉却多少人 祇如不迷不醉 是甚麽人分上事 上堂 言鋒纔擊 義海交深 若用徑截一路 各請歸堂

 

상당(上堂) 문수(文殊)의 보검을 얻는 자가 존귀하다. 이에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정인(淨因; 懷璉)이 금일 이러하니 바로() 천성(千聖)의 길이 끊어짐을 얻었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오히려 이는 모순(矛盾; 창과 방패)이 서로 공격하매 봉망(鋒鋩)을 범하지 않나니 어떻게 운용(運用)해야 하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야호(野蒿; 들의 쑥)가 스스로 피니 허공이 물에 임했고 강연(江燕; 강의 제비)이 처음 돌아오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하라. 상당(上堂) 태양이 동쪽에 솟아올라() 대천(大千)의 어둠을 삭파(爍破)한다. 제인이 만약 밝음 가운데를 향해 선다면 오히려 이는 영향(影響)이 상치(相馳)함이며 만약 어둠 가운데를 향해 선다면 또한 이 장두노영한(藏頭露影漢)이다. 이 속에 이르러 어떻게 토로(吐露)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사람을 만나면 다만 삼분어(三分語)가 옳나니 일편심(一片心)을 전부 던짐은 옳지 못하다. ()하라. 상당(上堂) 세법(世法)의 이면(裏面)이 다소의 사람을 미하게 하고(迷却) 불법의 이면이 다소의 사람을 취하게 한다(醉却). 지여(祇如) 불미불취(不迷不醉)하면 이 어떤 사람의 분상사(分上事)인가. 상당(上堂) 언봉(言鋒)이 겨우 치면() 의해(義海)가 교류해 깊다. 만약 경절(徑截)의 일로(一路)를 쓴다면 각자 귀당(歸堂)하기를 청한다.

 

上堂 應物現形 如水中月 遂拈起拄杖曰 這箇不是物 卽今現形也 且道月在甚麽處 良久曰 長空有路還須透 潭底無蹤不用尋 擊香臺 下座 上堂 白日東上白日西落 急如投壺閃寥廓 神龍一擧透無邊 纖鱗猶向泥中躍 靈燄中休湊泊 三歲孩童髽四角 參 上堂良久 擧起拳頭曰 握拳則五嶽倒卓 展手則五指參差 有時把定佛祖關 有時拓開千聖宅 今日這裏相呈 且道作何使用 拍禪牀曰 向下文長 付在來日

 

상당(上堂) (; 사람)에 응해 형상을 나타냄이 수중의 달과 같다. 드디어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저개(這箇)는 이 물()이 아니니 즉금 형상을 나타내었다. 차도(且道)하라, 달이 어느 곳에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장공(長空)에 길이 있으니 도리어 투과함을 쓰고() 담저(潭底)에 자취가 없으니 찾음을 쓰지() 말아라. 향대(香臺)를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백일(白日)이 동쪽에 오르고 백일이 서쪽에 떨어지나니 급하기가 투호(投壺)와 같이 번쩍하며() 요확(寥廓)하다. 신룡(神龍)이 한 번 일어나매(一擧) 투출하여 무변하거늘 섬린(纖鱗; )은 아직 진흙 속을 향해 뛰는구나. 영염(靈燄) 가운데 주박(湊泊)함을 그칠지니() 세 살 해동(孩童)의 북상투()가 사각이다. ()하라. 상당하여 양구했다가 권두(拳頭)를 거기(擧起)하고 가로되 악권(握拳)하면 곧 오악(五嶽)이 도탁(倒卓)하고 전수(展手)하면 곧 오지(五指)가 참치(參差)하다. 어떤 때는 불조관(佛祖關)을 파정(把定)하고 어떤 때는 천성택(千聖宅)을 탁개(拓開; 밀쳐 열다)한다. 금일 저리(這裏)에서 상정(相呈)하니 차도(且道)하라, 어떻게 사용(使用)함을 짓겠는가. 선상을 두드리고 가로되 향하(向下)하면 글이 길어지니 내일에 맡겨 둔다.

