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燈會元卷第十六
靑原下十世下
雪竇顯禪師法嗣
越州天衣義懷禪師
永嘉樂淸陳氏子也 世以漁爲業 母夢星殞于屋 乃孕 及産 尤多吉祥 兒時坐船尾 父得魚付師貫之 師不忍 乃私投江中 父怒 笞之 師恬然如故 長遊京師 依景德寺爲童行 天聖中 試經得度 謁金鑾善葉縣省 皆蒙印可 遂由洛抵龍門 復至都下 欲繼宗風 意有未決 忽遇言法華 拊師背曰 雲門臨濟去 及至姑蘇 禮明覺於翠峰 覺問 汝名甚麽 曰 義懷 覺曰 何不名懷義 曰 當時致得 覺曰 誰爲汝立名 曰 受戒來十年矣 覺曰 汝行脚費却多少草鞋 曰 和尙莫瞞人好 覺曰 我也沒量罪過 汝也沒量罪過 你作麽生 師無語 覺打曰 脫空謾語漢 出去 入室次 覺曰 恁麽也不得 不恁麽也不得 恁麽不恁麽總不得 師擬議 覺又打出 如是者數四 尋爲水頭 因汲水折擔 忽悟 作投機偈曰 一二三四五六七 萬仞峰頭獨足立 驪龍頷下奪明珠 一言勘破維摩詰 覺聞拊几稱善
●水頭; 禪林中司掌汲水 燒熱水供大衆盥洗之職稱
월주(越州) 천의의회(天衣義懷) 선사
영가(永嘉) 낙청(樂淸) 진씨(陳氏)의 아들이다. 대대(代代; 世)로 고기잡이(漁)로 업을 삼았다. 모친의 꿈에 별이 가옥(家屋)에 떨어졌는데(殞) 이에 잉태했고 및 출산하자 더욱(尤) 길상(吉祥)이 많았다. 아이 때 선미(船尾)에 앉았다가 부친이 득어(得魚)하여 스님에게 주어(付) 그것을 꿰게 하면 스님이 참지 못하고 이에 몰래(私) 강 속에 던졌다. 부친이 노(怒)하여 매질했지만(笞之) 스님이 염연(恬然)히 예(故)와 같았다. 장성하자 경사(京師)를 유람하다가 경덕사(景德寺)에 의지해 동행(童行)이 되었고 천성(天聖; 1022-1031) 중 시경(試經)하여 득도(得度)했다. 금란선(金鑾善; 慈明의 高弟)ㆍ섭현성(葉縣省; 歸省)을 참알하여 모두 인가를 입었다. 드디어 낙(洛; 洛京)을 경유해 용문(龍門)에 다다랐고 다시 도하(都下; 京都)에 이르러 종풍을 잇고 싶어 했으나 뜻에 미결(未決)이 있었는데 홀연히 언법화(言法華)를 만났다. 스님의 등을 두드리며(拊) 가로되 운문(雲門)이나 임제(臨濟)로 가거라. 및 고소(姑蘇)에 이르러 취봉(翠峰)에서 명각(明覺; 重顯)을 참례했다. 명각이 묻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의회(義懷)입니다. 각왈(覺曰) 왜 회의(懷義)라고 이름하지 않았는가. 가로되 당시에 이룸을 얻었습니다(致得). 각왈 누가 너를 위해 이름을 세웠는가. 가로되 수계(受戒)하여 온 지 10년입니다. 각왈 네가 행각하면서 다소(多少)의 초혜(草鞋)를 소비했는가(費却). 가로되 화상은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각왈 나도 몰량(沒量; 無量)의 죄과(罪過)며 너도 몰량의 죄과니 네가 어떠한가(作麽生). 스님이 말이 없자 명각이 때리고 가로되 탈공만어한(脫空謾語漢)이로구나, 나가거라. 입실(入室)한 차에 각왈(覺曰) 이러해도 얻지 못하고 이러하지 않아도 얻지 못하고 이러하거나 이러하지 않거나 모두(總) 얻지 못한다. 스님이 의의(擬議)하자 명각이 또 때리고 쫓아내었다. 이와 같이 한 것이 수(數)가 넷이다. 이윽고 수두(水頭)가 되었는데 급수(汲水)하면서 멜대(擔)가 부러짐으로 인해 홀연히 깨달았다. 투기게(投機偈)를 지어 가로되 일, 이, 삼, 사, 오, 육, 칠이여/ 만인(萬仞)의 봉두(峰頭)에 외발(獨足)로 섰다/ 이룡(驪龍)의 턱 아래에서 명주(明珠)를 뺏았나니/ 일언으로 유마칠을 감파(勘破)했다. 명각이 듣고서 궤안(几案; 几)을 두드리며 좋다(善)고 칭찬했다.
●水頭; 선림 중에서 급수하고 더운 물을 끓여(燒) 대중의 관세(盥洗; 손과 얼굴을 씻음)에 공급함을 사장(司掌; 관리)하는 직칭(職稱).
後七坐道場 化行海內 嗣法者甚衆 住後 僧問 如何是佛 師曰 布髮掩泥 橫身臥地 曰 意旨如何 師曰 任是波旬也皺眉 曰 恁麽則謝師指示 師曰 西天此土 問 學人上來 請師說法 師曰 林間鳥噪 水底魚行 上堂 須彌頂上 不扣金鐘 畢鉢巖中 無人聚會 山僧倒騎佛殿 諸人反著草鞋 朝遊檀特 暮到羅浮 拄杖針筒 自家收取 上堂 衲僧橫說竪說 未知有頂門上眼 時有僧問 如何是頂門上眼 師曰 衣穿瘦骨露 屋破看星眠 上堂 大衆集定 乃曰 上來道箇不審 能銷萬兩黃金 下去道箇珍重 亦銷得四天下供養 若作佛法話會 滴水難消 若作無事商量 眼中著屑 且作麽生卽是 良久曰 還會麽 珍重
후에 도량에 7좌(坐)했고 교화가 해내(海內)에 행했고 사법자(嗣法者)가 매우 많았다(衆). 주후(住後)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머리카락을 펴서 진흙을 가렸고(布髮掩泥) 횡신(橫身)하여 땅에 누웠다.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이 파순(波旬)에게 맡기더라도 또한 눈썹을 찌푸린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스님의 지시에 감사합니다. 사왈 서천(西天)과 차토(此土)다. 묻되 학인이 올라왔으니 스님의 설법을 청합니다. 사왈 임간(林間)에 새가 지저귀고(噪) 수저(水底)에 고기가 다닌다. 상당(上堂) 수미정상(須彌頂上)에서 금종(金鐘)을 두드리지(扣) 않고 필발암중(畢鉢巖中)에 취회(聚會)하는 사람이 없다. 산승이 불전(佛殿)을 거꾸로 타고 제인은 짚신을 거꾸로 신고(反著) 아침에 단특(檀特; 단특산)에 노닐다가 저녁에 나부(羅浮; 나부산)에 이르나니 주장(拄杖)과 침통(針筒)을 자가(自家)가 수취(收取)하라. 상당(上堂) 납승이 횡설수설(橫說竪說)하지만 정문상(頂門上)의 눈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정문상의 눈입니까. 사왈 옷이 뚫어져 수골(瘦骨)이 드러나고 집이 부서져(破) 별을 보며 잔다. 상당(上堂) 대중이 집정(集定)하자 이에 가로되 올라와서(上來) 말하는(道箇) 불심(不審)은 능히 만량(萬兩)의 황금을 소비(消費; 銷)하고 내려가면서 말하는 진중(珍重)은 또한 사천하(四天下)의 공양을 소득(銷得)하거니와 만약 불법으로 화회(話會)함을 짓는다면 적수(滴水)도 소화하기 어렵고 만약 무사(無事)라고 상량(商量)함을 지으면 눈 속에 가루를 붙임이다. 그래(且) 어찌해야 곧 옳은가(是). 양구하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진중(珍重).
上堂 夫爲宗師 須是驅耕夫之牛 奪飢人之食 遇賤卽貴 遇貴卽賤 驅耕夫之牛 令他苗稼豐登 奪飢人之食 令他永絕飢渴 遇賤卽貴 握土成金 遇貴卽賤 變金成土 老僧亦不驅耕夫之牛 亦不奪飢人之食 何謂 耕夫之牛 我復何用 飢人之食 我復何餐 我也不握土成金 也不變金作土 何也 金是金 土是土 玉是玉 石是石 僧是僧 俗是俗 古今天地 古今日月 古今山河 古今人倫 雖然如此 打破大散關 幾箇迷逢達磨 上堂 鴈過長空 影沉寒水 鴈無遺蹤之意 水無留影之心 若能如是 方解向異類中行 不用續鳧截鶴 夷嶽盈壑 放行也百醜千拙 收來也攣攣拳拳 用之則敢與八大龍王鬬富 不用都來不直半分錢 參
●散關; 散 閑散的 如散官 散職 散關卽閑散之關門
●豐登; 豐收 收成豐富 登 穀物成熟
●攣攣拳拳; 蜷曲不伸貌 又作癴癴拳拳
●八大龍王; 指八位龍王 乃列於法華經會座上之護法善神 又作八龍王 法華經序品 有八龍王 難陀龍王 跋難陀龍王 娑伽羅龍王 和脩吉龍王 德叉迦龍王 阿那婆達多龍王 摩那斯龍王 優鉢羅龍王等
상당(上堂) 무릇 종사가 되었다면 모름지기 이, 경부(耕夫)의 소를 쫓아내고 기인(飢人)의 밥을 뺏아야 하며 천(賤)함을 만나면 곧 귀(貴)해지고 귀함를 만나면 곧 천해져야 한다. 경부의 소를 쫓아내어야 그의 묘가(苗稼; 곡식)를 풍등(豐登)하게 하고 기인의 밥을 뺏아야 그로 하여금 길이(永) 기갈(飢渴)을 끊게 한다. 천함을 만나 곧 귀해짐은 흙을 움켜쥐어 금을 이룸이며 귀함을 만나 곧 천해짐은 금을 변화해 흙을 이룸이다. 노승은 또한 경부의 소를 쫓아내지 않으며 또한 기인의 밥을 뺏지 않나니 무엇을 말함이냐(何謂), 경부의 소를 내가 다시 어찌 쓰겠으며 기인의 밥을 내가 다시 어찌 먹겠는가(餐). 나는 또 흙을 움켜쥐어 금을 이루지 않으며 또 금을 변화해 흙을 짓지 않는다. 왜냐, 금은 이 금이며 흙은 이 흙이며 옥은 이 옥이며 돌은 이 돌이며 승(僧)은 이 승이며 속(俗)은 이 속이다. 고금(古今)의 천지며 고금의 일월이며 고금의 산하며 고금의 인륜(人倫)이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대산관(大散關)을 타파해야 하나니 몇 개가 미(迷)했다가 달마를 만나는가(迷逢達磨). 상당(上堂) 기러기가 장공(長空)을 지나매 그림자가 한수(寒水)에 잠기거니와 기러기는 자취를 남길(遺) 뜻이 없고 물은 그림자를 머물 게 할 마음이 없다. 만약 능이 이와 같다면 바야흐로 이류(異類) 가운데를 향해 행할 줄 안다. 오리에게 잇고 학을 자르고 큰 산을 깎고(夷) 골(壑)을 채움을 쓰지 않는다. 방행(放行)하매 백추천졸(百醜千拙)이며 수래(收來)하매 연련권권(攣攣拳拳)하다. 이를 쓰면 곧 감히 팔대용왕(八大龍王)과 부(富)를 다투고 쓰지 않으면 모두(都來; 來는 조사) 반분전(半分錢)의 가치도 안된다. 참(參)하라.
●散關; 산(散)은 한산한 것이니 예컨대(如) 산관(散官)ㆍ산직(散職). 산관은 곧 한산한 관문.
●豐登; 풍수(豐收)니 거두어 풍부함을 이룸. 등(登)은 곡물의 성숙.
●攣攣拳拳; 구부러져 펴지 못하는 모양. 또 연련권권(癴癴拳拳)으로 지음.
●八大龍王; 8위(位)의 용왕을 가리킴. 법화경회좌상(法華經會座上)에 나열한 호법선신이니 또 8용왕으로 지음. 법화경서품 8용왕이 있으니 난타용왕ㆍ발난타용왕ㆍ사가라용왕ㆍ화수길용왕ㆍ덕차가용왕ㆍ아나바달다용왕ㆍ마나사용왕ㆍ우발라용왕 등.
上堂 髑髏常干世界 鼻孔摩觸家風 芭蕉聞雷開 葵花隨日轉 諸仁者 芭蕉聞雷開 還有耳麽 葵花隨日轉 還有眼麽 若也會得 西天卽是此土 若也不會 七九六十三 收 上堂 靈源絕朕 普現色身 法離斷常 有無堪示 所以道 塵塵不見佛 刹刹不聞經 要會靈山親授記 晝見日 夜見星 良久曰 若到諸方 不得錯擧 參 上堂 夜來寒霜凜冽 黃河凍結 陝府鐵牛腰折 盡道女媧煉石補天 爭奈西北一缺 如今欲與他補却 又恐大地人無出氣處 且留這一竅 與大地人出氣 參 上堂 虛明自照 不勞心力 上士見之 鬼神茶飯 中下得之 狂心頓息 更有一人 切忌道著
●女媧煉石補天; 列子湯問篇曰 然則天地亦物也 物有不足 故昔者女媧氏煉五色石以補其闕 斷鼇之足以立四極 其後共工氏與顓頊爭爲帝 怒而觸不周之山 折天柱 絶地維 故天傾西北 日月星辰就焉 地不滿東南 故百川水潦歸焉 ▲祖庭事苑五 女媧補天 淮南子(覽冥訓)云 共工氏兵强凶暴 而與堯帝爭功 戰敗力窮乃以頭觸不周山而死 天柱爲之折 女媧煉五色石而補天 故東傾而水流 又列子云 陰陽失度 二辰盈縮名缺 不必形虧名補 女媧煉五行五常之精 以調和陰陽 晷度順序不同 氣質相補 ◆女媧; 媧皇 是上古母系氏族時期聚落首領或部族首領 相傳是華胥氏之女 與伏羲是血親兼配偶 女媧被譽爲古神女而帝者 是炎黃二帝的母族 位列三皇五氏之一 [百度百科]
상당(上堂) 촉루(髑髏)가 상간(常干)하는 세계며 비공(鼻孔)이 마촉(摩觸)하는 가풍이다. 파초(芭蕉)는 우레를 듣고 피고 규화(葵花;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돈다. 제인자(諸仁者)여, 파초가 우레를 듣고 피니 도리어 귀가 있느냐. 규화가 해를 따라 도니 도리어 눈이 있느냐. 만약에 회득(會得)한다면 서천(西天)이 즉시(卽是) 차토(此土)며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會) 칠구 육십삼이다. 거두어라(收). 상당(上堂) 영원(靈源)엔 짐조(朕兆)가 끊겼지만 색신(色身)을 널리 나타내고 법은 단상(斷常)을 여의었지만 유무(有無)를 가히(堪) 보인다. 소이로 말하되 진진(塵塵)에서 부처를 보지 못하고 찰찰(刹刹)에서 경을 듣지 못한다. 영산에서 친히 수기(授記)함을 알고자 하느냐.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본다. 양구하고 가로되 만약 제방에 이르거든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참(參)하라. 상당(上堂) 야래(夜來)에 한상(寒霜)이 늠렬(凜冽; 추위가 살을 엘 듯이 심함)하여 황하(黃河)가 동결(凍結)하고 섬부철우(陝府鐵牛)가 허리가 부러졌다(腰折). 다 말하기를 여왜가 연석하여 보천했다(女媧煉石補天) 하나 서북이 일결(一缺)했음을 어찌하겠는가. 여금에 그것을 보각(補却)하여 주고 싶으나 또 대지인(大地人)이 출기(出氣)할 곳이 없을까 염려스럽다. 다만(且) 이(這) 일규(一竅)를 머물러 대지인에게 출기(出氣)하여 주겠다. 참(參)하라. 상당(上堂) 허명(虛明)이 자조(自照)하고 심력을 노고롭게 하지 않는다. 상사(上士)가 이를 보매 귀신의 다반(茶飯)이며 중하(中下)가 이를 얻으매 광심(狂心)이 돈식(頓息)한다. 다시 1인이 있으니 말함(道著)을 절기(切忌)한다.
●女媧煉石補天; 열자 탕문편에 가로되 그러하여 곧 천지도 또한 물건이니 물건은 부족함이 있다. 고로 옛적에 여왜씨(女媧氏)가 5색의 돌을 단련해 그 궐함을 보수했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극(四極; 사방의 끝)을 세웠다. 그 후 공공씨(共工氏)와 전욱(顓頊)이 다투어 제왕이 되려고 했다. 노해서 부주(不周)의 산에 부딪치자 천주(天柱)가 부러지고 지유(地維)가 끊어졌으므로 고로 하늘이 서북으로 기울고 일월성신이 나아갔다. 땅은 동남이 차지 않았으므로 고로 백천수료(百川水潦)가 귀환(歸還)한다. ▲조정사원5. 여왜보천(女媧補天) 회남자(남명훈)에 이르되 공공씨의 병졸이 강하고 흉포했다. 요제(堯帝)와 공을 다퉜으나 전투에 패하고 힘이 다해 이에 머리로써 부주산(不周山)에 부딪쳐 죽었는데 천주(天柱)가 부러졌다. 여왜(女媧)가 5색의 돌을 불려(煉) 하늘을 보수했으므로 고로 동쪽으로 기울어 물이 흐른다. 또 열자에 이르되 음양이 법도를 잃어 이신(二辰; 해와 달)이 영축(盈縮; 남음과 모자람)함을 결(缺)이라 이름한다. 형체가 이지러져 보수한다고 이름함은 필요치 않다. 여왜가 오행(五行; 금ㆍ목ㆍ수ㆍ화ㆍ토)과 오상(五常; 인ㆍ의ㆍ례ㆍ지ㆍ신)의 정(精)을 불려 음양을 조화했으며 귀도(晷度; 晷는 해 그림자)의 순서가 같지 못하여 기질(氣質)로 서로 보수하였다. ◆女媧; 왜황(媧皇)이니 이는 상고의 모계씨족 시기에 취락의 수령이나 혹 부족의 수령임. 서로 전하기를 이는 화서씨(華胥氏)의 딸이라 하며 복희(伏羲)와는 이 혈친이면서 겸해 배우자라 함. 여왜는 옛 신녀이면서 제(帝)가 되었다는 명예를 입은 자임. 이는 염(炎)ㆍ황(黃) 2제(帝)의 모족(母族)이 되며 지위가 삼황오씨(三皇五氏)의 하나에 늘어섬 [백도백과].
上堂 光透日月 明暗不收 智出聖凡 賢愚不歷 所以道 不用低頭 思量難得 良久曰 是甚麽 上堂 靑蘿夤緣 直上寒松之頂 白雲淡泞 出沒太虛之中 何似南山起雲 北山下雨 若也會得 甜瓜徹蔕甜 若也不會 苦瓠連根苦 上堂 無邊刹境 自他不隔於毫端 且道妙喜世界 不動如來 說甚麽法 十世古今 始終不離於當念 祇如威音王佛最初一會 度多少人 若是通方作者 試爲道看 良久曰 行路難 行路難 萬仞峯頭君自看 上堂 枯桑知天風 海水知天寒 金色頭陀 見處不眞 鷄足山中 與他看守衣鉢 三千大喻 八百小喻 大似泥裏洗土塊 四十九年 三百六十餘會 摩竭提國猶較些子 德山臨濟 雖然丈夫 爭似罽賓國王 一刀兩段 如今若有箇人鼻孔遼天 山僧性命何在 良久曰 太平本是將軍致 不許將軍見太平 喝一喝 下座
●十世; 華嚴經隨疏演義鈔二 謂過去說過去 過去說現在 過去說未來 現在說過去 現在說平等 現在說未來 未來說過去 未來說現在 未來說無盡 三世說一念 前九爲別 一念爲總 故名十世
●三百六十餘會; 大慧語錄二十二云 佛是通變底人 於四十九年中 三百六十餘會說法
상당(上堂) 광(光)이 일월을 투과하는지라 명암으로 거두지 못하고 지(智)가 성범(聖凡)을 초출하는지라 현우(賢愚)를 겪지(歷) 않는다. 소이로 말하되 머리 숙임을 쓰지 않고 사량으로 얻기 어렵다. 양구하고 가로되 이 뭣고. 상당(上堂) 청라(靑蘿)는 인연(夤緣)하여 바로 한송(寒松)의 꼭대기에 오르고 백운은 담저(淡泞; 泞는 맑을 저)히 태허(太虛; 큰 허공) 중에 출몰하거니와 어찌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고 북산에 비가 내림과 같겠는가. 만약에 회득(會得)한다면 단 오이는 꼭지까지(徹蔕) 달고 만약에 불회(不會)한다면 쓴 박은 뿌리까지(連根) 쓰다. 상당(上堂) 무변한 찰경(刹境)의 자타(自他)가 털끝(毫端)만큼도 막히지 않는다 하니 차도(且道)하라, 묘희세계(妙喜世界)의 부동여래(不動如來)가 무슨 법을 설하느냐. 십세(十世)의 고금(古今)의 시종(始終)이 당념(當念)을 여의지 않는다 하니 지여(祇如) 위음왕불(威音王佛)이 최초의 일회(一會)에 다소(多少)의 사람을 제도했는가. 만약 이 통방작자(通方作者)라면 시험 삼아 말해 보아라. 양구하고 가로되 행로(行路)가 어렵나니 행로가 어렵나니 만인봉두(萬仞峯頭)에서 그대가 스스로 보아라. 상당(上堂) 고상(枯桑)이 천풍(天風)을 알고 해수(海水)가 천한(天寒)을 알겠는가. 금색두타(金色頭陀; 가섭)가 견처(見處)가 참답지 못해 계족산중(鷄足山中)에서 그(미륵)를 위해(與) 의발(衣鉢)을 간수(看守)한다. 삼천대유(三千大喻)와 팔백소유(八百小喻)는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음과 매우 흡사하다. 사십구 년 동안 삼백육십여회(三百六十餘會)에 마갈제국(摩竭提國)이 오히려 조금 상당하다(較些子). 덕산과 임제가 비록 그러히 대장부지만 계빈국왕(罽賓國王)이 일도양단(一刀兩段)함만 어찌 같겠는가. 여금에 만약 어떤 사람(有箇人)이 비공(鼻孔)이 요천(遼天)한다면 산승의 성명(性命)이 어찌 있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태평은 본시(本是) 장군이 이루지만(致) 장군이 태평을 봄을 허락하지 않는다. 할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十世; 화엄경수소연의초2. 이르자면 과거에 과거를 설하고 과거에 현재를 설하고 과거에 미래를 설하고 현재에 과거를 설하고 현재에 평등을 설하고 현재에 미래를 설하고 미래에 과거를 설하고 미래에 현재를 설하고 미래에 무진을 설하고 3세(世)에 1념(念)을 설한다. 앞 9는 별(別)이 되고 1념은 총(總)이 되나니 고로 이름이 10세(世)다.
