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安府佛日智才禪師
台州人 僧問 如何是道 師曰 水冷生氷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春雪易消 曰 如何談論 師鳴指一下 問 東西密相付 爲甚麽衆人皆知 師曰 春無三日晴 曰 特伸請益 師曰 拖泥帶水 曰 學人到這裏却不會 師曰 賊身已露 上堂 城裏喧繁 空山寂靜 然雖如此 動靜一如 死生不二 四時輪轉 物理湛然 夏不去而秋自來 風不涼而人自爽 今也古也 不改絲毫 誰少誰多 身無二用 諸禪德 旣身無二用 爲甚麽龍女現十八變 君不見弄潮須是弄潮人 珍重
임안부(臨安府) 불일(佛日) 지재선사(智才禪師)
태주(台州) 사람이다. 승문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물이 차면(冷) 얼음이 생겨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춘설(春雪)은 쉽게 녹는다. 가로되 어떻게 담론해야 합니까. 스님이 손가락을 한 번 울렸다. 묻되 동서(東西)가 비밀히 상부(相付)하거늘 무엇 때문에 중인(衆人)이 모두 압니까. 사왈 봄엔 사흘 갬(晴)이 없다. 가로되 특별히 청익을 폅니다(伸). 사왈 타니대수(拖泥帶水)했따. 가로되 학인이 이 속에 이르러 도리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적신(賊身)이 이미 드러났다. 상당(上堂) 성리(城裏)는 훤번(喧繁)하고 공산(空山)은 적정(寂靜)하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동정(動靜)이 일여(一如)며 사생(死生)이 불이(不二)니 사시(四時)가 윤전(輪轉)하고 물리(物理)가 담연(湛然)하다. 여름이 가지 않아도 가을이 스스로 오고 바람이 서늘하지 않아도 사람이 스스로 시원하게(爽) 여긴다. 지금이나 옛이나(今也古也) 실 터럭만큼도 바뀌지 않거늘 누가 적으며 누가 많은가, 몸은 이용(二用)이 없다. 제선덕(諸禪德)이여 이미 몸은 이용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爲甚麽) 용녀(龍女)가 십팔변(十八變)을 나타내었는가. 그대가 보지 못하는가, 농조(弄潮)는 모름지기 이 농조인(弄潮人)이라야 한다. 진중(珍重)하라.
上堂 風雨蕭騷 塞汝耳根 落葉交加 塞汝眼根 香臭叢雜 塞汝鼻根 冷熱甘甜 塞汝舌根 衣綿溫冷 塞汝身根 顚倒妄想 塞汝意根 諸禪德 直饒汝翻得轉 也是平地骨堆 參 上堂 嚴風刮地 大野淸寒 萬里草離衰 千山樹黯黲 蒼鷹得勢 俊鶻橫飛 頗稱衲僧 鉢囊高挂 獨步遐方 似猛將出荒郊 臨機須扣敵 今日還有麽 良久曰 匣中寶劒 袖裡金鎚 幸遇太平 挂向壁上 參 上堂 諸禪德還知麽 山僧生身父母一時喪了 直是無依倚處 以手搥胸曰 蒼天蒼天 復顧大衆 良久曰 你等諸人 也是鐵打心肝 便下座 上堂 擧栢樹子話 師曰 趙州庭栢 說與禪客 黑漆屛風 松欏亮隔 僧問 如何是無爲 師曰 山前雪半消 曰 請師方便 師曰 水聲轉嗚咽
●蕭騷; 形容風吹樹葉等的聲音
●交加; 錯雜 交錯
●平地骨堆; 意謂做沒有埋死人的假墳 譏刺禪人做作多事 虛妄徒勞 骨堆 墳墓
●生身; (一)諸佛菩薩有法身生身之二身 所證之理體曰法身 爲濟度衆生而託於父母胎生之肉身曰生身 又以通力一時化現之肉身 亦曰生身 所謂生身之彌陀 生身之觀音 生身之普賢 生身之彌勒等是也 (二)一般生身亦可泛指凡夫及菩薩之肉身 此指(二)
