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15 지명선사(智明禪師)-운활선사(雲豁禪師)

태화당 2025. 10. 8. 07:08

金陵淸凉智明禪師

江南主請師上堂 小長老問 凡有言句 盡落方便 不落方便 請師速道 師曰 國主在此 不敢無禮

 

금릉(金陵) 청량(淸凉) 지명선사(智明禪師)

강남주(江南主)가 청하여 스님이 상당했다. 소장로(小長老)가 묻되 무릇 언구가 있으면 모두 방편에 떨어집니다. 방편에 떨어지지 않고 청컨대 스님이 속히 말하십시오. 사왈 국주(國主)가 여기에 계시니 감히 무례(無禮)하지 말아라.

 

潭州南臺道遵法雲禪師

上堂 從上宗乘 合作麽生提綱 合作麽生言論 佛法兩字當得麽 眞如解脫當得麽 雖然如是 細不通風 大通車馬 若約理化門中 一言纔啓 震動乾坤 山河大地 海晏河淸 三世諸佛 說法現前 於此明得 古佛殿前 同登彼岸 無事 珍重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下坡不走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著衣喫飯 曰 見後如何 師曰 鉢盂挂壁上 問 如何是眞如含一切 師曰 分明 曰 爲甚麽有利鈍 師曰 四天打鼓 樓上擊鐘 問 如何是南臺境 師曰 金剛手指天 問 如何是色空 師曰 道士著眞紅 問 十二時中 時時不離時如何 師曰 諦

 

담주(潭州) 남대(南臺) 도준(道遵) 법운선사(法雲禪師)

상당(上堂)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을 합당히 어떻게 제강(提綱)하며 합당히 어떻게 언론(言論)하겠는가. 불법 양자(兩字)로 당함을 얻겠는가. 진여해탈로 당함을 얻겠는가.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작기로는() 바람도 통하지 않고 크기로는 거마(車馬)도 통한다. 만약 이화문중(理化門中; 이치로 교화하는 門中)을 대약(大約)하자면 일언(一言)을 겨우 열면() 건곤을 진동(震動)하고 산하대지가 해안하청(海晏河淸)하고 삼세제불이 설법하며 현전(現前)한다. 여기에서 밝힘을 얻으면 고불의 전전(殿前)에서 함께 피안(彼岸)에 오르리라. 무사(無事)하니 진중(珍重)하라.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언덕을 내려가며 달리지 않는다(下坡不走).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옷 입고 밥 먹는다(著衣喫飯).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발우(鉢盂)가 벽 위에 걸렸다. 묻되 무엇이 이, 진여(眞如)가 일체(一切)를 포함(包含)함입니까. 사왈 분명하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둔(利鈍)이 있습니까. 사왈 사천(四天; 사천왕)이 타고(打鼓)하매 누상(樓上)에서 격종(擊鐘)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남대경(南臺境)입니까. 사왈 금강(金剛; 금강역사)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묻되 무엇이 이 색공(色空)입니까. 사왈 도사(道士)가 진홍을 입었다(著眞紅). 묻되 12시 중 시시(時時)로 여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체(; 진실. 道理).

 

韶州雙峰竟欽禪師

益州人也 開堂日 雲門和尙躬臨證明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日出方知天下朗 無油那點佛前燈 問 如何是雙峯境 師曰 夜聽水流庵後竹 晝看雲起面前山 問 如何是和尙爲人一句 師曰 因風吹火 上堂 進一步則迷理 退一步則失事 饒你一向兀然去 又同無情 僧問 如何得不同無情去 師曰 動轉施爲 曰 如何得不迷理失事去 師曰 進一步 退一步 僧作禮 師曰 向來有人恁麽會 老僧不肯伊 曰 請師直指 師便打出 問 如何是正法眼 師曰 山河大地 問 如何是法王劒 師曰 鉛刀徒逞 不若龍泉 曰 用者如何 師曰 藏鋒猶不許 露刃更何堪 問 賓頭盧應供四天下 還得徧也無 師曰 如月入水 問 如何是用而不雜 師曰 明月堂前垂玉露 水晶殿裏璨眞珠 有行者問 某甲遇賊來時 若殺卽違佛敎 不殺又違王敕 未審師意如何 師曰 官不容針 私通車馬 廣主甞親問法要 錫慧眞廣悟號 將示寂 告門人曰 吾不久去世 汝可就山頂預修墳塔 洎工畢 以聞 師曰 後日子時行矣 及期 會雲門爽和尙等七人夜話 侍者報三更也 師索香焚之 合掌而逝

向來; 一以前 二方今

應供; ()如來十號之一 梵語阿羅訶 譯曰應供 斷一切之惡 應受人天之供養者 於小乘佛敎中 指無學果之聖者 [涅槃經十八 智度論二十四 大乘義章二十末] ()供應 供奉 供養 此指()

 

소주(韶州) 쌍봉(雙峰) 경흠선사(竟欽禪師)

익주(益州) 사람이다 개당일에 운문화상이 몸소 임해 증명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師曰) 해가 나오매 바야흐로 천하가 밝은() 줄 알거니와 기름이 없다면 어찌() 불전(佛前)의 등을 켜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쌍봉경(雙峯境)입니까. 사왈 밤에 물이 암후(庵後)의 대()에 흐름을 듣고 낮에 구름이 면전의 산에 일어남을 본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바람으로 인해 불을 분다. 상당(上堂) 진일보(進一步)하면 곧 미리(迷理)하고 퇴일보(退一步)하면 곧 실사(失事)한다. 가령() 너희가 일향(一向) 올연하면(兀然去) 또 무정(無情)과 같다. 승문 어찌해야(如何) 무정과 같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동전(動轉)하고 시위(施爲)하라. 가로되 어찌해야 미리(迷理)하거나 실사(失事)하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진일보(進一步)하고 퇴일보(退一步)하라. 중이 작례(作禮)했다. 사왈 향래(向來; 以前)에 어떤 사람이 이렇게 이회(理會)했지만 노승이 그()를 불긍(不肯)했다. 가로되 청컨대 스님이 직지(直指)하십시오. 스님이 때리고 쫓아내었다. 묻되 무엇이 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산하대지다. 묻되 무엇이 이 법왕의 검입니까. 사왈 연도(鉛刀)를 도연히 자랑함이(徒逞) 용천(龍泉; 보검의 이름)만 같지() 못하다. 가로되 쓰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장봉(藏鋒)도 오히려 허락하지 않거늘 노인(露刃)을 다시 어찌 감내하리오. 묻되 빈두로(賓頭盧)가 사천하(四天下)에 응공(應供)했다 하니 도리어 두루함을 얻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달이 입수(入水)한 것과 같다. 묻되 무엇이 이 써도() 잡되지 않음입니까. 사왈 명월당(明月堂) 앞에 옥로(玉露)를 드리웠고 수정전(水精殿) 속에 진주(眞珠)가 빛난다(). 어떤 행자가 묻되 모갑이 도적이 옴을 만났을 때 만약 죽이면 곧 불교에 위배되고 죽이지 않으면 또 왕칙(王敕)에 위배됩니다. 미심하오니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사왈 관에선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官不容針) 사적으론 거마도 통한다(私通車馬). 광주(廣主)가 일찍이 법요를 친문(親問)했고 혜진광오(慧眞廣悟)란 호를 주었다(). 장차 시적하려 하자 문인(門人)에게 고()해 가로되 내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날 것이니 너희는 가히 산정(山頂)으로 나아가 미리 분탑(墳塔)을 수축(修築; )하거라. 공사를 마침에 이르러(洎工畢) 알리자(以聞) 사왈 후일 자시(子時)에 가겠다. 기일(期日)에 이르러() 운문상(雲門爽) 화상 등 7인이 모여 야화(夜話)했는데 시자가 3()을 알리자 스님이 향을 찾아 그것을 사르고 합장하고 떠났다().

向來; 1. 이전(以前). 2. 방금.

應供; (1)여래 10호의 하나. 범어 아라하(阿羅訶; arhat arhant)는 번역해 가로되 응공이니 일체의 악을 끊고 응당 인천의 공양을 받을 자임. 소승불교 중에선 무학과(無學果)의 성자를 가리킴 [열반경18. 지도론24. 대승의장20]. (2)공응(供應)ㆍ공봉(供奉)ㆍ공양.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韶州資福詮禪師

僧問 不問宗乘 請師心印 師曰 不答這話 曰 爲甚麽不答 師曰 不副前言 問 覿面難逢處 如何顧鑒咦 乞師垂半偈 免使後人疑 師曰 鋒前一句超調御 擬問如何歷劫違 曰 恁麽則東山西嶺時人知有 未審資福庭前誰家風月 師曰 且領前話

顧鑒咦; 禪宗頌古聯珠通集三十二 雲門每見僧 必顧視曰鑒 僧擬議 乃曰咦 後德山圓明大師 刪去顧字謂之抽顧 叢林目雲門顧鑒咦

 

소주(韶州) 자복전(資福詮) 선사

승문(僧問) 종승(宗乘)을 묻지 않고 스님의 심인(心印)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저화(這話)에 답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답하지 않습니까. 사왈 전언(前言)에 합당하지() 않다. 묻되 적면(覿面)하여 만나기 어려운 곳에서 어떻게 고감이(顧鑒咦)합니까. 스님에게 구걸하노니 반게(半偈)를 내려() 후인으로 하여금 의심을 면하게 하십시오. 사왈 봉전(鋒前)1구가 조어(調御; 調御丈夫)를 초월하거늘 물으려고 헤아린다면(擬問) 어찌하여 역겁(歷劫)에 위배되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동산(東山)과 서령(西嶺)에서 시인(時人)이 지유(知有)하려니와 미심하오니 자복(資福)의 정전(庭前)에 뉘집(誰家)의 풍월입니까. 사왈 전화(前話)를 영(; 領會)하라.

顧鑒咦; 선종송고연주통집32. 운문이 매번 중을 보면 반드시 돌아보고()顧視 가로되 감(). 중이 의의(擬議; 헤아려 의논하려 함)하면 곧 가로되 이() 했다. 후에 덕산원명대사가 고자(顧字)를 깎아 제거하고는 이를 일러 추고(抽顧)라 했는데 총림에서 제목해 운문의 고감이(顧鑒咦)라 했다.

 

廣州黃雲元禪師

初開堂日 以手拊繩牀曰 諸人還識廣大須彌之座也無 若不識 老僧陞座去也 師便坐 僧問 如何是大漢國境 師曰 歌謠滿路 上堂 古人道 觸目未曾無 臨機何不道 山僧卽不然 觸目未曾無 臨機道甚麽 珍重

大漢國; 摩訶支那 見上1不如密多章震旦

 

광주(廣州) 황운원(黃雲元) 선사

처음 개당일(開堂日) 손으로써 승상(繩牀)을 두드리고() 가로되 제인은 도리어 광대한 수미지좌(須彌之座)를 아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 알지 못한다면 노승이 승좌하겠다(陞座去也). 스님이 바로 앉았다. 승문 무엇이 이 대한국(大漢國) 경계입니까. 사왈 가요(歌謠)가 길에 가득하다. 상당(上堂) 고인이 말하되 촉목(觸目)하여 일찍이 없지 않거늘 임기(臨機)하여 왜 말하지 못하느냐. 산승은 곧 그렇지 않나니 촉목하여 일찍이 없지 않나니 임기하여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진중(珍重)하라.

大漢國; 마하지니(摩訶支那)니 위 1 불여밀다장(不如密多章) 진단(震旦)을 보라.

 

廣州龍境倫禪師

開堂陞座 提起拂子曰 還會麽 若會 頭上更增頭 若不會 斷頭取活 僧問 如何是龍境家風 師曰 豺狼虎豹 問 如何是佛 師曰 勤耕田 曰 學人不會 師曰 早收禾 問僧 甚麽處來 曰 黃雲來 師曰 作麽生是黃雲郞當媚癡抹躂 爲人一句 僧無對 示衆曰 作麽生是長連牀上取性一句 道將來

 

광주(廣州) 용경륜(龍境倫) 선사

개당하여 승좌(陞座)하자 불자를 제기(提起; 들어 일으키다)하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만약 안다면 두상(頭上)에 다시 두()를 더함이며 만약 알지 못한다면 단두(斷頭)하고 삶을 취함이다. 승문 무엇이 이 용경(龍境)의 가풍입니까. 사왈 시랑호표(豺狼虎豹; 승냥이ㆍ이리ㆍ범ㆍ표범).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부지런히 밭을 간다(耕田).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일찍 벼를 거둔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황운(黃雲)에서 옵니다. 사왈 무엇이 이 황운의 낭당(郞當)하고 미치(媚癡; 아첨과 어리석음)하고 말달(抹躂; 비비고 미끄러지다)하면서 위인(爲人)하는 1구인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시중(示衆)해 가로되 무엇이 이 장련상상(長連牀上)에서 취성(取性; 任性)하는 1구인가, 말해 가져 오너라.

 

韶州雲門山爽禪師

上堂 僧問 如何是佛 師曰 聖躬萬歲 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銀香臺上生蘿蔔

萬歲; 祖庭事苑五 萬歲 呼萬歲 自古至周 未有此禮 桉春秋後語 趙惠王得楚和氏璧 秦昭王聞之 遺五書 願以十五城易之 趙遣藺相如奉璧入秦 秦王見相如奉璧 大喜 左右呼萬歲(見史記八十一) 又田單(戰國時代齊將)守卽墨 使老弱女子乘城上 僞約降 燕軍皆呼萬歲(見史記八十二) …… 至秦始皇 殿上上壽 群臣皆呼萬歲 見優孟傳(史記一二六作優旃) 蓋七國之時 衆所喜慶於君 皆呼萬歲 自漢已後 臣下對見於君及拜恩慶賀 以爲常制 又謂山呼者 漢武帝至中嶽 翌日親登崇高 御史乘屬在廟旁 吏卒盛聞呼萬歲者三(見漢書六) 山呼萬歲者 自漢武始也

 

소주(韶州) 운문산(雲門山) 상선사(爽禪師)

상당(上堂)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성궁(聖躬) 만세(萬歲). 묻되 무엇이 이 투법신구(透法身句)입니까. 사왈 은향대(銀香臺) 위에 나복(蘿蔔; )이 난다.

萬歲; 조정사원5. 만세(萬歲) 만세를 부른 것은 고대로부터 주()에 이르기까지 이 예()가 있지 않았다. 춘추후어(春秋後語)를 안험하니 조혜왕(趙惠王)이 초()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자 진소왕(秦昭王)이 이를 듣고 5()를 보내어 15()으로써 그것과 바꾸기를 원했다. ()가 인상여(藺相如)를 보내어 벽()을 받들고 진에 들어가게 했다. 진왕이 상여가 벽을 받든 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고 좌우가 만세를 불렀다(사기81을 보라). 또 전단(田單; 전국시대 의 장수)이 즉묵(卽墨)을 수비하면서 노약(老弱)과 여자로 하여금 성 위로 오르게 하고 거짓으로 항복을 약속하자 연군(燕軍)이 다 만세를 불렀다(사기82를 보라) …… 진시황에 이르러 전상(殿上)에서 상수(上壽; 百歲. 백세토록 살기를 祝壽)하면서 군신이 다 만세를 불렀다. 우맹전(優孟傳; 우맹은 樂人. 滑稽家)을 보라(사기12 6優旃으로 지어졌음). 대개 7()의 시대엔 뭇 사람이 군주에게 희경(喜慶; 기뻐서 慶賀)하는 바에 다 만세를 불렀다. () 이후부터는 신하가 군주를 대견(對見)하거나 및 배은(拜恩; 은택에 拜謝)하거나 경하(慶賀)에 상제(常制)로 삼았다. 또 이르되 산호(山呼)란 것은 한무제가 중악(中嶽)에 이르러 다음날 친히 숭고(崇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어사(御史)와 승속(乘屬)이 묘() 곁에 있었는데 이졸(吏卒)이 만세를 부름을 성대하게 들은 것이 세 번이었다(한서6을 보라). 산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한무제로부터 비롯했다.

 

韶州白雲聞禪師

上堂良久 僧出問 白雲一路 全因今日 師曰 不是不是 曰 和尙又如何 師曰 白雲一路 草深一丈 便下座 問 擬伸一問 師還答否 師曰 皂莢樹頭懸 風吹曲不成 問 受施主供養 將何報答 師曰 作牛作馬

皂莢; 豆科之落葉喬木 又作皁莢 生長於亞洲 非洲 南美等地之山野中 臺灣亦有栽培 其莖枝均有刺 夏季開黃白色之花 類似栗花 可結約三十公分長之莢果 曬乾後亦稱皀莢 可供治療腹脹袪咳等之藥用 此外 莢果煮出之液 可作爲洗滌之用 其汁亦可製成洗粉 古來禪林中 多以之爲如廁後之洗手用品

 

소주(韶州) 백운문(白雲聞) 선사

상당하여 양구(良久)했다. 중이 나와 묻되 백운일로(白雲一路)가 전부 금일(今日)에 기인(起因; )합니다. 사왈(師曰) 옳지 않다, 옳지 않다. 가로되 화상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백운일로가 풀의 깊이가 1()이다. 바로 하좌했다. 묻되 일문(一問)을 펴려고(擬伸) 하는데 스님이 도리어 답하겠습니까. 사왈 조협(皂莢)이 수두(樹頭; 樹上)에 매달려 바람이 불어도 곡()을 이루지 않는다. 묻되 시주(施主)의 공양을 받으면 무엇을 가지고 보답합니까. 사왈 소가 되고 말이 된다.

皂莢; 두과(豆科)의 낙엽교목. 또 조협(皁莢)으로 지음. 아주(亞洲; 아세아 주)ㆍ비주(非洲; 아프리카)ㆍ남미(南美) 등지의 산야 중에 생장함. 대만에도 또한 재배함이 있음. 그 줄기와 가지에 균일하게 침이 있고 하계에 황백색의 꽃이 피는데 밤꽃과 유사하며 가히 약 30길이의 협과(莢果;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를 맺음. 말려 건조시킨 후에 또한 명칭이 조협(皀莢). 가히 복창(腹脹; 몸이 붓는 증상)ㆍ거해(袪咳; 기침을 없앰)를 치료하는 약용으로 공급함. 이 밖에 협과(莢果)를 다려서 낸 액은 가히 세척하는 데 쓰며 그 즙도 또한 가히 세분(洗粉)을 제작해 만듦. 고래로 선림 중에서 다분히 이로서 측간에 간 후의 세수용품으로 삼았음.

 

韶州淨法禪想章禪師

廣主問 如何是禪 師乃良久 主罔測 因署其號 僧問 日月重明時如何 師曰 日月雖明 不鑒覆盆之下 問 旣是金山 爲甚麽鑿石 師曰 金山鑿石 問 如何是道 師曰 迢迢十萬餘

 

소주(韶州) 정법(淨法) 선상장(禪想章) 선사

광주(廣主)가 묻되 무엇이 이 선()입니까. 스님이 이에 양구(良久)했다. 광주가 망측(罔測)했고 인하여 그 호()를 서(; 署號)했다. 승문(僧問) 일월이 거듭() 밝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일월이 비록 밝더라도 복분(覆盆; 엎어진 동이)의 아래는 비추지() 못한다. 묻되 이미 이 금산(金山)이거늘 무엇 때문에 착석(鑿石)합니까. 사왈 금산에 착석한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멀고 멀어 십만여(十萬餘).

 

韶州溫門山滿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胷題卍字 曰 如何是祖 師曰 不遊西土 有人指壁上畫問 旣是千尺松 爲甚麽却在屋下 師曰 芥子納須彌作麽生 問 隔墻見角 便知是牛時如何 師便打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汝曾讀書麽 問 太子初生 爲甚麽不識父母 師曰 迥然尊貴

 

소주(韶州) 온문산(溫門山) 만선사(滿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입니까. 사왈(師曰) 가슴에 만자(卍字)를 제()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조()입니까. 사왈 서토(西土)를 유행(遊行)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벽상(壁上)의 그림을 가리키며 묻되 이미 이 천척송(千尺松)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옥하(屋下)에 있습니까. 사왈 개자(芥子)가 수미(須彌)를 수납(受納)함은 어떠한가. 묻되 담 너머 뿔을 보고 바로 이 소인 줄 알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네가 일찍이 독서했느냐. 묻되 태자(太子)가 초생(初生)하여 무엇 때문에 부모를 알지 못합니까. 사왈 형연(迥然)히 존귀(尊貴)하다.