●三百六十餘會; 대혜어록22에 이르되 부처는 이 통변(通變)하는 사람이다. 49년 중 360여 회(會) 설법했다.
僧問 天不能葢 地不能載 未審是甚麽人 師曰 掘地深埋 曰 此人還受安排也無 師曰 土上更加泥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長江無六月 曰 見後如何 師曰 一年一度春 室中問僧 無手人能行拳 無舌人解言語 忽然無手人打無舌人 無舌人道箇甚麽 又曰 蜀魄連宵呌 鵽鳭終夜啼 圓通門大啓 何事隔雲泥 晩年以疾居池陽杉山菴 門弟子智才住臨平之佛日 迎歸侍奉 才如蘇城未還 師速其歸 及踵門 師告之曰 時至 吾行矣 才曰 師有何語示徒 乃說偈曰 紅日照扶桑 寒雲封華嶽 三更過鐵圍 拶折驪龍角 才問 卵塔已成 如何是畢竟事 師擧拳示之 遂就寢 推枕而寂 塔全身寺東之原 崇寧中諡振宗禪師
●蜀魄; 祖庭事苑五 蜀魄 卽杜宇也 華陽國志云 鳥有名杜宇者 其大如鵲 其聲哀而吻有血 土人云 春至則鳴 聞其初聲者 則有別離之苦 人皆惡聞之 又成都記曰 杜宇亦曰杜主 自天而降 稱望帝 好稼穡 至今蜀人將農者 必先祀杜主 時荊州人鼈靈死 其尸泝流而上 至文山下復生 見望帝 帝因以爲相 號曰開明 會巫山壅江人遭洪水 開明爲鑿通流 有大功 望帝因以位禪焉 後望帝死 其魂化爲鳥 名杜宇 一名杜鵑 亦曰子規
●鵽鳭; 祖庭事苑五 鵽鳭 上都括切 鵽 鳩鳥名 大如鴿 無後趾 下陟交切 鳭䴃 黃鳥也 好剖葦皮 食其中蟲 或音刀 非也
●雲泥; 與天地天壤同義
●踵門; 親自上門
●卵塔; 無縫塔之一 塔身無縫稜級層等而呈現卵形者 卽用一碑石造成似鳥卵之橢圓形塔 作爲僧侶之墓碑 浙江鄞縣天童寺東谷庵之宋代宏智正覺禪師墓塔卽爲卵塔 又或以卵塔卽稱無縫塔 [林間錄上 象器箋殿堂類]
승문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하나니 미심합니다,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땅을 파서 깊이 묻어라. 가로되 이 사람은 도리어 안배(安排)를 받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흙 위에 다시 진흙을 더하는구나.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장강(長江)에 6월이 없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1년에 한 차례 봄이다. 실중에서 중에게 묻되 무수인(無手人)이 능히 행권(行拳)하고 무설인(無舌人)이 언어(言語)할 줄 알거니와(解) 홀연히 무수인(無手人)이 무설인(無舌人)을 때리면 무설인이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우왈(又曰) 촉백(蜀魄)은 여러 날 밤(連宵; 連夜) 부르짖고/ 탈초(鵽鳭)는 밤새워(終夜) 우나니/ 원통문(圓通門)이 크게 열렸거늘(啓)/ 무슨 일이 운니(雲泥)처럼 막히리오. 만년에 질병 때문에(以疾) 지양(池陽)의 삼산암(杉山菴)에 거주했다. 문제자(門弟子) 지재(智才)가 임평(臨平)의 불일(佛日)에 주(住)하면서 맞이해 돌아와 시봉했다. 지재가 소성(蘇城)에 가서(如) 귀환하지 않자 스님이 속히 그를 돌아오게 했다. 및 종문(踵門)하자 스님이 고해 가로되 때가 이르렀으니 내가 갈 것이다. 재왈(才曰) 스님이 무슨 말씀이 있어 시도(示徒)하겠습니까. 이에 게를 설해 가로되 홍일(紅日)이 부상(扶桑)을 비추고/ 한운(寒雲)이 화악(華嶽)을 봉(封)했다/ 3경(更)에 철위(鐵圍)를 지나면서/ 이룡(驪龍)의 뿔을 찰절(拶折; 압박해 꺾다)했다. 지재가 묻되 난탑(卵塔)을 이미 이루었습니다. 무엇이 이 필경사(畢竟事)입니까. 스님이 주먹을 들어 보였다. 드디어 취침(就寢)하여 베개를 밀치고 적(寂)했다. 사원 동쪽의 언덕(原)에 전신(全身)으로 탑을 세웠다. 숭녕(崇寧; 1102-1106) 중 시(諡)하여 진종선사(振宗禪師)라 했다.
●蜀魄; 조정사원5. 촉백(蜀魄) 곧 두우(杜宇; 두견새)임.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이르되 새에 이름이 두우(杜宇)라고 하는 것이 있나니 그 크기는 까치와 같고 그 소리가 애달프고 부리(吻은 입술 문. 입가 문)에 피가 있다. 토인(土人; 土著民)이 이르되 봄이 이르면 곧 우는데 그 처음 소리를 들은 자는 곧 별이(別離)의 고(苦)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다 그것을 듣는 걸 싫어한다. 또 성도기(成都記; 成都는 三國時代 蜀의 都邑地)에 가로되 두우(杜宇)는 또한 가로되 두주(杜主)니 하늘로부터 내려왔으며 망제(望帝)라고 일컬었다. 가색(稼穡; 稼는 심다. 穡은 거두다)을 좋아해 지금(至今)도 촉인(蜀人)이 장차 농사를 하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두주(杜主)에게 제사한다. 때에 형주(荊州) 사람 별령(鼈靈)이 죽었는데 그 시체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문산(文山) 아래 이르러 다시 살아났으며 망제(望帝)를 뵈었다. 망제가 인하여 재상으로 삼고 호를 가로되 개명(開明)이라 했다. 마침(會는 洽임. 正値임) 무산(巫山)의 옹강(壅江) 사람이 홍수를 만나자 개명(開明)이 굴착하여 흐름을 통하게 해 큰 공이 있었다. 망제가 인하여 제위(帝位)를 양위(禪)했다. 뒤에 망제가 죽어 그 혼이 변화해 새가 되었는데 이름이 두우(杜宇)다. 일명 두견(杜鵑)이며 또한 가로되 자규(子規)임.
●鵽鳭; 조정사원5. 탈초(鵽鳭) 상은 도괄절(都括切)임. 탈(鵽)은 구조(鳩鳥; 비둘기)의 이름임. 크기는 집비둘기와 같고 뒷발가락(後趾)이 없음. 하는 척교절(陟交切; 쵸)이며 초뇨(鳭䴃; 䴃는 꾀꼬리 뇨)니 황조(黃鳥)임. 갈대 껍질 쪼개기를 좋아하며 그 가운데의 벌레를 먹음. 혹은 음을 도(刀)라 하면 그름.
●雲泥; 천지, 천양(天壤)과 같은 뜻.
●踵門; 친히 스스로 문에 오름.
●卵塔; 무봉탑(無縫塔)의 하나. 탑신이 솔기ㆍ모서리ㆍ급층(級層; 層階) 등이 없이 난형(卵形)을 나타내어 보이는 것. 곧 하나의 비석을 써서 새알 같이 조성한 타원형의 탑. 만들어 승려의 묘비로 삼음. 절강 은현 천동사 동곡암의 송대 굉지정각선사의 묘탑(墓塔)이 곧 난탑이 됨. 또 혹 난탑을 곧 무봉탑으로 호칭함 [임간록상. 상기전전당류].
越州稱心省倧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行人念路 僧曰 不會 師曰 緊峭草鞋 上堂 佛種從緣起 是故說一乘 拈拄杖曰 拄杖是緣 那箇是佛種 拄杖是一乘法 那箇是緣 這裏參見釋迦老子了 却買草鞋行脚 不得向衲僧門下過 打折汝腰 且道衲僧據箇甚麽 良久曰 三十年後 莫孤負人 卓拄杖 下座
월주(越州) 칭심(稱心) 성종선사(省倧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행인이 길을 염려한다(念). 승왈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짚신을 질끈 동여라(緊峭草鞋). 상당(上堂) 불종(佛種)은 연(緣; 인연)을 좇아 일어나나니 이런 고로 일승(一乘)을 설한다(법화경 방편품).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주장자는 이 연(緣)이다. 어느 것(那箇)이 이 불종(佛種)인가. 주장자는 이 일승법이다. 어느 것이 이 연(緣)인가. 저리(這裏)에서 석가노자(釋迦老子)를 참견(參見)해 마치고 도리어 짚신을 사서 행각해야 하거니와 납승의 문하(門下)를 향해 지나감을 얻지 말아야 하나니 너의 허리를 타절(打折)하리라. 차도(且道)하라, 납승이 저(箇) 무엇에 의거(依據)하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30년 후에 사람을 저버리지(孤負) 말아라.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泉州承天傳宗禪師
僧問 大用現前 不存軌則時如何 師曰 承天今日高竪降旗 僧便喝 師曰 臨濟兒孫 僧又喝 師便打 問 如何是般若體 師曰 雲籠碧嶠 曰 如何是般若用 師曰 月在淸池
천주(泉州) 승천(承天) 전종선사(傳宗禪師)
승문 대용(大用)이 현전하여 궤칙을 두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승천(承天)이 금일 항기(降旗)를 높이 세웠다. 중이 바로 할했다. 사왈 임제의 아손이구나. 중이 또 할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반야체(般若體)입니까. 사왈 구름이 벽교(碧嶠)를 에웠다. 가로되 무엇이 이 반야용(般若用)입니까. 사왈 달이 청지(淸池)에 있다.
處州南明日愼禪師
僧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曰 水天影交碧 曰 畢竟是同是別 師曰 松竹聲相寒
처주(處州) 남명(南明) 일신선사(日愼禪師)
승문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수천(水天)의 그림자가 푸름(碧)을 교차한다. 가로되 필경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송죽(松竹)의 소리가 서로 차다(寒).
舒州投子法宗禪師〈時稱道者〉
僧問 如何是道者家風 師曰 袈裟裹草鞋 曰 意旨如何 師曰 赤脚下桐城
서주(舒州) 투자(投子) 법종선사(法宗禪師)〈당시에 호칭이 道者〉
승문 무엇이 이 도자(道者)의 가풍입니까. 사왈 가사로 짚신을 싼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맨발로 동성(桐城)에 내려간다.
天台寶相蘊觀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堂堂八尺餘
천태(天台) 보상(寶相) 온관선사(蘊觀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당당히 8척 남짓이다.
岳州君山顯昇禪師
上堂 大方無外 含褁十虛 至理不形 圓融三際 高超名相 妙體全彰 迥出古今 眞機獨露 握驪珠而鑑物 物物流輝 擲寶劒以揮空 空空絕迹 把定則摩竭掩室 淨名杜詞 放行則拾得搖頭 寒山拊掌 且道是何人境界 拈拄杖卓一下曰 瞬目揚眉處 憑君子細看
악주(岳州) 군산(君山) 현승선사(顯昇禪師)
상당(上堂) 대방(大方)은 밖이 없어 십허(十虛; 十方虛空)를 함과(含褁)하고 지리(至理)는 형상이 아니라서 삼제(三際)에 원융(圓融)하다. 명상(名相)을 높이 초월하여 묘체(妙體)가 전부 나타나고(彰) 고금을 멀리(迥) 벗어나서 진기(眞機)가 독로(獨露)한다. 이주(驪珠)를 움켜쥐어 물건을 비추니(鑑) 물건마다 빛을 흘리고(流輝) 보검을 던져 허공에 휘두르니 허공마다 자취가 끊겼다. 파정(把定)하면 곧 마갈(摩竭)에서 엄실(掩室)하고 정명(淨名)이 두사(杜詞; 言詞를 닫다)하며 방행(放行)하면 곧 습득이 요두(搖頭)하고 한산이 부장(拊掌)한다. 차도(且道)하라, 이 어떤 사람의 경계인가. 주장자를 잡아 한 번 치고 가로되 순목양미(瞬目揚眉)하는 곳에 그대에게 맡기나니(憑) 자세히 보아라.
平江府水月寺惠金典座
依明覺於雪竇 聞擧須彌山話 默有契 一日欲往訊 遇之殿軒 覺問 汝名甚麽 曰 惠金 覺曰 阿誰惠汝金 曰 容少間去方丈致謝 覺曰 卽今聻 曰 這裏容和尙不得
평강부(平江府) 수월사(水月寺) 혜금전좌(惠金典座)
설두에서 명각(明覺)에게 의지했다. 수미산화(須彌山話)를 드는 것을 듣고 묵묵히 계합함이 있었다. 어느 날 가서 문신(問訊; 訊)하려고 했는데 전헌(殿軒; 殿堂)에서 만났다. 명각이 묻되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가로되 혜금(惠金)입니다. 각왈(覺曰) 누가(阿誰) 너에게 금을 베풀었는가(惠). 소간(少間; 조금 후)에 방장에 가서 치사(致謝)함을 용납하십시오. 각왈 즉금은(卽今聻). 가로되 저리(這裏)는 화상을 용납함을 얻지 못합니다.
修撰曾會居士
幼與明覺同舍 及冠異途 天禧間 公守池州 一日會于景德寺 公遂引中庸大學 參以楞嚴 符宗門語句 質明覺 覺曰 這箇尙不與敎乘合 況中庸大學邪 學士要徑捷理會此事 乃彈指一下曰 但恁麽薦取 公於言下領旨 天聖初 公守四明 以書幣迎師補雪竇 旣至 公曰 某近與淸長老商量趙州勘婆子話 未審端的有勘破處也無 覺曰 淸長老道箇甚麽 公曰 又與麽去也 覺曰 淸長老且放過一著 學士還知天下衲僧出這婆子圈䙡不得麽 公曰 這裏別有箇道處 趙州若不勘破 婆子一生受屈 覺曰 勘破了也 公大笑
●修撰; 官名 唐代史館有修撰 掌修國史 宋實錄院有修撰官掌修實錄 遼國史院與元明淸翰林院 皆有修撰官 明淸通常授予一甲第一名進士 一般於殿試揭曉後 一甲第一名進士(狀元) 卽授翰林院修撰 [百度百科]
수찬(修撰) 증회거사(曾會居士)
어릴 적에 명각(明覺)과 동사(同舍; 같은 宿舍)였다. 관(冠)에 이르러 이도(異途)였다. 천희(天禧; 1017-1021) 간 공(公)이 지주(池州)를 수(守; 다스리다)했다. 어느 날 경덕사(景德寺)에서 만났는데 공이 드디어 중용과 대학을 인용하고 릉엄을 섞어(參) 종문의 어구(語句)에 부합(符合)시키면서 명각에게 질문했다. 각왈(覺曰) 저개(這箇)는 오히려 교승(敎乘)과도 합하지 않거늘 하물며 중용과 대학이겠습니까. 학사(學士)가 경첩(徑捷)으로 차사(此事)를 이회(理會)하려고 한다면, 이에 한 번 탄지(彈指)하고 가로되 단지 이렇게 천취(薦取)하시라. 공이 언하에 영지(領旨)했다. 천성(天聖; 1022-1031) 초 공이 사명(四明)을 다스렸다(守). 서폐(書幣)로써 스님을 맞이해 설두(雪竇)를 맡겼다(補). 이미 이르자 공왈(公曰) 모(某)가 요사이 청장로(淸長老)와 조주감파자화(趙州勘婆子話)를 상량(商量)했는데 미심하나니 단적(端的)히 감파처(勘破處)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각왈(覺曰) 청장로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공왈 또 이렇게 가는구나 했습니다. 각왈 청장로는 다만(且) 일착(一著)을 방과(放過)했습니다. 학사(學士)는 천하 납승이 이 파자(婆子)의 권괴(圈䙡; 올가미)를 벗어남을 얻지 못함을 도리어 압니까. 공왈 저리(這裏)에 달리 말할 곳이 있습니다. 조주가 만약 감파하지 못했다면 파자가 일생에 수굴(受屈)했을 것입니다. 각왈 감파해 마쳤습니다. 공이 크게 웃었다.
●修撰; 벼슬 이름. 당대 사관(史館)에 수찬이 있었고 수국사(修國史; 국사를 修撰함)를 관장했음. 송(宋) 실록원에 수찬이 있어 수실록(修實錄)을 관장했음. 요(遼) 국사원과 원ㆍ명ㆍ청 한림원에 모두 수찬관이 있었음. 명ㆍ청에선 통상(通常) 1갑(甲) 제1명(名) 진사에게 수여했고 일반으론 전시(殿試)에서 게효(揭曉; 결과를 공개)한 후 1갑 제1명 진사(進士; 狀元)에게 곧 한림원 수찬을 수여했음 [백도백과].
延慶榮禪師法嗣
廬山圓通居訥祖印禪師
梓州人 姓蹇氏 生而英特 讀書過目成誦 十一出家 十七試法華得度 受具後肄業講肆 耆年多下之 會禪者南遊回 力勉其行 於是徧參荊楚間 迄無所得 至襄州洞山 留止十年 因讀華嚴論有省 後游廬山 道價日起 由歸宗而遷圓通 仁廟聞其名 皇祐初 詔住十方淨因禪院 師稱目疾 不能奉詔 有旨令擧自代 遂擧大覺璉應詔 及引對 問佛法大意稱旨 天下賢師知人也 僧問 祖刹重興時如何 師曰 人在破頭山 曰 一朝權在手 師便打
●耆年; 耆 六十歲的老人 又泛指老年 老人 ▲祖庭事苑六 耆年 渠伊切 老也 一曰至也 至於老境 又云指也 謂指事於人 不自執役也
●引對; 謂皇帝召見臣僚詢問對答
여산(廬山) 원통(圓通) 거눌(居訥) 조인선사(祖印禪師)
재주(梓州) 사람이며 성이 건씨(蹇氏)다. 출생하자 영특(英特)했고 독서하면서 눈에 스치면(過) 외움(誦)을 이루었다. 11에 출가했고 17에 법화(法華)를 시험하여 득도(得度)했다. 수구(受具)한 후에 강사(講肆)에서 이업(肄業; 업을 익히다)했는데 기년(耆年)을 다분히 하시(下視)했다. 마침(會) 선자(禪者)가 남유(南遊)하고 돌아와 힘껏 그 행(行)을 권했다(勉). 이에 형초(荊楚) 사이를 편참(徧參)했으나 마침내(迄) 소득이 없었다. 양주(襄州) 동산(洞山)에 이르러 10년을 유지(留止)했는데 화엄론을 읽음으로 인해 살핌이 있었다. 후에 여산(廬山)을 유람했는데 도가(道價)가 날로 일어났다. 귀종(歸宗)을 경유하여 원통(圓通)으로 옮겼다. 인묘(仁廟)가 그의 이름을 들었고 황우(皇祐; 1046-1053) 초 조칙으로 시방정인선원(十方淨因禪院)에 주(住)하게 하자 스님이 목질(目疾)을 일컬으며 능히 봉조(奉詔)하지 못한다 했다. 성지(聖旨)가 있어 자기를 대체할 이를 천거하게 하자(令擧自代) 드디어 대각련(大覺璉)을 천거해 응조(應詔)하게 했다. 및 인대(引對)하여 불법의 대의를 물어 성지(聖旨)에 알맞았고(稱) 천하의 현사(賢師)며 지인(知人)이라 했다. 승문 조찰(祖刹)이 중흥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사람이 파두산(破頭山)에 있다. 가로되 일조(一朝)에 권력이 손에 있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耆年; 기(耆)는 60세의 노인. 또 널리 노년ㆍ노인을 가리킴. ▲조정사원6. 기년(耆年) 거이절(渠伊切; 기)이니 로(老)임. 혹은 가로되 지(至)니 노경에 이름임. 또 이르되 지(指)니 이르자면 사람에게 일을 가리키고 스스로 집역(執役; 勞役을 가짐)하지 않음임.
●引對; 이르자면 황제가 신료(臣僚)를 소견(召見)하여 순문(詢問; 묻다)하고 대답함.