 

臨安府靈隱雲知慈覺禪師

僧問 一佛出世 各坐一華 和尙出世 有何祥瑞 師曰 白雲橫谷口 曰 光前絕後去也 師曰 錯 曰 大衆證明 學人禮謝 師曰 點 問 如何是道 師曰 甚麽道 曰 大道 師曰 欲行千里 一步爲初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西天駐泊 此地都監 僧禮拜 師乃吽吽 上堂 日月雲霞爲天標 山川草木爲地標 招賢納士爲德標 閑居趣寂爲道標 拈拄杖曰 且道這箇是甚麽標 會麽 拈起則有文有彩 放下則糲糲磕磕 直得不拈不放 又作麽生 良久曰 扶過斷橋水 伴歸無月村 卓一下 下座 上堂 秋風起 庭梧墜 衲子紛紛看祥瑞 張三李四賣囂虛 拾得寒山爭賤貴 覿面相逢 更無難易 四衢道中 棚欄瓦市 畐塞虛空 普天帀地 任是臨濟赤肉團上 雪峰南山鼈鼻 玄沙見虎 俱𦙆擧指 一時拈來 當面布施 更若擬議 千山萬水 復曰 過

都監; 官名 卽監軍 古代監軍大都是宦官兼任 [百度百科]

棚欄; 樂棚勾欄 演戲 耍雜技等的遊藝場所

瓦市; 指在城市的曠場

千山萬水; 意謂與禪法相隔極遠 根本不合禪法

 

임안부(臨安府) 영은(靈隱) 운지(雲知) 자각선사(慈覺禪師)

승문 일불(一佛)이 출세하면 각기 일화(一華)에 앉거니와 화상이 출세하매 어떤 상서(祥瑞)가 있습니까. 사왈 백운이 곡구(谷口)에 가로놓였다. 가로되 광전절후(光前絕後)하여 갑니다. 사왈 틀렸다(). 가로되 대중이 증명하고 학인이 예사(禮謝; 예배하며 감사)합니다. 사왈 점()하라.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무슨 도(甚麽道). 가로되 대도(大道)입니다. 사왈 천 리를 가고 싶다면 일보(一步)가 처음이 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서천(西天)은 주박(駐泊; 停留)이며 차지(此地)는 도감(都監)이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이에 후후(吽吽)했다. 상당(上堂) 일월운하(日月雲霞)는 천표(天標)가 되고 산천초목은 지표(地標)가 되고 초현(招賢)과 납사(納士)는 덕표(德標)가 되고 한거(閑居)하며 취적(趣寂)함은 도표(道標)가 된다.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차도(且道)하라, 저개(這箇)는 이 무슨 표()인가. 아느냐, 염기(拈起)하면 곧 유문유채(有文有彩)하고 방하(放下)하면 곧 여려개개(糲糲磕磕; 매우 거칠게 부딪히는 소리)하다. 바로 불념불방(不拈不放)함을 얻으면 또 어떠한가. 양구하고 가로되 부축해 단교수(斷橋水)를 지나고 짝하여 무월촌(無月村)에 돌아간다. 한 번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추풍이 일어나니 정오(庭梧)가 떨어지고 납자가 분분(紛紛)히 상서(祥瑞)를 본다. 장삼(張三)과 이사(李四)가 효허(囂虛; 虛假)를 팔고 습득과 한산이 천귀(賤貴; 싼값과 비싼 값)를 다툰다. 적면(覿面)하여 상봉(相逢)하고 다시 난이(難易)가 없으며 네거리 길 가운데의 붕란(棚欄)과 와시(瓦市). 허공에 복색(畐塞; 가득 차다)하고 보천잡지(普天帀地). , 임제의 적육단상(赤肉團上)ㆍ설봉의 남산별비(南山鼈鼻)ㆍ현사의 견호(見虎)ㆍ구지(俱𦙆)의 거지(擧指)에 맡기더라도 일시에 집어 와서 당면(當面)에 보시하나니 다시 만약 의의(擬議)한다면 천산만수(千山萬水). 다시 가로되 지나갔다().

都監; 벼슬 이름. 곧 감군(監軍)이니 고대의 감군은 대도(大都; 대개) 이 환관이 겸임했음 [백도백과].

棚欄; 악붕구란(樂棚勾欄)이니 연희(演戲)ㆍ사잡기(耍雜技; 잡기를 희롱하다) 등의 유예(遊藝)의 장소.

瓦市; 성시(城市)에 있는 광장을 가리킴.

千山萬水; 뜻으로 이르면 선법과 상격(相隔)함이 극히 멀어 근본으로 선법에 맞지 않음.