 

英州大容諲禪師

僧問 如何是大容水 師曰 還我一滴來 問 當來彌勒下生時如何 師曰 慈氏宮中三春草 問 如何是眞空 師曰 拈却拒陽著 曰 如何是妙用 師乃握拳 僧曰 眞空妙用 相去幾何 師以手撥之 問 長蛇偃月卽不問 匹馬單槍時如何 師曰 麻江橋下 會麽 曰 不會 師曰 聖壽寺前 問 旣是大容 爲甚麽趂出僧 師曰 大海不容塵 小溪多搕𢶍 問 如何是古佛一路 師指地 僧曰 不問這箇 師曰 去 師與一老宿相期他往 偶因事不去 宿曰 佛無二言 師曰 法無一向

英州; 今廣東英德

長蛇偃月; 陣法名 指長蛇陣與偃月陣

搕𢶍; 又作榼𣜂 搕𣜂 本指糞 糞穢 雜穢 轉義爲無用而不値一顧之穢物

 

영주(英州) 대용인(大容諲) 선사

승문 무엇이 이 대용수(大容水)입니까. 사왈 나에게 일적(一滴; 한 방울)을 송환해 오너라. 묻되 당래(當來)에 미륵이 하생(下生)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자씨(慈氏)의 궁중(宮中)에 삼춘(三春)의 풀이다. 묻되 무엇이 이 진공(眞空)입니까. 사왈 거양(拒陽)을 집어 물리쳐라(拈却). 가로되 무엇이 이 묘용(妙用)입니까. 스님이 이에 주먹을 쥐었다. 승왈(僧曰) 진공과 묘용(妙用)이 서로 떨어짐(相去)이 얼마입니까(幾何). 스님이 손으로써 제거()했다. 묻되 장사언월(長蛇偃月)은 곧 묻지 않습니다. 필마단창(匹馬單槍)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마강교(麻江橋) 아래다.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성수사(聖壽寺) 앞이다. 묻되 이미 이 대용(大容)이거늘 무엇 때문에 중을 쫓아냅니까. 사왈 대해(大海)는 티끌을 용납하지 않고 소계(小溪)엔 갑삽(搕𢶍)이 많다. 묻되 무엇이 이 고불의 일로(一路)입니까. 스님이 땅을 가리켰다. 승왈 이것을 물은 게 아닙니다. 사왈 가거라. 스님과 한 노숙이 서로 기약(期約)하여 다른 곳(別處)에 가기로 했으나 우연힝 사정(事情; )으로 인해 가지 않았다. 노숙이 가로되 불()은 이언(二言)이 없다. 사왈 법()은 일향(一向)이 없다.

英州; 지금의 광동 영덕(英德).

長蛇偃月; 진법(陣法)의 이름이니 장사진과 언월진을 가리킴.

搕𢶍; 또 합삽(榼𣜂)ㆍ갑삽(搕𣜂)으로 지음. 본래는 똥ㆍ분예(糞穢; 더러운 물건)ㆍ잡예(雜穢; 잡란하고 불순한 것)를 가리킴. 전의(轉義)하여 쓸모가 없어 한 번 돌아볼 가치도 없는 더러운 물건이 됨.

 

廣州羅山崇禪師

僧問 如何是大漢國境 師曰 玉狗吠時天未曉 金鷄啼處五更初 問 丹霞訪居士 女子不𢹂籃時如何 師曰 也要到這裏一轉 問 如何是羅山境 師曰 布水千尋

 

광주(廣州) 나산숭(羅山崇)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대한국(大漢國)의 경계입니까. 사왈(師曰) 옥구(玉狗)가 짖을 때 하늘이 밝지() 않고 금계(金鷄)가 우는 곳에 5()의 초(). 묻되 단하(丹霞)가 거사를 방문하매 여자(女子; 방거사의 딸)가 광주리를 휴대(携帶)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또한 1(; 量詞, ) 이 속에 이름을 요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나산경(羅山境)입니까. 사왈 포수(布水; 瀑布水)가 천 길이다.

 

韶州雲門常寶禪師

上堂 至道無難 唯嫌揀擇 還有揀擇者麽 時有僧問 十方國土中 唯有一乘法 如何是一乘法 師曰 日月分明 曰 學人不會 師曰 淸風滿路

 

소주(韶州) 운문 상보선사(常寶禪師)

상당(上堂) 지도(至道)는 무난(無難)하지만 오직 간택을 꺼린다 했거늘 도리어 간택하는 자가 있는가.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시방의 국토 중에 오직 일승법(一乘法)이 있다 하니 무엇이 이 일승법입니까. 사왈 일월(日月)이 분명하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청풍이 길에 가득하다.

 

郢州林谿竟脫禪師

僧問 如何是法身 師曰 四海五湖賓 曰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明眼人笑汝 問 如何是本來人 師曰 風吹滿面塵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富貴多賓客 曰 見後如何 師曰 貧窮絕往還 問 如何是佛 師曰 十字路頭 曰 如何是法 師曰 三家村裏 曰 佛之與法 是一是二 師曰 露柱渡三江 猶懷感恨長 問 如何是無縫塔 師曰 復州城 曰 如何是塔中人 師曰 龍興寺

感恨; 怨恨 不滿 感 通憾

 

영주(郢州) 임계(林谿) 경탈선사(竟脫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법신입니까. 사왈 사해오호(四海五湖)의 빈(; )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透法身句)입니까. 사왈(師曰) 명안인(明眼人)이 너를 비웃는다(). 묻되 무엇이 이 본래인(本來人)입니까. 사왈 바람이 만면(滿面)의 티끌을 분다().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부유(富裕)하면 빈객(賓客)이 많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빈궁(貧窮)하면 왕환(往還)이 끊긴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십자로두(十字路頭).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삼가촌리(三家村裏). 가로되 불과 법이 이 하나입니까 이 둘입니까. 사왈 노주(露柱)가 삼강(三江)을 건너면서 오히려 감한(感恨)을 품음이 길다.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 복주성(復州城)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탑 가운데의 사람입니까. 사왈 용흥사(龍興寺).

感恨; 원한. 불만. ()은 감()과 통함.

 

韶州廣悟禪師

僧問 如何是和尙爲人一句 師曰 因風吹火

 

소주(韶州) 광오선사(廣悟禪師)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바람으로 인해 불을 분다.

 

廣州華嚴慧禪師

僧問 承古有言 妄心無處卽菩提 正當妄時 還有菩提也無 師曰 來音已照 曰 不會 師曰 妄心無處卽菩提

 

광주(廣州) 화엄혜(華嚴慧) 선사

승문(僧問) 듣건대() 고인이 말씀이 있어 망심(妄心)이 없는 곳이 곧 보리(菩提). 바로 망()을 당했을 때 도리어 보리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師曰) 내음(來音)이 이미 비추었다(). 승왈(僧曰)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망심이 없는 곳이 곧 보리다.

 

韶州長樂山政禪師

僧問 祖師心印 何人提掇 師曰 石人妙手在 曰 學人還有分也無 師曰 木人整不齊

提掇; 提出問題幷加以探究

 

소주(韶州) 장락산(長樂山) 정선사(政禪師)

승문 조사의 심인을 어떤 사람이 제철(提掇)합니까. 사왈 석인(石人)이 묘수(妙手)가 있다. 가로되 학인이 도리어 분한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목인이 정리(整理; )해도 가지런하지 않다.

提掇; 문제를 제출하고 아울러 탐구를 더함.

 

英州觀音和尙

因穿井次 僧問 井深多少 師曰 沒汝鼻孔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英州觀音 曰 見後如何 師曰 英州觀音 問 如何是觀音妙智力 師曰 風射破牕鳴

 

영주(英州) 관음화상(觀音和尙)

우물을 뚫던 차로 인해 승문(僧問) 우물의 깊이가 얼마입니까. 사왈(師曰) 너의 콧구멍을 침몰시킨다.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영주(英州) 관음(觀音)이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영주 관음이다. 묻되 무엇이 이 관음의 묘지력(妙智力)입니까. 사왈 바람이 파창(破牕)을 쏘아 울린다.

 

韶州林泉和尙

僧問 如何是林泉主 師曰 巖下白石 曰 如何是林泉家風 師曰 迎賓待客 問 如何是道 師曰 迢迢 曰 便恁麽領會時如何 師曰 久久忘緣者 寧懷去住情

 

소주(韶州) 임천화상(林泉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임천(林泉)의 주()입니까. 사왈(師曰) 암하(巖下)의 백석(白石)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임천의 가풍입니까. 사왈 영빈대객(迎賓待客)한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멀고 멀다(迢迢). 가로되 바로 이렇게 영회(領會)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오래 오래 망연(忘緣)한 자가 어찌() 거주(去住)의 정()을 품겠는가.

 

韶州雲門煦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卽今是甚麽意 僧曰 恰是 師便喝

 

소주(韶州) 운문후(雲門煦) 선사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즉금은 이 무슨 뜻인가. 승왈 흡시(恰是). 스님이 바로 할했다.

 

瑞州黃檗法濟禪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與天下人作牓樣 問 如何是佛 師曰 眉麤眼大 上堂 良久曰 若識得黃檗帳子 平生行脚事畢 珍重

 

서주(瑞州) 황벽(黃檗) 법제선사(法濟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천하인에게 방양(牓樣)을 지어준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눈썹이 거칠고 눈이 크다. 상당(上堂) 양구하고 가로되 만약 황벽의 장자(帳子; 後綴)를 식득(識得)하면 평생의 행각사(行脚事)를 마친다. 진중(珍重)하라.

 

信州康國耀禪師

僧問 文殊與維摩對談何事 師曰 汝向髑髏後會始得 曰 古人道 髑髏裏薦取又如何 師曰 汝還薦得麽 曰 恁麽則遠人得遇於師去也 師曰 莫謾語

 

신주(信州) 강국요(康國耀) 선사

승문(僧問) 문수와 유마가 무슨 일을 대담(對談)했습니까. 사왈(師曰) 네가 촉루(髑髏) 뒤를 향해 이회(理會)해야 비로소 옳다. 가로되 고인이 말하되 촉루 속을 천취(薦取)하라 함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도리어 천득(薦得)하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원인(遠人)이 스님을 득우(得遇)하고 갑니다. 사왈 속이는 말을 하지 말아라.

 

潭州谷山豐禪師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雪嶺梅花綻 雲洞老僧驚 上堂 駿馬機前異 遊人肘後懸 旣參雲外客 試爲老僧看 時有僧纔出 師便打曰 何不早出頭來 便下座

肘後; 百度百科 肘後符 晉葛洪曾撰醫書肘後備急方 簡稱肘後方 意謂卷帙不多 可以懸於肘後 後因借以泛指隨身攜帶的丹方

 

담주(潭州) 곡산풍(谷山豐) 선사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의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설령(雪嶺)에 매화가 터지매 운동(雲洞)의 노승이 놀란다. 상당(上堂) 준마(駿馬)는 기전(機前)에 다르고() 유인(遊人)은 주후(肘後)에 매달았나니 이미 운외객(雲外客)을 참()했으니 시험 삼아 노승을 위해 보아라. 때에 어떤 중이 겨우 나오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왜 일찍 출두(出頭)하여 오지 않느냐. 바로 하좌했다.

肘後; 백도백과. 주후부(肘後符) () 갈홍(葛洪)이 일찍이 의서(醫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을 지었는데 간칭이 주후방(肘後方). 뜻으로 이르자면 권질(卷帙)이 많지 않아 가이(可以) 주후에 매달았음. 후에 인하여 가차(假借)해 널리 수신(隨身)하며 휴대하는 단방(丹方)을 가리켰음.

 

頴州羅漢匡果禪師

僧問 如何是吹毛劒 師曰 了 問 和尙百年後 忽有人問向甚麽處去 如何詶對 師曰 久後遇作家 分明擧似 曰 誰是知音者 師曰 知音者卽不恁麽問 問 鑿壁偸光時如何 師曰 錯 曰 爭奈苦志專心 師曰 錯錯

苦志; 苦其心志 謂磨練自己的意志 猶苦心

 

영주(頴州) 라한(羅漢) 광과(匡果)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사왈(師曰) (). 묻되 화상이 백년후(百年後)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묻되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한다면 어떻게 수대(詶對; 應對)해야 하겠습니까. 사왈 오랜 후에 작가를 만나거든 분명히 들어 보여라(擧似). 가로되 누가 이 지음자(知音者)입니까. 사왈 지음자는 곧 이렇게 묻지 않는다. 묻되 벽을 뚫어 빛을 훔칠(鑿壁偸光) 때 어떻습니까. 사왈 틀렸다. 가로되 고지(苦志)로 전심(專心)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틀렸다, 틀렸다.

苦志; 그 심지(心志)를 애씀()이니 이르자면 자기의 의지(意志)를 마련(磨練). 고심(苦心)과 같음.

 

鼎州滄谿璘禪師

僧問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雲門和尙向甚麽處去也 師曰 見麽 曰 錯 師曰 錯錯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不錯 師因事示頌曰 天地之前徑 時人莫彊移 箇中生解會 眉上更安眉

世間相常住; 爲表示俗諦常住之用語 法華經方便品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정주(鼎州) 창계린(滄谿璘) 선사

승문(僧問) 이 법이 법위(法位)에 머물면서 세간상으로 상주한다(世間相常住) 하니 운문화상이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보느냐. 가로되 틀렸습니다(). 사왈 틀렸다 틀렸다(錯錯).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틀리지 않았다. 스님이 사건(事件)으로 인해 송을 보여 가로되 천지(天地)의 전경(前徑; 앞의 길)/ 시인(時人)은 억지로() 옮기지 말아라/ 개중(箇中; 此中)에 해회(解會; 理解)를 내면/ 눈썹 위에 다시 눈썹을 안치함이다.

世間相常住; 속제(俗諦)가 상주함을 표시하는 용어가 됨. 법화경 방편품. 이 법이 법위에 머물면서 세간상으로 상주한다(世間相常住).

 

瑞州洞山淸稟禪師

泉州李氏子 參雲門 門問 今日離甚處 曰 慧林 門擧拄杖曰 慧林大師恁麽去 汝見麽 曰 深領此問 門顧左右微笑而已 師自此入室印悟 金陵主請居光睦 未幾命入澄心堂 集諸方語要 經十稔迎住洞山 開堂日 維那白槌曰 法筵龍象衆 當觀第一義 師曰 好箇消息 祇恐錯會 時有僧問 雲門一曲師親唱 今日新豐事若何 師曰 也要道却

法筵龍象衆 當觀第一義; 禪院開堂時的儀式語 新任住持僧說法之前 由維那或其他有地位的僧人擊槌之後當衆念誦

 

서주(瑞州) 동산(洞山) 청품선사(淸稟禪師)

천주(泉州)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운문을 참하자 운문이 묻되 금일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혜림(慧林)입니다. 운문이 주장자를 들고 가로되 혜림대사(慧林大師)가 이렇게 가는데 네가 보느냐. 가로되 차문(此問)을 깊이 영회(領會)했습니다. 운문이 좌우를 돌아보며 미소할 따름이었다. 스님이 이로부터 입실하여 인오(印悟; 깨침을 인가 받음)했다. 금릉주(金陵主)의 청으로 광목(光睦)에 거주했다. 오래지 않아(未幾) ()하여 징심당(澄心堂)에 들어갔는데 제방의 어요(語要)를 모았으며 10(; )을 경과하자 동산(洞山)으로 맞이해 주()하게 했다. 개당일에 유나가 백추(白槌)하고 가로되 법연의 용상중이여 마땅히 제1의를 관하라(法筵龍象衆 當觀第一義). 사왈 또한 좋은(好箇) 소식이나 다만 착회(錯會)할까 염려스럽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운문의 일곡(一曲)을 스님이 친창(親唱)하셨거니와 금일 신풍사(新豐事; 洞山事)는 어떻습니까. 사왈 또한 말해버림을 요한다.

法筵龍象衆 當觀第一義; 선원 개당 시의 의식어(儀式語). 신임 주지승이 설법하기 전, 유나 혹 기타 지위가 있는 승인으로 부터의 격추(擊槌) 뒤에 당중(當衆)하여 염송(念誦).

 

蘄州北禪悟通寂禪師

上堂 拈拄杖曰 過去未來現在三世諸佛微塵菩薩 一時在拄杖頭上轉大法輪 盡向諸人鼻孔裏過 還見麽 若見 與我拈將來 若不見 大似立地死漢 良久曰 風恬浪靜 不如歸堂 問僧 甚處來 曰 黃州 師曰 夏在甚處 曰 資福 師曰 福將何資 曰 兩重公案 師曰 爭奈在北禪手裏 曰 在手裏卽收取 師便打 僧不甘 師隨後趂出 問 如何是佛 師曰 對面千里

立地死漢; 雖然站著 猶如死人 喩指愚迷遲鈍者

對面千里; 雖然在對面 猶如隔千里 喩指面對佛法時不能領悟

 

기주(蘄州) 북선(北禪) 오통적(悟通寂) 선사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과거ㆍ미래ㆍ현재 삼세제불과 미진(微塵) 보살이 일시에 주장두상(拄杖頭上)에 있으면서 대법륜을 굴리더니 모두 제인의 콧구멍 속을 향해 지나간다(). 도리어 보느냐. 만약 본다면 나를 위해() 집어 가지고 오너라. 만약 보지 못한다면 입지의 사한(立地死漢)과 매우 흡사하다. 양구하고 가로되 바람이 고요하고 파랑도 고요하니(風恬浪靜) 귀당(歸堂)함만 같지 못하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황주(黃州)입니다. 사왈(師曰) 여름은 어느 곳에 있었느냐. 가로되 자복(資福)입니다. 사왈 복()은 무엇을 가지고 도우느냐(). 가로되 양중공안(兩重公案)입니다. 사왈 북선(北禪)의 손안에 있음을 어찌하겠는가. 가로되 손안에 있거든 곧 수취(收取)하십시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중이 달게 여기지 않자 스님이 뒤따라 쫓아내었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대면하여 천 리(對面千里).

立地死漢; 비록 그렇게 서 있지만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음. 우미(愚迷)하고 지둔(遲鈍)한 자를 비유로 가리킴

對面千里; 비록 그렇게 대면하여 있더라도 오히려 천 리를 격했음과 같음. 불법을 대면했을 때 능히 영오하지 못함을 비유로 가리킴.

 

廬州南天王永平禪師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不撒沙 問 如何是南天王境 師曰 一任觀看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且領前話 問 久戰沙場 爲甚麽功名不就 師曰 祇爲眠霜臥雪深 曰 恁麽則罷息干戈 束手歸朝去也 師曰 指揮使未到你在

 

여주(廬州) 남천왕(南天王) 영평선사(永平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師曰) 모래를 뿌리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남천왕경(南天王境)입니까. 사왈 관간(觀看)하는 대로 일임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다만() 전화(前話)를 영회(領會; )하라. 묻되 오래 사장(沙場)에서 전투했는데 무엇 때문에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합니까. 사왈 다만 면상와설(眠霜臥雪)함이 깊기 때문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간과(干戈; 방패와 창. 전쟁)를 파식(罷息)하고 속수(束手)하여 조정(朝廷; )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왈 지휘사(指揮使)가 너에게 이르지 않았다(未到你在).

 

湖南永安朗禪師

僧問 如何是洞陽家風 師曰 入門便見 曰 如何是入門便見 師曰 客是主人相師 問 如何是至極之談 師曰 愛別離苦

相師; 舊指以相術供職或爲業的人

愛別離苦; 謂常所親愛之人 乖違離散不得共處

 

호남(湖南) 영안랑(永安朗)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동양(洞陽)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입문(入門)하면 바로 본다. 가로되 무엇이 이 입문하면 바로 봄입니까. 사왈 객이 이 주인의 상사(相師). 묻되 무엇이 이 지극한 말씀()입니까. 사왈 애별리고(愛別離苦).