百丈映禪師法嗣
臨安府慧因懷祥禪師
上堂 南山高 北山低 日出東方夜落西 白牛上樹覓不得 烏鷄入水大家知 且道覓得後又如何 良久曰 堪作甚麽
임안부(臨安府) 혜인(慧因) 회상선사(懷祥禪師)
상당(上堂) 남산은 높고 북산은 낮고 해가 동방에서 나와 밤에 서쪽에 떨어진다. 백우(白牛)가 나무에 오르매 찾음을 얻지 못하고 오계(烏鷄)가 입수(入水)하매 대가(大家; 대중)가 안다. 차도(且道)하라, 멱득(覓得)한 후에 또 어떠한가. 양구하고 가로되 차마 무엇하겠는가(堪作甚麽).
臨安府慧因義寧禪師
僧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曰 摩耶夫人 曰 出世後如何 師曰 悉達太子
임안부(臨安府) 혜인(慧因) 의녕선사(義寧禪師)
승문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마야부인이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실달태자다.
南華緣禪師法嗣
齊州興化延慶禪師
上堂 言前薦得 孤負平生 句後投機 全乖道體 離此二途 祖宗門下又且如何 良久曰 眼裏瞳兒吹木笛
제주(齊州) 흥화(興化) 연경선사(延慶禪師)
상당(上堂) 언전(言前)에 천득(薦得)하면 평생을 고부(孤負; 저버리다)하고 구후(句後)에 투기(投機)하면 도체(道體)를 전괴(全乖; 전부 거스르다)한다. 이 이도(二途)를 여의고서 조종문하(祖宗門下)는 우차(又且) 어떠한가. 양구하고 가로되 안리(眼裏)의 동아(瞳兒)가 목적(木笛)을 분다.
韶州寶壽行德禪師
冬日在南華受請 示衆曰 新冬新寶壽 言是舊時言 若會西來意 波斯上舶船
소주(韶州) 보수(寶壽) 행덕선사(行德禪師)
동일(冬日; 동짓날)에 남화(南華)에 있으면서 수청(受請)했다. 시중(示衆)해 가로되 신동(新冬)에 신보수(新寶壽)며/ 언(言)은 이 구시의 언이다/ 만약 서래의를 안다면/ 파사(波斯; 파사인)가 박선(舶船)에 오른다.
韶州白虎山守昇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有眼無鼻孔
소주(韶州) 백호산(白虎山) 수승선사(守昇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눈은 있으나 콧구멍이 없다.
北禪賢禪師法嗣
潭州興化紹銑禪師
上堂拈拄杖曰 一大藏敎 是拭不淨故紙 超佛越祖之談 是誑𧬵閭閻漢 若論衲僧門下 一點也用不得 作麽生是衲僧門下事 良久曰 多虛不如少實 擊香臺 下座
담주(潭州) 흥화(興化) 소선선사(紹銑禪師)
상당하여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일대장교(一大藏敎)는 이 부정(不淨)을 닦는 고지(故紙)며 초불월조지담(超佛越祖之談)은 이 여염(閭閻)을 광하(誑𧬵; 속이다)하는 자다. 만약 납승문하(衲僧門下)를 논하자면 일점도 또한 씀을 얻지 못한다. 무엇이(作麽生) 이 납승의 문하사(門下事)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다허(多虛)가 소실(少實)만 같지 못하다. 향대(香臺)를 치고 하좌했다.
洪州法昌倚遇禪師
漳州林氏子 幼棄家 依郡之崇福得度 有大志 自受具游方 名著叢席 浮山遠和尙嘗指謂人曰 此後學行脚樣子也 參北禪 禪問 近離甚處 師曰 福嚴 禪曰 思大鼻孔長多少 師曰 與和尙當時見底一般 禪曰 汝道我見時長多少 師曰 和尙大似不曾到福嚴 禪曰 學語之流 又問 來時馬大師安樂否 師曰 安樂 禪曰 向汝道甚麽 師曰 敎和尙莫亂統 禪曰 念汝新到 不能打得你 師曰 某甲亦放和尙過 茶罷 禪問 鄕里甚處 師曰 漳州 禪曰 三平在彼作甚處 師曰 說禪說道 禪曰 年多少 師曰 與露柱齊年 禪曰 有露柱且從 無露柱年多少 師曰 無露柱 一年也不少 禪曰 夜半放烏鷄 師留北禪最久 於是師資敲唱 妙出一時
홍주(洪州) 법창(法昌) 의우선사(倚遇禪師)
장주(漳州) 임씨(林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집을 버리고 군(郡)의 숭복(崇福)에 의지해 득도(得度)했다. 대지(大志)가 있었고 수구(受具)하고 유방(游方)함으로부터 명성이 총석(叢席)에 현저(顯著; 著)했다. 부산원(浮山遠) 화상이 일찍이 가리키며 사람에게 일러 가로되 차후(此後)에 행각을 배우는 양자(樣子)다. 북선(北禪)을 참하자 북선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사왈 복엄(福嚴)입니다. 선왈(禪曰) 사대(思大)의 비공(鼻孔)의 길이가 얼마인가. 사왈 화상이 당시에 본 것과 더불어 일반(一般)입니다. 선왈 네가 말하라, 내가 보았을 때 길이가 얼마인가. 사왈 화상은 일찍이 복엄(福嚴)에 이르지 않은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大似). 선왈 학어(學語)하는 무리로구나. 우문(又問) 올 때 마대사(安樂)가 안락(安樂)하던가. 사왈 안락하더이다. 선왈 너를 향해 무어라고 말하던가. 사왈 화상으로 하여금 난통(亂統; 법통을 어지럽히다)하지 말게 했습니다. 선왈 네가 신도(新到)임을 염려하여 능히 너를 타득(打得)하지 못한다. 사왈 모갑도 또한 화상의 허물을 방면(放免; 放)합니다. 다파(茶罷)하자 선문(禪問) 향리(鄕里)가 어느 곳인가. 사왈 장주(漳州)입니다. 선왈 삼평(三平)이 거기에 있으면서 무엇하던가. 사왈 설선설도(說禪說道)하더이다. 선왈 나이가 얼마인가. 사왈 노주(露柱)와 제등(齊等)한 나이입니다. 선왈 노주가 있다면 다만(且) 좇겠지만 노주가 없다면 나이가 얼마인가. 사왈 노주가 없더라도 1년도 또한 적지(少) 않습니다. 선왈 야반에 오계(烏鷄)를 놓는구나. 스님이 북선에 머묾이 가장 오래되었다. 이에 사자(師資)가 고창(敲唱)하면서 묘함이 일시(一時)를 초출했다.
晩至西山 睠雙嶺深𨗉 棲息三年 始應法昌之請 師在雙嶺受請 與英勝二首座相別曰 三年聚首 無事不知 檢點將來 不無滲漏 以拄杖畫一畫曰 這箇卽且止 宗門事作麽生 英曰 須彌安鼻孔 師曰 恁麽則臨崖看滸眼 特地一場愁 英曰 深沙努眼睛 師曰 爭奈聖凡無異路 方便有多門 英曰 鐵蛇鑽不入 師曰 這般漢有甚共語處 英曰 自緣根力淺 莫怨太陽春 却畫一畫曰 宗門事且止 這箇事作麽生 師便掌 英曰 這漳州子 莫無去就 師曰 你這般見解 不打更待何時 又打 英曰 也是老僧招得
만년에 서산(西山)에 이르러 쌍령(雙嶺)을 돌아보매(睠) 심수(深𨗉)한지라 서식(棲息)한 지 3년 만에 비로소 법창(法昌)의 청에 응했다. 스님이 쌍령(雙嶺)에 있으면서 수청(受請)하고는 영(英)ㆍ승(勝) 2수좌와 상별(相別)하며 가로되 3년 동안 취수(聚首)하면서 알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검점(檢點)하여 가지고 오매 삼루(滲漏)가 없지 않다. 주장자로써 그어 한 번 긋고 가로되 저개(這箇)는 곧 차지(且止; 且置와 같음)하고 종문사(宗門事)는 어떠한가. 영왈(英曰) 수미(須彌)를 콧구멍에 안치(安置; 安)한다. 사왈 이러하다면 곧 임애(臨崖)하여 물가(滸)를 보는 눈이니 특지(特地) 한바탕의 수심(愁心)이다. 영왈(英曰) 심사(深沙; 深沙神)가 눈동자를 부릅뜬다(努). 사왈 성범(聖凡)이 이로(異路)가 없으나 방편에 다문(多門)이 있음을 어찌하겠는가(爭奈). 영왈 철사(鐵蛇)가 뚫어도 들어가지 못한다. 사왈 저반한(這般漢; 이러한 자)과 무슨 함께 말할 곳이 있겠는가. 영왈 스스로 근력(根力)이 얕기 때문(緣)이니 태양(太陽)의 봄(春)을 원망하지 말아라. 도리어 그어 한 번 긋고 가로되 종문사(宗門事)는 차지(且止)하고 저개사(這箇事)는 어떠한가. 스님이 바로 장(掌)했다. 영왈 이 장주(漳州)의 자(子; 남자)는 거취(去就)가 없지 않구나. 사왈 네가 이러한(這般) 견해거늘 때리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또 때렸다. 영왈 또한 이는 노승(老僧)이 초득(招得)했다.
上堂 祖師西來 特唱此事 祇要時人知有 如貧子衣珠 不從人得 三世諸佛 祇是弄珠底人 十地菩薩 祇是求珠底人 汝等正是竛竮乞丐 懷寶迷邦 靈利漢纔聞擧著 眨上眉毛 便知落處 若更踏步向前 不如䇿杖歸山去 長嘯一聲煙霧深 示衆 我要一箇不會禪底作國師 上堂 汝若退身千尺 我便當處生芽 汝若覿面相呈 我便藏身露影 汝若春池拾礫 我便撒下明珠 直得水灑不著 風吹不入 如箇無孔鐵鎚相似 且道法昌還有爲人處也無 良久曰 利刀割肉瘡猶合 惡語傷人恨不銷
상당(上堂) 조사가 서래하여 특별히 차사(此事)를 제창(提唱; 唱)했음은 다만 시인(時人)이 지유(知有)함을 요했음이니 빈자(貧子)의 의주(衣珠)를 타인으로 좇아 얻지 않음과 같다. 삼세제불은 다만 이 농주(弄珠)하는 사람이며 십지보살은 다만 이 구주(求珠)하는 사람이며 너희 등은 바로 이 영병(竛竮; 걸음을 비틀거림)하며 걸개(乞丐)하면서 보배를 품고 미방(迷邦; 경계를 미혹함)한다. 영리한(靈利漢)이 겨우 거착(擧著)함을 들으면 눈썹을 깜작이면서(眨上; 上은 조사) 바로 낙처를 안다. 만약 다시 앞을 향해 답보(踏步)한다면 지팡이 짚고(䇿杖) 귀산(歸山)함만 같지 못하나니 장소(長嘯)하는 일성(一聲)에 연무(煙霧)가 깊다. 시중(示衆) 내가 일개(一箇)의 선(禪)을 알지 못하는 이를 요하여 국사(國師)를 만들겠다. 상당(上堂) 너희가 만약 천 척(尺)을 퇴신(退身)한다면 내가 바로 당처(當處)에 싹(芽)을 낼 것이며 너희가 만약 적면(覿面)하여 상정(相呈)한다면 내가 바로 몸을 감추면서 그림자를 드러낼 것이며 너희가 만약 춘지(春池)에서 자갈을 줍는다면 내가 바로 명주(明珠)를 뿌려 떨어뜨리겠다(撒下). 바로 물을 뿌려도 붙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들어가지 않음을 얻나니 마치 저(箇) 무공철추(無孔鐵鎚)와 상사(相似)하다. 차도(且道)하라, 법창(法昌)이 도리어 위인(爲人)하는 곳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이도(利刀)로 살을 베면(割肉) 상처(傷處; 瘡)가 오히려 아물거니와(合) 악어(惡語)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한(恨)이 사라지지(銷) 않는다.
上堂 春山靑春水綠 一覺南柯夢初足 携笻縱步出松門 是處桃英香馥郁 因思昔日靈雲老 三十年來無處討 如今競愛摘楊花 紅香滿地無人掃 上堂 拈起拄杖曰 我若拈起 你便喚作先照後用 我若放下 你便喚作先用後照 我若擲下 你便喚作照用同時 忽然不拈不放 你向甚麽處卜度 直饒會得倜儻分明 若遇臨濟德山 便須腦門會地 且道伊有甚麽長處 良久曰 曾經大海休誇水 除却須彌不是山
상당(上堂) 춘산(春山)은 푸르고 춘수(春水)는 초록이니/ 남가몽(南柯夢)을 한 번 깨매 처음으로 족하다/ 지팡이를 가지고(携笻) 걸음을 놓아(縱步) 송문(松門)을 나서니/ 이곳에 도영(桃英)의 향기가 복욱(馥郁; 풍기는 향기가 그윽함)하다. 인하여 석일(昔日)의 영운로(靈雲老)를 사유하나니/ 삼십 년 래로 찾을 곳이 없었다/ 여금에 경애(競愛)하며 양화를 따나니(摘楊花)/ 홍향(紅香)이 만지(滿地)하여 쓰는(掃) 사람이 없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염기(拈起; 집어 일으키다)하고 가로되 내가 만약 염기(拈起)하면 너희가 바로 선조후용(先照後用)이라고 불러 짓고 내가 만약 방하(放下)하면 너희가 바로 선용후조(先用後照)라고 불러 짓고 내가 만약 척하(擲下)하면 너희가 바로 조용동시(照用同時)라고 불러 짓는다. 홀연히 불념불방(不拈不放)하면 너희가 어느 곳을 향해 복탁(卜度)하겠는가. 직요(直饒; 가령) 회득(會得)하여 척당(倜儻; 明悟)이 분명하더라도 만약 임제나 덕산을 만난다면 바로 꼭 뇌문(腦門; 前額)이 땅과 만날(會地) 것이다. 차도(且道)하라, 그(伊)가 무슨 장처(長處)가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일찍이 대해(大海)를 겪었으니 물 자랑을 그만두고 수미(須彌)를 제각(除却)하면 이 산이 아니다.
上堂 夜半烏鷄誰捉去 石女無端遭指注 空王令下急搜求 唯心便作軍中主 雲門長驅 潙山隊伍 列五位槍旗 布三玄戈弩 藥山持刀 靑原荷斧 石鞏彎弓 禾山打鼓 陣排雪嶺長蛇 兵屯黃檗飛虎 木馬帶毛烹 泥牛和角煑 賞三軍 犒師旅 打葛藤 分露布 截海颺塵 橫山簸土 擊玄關 除徼路 多少平人受辛苦 無邊刹海競紛紛 三界聖凡無覓處 無覓處 還知否 昨夜雲收天宇寬 依然帶月啼高樹 上堂 閑來祇麽坐 拍手誰賡和 回頭忽見簸箕星 水墨觀音解推磨 拍手一下曰 還會麽 八十翁翁雖皓首 看看不見老人容
●空王; 佛之異名 法曰空法 佛曰空王 以空無一切邪執 爲入涅槃城之要門故也 ▲御註圓覺經上 佛爲萬法之主 故曰空王
●長驅; 指軍隊迅速地向遠方挺進
●長蛇; 長蛇陣 陣法名 語出孫子兵法 云 故善用兵 譬如率然 率然者 常山之蛇也 擊其首則尾至 擊其尾則首至 擊其中則首尾俱至 敢問 兵可使如率然乎 曰 可
●徼路; 巡邏警戒的道路
●天宇; 天 天下 世上
●賡和; 續用他人原韻或題意唱和
상당(上堂) 야반(夜半)에 오계(烏鷄)를 누가 잡아 갔는가(捉去)/ 석녀(石女)가 무단(無端)히 지주(指注; 指責)를 만났다/ 공왕(空王)의 영하(令下)에 급히 수구(搜求)하니/ 오직 마음이 바로 군중주(軍中主)가 된다. 운문(雲門)은 장구(長驅)하고 위산(潙山)은 대오(隊伍)를 지어 5위(位)의 창기(槍旗)를 나열하고 3현(玄)의 과노(戈弩; 창과 쇠뇌)를 펼쳤다. 약산(藥山)은 지도(持刀)하고 청원(靑原)은 하부(荷斧)하고 석공(石鞏)은 만궁(彎弓; 활을 당기다)하고 화산(禾山)은 타고(打鼓)하며 진(陣)은 설령(雪嶺)의 장사(長蛇)를 배열(排列; 排)하고 병(兵; 軍兵)은 황벽(黃檗)의 비호(飛虎)에 주둔(駐屯; 屯)한다. 목마(木馬)는 털까지(帶毛) 삶고(烹) 이우(泥牛)은 뿔까지(和角) 삶아서(煑) 삼군(三軍)에게 포상(褒賞; 賞)하고 사려(師旅; 軍師)를 호궤(犒饋; 犒)한다. 갈등을 짓고(打葛藤) 노포(露布)를 분포(分布; 分)하고 절해(截海)하여 양진(颺塵; 티끌을 날림)하고 횡산(橫山; 산을 가로지르다)하여 파토(簸土)하고 현관(玄關)을 치고 요로(徼路)를 제거하나니 다소의 평인(平人)이 신고(辛苦)를 받는다. 무변한 찰경(刹海)에 다투며(競) 분분(紛紛)하나니 3계(界)의 성범(聖凡)을 찾을 곳이 없다. 찾을 곳이 없음을 도리어 아느냐. 어젯밤 구름이 걷혀 천우(天宇)가 넓더니(寬) 의연(依然; 依前)히 달을 띠고 높은 나무에서 지저귄다. 상당(上堂) 한가하여(閑來) 지마(祇麽; 다만. 暫且) 앉아서 박수(拍手)하나니 누가 갱화(賡和)하는가. 희두(回頭)하매 홀연히 파기성(簸箕星)을 보나니 수묵관음(水墨觀音)이 퇴마(推磨; 밀어서 갈다)할 줄 안다. 한 번 박수하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팔십 옹옹(翁翁; 老翁)이 비록 흰 머리(皓首)지만 간간(看看; 눈으로 看著) 노인의 용모(容貌; 容)가 보이지 않는다.
●空王; 부처의 다른 이름. 법을 가로되 공법이며 부처를 가로되 공왕이니 일체의 삿된 집착이 공무(空無)함이 열반성에 드는 요문이 되는 연고임. ▲어주원각경상. 부처는 만법의 주인이 되기 때문에 고로 가로되 공왕(空王)이다.
●長驅; 군대가 신속지(迅速地)에 원방(遠方)을 향해 정진(挺進; 앞질러 나아감)함을 가리킴.
●長蛇; 장사진이니 진법의 이름이며 말이 손자병법에 나옴. 이르되 고로 잘 용병함은 비유컨대 솔연(率然)과 같다. 솔연이란 것은 상산(常山)의 뱀이다. 그 머리를 치면 곧 꼬리가 이르고 그 꼬리를 치면 곧 머리가 이르고 그 중앙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모두 이른다. 감히 묻나니 병(兵)을 가히 솔연과 같이 부리는가. 가로되 가하다.
●徼路; 순라(巡邏)하며 경계(警戒)하는 도로.
●天宇; 천. 천하. 세상.
●賡和; 타인의 원운(原韻) 혹은 제의(題意)에 이어 써서 창화(唱和)함.