●亮隔; 亦作亮槅 能透光的花格長窗
상당(上堂) 풍우(風雨)가 소소(蕭騷)하여 너희의 이근(耳根)을 채우고(塞) 낙엽(落葉)이 교가(交加)하여 너희의 안근(眼根)을 채우고 향취(香臭)가 총잡(叢雜)하여 너희의 비근(鼻根)을 채우고 냉열(冷熱)이 감첨(甘甜)하여 너희의 설근(舌根)을 채우고 의면(衣綿; 솜옷)이 온랭(溫冷)하여 너희의 신근(身根)을 채우고 전도된 망상이 너희의 의근(意根)을 채운다. 제선덕(諸禪德)이여 직요(直饒; 가령) 너희가 번복(翻覆)하여 구름(轉)을 얻더라도 또한 이는 평지골퇴(平地骨堆)다. 참(參)하라. 상당(上堂) 엄풍(嚴風)이 땅을 긁으니 대야(大野)가 청한(淸寒)하며 만 리에 풀이 이쇠(離衰; 떨어지고 쇠함)하고 천산(千山)의 나무가 암참(黯黲; 검푸르죽죽함)하며 창응(蒼鷹)이 득세(得勢)하고 준골(俊鶻; 날쌘 송골매)이 횡비(橫飛)한다. 자못 납승과 칭합(稱合)하여 발낭(鉢囊)을 높이 걸고 하방(遐方)을 독보(獨步)하나니 맹장(猛將)이 황교(荒郊)에 나가 임기(臨機)하여 구적(扣敵)을 씀(須)과 흡사하다. 금일 도리어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갑중(匣中)의 보검과 수리(袖裡)의 금추(金鎚)는 다행히 태평을 만났으니 벽상(壁上)을 향해 걸어라. 참(參)하라. 상당(上堂) 제선덕(諸禪德)이여 도리어 아느냐. 산승이 생신(生身)의 부모를 일시에 잃어버려서(喪了) 바로 이 의의(依倚)할 곳이 없다. 손으로써 가슴을 치고 가로되 창천(蒼天), 창천. 다시 대중을 돌아보더니 양구하고 가로되 너희 등 제인은 또한 이 쇠로 심간을 만들었구나(鐵打心肝). 바로 하좌했다. 상당(上堂) 백수자화(栢樹子話)를 거(擧)했다. 사왈 조주의 정백(庭栢)을/ 선객을 향해 설함은/ 흑칠(黑漆; 검은빛의 옻)의 병풍이며/ 송라(松蘿)의 양격(亮隔)이다. 승문 무엇이 이 무위(無爲)입니까. 사왈 산 앞의 눈이 반쯤 녹았다. 가로되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사왈 물소리가 더욱(轉) 오열(嗚咽)한다.
●蕭騷; 바람이 나뭇잎 등에 부는 성음(聲音)을 형용.
●交加; 착잡(錯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뒤섞여 어수선함). 교착(交錯).
●平地骨堆; 뜻으로 이르자면 죽은 사람을 매장함이 있지 아니한 가분(假墳)을 만듦이니 선인(禪人)이 다사(多事)를 주작(做作)하면서 허망하게 헛수고함을 기자(譏刺; 헐뜯고 비꼬아서 말함)함임. 골퇴(骨堆)는 분묘.
●生身; (1). 제불보살은 법신과 생신 2신(身)이 있음. 소증(所證)의 이체(理體)를 가로되 법신이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부모에게 의탁한 태생(母胎)의 육신을 가로되 생신임. 또 신통력으로 일시에 화현한 육신도 또한 가로되 생신임. 이른 바 생신의 미타ㆍ생신의 관음ㆍ생신의 보현ㆍ생신의 미륵 등이 이것임. (2). 일반으로 생신은 또한 가히 범부 및 보살의 육신을 널리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亮隔; 또 양격(亮槅)으로 지음. 능히 빛을 투과하는 화격(花格; 바둑판 무늬)의 긴 창(窗).