 

婺州承天惟簡禪師

僧問 佛與衆生 是一是二 師曰 花開滿樹紅 花落萬枝空 曰 畢竟是一是二 師曰 唯餘一朵在 明日恐隨風 問 如何是吹毛劒 師曰 星多不當月 曰 用者如何 師曰 落 曰 落後如何 師曰 觀世音菩薩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理長卽就 曰 如何領會 師曰 繪雉不成鷄 問 開口卽失 閉口卽喪 未審如何說 師曰 舌頭無骨 僧曰 不會 師曰 對牛彈琴

對牛彈琴; 比喩對不明事理的人講道理 徒勞無功 祖庭事苑一 對牛彈琴 魯賢士公明儀 對牛彈琴 弄淸角之操 牛食如故 非牛不聞 不合耳也 轉爲蚊虻之聲 乳犢之鳴 乃掉尾躞蹄 奮耳而聽 合意故也 躞 悉協切 行貌

 

무주(婺州) 승천(承天) 유간선사(惟簡禪師)

승문 부처와 중생이 이 하나입니까 이 둘입니까. 사왈 꽃이 피면 나무 가득히 붉고 꽃이 떨어지면 온갖 가지(萬枝)가 빈다(). 가로되 필경 이 하나입니까 이 둘입니까. 사왈 오직 나머지 한 떨기()가 있지만 명일 바람을 따를까 염려스럽다. 묻되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劒)입니까. 사왈 별이 많아도 달에 당하지 못한다. 가로되 쓰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떨어졌다. 가로되 떨어진 후에 어떻습니까. 사왈 관세음보살.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이치가 나으면 곧 따른다(理長卽就).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꿩을 그리면() 닭을 이루지 못한다. 묻되 입을 열면 잃고 입을 닫으면 곧 상()하거늘 미심하오니 어떻게 설합니까. 사왈 설두(舌頭)는 뼈가 없다. 승왈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소를 상대해 거문고를 퉁겼구나(對牛彈琴).

對牛彈琴; 사리에 밝지 못한 사람을 상대로 도리를 강설함이니 헛수고만 하고 공이 없음에 비유함. 조정사원1. 대우탄금(對牛彈琴) 노나라의 현사(賢士)인 공명의가 소를 대하여 거문고를 탔는데 청각(淸角)의 가락을 희롱하자 소가 먹는 것이 먼저와 같음은 소가 듣지 않는 게 아니라 귀에 맞지 않아서이다. ()하여 문맹(蚊虻; 모기와 등에)의 소리와 젖먹이 송아지의 울음을 짓자 이에 꼬리를 흔들고 발굽을 움직이고(은 걸을 섭) 귀를 쫑긋거리면서 들음은 뜻에 맞기 때문이다. ()은 실협절(悉協切; )이니 행하는 모양임.

 

上堂 夫遮那之境界 衆妙之玄門 知識說之而莫窮 善財酌之而不竭 文殊體之而寂寂 普賢證之以重重 若也隨其法性 如雲收碧漢 本無一物 若也隨其智用 如花開春谷 應用無邊 雖說徧恒沙 乃同遵一道 且問諸人 作麽生是一道 良久曰 白雲斷處見明月 黃葉落時聞擣衣 參 上堂 莫離葢纏 莫求佛祖 去此二途 以何依怙 江淹夢筆 天龍見虎 古老相傳 月不跨五 參 上堂 一刀兩段 埋沒宗風 師子飜身 拖泥帶水 直饒坐斷十方 不通凡聖 脚跟下好與三十 上堂 拈一放一 妙用縱橫 去解除玄 收凡破聖 若望本分草料 大似磨甎作鏡 衲僧家合作麽生 良久曰 寔

江淹夢筆; 禪林疏語考證二 五雲之彩 江淹 字文通 少時夢人授以五色筆 自是文藻日新

天龍見虎; 上七玄沙師備章 普請斫柴次 見一虎 天龍曰 和尙 虎 師曰 是汝虎

本分草料; 草料 牛馬之飼料也 其味淡淡無味 喩天眞本分也 禪林卽指師家接學人手段峻嚴 日本無著道忠云 本分者 本來當己之分量也 草料者 馬所啖物料 其一日所啖豆麥等當已定分 是馬之本分草料也

 