相師; 옛적에 상술(相術)로써 공직(供職)하거나 혹 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리켰음.

愛別離苦; 이르자면 늘 친애하던 바의 사람과 괴위(乖違; 反常)하고 이산(離散)하여 함께 거처함을 얻지 못함.

 

湖南湘潭明照禪師

僧問 如何是湘潭境 師曰 山連大嶽 水接瀟湘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便合知時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百惑謾勞

謾勞; 徒勞 謾 通漫

 

호남(湖南) 상담(湘潭) 명조선사(明照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상담경(湘潭境)입니까. 사왈(師曰) 산은 대악(大嶽)에 잇닿았고() ()는 소상(瀟湘)에 접()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바로 합당히 때를 안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백혹(百惑)으로 만로(謾勞)하는 신()이다.

謾勞; 헛수고(徒勞). ()은 만()과 통함.

 

西川靑城大面山乘禪師

僧問 如何是相輪峯 師曰 直聳煙嵐際 曰 向上事如何 師曰 入地三尺五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興義門前鼕鼕鼓 曰 學人不會 師曰 朝打三千 暮打八百

鼕鼕鼓; 祖庭事苑六 鼕鼕鼓 京師街衢置鼓於小樓上 以警昏曉 本朝()太宗時 張公洎製坊名 列牌於樓上 按唐司馬周始建議置鼕鼕鼓 唯兩京有之 後北都亦有鼕鼕鼓 是則京都之製也 近不作街鼓之聲 金吾職廢矣 見春明集

 

서천(西川) 청성(靑城) 대면산(大面山) 승선사(乘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상륜봉(相輪峯)입니까. 사왈(師曰) 연람(煙嵐; 이내. 嵐氣)의 가에 곧게 솟았다. 가로되 향상사(向上事)가 무엇입니까. 사왈 땅에 35(三尺五) 들어갔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흥의문(興義門) 앞의 동동고(鼕鼕鼓).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아침에 3천을 때리고 저녁에 8백을 때린다.

鼕鼕鼓; 조정사원6. 동동고(鼕鼕鼓) 경사(京師)의 가구(街衢; 는 네거리 구)의 작은 누각 위에 북을 설치해 혼효(昏曉; 저녁과 새벽. 밤과 낮)를 경각했음. 본조(本朝; ) 태종 때 장공(張公)이 방명(坊名)을 지음에 이르러 누상에 패를 나열했음. 안험하건대 당의 사마주가 처음으로 건의하여 동동고를 설치했는데 오직 양경(兩京; 낙양과 장안)에만 그것이 있었으나 뒤에 북도(北都; 太原)에도 또한 동동고가 있었으니 이러한 즉 경도(京都)의 제작임. 근래엔 가고(街鼓)의 소리를 짓지 않으므로 금오직(金吾職)이 폐지되었음. 춘명집을 보라.

 

興元府普通封禪師

僧問 今日一會 何似靈山 師曰 震動乾坤 問 如何是普通境 師曰 庭前有竹三冬秀 戶內無燈午夜明

午夜; 半夜 指零時前後的一段時間 午 泛指白天或夜晩的中間時段 如午前 午餐 午夜

 

흥원부(興元府) 보통봉(普通封) 선사

승문(僧問) 금일의 일회(一會)가 영산(靈山)과 어찌 같습니까(何似). 사왈(師曰) 건곤을 진동(震動)한다. 묻되 무엇이 이 보통경(普通境)입니까. 사왈 뜰 앞에 대가 있어 삼동(三冬)에도 빼어나고() 호내(戶內)에 등이 없지만 오야(午夜)에도 밝다.

午夜; 반야(半夜)0시 전후의 1()의 시간을 가리킴. ()는 널리 백천(白天; 대낮) 혹 야만(夜晩; )의 중간 시단(時段)을 가리킴. 예컨대() 오전ㆍ오찬ㆍ오야.

 

韶州燈峰淨源眞禪師

上堂 古人道 山河大地普眞如 大衆若得眞如 卽隱却山河大地 若不得 卽違古人至言 衆中道得者出來道看 若道不得 不如各自歸堂 珍重 僧問 達磨未來時如何 師曰 三家村裏 兩兩三三 曰 來後如何 師曰 千斜不如一直 問 諸法寂滅相卽不問 如何是世間相 師曰 眞不掩假 問 如何是和尙爲人一句 師曰 不著力

 

소주(韶州) 등봉(燈峰) 정원진(淨源眞) 선사

상당(上堂) 고인이 말하되 산하대지가 널리 진여다. 대중이 만약 진여를 얻으면 곧 산하대지를 숨겨버리겠지만(隱却) 만약 얻지 못한다면 곧 고인의 지언(至言)에 위배되리라. 중중(衆中)에서 말함을 얻을 자는 나와 말해 보아라.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각자 귀당(歸堂)함만 같지 못하다. 진중(珍重). 승문 달마가 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삼가촌(三家村) 속에 양량삼삼(兩兩三三)이다. 가로되 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천사(千斜)가 일직(一直)만 같지 못하다. 묻되 제법의 적멸상(寂滅相)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세간상(世間相)입니까. 사왈 진()이 가()를 가리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착력(著力)하지 않는다.

 

韶州大梵圓禪師

因見聖僧 乃問僧 此箇聖僧年多少 僧曰 恰共和尙同年 師喝曰 這竭斗不易道得

竭斗; 其義有二 一比喩黠慧狡猾之徒的倔傲爭鬥 淨心誡觀法下誡觀晩出家人心行法第二十五 夫晩出家者有十種罪過 一者健鬥 世言竭斗 俗氣成性 我心自在 意凌徒衆 不受呵責 二指出類拔萃之人物

 

소주(韶州) 대범원(大梵圓) 선사

성승(聖僧)을 봄으로 인해 이에 중에게 묻되 차개(此箇)의 성승은 나이가 얼마인가. 승왈(僧曰) 마침() 화상과 함께 동년(同年)입니다. 스님이 할()하고 가로되 이() 갈두(竭斗), 말함을 얻음이 쉽지 않다.

竭斗; 그 뜻이 둘이 있음. 1. 힐혜(黠慧; 약은 지혜)와 교활한 무리의 고집과 오만으로 쟁투함에 비유함. 정심계관법하 계관만출가인심행법제25. 무릇 만년에 출가한 자는 10종의 죄과가 있다. 1자는 건투(健鬥; 전투)니 세상에서 말하는 갈두(竭斗). 속기가 성격을 이루어 아심이 자재하고 뜻이 도중을 능멸하며 가책을 받지 않는다. 2. 무리를 뛰어난 발췌의 인물을 가리킴.

 

澧州藥山圓光禪師

僧問 藥嶠燈聯 師當第幾 師曰 相逢盡道休官去 林下何曾見一人 問 水陸不涉者 師還接否 師曰 蘇嚕蘇嚕 師問新到 南來北來 曰 北來 師曰 不落言詮 速道速道 曰 某甲是福建道人 善會鄕談 師曰 參衆去 僧曰 灼然 師曰 更𨁝跳便打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道甚麽

林下; 田野 山野 山林 常指遠離塵囂的僧人修行之地 又隱退閑居之地

 

예주(澧州) 약산(藥山) 원광선사(圓光禪師)

승문(僧問) 약교(藥嶠; 藥山)의 등()이 연잇거니와() 스님은 몇 번째(第幾)에 당합니까. 사왈(師曰) 상봉하면 모두 말하기를 벼슬을 쉬고 간다지만 임하(林下)에서 어찌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보았는가. 묻되 수륙(水陸)에 건너지 않는 자를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합니까. 사왈 소로소로(蘇嚕蘇嚕). 스님이 신도(新到)에게 묻되 남에서 왔느냐 북에서 왔느냐. 가로되 북에서 왔습니다. 사왈 언전(言詮)에 떨어지지 말고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가로되 모갑은 이 복건(福建)의 도인(道人)인지라 향담(鄕談)을 잘 압니다. 사왈 대중을 참()하러 가거라. 승왈 작연(灼然)합니다. 사왈 다시 펄쩍 뛰는구나(𨁝跳).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했느냐.

林下; 전야(田野; 논밭과 들). 산야. 산림. 늘 진효(塵囂; 속세의 소란함과 번거로움)를 멀리 여읜 승인의 수행의 땅을 가리킴. 또 은퇴하여 한가하게 거주하는 땅.

 

信州鵝湖雲震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闍黎不是 問僧 近離甚處 曰 兩浙 師曰 還將得吹毛劒來否 僧展兩手 師曰 將謂是箇爛柯仙 元來却是樗蒲漢 問 如何是鵝湖家風 師曰 客是主人相師 曰 恁麽則謝師周旋去也 師曰 難下陳蕃之榻

兩浙; 浙東(金塘江以南)與浙西(金塘江以北)

爛柯; 或柯爛 用晉王質伐木入石室山典 喩時間久遠 祖庭事苑七 柯爛 異苑曰 樵人王質入山 見洞中二老人奕碁乃觀之 忘歸 俄然柯欄

樗蒱; 樗蒲 博戱之名 此物或如棗核狀 擲樗蒲賭之 以爲戱樂 略如民間賭博之擲骰子 又由於這種骰子五枚一組 所以又稱五木之戲

陳蕃之榻; 陳蕃(?-168) 指東漢時期名臣陳蕃 豫章有一名士徐穉 字孺子 陳蕃對他非常敬重 唯爲他做了一個床榻 平時卦在墻上 徐孺子來訪時 就把床榻放下來 兩個人惺惺相惜 秉燭夜談 徐孺子去了 就把榻懸於梁上 [百度百科] 陳蕃; 字仲擧 汝南平輿(今河南平輿北)人 東漢時期名臣 與竇武劉淑合稱三君 [百度百科]

 

신주(信州) 아호(鵝湖) 운진선사(雲震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黎)는 이것이 아니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양절(兩淛)입니다. 사왈 도리어 취모검(吹毛劍)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중이 두 손을 폈다. 사왈 장차 이르기를 시개(是箇)의 난가선(爛柯)이라 하렸더니 원래 도리어 이 저포한(樗蒱)이로구나. 묻되 무엇이 이 아호(鵝湖)의 가풍입니까. 사왈 객이 이 주인의 상사(相師).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주선(周旋)에 감사합니다. 사왈 진번지탑(陳蕃之榻)을 내리기 어렵다.

兩淛; 절동(金塘江 이남)과 절서(금당강 이북).

爛柯; 혹 가란(柯爛)이니 진() 왕질(王質), 벌목하러 석실산에 든 전고(典故)를 씀이니 시간의 구원(久遠)에 비유함. 조정사원7. 가란(柯爛) 이원(異苑)에 가로되 나무꾼 왕질(王質)이 입산하여 동굴 중의 두 노인이 바둑을 두는 것을 보았는데 이에 그것을 보다가 귀가를 잊었다. 잠시 만에 자루가 문드러졌다.

樗蒱; 곧 저포(樗蒲)니 박희(博戱; 노름)의 이름. 이 물건은 혹 대추씨와 같은 형상이며 저포를 던져 도박하면서 희락(戱樂)으로 삼음. 대략 민간 도박의 투자(骰子; 주사위)를 던짐과 같음. 또 이런 종류의 투자가 51(五枚一組)임으로 말미암아 소이로 또 명칭이 오목지희(五木之戲).

陳蕃之榻; 진번(陳蕃; ?-168)은 동한 시기의 명신 진번을 가리킴. 예장에 한 명사 서치(徐穉)가 있었으니 자는 유자(孺子)며 진번이 그에 대해 비상(非常)으로 경중(敬重)했음. 오직 그를 위해 1개의 상탑(床榻)을 만들었는데 평시에는 담장 위에 걸어 두었다가 서유자(徐孺子)가 내방할 때 바로 상탑을 잡아 내려놓았음. 두 개의 사람이 성성(惺惺)히 상석(相惜)했고 병촉(秉燭; 촛불을 손에 잡음. 곧 촛불을 켬)하고 야담(夜談)했음. 서유자가 떠나면 바로 상탑을 잡아 대들보 위에 매달았음 [백도백과].

 

廬山開先淸耀禪師

僧問 如何是燈燈不絕 師曰 靑楊飜遞植 曰 學人不會 師曰 無根樹下唱虛名 問 披雲一句師親唱 長慶今朝事若何 師曰 家家觀世音 問 如何是披雲境 師曰 一缾淥水安牕下 便當生涯度幾秋 曰 如何是長慶境 師曰 堂裏老僧頭雪白 曰 二境同歸 應當別理 師曰 在處得人疑 問 古㵎寒泉 誰人能到 師曰 乾 曰 恁麽則到也 師曰 深多少

 

여산(廬山) 개선(開先) 청요선사(淸耀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등등(燈燈)이 끊기지 않음입니까. 사왈(師曰) 청양(靑楊)을 갈마들며(翻遞) 심는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무근수하(無根樹下)에서 허명(虛名)을 창()한다. 묻되 피운(披雲)1구를 스님이 친창(親唱)했거니와 장경(長慶)의 금조(今朝)의 일은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집집마다 관세음이다. 묻되 무엇이 이 피운경(披雲境)입니까. 사왈 한 병()의 녹수(淥水)를 창 아래 안치했으니 바로 생애를 당해 몇 가을을 지냈던가(; 와 통함). 가로되 무엇이 이 장경경(長慶境)입니까. 사왈 당리(堂裏)의 노승의 머리가 설백(雪白; 눈처럼 흼)이다. 가로되 2()이 한가지로 돌아가나 응당 다른 이치(別理)일 것입니다. 사왈 재처(在處)에 사람의 의심을 얻는다. 묻되 고간한천(古㵎寒泉)에 어떤 사람(誰人)이 능히 이릅니까. 사왈 말랐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이르렀습니다. 사왈 깊이가 얼마이던가.

 

襄州奉國淸海禪師

僧問 靑靑翠竹 盡是眞如 如何是眞如 師曰 點鐵成金客 聞名不見形 曰 恁麽則禮謝去也 師曰 昔時妄想 至今猶存 問 承古有云 見月休觀指 歸家罷問程 如何是家 師曰 試擧話頭看 問 放過卽東道西說 不放過怎生道 師曰 二年同一春

東道西說; 形容漫無目的地隨意講說 亦指言辭多

 

양주(襄州) 봉국(奉國) 청해선사(淸海禪師)

승문(僧問) 청청(靑靑)한 취죽(翠竹)이 모두 이 진여(眞如)라 하니 무엇이 이 진여입니까. 사왈(師曰) 쇠에 점 찍어 금을 이루는 객을, 이름은 들었지만 형상을 보지 못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예사(禮謝)하고 가겠습니다. 사왈 석시(昔時)의 망상이 지금(至今)도 오히려 존재하는구나. 묻되 듣건대() 고인이 이름()이 있어 견월(見月)했거든 손가락 봄을 쉬고() 귀가(歸家)했거든 노정(路程) 물음을 그만둔다(). 무엇이 이 가()입니까. 사왈 시험 삼아 화두를 들어 보아라. 묻되 방과(放過)하면 곧 동도서설(東道西說)함이니 방과하지 않으면 어떻게(怎生) 말해야 합니까. 사왈 2년에 동일한 봄이다.

東道西說; 부질없이 목적이 없는 경지에서 뜻대로 강설함을 형용. 또 언사가 많음을 가리킴.

 

韶州慈光禪師

僧問 卽心卽佛 誘誨之言 不涉前蹤 如何指敎 師曰 東西且置 南北事作麽生 曰 恁麽則學人罔測去也 師曰 龍頭蛇尾

 

소주(韶州) 자광선사(慈光禪師)

승문(僧問) 즉심즉불(卽心卽佛)은 유회(誘誨)하는 말입니다. 전종(前蹤)에 건너지 않으면 어떻게 지교(指敎)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동서는 그래 두고 남북의 일은 어떠한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이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罔測). 사왈 용두사미로구나.

 

韶州雙峯慧眞禪師

僧問 如何是和尙非時 爲人一句 師曰 喫棒得也未 僧禮拜 師便打

 

소주(韶州) 쌍봉(雙峯) 혜진선사(慧眞禪師)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이 비시(非時)에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끽방(喫棒)함을 얻었느냐 또는 아니냐.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潭州保安師密禪師

僧問 輥芥投針時如何 師曰 落在甚麽處梁山云 落在汝眼裏問 不犯詞鋒時如何 師曰 天台南嶽 曰 便恁麽去時如何 師曰 江西湖南

 

담주(潭州) 보안(保安) 사밀선사(師密禪師)

승문(僧問) 개자(芥子)를 굴려() 바늘에 던질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떨어져 어느 곳에 있느냐梁山이 이르되 떨어져 너의 眼裏에 있다). 묻되 사봉(詞鋒)을 범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천태와 남악이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강서와 호남이다.

 

韶州雲門法球禪師

僧問 如何是西來大道 師曰 當時妄想 至今不絕 問 如何是雲門劒 師曰 長空不匣鋒鋩色 曰 用者又如何 師曰 四海唯淸日月明 問 如何是道 師曰 頭上脚下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一任東西 問 如何是隨色摩尼珠 師曰 色卽不無 作麽生是珠 曰 學人不會 特伸請益 師曰 雲有出山勢 水無投㵎聲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香風吹萎花 曰 見後如何 師曰 更雨新好者

 

소주(韶州) 운문(雲門) 법구선사(法球禪師)

승문 무엇이 이 서래(西來)의 대도(大道)입니까. 사왈 당시의 망상이 지금(至今)도 끊어지지 않았다. 묻되 무엇이 이 운문검(雲門劒)입니까. 사왈 장공(長空)이 봉망(鋒鋩)의 색을 담지() 못한다. 가로되 쓰는 자는 또 어떻습니까. 사왈 사해(四海)가 오직 맑으니 일월이 밝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두상(頭上)과 각하(脚下).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동서(東西)에 일임한다. 묻되 무엇이 이 수색(隨色)하는 마니주(摩尼珠)입니까. 사왈 색은 곧 없지 않으나 무엇이(作麽生) 이 주()인가.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특별히 청익을 폅니다(). 사왈 구름은 산을 벗어날 형세가 있으나 물은 개울에 투입하는 소리가 없다.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향풍(香風)이 시든() 꽃에 분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다시 비 내리니(更雨) 새롭고 좋은 것이다.

 

韶州佛陀山遠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銅頭鐵額 曰 意旨如何 師曰 簸土颺塵

 

소주(韶州) 불타산(佛陀山) 원선사(遠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동두철액(銅頭鐵額)이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흙을 까불러 티끌을 날린다(簸土颺塵).

 

連州慈雲山深禪師

僧問 寶鏡當軒時如何 師曰 天地皆失色 問 如何是敎外別傳一句 師曰 扣牙恐驚齒

連州; 今廣東連縣

 

연주(連州) 자운산(慈雲山) 심선사(深禪師)

승문 보경(寶鏡)이 추녀에 당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천지가 모두 실색한다. 묻되 무엇이 이 교외별전의 1구입니까. 사왈 어금니를 두드리면 이를 놀라게 할까 염려스럽다.

連州; 지금의 광동 연현.