北京天鉢寺重元文慧禪師
靑州千乘孫氏子 母夢於佛前呑一金果 後乃誕師 相儀殊特 迥異羣童 十七出家 冠歲圓具 初遊講肆 頗達宗敎 甞晏坐古室 忽聞空中有告師 學上乘者 無滯於此 驚駭出視 杳無人迹 翌日客至 出寒山集 師一覧之 卽慕參玄 至天衣法席 遇衆請益 豁然大悟 衣印可曰 此吾家千里駒也 出世後 僧問 如何是禪 師曰 入籠入檻 僧拊掌 師曰 跳得出是好手 僧擬議 師曰 了 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上是天 下是地
북경(北京) 천발사(天鉢寺) 중원(重元) 문혜선사(文慧禪師)
청주(靑州) 천승(千乘) 손씨(孫氏)의 아들이다. 모친의 꿈에 불전(佛前)에서 하나의 금과(金果)를 삼켰는데 후에 곧 스님을 낳았다. 상의(相儀)가 수특(殊特)하여 군동(羣童)과 형이(迥異)했다. 17에 출가했고 관세(冠歲)에 원구(圓具)했다. 처음 강사(講肆)에 노닐면서 자못 종교(宗敎)를 통달했다. 일찍이 고실(古室)에 안좌(晏坐)했는데 홀연히 공중에서 스님에게 고(告)함이 있음을 들었는데 상승(上乘)을 배우는 자는 여기에서 체재하지 말아라 했다. 경해(驚駭)하여 나가서 보매 아득히 인적이 없었다. 이튿날(翌日) 객이 이르러 한산집(寒山集)을 내어놓았는데 스님이 일람(一覧)하고는 곧 참현(參玄)을 흠모했다. 천의(天衣)의 법석에 이르러 대중의 청익을 만났다가 활연(豁然)히 대오했다. 천의가 인가(印可)하며 가로되 이것은 오가(吾家)의 천리구(千里駒)다. 출세한 후 승문 무엇이 이 선(禪)입니까. 사왈 농(籠)에 들어가고 우리(檻)에 들어간다. 중이 부장(拊掌)했다. 사왈 뛰어 벗어남을 얻어야 이 호수(好手)다. 중이 의의(擬議)했다. 사왈 마쳤다(了). 묻되 무엇이 이 투법신구(透法身句)입니까. 사왈 위는 이 하늘이며 아래는 이 땅이다.
上堂 冬不受寒 夏不受熱 身上衣 口中食 應時應節 旣非天然自然 盡是人人膏血 諸禪德 山僧恁麽說話 爲是世法 爲是佛法 若也擇得分明 萬兩黃金亦消得 喝一喝 上堂 福勝一片地 行也任你行 住也任你住 步步踏著 始知落處 若未然者 直須退步 脚下看取 咄 上堂 古今天地 萬象森然 歲歲秋收冬藏 人人道我總會 還端的也無 直饒端的 比他鷄足峰前 是甚麽閑事 良久曰 今朝十月初旬 天寒不得普請 參 師四易名藍 緇白仰重 示寂正盛暑中 淸風透室 異香馥郁 茶毗 煙燄到處 獲舍利五色 太師文公彦博 以上賜白琉璃甁貯之 藉以錦褥 躬塟于塔 居士何震所獲額骨齒牙舍利 別剏浮圖
●名藍; 有名之寺院 卽指著名之伽藍 伽藍 卽指寺院
상당(上堂) 겨울에 추위를 받지 않고 여름에 더위를 받지 않고 신상(身上)엔 옷이며 구중(口中)엔 밥이니 응시응절(應時應節; 시절에 응함)한다. 이미 천연(天然)과 자연(自然)이 아닌지라 모두 이 인인(人人)의 고혈(膏血)이다. 제선덕(諸禪德)이여 산승의 이러한 설화는 이 세법(世法)이 되는가, 이 불법이 되는가. 만약에 간택해 분명함을 얻는다면 만량(萬兩)의 황금도 또한 소화함을 얻는다. 할로 한 번 할했다. 상당(上堂) 복이 수승한 일편(一片)의 땅이니 다님도 너희의 다님에 맡기고 머묾도 너희의 머묾에 맡기거니와 걸음마다 답착(踏著)해야 비로소 낙처를 안다. 만약 그렇지 못한 자면 바로(直) 퇴보(退步)함을 써서(須) 각하(脚下)를 간취(看取)하라. 돌(咄). 상당(上堂) 고금의 천지며 만상(萬象)이 삼연(森然)하나니 해마다(歲歲) 추수동장(秋收冬藏)하고 사람마다 말하기를 내가 모두 안다 하거니와 도리어 단적(端的)한가 또는 아닌가. 직요(直饒) 단적하더라도 저(他) 계족봉(鷄足峰) 앞과 비교한다면 이 무슨 한사(閑事)이던가. 양구하고 가로되 금조(今朝)는 10월 초순(初旬)이니 날이 추워(天寒) 보청(普請)을 얻지 않는다. 참(參)하라. 스님이 네 번 명람(名藍)을 바꾸었고(易) 치백(緇白)이 앙중(仰重)했다. 바로(正) 성서(盛暑) 중에 시적(示寂)했는데 청풍이 투실(透室)하고 이향(異香)이 복욱(馥郁; 풍기는 향기가 盛함)했다. 다비(茶毗)하자 연염(煙燄)이 이르는 곳에 사리를 얻었는데 오색이었다. 태사(太師) 문공(文公) 언박(彦博)이 주상이 하사한 백유리병(白琉璃甁)으로써 그것을 저장하고 금욕(錦褥; 비단 요)을 깔았고(藉) 몸소 탑에 매장(埋葬; 塟)했다. 거사 하진(何震)이 획득한 바 액골(額骨)과 치아의 사리로 부도(浮圖)를 따로 창건(創建; 剏)했다.