상당(上堂) 무릇() 자나(遮那; 비로자나)의 경계는 중묘(衆妙)의 현문(玄門)이니 지식(知識)이 이()를 설하매 궁구(窮究; )하지 못하고 선재(善財)가 이를 잔질하매() 다하지() 않는다. 문수가 이를 체회(體會; )하여 적적(寂寂)하고 보현이 이를 증득하여 중중(重重)하다. 만약에 그 법성을 따른다면 구름이 걷힌() 벽한(碧漢; 天空)과 같아서 본래 일물(一物)도 없고 만약에 그 지용(智用)을 따른다면 춘곡(春谷)에 꽃이 핌과 같아서 응용이 무변하다. 비록 설()이 항사(恒沙)에 두루하더라도 이에 일도(一道)를 동준(同遵; 함께 따름)한다. 제인에게 차문(且問)하나니 무엇이 이 일도(一道)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백운이 끊어진 곳에 명월을 보고 황엽(黃葉)이 떨어질 때 도의(擣衣; 다듬잇방망이로 옷을 다듬다)를 듣는다. ()하라. 상당(上堂) 개전(葢纏; 번뇌)을 여의지 말고 불조를 구하지 말아라. 이 이도(二途)를 떠나면() 무엇으로써 의호(依怙)하는가. 강엄은 붓을 꿈꾸었고(江淹夢筆) 천룡은 범을 보았나니(天龍見虎) 고로(古老)가 상전(相傳)하기를 달은 5를 넘지 않는다(月不跨五). ()하라. 상당(上堂) 일도양단(一刀兩段)하더라도 종풍을 매몰(埋沒)하고 사자가 번신(飜身)하더라도 타니대수(拖泥帶水). 직요(直饒) 시방을 좌단(坐斷)하여 범성(凡聖)이 통하지 않더라도 발꿈치 아래 좋게 30(30)을 준다. 상당(上堂) 염일방일(拈一放一)하며 묘용(妙用)이 종횡(縱橫)하고 거해제현(去解除玄)하며 수범파성(收凡破聖)하더라도 만약 본분초료(本分草料)를 바라본다면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듦과 매우 흡사하다. 납승가는 합당히 어떠한가. 양구하고 가로되 식(; . 진실로).

江淹夢筆; 선림소어고증2. 오운지채(五雲之彩) 강엄(江淹)은 자가 문통이다. 어릴 적 꿈에 사람이 오색 붓을 주었는데 이로부터 문조(文藻; 문장)가 일신했다.

天龍見虎; 7 현사사비장(玄沙師備章) 보청(普請)하여 섶을 쪼개던(斫柴) 차에 일호(一虎)를 보았다. 천룡(天龍)이 가로되 화상, 범입니다. 사왈 이 네가 범이다(是汝虎).

本分草料; 초료(草料)는 소나 말의 사료(飼料). 그 맛이 담담(淡淡)하고 무미(無味)하여 천진(天眞)의 본분에 비유함. 선림에선 곧 사가가 학인을 접인하는 수단의 준엄(峻嚴)함을 가리킴. 일본의 무착도충(無著道忠)이 이르되 본분이란 것은 본래 자기에게 할당(割當)된 분량이다. 초료란 것은 말이 먹는 바의 물료(物料; 飼料). 그것은 하루에 먹는 바의 콩과 보리 등 자기에게 할당된 정분(定分; 定量)이니 이것이 말의 본분초료(本分草料).

 

明州九峯鑒韶禪師

僧問 承聞和尙是泐潭嫡子 是否 師曰 是 曰 還記得當時得力句否 師曰 記得 曰 請擧看 師曰 左手握拳 右手把筆 上堂 山僧說禪 如蚝蜢吐油 揑著便出 若不揑著 一點也無 何故 祇爲不曾看讀古今因緣 及預先排疊勝妙見知等候 陞堂便磨唇捋觜 將粥飯氣熏炙諸人 凡有一問一答 葢不得已 豈獨山僧 看他大通智勝如來 默坐十劫 無開口處 後因諸天梵天及十六王子再三勸請 方始說之 却不是秘惜 祇爲不敢埋沒諸人 山僧旣不埋沒諸人 不得道山僧會陞座 參

磨唇捋觜; 形容說話沒有節制

 

명주(明州) 구봉(九峯) 감소선사(鑒韶禪師)