上堂 法昌今日開爐 行脚僧無一箇 唯有十八高人 緘口圍爐打坐 不是規矩嚴難 免見諸人話墮 直饒口似秤鎚 未免燈籠勘破 不知道絕功勳 妄自修因證果 喝曰 但能一念回光 定脫一乘羈鎻 黃龍南禪師至 上堂 拏雲攫浪數如麻 點著銅睛眼便花 除却黃龍頭角外 自餘渾是赤斑蛇 法昌小刹 路遠山遙 景物蕭疎 游人罕到 敢謂黃龍禪師曲賜光臨 不唯泉石生輝 亦乃人天欣悅 然雲行雨施 自古自今 其奈爐鞴之所 鈍鐵尤多 良醫之門 病者愈甚 瘥病須求靈藥 銷頑必藉金錘 法昌這裏 有幾箇垛根阿師 病者病在膏肓 頑者頑入骨髓 若非黃龍老漢到來 總是虛生浪死 拈拄杖曰 要會麽 打麵還他州土麥 唱歌須是帝鄕人 僧問 古鏡未磨時如何 師曰 却須磨取 曰 未審如何下手 師曰 鏡在甚麽處 僧遂作一圓相 師便打曰 這漆桶 碌甎也不識
●口似秤鎚; 猶口似秤錘 比喩閉口無言
●光臨; 與光降同義 尊者來臨也
●自古自今; 自古以來自今已後
상당(上堂) 법창(法昌)이 금일 개로(開爐)했지만 행각승은 1개도 없고 오직 18고인(高人)이 있어 함구(緘口)하며 위로(圍爐)하여 앉았다(打坐). 이 규구(規矩)가 엄난(嚴難)함이 아니라 제인이 화타(話墮)함을 봄을 면하려 한다. 직요(直饒) 입이 칭추와 같더라도(口似秤鎚) 등롱(燈籠)의 감파(勘破)를 면하지 못한다. 도에는 공훈(功勳)이 끊어진 줄 알지 못하고서 허망하게 스스로 수인증과(修因證果)하나니, 할(喝)하고 가로되 단지 능히 일념 회광(回光)한다면 결정코(定) 일승(一乘)의 기쇄(羈鎻; 굴레와 쇠사슬)를 벗어난다. 황룡남(黃龍南) 선사가 이르자 상당했다. 나운확랑(拏雲攫浪; 구름을 잡고 파랑을 움킴)하는 수(數)가 삼(麻)과 같지만/ 동정(銅睛)의 눈을 점착(點著; 점 찍다)하매 바로 화(花; 空花)다/ 황룡의 두각(頭角)을 제각(除却)한 밖에 자여(自餘; 其餘)는 온통(渾) 이 적반사(赤斑蛇)다. 법창(法昌)은 소찰(小刹)이며 길도 멀고 산도 멀고(路遠山遙) 경물(景物)이 소소(蕭疎; 稀疏. 稀少)하여 유인(游人)이 드물게 이르거늘 감히 이르나니 황룡선사가 굽혀(曲) 광림(光臨)을 내리시니(賜) 천석(泉石)이 빛을 낼(生輝) 뿐만 아니라 또한 곧 인천(人天)이 흔열(欣悅)한다. 그러하여 운행우시(雲行雨施)는 자고자금(自古自今)이지만 노비지소(爐鞴之所)에 둔철(鈍鐵)이 더욱(尤) 많고 양의지문(良醫之門)에 병자가 더욱(愈) 심함을 어찌하겠는가. 병을 나으려면(瘥) 꼭 영약(靈藥)을 구해야 하고 완철(頑鐵; 頑)을 녹이려면 반드시 금추(金錘)를 빌려야 한다. 법창(法昌)의 이 속에 몇 개의 타근(垛根)하는 아사(阿師)가 있나니 병자(病者)는 병이 고황(膏肓)에 있고 완자(頑者)는 완(頑)이 골수(骨髓)에 들었다. 만약 황룡 노한이 도래하지 않았다면 모두(總) 이 허생낭사(虛生浪死)하리라.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알고자 하느냐. 국수를 만들려면(打麵) 도리어 저(他) 주토(州土)의 보리(麥)라야 하고 노래를 부르려면(唱歌) 꼭 이 제향(帝鄕; 京都)의 사람이라야 한다. 승문 고경(古鏡)을 갈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도리어 꼭 마취(磨取)하라.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떻게 하수(下手; 착수)합니까. 사왈 거울(鏡)이 어느 곳에 있느냐. 중이 드디어 1원상을 지었다.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이 칠통(漆桶)아, 녹전(碌甎)도 또한 알지 못하느냐.
●口似秤鎚; 구사칭추(口似秤錘)와 같음. 입 닫고 말이 없음에 비유.
●光臨; 광강(光降)과 같은 뜻. 존자가 와서 임함.
●自古自今; 자고이래(自古以來) 자금이후(自今已後).
師與感首座歲夜喫湯次 座曰 昔日北禪分歲 曾烹露地白牛 和尙今夜分歲 有何施設 師曰 臘雪連山白 春風透戶寒 座曰 大衆喫箇甚麽 師曰 莫嫌冷淡無滋味 一飽能消萬劫飢 座曰 未審是甚麽人置辦 師曰 無慚愧漢 來處也不知 英勝二首座到山相訪 英曰 和尙尋常愛點檢諸方 今日因甚麽却來古廟裏作活計 師曰 打草祇要蛇驚 英曰 莫塗糊人好 師曰 你又刺頭入膠盆作甚麽 英曰 古人道 我見兩個泥牛鬬入海 所以住此山 未審和尙見箇甚麽 師曰 你他時異日 有把茆葢頭 人或問你 作麽生祇對 英曰 山頭不如嶺尾 師曰 你且道 還當得住山事也無 英曰 使钁不及拖犂 師曰 還曾夢見古人麽 英曰 和尙作麽生 師展兩手 英曰 鰕跳不出斗 師曰 休將三寸燭 擬比太陽輝 英曰 爭奈公案見在 師曰 亂統禪和 如麻似粟
●置辦; 措置排辦
스님이 감수좌(感首座)와 세야(歲夜)에 끽탕(喫湯)하던 차에 좌왈(座曰) 석일(昔日) 북선(北禪; 智賢)이 분세(分歲; 除夜)에 일찍이 노지백우(露地白牛)를 삶았거니와 화상은 금야(今夜) 분세(分歲)에 무슨 시설(施設)이 있습니까. 사왈 납설(臘雪)이 산에 잇닿아(連) 희고 춘풍이 투호(透戶)하여 차다(寒). 좌왈(座曰) 대중은 저(箇) 무엇을 먹습니까. 사왈 냉담(冷淡)하여 자미(滋味)가 없다고 혐의하지 말지니 일포(一飽)하면 능히 만겁(萬劫)의 주림을 없앤다(消). 좌왈 미심하오니 이 어떤 사람이 치판(置辦)했습니까. 사왈 참괴가 없는 자(無慚愧漢)가 내처(來處)도 또한 알지 못하는구나. 영(英)ㆍ승(勝) 2수좌가 산에 이르러 상방(相訪)했다. 영왈(英曰) 화상은 심상(尋常)에 제방을 점검하기 좋아했거늘 금일은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고묘(古廟) 속으로 와서 활계(活計)를 짓습니까. 사왈 풀을 때림은 다만 뱀이 놀라기를 요함이다. 영왈(英曰) 사람을 도호(塗糊)하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사왈 네가 또 자두(刺頭; 埋頭)하여 교분(膠盆)에 들어가 무엇하느냐. 영왈 고인(古人; 龍山 또 이르되 隱山)이 말하되 내가 보매 두 개의 이우(泥牛)가 싸우며 입해(入海)하는지라 소이로 차산(此山)에 주(住)한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저(箇) 무엇을 봅니까. 사왈 네가 타시이일(他時異日)에 파모개두(把茆葢頭)함이 있을 적에 사람이 혹 너에게 물으면 어떻게 지대(祇對)하겠는가. 영왈 산두(山頭)가 영미(嶺尾)만 같지 못합니다. 사왈 네가 그래 말하라, 도리어 주산사(住山事)를 당득(當得; 堪當하다)하느냐 또는 아니냐. 영왈 괭이를 부림(使钁)이 타리(拖犂; 쟁기를 끌다)에 미치지 못합니다. 사왈 도리어 일찍이 꿈엔들 고인을 보았겠는가. 영왈 화상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두 손을 폈다. 영왈 새우가 뛰어도 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鰕跳不出斗). 사왈 세 치의 촛불을 가지고 태양의 빛(輝)에 비교하려 함을 그쳐라. 영왈 공안이 현재(見在)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법통을 어지럽히는 선화(亂統禪和)가 여마사속(如麻似粟)이다.
●置辦; 조치하여 배판(排辦; 안배)함.
龍圖徐公禧布衣時 與師往來 爲法喜之游 師將化前一日 作偈遺之曰 今年七十七 出行須擇日 昨夜問龜哥 報道明朝吉 徐覽偈聳然 邀靈源淸禪師同往 師方坐寢室 以院務誡知事曰 吾住此山二十三年 護惜常住 每自蒞之 今行矣 汝輩著精彩 言畢 擧拄杖曰 且道這箇分付阿誰 徐與靈源皆屛息 遂擲杖投牀 枕臂而化
●龍圖; 宋代龍圖閣學士的省稱 [百度百科]
●布衣; 布制的衣服 借指平民 布 指麻葛之類的織物
●龜哥; 古代鑽龜甲而卜吉凶 哥 兄也 美稱之也
●聳然; 一驚懼貌 聳 通悚 二高聳貌 三敬畏貌 聳 通竦
●屛息; 猶屛氣 形容注意力集中或恐懼
용도(龍圖) 서공(徐公) 희(禧)가 포의(布衣) 때 스님과 왕래하면서 법희(法喜)의 유희(游戲)로 삼았다. 스님이 장차 화(化; 천화)하기 하루 전에 게를 지어 남겨 가로되 금년에 칠십칠이니/ 출행(出行)하매 꼭 택일(擇日)해야 한다/ 어젯밤 귀가(龜哥)에게 물었더니/ 알려 말하되 명조(明朝)가 길하다. 서(徐)가 게를 열람하고는 용연(聳然)했다. 영원청(靈源淸; 惟淸) 선사를 맞이해(邀) 함께 갔다. 스님이 바야흐로 침실에 앉아 원무(院務)를 지사(知事)에게 경계(警戒; 誡)해 가로되 내가 이 산에 거주한 지 23년이다. 상주(常住)를 호석(護惜)하면서 매번 스스로 그에 임했다(蒞). 이제 가리니 너희 무리(汝輩)는 정채(精彩)를 붙여라. 말을 마치자 주장자를 들고 가로되 차도(且道)하라, 저개(這箇)를 누구(阿誰)에게 분부(分付)해야 하는가. 서(徐)와 영원(靈源)이 모두 병식(屛息)했다. 드디어 주장자를 던지고 상(牀)에 투신하더니 팔을 베개 삼아 화(化)했다.
●龍圖; 송대 용도각학사의 생칭(省稱) [백도백과].
●布衣; 포(布)로 만든 의복. 가차하여 평민을 가리킴. 포(布)는 마갈(麻葛) 종류의 직물을 가리킴.
●龜哥; 고대에 거북의 등 껍데기를 뚫어 길흉을 점쳤음. 가(哥)는 형이니 미칭임.
●聳然; 1. 놀라고 두려워하는 모양. 용(聳)은 송(悚)과 통함. 2. 높이 솟은 모양. 3. 경외하는 모양. 용(聳)은 송(竦)과 통함.
●屛息; 병기(屛氣; 氣息을 물리침)와 같음. 주의력을 집중하거나 혹 공구(恐懼)함을 형용.
福州廣因擇要禪師
上堂 王臨寶位 胡漢同風 紐半破三 佛殿倒卓 藏身句卽不問你 透出一字作麽生道 拈拄杖曰 春風開竹戶 夜雨滴花心 上堂 古者道 祇恐爲僧心不了 爲僧心了總輸僧 且如何是諸上座了底心 良久曰 漁翁睡重春潭闊 白鳥不飛舟自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長安東 洛陽西 問 如何是佛 師曰 福州橄欖兩頭尖 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曰 隈巖傍壑 曰 出世後如何 師曰 前山後山
●橄欖; 橄欖科橄欖屬喬木植物 高可達三十五米
복주(福州) 광인(廣因) 택요선사(擇要禪師)
상당(上堂) 왕이 보위(寶位)에 임(臨)하니 호한(胡漢)이 동풍(同風)이며 반을 맺고 셋을 깨뜨리니(紐半破三) 불전(佛殿)이 거꾸로 선다(卓). 장신구(藏身句)는 곧 너희에게 묻지 않거니와 투출(透出)하는 일자(一字)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주장자를 집어 가로되 춘풍이 죽호(竹戶)를 열고 야우(夜雨)가 화심(花心; 꽃의 중심)에 방울져 떨어진다(滴). 상당(上堂) 고자(古者)가 말하되 다만 중이 되어 마음을 깨치지(了) 못할까 염려스럽지만 중이 되어 마음을 깨치더라도 모두(總) 중에게 진다(輸). 그래(且) 무엇이 이 제상좌(諸上座)의 깨닫는 마음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어옹(漁翁)의 잠이 무거운 춘담(春潭)이 넓은데(闊) 백조(白鳥)는 날지 않고 배가 스스로 가로놓였다.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장안은 동쪽이며 낙양은 서쪽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복주(福州)의 감람(橄欖)의 양두(兩頭; 양쪽)가 뽀족하다(尖).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외암(隈巖; 구석의 바위)과 방학(傍壑; 곁의 골)이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앞산과 뒷산이다.
●橄欖; 감람과(橄欖科) 감람속(橄欖屬)의 교목식물(喬木植物). 높이는 가히 35m에 달함.
開先暹禪師法嗣
南康軍雲居山了元佛印禪師
饒州浮梁林氏子 誕生之時 祥光上燭 鬚髮爪齒 宛然具體 風骨爽㧞 孩孺異常 發言成章 語合經史 閭里先生稱曰神童 年將頂角 博覧典墳 卷不再舒 洞明今古 才思俊邁 風韻飄然 志慕空宗 投師出家 試經圓具 感悟夙習 卽徧參尋 投機於開先法席 出爲宗匠 九坐道場 四衆傾向 名動朝野 神宗賜高麗磨衲金鉢 以旌師德
●風骨; 頑强的風度氣質
●典墳; 又作墳典 三皇之書曰墳 五帝之書曰典
●才思; 才氣與情思 多指文學的創作能力
●俊邁; 秀美出衆 英俊豪邁
남강군(南康軍) 운거산(雲居山) 요원(了元) 불인선사(佛印禪師)
요주(饒州) 부량(浮梁) 임씨(林氏)의 아들이다. 탄생할 때 상광(祥光)이 위로 비추었고(燭) 수발(鬚髮)과 조치(爪齒)가 완연히 체(體)를 갖추었다. 풍골(風骨)이 상발(爽拔; 시원하게 빼어남)했고 해유(孩孺; 幼童)일 적에 이상했고 발언하면 문장을 이루었고 언어가 경사(經史)와 합치했다. 여리(閭里)의 선생(先生)이 일컬어 가로되 신동(神童)이다. 나이가 거의(將) 정각(頂角; 總角)일 적에 전분(典墳)을 박람(博覧)했고 권(卷)을 다시 펴지(舒) 않아도 금고(今古)를 환히 밝혔다(洞明). 재사(才思)가 준매(俊邁)했고 풍운(風韻; 풍류와 운치)이 표연(飄然)했다. 의지(意志)가 공종(空宗)을 흠모했고 스승에게 투신해 출가했고 시경(試經)하여 원구(圓具)했다. 숙습(夙習)을 감오(感悟)하여 곧 두루 참심(參尋)했고 개선(開先)의 법석에서 투기(投機)했다. 출세해 종장(宗匠)이 되었고 도량에 9좌(坐)했고 사중(四衆)이 경향(傾向)했고 명성이 조야(朝野)를 진동했고 신종(神宗)이 고려 마납(磨衲)과 금발(金鉢)을 주어 사덕(師德)을 표시했다(旌).
●風骨; 완강한 풍도(風度)의 기질.
●典墳; 또 분전(墳典)으로 지음. 삼황의 서책을 가로되 분(墳)이며 오제의 서책을 가로되 전(典)임.
●才思; 재기(才氣)와 정사(情思)니 다분히 문학적 창작 능력을 가리킴.
●俊邁; 수미(秀美)하여 출중함. 영준(英俊)하고 호매(豪邁; 氣魄이 큼)함.
僧問 如何是佛 師曰 木頭雕不就 曰 恁麽則皆是虛妄也 師曰 梵音深遠 令人樂聞 問 如何是諸佛說不到底法 師曰 蟻子解尋腥處走 蒼蠅偏向臭邊飛 曰 學人未曉 請師再指 師曰 九萬里鵬從海出 一千年鶴遠天歸 問 達磨面壁 意旨如何 師曰 閉口深藏舌 曰 學人未曉 師曰 一言已出 駟馬難追 問 大修行人還入地獄也無 師曰 在裏許 曰 大作業人還上天堂也無 師曰 鰕跳不出斗 曰 恁麽則鑊湯爐炭吹敎滅 劒樹刀山喝使摧 師曰 自作自受 乃曰 適來禪客出衆禮拜 各以無量珍寶布施大衆 又於面門上放大光明 照耀乾坤 令諸人普得相見 於此明得 可謂十方諸佛各坐其前 常爲勞生 演說大法 豈假山僧重重註破 如或未然 不免橫身徇物 乃橫按拄杖曰 萬般草木根苗異 一得春風便放花 上堂 寒寒 風撼竹聲乾 水凍魚行澀 林疎鳥宿難 早是嚴霜威重 那堪行客衣單 休思紫陌山千朵 且擁紅爐火一攢 放下茱萸空中竹橛 倒却迦葉門前刹竿 直下更云不會 算來也太無端 參
●布施; 施捨(財物等)
●衣單; 衣卽指衣鉢 單卽書寫人名之小紅紙片 按象器箋座位類 僧堂中 各人座席之壁上皆貼有名單 稱之爲單位 其上可掛置衣鉢 故又以衣單爲座席之代稱 又作單席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목두(木頭; 나무)에 새겨서 이루지(就) 못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모두 이 허망입니다. 사왈 범음(梵音)이 심원(深遠)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듣기를 좋아하게 한다.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이 설해 이르지 못하는 법입니까. 사왈 의자(蟻子; 개미)는 비린내 나는 곳을 찾아 달릴 줄 알고 창승(蒼蠅; 쉬파리)은 오로지(偏) 냄새 나는 쪽을 향해 비행한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曉) 못하겠으니 스님의 재지(再指)를 청합니다. 사왈 구만리붕(九萬里鵬)이 바다로 좇아나오고 일천년학(一千年鶴)이 먼 하늘에서 돌아온다. 묻되 달마가 면벽한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입 닫고 혀를 깊이 숨겼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일언(一言)이 이미 나갔으니 사마(駟馬)로도 쫓기 어렵다. 묻되 대수행인(大修行人)이 도리어 지옥에 들어갑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이허(裏許; 裏面)에 있다. 가로되 대작업인(大作業人)이 도리어 천당에 오릅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새우(鰕)가 뛰어도 말(斗)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확탕노탄(鑊湯爐炭)을 불어서 꺼지게(敎滅) 하고 검수도산(劒樹刀山)을 할(喝)하여 꺾어지게(使摧) 합니다. 사왈 자작자수(自作自受)한다. 이에 가로되 아까 선객이 대중에서 나와 예배했으니 각자 무량한 진보(珍寶)를 대중에게 보시(布施)했다. 또 면문상(面門上)에서 대광명을 놓아 건곤을 조요(照耀)하고 제인으로 하여금 널리 상견함을 얻게 했다. 여기에서 명득(明得)하면 가히 시방제불이 각자 그 앞에 앉아 늘 노생(勞生)을 위해 대법(大法)을 연설한다고 이를 만하거늘 어찌 산승이 중중(重重) 주파(註破)함을 빌리겠는가. 혹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횡신(橫身)하여 순물(徇物; 사람을 따르다)함을 면하지 못한다. 이에 주장자를 가로 누르고 가로되 만반(萬般) 초목의 근묘(根苗)가 다르지만 춘풍을 한 번 얻지 바로 방화(放花)한다. 상당(上堂) 춥고 춥구나/ 바람이 대를 흔드는 소리가 건조하다/ 물이 어니(凍) 어행(魚行)이 껄끄럽고(澀)/ 숲이 성기니 새가 자기(宿) 어렵다/ 벌써 이 엄상(嚴霜)이 위중(威重)하거늘/ 어찌 행객(行客)의 의단(衣單)을 감당(堪當; 堪)하겠는가/ 자맥(紫陌)의 산(山) 천타(千朵)를 사유함을 그치고/ 다만(且) 홍로(紅爐)의 불(火) 일찬(一攢; 一處. 一叢)을 옹위(擁衛; 擁)하라/ 수유(茱萸)의 공중의 죽궐(竹橛)을 방하(放下)하고/ 가섭의 문전(門前)의 찰간(刹竿)을 도각(倒却)하라/ 직하(直下)에 다시 이르되 불회(不會)라 하거니와/ 계산하매(算來) 또한 너무 무단하다(太無端). 참(參)하라.
●布施; (재물 등)을 시사(施捨)함.
●衣單; 의(衣)는 의발을 가리키며 단(單)은 인명(人名)을 서사한 작은 홍지(紅紙) 조각. 상기전 좌위류를 안험컨대 승당 중에 각인의 좌석의 벽 위에 모두 명단이 붙어 있는데 이를 일컬어 단위(單位)라 함. 그 위에 가히 의발을 괘치(掛置; 걸고 안치하다)하는지라 고로 또 의단을 좌석의 대칭으로 삼음. 또 단석(單席)으로 지음.
師一日與學徒入室次 適東坡居士到面前 師曰 此間無坐榻 居士來此作甚麽 士曰 暫借佛印四大爲坐榻 師曰 山僧有一問 居士若道得卽請坐 道不得卽輸腰下玉帶子 士欣然曰 便請 師曰 居士適來道 暫借山僧四大爲坐榻 祇如山僧四大本空 五陰非有 居士向甚麽處坐 士不能答 遂留玉帶 師却贈以雲山衲衣 士乃作偈曰 百千燈作一燈光 盡是恒沙妙法王 是故東坡不敢惜 借君四大作禪牀 病骨難堪玉帶圍 鈍根仍落箭鋒機 會當乞食歌姬院 奪得雲山舊衲衣 此帶閱人如傳舍 流傳到我亦悠哉 錦袍錯落猶相稱 乞與佯狂老萬回
●傳舍; 驛站所設供行人休息的房舍 借指今旅館 飯店 [百度漢語]
스님이 어느 날 학도(學徒)와 더불어 입실(入室)하던 차에 마침(適) 동파거사(東坡居士)가 면전에 이르렀다. 사왈 차간(此間)엔 좌탑(坐榻)이 없거늘 거사가 여기에 와서 무엇하렵니까. 사왈(士曰) 잠시 불인(佛印)의 4대(大)를 빌려 좌탑(坐榻)으로 삼겠습니다. 사왈 산승이 일문(一問)이 있는데 거사가 만약 말함을 얻는다면 곧 앉기를 청하겠지만 말함을 얻지 못하면 곧 허리 아래의 옥대자(玉帶子; 子는 조사)를 보내시오(輸). 거사가 흔연(欣然)히 가로되 바로 청합니다. 사왈 거사가 아까 말하기를 잠시 산승의 4대를 빌려 좌탑으로 삼는다 했거니와 지여(祇如) 산승은 4대가 본공(本空)했고 5음(陰)이 비유(非有)거늘 거사가 어느 곳을 향해 앉겠습니까. 거사가 능히 답하지 못했고 드디어 옥대를 남기자(留) 스님이 도리어 운산(雲山)의 납의를 기증(寄贈; 贈)했다. 거사가 이에 게를 지어 가로되 백천(百千) 등(燈)이 일등(一燈)의 빛을 짓나니/ 모두 이 항사(恒沙)의 묘법왕(妙法王)이다/ 이런 고로 동파(東坡)가 감히 아끼지 않고/ 그대의 4대를 빌려 선상(禪牀)으로 삼는다/ 병골(病骨)이 옥대(玉帶)의 두름(圍)을 감내하기 어렵고/ 둔근(鈍根)이 이에 전봉(箭鋒)의 기(機)에 떨어졌다/ 마침(會) 가희원(歌姬院)에서 걸식함을 당했다가/ 운산(雲山)의 옛 납의를 탈득(奪得)했다/ 이 옥대(玉帶; 帶)는 사람을 겪음(閱)이 전사(傳舍)와 같았고/ 유전(流傳)하여 나에게 이르렀으니 또한 유재(悠哉)로다/ 금포(錦袍)에 잘못(錯) 떨어졌어도 오히려 상칭(相稱)하니/ 미친 척하는(佯狂) 노만회(老萬回; 萬回公)에게 줌을 구걸한다.