 

廬山化城鑒禪師

僧問 如何是和尙正法眼 師曰 新羅人迷路 上堂 十方薄伽梵 一路涅槃門 諸禪德 且作麽生是涅槃門 莫是山僧這裏聚會少時便爲涅槃門麽 莫錯會好 諸禪德總不恁麽會 莫別有商量底麽 山僧這裏早是事不獲已 向諸人恁麽道 已是相鈍置了也 更擬踏步向前 有何所益 諸禪德但自無事 自然安樂 任運天眞 隨緣自在 莫用巡他門戶 求覓解會 記憶在心 被他繫縛 不得自在 便被生死之所拘 何時得出頭 可惜光陰倐忽 便是來生 速須努力 時有僧問 生死到來 如何免得 師曰 柴鳴竹爆驚人耳 曰 學人不會 請師直指 師曰 家犬聲獰夜不休 問 如何是菩提路 師曰 月照舊房深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不欲說似人 曰 爲甚麽却如此 師曰 家醜不外揚 問 如何是和尙尋常爲人底句 師曰 量才補職 曰 恁麽則學人無分也 師曰 心不負人 問 佛法畢竟成得甚麽邊事 師曰 好箇問頭 無人答得 曰 和尙豈無方便 師曰 雲有出山勢 水無投㵎聲 問 如何是向上關棙子 師曰 拔劒攪龍門

 

여산(廬山) 화성감(化城鑒) 선사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신라인(新羅人)이 미로(迷路)했다. 상당(上堂) 시방의 박가범(薄伽梵)이 일로(一路)의 열반문(涅槃門)이라 하니 제선덕(諸禪德)이여, 그래() 무엇이(作麽生)이 이 열반문인가. 이 산승이 저리(這裏)에서 취회(聚會)한 소시(少時)가 바로 열반문이 되는 게 아닐까. 착회(錯會)하지 말아야 좋다. 제선덕이 모두() 이렇게 이회(理會)하지 않고 달리 상량(商量)할 이가 있지 않느냐. 산승이 저리(這裏)에서 일찍() 이 사불획이(事不獲已)하여 제인을 향해 이렇게 말함도 이미 이 서로 둔치(鈍置)했음이다. 다시 걸음을 디뎌(踏步) 앞을 향하려고 한다면 무슨 이익되는 바가 있겠는가. 제선덕(諸禪德)이 단지 스스로 무사(無事)하면 자연히 안락(安樂)이며 임운(任運)하여 천진(天眞)이며 수연(隨緣)하여 자재(自在)니 타인의 문호(門戶)를 돌면서() 해회(解會)를 구멱(求覓)함을 쓰지 말아라. 기억하여 마음에 두면() 그의 계박(繫縛)을 입어 자재(自在)를 얻지 못하고 바로 생사의 소구(所拘)를 입거늘 어느 때에 출두(出頭)함을 얻겠는가. 가석(可惜)하게도 광음(光陰)이 숙홀(倐忽)이라 바로 이 내생이니 속히 노력(努力)함을 써라().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생사가 도래하면 어떻게 면득(免得)합니까. 사왈 섶이 울고 대가 터지면(柴鳴竹爆) 사람의 귀를 놀라게 한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스님의 직지(直指)를 청합니다. 사왈 가견(家犬)의 소리가 모질어() 밤에도 쉬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보리로(菩提路)입니까. 사왈 달이 구방(舊房)의 깊은 데를 비춘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사람에게 설하여 주고(說似) 싶지 않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와 같습니까. 사왈 가추(家醜)를 밖으로 날리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이 심상(尋常)에 위인(爲人)하는 구()입니까. 사왈 재능을 헤아려 보직한다(量才補職).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은 분한이 없겠습니다. 사왈 마음에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구나. 묻되 불법은 필경 어떤 변(甚麽邊)의 일을 성득(成得)합니까. 사왈 호개(好箇)의 문두(問頭)지만 답득(答得)할 사람이 없다. 가로되 화상이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사왈 구름은 산을 벗어날 형세가 있으나 물은 개울에 투입하는 소리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향상의 관려자(關棙子)입니까. 사왈 칼을 뽑아 용문(龍門)을 휘젓는구나().

 

廬山護國和尙

上堂曰 有解問話者麽 出來對衆問看 時有僧出禮拜 師曰 來朝更獻楚王看 便歸方丈 上堂 實際理地 不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又曰 一法若有 毗盧墮在凡夫 萬法若無 普賢失其境界 諸上座 作麽生理論 朝夕恁麽上來 向諸上座說箇甚麽卽得 若說三乘十二分敎 自有座主律師 若說世諦因緣 又非僧家之所議 若論佛法 從上祖宗 多少佛法 可與評量 總不如是 須知各各當人分上事 作麽生是諸上座分上事 知有底 對衆吐露箇消息 以表平生行脚 參善知識 具爍迦羅目 不被人謾 豈不快哉 還有麽 良久云 若無人出頭 買賣不當價 徒勞更商量 珍重 僧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曰 雲遮海門樹 曰 出世後如何 師曰 擘破鐵圍山

爍迦羅; <> cakra 又作灼羯羅 斫迦羅 斫迦婆羅 此翻爲金剛 堅固 輪鐵等意 爍迦羅眼 謂金剛眼 堅固眼 卽明定正邪 辨別得失之眼 [慧琳音義四十二 玄應音義二十三]

 

여산(廬山) 호국화상(護國和尙)

상당(上堂)해 가로되 문화(問話)할 줄 아는 자가 있느냐. 나와서 대중(對衆)해 물어 보아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서 예배했다. 사왈 내일 아침 다시 초왕(楚王)에게 바쳐 보아라.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상당(上堂) 실제(實際)의 이지(理地)에선 일진(一塵)도 받지 않지만 불사(佛事)의 문중(門中)에선 일법(一法)도 버리지 않는다. 우왈(又曰) 일법이 만약 있으면 비로(毗盧)가 범부에 떨어져 있고 만법이 만약 없으면 보현(普賢)이 그 경계를 잃는다. 제상좌(諸上座), 어떻게 이론(理論)하느냐. 조석(朝夕)으로 이렇게 올라오니 제상좌(諸上座)를 향해 저() 무엇을 설해야 곧 옳겠는가. 만약 삼승 십이분교를 설하자면 스스로 좌주와 율사가 있고 만약 세제(世諦)의 인연을 설하자면 또 승가(僧家)의 소의(所議)가 아니며 만약 불법을 논하자면 종상(從上)의 조종(祖宗)이 다소의 불법을 가히 더불어 평량(評量)한지라 모두() 이와 같지 않나니 각각 당인(當人)의 분상사(分上事)를 수지(須知)해야 한다. 무엇이(作麽生) 이 제상좌의 분상사인가. 지유하는 이(知有底)는 대중(對衆)하여 저() 소식을 토로(吐露)하되 평생 행각하면서 선지식을 참()해 삭가라목(爍迦羅)을 갖추어 타인의 속임을 입지 않았음을 표()한다면 어찌 쾌재가 아니겠는가. 도리어 있느냐, 양구하고 이르되 만약 출두(出頭)하는 사람이 없다면 매매(買賣)하면서 값에 합당하지 않으니 도로(徒勞) 다시 상량(商量)하라. 진중(珍重). 승문 부처가 출세하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 구름이 해문(海門)의 나무를 가렸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철위산(鐵圍山)을 벽파(擘破)했다.

爍迦羅; <> cakra. 또 작갈라ㆍ작가라ㆍ작가바라로 지음. 여기에선 금강ㆍ견고ㆍ윤철(輪鐵) 등의 뜻으로 번역함. 삭가라안(爍迦羅眼)은 이르자면 금강안ㆍ견고안이니 곧 정사(正邪)를 명정(明定)하고 득실을 변별하는 눈임 [혜림음의42. 현응음의23].

 

廬州天王徽禪師

僧問 如何是一大藏敎 師曰 高座不曾登 曰 登後如何 師曰 三段不同 今當第一 向下文長 付在來日 東家籬 西家壁 自己分上又作麽生 僧無對 師便打 問 如何是從天降下 師曰 風雨順時 曰 如何是從地湧出 師曰 稻麻竹葦

 

여주(廬州) 천왕휘(天王徽) 선사

승문 무엇이 이 일대장교(一大藏敎)입니까. 사왈 고좌(高座)에 일찍이 오르지 않았다. 가로되 오른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삼단(三段)이 부동(不同)하나니 지금은 제일(第一)에 상당한다. 아래로 향하면 글이 길어지니 내일에 맡겨 둔다(付在). 동가(東家)는 울타리()며 서가(西家)는 벽()이다. 자기의 분상(分上)엔 또 어떠한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하늘로 좇아 강하(降下)함입니까. 사왈 풍우가 순시(順時)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땅으로 좇아 용출(湧出)함입니까. 사왈 도마죽위(稻麻竹葦).

 

廬州慶雲和尙

僧問 三乘十二分敎卽不問 如何是直截根源 師曰 十進九退 曰 如何卽是 師曰 何日得休時 問 一言道斷時如何 師曰 未是極則處 曰 如何是極則處 師曰 冬後一陽生 問 諸法實相義 和尙如何說 師曰 口挂東壁上 問 佛令祖令今已委 向上機鋒事若何 師曰 令 曰 學人不曉 如何指示 師曰 收

十進九退; 言佛道難行 十人進修中 有九人退墮也

 

여주(廬州) 경운화상(慶雲和尙)

승문 삼승 십이분교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근원을 직절(直截)함입니까. 사왈 십진구퇴(十進九退). 가로되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어느 날이 쉼을 얻을 때인가. 묻되 일언으로 말해 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 극칙처(極則處)가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극칙처입니까. 사왈 동후(冬後; 冬至 )1()이 생긴다. 묻되 제법 실상(實相)의 뜻을 화상이 어떻게 설하십니까. 사왈 입을 동벽(東壁) 위에 걸었다. 묻되 불령조령(佛令祖令)은 이제 이미 알았습니다만() 향상의 기봉사(機鋒事)는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영()이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으니 어떻게 지시하시렵니까. 사왈 거두어라().

十進九退; 말하자면 불도는 행하기 어려워 10인이 진수(進修)하는 중에 9인이 퇴타(退墮)함이 있음.

 

岳州永福院朗禪師

問僧 汝是甚處人 曰 荊南人 師曰 還過公安渡也無 曰 過公安渡 師曰 汝何不判公驗 曰 和尙何得特地 師曰 爭奈岳陽關頭何 僧無語 師便打

 

악주(岳州) 영복원(永福院) 랑선사(朗禪師)

중에게 묻되 너는 이 어느 곳 사람이냐. 가로되 형남(荊南) 사람입니다. 사왈 도리어 공안(公安) 나루()를 지났느냐 또는 아니냐. 가로되 공안 나루를 지났습니다. 사왈 너는 왜 공험(公驗)을 판단(判斷; )하지 못하느냐. 가로되 화상은 왜 특지(特地)를 얻습니까. 사왈 악양관두(岳陽關頭; 는 조사)임을 어찌하겠는가. 중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郢州芭蕉山弘義禪師

僧問 如何是最初一句 師曰 擧起分明 曰 如何受持 師曰 蘇嚕悉哩 問 學人非時上來 乞師一接 師曰 汝是甚處人 曰 河北人 師曰 不易過黃河

 

영주(郢州) 파초산(芭蕉山) 홍의선사(弘義禪師)

승문 무엇이 이 최초의 1구입니까. 사왈 거기(擧起)가 분명하구나. 가로되 어떻게 수지(受持)해야 합니까. 사왈 소로실리(蘇嚕悉哩). 묻되 학인이 비시(非時)에 올라왔습니다. 스님의 일접(一接)을 구걸합니다. 사왈 너는 이 어느 곳 사람이냐. 가로되 하북 사람입니다. 사왈 황하(黃河)를 지남이 쉽지 않았겠구나.

 

郢州趙橫山和尙

僧問 十二時中如何用心 師曰 長連牀上喫粥喫飯 問 如何是諸佛師 師曰 平地看高

 

영주(郢州) 조횡산(趙橫山) 화상

승문 12시 중에 어떻게 용심(用心)해야 합니까. 사왈 장련상상(長連牀上)에서 끽죽끽반(喫粥喫飯)하거라.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스승입니까. 사왈 평지에서 높은 데를 보아라.

 

信州西禪欽禪師

僧問 如何是函蓋乾坤句 師曰 天上有星皆拱北 曰 如何是截斷衆流句 師曰 大地坦然平 曰 如何是隨波逐浪句 師曰 春生夏長 問 古殿重興時如何 師曰 一回春到一回新

 

신주(信州) 서선흠(西禪欽) 선사

승문 무엇이 이 함개건곤구(函蓋乾坤句; 건곤을 함개하는 구)입니까. 사왈 천상에 있는 별은 모두 공북(拱北; 北斗星拱手)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절단중류구(截斷衆流句; 중류를 절단하는 구)입니까. 사왈 대지(大地)가 탄연(坦然)히 평평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입니까. 사왈 춘생하장(春生夏長)한다. 묻되 고전(古殿)을 중흥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1회 봄이 이르면 1회 새롭다.

 

廬州南天王海禪師

僧問 如何是一體眞如 師曰 五郞手裏鐵彈子 問 十度發言九度休時如何 師曰 口邊生荊棘 曰 如何免得此過 師曰 半路好抽身

 

여주(廬州) 남천왕(南天王) 해선사(海禪師)

승문 무엇이 이 일체(一體)의 진여입니까. 사왈 오랑(五郞)의 손안의 철탄자(鐵彈子). 묻되 십도(十度; 十回) 발언하면 구도(九度)는 그만둘()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입가에 형극(荊棘)이 난다. 가로되 어찌해야 이 허물을 면득(免得)하겠습니까. 사왈 반로(半路)에 좋게 추신(抽身; 退身)하라.

 

桂州覺華普照禪師

僧問 大千世界 爲甚麽轉身不得 師曰 誰礙闍黎 曰 爭奈轉不得 師曰 無用處 問 聲色二字如何透得 師曰 虛空無變易 日月自紛拏 問 如何是眞如涅槃 師曰 秋風聲颯颯 㵎水響潺潺 上堂 總似今日老胡有望 然燈佛不如闍黎 總似今日老胡絕望 闍黎不如然燈佛 於此明得 大地微塵諸佛西天二十八祖唐土六祖天下老宿 一時拈來山僧拄杖頭上轉妙法輪 於此明不得 百千諸佛穿你鼻孔 西天二十八祖透過你髑髏 還知麽 若不知 山僧與你指出 良久曰 山河大地有甚麽過 久立 珍重

 

계주(桂州; 저본에 挂州로 지었음) 각화(覺華) 보조선사(普照禪師)

승문 대천세계에 무엇 때문에 전신(轉身)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누가 사리(闍黎)를 방애(妨礙; )하느냐. 가로되 전()함을 얻지 못함을 어찌합니까. 사왈 쓸 곳이 없다. 묻되 성색(聲色) 2자를 어떻게 투득(透得)합니까. 사왈 허공은 변역(變易)이 없거늘 일월이 스스로 분나(紛拏; 紛爭)한다. 묻되 무엇이 이 진여열반입니까. 사왈 추풍(秋風)의 소리가 삽삽(颯颯)하고 간수(㵎水)의 음향이 잔잔(潺潺)하다. 상당(上堂) 모두() 금일과 같다면 노호(老胡)가 유망(有望)하나니 연등불(然燈佛)이 사리만 같지 못하다. 모두 금일과 같다면 노호가 절망(絕望)하나니 사리가 연등불만 같지 못하다. 여기에서 명득(明得)하면 대지(大地)의 미진(微塵) 제불과 서천(西天)28조와 당토(唐土)6조와 천하 노숙(老宿)을 일시에 집어 와 산승의 주장두상(拄杖頭上)에서 묘법륜(妙法輪)을 굴리겠지만 여기에서 밝힘()을 얻지 못한다면 백천(百千) 제불이 너희의 콧구멍을 뚫고 서천의 28조가 너희의 촉루(髑髏)를 투과(透過)하리니 도리어 아느냐. 만약 알지 못한다면 산승이 너희를 위해() 지출(指出)하겠다. 양구하고 가로되 산하대지가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 구립(久立)했다. 진중(珍重)하라.

 

益州鐵幢覺禪師

僧問 十二時中如何履踐 師曰 光剃頭 淨洗鉢 問 如何是道 師曰 踏著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退後三步 問 諸佛出世 當爲何事 師曰 截耳臥街

 

익주(益州) 철당각(鐵幢覺) 선사

승문 12시 중에 어떻게 이천(履踐)해야 합니까. 사왈 빛나게 체두(剃頭)하고 깨끗이 세발(洗鉢)하라.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답착(踏著)하라.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세 걸음 퇴후(退後)하라. 묻되 제불이 출세함은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합니까. 사왈 귀를 자르고 거리에 누웠다.

 

新州延長山和尙後住龍景山 眞身現在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醜拙不可當 曰 客來如何祇待 師曰 瓦盌竹筯 問 從上古聖向甚麽處去 師曰 不在山間 卽居樹下 曰 未審成得箇甚麽 師曰 汝還知落處麽 僧無語 師便打

 

신주(新州) 연장산(延長山) 화상후에 龍景山했고 眞身現在한다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추졸(醜拙)을 가히 당하지 못한다. 가로되 객이 오면 어떻게 지대(祇待)합니까. 사왈 와완(瓦盌; 진흙으로 구워 만든 사발)과 죽저(竹筯; 대 젓가락). 묻되 종상(從上)의 고성(古聖)이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산간(山間)에 있지 않고 곧 수하(樹下)에 거주한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저() 무엇을 성득(成得)했습니까. 사왈 네가 도리어 낙처(落處)를 아느냐. 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眉州福化充禪師

僧問 如何是大人相 師曰 山僧這裏不曾容易對闍黎 曰 如何得相承去 師曰 白雲雖有影 綠竹且無陰 問 天皇也恁麽道 龍潭也恁麽道 未審和尙作麽生道 師曰 汝試道看 曰 比來請益 豈無方便 師曰 將謂是海東舶主 元來是北地番人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十字路頭華表柱 曰 學人不會 乞師再指 師曰 君自行東我向西

 

미주(眉州) 복화충(福化充) 선사

승문 무엇이 이 대인상(大人相)입니까. 사왈 산승은 저리(這裏)에서 일찍이 용이하게 사리에게 대()하지 못했다. 가로되 어찌해야 상승(相承)함을 얻어 갑니까. 사왈 백운이 비록 그림자가 있으나 녹죽(綠竹)은 또() 그늘이 없다. 묻되 천황(天皇)도 이렇게 말했고 용담(龍潭)도 이렇게 말했거니와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게 말씀하겠습니까. 사왈 네가 시험 삼아 말해 보아라. 가로되 비래(比來; 近來)에 청익했거늘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사왈 장차 이 해동(海東)의 박주(舶主)라고 이르려 했더니 원래 이 북지(北地)의 번인(番人)이구나.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십자로두(十字路頭)의 화표주(華表柱).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스님의 재지(再指; 다시 지시함)를 구걸합니다. 사왈 그대는 스스로 동쪽으로 가고 나는 서쪽을 향한다.

 

眉州黃龍贊禪師

僧問 如何是和尙關棙子 師曰 少人踏得著 曰 忽踏得著時如何 師曰 汝試進前看 僧便喝 師便打 問僧 近離甚處 曰 香林 師曰 在彼多少時 曰 六年 師曰 世尊在雪山六年 證無上菩提 汝在香林六年 成得箇甚麽 僧無語 師曰 移廚喫飯漢

 

미주(眉州) 황룡찬(黃龍贊) 선사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관려자(關棙子)입니까. 사왈 적은 사람이 밟음을 얻었다(踏得著). 가로되 홀연히 밟음을 얻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시험 삼아 진전(進前)해 보아라. 중이 바로 할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향림(香林)입니다. 사왈 거기에 있은 지 얼마의 시일이냐. 가로되 6년입니다. 사왈 세존은 설산에 있은 지 6년에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했는데 너는 향림에 있은 6년 동안 저() 무엇을 성득(成得)했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주방(廚房; )을 이동하며 밥을 먹는 자(喫飯漢)로군.

 

衡州大聖院守賢禪師

僧問 如何是古佛道場 師曰 五通廟裏沒香爐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南斗七 北斗八

五通廟; 位於雲霄火田鎭西林村 祀漢將周亞夫(民稱廣平尊王 [百度百科]

 

형주(衡州) 대성원(大聖院) 수현선사(守賢禪師)

승문 무엇이 이 고불의 도량입니까. 사왈 오통묘(五通廟) 속에 향로(香爐)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남두는 칠(南斗七)이며 북두는 팔(北斗八)이다.

五通廟; 운소(雲霄) 화전진(火田鎭) 서림촌(西林村)에 위치함. 한장(漢將) 주아부(周亞夫; 민간에서 廣平尊王으로 호칭함)를 제사함 [백도백과].