승문(僧問) 승문(承聞)컨대 화상은 이 늑담(泐潭)의 적자(嫡子)라 하니 그렇습니까. 사왈 그렇다. 가로되 도리어 당시의 득력구(得力句)를 기득(記得)합니까. 사왈 기득한다. 가로되 청컨대 들어 보십시오. 사왈 좌수(左手)로 주먹을 쥐고 우수(右手)로 붓을 잡는다. 상당(上堂) 산승이 설선(說禪)함은 마치 자맹(蚝蜢; 메뚜기)이 기름을 토함과 같아서 누르면(揑著) 곧 나오고 만약 누르지 않으면 1점도 또한 없다. 무슨 연고냐, 다만 일찍이 고금의 인연을 간독(看讀)하거나 및 미리 먼저 승묘한 견지(見知)를 배첩(排疊; 準備. 安排)하여 등후(等候; 기다리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승당(陞堂)하여 바로 마순날취(磨唇捋觜)하여 죽반기(粥飯氣)를 가지고 제인(諸人)을 훈자(熏炙)하나니 무릇 일문일답이 있음은 대개 부득이하여서이다. 어찌 유독(惟獨) 산승 뿐이겠는가. ()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를 보건대 십겁(十劫) 동안 묵좌(默坐)하면서 개구(開口)할 곳이 없었다. 후에 제천(諸天)ㆍ범천(梵天) 16왕자(王子)가 재삼(再三) 권청(勸請)함으로 인해 비로소(方始) 설하였으니 도리어 이 비석(秘惜)함이 아니라 다만 감히 제인을 매몰(埋沒)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산승이 이미 제인을 매몰하지 않았으니 산승이 승좌(陞座)할 줄 안다고 말함을 얻지 말아라. ()하라.

磨唇捋觜; 설화(說話)에 절제(節制)가 있지 않음을 형용.

 

婺州西塔顯殊禪師

上堂 黃梅席上數如麻 句裏呈機事可嗟 直是本來無一物 靑天白日被雲遮 參

 

무주(婺州) 서탑(西塔) 현수선사(顯殊禪師)

상당(上堂) 황매의 석상(席上)에 수가 삼과 같나니/ 구리(句裏)에 정기(呈機)하는 일이 가히 슬프다()/ 바로 이 본래 일물(一物)도 없다 하더라도/ 청천백일(靑天白日)이 구름에 가림을 입는다. ()하라.

 

天台崇善寺用良禪師

僧問 三門與自己 是同是別 師曰 八兩移來作半斤 曰 恁麽則秋水泛漁舟去也 師曰 東家點燈 西家爲甚麽却覓油 曰 山高月上遲 師曰 道甚麽 曰 莫瞌睡 師曰 入水見長人

 

천태(天台) 숭선사(崇善寺) 용량선사(用良禪師)

승문 삼문(三門)과 자기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8()을 옮겨 오매 반근(半斤)을 짓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추수(秋水)가 어주(漁舟)를 띄워() 갑니다. 사왈 동가(東家)에서 점등(點燈)하거늘 서가(西家)에서 무엇 때문에 도리어 기름을 찾는가. 가로되 산이 높으면 달이 떠오름이 더딥니다. 사왈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가로되 갑수(瞌睡)하지 마십시오. 사왈 입수(入水)해야 장인(長人)을 본다.

 

臨江軍慧力有文禪師

上堂 建山寂寞 坐倚城郭 無味之談 七零八落 以拄杖敲香臺 下座

七零八落; 破碎零落 支離滅裂之意 七或八表示多數

 

임강군(臨江軍) 혜력(慧力) 유문선사(有文禪師)

상당(上堂) 건산(建山)이 적막하여/ 성곽에 앉고 기댄다/ 무미(無味)한 얘기가/ 칠령팔락(七零八落)한다. 주장자로써 향대(香臺)를 두드리고 하좌했다.

七零八落; 파쇄(破碎)되어 영락(零落; 떨어짐)하여 지리멸렬(支離滅裂)함의 뜻. 칠 혹 팔은 다수(多數)를 표시함.

 

福州雪峯象敦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把火照魚行 曰 如何是法 師曰 唐人譯不出 曰 佛法已蒙師指示 未審畢竟事如何 師曰 臘月三十日

 

복주(福州) 설봉(雪峯) 상돈선사(象敦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불()입니까. 사왈 불()을 잡아 어행(魚行)을 비춘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당인(唐人)이 번역해 내지 못한다. 가로되 불법(佛法)은 이미 스님의 지시를 입었습니다만() 미심하오니 필경사(畢竟事)가 무엇입니까. 사왈 납월 삼십일이다.

 

南康軍雲居守億禪師

上堂 馬祖纔陞堂 雄峰便卷席 春風一陣來 滿地花狼籍 便下座

 

남강군(南康軍) 운거(雲居) 수억선사(守億禪師)

상당(上堂) 마조(馬祖)가 겨우 승당(陞堂)하자 웅봉(雄峰; 百丈懷海)이 바로 권석(卷席; 예배석을 걷다)했다. 춘풍이 일진(一陣) 불어오매 땅 가득히 꽃이 낭자(狼籍)하다. 바로 하좌했다.