●傳舍; 역참(驛站)에서 시설(施設)하는 바, 행인에게 공급하는 휴식하는 방사(房舍). 가차하여 지금의 여관, 반점(飯店)을 가리킴 [백도한어].
東京智海本逸正覺禪師
僧問 古鏡未磨時如何 師曰 靑靑河畔草 曰 磨後如何 師曰 鬱鬱園中柳 曰 磨與未磨 是同是別 師曰 同別且置 還我鏡來 僧擬議 師便喝 上堂 開口是 合口是 眼下無妨更著鼻 開口錯 合口錯 眼與鼻孔都拈却 佛也打 祖也打 眞人面前不說假 佛也安 祖也安 衲僧肚皮似海寬 此乃一出一入 半合半開 是山僧尋常用底 敢問諸禪德 刹竿因甚麽頭指天 力士何故揎起拳 良久曰 參
동경(東京) 지해(智海) 본일(本逸) 정각선사(正覺禪師)
승문 고경(古鏡)을 갈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청청(靑靑)한 하반(河畔)의 풀이다. 가로되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울울(鬱鬱)한 원중(園中)의 버들이다. 가로되 갊과 갈지 않음이 이 같습니까(同) 이 다릅니까(別). 사왈 동별(同別)은 차치(且置)하고 나에게 거울을 송환해 오너라.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할했다. 상당(上堂) 입을 엶이 옳으냐, 입을 닫음이 옳으냐. 눈 아래 다시 코를 붙임이 무방(無妨)하다. 입을 열어도 틀렸고 입을 닫아도 틀렸나니 눈과 콧구멍을 모두(都) 집어 물리쳐라(拈却). 부처도 또한 때리고 조사도 또한 때리나니 진인(眞人; 진실한 사람)의 면전에선 거짓(假)을 설하지 못한다. 부처도 또한 안치(安置; 安)하고 조사도 또한 안치하나니 납승의 두피(肚皮)가 바다 같이 넓다(寬). 이것은 곧(乃) 일출일입(一出一入)이며 반합반개(半合半開)며 이 산승이 심상(尋常)에 쓰는 것이다. 감히 제선덕(諸禪德)에게 묻나니 찰간(刹竿)이 무엇으로 인해 꼭대기가 하늘을 가리키느냐. 역사(力士; 금강역사)가 무슨 연고로 소매를 걷고(揎) 주먹을 일으키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참(參)하라.
上堂 拈拄杖曰 這拄杖 在天也與日月竝明 在地也與山河同固 在王侯也以代蒲鞭 在百姓也防身禦惡 在衲僧也晝橫肩上 渡水穿雲 夜宿旅亭 撑門拄戶 且道在山僧手裏 用作何爲 要會麽 有時放步東湖上 與僧遙指遠山靑 擊禪牀下座 上堂 憶得老僧年七歲時 於村校書處得一法門 超情離見 絕妙絕玄 爰自染神 逾六十載 今日輒出 普告大衆 若欲傳持 宜當諦聽 遂曰 寒原耕種罷 牽犢負薪歸 此夜一爐火 渾家身上衣 諸禪德 逢人不得錯擧 上堂 古者道 接物利生絕妙 外甥終是不肖 他家自有兒孫 將來應用恰好 諸禪德還會麽 菜園牆倒晴方築 房店籬穿雨過修 院宇漏時隨分整 兒孫大小盡風流
●旅亭; 謂路邊供旅人暫時休息的處所
●校書; 校勘書籍
●外甥; 呼他親密之詞
●院宇; 有院牆的屋宇 院落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이 주장자는 하늘에 있으면 또한 일월과 더불어 나란히(竝) 밝고 땅에 있으면 또한 산하와 더불어 함께 견고하고 왕후(王侯)에 있으면 또한 포편(蒲鞭)을 대체(代替; 代)하고 백성에 있으면 또한 방신(防身)ㆍ어악(禦惡)하고 납승에게 있으면 또한 낮에는 어깨 위에 가로놓아 도수천운(渡水穿雲; 물을 건너고 구름을 뚫다)하고 밤에는 여정(旅亭)에 숙박하면서 탱문주호(撑門拄戶)한다. 차도(且道)하라, 산승의 손안에 있으면 써서 무엇을 하느냐, 알고자 하느냐, 어떤 때는 동호상(東湖上)에 방보(放步)하면서 승인과 더불어 멀리 원산(遠山)의 푸름을 가리킨다.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억득(憶得; 기억)하건대 노승이 나이 7세 때 촌(村)의 교서처(校書處)에서 한 법문을 얻었는데 초정이견(超情離見)하고 절묘절현(絕妙絕玄; 매우 妙하고 매우 玄함)했다. 이에(爰) 염신(染神; 정신을 물들이다)함으로부터 60재(載)를 넘겼나니 금일 도리어(輒) 내어놓아 대중에게 보고(普告)하겠다. 만약 전지(傳持)하고 싶다면 의당(宜當) 체청(諦聽)하라. 드디어 가로되 추운 언덕(寒原)에 경종(耕種; 밭 갈고 씨를 뿌림)을 마치자(罷)/ 송아지를 끌고 섶을 지고 돌아온다/ 차야(此夜)의 일로(一爐)의 불은/ 혼가(渾家; 全家)의 신상(身上)의 옷이다. 제선덕(諸禪德)이여 사람을 만나거든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상당(上堂) 고자(古者)가 말하되 접물이생(接物利生)은 절묘(絕妙)하나니/ 외생(外甥)은 마침내 이 불초(不肖)다/ 타가(他家; 家는 名詞詞綴)는 스스로 아손(兒孫)이 있나니/ 장래에 응용하매 흡호(恰好)로다. 제선덕(諸禪德)이여 도리어 아느냐. 채원(菜園)의 담장이 무너지면 갠 날 바야흐로 축조(築造; 築)하고/ 방점(房店)의 울타리가 뚫어지면 비가 지난 다음 수리하고/ 원우(院宇)가 샐 때 분한 따라 정비(整備; 整)하나니/ 아손(兒孫)이 대소(大小) 모두 풍류로다.
●旅亭; 이르자면 노변(路邊)에서 여인(旅人)에게 잠시 휴식을 제공하는 처소.
●校書; 서적을 교감(校勘)함.
●外甥; 친밀하게 그를 부르는 사(詞).
●院宇; 원장(院牆)이 있는 옥우(屋宇), 원락(院落; 굉장히 큰 집).
上堂 擧暹和尙道 寒 寒 地爐火暖 閑坐蒲團 說迦葉不是 談達磨無端 此也彼也 必然一般 師召大衆曰 迦葉甚處不是 達磨那裏無端 若檢點得出 彼之二老一場懡㦬 若點檢不出 三十年後 莫道不被人瞞好 上堂 我有這一著 人人口裏嚼 嚼得破者 速須吐却 嚼不破者 翻成毒藥 乃召諸禪德 作甚麽滋味 試請道看 良久曰 醫王不是無方義 千里蘇香象不回 道士問 如何是道 師曰 龍吟金鼎 虎嘯丹田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吐故納新 曰 道與道中人相去多少 師曰 罥鶴顚崖上 冲天昧米民
●顚崖; 高聳的山崖 山崖之上
상당(上堂) 거(擧)하다. 섬화상(暹和尙: 善暹)이 말하되 춥구나(寒)/ 춥구나/ 지로(地爐)의 불이 따뜻하니/ 포단(蒲團)에 한좌(閑坐)했다/ 가섭을 설함은 옳지 못하고/ 달마를 얘기함은(談) 무단(無端)이다/ 이것과(此也) 저것이(彼也)/ 필연(必然)히 일반(一般)이다. 스님이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가섭의 어느 곳이 옳지 않으며 달마의 어느 속(那裏)이 무단(無端)인가. 만약 검점(檢點)하여 냄을 얻는다면 그 이로(二老)가 일장마라(一場懡㦬)이려니와 만약 점검하여 내지 못한다면 삼십 년 후 타인의 속임(瞞)을 입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으리라. 상당(上堂) 나에게 이 일착(一著)이 있나니 사람마다 입속에 씹는다. 씹어 깨뜨림을 얻는 자는 속히 토해버림을 쓰고(須) 씹어 깨뜨리지 못하는 자는 도리어(翻) 독약을 이룬다. 이에 부르되 제선덕(諸禪德)이여 무슨 자미(滋味)를 짓느냐, 시험 삼아 청하노니 말해 보아라. 양구하고 가로되 의왕(醫王)은 이 무방(無方; 방법이 없음)의 뜻이 아니거늘 천 리에서 깨어난 향상(香象)이 돌아오지 않는다. 도사(道士)가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금정(金鼎)에서 용이 읊고(吟) 단전(丹田)에서 범이 읊는다(嘯).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토고납신(吐故納新; 옛것을 토하고 새것을 들이다)한다. 가로되 도와 도중인이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 사왈 전애(顚崖; 高崖) 위에서 학을 옭아맴(罥)은 충천(冲天)하여 미민(米民)을 어둡게(昧) 해서이다.
●顚崖; 높이 솟은 산애(山崖; 산벼랑). 산애의 위.
越州天章元楚寶月禪師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一年三百六十日 曰 便恁麽會時如何 師曰 迢迢十萬不是遠 上堂 鼓聲錯落 山色崔嵬 本旣不有 甚處得來 良久曰 高著眼
월주(越州) 천장(天章) 원초(元楚) 보월선사(寶月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1년 3백6십 일이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알 때 어떻습니까. 사왈 멀고 먼 십만이 이 먼 게 아니다. 상당(上堂) 북소리가 잘못 떨어져 산색이 최외(崔嵬; 산이 오똑하게 높고 험함)하나니 본래 이미 있음이 아니거늘 어느 곳에서 얻어 왔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높이 착안하라.
欽上勤禪師法嗣
鼎州梁山圓應禪師
僧問 如何是超佛越祖之談 師曰 喫粥喫飯
정주(鼎州) 양산(梁山) 원응선사(圓應禪師)
승문 무엇이 이 초불월조지담(超佛越祖之談)입니까. 사왈 죽 먹고 밥 먹는다.
靑原下十一世
雲居舜禪師法嗣
金陵蔣山法泉佛慧禪師
隨州時氏子 僧問 古人說不到處 請師說 師曰 夫子入太廟 曰 學人未曉 師曰 春暖柳條靑 問 如何是急切一句 師曰 火燒眉毛 問 祖師面壁 意旨如何 師曰 撑天拄地 曰 便恁麽去時如何 師曰 落七落八 問 二祖立雪齊腰 意旨如何 師曰 三年逢一閏 曰 爲甚麽付法傳衣 師曰 村酒足人酤 問 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西瞿耶尼 曰 出水後如何 師曰 泗州大聖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髮長僧貌醜 曰 未審意旨如何 師曰 閉戶怕天寒 問 南禪結夏 爲甚麽却在蔣山解 師曰 衆流逢海盡 曰 恁麽則事同一家 師曰 夢裏到家鄕
●落七落八; 陷于第七第八 禪家認爲禪法是第一法 唯一法 落七落八 離禪法甚遠
금릉(金陵) 장산(蔣山) 법천(法泉) 불혜선사(佛慧禪師)
수주(隨州) 시씨(時氏)의 아들이다. 승문 고인이 설해 이르지 못한 곳을 청컨대 스님이 설하십시오. 사왈 부자가 태묘에 들어갔다(夫子入太廟).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봄이 따뜻해 버들가지가 푸르다. 묻되 무엇이 이 급절(急切)한 1구입니까. 사왈 불이 눈썹을 태운다. 묻되 조사가 면벽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탱천주지(撑天拄地)했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낙칠낙팔(落七落八)한다. 묻되 2조가 입설(立雪)하여 허리와 가지런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3년마다 1윤(閏)을 만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부법(付法)하고 전의(傳衣)했습니까. 사왈 촌주(村酒)를 족히 사람이 사고판다(酤). 묻되 연화(蓮華)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서구야니(西瞿耶尼)다.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사주대성(泗州大聖)이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머리카락이 길면 승모(僧貌)가 추(醜)하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폐호(閉戶)하고 천한(天寒; 날씨가 추움)을 두려워한다. 묻되 남선(南禪)에서 결하(結夏)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장산(蔣山)에 있으면서 해(解; 解夏)합니까. 사왈 중류(衆流)가 바다를 만나면 다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사(事)가 일가(一家)와 같습니다. 사왈 꿈속에서 가향(家鄕)에 이르렀구나.
●落七落八; 제7ㆍ제8에 빠짐. 선가에서 인식하기를 선법은 이 제1법이며 유일한 법이니 7에 떨어지고 8에 떨어짐은 선법과의 거리가 매우 멂.
上堂 來不來 去不去 脚下須彌山 腦後擎天拄 大藏不能宣 佛眼不能覷 諸禪德 漸老逢春解惜春 昨夜飛花落無數 上堂 畫一圓相 以手拓起曰 諸仁者還見麽 團團離海嶠 漸漸出雲衢 諸人若也未見 莫道南明長老措大相 却於寶華王座上念中秋月詩 若也見得 此夜一輪滿 淸光何處無 上堂 要去不得去 要住不得住 打破大散關 脫却孃生袴 諸仁者若到臘月三十日 且道用箇甚麽 良久曰 柳絮隨風 自西自東 上堂 古人恁麽 南禪不恁麽 古人不恁麽 南禪却恁麽 大衆還委悉麽 王婆衫子短 李四帽簷長
●海嶠; 海邊山嶺
●雲衢; 雲中的道路 借指高空
●自西自東; 自西向東自東向西而無定處之意
상당(上堂) 와도 옴이 아니며 가도 감이 아니니 각하(脚下)에 수미산이며 뇌후(腦後)가 하늘을 받들어(擎) 버틴다. 대장(大藏; 대장경)이 능히 선설(宣說; 宣)하지 못하고 불안(佛眼)으로 능히 엿보지 못한다. 제선덕(諸禪德)이여, 점차 늙으면서 봄을 만나매 봄을 아낄 줄 아나니 어젯밤에 비화(飛花)가 무수히 떨어졌다. 상당(上堂) 1원상을 그리고 손으로써 받쳐(拓) 일으키며 가로되 제인자(諸仁者)여 도리어 보느냐. 단단(團團; 매우 둥긂) 해교(海嶠)를 떠나고 점점 운구(雲衢)를 벗어난다. 제인이 만약에 보지 못했거든 남명(南明; 法泉) 장로가 조대상(措大相)이라고 말하지 말아라. 도리어 보화왕좌(寶華王座) 위에서 중추월(中秋月)의 시를 외운다(念). 만약에 보았거든(見得) 이 밤의 일륜(一輪; 달)이 원만하거늘 청광(淸光)이 어느 곳엔들 없겠는가. 상당(上堂) 가려고 하나 감을 얻지 못하고 머물려고 하나 머묾을 얻지 못하나니 대산관(大散關; 매우 한산한 관문)을 타파하고 양생고(孃生袴)를 벗어버려라. 제인자(諸仁者)여, 만약 납월 삼십일에 이른다면 차도(且道)하라 저(箇) 무엇을 써야 하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유서(柳絮; 버들개지)가 바람 따라 자서자동(自西自東)이다. 상당(上堂) 고인이 이러하면(恁麽) 남선(南禪; 法泉)은 이러하지 않고 고인이 이러하지 않으면 남선은 도리어 이러하다. 대중이여 도리어 위실(委悉)하느냐. 왕파(王婆)의 삼자(衫子; 적삼)가 짧고 이사(李四)의 모첨(帽簷; 모자 챙)이 길다.
●海嶠; 해변의 산령(山嶺).
●雲衢; 구름 속의 도로. 가차하여 높은 허공을 가리킴.
●自西自東;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향하면서 정처가 없음의 뜻.
聖節上堂 拈拄杖擊法座一下曰 以此功德 祝延聖壽 便下座 上堂 時人欲識南禪路 門前有箇長松樹 脚下分明不較多 無奈行人恁麽去 莫恁去急回顧 樓臺煙鎖鐘鳴處 師因雪下 上堂召大衆曰 還有過得此色者麽 良久曰 文殊笑普賢嗔 眼裏無筋一世貧 相逢盡道休官去 林下何曾見一人 上堂 快人一言 快馬一鞭 若更眼睛定動 未免紙裹麻纏 脚下是地 頭上是天 不信但看八九月 紛紛黃葉滿山川 師晩奉詔住大相國智海禪寺 問衆曰 赴智海 留蔣山 去就孰是 衆皆無對 師索筆書偈曰 非佛非心徒擬議 得皮得髓謾商量 臨行珍重諸禪侶 門外千山正夕陽 書畢坐逝
●聖節; 卽皇帝之誕辰 又稱天長節 按興禪護國論下 禪林中 於皇帝誕生日以前三十日間 啓建聖節道場 每日不斷諷誦大般若 仁王 法華 最勝等經 祈聖壽無疆 依大宋僧史略中及事物紀原 慶祝皇帝之誕辰 始於北魏太武帝 立節之名則始於唐玄宗 [百丈淸規上祝釐章聖節條 唐書本紀第五] ▲禪林疏語考證一 聖節 統紀通塞志曰 北魏太武始光二年(425) 常誕節詔於佛寺建祝壽道場 註 聖節道場之始
성절상당(聖節上堂) 주장자를 잡고 법좌를 한 번 치고 가로되 이 공덕으로써 성수(聖壽)를 축연(祝延)합니다. 바로 하좌했다. 상당(上堂) 시인(時人)이 남선로(南禪路)를 알고 싶다면/ 문 앞에 저(箇) 장송수(長松樹)가 있다/ 각하(脚下)에 분명히 많이 어긋나지(較) 않지만/ 행인이 이렇게 감을 어찌하지 못한다/ 이렇게 가지 말고 급히 돌아볼지니/ 누대(樓臺)의 안개(煙)가 종이 울리는 곳을 에웠다(鎖). 스님이 눈이 내림으로 인해 상당하여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도리어 이 색을 초과함을 얻을 자가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문수는 웃고 보현은 성내나니/ 안리(眼裏)에 근육이 없으면 일세((一世)에 빈곤하다/ 상봉하매 모두 말하기를 벼슬을 쉬고 간다지만/ 임하(林下)에서 어찌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보았는가. 상당(上堂) 쾌인(快人)은 일언(一言)이며/ 쾌마(快馬)는 일편(一鞭)이다/ 만약 다시 눈동자가 정동(定動; 깜작임)한다면/ 종이로 싸고 삼으로 묶음(紙裹麻纏)을 면치 못한다/ 발 아래는 이 땅이며/ 머리 위는 이 하늘이다/ 믿지 못하거든 단지 팔구 월을 보아라/ 분분(紛紛)한 황엽이 산천에 가득하다. 스님이 만년에 봉조(奉詔)하여 대상국지해선사(大相國智海禪寺)에 주(住)했다.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지해(智海)에 다다르고 장산(蔣山)에 머물거니와 거취(去就)는 무엇이(孰) 이것인가. 대중이 모두 대답이 없자 스님이 붓을 찾아 서게(書偈)하여 가로되 비불비심(非佛非心)이라 하며 도연히 의의(擬議)하고/ 득피득수(得皮得髓)라 하며 헛되이(謾) 상량(商量)하네/ 임행(臨行)에 진중(珍重)하라 제선려(諸禪侶)여/ 문밖에 천산(千山)이 바로(正) 석양(夕陽)이다. 써 마치자 좌서(坐逝)했다.
●聖節; 곧 황제의 탄신(誕辰)이니 또 천장절(天長節)로 일컬음. 흥선호국론하(興禪護國論下)를 안험하니 선림 중에서 황제 탄생일 이전(以前) 30일 간에 성절도량(聖節道場)을 계건(啓建)하고 매일 부단(不斷)히 대반야ㆍ인왕(仁王)ㆍ법화ㆍ최승(最勝) 등의 경을 풍송(諷誦)하며 성수무강(聖壽無疆)을 기도함. 대송승사략중(大宋僧史略中) 및 사물기원(事物紀原)에 의거하자면 황제의 탄신을 경축함은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로부터 비롯했고 성절의 이름을 세운 것은 곧 당 현종으로부터 비롯했음 [백장청규상축희장성절조. 당서본기제5]. ▲선림소어고증1. 성절(聖節) 통기통색지(統紀通塞志)에 가로되 북위 태무 시광 2년(425) 항상 탄절에 불사(佛寺)에 조칙하여 축수도량(祝壽道場)을 세웠다. 주(註) 성절도량의 시작이다.