 

舒州天柱山和尙

上堂曰 莫有作家戰將麽 試出來與山僧相見 時有僧出禮拜 師曰 山僧打退鼓 曰 和尙是甚麽心行 師曰 敗將不戰 問 北斗藏身 意旨如何 師曰 闍黎豈不是荊南人 曰 是 師曰 祇見波瀾起 不測洞庭深

 

서주(舒州) 천주산(天柱山) 화상

상당해 가로되 작가인 전장(戰將)이 있지 않느냐. 시험 삼아 나와서 산승과 상견하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서 예배했다. 사왈 산승은 퇴고(退鼓)를 친다. 가로되 화상은 이 무슨 심행(心行)입니까. 사왈 패장(敗將)은 전투하지 않는다. 묻되 북두에 장신(北斗藏身)한다는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사리는 어찌 이 형남(荊南) 사람이 아니겠는가. 가로되 그렇습니다. 사왈 다만 파란(波瀾)이 일어남만 보고 동정(洞庭)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다.

 

韶州雲門山朗上座

自幼肄業講肆 聞僧問雲門 如何是透法身句 門曰 北斗裏藏身 師罔測微旨 遂造雲門 門纔見便把住曰 道道 師擬議 門拓開 乃示頌曰 雲門聳峻白雲低 水急遊魚不敢棲 入戶已知來見解 何勞再擧轢中泥 師因斯大悟 卽便禮拜 自此依雲門爲上座 僧問 如何是解脫 師曰 穿靴水上行 問 如何是透脫一路 師曰 南贍部州北鬱單越 曰 學人不會 意旨如何 師曰 朝遊羅浮 暮歸檀特

 

소주(韶州) 운문산(雲門山) 랑상좌(朗上座)

어릴 적부터 강사(講肆)에서 이업(肄業; 학업을 익힘)했다. 들으니 중이 운문(雲門)에게 묻되 무엇이 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透法身句)입니까. 문왈(門曰) 북두 속에 몸을 감춘다(北斗裏藏身). 스님이 미지(微旨)를 헤아리지 못해(罔測) 드디어 운문에게 나아갔다. 운문이 겨우 보자 바로 파주(把住)하고 가로되 말하라, 말하라. 스님이 의의(擬議)하자 운문이 밀어 젖혔다. 이에 송을 보여 가로되 운문은 용준(聳峻; 높이 솟아 험준함)하여 백운이 낮고/ 물이 급해 유어(遊魚)가 감히 깃들지 못한다/ 입호(入戶)하매 이미 온 견해를 알거늘/ 어찌 노고롭게 역중(轢中)의 진흙을 거듭 들겠는가. 스님이 이로 인해(因斯) 대오했고 곧바로 예배했다. 이로부터 운문에 의지하며 상좌가 되었다. 승문 무엇이 이 해탈입니까. 사왈 신을 신고(穿靴) 물 위로 간다. 묻되 무엇이 이 투탈(透脫)하는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남섬부주(南贍部州)며 북울단월(北鬱單越)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아침에 나부(羅浮; 나부산)에 노닐고 저녁에 단특(檀特; 단특산)으로 돌아온다.

 

郢州纂子山菴主

僧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朝看東南 暮看西北

 

영주(郢州) 찬자산(纂子山) 암주

승문 무엇이 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입니까. 사왈 아침에 동남을 보고 저녁에 서북을 본다.

 

靑原下八世

白雲祥禪師法嗣

韶州大歷和尙

初參白雲 雲擧拳曰 我近來不恁麽也 師領旨禮拜 自此入室 住後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破草鞋 問 如何是無爲 師乃擺手 問 施主供養 將何報答 師以手撚髭 曰 有髭卽撚 無髭又如何 師曰 非公境界

 

소주(韶州) 대력화상(大歷和尙)

백운(白雲)을 초참(初參)하자 백운이 주먹을 들고 가로되 내가 근래에 이러하지 않다. 스님이 의지(意旨)를 영회(領會)하고 예배했고 이로부터 입실했다.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해진 짚신이다. 묻되 무엇이 이 무위(無爲)입니까. 스님이 이에 손을 흔들었다(). 묻되 시주(施主)가 공양하면 무엇을 가지고 보답합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윗수염을 비틀었다(撚髭). 승왈(僧曰) 윗수염이 있으면 곧 비틀겠지만() 윗수염이 없으면 어찌하겠습니까(如何). 사왈 공()의 경계가 아니다.

 

連州寶華和尙

上堂 看天看地 新羅國裏 和南不審 日銷萬兩黃金 雖然如此 猶是少分 又曰 盡十方世界 是箇木羅漢 幡竿頭上道將一句來 又曰 天上龍飛鳳走 山間虎嘯猿啼 拈向鼻孔 道將一句來 問僧 甚處來 曰 大容來 師曰 大容近日作麽生 曰 近來合得一甕醬 師喚沙彌將一椀水來 與這僧照影 因有僧問大容曰 天賜六銖披挂後 將何報答我皇恩 容曰 來披三事衲 歸挂六銖衣 師聞之 乃曰 這老凍齈作恁麽語話 容聞 令人傳語曰 何似奴緣不斷 師曰 比 爲拋甎 祇圖引玉 師見一僧從法堂堦下過 師乃敲繩牀 僧曰 若是這箇 不請拈出 師喜 下地詰之 僧無語 師便打 師有時戴冠子 謂衆曰 若道是俗 且身披袈裟 若道是僧 又頭戴冠子 衆無對

三事衲; 又曰三事衣 言五條七條九條之三衣也 禪林之語

老凍齈; 對老禪師的詈稱

 

연주(連州) 보화화상(寶華和尙)

상당(上堂)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신라국 속에서 화남(和南)하고 불심(不審)하면서 날마다 만량(萬兩) 황금을 소비한다(; 와 같음).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오히려 이는 소분(少分)이다. 우왈(又曰) 온 시방세계가 이(是箇) 목라한(木羅漢)이니 번간두상(幡竿頭上)에서 1구를 말해 가지고 오너라. 우왈(又曰) 천상(天上)엔 용비봉주(龍飛鳳走)하고 산간(山間)엔 호소원제(虎嘯猿啼)하나니 집어다 콧구멍을 향해 1구를 말해 가져 오너라.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대용(大容)에서 옵니다. 사왈 대용(大容; 大容諲)이 근일 어떠한가(作麽生). 가로되 근래에 한 독의 장()을 만들었습니다(合得). 스님이 사미를 불러 한 사발의 물을 가지고 와서 이 중에게 주어 조영(照影)하게 하라 했다. 어떤 중이 대용에게 물어 가로되 천(; 天子)이 육수(六銖; 六銖衣)를 주어 피괘(披挂; 입어 걸치다)한 후에 무엇을 가지고 아황(我皇)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대용이 가로되 오면서 삼사납(三事衲)을 입었고 돌아가면서 육수의(六銖衣)를 걸쳤다() 했음으로 인해 스님이 이를 듣고 이에 가로되 이 노동농(老凍齈)이 이러한 어화(語話)를 짓는구나. 대용이 듣고 사람을 시켜 전어(傳語)하여 가로되 노연(奴緣)을 끊지 못함과 어떠한가(何似). 사왈 요사이() 포전(拋甎; 벽돌을 던짐)한 까닭()은 다만 인옥(引玉; 옥을 당김)을 도모했음이다. 스님이, 1()이 법당의 섬돌 아래로 좇아 지나감을 보고 스님이 이에 승상(繩牀)을 두드렸다. 승왈(僧曰) 만약 이 이것이라면(這箇) 염출(拈出)함을 청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기뻐서 땅에 내려가 물었더니(詰之) 중이 말이 없는지라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어느 때 갓(冠子; 는 조사)을 이고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만약 이 속()이라고 말한다면 또() 몸에 가사를 입었고 만약 이 승()이라고 말한다면 또 머리에 갓을 이었다.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三事衲; 또 가로되 삼사의(三事衣)니 말하자면 5()7조ㆍ9조의 3(). 선림의 말임.

老凍齈; 노선사에 대한 이칭(詈稱; 꾸짖는 호칭).

 

韶州月華山月禪師

初謁白雲 雲問 業箇甚麽 曰 念孔雀經 雲曰 好箇人家男女 隨鳥雀後走 師聞語驚異 遂依附久之乃契旨 尋住月華 僧問 如何是月華家風 師曰 若問家風 卽答家風 曰 學人問家風 師曰 金銅羅漢 上堂 擧一句語 徧大千界 還有人會得這箇時節麽 試出來道看 要知親切 良久曰 不出頭 是好手 久立 珍重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梁王不識 曰 意旨如何 師曰 隻履西歸 師入京上堂 有一官人出 禮拜起 低頭良久 師曰 掣電之機 徒勞佇思 有一老宿上法堂 東西顧視曰 好箇法堂 要且無主 師聞 乃召曰 且坐喫茶 宿問曰 玄中最的 猶是龜毛兔角 不向二諦中修 如何密用 師曰 測 宿曰 恁麽則抝折拄杖 割斷草鞋去也 師曰 細而詳之

孔雀經; 全稱佛母大孔雀明王經 又稱孔雀明王經 三卷 唐不空譯 收於大正藏第十九冊 同本異譯有梁代僧伽婆羅譯孔雀王咒經二卷 唐代義淨譯大孔雀咒王經三卷

 

소주(韶州) 월화산(月華山) 월선사(月禪師)

백운을 초알(初謁)하자 백운이 묻되 업()이 이() 무엇인가. 가로되 공작경(孔雀經)을 외웁니다(). 백운이 가로되 호개(好箇; 好一箇)의 인가(人家)의 남녀가 조작(鳥雀)의 뒤를 따르며 달리는가. 스님이 말씀을 듣자 경이(驚異)했고 드디어 의부(依附)한 지 오래되자 이에 계지(契旨)하였다. 이윽고 월화(月華)에 주()했다. 승문 무엇이 이 월화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만약 가풍을 묻는다면 곧 가풍을 답한다. 가로되 학인이 가풍을 물었습니다. 사왈 금동라한(金銅羅漢)이다. 상당(上堂) 1구어(句語)를 들면 대천계(大千界)에 두루한다. 도리어 저개(這箇) 시절을 회득(會得; 理會)할 사람이 있느냐. 시험 삼아 나와서 말해 보아라. 친절(親切)을 알기를 요한다. 양구하고 가로되 출두(出頭)하지 않음이 이 호수(好手). 구립(久立)했다. 진중(珍重)하라.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양왕(梁王)이 알지 못했다.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척리(隻履)로 서귀(西歸)했다. 스님이 입경(入京)하여 상당했다. 한 관인(官人)이 있어 나와서 예배하고 일어나 머리를 숙이고 양구(良久)했다. 사왈 격전지기(擊電之機)거늘 도로(徒勞) 저사(佇思)하는구나. 한 노숙이 있어 법당에 올라 동서를 돌아보며 가로되 호개(好箇)의 법당이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주인이 없구나. 스님이 듣고 이에 불러 가로되 다만 앉아 끽다(喫茶)하시오. 노숙이 문왈(問曰) 현중(玄中)에 으뜸인 것(最的)도 오히려 이 귀모토각(龜毛兔角)입니다. 2() 가운데를 향해 닦지 않고 어떻게 밀용(密用)합니까. 사왈 헤아리시오(). 노숙이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주장자를 요절(拗折; 꺾어 부러뜨리다)하고 짚신을 할단(割斷; 베어 끊다)하겠습니다. 사왈 자세히 하고 상세히 하시오(細而詳之).

孔雀經; 전칭이 불모대공작명왕경이며 또 명칭이 공작명왕경이니 3권이며 당의 불공(不空)이 번역했음. 대정장 제19책에 수록되었음. 동본이역에 양대(梁代) 승가바라가 번역한 공작왕주경 2권과 당대 의정이 번역한 대공작주왕경 3권이 있음.

 

南雄州地藏和尙

上堂 僧問 今日供養地藏 地藏還來否 師曰 打開佛殿門 裝香換水 師與大容和尙在白雲開火路 容曰 三道寶堦 何似箇火路 師曰 甚麽處不是

南雄州; 今廣東韶關南雄市

裝香; 盛香於器也 裝 包裹 安裝

 

남웅주(南雄州) 지장화상(地藏和尙)

상당(上堂) 승문 금일 지장(地藏)에게 공양하면 지장이 도리어 옵니까. 사왈(師曰) 불전문(佛殿門)을 열어(打開) 장향(裝香)하고 물을 바꾸어라. 스님이 대용화상(大容和尙)과 더불어 백운에 있으면서 화로(火路)를 열었다. 대용이 가로되 삼도(三道)의 보계(寶堦)가 이() 화로와 어찌 같은가(何似). 사왈 어느 곳에 이것이 아닌가.

南雄州; 지금의 광동 소관(韶關) 남웅시(南雄市).

裝香; 그릇에 향을 담음. ()은 포과(包裹; 싸다). 안장(安裝; 꾸리다).

 

英州樂淨含匡禪師

上堂 良久曰 摩竭提國 親行此令 去却擔簦 截流相見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側耳無功 問 如何是樂淨家風 師曰 天地養人 問 如何是樂淨境 師曰 有工貪種竹 無暇不栽松 曰 忽遇客來 將何供養 師曰 滿園秋果熟 要者近前甞 問 龍門有意透者如何 師曰 灘下接取 曰 學人不會 師曰 喚行頭來 問 但得本 莫愁末 如何是本 師曰 不要問人 曰 如何是末 師乃竪指 問 如何是樂淨境 師曰 滿月團圓菩薩面 庭前椶樹夜叉頭 僧辭 師問 甚處去 曰 大容去 師曰 大容若問樂淨有何言敎 汝作麽生祇對 僧無語 師代云 但道樂淨近日不肯大容 因普請打籬次 僧問 古人種種開方便門 和尙爲甚麽却攔截 師曰 牢下橛著

摩竭提國; 摩竭陀國

擔簦; 背著傘 謂奔走 跋涉 簦 古代有柄的笠 類似雨傘

行頭; 泛指頭目

 

영주(英州) 낙정(樂淨) 함광선사(含匡禪師)

상당(上堂)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마갈제국(摩竭提國)에서 차령(此令)을 친히 행했다. 담등(擔簦)을 제거해버리고 절류(截流)하여 상견하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귀를 기울여선 공()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낙정(樂淨)의 가풍입니까. 사왈 천지(天地)가 사람을 양육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낙정경(樂淨境)입니까. 사왈 유공(有工)하여 종죽(種竹; 대를 심다)을 탐()하고 무가(無暇)하여 재송(栽松)하지 않는다. 가로되 홀연히 객이 옴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공양합니까. 사왈 밭 가득히(滿園) 추과(秋果)가 익었으니 요구하는 자는 근전(近前)하여 맛보아라. 묻되 용문(龍門)에 뜻이 있어 투출한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여울 아래(灘下)에서 접취(接取)하라.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행두(行頭)를 불러 오너라. 묻되 단지 본()을 얻고 말()을 근심하지 말라 하니 무엇이 이 본()입니까. 사왈 사람에게 물음이 필요하지 않다(不要問人). 가로되 무엇이 이 말()입니까. 스님이 이에 손가락을 세웠다. 묻되 무엇이 이 낙정경(樂淨境)입니까. 사왈 만월(滿月)이 단원(團圓)하니 보살면(菩薩面)이며 정전(庭前)의 종수(椶樹)는 야차두(夜叉頭). 어떤 중이 고별하자 사문(師問)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대용(大容)으로 갑니다. 사왈 대용이 만약 묻되 낙정(樂淨)이 어떤 언교(言敎)가 있던가 한다면 네가 어떻게 지대(祇對)하겠는가. 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대운(代云) 단지 말하되 낙정이 근일 대용을 불긍(不肯)한다 합디다. 보청(普請)하여 타리(打籬)하던 차로 인해 중이 묻되 고인은 갖가지로 방편문을 열었거늘 화상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난절(攔截; 막아서 끊다)합니까. 사왈 말뚝을 뇌고(牢固)히 내려라.

摩竭提國; 곧 마갈타국(摩竭陀國).

擔簦; 산을 등짐(背著傘). 이르자면 분주(奔走), 발섭(跋涉). ()은 고대 자루가 있는 삿갓이니 우산과 유사함.

行頭; 널리 두목(頭目)을 가리킴.

 

韶州後白雲和尙

僧問 古琴絕韻請師彈 師曰 伯牙雖妙手 時人聽者希 曰 恁麽則再遇子期也 師曰 笑發驚絃斷 寧知調不同 問 昔日靈山一會 梵王爲主 未審白雲甚麽人爲主 師曰 有常侍在 曰 恁麽則法雨霶𩃱 群生有賴 師曰 汝莫這裏賣梔子

 

소주(韶州) 후백운(後白雲) 화상

승문 고금(古琴)이 절운(絕韻; 音響이 끊어짐)했으니 스님의 탄주(彈奏; )를 청합니다. 사왈 백아(伯牙)가 비록 묘수(妙手)지만 시인(時人)이 청자(聽者)가 드물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자기(子期)를 다시 만났습니다. 사왈 웃음을 발하나니(笑發) 줄이 끊어짐에 놀라지만 곡조가 같지 않음을 어찌() 알겠는가. 묻되 석일(昔日) 영산(靈山)의 일회(一會)에 범왕(梵王)이 주()가 되었거니와 미심하오니 백운(白雲)은 어떤 사람이 주가 됩니까. 사왈 상시(常侍)가 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법우(法雨)가 방타(霶𩃰; 큰비가 쏟아짐)하매 군생(群生)이 신뢰함이 있습니다. 사왈 너는 저리(遮裏; 이 속)에서 치자(梔子)를 팔지 말아라.

 

韶州白雲福禪師

僧問 如何是佛法的的之意 師曰 直 曰 學人不會 意旨如何 師曰 崖州路上問知音

 

소주(韶州) 백운복(白雲福) 선사

승문 무엇이 이 불법의 적적(的的)한 뜻입니까. 사왈 곧다(). 가로되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애주(崖州)의 노상(路上)에서 지음(知音)에게 물어라.

 

德山密禪師法嗣

鼎州文殊應眞禪師

上堂 直鉤釣獰龍 曲鉤釣蝦蟆蚯蚓 還有龍麽 良久曰 勞而無功 僧問 寶劒未出匣時如何 師曰 在甚麽處 曰 出匣後如何 師曰 臂長衫袖短 問 古人拊掌 意旨如何 師曰 家無小使 不成君子

 

정주(鼎州) 문수(文殊) 응진선사(應眞禪師)

상당(上堂) 직구(直鉤)는 영룡(獰龍)을 낚고 곡구(曲鉤)는 하마(蝦蟆; 두꺼비)와 구인(蚯蚓; 지렁이)을 낚는다. 도리어 용이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노력만 하고 공이 없다. 승문 보검이 갑()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출갑(出匣)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팔이 길면 적삼의 소매가 짧다. 묻되 고인이 부장(拊掌)한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집에 소사(小使)가 없으면 군자를 이루지 못한다.

 

南嶽南臺勤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一寸龜毛重七斤

남악(南嶽) 남대근(南臺勤) 선사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1()의 귀모(龜毛)의 무게가 7()이다.

 

鼎州德山紹晏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桃源水遶白雲亭 上堂 一塵纔起 大地全收 一毛頭上 師子全身 且道一塵纔起 大地全收 須彌山重多少 一毛頭上 師子全身 大海水有幾滴 有人道得 與汝拄杖子 天下橫行 若道不得 須彌山葢却汝頭 大海水溺却汝身

 

정주(鼎州) 덕산(德山) 소안선사(紹晏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도원수(桃源水)가 백운정(白雲亭)을 돈다(). 상당(上堂) 1()이 겨우 일어나면 대지를 전부 거두고 일모두상(一毛頭上)이 사자의 전신(全身)이다. 차도(且道)하라, 1진이 겨우 일어나면 대지를 전부 거둔다 하니 수미산의 무게가 얼마인가. 일모두상이 사자의 전신이라 하니 대해수(大海水)가 몇 방울이 있느냐. 어떤 사람이 말함을 얻으면 너에게 주장자를 주어 천하에 횡행하려니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수미산이 너의 머리를 덮어버릴 것이고 대해수가 너의 몸을 빠뜨려버릴(溺却) 것이다.

 

潭州鹿苑文襲禪師

僧問 遠遠投師 請師一接 師曰 五門巷裏無消息 僧良久 師曰 會麽 曰 不會 師曰 長樂坡頭信不通

 

담주(潭州) 녹원(鹿苑) 문습선사(文襲禪師)

승문(僧問) 멀고도 멀리서 스님에게 투신(投身)했으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오문(五門)의 항리(巷裏)에 소식이 없다. 중이 양구하자 사왈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장락(長樂)의 파두(坡頭; 坡邊)에 소식()이 불통(不通)이다.