 

瑞州洞山永孚禪師

上堂 棒頭挑日月 木馬夜嘶鳴 拈拄杖曰 雲門大師來也 卓一下曰 炊沙作飯 看井作袴 參

 

서주(瑞州) 동산(洞山) 영부선사(永孚禪師)

상당(上堂) 방두(棒頭; 주장자. 는 조사)에 일월을 메니 목마가 밤에 시명(嘶鳴; 울다)하다.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운문대사가 오셨다. 한 번 치고 가로되 취사(炊沙; 모래를 불때다)하여 밥을 짓고 간정(看井)하여 바지()를 만든다. ()하라.

 

令滔首座

久參泐潭 潭因問 祖師西來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子作麽生會 師曰 某甲不會 潭曰 子未出家時 作箇甚麽 師曰 牧牛 潭曰 作麽生牧 師曰 早朝騎出去 晩後復騎歸 潭曰 子大好不會 師於言下大悟 遂成頌曰 放却牛繩便出家 剃除鬚髮著袈裟 有人問我西來意 拄杖橫挑囉哩囉

 

영도수좌(令滔首座)

늑담(泐潭; 懷澄)을 초참(久參)하자 늑담이 인하여 묻되 조사가 서래하여 심인을 단전(單傳)하고 인심(人心)을 직지(直指)하여 견성하고 성불한다 했는데 자네는 어떻게 이회(理會)하는가. 사왈 모갑은 알지 못합니다. 담왈(潭曰) 자네가 출가하지 않았을 때 저() 무엇을 지었는가. 사왈 목우(牧牛)했습니다. 담왈 어떻게 목(; 치다. 기르다)하는가. 사왈 조조(早朝)에 타고 나갔다가 만후(晩後)에 다시 타고 돌아옵니다. 담왈 자네는 대호(大好; 十分. 非常) 불회(不會)하는구나.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다. 드디어 송을 이루어 가로되 우승(牛繩)을 놓아버리고 바로 출가해/ 수발(鬚髮)을 체제(剃除)하고 가사를 입었다/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주장자를 가로 메고() 라리라(囉哩囉)로다.

 

洞山寶禪師法嗣

瑞州洞山淸辯禪師

僧問 百丈得大機 黃檗得大用 未審和尙得箇甚麽 師便喝 僧亦喝 師便打 僧曰 爭奈大衆眼何 便歸衆 師噓兩噓

 

서주(瑞州) 동산(洞山) 청변선사(淸辯禪師)

승문 백장은 대기를 얻었고 황벽은 대용을 얻었습니다만 미심하오니 화상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바로 할했다. 중도 또한 할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승왈 대중의 눈을 어찌하겠습니까 하고는 바로 귀중(歸衆)했다. 스님이 허()하며 두 번 허()했다.

 

北塔廣禪師法嗣

荊門軍玉泉承皓禪師

姓王氏 眉州丹稜人也 依大力院出家 登具後遊方 參北塔 發明心要 得大自在三昧 製犢鼻裩 書歷代祖師名字 乃曰 唯有文殊普賢較些子 且書於帶上 故叢林目爲皓布裩 元豐間 首衆於襄陽谷隱 有鄕僧亦効之 師見而詬曰 汝具何道理 敢以爲戲事耶 嘔血無及耳 尋於鹿門如所言而逝 張無盡奉使京西南路 就謁之 致開法於郢州大陽 時谷隱主者私爲之喜 師受請陞座曰 某在谷隱十年 不曾飮谷隱一滴水 嚼谷隱一粒米 汝若不會 來大陽 爲汝說破 携拄杖下座 傲然而去

犢鼻裩; 又作犢鼻褌 卽短裩 一說圍裙 史記司馬相如列傳 裴駰集解引韋昭曰 犢鼻褌 今三尺布作 形如犢鼻 由是 有形似之說 [百度百科]

 

형문군(荊門軍) 옥천(玉泉) 승호선사(承皓禪師)