明州天童澹交禪師
僧問 臨雲閣聳 太白峯高 到這裏如何進步 師曰 但尋荒草際 莫問白雲深 曰 未審如何話會 師曰 寒山逢拾得 兩箇一時癡 曰 向上宗乘 又且如何擧唱 師曰 前言不及後語 上堂 也大奇 也大差 十箇指頭八箇罅 由來多少分明 不用鑽龜打瓦 便下座
●大差; 差 奇怪 奇異
●鑽龜打瓦; 鑽龜與打瓦 皆爲古代求吉凶占卜之方法 禪家以喩思量卜度
명주(明州) 천동(天童) 담교선사(澹交禪師)
승문 임운각(臨雲閣)이 솟았고 태봉봉(太白峯)이 높습니다. 이 속에 이르러 어떻게 진보(進步)합니까. 사왈 단지 황초(荒草)의 가(際)를 찾고 백운의 깊음을 묻지 말아라.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떻게 화회(話會)해야 합니까. 사왈 한산이 습득을 만났으니 두 개가 일시에 어리석다. 가로되 향상(向上)의 종승(宗乘)을 우차(又且) 어떻게 거창(擧唱)합니까. 사왈 전언(前言)이 후어(後語)에 미치지 못한다. 상당(上堂) 또한 대기(大奇)하고 또한 대차(大差)하나니/ 십개(十箇)의 손가락(指頭)에 팔개(八箇)가 갈라졌다(罅)/ 유래가 다소 분명하나니/ 찬귀타와(鑽龜打瓦)를 쓰지 말아라. 바로 하좌했다.
●大差; 차(差)는 기괴(奇怪). 기이(奇異).
●鑽龜打瓦; 찬귀와 타와니 모두 고대에 길흉을 구하는 점복의 방법이 됨. 선가에선 사량복탁(思量卜度)에 비유함.
建州崇梵餘禪師
僧問 臨濟喝少遇知音 德山棒難逢作者 和尙今日作麽生 師曰 山僧被你一問 直得退身三步 脊背汗流 曰 作家宗師 今日遭遇 師曰 一語傷人 千刀攪腹 僧以手畫一畫曰 爭奈這箇何 師曰 草賊大敗 問 恁麽來底人 師還接否 師曰 孤峯無宿客 曰 不恁麽來底人 師還接否 師曰 灘峻不留船 曰 恁麽不恁麽則且置 穿過髑髏一句作麽生 師曰 堪笑亦堪悲 上堂 直須向黑豆未生芽時搆取 良久 召大衆曰 劒去遠矣
건주(建州) 숭범여(崇梵餘) 선사
승문 임제할(臨濟喝)은 지음을 만남이 적고 덕산방(德山棒)은 작자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화상은 금일 어떻습니까. 사왈 산승이 너의 일문(一問)을 입자 바로(直得) 3보(步) 퇴신(退身)하고 척배(脊背)에 땀이 흐름을 얻었다. 가로되 작가인 종사를 금일 조우(遭遇)했습니다. 사왈 일어(一語)로 사람을 손상하고 천도(千刀)로 배(腹)를 휘젓는구나(攪). 중이 손으로써 그어 한 번 긋고 가로되 저개(這箇)를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초적(草賊)이 대패(大敗)했다. 묻되 이렇게 오는 사람을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 接)하겠습니까. 사왈 고봉(孤峯)에 숙객(宿客)이 없다. 가로되 이렇게 오지 않는 사람을 스님이 도리어 접인하겠습니까. 사왈 여울이 험준하여 배를 머물지 못한다. 가로되 이러함과 이러하지 않음은 곧 차치(且置)하고 촉루(髑髏)를 천과(穿過)하는 1구가 무엇입니까(作麽生). 사왈 가히(堪) 우습고 또한 가히 슬프다. 상당(上堂) 바로 모름지기 흑두(黑豆)가 싹트지 않은 때를 향해 구취(搆取; 領會)하라. 양구했다가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검이 떠난 지 오래되었다.
處州慈雲院修慧圓照禪師
上堂 片月浸寒潭 微雲滿空碧 若於達道人 好箇眞消息 還有達道人麽 微雲穿過你髑髏 片月觸著你鼻孔 珍重
●空碧; 澄碧的水色 澄碧的天空
처주(處州) 자운원(慈雲院) 수혜(修慧) 원조선사(圓照禪師)
상당(上堂) 편월(片月)이 한담(寒潭)에 잠기고(浸)/ 미운(微雲)이 공벽(空碧)에 가득하다/ 이에(若) 달도(達道)한 사람에게는/ 호개(好箇)의 진소식(眞消息)이다. 도리어 달도한 사람이 있느냐. 미운(微雲)은 너의 촉루(髑髏)를 천과(穿過)하고 편월(片月)은 너의 비공(鼻孔)을 촉착(觸著)한다. 진중(珍重).
●空碧; 징벽(澄碧)한 수색(水色). 징벽한 천공(天空).
大潙宥禪師法嗣
廬山歸宗慧通禪師
僧問 如何是函葢乾坤句 師曰 日出東方夜落西 曰 如何是截斷衆流句 師曰 鐵山橫在路 曰 如何是隨波逐浪句 師曰 船子下揚州 問 如何是塵塵三昧 師曰 灰飛火亂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黃河水出崑崙觜 問 十二時中如何履踐 師曰 鐵牛步春草 問 隻履西歸 當爲何事 師曰 爲緣生處樂 不是厭他鄕 曰 如何是當面事 師曰 眼下鼻頭垂
여산(廬山) 귀종(歸宗) 혜통선사(慧通禪師)
승문 무엇이 이 함개건곤구(函葢乾坤句)입니까. 사왈 해가 동방에서 나와 밤에 서방으로 떨어진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절단중류구(截斷衆流句)입니까. 사왈 철산(鐵山)이 길에 가로놓여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입니까. 사왈 선자(船子; 子는 조사)가 양주(揚州)로 내려간다. 묻되 무엇이 이 진진삼매(塵塵三昧)입니까. 사왈 재가 날고 불이 어지럽다(灰飛火亂).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황하수(黃河水)가 곤륜(崑崙)의 부리에서 나온다. 묻되 12시 중에 어떻게 이천(履踐)해야 합니까. 사왈 철우(鐵牛)가 춘초(春草)를 걷는다(步). 묻되 척리(隻履)로 서귀(西歸)함은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사왈 생처(生處)가 즐겁기 때문(緣)이 되며 이, 타향(他鄕)을 싫어함이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당면사(當面事)입니까. 사왈 눈 아래 비두(鼻頭; 頭는 조사)가 드리워졌다.
上堂 心隨相起 見自塵生 了見本心 知心無相 卽十方刹海 念念圓明 無量法門 心心周匝 夫如是者 何假覺城東際 參見文殊 樓閣門開 方親彌勒 所以道 一切法門無盡海 同會一法道場中 拈起拄杖曰 這箇是一法 那箇是道場 這箇是道場 那箇是一法 良久曰 看看 拄杖子穿過諸人髑髏 須彌山拶破諸人鼻孔 擊香臺一下曰 且向這裏會取 上堂 從無入有易 從有入無難 有無俱盡處 且莫自顢頇 擧來看 寒山拾得禮豐干
상당(上堂) 심(心)이 상(相)을 따라 일어나고 견(見)이 진(塵)으로부터 나는지라 본심(本心)을 요견(了見)하면 심(心)이 무상(無相)임을 안다. 곧 시방찰해(十方刹海)가 염념(念念)에 원명(圓明)하고 무량법문이 심심(心心)에 주잡(周匝)하다. 무릇(夫) 이와 같은 것이거늘 어찌 각성(覺城; 伽耶城)의 동제(東際)에서 문수를 참견(參見)하고 누각문(樓閣門)이 열려 바야흐로 미륵을 친견함을 빌리겠는가. 소이로 말하되 일체법문(一切法門)의 무진해(無盡海)가 일법(一法)의 도량 중에 동회(同會)한다(화엄경2).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이것(這箇)은 이 일법이니 어느 것(那箇)이 이 도량인가. 이것은 이 도량이니 어느 것이 이 일법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보아라, 보아라. 주장자가 제인의 촉루(髑髏)를 천과(穿過)하고 수미산이 제인의 비공(鼻孔)을 찰파(拶破)한다. 향대(香臺)를 한 번 치고 가로되 다만(且) 이 속을 향해 회취(會取)하라. 상당(上堂) 무(無)로 좇아 유(有)에 들기는 쉽지만/ 유로 좇아 무에 들기는 어렵다/ 유무가 모두(俱) 없어진 곳에/ 또(且) 스스로 만한(顢頇)하지 말아라/ 거래(擧來)하여 보아라/ 한산과 습득이 풍간에게 예배한다.
安州大安興敎慧憲禪師
上堂 我有一條拄杖 尋常將何比況 采來不在南山 亦非崑崙西嶂 拈起滿目光生 放下驪龍縮項 同徒若也借看 卓出人中之上 擊香臺 下座
안주(安州) 대안(大安) 흥교(興敎) 혜헌선사(慧憲禪師)
상당(上堂) 나에게 한 가닥의 주장자가 있나니/ 심상(尋常)에 무엇을 가지고 비황(比況; 비교)하겠는가/ 캐어 오매 남산(南山)에 있은 게 아니며/ 또한 곤륜(崑崙)의 서장(西嶂)도 아니다/ 염기(拈起)하면 만목(滿目)에 빛이 나고/ 방하(放下)하면 이룡(驪龍)이 목을 옴츠린다/ 동도(同徒)가 만약에 차간(借看)한다면/ 인중(人中)의 위로 탁출(卓出)한다. 향대(香臺)를 치고 하좌했다.
育王璉禪師法嗣
臨安府佛日淨慧戒弼禪師
僧問 如何是毗盧印 師曰 草鞋踏雪 曰 學人不會 師曰 步步成蹤
임안부(臨安府) 불일(佛日) 정혜(淨慧) 계필선사(戒弼禪師)
승문 무엇이 이 비로인(毗盧印)입니까. 사왈 짚신으로 눈을 밟는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걸음마다 자취를 이룬다.
福州天宮愼徽禪師
上堂 八萬四千波羅密門 門門長開 三千大千微塵諸佛 佛佛說法 不說有 不說無 不說非有非無 不說亦有亦無 何也 離四句絕百非 相逢擧目少人知 昨夜霜風漏消息 梅花依舊綴寒枝
복주(福州) 천궁(天宮) 신휘선사(愼徽禪師)
상당(上堂) 팔만사천 바라밀문(波羅密門)이 문마다 늘(長) 열렸고 삼천대천의 미진제불(微塵諸佛)이 부처마다 설법한다. 유(有)를 설하지 않고 무(無)를 설하지 않고 비유비무(非有非無)를 설하지 않고 역유역무(亦有亦無)를 설하지 않는다. 왜냐, 사구(四句)를 여의었고 백비(百非)가 끊겼나니/ 상봉하여 거목(擧目)하매 아는 사람이 적다/ 어젯밤 상풍(霜風)이 소식을 누설했나니/ 매화가 의구히 한지(寒枝)에 맻혔다(綴).
靈隱知禪師法嗣
臨安府靈隱正童圓明禪師
僧問 如何是道 師曰 夜行莫踏白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黃張三黑李四
●黃張三黑李四; 貶人之泛稱 與張三李四同意
임안부(臨安府) 영은(靈隱) 정동(正童) 원명선사(圓明禪師)
승문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야행(夜行)하면서 흰 것을 밟지 말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황장삼 흑이사(黃張三黑李四)다.
●黃張三黑李四; 폄인(貶人; 사람을 폄하함)의 범칭(泛稱). 장삼이사와 같은 뜻.
承天簡禪師法嗣
婺州智者山利元禪師
上堂 拈拄杖曰 大用現前 不存軌則 東方一指 乾坤肅靜 西方一指 瓦解冰消 南方一指 南斗作竄 北方一指 北斗潛藏 上方一指 築著帝釋鼻孔 下方一指 穿過金剛水際 諸人面前一指 成得甚麽邊事 良久 卓一下曰 路上指奔鹿 門前打犬兒
무주(婺州) 지자산(智者山) 이원선사(利元禪師)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대용(大用)이 현전하여 궤칙(軌則)을 두지 않는다. 동방을 한 번 가리키매 건곤이 숙정(肅靜)하고 서방을 한 번 가리키매 와해빙소(瓦解冰消)하고 남방을 한 번 가리키매 남두(南斗)가 달아남(竄)을 짓고 북방을 한 번 가리키매 북두(北斗)가 잠장(潛藏; 숨다)하고 상방을 한 번 가리키매 제석(帝釋)의 비공(鼻孔)을 축착(築著; 찌르다)하고 하방을 한 번 가리키매 금강수제(金剛水際)를 천과(穿過)한다. 제인의 면전에 한 번 가리키면 심마변사(甚麽邊事; 어느 가의 일)를 성득(成得)하느냐. 양구했다가 한 번 치고(卓) 가로되 노상(路上)에서 분록(奔鹿)을 가리키고 문앞에서 견아(犬兒)를 때린다.
九峯韶禪師法嗣
明州大梅法英祖鏡禪師
本郡張氏子 棄儒試經得度 肄講延慶 凡義學有困於宿德 輒以詰師 師縱辭辨之 爲衆所敬 忽曰 名相迂曲 豈吾所宗哉 乃參九峯 峯見器之 與語若久在叢席 因痛劄之 師領旨 自爾得譽 住後 上堂 三十六旬之始 七十二候之初 末後句則且置 祇如當頭一句 又作麽生道 拈拄杖曰 歲朝把筆 萬事皆吉 急急如律令 大衆 山僧恁麽擧唱 且道還有祖師意也無 良久曰 記得東村黑李四 年年親寫在門前 卓拄杖 下座
●歲朝; 正月初一日 又作歲旦 歲日 元旦 元朔 元辰 元日 元正等
●急急如律令; 本是表至急義的漢朝官府所用者 後巫者以爲咒語
명주(明州) 대매(大梅) 법영(法英) 조경선사(祖鏡禪師)
본군(本郡) 장씨(張氏)의 아들이다. 기유(棄儒)하고 시경(試經)하여 득도(得度)했고 연경(延慶)에서 이강(肄講; 講學을 익힘)했다. 무릇 의학(義學)이 숙덕(宿德)을 곤박(困迫; 困)함이 있으면 번번이(輒) 스님에게 힐문(詰問; 詰)했는데 스님이 문사(文辭)를 놓아(縱) 그것을 변명(辨明)했고 대중이 공경하는 바가 되었다. 홀연히 가로되 명상(名相)은 우곡(迂曲)이거늘 어찌 내가 종앙(宗仰)하는 바이겠는가. 이에 구봉(九峯)을 참(參)했고 구봉이 보고서 법기로 여겼는데 더불어 말하면서 총석(叢席)에 오래 있은 것과 같았다(若). 인하여 통렬히 찔렀고(劄) 스님이 의지(意旨)을 영회(領會; 領)했고 이로부터 명예를 얻었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삼십육순(三十六旬; 360일)의 시작(始)이며 칠십이후(七十二候)의 시초(初)다. 말후구(末後句)는 곧 차치(且置)하고 지여(祇如) 당두(當頭; 當面)의 1구는 또 어떻게 말하겠는가.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세조(歲朝)에 파필(把筆)하면 만사가 모두 길(吉)하나니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다. 대중이여, 산승이 이렇게 거창(擧唱)하나니 차도(且道)하라, 도리어 조사의 뜻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기득(記得)하나니 동촌(東村)의 흑이사(黑李四)가 해마다 친사(親寫)하여 문앞에 있다.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歲朝; 정월 초 1일. 또 세단ㆍ세일ㆍ원단ㆍ원삭ㆍ원신ㆍ원일ㆍ원정 등으로 지음.
●急急如律令; 본시 지극히 급한 뜻을 표하는 한조(漢朝) 관부에서 쓰던 바의 것인데 후에 무자(巫者; 무당)가 주어(咒語)로 삼았음.
宣和初 敕天下僧尼爲德士 雖主法聚議 無一言以回上意 師肆筆解老子 詣進 上覧 謂近臣曰 法英道德經解 言簡理詣 於古未有 宜賜入道藏流行 仍就賜冠珮壇誥 不知師意者 往往以其爲佞諛 明年秋 詔復天下僧尼 師獨無改志 至紹興初 晨起戴樺皮冠 披鶴氅 執象簡 穿朱履 使擊鼓集衆 陞座召大衆曰 蘭芳春谷菊秋籬 物必榮枯各有時 敎毀僧尼專奉道 後平道佞復僧尼 且道僧尼形相作麽生 復取冠示衆曰 吾頂從來似月圓 雖冠其髮不成仙 今朝拋下無遮障 放出神光透碧天 擲之于地 隨易僧服 提鶴氅曰 如來昔日貿皮衣 數載慚將鶴氅披 還我丈夫調御服 須知此物不相宜 擲之 擧象簡曰 爲嫌禪板太無端 豈料遭他象簡瞞 今日因何忽放下 普天致仕老仙官 擲之 提朱履曰 達磨擕將一隻歸 兒孫從此赤脚走 借他朱履代麻鞋 休道時難事掣肘 化鵬未遇不如鵾 畫虎不成反類狗 擲之 橫拄杖曰 今朝拄杖化爲龍 分破華山千萬重 復倚肩曰 珍重佛心眞聖主 好將堯德振吾宗 擲下拄杖 斂目而逝
●象簡; 以象牙做的笏 簡 笏 手版 古代君臣朝會時 手中所拿的狹長板子 ▲廣韻 笏 一名手板 品官所執 天子以玉 諸侯以象 大夫魚須文竹 士木可也
●皮衣; 卽以鹿皮所製成之衣 又作鹿皮衣 乃取自悉達多太子入山時 被著鹿皮衣之故事 據太子瑞應本起經上載 悉達多太子入山修道時 遇兩位獵人 遂自忖 旣已棄家 則不宜如凡夫被服寶衣 猶存慾望 故脫去寶裘 而向獵者買鹿皮衣 竝被著離去
●掣肘; 拉著胳膊 比喻有人從旁牽制
선화(宣和; 1119-1125) 초 칙령으로 천하의 승니(僧尼)를 덕사(德士)라 했다. 비록 주법(主法; 법을 主宰)하여 모여 의논했지만 일언(一言)으로써 주상의 뜻을 돌이키려 함이 없었다. 스님이 붓을 휘둘러(肆) 노자(老子)를 해석하고 나아가(詣) 올렸다(進). 주상이 열람하고서 근신(近臣)에게 일러 가로되 법영(法英)의 도덕경해(道德經解)는 언어가 간명하고 이치가 심예(深詣; 詣)하여 옛적에 있지 않았다. 의당 도장(道藏)에 주어서 넣고(賜入) 유행(流行)케 하라. 인하여(仍) 곧(就) 관패(冠珮; 모자와 佩玉)와 단고(壇誥)를 주었다. 스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가 왕왕(往往) 그것을 영유(佞諛; 알랑거리며 아첨함)라 하였다. 명년 가을 조칙으로 천하의 승니를 복구(復舊)했지만 스님만 유독(惟獨) 개지(改志)가 없었다. 소흥(紹興; 1131-1162) 초에 이르자 새벽에 일어나 화피관(樺皮冠)을 이고 학창(鶴氅; 새털로 만든 갖옷. 道袍)을 입고 상간(象簡)을 가지고 주리(朱履)를 신고(穿) 북을 치고 대중을 집합하게 했다. 승좌(陞座)하여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난방(蘭芳)은 춘곡(春谷)이며 국화는 추리(秋籬)니/ 만물(物)은 반드시 영고(榮枯)하면서 각기 시절(時)이 있다/ 승니를 헐어 오로지(專) 봉도(奉道; 도교를 받듦)하게 하더니/ 후에 도교(道)의 아첨(阿諂; 佞)을 평정(平定; 平)하고 승니를 복구했다. 차도(且道)하라 승니의 형상(形相)이 어떠한가(作麽生). 다시 관(冠)을 취해 시중(示衆)하고 가로되 나의 정수리는 종래로 달의 둥긂과 같았나니/ 비록 그 머리카락에 갓을 썼으나(冠) 신선을 이루지 못했다/ 금조(今朝)에 던져 떨어뜨리매 차장(遮障)이 없나니/ 신광(神光)을 방출하여 벽천(碧天)을 투과한다. 땅에 그것을 던졌다. 그대로(隨) 승복으로 바꾸어 입고 학창(鶴氅)을 들고(提) 가로되 여래가 석일 피의(皮衣)와 무역(貿易; 貿; 저본에 貝로 지었음)했나니/ 몇 해 동안 학창을 가져서 입었음이 부끄럽다/ 우리 장부(丈夫)의 조어복(調御服)을 송환할지니/ 이 물건은 상의(相宜)하지 않음을 꼭 알아라. 그것을 던졌다. 상간(象簡)을 들고 가로되 선판(禪板)을 혐오(嫌)함은 너무 무단(無端)하나니/ 어찌 저(他) 상간의 속임(瞞)을 만날 줄 헤아렸겠는가(料)/ 금일 무엇으로 인해 홀연히 방하(放下)하는가/ 온 하늘이 노선관(老仙官)에 벼슬함에 이르렀다(致仕). 그것을 던졌다. 주리(朱履)를 들고(提) 가로되 달마가 일척(一隻)을 휴대하여 가지고(將) 돌아갔나니/ 아손이 이로 좇아 맨발로 달린다/ 저(他) 주리를 빌려(借) 마혜(麻鞋)에 대체했나니/ 시절이 험난하여 체주(掣肘)에 종사(從事)했다고 말하지 말아라/ 화붕(化鵬; 붕으로 변화함)을 만나지 못하면 댓닭(鵾)만 같지 못하고/ 화호(畫虎; 범을 그리다)를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反) 개와 유사하다. 그것을 던졌다. 주장자를 가로놓고 가로되 금조(今朝)에 주장자가 변화해 용이 되었나니/ 화산(華山)의 천만 겹을 분파(分破)했다. 다시 어깨에 기대고 가로되 진중(珍重)하십시오 불심의 참다운 성주(聖主)여/ 좋게 요덕(堯德)을 가지고 오종(吾宗)을 진작(振作; 振)하소서. 주장자를 던져 떨어뜨리고 눈을 감고(斂目) 서거했다.