 

澧州藥山可瓊禪師

上堂 僧出曰 請師答話 師曰 好 曰 還當得也無 師曰 更問 問 巨嶽不曾乏寸土 師今苦口爲何人 師曰 延壽也要道過 曰 不伸此問 焉辯我師 師便喝 僧禮拜 師便打

 

예주(澧州) 약산(藥山) 가경선사(可瓊禪師)

상당(上堂) 중이 나와 가로되 스님의 답화(答話)를 청합니다. 사왈(師曰) 좋구나(). 가로되 도리어 당득(當得)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다시 물어라. 묻되 거악(巨嶽)은 일찍이 촌토(寸土)도 모자라지() 않거늘 스님이 여금에 고구(苦口)로 어떤 사람을 위합니까. 사왈 연수(延壽)가 또한 말함(道過; 는 조사)을 요한다. 가로되 차문(此問)을 펴지() 않았다면 어찌() 아사(我師)를 분변(分辨; )하겠습니까. 스님이 바로 할()했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巴陵乾明院普禪師

僧問 萬行齊修 古人不許 不落功勳 還許也無 師曰 一 曰 學人未曉 乞師再指 師曰 二十年後

 

파릉(巴陵) 건명원(乾明院) 보선사(普禪師)

승문 만행(萬行)을 일제히 닦음을 고인이 불허했습니다. 공훈(功勳)에 떨어지지 않음을 도리어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일()이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으니 스님의 재지(再指)를 구걸합니다. 사왈 20년 후.

 

興元府中梁山崇禪師

僧問 垂絲千尺 意在深潭時如何 師曰 紅鱗掌上躍

 

흥원부(興元府) 중량산(中梁山) 숭선사(崇禪師)

승문 낚싯줄을 천척(千尺) 드리움은 뜻이 심담(深潭)에 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홍린(紅鱗)이 손바닥 위에 뛴다().

 

鄂州黃龍志愿禪師

僧問 迦葉上行衣 何人合得披 師曰 一片燒痕地 春入又逢靑

 

악주(鄂州) 황룡(黃龍) 지원선사(志愿禪師)

승문 가섭의 상행의(上行衣)를 어떤 사람이 합당히 입음을 얻습니까. 사왈 일편(一片)의 탄 흔적의 땅에 봄이 들자 또 푸름을 만난다.

 

益州東禪秀禪師

僧問 旣是善神 爲甚麽却被雷打 師曰 世亂奴欺主 年衰鬼弄人 問 如何是一代時敎 師曰 多年故紙

 

익주(益州) 동선수(東禪秀) 선사

승문 이미 이 선신(善神)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우레가 때림을 입었습니까. 사왈 세상이 혼란하면 종놈()이 주인을 기만하고 나이()가 노쇠하면 귀신이 사람을 희롱한다. 묻되 무엇이 이 일대시교(一代時敎)입니까. 사왈 다년(多年; 오랜 세월)의 고지(故紙).

 

鼎州普安道禪師

三句頌 函葢乾坤曰 乾坤幷萬象 地獄及天堂 物物皆眞見 頭頭用不傷 截斷衆流曰 堆山積嶽來 一一盡塵埃 更擬論玄妙 冰消瓦解摧 隨波逐浪曰 辯口利舌問 高低總不虧 還如應病藥 診候在臨時 三句外曰 當人如擧唱 三句豈能該 有問如何事 南嶽與天台 擡薦商量曰 相見不揚眉 君東我亦西 紅霞穿碧落 白日繞須彌

擡薦商量; 提起問題核心而商量

碧落; 碧天也 落 籬也 說文 杝 落也 文選 張衡西京賦 揩枳藩 突棘落 李善注 落 亦籬也

 

정주(鼎州) 보안도(普安道) 선사

삼구송(三句頌) 함개건곤(函葢乾坤)을 가로되 건곤과 만상(萬象)이며/ 지옥 및 천당이다/ 물물(物物)에 모두 진()이 나타나고()/ 두두(頭頭)에 쓰더라도 상()하지 않는다. 절단중류(截斷衆流)를 가로되 퇴산적악(堆山積嶽)이 오더라도/ 낱낱이 모두 진애(塵埃)/ 다시 현묘를 논하려 하면/ 빙소와해(冰消瓦解)하여 꺾인다(). 수파축랑(隨波逐浪)을 가로되 변구이설(辯口利舌)로 물어도/ 고저(高低)가 모두() 기울지() 않는다/ 도리어 응병약(應病藥)과 같나니/ 진후(診候; 診察)가 임시(臨時)에 있다. 3() 밖에 가로되 당인(當人)이 거창(擧唱)할 것 같으면/ 3구가 어찌 능히 해라(該羅; )하겠는가/ 어떤 일을 물음이 있다면/ 남악과 천태다. 대천상량(擡薦商量)을 가로되 상견하여 양미(揚眉)하지 않나니/ 그대는 동쪽이며 나는 또 서쪽이다/ 홍하(紅霞)는 벽락(碧落)을 뚫고/ 백일(白日)은 수미(須彌)를 돈다().

擡薦商量; 문제의 핵심을 제기하여 상량(商量).

碧落; 푸른 하늘임. ()은 울타리임. 설문 이(; 울타리) ()이다. 문선. 장형의 서경부. 지번(枳藩; 탱자 울타리)을 문지르고 극락(棘落)에 충돌한다. 이선(李善) () () 또한 리(; 울타리).

 

巴陵鑒禪師法嗣

泐潭靈澄散聖

因智門寬禪師問曰 甚處來 師曰 水淸月現 門曰 好好借問 師曰 褊衫不染皂 門曰 喫茶去 師有西來意頌曰 因僧問我西來意 我話居山七八年 草履祇栽三箇耳 麻衣曾補兩番肩 東菴每見西菴雪 下㵎長流上㵎泉 半夜白雲消散後 一輪明月到牀前

褊衫; 又作偏衫 徧衫 南山舊律家之說 三衣之下覆於左肩之片衣云祇支 覆於右肩之片衣云覆肩衣(義淨新律家謂 祇支覆肩 爲梵漢兩語而一物也) 魏代縫合此二物名之爲偏衫 截領開裾 猶存本相也 [比丘六物圖 僧史略上 釋氏要覽上 百丈淸規五]

 

늑담(泐潭) 영징(靈澄) 산성(散聖)

지문관(智門寬; 師寬) 선사가 문왈(問曰) 어느 곳에서 오느냐 함으로 인해 사왈 물이 맑아 달이 나타났습니다. 문왈(門曰) 호호(好好) 차문(借問; 물어봄)했다. 사왈 편삼(褊衫)이 검게 물들지() 않았습니다. 문왈(門曰) 차 먹고 가거라. 스님이 서래의송(西來意頌)이 있어 가로되 중이 나에게 서래의를 물음으로 인해/ 내가 말하되 거산(居山)하기 칠팔 년이다/ 초리(草履; 짚신)는 다만 세 개를 덮어씌웠을() 뿐이며/ 마의(麻衣)는 일찍이 두 번 어깨를 꾸몄다()/ 동암(東菴)은 매번 서암(西菴)의 눈을 보고/ 하간(下㵎)은 상간(上㵎)의 샘에 늘 흐른다/ 반야(半夜)에 백운이 소산(消散)한 후에/ 일륜(一輪) 명월이 상전(牀前)에 이르더라.

褊衫; 또 편삼(偏衫)ㆍ편삼(徧衫)으로 지음. 남산구율가(南山舊律家)의 설은 3()의 아래 좌견(左肩)을 덮는 편의(片衣)를 일러 기지(祇支)라 하고 우견(右肩)을 덮는 편의(片衣)를 일러 부견의(覆肩衣)라 함(義淨新律家는 이르되 祇支는 어깨를 덮으며 梵漢 兩語가 되면서 一物이다). 위대(魏代) 이 두 물건을 봉합해 이름하여 편삼(偏衫)이라 했는데 옷깃을 자르고 자락()을 열었으나 오히려 본래의 형상을 존치했음 [비구육물도. 승사략상. 석씨요람상. 백장청규5].

 

襄州興化院興順禪師

僧問 如何是和尙深深處 師曰 擧卽易 答卽難 曰 爲甚麽如此 師曰 過去 問 如何是百千妙門 同歸方寸 師曰 水底看夜市 問 如何是向上事 師曰 楚山頭指天

 

양주(襄州) 흥화원(興化院) 흥순선사(興順禪師)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심심처(深深處)입니까. 사왈 거()하기는 곧 쉽지만 답하기는 곧 어렵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지나갔다(過去). 묻되 무엇이 이 백천(百千) 묘문(妙門)이 방촌(方寸)으로 동귀(同歸)함입니까. 사왈 물밑에서 야시(夜市)를 본다. 묻되 무엇이 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사왈 초산두(楚山頭)가 하늘을 가리킨다.

 

雙泉寬禪師法嗣

蘄州五祖師戒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鼻孔長三尺 曰 學人不會 師曰 眞不掩僞 曲不藏直 問 如何是道 師曰 點 曰 點後如何 師曰 荊三汴四 問 寶劒未出匣時如何 師曰 看 曰 出匣後如何 師曰 收 問 如何是隨色摩尼珠 師曰 隨 曰 隨後如何 師曰 一箇婆婆兩箇癭 問 得船便渡時如何 師曰 棹在誰人手 僧擬議 師曰 雲有出山勢 水無投㵎聲

婆婆; 通常用於稱呼老年婦女

 

기주(蘄州) 오조(五祖) 사계선사(師戒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콧구멍 길이가 3()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진()이 위()를 가리지() 못하고 곡()이 직()을 감추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점()하라. ()한 후엔 어떻습니까. 형삼변사(荊三汴四). 묻되 보검이 갑()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보아라(). 가로되 갑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거두어라(). 묻되 무엇이 이 수색(隨色)하는 마니주입니까. 사왈 따른다(). 가로되 따른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일개(一箇)의 파파(婆婆) 두 개의 영(; )이다. 묻되 배를 얻어 바로 건널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도(; )가 어떤 사람(誰人)의 손에 있느냐. 중이 의의(擬議)했다. 사왈 구름은 출산(出山)할 형세가 있으나 물은 투간(投㵎)하는 소리가 없다.

婆婆; 통상(通常) 노년 부녀를 칭호함에 씀.

 

上堂 佛病祖病 一時與諸禪德拈向三門外 諸禪德還拈得山僧病也無 若拈得山僧病 不妨見得佛病祖病 珍重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擔不起 曰 爲甚麽擔不起 師曰 祖師西來意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高問低對 曰 見後如何 師曰 風蕭蕭 雨颯颯

佛病; 執著于求佛求心煽惑 稱爲佛病

祖病; 執著于求祖 求心煽惑 稱爲祖病

 

상당(上堂) 불병(佛病)과 조병(祖病)을 일시에 제선덕(諸禪德)과 더불어 집어 삼문(三門) 밖으로 향하라. 제선덕이 도리어 산승의 병을 염득(拈得)하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 산승의 병을 염득한다면 불병과 조병을 견득(見得)함에 불방(不妨)하리라. 진중(珍重).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들어() 일으키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들어 일으키지 못합니까. 사왈 조사서래의다.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높은 질문에 낮은 답이다(高問低對).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바람이 소소(蕭蕭; 바람이나 빗소리 따위가 쓸쓸함)하고 비가 삽삽(颯颯; 솨솨. 빗소리. 바람 소리)하다.

佛病; 구불(求佛)ㆍ구심(求心)의 선혹(煽惑; 선동하고 유혹함)에 집착함을 일컬어 불병이라 함.

祖病; 구조(求祖)에 집착하여 구심(求心)이 선혹(煽惑; 부추기어 현혹하게 함)함을 일컬어 조병이라 함.

 

上堂 僧問 名喧宇宙知師久 雪嶺家風略借看 師曰 未在更道 僧展兩手 師便打 僧禮拜 師竪起拄杖曰 大衆會麽 言不再擧 令不重行 便下座 問僧 近離甚處 曰 東京 師曰 還見天子也無 曰 常年一度出金明池 師曰 有禮可恕 無禮難容 出去 智門問曰 暑往寒來卽不問 林下相逢事若何 師曰 五鳳樓前聽玉漏 門曰 爭奈主山高 案山低 師曰 須彌頂上擊金鐘

金明池; 北宋時鑿成 在開封東京城

玉漏; 漏 漏壺 古代計時器 玉漏卽以玉製作的漏壺

 

상당(上堂) 승문 명성이 우주에 떠들썩하여() 스님을 안 지 오래되었으니 설령(雪嶺)의 가풍을 조금() 빌려 보겠습니다. 사왈 미재(未在; 不然)니 다시 말하라. 중이 양손을 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주장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대중이여, 아느냐. 말은 재거(再擧)하지 않고 영()은 중행(重行)하지 않는다 바로 하좌했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동경(東京)입니다. 사왈 도리어 천자(天子)를 보았느냐 또는 아니냐. 가로되 상년(常年; 平常의 해)에 한 차례() 금명지(金明池)로 나오십니다. 사왈 유례(有禮)는 가히 용서(容恕; )하려니와 무례(無禮)는 용납(容納; )하기 어렵다. 나가거라. 지문(智門; 師寬)이 문왈(問曰)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옴은 곧 묻지 않거니와 임하(林下)에서 상봉하는 일이 어떠한가(若何). 사왈 오봉루(五鳳樓) 앞에서 옥루(玉漏)를 듣습니다. 문왈(門曰) 주산(主山)은 높고 안산(案山)은 낮음을 어찌하겠는가. 사왈 수미정상(須彌頂上)에서 금종(金鐘)을 칩니다.

金明池; 북송 시 굴착해 이루었음. 개봉 동경성에 있음.

玉漏; ()는 누호(漏壺)니 고대의 계시기(計時器). 옥루는 곧 옥으로 제작한 누호.

 

江陵府福昌院重善禪師

僧問 如何是正法眼 師曰 夜觀乾象 曰 學人不會 意旨如何 師曰 日裏看山 問 如何是佛法的的大意 師曰 東方甲乙木 曰 恁麽則粉骨碎身也 師曰 易開終始口 難保歲寒心 問 浩浩塵中 如何辯主 師曰 長安天子 塞外將軍 曰 恁麽則權握在手 師曰 不斬無罪人 問 如何是不遷底法 師曰 死人不坐禪 曰 學人不會 意旨如何 師曰 那伽常在定 問 離却咽喉唇吻 請師速道 師曰 福昌口門窄 曰 和尙爲甚麽口門窄 師曰 還我話來

歲寒心; 喩堅貞不屈的節操

 

강릉부(江陵府) 복창원(福昌院) 중선선사(重善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밤에 건상(乾象; 天象)을 관()한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일리(日裏; 대낮)에 산을 본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적적(的的)한 대의입니까. 사왈 동방갑을목(東方甲乙木)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분골쇄신(粉骨碎身)하겠습니다. 사왈 시종구(終始口)를 열기는 쉽지만 세한심(歲寒心)을 보존하기 어렵다. 묻되 호호(浩浩)한 진중(塵中)에 어떻게 변주(辯主; 分辨)합니까. 사왈 장안의 천자며 새외(塞外)의 장군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권악(權握; 권세를 쥠)이 손에 있습니다. 사왈 죄 없는 사람을 베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불천하는 법입니까(不遷底法). 사왈 죽은 사람은 좌선하지 못한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나가(那伽)가 늘 정()에 있다. 묻되 인후(咽喉; 목구멍)와 순문(唇吻; 입술)을 여의어버리고 청컨대 스님이 속히 말하십시오. 사왈 복창(福昌)은 구문(口門)이 좁다(). 가로되 화상이 무엇 때문에 구문이 좁습니까. 사왈 나에게 화()를 송환해 오너라.

歲寒心; 견정(堅貞)하여 굴하지 않는 절조(節操)에 비유.

 

問 如何是離筌蹄底句 師曰 頭大帽子小 曰 意旨如何 師曰 側脚反穿靴 問 金烏東涌 玉兔西沉時如何 師曰 措大不騎驢 曰 恁麽則謝師指南 師曰 更須子細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槵子數珠 曰 見後如何 師曰 鐵磬行者 問 未施武藝 便入戰場時如何 師曰 老僧打退鼓 曰 恁麽則展陣開旗去也 師曰 伏惟尙饗 上堂 盡乾坤大地 微塵諸佛 總在福昌這裏 拈拄杖畫一畫曰 說佛說法 諸禪德若也會得 出來與汝證據 若也不會 花須連夜發 莫待曉風吹 便下座

筌蹄; 又作筌罤 慧琳音義八十五 筌蹄 上翠緣反 取魚竹器籠也 亦名魚笱 下弟奚反 莊子云 蹄所以取得兔 旣得兔而忘蹄 從足帝聲

 

묻되 무엇이 이 전제(筌蹄)를 여의는 구()입니까. 사왈 머리는 크고 모자는 작다.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발을 기울여 거꾸로 신을 신는다(側脚反穿靴). 묻되 금오(金烏)는 동쪽에서 솟고 옥토(玉兔)는 서쪽에 잠길 때 어떻습니까. 사왈 조대(措大)가 나귀를 타지 않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지남(指南)에 감사합니다. 사왈 다시 자세(子細)함을 써라.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환자(槵子; 菩提子)의 수주(數珠; 念珠).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철마행자(鐵磬行者). 묻되 무예(武藝)를 베풀지 않고 바로 전장(戰場)에 들 때 어떻습니까. 사왈 노승은 퇴고(退鼓)를 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전진(展陣)하고 개기(開旗)하여 감입니다. 사왈 복유상향(伏惟尙饗). 상당(上堂) 온 건곤대지(乾坤大地)와 미진(微塵) 제불이 모두 복창(福昌)의 저리(這裏)에 있다. 주장자를 집어 그어 한 번 긋고 가로되 부처를 설하고 법을 설했다. 제선덕(諸禪德)이 만약에 회득(會得; 理會)한다면 나올지니 너희에게 증거(證據)해 주겠다.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 꽃은 꼭 연야(連夜)에 피면서 효풍(曉風)이 붊을 기다리지 않는다. 바로 하좌했다.

筌蹄; 또 전제(筌罤)로 지음. 혜림음의85. 전제(筌蹄) 상은 취연반(翠緣反)이니 물고기를 취하는 죽기(竹器) 상자며 또 이름이 어구(魚笱; 는 통발). 하는 제해반(弟奚反; )이니 장자에 이르되 제(; 올무)는 토끼를 취하는 소이(所以). 이미 토끼를 얻었으면 올무를 잊는다. ()을 좇아 제성(帝聲).

 

蘄州四祖志諲禪師

僧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多年松樹老𥻘皴 問 葉落歸根時如何 師曰 一歲一枯榮

 

기주(蘄州) 사조(四祖) 지인선사(志諲禪師)

승문 무엇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透法身句)입니까. 사왈 다년(多年; 오랜 세월)의 소나무가 늙고 맑고 주름졌다(老𥻘皴). 묻되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한 해에 한 번 고영(枯榮)한다.

 

襄州興化奉能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髮長僧貌醜

 

양주(襄州) 흥화(興化) 봉능선사(奉能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머리카락이 길면 중의 모습이 추()하다.

 

唐州天睦山慧滿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多年桃核 曰 意旨如何 師曰 打破裏頭人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三年逢一閏 曰 合談何事 師曰 九日是重陽

 

당주(唐州) 천목산(天睦山) 혜만선사(慧滿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다년(多年; 오랜 세월)의 도핵(桃核; 복숭아의 씨)이다.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이두(裏頭; 裏面)의 사람을 타파하라.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3년마다 1(; 閏年)을 만난다. 가로되 합당히 무슨 일을 얘기합니까. 사왈 9일이 이 중양(重陽; 99)이다.