성이 왕씨(王氏)며 미주(眉州) 단릉(丹稜) 사람이다. 대력원(大力院)에 의지해 출가했고 등구(登具)한 후에 유방(遊方)했다. 북탑(北塔; 思廣)을 참()해 심요(心要)를 발명(發明)했고 대자재삼매(大自在三昧)를 얻었다. 독비곤(犢鼻裩)을 제작(製作; )해 역대조사의 명자(名字)를 쓰고() 이에 가로되 오직 문수와 보현이 있어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 대상(帶上)에 쓴지라 고로 총림에서 명목해 호포곤(皓布裩)이라 했다. 원풍(元豐; 1078-1085) 간 양양(襄陽) 곡은(谷隱)에서 수중(首衆)이었다. 향승(鄕僧)이 있어 이를 본받았다(効之). 스님이 보고서 꾸짖으며() 가로되 네가 무슨 도리를 갖추었기에 감히 희사(戲事)로 삼느냐. 피를 토하더라도 미침()이 없을 것이다. 이윽고 녹문(鹿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죽었다(). 장무진(張無盡)이 경서(京西)의 남로(南路)에서 봉사(奉使)하다가 나아가 참알했고 영주(郢州) 대양(大陽)에서 개법하게 했다(). 당시 곡은(谷隱)의 주자(主者)가 몰래() 기뻐했다. 스님이 수청(受請)하여 승좌(陞座)해 가로되 모()가 곡은에 있은 지 10년에 일찍이 곡은의 한 방울 물도 마시지 않았고 곡은의 한 알의 쌀도 씹지 않았다. 너희가 만약 알지 못한다면 대양(大陽)에 오너라, 너희를 위해 설파하겠다. 주장자를 가지고() 하좌하더니 오연(傲然)히 떠났다.

犢鼻裩; 또 독비곤(犢鼻褌)으로 지음. 곧 짧은 잠방이. 일설엔 위군(圍裙; 앞치마)이라 함. 사기 사마상여열전 배인집해에 위소(韋昭)를 인용해 가로되 독비곤(犢鼻褌)은 여금에 3척의 베로 만든다. 형상이 독비(犢鼻)와 같다. 이로 말미암아 형상이 비슷하다는 설이 있음 [백도백과].

 

尋遷玉泉 有示衆曰 一夜雨霶烹 打倒蒲萄棚 知事頭首 行者人力 拄底拄 撐底撐 撐撐拄拄到天明 依舊可憐生 自贊 粥稀後坐 牀窄先臥 耳聵愛高聲 眼昏宜字大 冬至示衆曰 晷運推移 布裩赫赤 莫怪不洗 無來換替 僧入室次 狗子在室中 師叱一聲 狗便出去 師曰 狗却會 你却不會 師示寂 門人圍繞 師笑曰 吾年八十一 老死舁屍出 兒郞齊著力 一年三百六十日 言畢而逝

人力; 僕人 傭工

赫赤; 一耀眼 刺眼 引人注目的樣子 二深紅色 引申指貧窮 空無一物 此指二

 

이윽고 옥천(玉泉)으로 옮겼다. 시중(示衆)이 있어 가로되 하룻밤에 비가 방팽(霶烹; 큰 비가 오는 소리)하더니 포도붕(蒲萄棚)을 타도했다. 지사와 두수(頭首), 행자와 인력(人力)이 주(; 버티다)하는 자는 주하고 탱(; 버티다)하는 자는 탱하면서 탱탱주주(撐撐拄拄)하다가 천명(天明)에 이르렀지만 의구히 가련생(可憐生; 생은 조사)이다. 자찬(自贊) 죽이 묽으면 뒤에 앉고/ ()이 좁으면 먼저 눕는다/ 귀먹으면(耳聵) 고성(高聲)을 좋아하고/ 눈이 어두우면 글자가 큰 게 마땅하다(). 동지에 시중(示衆)해 가로되 해그림자()가 운행하여 추이(推移)하는데 포곤(布裩)은 혁적(赫赤)하다. 씻지 않음을 괴이히 여기지 말지니 와서 환체(換替)함이 없다. 중이 입실(入室)한 차에 구자(狗子; )가 실중(室中)에 있었다. 스님이 꾸짖는 일성(一聲)에 개가 바로 나갔다. 사왈 개는 도리어 알지만 너는 도리어 알지 못한다. 스님이 시적(示寂)하자 문인(門人)이 위요(圍繞)했다. 스님이 웃으며 가로되 나의 나이가 81이다. 늙어 죽으니 시체를 마주들어 내어라. 아랑(兒郞; 男兒. 남자)이 일제히 착력(著力)할지니 1년은 36십 일이다. 말을 마치자 서거했다.

人力; 복인(僕人)과 용공(傭工; 고용되어 남을 위해 做工하는 사람).