●象簡; 상아로 만든 홀(笏). 간(簡)은 홀(笏)ㆍ수판(手版)이니 고대 군신이 조회할 때 수중에 잡는 바의 좁고 길쭉한 판자. ▲광운 홀(笏) 일명이 수판(手板)이니 품관(品官; 品階를 가진 벼슬아치의 총칭)이 잡는 것임. 천자는 옥을 쓰고 제후는 상아를 쓰며 대부는 물고기수염 무늬의 대며 사(士)는 나무도 가함.
●皮衣; 곧 녹피(鹿皮)로 제성(製成)한 바의 옷이니 또 녹피의(鹿皮衣)로 지음. 곧 실달다(悉達多) 태자가 입산할 때 입었던 녹피의의 고사(故事)로부터 취했음. 태자서응본기경상의 기재에 의거하면 실달다 태자가 입산하여 수도할 때 양위(兩位)의 엽인(獵人)을 만났는데 드디어 스스로 헤아리되 이미 집을 버렸으니 곧 범부와 같이 보의(寶衣)를 피복(被服)함은 옳지 않다. 아직 욕망이 남았는가, 고로 보구(寶裘)를 벗어 엽자(獵者)를 향해 녹피의를 구매했으며 아울러 입고서 떠났음.
●掣肘; 각박(胳膊; 팔)을 납착(拉著; 끌어당김)함. 어떤 사람이 곁으로부터 견제(牽制)함에 비유.
玉泉皓禪師法嗣
郢州林溪興敎文慶禪師
上堂 六六三十六 東方甲乙木 嘉州大像出關來 陝府鐵牛入西蜀 參
영주(郢州) 임계(林溪) 흥교(興敎) 문경선사(文慶禪師)
상당(上堂) 육육은 삼십육이며/ 동방은 갑을 목이다/ 가주대상(嘉州大像)이 출관(出關)하여 오고/ 섬부철우(陝府鐵牛)가 서촉(西蜀)에 들어간다. 참(參)하라.
夾山遵禪師法嗣
江陵福昌信禪師
僧問 一花開五葉 如何是第一葉 師提起坐具 僧曰 雲生片片 雨點霏霏 師曰 不痛不知傷 僧曰 這箇猶是風生雨意 如何是第一葉 師將坐具𢷾一𢷾 僧拍掌 師曰 一任𨁝跳 問 如何是佛 師曰 東家兒郞 西家織女 僧曰 學人不會 師曰 擲筆拋梭 上堂召大衆 衆擧頭 師曰 南山風色緊 便下座
강릉(江陵) 복창신(福昌信) 선사
승문 일화(一花)에 오엽(五葉)이 열린다 하니 무엇이 이 제1엽(第一葉)입니까. 스님이 좌구를 제기(提起)했다. 승왈 구름이 편편(片片) 생기(生起)하고 우점(雨點; 빗방울)이 비비(霏霏; 부슬부슬 내림)합니다. 사왈 아프지 않으면 상처를 알지 못한다. 승왈 저개(這箇)는 오히려 이 바람이 비를 생기(生起)하는 뜻입니다. 무엇이 이 제1엽니끼. 스님이 좌구를 가지고 흔들어(𢷾) 한 번 흔들었다. 중이 박장(拍掌)했다. 사왈 발도(𨁝跳; 펄쩍 뜀)하는 대로 일임한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동가(東家)의 아랑(兒郞; 男兒)이며 서가(西家)의 직녀(織女)다. 승왈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붓을 던지고 북을 던진다(擲筆拋梭). 상당하여 대중을 부르자 대중이 머리를 들었다. 사왈 남산의 풍색(風色)이 긴급하다. 바로 하좌했다.
天衣懷禪師法嗣
東京慧林宗本圓照禪師
常州無錫管氏子 體貌厖碩 所事淳厚 年十九 依姑蘇承天永安道昇禪師出家 巾侍十載 剃度受具 又三年 禮辭遊方 至池陽謁振宗 宗擧 天親從彌勒內宮而下 無著問云 人間四百年 彼天爲一晝夜 彌勒於一時中 成就五百億天子 證無生法忍 未審說甚麽法 天親曰 祇說這箇法 如何是這箇法 師久而開悟 一日 室中問師 卽心卽佛時如何 曰 殺人放火有甚麽難 於是名播寰宇
동경(東京) 혜림(慧林) 종본(宗本) 원조선사(圓照禪師)
상주(常州) 무석(無錫) 관씨(管氏)의 아들이다. 체모(體貌)가 방석(厖碩; 뚱뚱하고 큼)했고 일삼는 바가 순후(淳厚)했다. 나이 19에 고소(姑蘇) 승천(承天) 영안(永安) 도승선사(道昇禪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건시(巾侍)한 지 10재(載)에 체도(剃度)하고 수구(受具)했다. 또 3년 만에 예사(禮辭)하고 유방(遊方)하다가 지양(池陽)에 이르러 진종(振宗; 義懷의 시호)을 예알했다. 진종이 들되 천친(天親)이 미륵내궁(彌勒內宮)으로 좇아 내려오자 무착(無著)이 물어 이르되 인간의 4백 년이 그 천(天)에선 1주야(晝夜)가 되며 미륵이 일시(一時) 중에 5백억 천자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함을 성취한다 하더라. 미심하나니 무슨 법을 설하는가. 천친이 가로되 다만 저개법(這箇法)을 설합니다 했거니와 무엇이 이 저개법인가. 스님이 오래되자 개오(開悟)했다. 어느 날 실중(室中)에서 스님에게 묻되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때 어떠한가. 가로되 살인방화(殺人放火)가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이에 명성이 환우(寰宇)에 전파(傳播)되었다.
漕使李公復圭命師開法瑞光 法席日盛 武林守陳公襄以承天興敎二刹命師擇居 蘇人擁道遮留 又以淨慈堅請 移文諭道俗曰 借師三年 爲此邦植福 不敢久占 道俗始從 元豐五年 神宗皇帝下詔 闢相國寺六十四院 爲八禪二律 召師爲慧林第一祖 旣至 上遣使問勞 閱三日 傳旨就寺之三門 爲士民演法 翌日 召對延和殿 問道賜坐 師卽跏趺 帝問 卿受業何寺 奏曰 蘇州承天永安 帝大悅 賜茶 師卽擧盞長吸 又蕩而撼之 帝曰 禪宗方興 宜善開導 師奏曰 陛下知有此道 如日照臨 臣豈敢自怠 卽辭退 帝目送之 謂左右曰 眞福慧僧也 後帝登遐 命入福寧殿說法 以老乞歸林下 得旨任便雲遊 州郡不得抑令住持 擊鼓辭衆 說偈曰 本是無家客 那堪任意遊 順風加艣棹 船子下揚州 旣出都城 王公貴人送者車騎相屬 師臨別誨之曰 歲月不可把玩 老病不與人期 唯勤修勿怠 是眞相爲 聞者莫不感涕 晩居靈巖 其嗣法傳道者 不可勝紀
●移文; 文心雕龍四曰 移者易矣 移風易俗令往而民隨者也
●目送; 用目光送別離去的人或物
조사(漕使; 漕運使) 이공(李公) 복규(復圭)가 스님에게 명해 서광(瑞光)에서 개법했고 법석이 날로 흥성(興盛; 盛)했다. 무림수(武林守) 진공(陳公) 양(襄)이 승천(承天)ㆍ흥교(興敎) 2찰(刹)로써 스님에게 명해 택거(擇居)하게 하자 소인(蘇人)이 길을 옹위(擁衛; 擁)하며 차류(遮留; 막아서 머물게 함)했다. 또 정자(淨慈)로써 견청(堅請)하면서 이문(移文)으로 도속(道俗)을 깨우쳐(諭) 가로되 스님을 3년만 빌리면 차방(此邦)의 식복(植福)이 되리니 감히 오래 점거하지 않으리라. 도속이 비로소 좇았다. 원풍(元豐) 5년(1082) 신종황제(神宗皇帝)가 하조(下詔)하여 상국사(相國寺) 육십사원(六十四院)을 열어(闢) 팔선이율(八禪二律)로 만들고(爲) 스님을 불러 혜림(慧林) 제1조가 되게 했다. 이미 이르자 주상(主上: 上)이 사자(使者)를 보내 문로(問勞)했다. 3일이 지나(閱) 성지(聖旨; 旨)를 전해 사원의 삼문(三門)으로 나아가 사민(士民)을 위해 연법(演法)하게 했다. 익일(翌日) 연화전(延和殿)에서 소대(召對)하여 문도(問道)하고 자리(坐)를 주었다. 스님이 곧 가부(跏趺)했다. 황제가 묻되 경(卿)은 어느 사원에서 수업(受業)했습니까. 아뢰어 가로되 소주(蘇州)의 승천(承天)과 영안(永安)입니다. 황제가 대열(大悅)했고 사다(賜茶)하자 스님이 곧 잔(盞)을 들어 길게 흡입(吸入; 吸)하고 또 흔들어 그것을 움직였다(蕩而撼之). 제왈(帝曰) 선종(禪宗)이 바야흐로 흥하니 의당 잘 개도(開導)하십시오. 스님이 주왈(奏曰) 폐하께서 이 도가 있는 줄 아시니 해가 조림(照臨)함과 같거늘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 태만(怠慢; 怠)하겠습니까. 곧 사퇴(辭退)하자 황제가 목송(目送)했다. 좌우(左右)에게 일러 가로되 참다운 복혜승(福慧僧)이다. 후에 황제가 등하(登遐; 昇遐)하자 명령으로 복녕전(福寧殿)에 들어가 설법했다. 늙음을 써서(以老) 임하(林下)로 돌아감을 구걸했고 성지(聖旨)를 얻어 편한 대로(任便) 운유(雲遊)하게 했다. 주군(州郡)에서 억지(抑止)하여 주지(住持)하게 함을 얻지 못했다. 북을 치고 대중에게 고별(辭)하고는 게를 설해 가로되 본시(本是) 집이 없는 나그네거늘/ 어찌 뜻대로(任意) 노닒을 감내하리오/ 순풍(順風)에 노도(艣棹; 노)를 더하니/ 선자(船子; 배)가 양주(揚州)로 내려간다. 이미 도성(都城)을 벗어나자 왕공(王公)ㆍ귀인(貴人)ㆍ송별하는 자의 거기(車騎)가 상촉(相屬; 잇닿다)했다. 스님이 임별(臨別)하여 깨우쳐(誨) 가로되 세월은 가히 파완(把玩)하지 못하고 노병(老病)은 사람과 기약하지 않나니 오직 부지런히 닦고 게으르지 말아야 이것이 참다운 상위(相爲)다. 문자(聞者)가 감체(感涕)하지 않는 이 없었다. 만년에 영암(靈巖)에 거주했고 그 사법(嗣法)하고 전도(傳道)한 자를 가히 다(勝) 기록(紀)하지 못한다.
●移文; 문심조룡4에 가로되 이(移)란 것은 역(易)이다. 이풍역속(移風易俗)하여 가게 해 인민이 따르는 것이다.
●目送; 눈빛을 써서 이거(離去)하는 사람이나 혹 물건을 송별함.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韓信臨朝 曰 中下之流 如何領會 師曰 伏屍萬里 曰 早知今日事 悔不愼當初 師曰 三皇塚上草離離 問 上是天 下是地 未審中間是甚麽物 師曰 山河大地 曰 恁麽則謝師答話 師曰 大地山河 曰 和尙何得瞞人 師曰 却是老僧罪過 上元日 僧問 千燈互照 絲竹交音 正恁麽時佛法在甚麽處 師曰 謝布施 曰 莫便是和尙爲人處也無 師曰 大似不齋來 上堂 於一毫端現寶王刹 坐微塵裏轉大法輪 拈起拄杖曰 這箇是塵 作麽生說箇轉法輪底道理 山僧今日不惜眉毛 與汝諸人說破 拈起也 海水騰波 須彌岌峇 放下也 四海晏淸 乾坤肅靜 敢問諸人 且道拈起卽是 放下卽是 當斷不斷 兩重公案 擊禪牀 下座
●離離; 草木羅列之貌 離 羅列 陳列 ▲毛詩註疏四之一王風黍離離篇曰 彼黍離離 疏 正義曰 黍離離 謂秀而垂也
●絲竹; 弦樂器和竹制管樂器的統稱 亦泛指音樂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한신이 임조했다(韓信臨朝). 가로되 중하의 무리(中下之流)는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복시(伏屍)가 만 리다. 가로되 금일사(今日事)를 일찍 알았더라면 당초(當初)에 삼가지 않았음을 후회합니다. 사왈 삼황(三皇)의 무덤 위에 풀이 이리(離離)하다. 묻되 위는 이 하늘이며 아래는 이 땅이거니와 미심하오니 중간은 이 무슨 물건입니까. 사왈 산하대지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사왈 대지산하다. 가로되 화상은 어찌하여 사람을 속임을 얻습니까. 사왈 도리어 이 노승의 죄과(罪過)다. 상원일(上元日) 승문 천등(千燈)이 서로 비추고(互照) 사죽(絲竹; 弦樂器와 竹制管樂器)이 음을 교류(交)합니다. 바로 이러한 때 불법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보시(布施)에 감사한다. 가로되 바로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재(齋)하지 않고 옴과 매우 흡사(大似)하다. 상당(上堂) 한 터럭 끝에 보왕찰(寶王刹)을 나타내고 미진 속에 앉아 대법륜을 굴린다.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저개(這箇)는 이 진(塵)이니 어떻게(作麽生) 저(箇) 전법륜(轉法輪)하는 도리를 설하겠는가. 산승이 금일 눈썹을 아끼지 않고(不惜眉毛) 너희 제인을 위해(與) 설파하겠다. 염기(拈起)하매 해수(海水)가 등파(騰波; 파도를 솟구침)하고 수미(須彌)가 급합(岌峇; 象聲詞)하며 방하(放下)하매 사해(四海)가 안청(晏淸)하고 건곤이 숙정(肅靜)한다. 감히 제인에게 묻나니 차도(且道)하라 염기(拈起)가 곧 옳으냐, 방하(放下)가 곧 옳으냐. 당단(當斷)하여 부단(不斷)하면 양중공안(兩重公案)이다.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離離; 초목이 나열한 모양. 리(離)는 나열. 진열. ▲모시주소4지1(毛詩註疏四之一) 왕풍(王風)의 서리리편(黍離離篇)에 가로되 그 기장이 이리(離離)하다. 소(疏) 정의(正義)에 가로되 서리리(黍離離)는 이르자면 아름답게 드리웠음이다.
●絲竹; 현악기와 죽제 관악기의 통칭. 또한 널리 악기를 가리킴.
上堂 看看 爍爍瑞光照大千界 百億微塵國土 百億大海水 百億須彌山 百億日月 百億四天下 乃至微塵刹土 皆於光中 一時發現 諸仁者還見麽 若也見得 許汝親在瑞光 若也不見 莫道瑞光不照好 參 上堂 頭圓像天 足方似地 古貌稜層 丈夫意氣 趯倒須彌 踏翻海水 帝釋與龍王無著身處 乃拈拄杖曰 却來拄杖上回避 咄 任汝神通變化 究竟須歸這裏 以拄杖卓一下 師全身塔于蘇之靈巖
●稜層; 有稜有角 氣勢威嚴
상당(上堂) 보아라 보아라, 삭삭(爍爍; 밝게 빛나는 모양)한 서광(瑞光)이 대천계(大千界)를 비추나니 백억 미진국토(微塵國土)와 백억 대해수와 백억 수미산과 백억 일월과 백억 사천하(四天下) 내지 미진찰토(微塵刹土)가 모두 광중(光中)에 일시에 발현(發現)한다. 제인자(諸仁者)여 도리어 보느냐. 만약에 견득(見得)한다면 너희가 친히 서광(瑞光)에 있음을 허락하려니와 만약에 보지 못한다면 서광이 비추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으니라. 참(參)하라. 상당(上堂) 머리는 둥글어 하늘을 형상(形像)했고 발은 모나서 땅과 흡사하다. 고모(古貌)가 능층(稜層)하여 장부의 의기(意氣)니 수미(須彌)를 차서 넘어뜨리고 해수(海水)를 밟아 엎으매 제석(帝釋)과 용왕이 몸을 붙일 곳이 없다. 이에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도리어 주장자 위로 와서 회피한다. 돌(咄). 너희의 신통으로 변화함에 맡기더라도 구경(究竟)에 꼭 저리(這裏)로 돌아온다. 주장자로써 한 번 쳤다(卓). 스님의 전신(全身)으로 소(蘇; 蘇州)의 영암(靈巖)에 탑을 세웠다.
●稜層; 서슬도 있고 모서리도 있으며 기세가 위엄(威嚴)함.
東京法雲寺法秀圓通禪師
秦州隴城辛氏子 母夢老僧託宿 覺而有娠 先是 麥積山老僧與應乾寺魯和尙者善 嘗欲從魯游方 魯老之 旣去 緒語曰 他日當尋我竹鋪坡前 鐵場嶺下 魯後聞其所俄有兒生 卽往觀焉 兒爲一笑 三歲願隨魯歸 遂從魯姓 十九試經圓具 勵志講肆 習圓覺華嚴 妙入精義 因聞無爲軍鐵佛寺懷禪師法席之盛 徑往參謁 懷問曰 座主講甚麽經 師曰 華嚴 曰 華嚴以何爲宗 師曰 法界爲宗 曰 法界以何爲宗 師曰 以心爲宗 曰 心以何爲宗 師無對 懷曰 毫𨤲有差 天地懸隔 汝當自看 必有發明 後聞僧擧 白兆參報慈 情未生時如何 慈曰 隔 師忽大悟 直詣方丈 陳其所證 懷曰 汝眞法器 吾宗異日在汝行矣 初住龍舒四面 後詔居長蘆法雲 爲鼻祖 神宗皇帝上仙 宣就神御前說法 賜圓通號
●上仙; 一成仙 登仙 二死亡的婉詞 多指帝王 此指二
●神御; 先朝帝王的肖像 御 謂御容
동경(東京) 법운사(法雲寺) 법수(法秀) 원통선사(圓通禪師)
진주(秦州) 농성(隴城) 신씨(辛氏)의 아들이다. 모친의 꿈에 노승이 탁숙(託宿)했는데 깨어나서 임신(妊娠)이 있었다. 이에 앞서 맥적산(麥積山)의 노승이 응건사(應乾寺)의 노화상(魯和尙)이란 자와 잘 지냈다(善). 일찍이 노(魯)를 좇아 유방(游方)하고 싶어 했다. 노(魯)가 그를 늙었다 했다. 이미 떠나면서 말을 서술(敍述; 緒는 서술)해 가로되 다른 날 마땅히 죽포판(竹鋪坡) 앞 철장령(鐵場嶺) 아래에서 나를 찾아라. 노(魯)가 뒤에 그 장소에서 갑자기 아이가 출생함이 있다 함을 들었고 곧 가서 보았다. 아이가 일소(一笑)했다. 세 살에 노(魯)를 따라 돌아가기를 원했고 드디어 노성(魯姓)을 좇았다. 19에 시경(試經)하여 원구(圓具)했고 강사(講肆)에 여지(勵志; 마음을 가다듬어 뜻을 굳힘)했고 원각과 화엄을 학습하여 정의(精義)에 묘입(妙入)했다. 무위군(無爲軍) 철불사(鐵佛寺) 회선사(懷禪師; 義懷)의 법석이 왕성하다 함을 들음으로 인해 질러 가서(徑往) 참알(參謁)했다. 회(懷)가 문왈(問曰) 좌주는 무슨 경을 강(講; 익히다)했는가. 사왈 화엄입니다. 가로되 화엄은 무엇으로써 종(宗)을 삼는가. 사왈 법계(法界)로 종을 삼습니다. 가로되 법계는 무엇으로써 종을 삼는가. 사왈 심(心)으로써 종을 삼습니다. 가로되 심은 무엇으로써 종을 삼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회왈(懷曰) 호리유차(毫𨤲有差)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니 네가 마땅히 스스로 보아라. 반드시 발명(發明)이 있으리라. 후에 중이 거(擧)함을 들었다. 백조(白兆)가 보자(報慈; 藏嶼)를 참(參)하되 정(情)이 나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자왈(慈曰) 격(隔)했다. 스님이 홀연히 대오했다. 바로 방장으로 나아가(詣) 그 소증(所證)을 진술했다. 회왈(懷曰) 너는 참다운 법기(法器)니 오종(吾宗)이 이일(異日)에 너에게 있으면서 행하리라. 처음 용서(龍舒) 사면(四面)에 주(住)했고 후에 조칙으로 장로(長蘆) 법운(法雲)에 거주했으며 비조(鼻祖)가 된다. 신종황제(神宗皇帝)가 상선(上仙)하자 선고(宣告)하여 신어(神御)의 앞으로 나아가 설법하게 하고 원통(圓通)이란 호를 주었다.