 

鄂州建福智同禪師

僧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鸚鵡慕西秦 僧禮拜 師曰 聽取一頌 雲門透法身 法身何許人 鴈回沙塞北 鸚鵡慕西秦

雲門透法身; 雲門廣錄上 問 如何是透法身句 師云 北斗裏藏身

 

악주(鄂州) 건복(建福) 지동선사(智同禪師)

승문 무엇이 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透法身句)입니까. 사왈 앵무가 서진(西秦)을 그리워한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1송을 청취(聽取)하라. 운문의, 법신을 투과함(雲門透法身)/ 법신이란 어떤 사람인가(何許人)/ 기러기는 사새(沙塞)의 북쪽으로 돌아가고/ 앵무는 서진(西秦)을 그리워한다.

雲門透法身; 운문광록상 묻되 무엇이 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透法身句)입니까. 사운 북두 속에 몸을 감춘다(北斗裏藏身).

 

襄州延慶宗本禪師

僧問 魚未跳龍門時如何 師曰 擺手入長安 曰 跳過後如何 師曰 長安雖樂

 

양주(襄州) 연경(延慶) 종본선사(宗本禪師)

승문 물고기가 용문(龍門)을 뛰어넘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손을 흔들며(擺手) 장안에 들어간다. 가로되 뛰어 지나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장안이 비록 즐겁지만.

 

鼎州大龍山炳賢禪師

僧問 昔日先師語 如何透法身 師曰 萬仞峯前句 不與白雲齊 問 如何是動乾坤句 師曰 透出龍宮飜大海 掌開日月倒須彌 問 如何是出家人 師曰 深 曰 如何是出家法 師曰 苦

 

정주(鼎州) 대룡산(大龍山) 병현선사(炳賢禪師)

승문 지난날 선사(先師)가 말씀하셨거니와 어떻게 법신을 투과합니까. 사왈 만인(萬仞)의 봉우리 앞의 구()니 백운과 가지런하지 못하다. 묻되 무엇이 이 건곤을 동()하는 구입니까. 사왈 용궁을 투출하여 대해를 번복(飜覆; )고 손바닥으로 일월을 열고 수미(須彌)를 넘어뜨린다. 묻되 무엇이 이 출가인입니까. 사왈 깊다(). 가로되 무엇이 이 출가법입니까. 사왈 괴롭다().

 

自巖上座

僧問 如何是無縫塔 師曰 甎瓦泥土 曰 如何是塔中人 師曰 含齒戴髮 問 如何是大人相 師曰 不曾作模樣 曰 如何是老人相 師曰 無力把拄杖 問 洞山麻三斤 意旨如何 師曰 八十婆婆不粧梳

含齒戴髮; 口中有牙齒 頭上有頭髮 指一般平凡之人

 

자암상좌(自巖上座)

승문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 벽돌ㆍ기와ㆍ진흙ㆍ흙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탑중인(塔中人)입니까. 사왈 함치대발(含齒戴髮)이다. 묻되 무엇이 이 대인상(大人相)입니까. 사왈 일찍이 모양(模樣)을 짓지 않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노인상(老人相)입니까. 사왈 지팡이(拄杖)를 잡을 힘이 없다. 묻되 동산(洞山; 守初)의 마삼근(麻三斤)은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팔십 파파(婆婆)가 장소(粧梳; 丹粧하고 빗질함)하지 않는다.

含齒戴髮; 입속에 아치(牙齒)가 있고 두상에 두발이 있음이니 일반 평범한 사람을 가리킴.

 

香林遠禪師法嗣

隨州智門光祚禪師先住北塔

僧問 如何是佛 師曰 踏破草鞋赤脚走 曰 如何是佛向上事 師曰 拄杖頭上挑日月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眼不見鼻 曰 便恁麽領會時如何 師曰 鼻孔裏呷羹 問 曹谿路上還有俗談也無 師曰 六祖是盧行者 問 一切智智淸淨 還有地獄也無 師曰 閻羅王是鬼做 上堂 一法若有 毗盧墮在凡夫 萬法若無 普賢失其境界 正當恁麽時 文殊向甚麽處出頭 若也出頭不得 金毛師子腰折 幸好一盤飯 莫待糝椒薑

一切智智; 三智中之一切智 混聲聞緣覺之智 故爲分別彼一切智而名佛智爲一切智智 大毘盧遮那成佛經疏一曰 梵云薩婆若那 卽是一切智智

 

수주(隨州) 지문(智門) 광조선사(光祚禪師)먼저 北塔했다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짚신을 답파(踏破)하고 적각(赤脚; 맨발)으로 달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불향상사(佛向上事)입니까. 사왈 주장두상(拄杖頭上)에 일월을 걸었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눈이 코를 보지 못한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영회(領會)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콧구멍 속에 국을 마신다(; 음이 합). 묻되 조계로상(曹谿路上)에 도리어 속담(俗談)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6조는 이 노행자(盧行者). 묻되 일체지지(一切智智)가 청정한데 도리어 지옥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염라왕(閻羅王)은 이 귀신이 짓는다(鬼做). 상당(上堂) 일체가 만약 있으면 비로(毗盧)가 범부에 떨어져 있고 만법이 만약 없으면 보현(普賢)이 그 경계를 잃는다.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문수(文殊)가 어느 곳을 향해 출두(出頭)하느냐. 만약에 출두를 얻지 못한다면 금모사자(金毛師子)의 허리가 부러질 것이다. 다행히 좋은 일반(一盤)의 밥이니 초강(椒薑; 후추와 생강)과 섞임()을 기다리지 말아라.

一切智智; 3() 중의 일체지(一切智). 성문과 연각의 지와 섞이므로 고로 그 일체지와 분별하여 불지(佛智)를 이름해 일체지지라 함. 대비로자나성불경소1에 가로되 범어로 이르되 살바야나(薩婆若那)는 곧 이 일체지지이다.

 

上堂 山僧記得 在母胎中有一則語 今日擧似大衆 諸人不得作道理商量 還有人商量得麽 若商量不得 三十年後不得錯擧 問 如何是淸淨法身 師曰 滿眼是埃塵 問 古鏡未磨時如何 師曰 也祇是箇銅片 曰 磨後如何 師曰 且收取 問 如何是般若體 師曰 蚌含明月 曰 如何是般若用 師曰 兔子懷胎 問 金剛眼中著得箇甚麽 師曰 一把沙 曰 爲甚麽如此 師曰 非公境界 問 如何是無縫塔 師曰 四稜著地 曰 如何是塔中人 師曰 鼻孔三斤秤不起 問 蓮花未出水時如何 師曰 蓮花 曰 出水後如何 師曰 荷葉

 

상당(上堂) 산승이 기득(記得)하건대 모태(母胎) 중에 있으면서 1()의 말이 있어 금일 대중에게 들어 보이겠다. 제인(諸人)은 도리로 상량(商量)을 지음을 얻지 말아라. 도리어 상량함을 얻을 사람이 있느냐. 만약 상량을 얻지 못한다면 30년 후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청정한 법신입니까. 사왈 눈 가득히 이 애진(埃塵)이다.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또 다만 시개(是箇)의 구리 조각이다. 가로되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다만() 수취(收取)하라. 묻되 무엇이 이 반야체(般若體)입니까 사왈 방합(蚌蛤; )이 명월을 머금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반야용(般若用)입니까. 사왈 토자(兔子; 토끼)가 회태(懷胎)했다. 묻되 금강안(金剛眼) 가운데 저() 무엇을 붙입니까(著得). 사왈 한 웅큼()의 모래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공()의 경계가 아니다.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 사릉이 착지했다(四稜著地). 가로되 무엇이 이 탑중인(塔中人)입니까. 사왈 콧구멍이 3()인데 저울질해 일으키지 못한다(秤不起). 묻되 연화(蓮花)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연화다.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하엽(荷葉; 연잎)이다.

 

上堂 汝等諸人橫擔拄杖 出一叢林 入一叢林 你道叢林有幾種 或有旃檀叢林 旃檀圍繞 或有荊棘叢林 荊棘圍繞 或有荊棘叢林 旃檀圍繞 或有旃檀叢林 荊棘圍繞 祇如四種叢林 是汝諸人在阿那箇叢林裏安身立命 若無安身立命處 虛踏破草鞋 閻羅王徵你草鞋錢有日在

 

상당(上堂) 너희 등 제인이 주장자를 가로 메고 1총림에서 나와 1총림에 들거니와 너희가 말하라, 총림에 몇 종()이 있느냐. 혹 전단(旃檀) 총림에 전단이 위요(圍繞)함이 있고 혹 형극(荊棘) 총림에 형극이 위요함이 있고 혹 형극 총림에 전단이 위요함이 있고 혹 전단 총림에 형극이 위요함이 있다. 지여(祇如) 4종 총림에 이 너희 제인은 어느(阿那箇) 총림 속에 있으면서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느냐. 만약 안신입명할 곳이 없으면 짚신을 헛되이 답파(踏破)했으니 염라왕이 너희에게 초혜전(草鞋錢)을 징수(徵收; )할 날이 있으리라.

 

上堂 雪峰輥毬 羅漢書字 歸宗斬蛇 大隨燒畬 且道明甚麽邊事 還有人明得麽 試道看 若明不得 所以道 斬蛇須是斬蛇手 燒畬須是燒畬人 瞥起情塵生妄見 眼裏無筋一世貧 上堂 赫日裏我人 雲霧裏慈悲 霜雪裏假褐 雹子裏藏身 還藏得身麽 若藏不得 却被雹子打破髑髏 上堂 東家李四婆 西家來乞火 門外立少時 嗔他停滯我 惡發走歸家 虛心屋裏坐 可憐羣小兒 終日受饑餓 有眼不點睛 空鏁髑髏破

雪峰輥毬; 五燈會元七雪峰義存 玄沙謂師曰 某甲如今大用去 和尙作麽生 師將三箇木毬一時拋出 沙作斫牌勢 師曰 你親在靈山方得如此 沙曰 也是自家事

羅漢書字; 祖庭事苑一 羅漢書字 仰山和尙 在洪州觀音時 粥後坐次 有僧來禮拜 師不顧 其僧問 師識字否 師云 粗識 僧乃右旋一帀云 是甚麽字 師於地上書十字酬之 僧左旋一帀云 是甚麽字 師改十字作卍字 僧以兩手托圓相 如修羅掌日月勢云 是甚麽字 師乃畫一圓相圍却卍字 僧乃作金剛勢 師云 如是如是 僧禮謝 騰空而去

歸宗斬蛇; 聯燈會要四歸宗智常 師剗草次 有座主來參 偶一條蛇過 師以鋤斷之 主云 久響歸宗 元來只是箇麤行沙門 師顧座主云 儞麤我麤 主問 如何是麤 師竪起鋤頭 云 如何是細 師作斷蛇勢 云 與麽則依而行之 師云 依而行之且置 儞甚麽處見我斬蛇 主無對

大隨燒畬; 聯燈會要十大隋法眞 師燒畬次 忽見一條虵 師以杖挑向火中云 咄 這箇形骸 猶自不放捨 儞向這裏死 如暗得燈

假褐; 一種菌類 菌蓋幼時半球形 後漸扁平或近平展 直徑四至十二公分 褐灰色 [百度百科]

雹子; 冰雹 子 後綴

 

상당(上堂) 설봉은 공을 굴렸고(雪峰輥毬) 라한은 글자를 썼고(羅漢書字) 귀종은 뱀을 베었고(歸宗斬蛇) 대수는 밭을 태웠다(大隨燒畬). 차도(且道)하라, 어느 쪽의 일을 밝혔는가. 도리어 밝힘을 얻을 사람이 있느냐. 시험 삼아 말해 보아라. 만약 밝힘을 얻지 못한다면 소이로 말하되 참사(斬蛇)는 모름지기 이 참사수(斬蛇手)라야 하고/ 소여(燒畬)는 모름지기 이 소여인(燒畬人)이라야 한다/ 갑자기() 정진(情塵)을 일으키고 망견(妄見)을 낸다면/ 안리(眼裏)에 근육이 없어 일세(一世)에 가난하리라. 상당(上堂) 혁일(赫日) 속의 아인(我人)이며 운무 속의 자비며 상설 속의 가갈(假褐; 버섯의 일종)이며 박자(雹子) 속에 몸을 숨기나니 도리어 몸을 장득(藏得)하겠는가. 만약 숨김()을 얻지 못한다면 도리어 박자(雹子)가 촉루(髑髏)를 타파함을 입을 것이다. 상당(上堂) 동가(東家)의 이사파(李四婆)에게/ 서가(西家)가 와서 걸화(乞火)했다/ 문 밖에 소시(少時) 섰다가/ 그에게 성내며 나를 정체(停滯)케 하네/ 악발(惡發)하며 달려 귀가(歸家)하여/ 마음을 비우고 옥리(屋裏)에 앉았다/ 가련(可憐)하다 뭇 소아(羣小兒)/ 종일 기아(饑餓)를 받았네/ 눈이 있지만 점정(點睛; 點眼)하지 못하고/ 공연히 촉루(髑髏)를 에워싸 부수었다.

雪峰輥毬; 오등회원7 설봉의존. 현사가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모갑이 여금에 대용(大用)하겠습니다. 화상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세 개의 목구(木毬)를 가져다 일시에 포출(拋出)했다. 현사가 작패세(斫牌勢)를 지었다. 스님이 가로되 너는 친히 영산에 있은지라 비로소 이와 같음을 얻었다. 현사가 가로되 또한 이는 자가사(自家事)입니다.

羅漢書字; 조정사원1. 라한서자(羅漢書字) 앙산화상이 홍주의 관음사에 있을 때였다. 죽을 먹은 후 앉은 차에 어떤 중이 와서 예배했다. 스님이 돌아보지 않자 그 중이 묻되 스님은 글자를 아십니까(副詞). 스님이 이르되 조금(는 거칠 조. 대략 조) 안다. 중이 이에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고는 이르되 이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이 지상(地上)에 십자(十字)를 써서 응수(는 응대할 수)했다. 중이 왼쪽으로 한바퀴 돌고는 이르되 이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이 십자(十字)를 고쳐 만자(卍字)로 만들었다. 중이 두 손으로 원상(圓相)을 밀어 마치 아수라가 일월(日月)을 장악하는 것 같은 형세를 짓고 이르되 이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이 이에 1원상(圓相)을 그려 만자(卍字)에 둘렀다. 중이 이에 금강(金剛力士)의 형세를 지었다. 스님이 이르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중이 예사(禮謝)하고 허공을 타고 떠났다.

歸宗斬蛇; 연등회요4 귀종지상. 스님이 풀을 깎던 차에 어떤 좌주가 와서 참알했다. 우연히 한 줄기의 뱀이 지나갔다. 스님이 호미로 그것을 끊었다. (; 좌주)가 가로되 오래 귀종을 향했더니 원래 다만 이 추행사문(麤行沙門)이었군. 스님이 좌주를 돌아보고 이르되 너의 추(), 나의 추냐. ()가 묻되 무엇이 이 추()입니까. 스님이 호미를 세워 일으켰다. 이르되 무엇이 이 세()입니까. 스님이 뱀을 베는 형세를 지었다. 이르되 이러하시다면 곧 이에 의거해 행하겠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의거해 행함은 그래 두고 네가 어느 곳에서 내가 뱀을 벰을 보느냐. 주가 대답이 없었다.

大隨燒畬; 연등회요10 대수법진(大隋法眞) 스님이 밭을 태우던(燒畬) 차에 홀연히 한 가닥의 뱀을 보았다. 스님이 지팡이로써 돋우어 불 속을 향하게 하고 이르되 돌(), 저개(這箇) 형해(形骸)도 오히려 스스로 방사(放捨)하지 못하느냐. 네가 이 속을 향해 죽는다면 어둠에서 등을 얻음과 같으리라.

雹子; 빙박(冰雹; 우박). 자는 후철.

假褐; 일종의 버섯 종류. 버섯의 덮개는 어릴 때 반구형(半球形)이며 후에 점차 편평(扁平)하거나 혹 편평함과 가깝게 전개됨. 직경은 4에서 12에 이르며 갈회색임 [백도백과].

 

灌州羅漢和尙

僧問 如何是佛 師曰 牛頭阿旁 曰 如何是法 師曰 劒樹刀山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井中紅燄 日裏浮漚 曰 如何領會 師曰 遙指扶桑日那邊 問 如何是本來心 師曰 蹉過了也

 

관주(灌州) 라한화상(羅漢和尙)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우두아방(牛頭阿旁)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검수도산(劒樹刀山)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정중(井中)의 홍염(紅燄)이며 일리(日裏; 대낮)의 부구(浮漚).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멀리 부상(扶桑)의 해 저쪽(那邊)을 가리킨다. 가로되 무엇이 이 본래심(本來心)입니까. 사왈 차과(蹉過; 錯過)했다.

 

灌州靑城香林信禪師

僧問 覿面相呈時如何 師曰 築著鼻孔

 

관주(灌州) 청성(靑城) 향림신(香林信) 선사

승문 적면(覿面)하여 상정(相呈)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비공(鼻孔; 저본에 공비(孔鼻)로 지었음)을 찔렀다(築著).

 

洞山初禪師法嗣

潭州福嚴良雅禪師

居洞山第一座 山參次 僧出問 如何是佛 山答曰 麻三斤 參罷 山至寮謂師曰 我今日答這僧話 得麽 曰 恰値某淨髮 山曰 你元來作這去就 拂袖便出 師曰 這老漢將謂我明他這話頭不得 因作偈呈曰 五彩畫牛頭 黃金爲點額 春晴二月初 農人皆取則 寒食賀新正 鐵錢三五百 山見 深肯之 住福嚴日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入門便見

 

담주(潭州) 복엄(福嚴) 양아선사(良雅禪師)

동산(洞山)의 제1좌에 거처했다. 동산이 참차(參次)에 중이 나와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동산이 답왈 마삼근(麻三斤)이다. ()을 파()하자 동산이 요사(寮舍; )에 이르러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금일 저승(這僧)에게 답한 화()가 옳은가(得麽). 가로되 마침() ()가 정발(淨髮)함을 만났습니다(). 동산이 가로되 네가 원래 이런 거취(去就)를 짓느냐.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 사왈 이 노한이 다만() 이르되 내가 그 화두를 밝힘을 얻지 못했다고 하시는가. 인하여 게를 지어 보여 가로되 오채(五彩)로 우두(牛頭)를 그렸는데/ 황금으로 점액(點額)했다/ 봄이 맑은 2월 초에/ 농인(農人)이 모두 법칙을 취하고/ 한신(寒食)에 신정(新正)을 경하(慶賀; )하면서/ 철전(鐵錢)이 삼오백(三五百)이다. 동산이 보고 깊이 수긍했다. 복엄(福嚴)에 주()하던 날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입문(入門)하면 바로 본다.

 

荊南府開福德賢禪師

僧問 去離不得時如何 師曰 子承父業 問 如何是衲僧活計 師曰 耳裏種田 上堂 不用思而知 不用慮而解 知解俱泯 合談何事 良久曰 一葉落 天下秋 問 承和尙有言 隔江招手 意旨如何 師曰 被裏張帆 曰 恁麽則南山起雲 北山下雨去也 師曰 踏不著

 

형남부(荊南府) 개복(開福) 덕현선사(德賢禪師)

승문 거리(去離; 떠나다)를 얻지 못할 대 어떻습니까. 사왈 아들이 부업(父業)을 계승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납승의 활계(活計)입니까. 사왈 귓속에 종전(種田)한다. 상당 사()를 쓰지 않고 알며() ()를 쓰지 않고 알거니와() 지해(知解)가 모두() 민멸(泯滅; )하면 합당히 무슨 일을 얘기하느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일엽(一葉)이 떨어지면 천하가 가을이다. 묻되 듣건대() 화상이 말씀이 있어 격강(隔江)하여 초수(招手; 손짓)한다 한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이불() 속에서 돛을 펼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고 북산에 배가 내릴 것입니다. 사왈 밟지 못했다(踏不著).

 

潭州報慈嵩禪師

僧問 北斗藏身 意旨如何 師曰 百歲老人入漆甕

 

담주(潭州) 보자숭(報慈嵩) 선사

승문 북두에 몸을 숨긴다는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사왈 백 세 노인이 칠옹(漆甕)에 들어갔다.