赫赤; 1. 요안(耀眼; 눈에 번쩍임). 자안(刺眼; 눈을 찌름). 사람의 주목을 당기는 양자. 2. 심홍색(深紅色). 인신(引申; 轉義)하여 빈궁(貧窮)하고 비어서 한 물건도 없음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四祖瑞禪師法嗣

福州廣明常委禪師

僧問 知師久蘊囊中寶 今日當場略借看 師曰 看 曰 恁麽則謝師指示 師曰 等閑垂一釣 容易上鉤來

 

복주(福州) 광명(廣明) 상위선사(常委禪師)

승문 스님이 낭중보(囊中寶)를 오래 간직한() 줄 압니다. 금일 당장(當場) 간략히 빌려 볼까 합니다. 사왈 보아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지시에 감사합니다. 사왈 등한(等閑)히 일조(一釣)를 내리매() 용이하게 갈고리에 올라오는구나.

 

雲葢顒禪師法嗣

南康軍雲居文慶海印禪師

僧問 如何是函葢乾坤句 師曰 合 曰 如何是隨波逐浪句 師曰 闊 曰 如何是截斷衆流句 師曰 窄 上堂 道本無爲 法非延促 一念萬年 千古在目 月白風恬 山靑水綠 法法現前 頭頭具足 祖意敎意 非直非曲 要識廬陵米價 會取山前麥熟 以拂子擊禪牀 下座

 

남강군(南康軍) 운거(雲居) 문경(文慶) 해인선사(海印禪師)

승문 무엇이 이 함개건곤구(函葢乾坤句)입니까. 사왈 합(). 가로되 무엇이 이 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입니까. 사왈 활(). 가로되 무엇이 이 절단중류구(截斷衆流句)입니까. 사왈 착(). 상당(上堂) 도는 본래 무위(無爲)며 법은 연촉(延促; 長短)이 아니니 일념이 만 년이며 천고(千古)가 눈에 있다. 달은 희고 바람은 고요하고() 산은 푸르고 물은 초록이니 법법(法法)이 현전(現前)하고 두두(頭頭)가 구족(具足)했다.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곧음도 아니고 굽음도 아니니 여릉(廬陵)의 쌀값을 알고자 한다면 산 앞의 보리가 익음에서 회취(會取)하라. 불자로써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上方岳禪師法嗣

越州東山國慶順宗禪師

上堂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 拈起拄杖曰 此箇是法 那箇是滅底心 若人道得 許你頂門上具眼 其或未然 雲暗不知天早晩 雪深難辯路高低 參

 

월주(越州) 동산(東山) 국경(國慶) 순종선사(順宗禪師)

상당(上堂) 마음이 생하면 곧 갖가지 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하면 곧 갖가지 법이 멸한다.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차개(此箇; 이것)는 이 법이니 어느 것(那箇)이 이 멸()한 마음이냐. 어떤 사람(若人)이 말함을 얻으면 너에게 정문상(頂門上)에 구안(具眼)했다고 허락하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구름이 어두우면 하늘의 조만(早晩)을 알지 못하고 눈이 깊으면 길의 고저(高低)를 분변(分辨; )하기 어렵다. ()하라.

 

金山新禪師法嗣

安吉州天聖守道禪師

上堂 日月遶須彌 人間分晝夜 南閻浮提人祇被明暗色空留礙 且道不落明暗一句作麽生道 良久曰 柳色黃金嫩 梨花白雪香 參 上堂 不從一地至一地 寂滅性中寧有位 釋迦稽首問然燈 仁者何名爲受記 便下座

留礙; 滯塞 阻礙

 

안길주(安吉州) 천성(天聖) 수도선사(守道禪師)

상당(上堂) 일월이 수미(須彌)를 돌면서 인간에 주야가 나뉜다. 남염부제(南閻浮提) 사람이 다만 명암과 색공(色空)의 유애(留礙)를 입나니 차도(且道)하라, 명암에 떨어지지 않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유색(柳色)은 황금처럼 예쁘고(; 好貌) 이화(梨花)는 백설처럼 향기롭다. ()하라. 상당(上堂) 1()로 좇아 1지에 이르지 않나니/ 적멸성(寂滅性) 가운데 어찌 위()가 있으랴/ 석가가 계수(稽首)하며 연등(然燈)에게 묻되/ 인자(仁者), 무엇을 이름하여 수기(受記)라 합니까. 바로 하좌했다.

留礙; 체색(滯塞; 걸리거나 쌓여서 막힘). 조애(阻礙; 막힘).

 

五燈會元卷第十五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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