●上仙; 1. 신선이 됨. 등선(登仙;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 2. 사망의 완사(婉詞; 婉曲한 말)니 다분히 제왕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神御; 선조(先朝) 제왕의 초상. 어(御)는 어용(御容)을 말함.
僧問 不離生死而得涅槃 不出魔界而入佛界 此理如何 師曰 赤土茶牛嬭 曰 謝師答話 師曰 你話頭道甚麽 僧擬議 師便喝 問 陽春二三月 萬物盡生芽 未審道芽還增長也無 師曰 自家看取 曰 莫便是指示處麽 師曰 芭蕉高多少 曰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師曰 這箇是白公底 你底作麽生 曰 且待別時 師曰 看你道不出 上堂 看風使帆 正是隨波逐浪 截斷衆流 未免依前滲漏 量才補職 寧越短長 買帽相頭 難得恰好 直饒上不見天 下不見地 東西不辯 南北不分 有甚麽用處 任是純鋼打就 生鐵鑄成 也須額頭汗出 總不恁麽 如何商量 良久曰 赤心片片誰知得 笑殺黃梅石女兒
●茶; 涂 飾
●陽春; 春天 溫暖的春天
●買帽相頭; 同相頭買帽 謂購買帽子而見其頭 揀擇適合者以買之 多喩按來機之不同 采取不同的應機作略或接引施設 相 省視
승문 생사를 여의지 않고 열반을 얻으며 마계(魔界)를 벗어나지 않고 불계(佛界)에 든다.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如何). 사왈 적토로 우내에 바른다(赤土茶牛嬭). 가로되 스님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사왈 네가 화두(話頭; 말의 첫머리)에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할했다. 묻되 양춘(陽春)의 2, 3월에 만물이 모두 싹이 납니다. 미심하오니 도아(道芽)도 도리어 증장(增長)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자가(自家)가 간취(看取)하라. 가로되 바로 이 지시처(指示處)가 아니겠습니까. 사왈 파초(芭蕉)의 높이가 얼마인가. 가로되 야화(野火)가 타다가 다하지 않으면 춘풍이 불매 또 납니다. 사왈 저개(這箇)는 이 백공(白公)의 것이다. 너의 것은 어떠한가. 가로되 다만(且) 다른 때를 기다립니다. 사왈 너를 보건대 말해 내지 못했다. 상당(上堂) 바람을 보고 돛을 부림은 바로(正) 이 수파축랑(隨波逐浪)이며 중류를 절단(截斷衆流)함은 의전(依前)히 삼루(滲漏)를 면하지 못하며 재능을 헤아려 보직함(量才補職)은 어찌(寧) 단장(短長)을 초월할 것이며 머리를 보고 모자를 사면(買帽相頭) 흡호(恰好)를 얻기 어렵다. 직요(直饒; 가령) 위론 하늘을 보지 않고 아래론 땅을 보지 않고 동서를 분변(分辨; 辯)하지 않고 남북을 분별하지 않더라도 무슨 쓸 곳이 있겠는가. 이 순강(純鋼)으로 타취(打就)하고 생철(生鐵)로 주성(鑄成)함에 맡기더라도 또한 꼭 액두(額頭; 이마)에서 땀이 난다. 모두(總) 이러하지 않으면 어떻게 상량(商量)하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적심(赤心)이 편편(片片)이지만 누가 지득(知得)하는가, 황매(黃梅)의 석녀아(石女兒)를 너무 웃겼다(笑殺).
●茶; 도(涂; 칠하다). 식(飾; 꾸미다).
●陽春; 춘천(春天; 춘계)이니 온난한 춘천임.
●買帽相頭; 상두매모(相頭買帽)와 같음. 이르자면 모자를 구매하면서 그 머리를 보고 적합한 것을 간택하여 그것을 사는 것이니 다분히 내기(來機)의 부동(不同)을 살펴서 부동(不同)의 응기작략(應機作略) 혹 접인시설(接引施設)을 채취(采取)함에 비유. 상(相)은 성시(省視; 살펴봄).
上堂 山僧不會巧說 大都應箇時節 相喚喫椀茶湯 亦無祖師妙訣 禪人若也未相諳 踏著秤鎚硬似鐵 上堂 秋雲秋水 靑山滿目 這裏明得 千足萬足 其或未然 道士倒騎牛 參 上堂 寒雨細 朔風高 吹沙走石 㧞木鳴條 諸人盡知有 且道風作何色 若識得去 許你具眼 若也不識 莫怪相瞞 參 上堂 少林九年冷坐 却被神光覷破 如今玉石難分 祇得麻纏紙裹 還會麽 笑我者多 哂我者少 上堂 納僧家高揖釋迦 不拜彌勒 未爲分外 祇如半偈亡軀 一句投火 又圖箇甚麽 良久曰 彼彼住山人 何須更說破 師示疾 謂衆曰 老僧六處住持 有煩知事首座大衆 今來四大不堅 火風將散 各宜以道自安 無違吾囑 遂曰 來時無物去時空 南北東西事一同 六處住持無所補 師良久 監寺惠當進曰 和尙何不道末後句 師曰 珍重珍重 言訖而逝
●大都; 大槪 大抵 都 全也
●風作何色; 祖庭事苑三 風作何色 西禪東平與官員坐次 西禪云 風作何色 官無語 禪却問僧 僧拈起衲衣云 在府中鋪 禪云 用多少帛子 僧云 勿交涉 禪無語 雲門代云 咄 者話墮阿師 見懷和上雲門室錄
●高揖釋迦 不拜彌勒; 祖庭事苑二 不拜彌勒 高揖釋迦不拜彌勒 乃禪家絶聖凡之語 然不拜之緣亦有所出 按三藏傳(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二)云 秣底補羅國 城南四五里小伽藍 卽德光論師 於此作辨眞等論 凡百餘部 論師是鉢伐多國人 本習大乘 後退學小乘 時天軍阿羅漢 往來覩史多天 德光願見慈氏 決諸疑滯 請天軍以神力接上天宮 旣見慈氏 揖而不禮 言 我今出家具戒 慈氏處天同俗 禮敬非宜 如是往來三返 皆不致禮 旣我慢自高 疑亦不決 其語雖同 意與此異
●半偈亡軀; 祖庭事苑一 夜叉說半偈 涅槃經(13)云 佛言 過去之世 佛日未出 我於爾時作婆羅門 修菩薩行 周徧求索大乘經典 乃至不聞方等文字 住雪山中 思惟坐禪 時釋提桓因心大驚怪 要當自試 自變其身作羅刹像 去其不遠 其聲淸雅 宣過去佛所說半偈 諸行無常 是生滅法 聞是半偈 心生歡喜 卽從座起 四向顧視云 向所聞偈 誰之所說 唯見羅刹 卽便前至 善哉大士 汝於何處 得是過去離怖畏者所說半偈 卽答我言 我不食多日 心亂䆿語 非我本心之所知也 汝所食者爲是何物 答言 食人暖肉 飮人熱血 汝但具足說是半偈已 當以此身奉施 誰當信汝爲八字故 捨所愛身 我所證者 梵天釋提桓因十方世尊 汝若如是 諦聽諦聽 當爲汝說 生滅滅已 寂滅爲樂
●一句投火; 謂菩薩求法心切 可爲聞一言一法而投身火坑
●今來; 一當今 如今 二從今以後 此指一
상당(上堂) 산승은 교설(巧說)할 줄 알지 못하고/ 대도(大都) 저(箇) 시절에 응한다/ 상환(相喚)하여 한 사발의 다탕(茶湯)을 먹나니/ 또한 조사의 묘결(妙訣)이 없다/ 선인(禪人)이 만약에 상암(相諳; 알다)하지 못한다면/ 칭추(秤鎚)를 답착(踏著)하매 단단하기가 철(鐵)과 같으리라. 상당(上堂) 추운(秋雲)과 추수(秋水), 청산이 눈에 가득하나니 저리(這裏)에서 명득(明得)하면 천족만족(千足萬足)이리라.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도사(道士)가 소를 거꾸로 탔다. 참(參)하라. 상당(上堂) 한우(寒雨)는 가늘고(細) 삭풍(朔風)은 높고 모래를 불면 돌이 달리고 나무를 뽑으면 가지(條)를 울린다. 제인이 모두 지유(知有)하거니와 차도(且道)하라. 바람이 무슨 색을 지었느냐(風作何色). 만약 식득한다면(識得去) 너에게 구안(具眼)했다고 허락하려니와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 상만(相瞞)함을 괴이히 여기지 말아라. 참(參)하라. 상당(上堂) 소림에서 9년 동안 냉좌(冷坐)하다가/ 도리어 신광(神光)이 처파(覷破)함을 입었다/ 여금에 옥석(玉石)을 분간하기 어렵나니/ 다만 삼으로 묶고 종이로 쌈을 얻었다. 도리어 아느냐. 나를 비웃는(笑) 자는 많고 나에게 미소하는(哂) 자는 적다. 상당(上堂) 납승가(納僧家)가 석가에게 고읍하고 미륵에게 예배하지 않음(高揖釋迦 不拜彌勒)이 분한 밖이 되지 않거니와 지여(祇如) 반게에 몸을 잊고(半偈亡軀) 1구에 투화(一句投火)함은 또 저 무엇을 도모함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피피(彼彼; 彼. 彼此) 주산인(住山人)이거늘 다시 설파함을 어찌 쓰겠는가. 스님이 시질(示疾)했다.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노승이 여섯 곳에서 주지하면서 지사(知事)ㆍ수좌ㆍ대중을 번거롭게(煩) 함이 있었다. 금래(今來)에 4대(大)가 견고하지 못해 화풍(火風)이 장차 흩어지려고 하나니 각기 의당 도로써 스스로 안정(安靜; 安)하라. 나의 부촉을 위배하지 말아라. 드디어 가로되 올 때 물건이 없었고 갈 때 공(空)했나니 남북동서의 일이 일동(一同)하다. 여섯 곳에 주지하면서 보태는(補) 바가 없었나니, 스님이 양구했다. 감사(監寺) 혜당(惠當)이 사뢰어(進) 가로되 화상은 왜 말후구를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왈 진중(珍重)하라. 진중하라. 말을 마치자 서거했다.
●大都; 대개. 대저. 도(都)는 전(全)임.
●風作何色; 조정사원3 풍작하색(風作何色) 서선동평(西禪東平)이 관원과 앉은 차에 서선이 이르되 바람은 어떤 색을 짓는가. 관원이 말이 없었다. 서선이 도리어 중에게 묻자 중이 납의를 들어 일으키며 이르되 부중(府中)의 점포(店鋪)에 있습니다. 서선이 이르되 다소(多少; 얼마)의 백자(帛子; 子는 조사)를 썼는가. 중이 이르되 교섭이 없습니다. 서선이 말이 없었다. 운문이 대운(代云)하되 돌(咄), 이 화타(話墮; 墮는 負墮임. 곧 논의에서 지는 것)한 아사(阿師; 阿는 조사, 곧 스님)야. 의회화상(義懷和上)의 운문실록(雲門室錄)을 보라.
●高揖釋迦 不拜彌勒; 조정사원2. 불배미륵(不拜彌勒) 석가에게 고읍하고 미륵에게 절하지 않는다(高揖釋迦不拜彌勒) 함은 곧 선가에서 성범(聖凡)을 단절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배(不拜)의 인연은 또한 나온 곳이 있으니 안험컨대 삼장전(三藏傳; 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二)에 이르되 말지보라국의 성 남쪽 4, 5리의 작은 가람은 곧 덕광논사가 여기에서 변진(辨眞) 등의 논을 지었는데 무릇 백여 부였다. 논사는 이 발벌다국 사람이며 본래 대승을 익혔으나 뒤에 후퇴하여 소승을 배웠다. 때에 천군아라한이 도사다천(覩史多天; 도솔천)에 왕래하자 덕광이 자씨(慈氏)를 뵙고 여러 의체(疑滯)를 해결하기를 원했으며 천군에게 신력을 써서 천궁에 접상(接上. 接引하여 올라감)하기를 청했다. 이미 자씨를 뵙자 읍하고는 예배하지 않았는데 말하자면 나는 지금 출가하여 구계(具戒; 계를 갖춤. 곧 구족계를 받음)했지만 자씨는 천궁에 거처하면서 속인과 같으므로 예경함은 마땅치 않다 함이었다. 이와 같이 왕래하기를 세 번 반복했으나 다 치례(致禮; 致는 시행이니 곧 예를 드림)치 않았다. 이미 아만이 스스로 높아 의체도 또한 해결하지 못했다. 그 말은 비록 같으나 뜻은 이와 다름.
●半偈亡軀; 조정사원1. 야차설반게(夜叉說半偈) 열반경(13)에 이르되 불타가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에 불일(佛日)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적에 내가 이때 바라문이 되어 보살행을 닦으면서 대승경전을 두루 구색(求索)했건만 내지 방등문자(方等文字)를 듣지 못해 설산 중에 머물면서 사유하며 좌선했다. 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마음에 크게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요컨대 마땅히 스스로 시험코자 스스로 그 몸을 변화하여 라찰(羅刹)의 형상(形像)을 지었는데 거기에서 떨어지기가 멀지 않았다. 그 소리가 청아(淸雅)하게 과거 불타가 설하신 바 반게(半偈)를 선창(宣暢; 暢은 화창할 창. 후련할 창)했으니 제행은 무상이라 이 생멸법이다(諸行無常 是生滅法). 이 반게를 듣고서 마음에 환희를 내어 곧 자리로부터 일어나 사향(四向; 동서남북)을 돌아보고 이르되 아까 들은 바 게는 누가 설한 것인가. 오직 라찰만 보이는지라 곧 바로 앞에 이르러 선재(善哉)로다 대사(大士)여, 그대는 어느 곳에서 이 과거이포외자(過去離怖畏者; 과거의, 포외를 여읜 자)의 소설(所說)인 반게를 얻었는가. 곧 나에게 답해 이르되 내가 먹지 못한 지 여러 날이라 심란(心亂)하여 잠꼬대(䆿는 잠꼬대 예)한 것이니 내 본심의 알 바가 아니다. 그대가 먹는 바의 것은 이 어떤 물건이 되는가. 답해 말하되 사람의 더운 살을 먹고 사람의 뜨거운 피를 마신다. 그대가 단지 이 반게를 구족히 설한 다음에 마땅히 이 몸을 봉시(奉施)하리라. 누가 마땅히 네가 여덟 글자를 위하는 고로 아끼는 바 몸을 버린다 함을 믿겠는가. 내가 증득한 바의 것은 범천(梵天)이며 석제환인(釋提桓因)이며 시방의 세존이다. 네가 만약 이와 같다면 체청(諦聽; 諦는 살필 체. 자세할 체)하고 체청하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 생멸이 멸한 다음 적멸로 낙을 삼는다(生滅滅已 寂滅爲樂).
●一句投火; 이르자면 보살이 구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가히 1언1법을 듣기 위해 불구덩이에 투신함.
●今來; 1. 당금(當今). 여금. 2. 지금으로부터 이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東京相國慧林院若冲覺海禪師
江寧府鍾氏子 上堂 碧落靜無雲 秋空明有月 長江瑩如練 淸風來不歇 林下道人幽 相看情共悅 諸仁者 適來道箇淸風明月 猶是建化門中事 作麽生是道人分上事 良久曰 閑來石上觀流水 欲洗禪衣未有塵 上堂 無邊義海 咸歸顧盻之中 萬象形容 盡入照臨之內 你諸人築著磕著 因甚麽却不知 良久曰 莫怪山僧太多事 光陰如箭急相催 珍重
●建化門; 佛祖建立的敎化法門 禪家認爲建化門幷非頓悟妙法 只是適宜于多數中下根器的方便法門
●光陰; 明亮與陰暗 白晝與黑夜 指日月的推移 後世卽用以表時間 [百度百科]
동경(東京) 상국(相國) 혜림원(慧林院) 약충(若冲) 각해선사(覺海禪師)
강녕부(江寧府) 종씨(鍾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벽락(碧落)이 고요해 구름이 없고/ 추공(秋空)이 밝아 달이 있다/ 장강(長江)은 맑아서(瑩) 명주(明紬: 練)와 같고/ 청풍은 오며 쉬지(歇) 않는다/ 임하(林下)의 도인이 그윽하나니/ 상간(相看)하면서 정다워 함께 기뻐한다. 제인자(諸仁者)여, 아까 저(箇) 청풍명월을 말했거니와 오히려 이는 건화문중(建化門中)의 일이다. 무엇이 이 도인 분상(分上)의 일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한가하여(閑來) 석상(石上)에서 유수(流水)를 보다가 선의(禪衣)를 씻고 싶었으나 티끌이 있지 않더라. 상당(上堂) 무변한 의해(義海)가 모두(咸) 고혜(顧盻; 環視니 사방을 둘러 봄)의 가운데로 돌아가고 만상(萬象)의 형용(形容)이 모두(盡) 조림(照臨)의 안으로 들어간다. 너희 제인이 축착개착(築著磕著)하면서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알지 못하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산승이 매우 다사(多事)함을 괴이히 여기지 말지니 광음(光陰)이 화살과 같아 급히 서로 재촉한다. 진중(珍重)하라.
●建化門; 불조가 건립한 교화법문임. 선가에서 인식하기를 건화문은 모두 돈오의 묘법이 아니라고 함. 다만 이것은 다수의 중하근기에 적의(適宜; 적합)한 방편법문임.
●光陰; 명량(明亮)과 음암(陰暗). 백주와 흑야. 일월의 추이를 가리킴. 후세에 곧 시간을 표시함에 사용했음 [백도백과].
眞州長蘆應夫廣照禪師
滁州蔣氏子 僧問 古者道 如來禪卽許老兄會 祖師禪未夢見在 未審如來禪與祖師禪是同是別 師曰 一箭過新羅 僧擬議 師便喝 問 識得衣中寶時如何 師曰 你試拈出看 僧展一手 師曰 不用指東畫西 寶在甚麽處 曰 爭奈學人用得 師曰 你試用看 僧拂坐具一下 師曰 衆人笑你
●一箭過新羅; 比喩禪機疾如飛箭 超越言句 若稍有遲緩 咸入情解 便已遠逝 或云 不知落處 沒踪迹之義
●衣中寶; 比喩人人自身具有的佛性
진주(眞州) 장로(長蘆) 응부(應夫) 광조선사(廣照禪師)
저주(滁州) 장씨(蔣氏)의 아들이다. 승문 고자(古者; 앙산)가 말하되 여래선은 곧 노형(老兄)이 이회(理會)함을 허락하지만 조사선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미심하오니 여래선과 조사선이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일전이 신라를 지났다(一箭過新羅).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할했다. 묻되 의중보(衣中寶)를 식득(識得)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시험 삼아 염출(拈出)해 보아라. 중이 한 손을 폈다. 사왈 지동획서(指東畫西)를 쓰지 말지니 보배가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학인이 씀을 얻었음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네가 시험 삼아 써 보아라. 중이 좌구를 한 번(一下) 떨쳤다. 사왈 중인(衆人)이 너를 웃는다.
●一箭過新羅; 선기(禪機)의 빠르기가 나는 화살과 같아서 언구를 초월함에 비유함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더딤이 있으면 다 정해(情解)에 들어가 곧 이미 멀리 떠났다 함임. 혹은 이르기를 낙처를 알지 못함이며 종적이 없음의 뜻이라 함.
●衣中寶; 사람마다 자신이 갖추고 있는 불성에 비유함.
上堂 召衆曰 江山遶檻 宛如水墨屛風 殿閣凌空 麗若神仙洞府 森羅萬象 海印交參 一道神光 更無遮障 諸人還會麽 良久曰 寥寥天地間 獨立望何極 參 上堂 顧大衆曰 這箇爲甚麽擁不聚 撥不散 風吹不入 水灑不著 火燒不得 刀斫不斷 是箇甚麽 衆中莫有釘觜鐵舌底衲僧 試爲山僧定當看 還有麽 良久曰 若無 山僧今日失利 久立
●釘觜鐵舌; 形容機語尖銳强硬
상당(上堂)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강산이 난간(欄干; 檻)을 둘러(遶) 완연히 수묵병풍(水墨屛風)과 같고(如) 전각(殿閣)이 허공을 범해(凌) 곱기(麗)가 신선의 동부(洞府)와 같다(若). 삼라만상은 해인(海印)이 교참(交參)하고 한 줄기(道) 신광(神光)은 다시 차장(遮障)이 없다. 제인이 도리어 아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요료(寥寥)한 천지 사이에 홀로 서서 바라보매 어찌 다함 있으랴. 참(參)하라. 상당(上堂) 대중을 돌아보고 가로되 저개(這箇)는 무엇 때문에 안아도(擁) 모이지 않고 헤쳐도 흩어지지 않느냐. 바람이 불어도 들어가지 못하고 물로 뿌려도 붙지 않고 불로 태움을 얻지 못하고 칼로 쪼개어도 끊어지지 않나니 이것(是箇)이 무엇인가. 중중(衆中)에 정취철설(釘觜鐵舌)의 납승이 있지 않느냐. 시험 삼아 산승을 위해 정당(定當; 判明)해 보아라. 도리어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만약 없다면 산승이 금일 실리(失利)했다. 구립(久立)했다.
●釘觜鐵舌; 기어(機語)가 첨예하고 강경함을 형용함.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pyungsims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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