 

岳州乾明睦禪師

問洞山 停機罷賞時如何 山曰 水底弄傀儡 師曰 誰是看翫者 山曰 停機罷賞者 師曰 恁麽則知音不和也 山曰 知音底事作麽生 師曰 大盡三十日 山曰 未在更道 師曰 某甲合喫和尙手中痛棒 山休去 問 昔日靈山記 今朝嗣阿誰 師曰 楚山突兀 漢水東流 曰 恁麽則洞山的嗣也 師曰 聽事不眞 喚鐘作甕

的嗣; 直系法嗣 嫡嗣

 

악주(岳州) 건명목(乾明睦) 선사

동산(洞山)에게 묻되 정기(停機)하고 파상(罷賞)할 때 어떻습니까. 산왈(山曰) 물밑에서 괴뢰(傀儡)를 희롱한다. 사왈 누가 이 간완(看翫; 보며 구경함)하는 자입니까. 산왈 정기(停機)하고 파상(罷賞)한 자다. 사왈 이러하다면 곧 지음(知音)이 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산왈 지음하는 일이 무엇인가(作麽生). 사왈 대진(大盡; 大月)은 삼십일(三十日)입니다. 산왈 미재(未在)니 다시 말하라. 사왈 모갑이 합당히 화상의 손안의 통방(痛棒)을 먹어야 합니다. 동산이 쉬었다(休去). 묻되 석일(昔日)에 영산(靈山)에서 기(; 授記)했거니와 금조(今朝)에 누구(阿誰)를 잇습니까. 사왈 초산(楚山)은 돌올(突兀; 높이 솟은 모양)하고 한수(漢水)는 동류(東流)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동산(洞山)의 적사(的嗣)입니다. 사왈 청사(聽事)가 부진(不眞)이면 종을 일러 독이라 한다(喚鐘作甕).

的嗣; 직계의 법사(法嗣)니 적사(嫡嗣).

 

鄧州廣濟院同禪師

僧問 萬緣息盡時如何 師曰 三脚蝦蟇飛上天 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華嶽三峯小 曰 此意如何 師曰 黃河輥底流

 

등주(鄧州) 광제원(廣濟院) 동선사(同禪師)

승문 만연(萬緣)을 식진(息盡)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세 다리의 두꺼비가 하늘로 비상(飛上)한다. 묻되 무엇이 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입니까. 사왈 화악(華嶽) 삼봉(三峯)이 작다. 가로되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황하가 바닥에 구르며 흐른다.

 

韶州東平山洪敎禪師

僧問 如何是向上關 師竪起拂子 僧曰 學人未曉 乞師再指 師曰 非公境界 曰 和尙豈無方便 師曰 再犯不容

 

소주(韶州) 동평산(東平山) 홍교선사(洪敎禪師)

승문 무엇이 이 향상관(向上關)입니까.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켰다. 승왈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으니 스님의 재지(再指)를 구걸합니다. 사왈 공()의 경계가 아니다. 가로되 화상이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사왈 재범(再犯)은 용납하지 않는다.

 

泐潭謙禪師法嗣

䖍州丫山宗盛禪師

上堂 鐘聲淸 鼓聲響 早晩相聞休妄想 薦得徒勞別問津 莫道山僧無伎倆 咄

 

건주(䖍州) 아산(丫山) 종성선사(宗盛禪師)

상당(上堂) 종소리는 맑고 북소리는 울리나니/ 조만(早晩)에 상문(相聞)하면서 망상을 쉬어라/ 천득(薦得; 領會)하고도 도로(徒勞) 나루를 달리 묻느냐/ 산승이 기량(伎倆)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라. ().

 

奉先深禪師法嗣

天台蓮華峯祥菴主

僧問 如何是雪嶺泥牛吼 師曰 聽 曰 如何是雲門木馬嘶 師曰 響 示寂日 拈拄杖示衆曰 古人到這裏 爲甚麽不肯住 衆無對 師乃曰 爲他途路不得力 復曰 畢竟如何 以杖橫肩曰 楖栗橫擔不顧人 直入千峯萬峯去 言畢而逝

 

천태(天台) 연화봉(蓮華峯) 상암주(祥菴主)

승문 무엇이 이 설령(雪嶺)의 이우(泥牛)가 부르짖음입니까. 사왈 듣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운문(雲門)의 목마가 우는 것입니까. 사왈 울린다(). 시적(示寂)하던 날(; 저본에 로 지었음) 주장자를 잡고 시중(示衆)해 가로되 고인(古人)이 이 속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머묾을 긍정치 않았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이 이에 가로되 저 도로에선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가로되 필경 어떠한가. 주장자를 어깨에 가로 메고 가로되 즐률(楖栗)을 가로 메고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천봉만봉(千峰萬峰)으로 들어간다. 말을 마치자 서거했다.

 

江州崇聖御禪師

僧問 如何是學人受用三昧 師曰 橫擔拄杖 曰 意旨如何 師曰 步步踏實

강주(江州) 숭성어(崇聖御) 선사

승문 무엇이 이 학인이 수용(受用)하는 삼매입니까. 사왈 주장자를 가로 멘다.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걸음마다 진실을 밟는다(踏實).

 

雙泉郁禪師法嗣

鼎州德山慧遠禪師

開堂示衆曰 無量法門悉已具足 然雖如是 且須委悉 始得其餘方便 昔時聖人互出 乃曰傳燈 爾後賢者差肩 故云繼祖 是以心心相傳 法法相印 且作麽生傳 作麽生印 擧起拂子曰 此乃人天同證 若如是也遞相證明 其或未曉之徒 請垂下問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鐵門路險 解夏上堂 僧問 九旬禁足今已滿 自恣之儀事若何 師曰 猢猻趂蛺蝶 九步作一歇 曰 意旨如何 師示頌曰 兩箇童兒舁木鼓 左邊打了右邊舞 刹那變現百千般 分明示君君記取 問 亡僧遷化 向甚麽處去 師曰 烏龜鑽破壁 上堂 枕石潄流 任運天眞 不見古者道 撥霞掃雪和雲母 掘石移松得茯苓 當恁麽時復何言哉 諸禪德要會麽 聽取一頌 雪霽長空 迥野飛鴻 段雲片片 向西向東

差肩; 一比肩 肩挨著肩 二謂並列 地位相等 此指一

雲母; 一種造岩礦物 呈現六方形的片狀晶形

茯苓; 慧琳音義二十七曰 愽物志 松脂入地千年化爲茯苓 茯苓千年化爲虎魄 一名紅珠

 

정주(鼎州) 덕산(德山) 혜원선사(慧遠禪師)

개당(開堂) 시중(示衆)해 가로되 무량 법문을 모두() 이미 구족했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다만() 꼭 위실(委悉; 자세히 알다)해야 비로소 그 나머지 방편을 얻는다. 석시(昔時)에 성인(聖人)이 호출(互出)했으니 이에 가로되 전등(傳燈)이며 이후(爾後)에 현자(賢者)가 차견(差肩)했으니 고로 이르되 계등(繼祖)이다. 이런 까닭으로 심심(心心)이 상전(相傳)하고 법법(法法)이 상인(相印)했다. 다만 무엇(作麽生)을 전()하고 무엇을 인()했는가. 불자를 거기(擧起)하고 가로되 이것을() 이에 인천(人天)이 동증(同證)했다. 만약 이와 같다면 체상(遞相) 증명하려니와 그 혹 깨닫지 못하는 무리()는 청컨대 하문(下問)을 내려라.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철문로(鐵門路)가 험하다. 해하(解夏)에 상당(上堂) 승문 9()의 금족(禁足)은 이제 이미 찼으니(滿) 자자(自恣)의 의식(儀事)가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호손(猢猻; 원숭이)이 협접(蛺蝶; 나비)을 쫓으면서() 9()1()을 짓는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스님이 송을 보여 가로되 두 개의 동아(童兒)가 목고(木鼓)를 마주들고서/ 좌변(左邊)에서 치고 나서 우변(右邊)에서 춤춘다/ 찰나에 백천 가지를 변현(變現)하며/ 분명히 그대에게 보이니 그대가 기취(記取)하라. 묻되 망승(亡僧)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오귀(烏龜)가 벽을 뚫어 깨뜨린다. 상당(上堂) 침석(枕石)이 수류(潄流; 씻으며 흐르다)하니 임운(任運)하여 천진(天眞)이다. 보지 못하느냐, 고자(古者)가 말하되 노을을 헤치고 눈을 쓸어 운모(雲母)와 섞고 돌을 뚫고 솔을 옮겨 복령(茯苓)을 얻는다. 이러한 때에 당해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제선덕(諸禪德)이여 알고자 하느냐, 1송을 청취하라. 눈이 개인 장공(長空)이며/ 아득한 들(迥野)에 나는 고니()/ 단운(段雲)은 조각 조각/ 서를 향하고 동을 향한다.

差肩; 1. 비견(比肩)이니 어깨가 어깨에 애착(挨著). 2. 이르자면 병렬(並列)이니 지위가 상등(相等).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雲母; 일종의 조암광물(造岩礦物)이니 6방형(方形)을 나타내어 보이는 편상(片狀)의 정형(晶形; 結晶形).

茯苓; 혜림음의27에 가로되 박물지 송지(松脂)가 땅에 들어가 천 년이면 복령(茯苓)으로 변화하고 복령이 천 년이면 호백(虎魄)으로 변화하는데 일명이 홍주(紅珠).

 

襄州含珠山彬禪師

僧問 如何是正法眼 師曰 瞎 問 如何是和尙關棙子 師竪起拂子 僧便喝 師便打 問 如何是三乘敎 師曰 上大人 曰 意旨如何 師曰 化三千

 

양주(襄州) 함주산(含珠山) 빈선사(彬禪師)

승문 무엇이 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눈멀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관려자(關棙子)입니까.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켰다. 중이 바로 할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삼승교(三乘敎)입니까. 사왈 상대인(上大人).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3천인을 교화했다(化三千).

 

披雲寂禪師法嗣

廬山開先照禪師

僧問 向上宗乘 乞師垂示 師曰 白雲斷處見明月 曰 猶是學人疑處 師曰 黃葉落時聞擣衣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一條寒㵎木 得力勝兒孫 曰 用者如何 師曰 百雜碎 上堂 叢林規矩 古佛家風 一參一請 一粥一飯 且道明得箇甚麽 祇如諸人心心不停 念念不住 若能不停處停 念處無念 自合無生之理 與麽說話 笑破他人口 參

 

여산(廬山) 개선조(開先照) 선사

승문 향상(向上)의 종승(宗乘), 스님의 수시(垂示)를 구걸합니다. 사왈 백운이 끊어진 곳에서 명월을 본다. 가로되 오히려 이는 학인이 의심하는 곳입니다. 사왈 황엽이 떨어질 때 도의(擣衣; 擣衣聲이니 다듬잇방망이로 두들겨서 옷을 다듬는 소리)를 듣는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한 가닥의 한간(寒㵎)의 나무가 득력(得力)하여 아손(兒孫) 보다 수승(殊勝)하다. 가로되 쓰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백잡쇄(百雜碎; 산산 조각이 나다). 상당(上堂) 총림의 규구(規矩)와 고불의 가풍은 일참일청(一參一請)하고 일죽일반(一粥一飯)이다. 차도(且道)하라 저() 무엇을 밝힘을 얻느냐. 지여(祇如) 제인이 심심(心心)이 부정(不停)하고 염념(念念)이 부주(不住)하거니와 만약 능히 부정처(不停處)에 정()하고 염처(念處)에 무념(無念)이면 스스로 무생지리(無生之理)에 계합(契合; )하리니 이러한 설화(說話)는 타인의 입을 소파(笑破)한다. ()하라.

 

金陵天寶和尙

僧問 白雲抱幽石時如何 師曰 非公境界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列半作三 曰 學人未曉 師曰 鼻孔針筒

 

금릉(金陵) 천보화상(天寶和尙)

승문 백운이 유석(幽石)을 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공()의 경계가 아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반을 나열하여 셋을 짓는다(列半作三; 로 의심됨).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콧구멍이 침통이다(鼻孔針筒).

 

舜峯韶禪師法嗣

磁州桃園山㬢朗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西來若有意 斬下老僧頭 曰 爲甚却如此 師曰 不見道 爲法喪軀

 

자주(磁州) 도원산(桃園山) 희랑선사(㬢朗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서래에 만약 뜻이 있다면 노승의 머리를 베어 떨어뜨려라. 가로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와 같습니까. 사왈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 법을 위해 몸을 잃는다(爲法喪軀).

 

安州法雲智善禪師

僧問 如何是古佛道場 師曰 山靑水綠

 

안주(安州) 법운(法雲) 지선선사(智善禪師)

승문 무엇이 이 고불의 도량(道場)입니까. 사왈 산은 청색이고 물은 녹색이다(山靑水綠).

 

般若柔禪師法嗣

藍田縣眞禪師

僧問 如何是大定門 師曰 拈柴擇菜 上堂 成山假就於始簣 脩途託至於初步 上座適來從地爐邊來 還與初步同別 若言同 卽不會不遷 若言別 亦不會不遷 上座作麽生會 還會麽 這裏不是那裏 那裏不是這裏 且道是一處兩處 是遷不遷 是來去不是來去 若於此顯明得 便乃古今一如初終 自爾念念無常 心心永滅 所以道觀方知彼去 去者不至方 上座適來恁麽來 却請恁麽去 參

地爐; 僧堂內所設置之爐 用於取煖 依僧堂之大小 而設置一個或數個

 

남전현(藍田縣) 진선사(眞禪師)

승문 무엇이 이 대정문(大定門)입니까. 사왈 섶을 집고 나물을 가린다(拈柴擇菜). 상당(上堂) 산을 이룸은 첫 삼태기를 빌려 이루고 먼(; ) 길은 첫걸음에 의탁해 이른다(肇論2). 상좌가 아까 지로변(地爐)으로 좇아왔거니와 도리어 첫걸음과 같은가 다른가. 만약 같다고 말한다면 곧 불천(不遷)을 알지 못함이며 만약 다르다고 말한다면 또한 불천(不遷)을 알지 못했다. 상좌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도리어 아느냐. 저리(這裏)는 이 나리(那裏)가 아니며 나리는 이 저리가 아니다. 차도(且道)하라 이 일처(一處)인가 양처(兩處)인가. 이 천()인가 이 불천(不遷)인가. 이 내거(來去)인가 이 내거가 아닌가. 만약 여기에서 환히() 밝힘을 얻는다면 바로 이에 고금(古今)이 일여(一如)한 초종(初終)이라서 이로부터(自爾) 염념(念念)이 무상(無常)하고 심심(心心)이 영멸(永滅)하리라. 소이로 말하되 관방(觀方; 방위를 관하다. 去處)하면 그 거()를 아나니 거()는 방()에 이르지 않는다(조론에서 中觀論을 인용한 구). 상좌가 아까 이렇게 왔으니 도리어 청컨대 이렇게 가거라. ()하라.

地爐; 승당 안에 설치한 바의 화로임. 따뜻함을 취하는데 씀. 승당의 대소에 의해 한 개 혹은 몇 개를 설치함.

 

妙勝臻禪師法嗣

西川雪峯欽山主

上堂 昨日一 今日二 不用思量 快須瞥地 不瞥地 蹉過平生沒巴鼻 咄

 

서천(西川) 설봉흠(雪峯欽) 산주(山主)

상당(上堂) 작일은 1이며 금일은 2. 사량을 쓰지 말고 쾌히 별지(瞥地)를 써라. 별지가 아니면 평생을 차과(蹉過)하여 파비(巴鼻)가 없으리라. ().

 

薦福古禪師法嗣

和州淨戒守密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稽首 稽首 曰 學人有分也無 師曰 頓首 頓首 僧作舞而出 師曰 似則恰似 是卽未是

 

화주(和州) 정계(淨戒) 수밀선사(守密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계수(稽首), 계수. 가로되 학인이 분한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돈수(頓首; 머리를 조아림), 돈수. 중이 춤추며 나갔다. 사왈 흡사하기는 곧 흡사하지만 옳기는() 곧 옳지 못하다.

 

淸涼明禪師法嗣

吉州西峯雲豁禪師

郡之曾氏子 早扣諸方 晩見淸涼問 佛未出世時如何 涼曰 雲遮海門樹 曰 出世後如何 涼曰 擘破鐵圍山 師於言下大悟 涼印可之 歸住寶龍 雲侶騈集 眞宗皇帝遣使召至 訪問宗要 留上苑 經時冥坐不食 上嘉異 賜號圓淨 辭歸 珍錫甚隆 皆不受 以詩寵其行 改寶龍曰祥符 旌師之居也 甞有問易中要旨者 師曰 夫神生於無形 而成於有形 從有以至於無 然後能合乎妙圓正覺之道 故自四十九衍 以至於萬有一千五百二十 以窮天下之理 以盡天下之性 不異吾聖人之敎也 示寂日爲衆曰 天不高 地不厚 自是時人覷不透 但看臘月二十五 依舊面南看北斗 瞑然而逝 茶毗獲設利建塔

冥坐; 閉目而坐 在昏暗中坐著

嘉異; 特別贊美

珍錫; 珍貴的賞賜

四十九衍; 衍 充盈 運行 周易正義 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王弼曰 演天地之數 所賴者五十也 其用四十有九 則其一不用也 不用而用以之通 非數而數以之成 斯易之太極也 四十有九 數之極也

瞑然; 一模模糊糊地 二.閉目貌 三指默默地若有所思的樣子

 

길주(吉州) 서봉(西峯) 운활선사(雲豁禪師)

()의 증씨(曾氏)의 아들이다. 일찍 제방에 구문(扣問; )했고 늦게서야 청량(淸涼)을 뵙고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량왈(涼曰) 구름이 해문(海門)의 나무를 가렸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량왈 철위산을 벽파(擘破)했다.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고 청량이 인가(印可)했다. 돌아와 보룡(寶龍)에 주()했는데 운려(雲侶; 雲水僧)가 변집(騈集)했다. 진종(眞宗) 황제가 사자(使者)를 보내 불러 이르게 하고 종요(宗要)를 방문(訪問)했고 상원(上苑)에 머물게 했다. 시일을 경과하며 명좌(冥坐)하여 불식(不食)하는지라 주상(主上; )이 가이(嘉異)히 여겼고 원정(圓淨)이란 호를 주었다. 고별하고 돌아가자 진석(珍錫)이 심히 융성했으나 모두 받지 않았는데 시()로써 그 행()을 총애(寵愛; )했다. 보룡(寶龍)을 고쳐 가로되 상부(祥符)라 하고 스님의 거처를 정표(旌表; )했다. 일찍이 역() 중의 요지(要旨)를 묻는 자가 있었다. 사왈 무릇() ()은 무형(無形)에서 나와 유형(有形)을 이루고 유()로 좇아 무()에 이르나니 연후에 능히 묘원(妙圓)의 정각지도(正覺之道)에 합한다. 고로 사십구연(四十九衍)으로부터 만1525에 이르기까지 천하의 이()를 다하고 천하의 성()을 다하니 우리 성인의 교와 다르지 않다. 시적일(示寂日) 대중을 위해 가로되 하늘이 높지 않고 땅이 두껍지 않건마는 스스로 이 시인(時人) 엿보아 투철하지 못한다. 단지 납월 25를 보아라. 의구히 얼굴을 남쪽으로 하여 북두를 본다. 명연(瞑然)히 서거했다. 다비하여 설리(設利)를 획득해 건탑했다.

冥坐; 눈을 감고 앉음. 혼암(昏暗) 속에 있으면서 앉았음.

嘉異; 특별히 찬미(贊美).

珍錫; 진귀한 상사(賞賜).

四十九衍; ()은 충영(充盈). 운행. 주역정의 대연지수(大衍之數) 50에 그 사용은 49. 왕필이 가로되 천지의 수를 펴면서 의뢰하는 바의 것은 50이며 그 사용은 49니 곧 그 1은 쓰지 않는다. 쓰지 않으면서 써서 통하고 수()가 아니면서 수로써 이루나니 이것이 역의 태극이다. 49는 수의 극이다.

瞑然; 1. 모모호호지(模模糊糊地). 2. 폐목(閉目)한 모양. 3. 묵묵지(默默地)에 사유하는 바가 있는 듯한 양자(樣子)를 가리킴.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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