●名藍; 유명한 사원. 곧 저명한 가람을 가리킴. 가람은 곧 사원을 가리킴.
台州瑞巖子鴻禪師
本郡吳氏子 僧問 如何是道 師曰 開眼覷不見 問 法爾不爾 如何指南 師曰 話墮也 曰 乞師指示 師呵呵大笑 上堂 一不守 二不向 上下四維無等量 大洋海裏汎鐵船 須彌頂上翻鯨浪 臨濟縮却舌頭 德山閣却拄杖 千古萬古獨巍巍 留與人間作榜樣
●等量; 衡量 比較 等同
태주(台州) 서암(瑞巖) 자홍선사(子鴻禪師)
본군(本郡) 오씨(吳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눈뜨고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覷不見). 묻되 법이(法爾) 불이(不爾; 이러하지 않음)이거늘 어떻게 지남(指南)합니까. 사왈 화타(話墮)했다. 가로되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스님이 하하대소(呵呵大笑)했다. 상당(上堂) 하나는 불수(不守)하고 둘은 불향(不向)하나니/ 상하사유(上下四維)에 등량(等量)할 게 없다/ 대양해리(大洋海裏)에 철선(鐵船)을 띄우고/ 수미정상()에 경랑(鯨浪; 巨浪)을 번복(翻覆)한다/ 임제가 설두(舌頭)를 옴츠려버리고(縮却)/ 덕산이 주장자를 놓아버린다(閣却)/ 천고만고에 홀로 외외(巍巍)하나니/ 인간에 머물러 주어 방양(榜樣)을 짓는다.
●等量; 형량(衡量). 비교. 등동(等同).
廬山棲賢智遷禪師
僧問 一問一答 盡是建化門庭 未審向上更有事也無 師曰 有 曰 如何是向上事 師曰 雲從龍 風從虎 曰 恁麽則龍得水時添意氣 虎逢山則長威獰 師曰 興雲致雨又作麽生 僧便喝 師曰 莫更有在 僧擬議 師咄曰 念話杜家 問 如何是本來心 師曰 拆東籬補西壁 曰 恁麽則今日齋宴 師曰 退後著 上堂 聞佛法二字 早是污我耳目 諸人未跨法堂門 脚跟下好與三十棒 雖然如是 山僧今日 也是爲衆竭力 珍重 上堂 是甚麽物 得恁頑頑嚚嚚 𥈅𥈅睍睍 拊掌呵呵大笑曰 今朝巴鼻 直是黃面瞿曇通身是口 也分疎不下 久立
●杜家; 對不涉典章不傍稽古 動輒發表高論之人 稱爲杜撰家杜家
●拆東籬補西壁; 拆東邊完整的籬笆 補西邊破損的牆壁 比喩事情或局面難以應對 始終未免缺點弱點
●頑頑嚚嚚; 愚妄奸詐貌
●𥈅𥈅睍睍; 同靦靦睍睍 昏亂糊塗 又作勔臔
여산(廬山) 서현(棲賢) 지천선사(智遷禪師)
승문 일문일답은 모두 이 건화문정(建化門庭)입니다. 미심하오니 향상(向上)에 다시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사왈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용이 물을 얻을 때 의기를 더하고 범이 산을 만나면 곧 위녕(威獰)이 자랍니다. 사왈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시행(施行; 致)하면 또 어떠한가. 중이 바로 할했다. 사왈 다시 있는 게 아닐까(莫更有在). 중이 의의(擬議)했다. 스님이 돌(咄)하고 가로되 염화(念話)하는 두가(杜家)로구나. 묻되 무엇이 이 본래의 마음입니까. 사왈 동리(東籬)를 부수어(拆) 서벽(西壁)을 보수(補修)한다(拆東籬補西壁).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금일의 재연(齋宴)입니다. 사왈 뒤로 물러나라(退後著). 상당(上堂) 불법이란 두 글자를 들으면 벌써 이는 나의 이목을 더럽혔나니 제인이 법당문을 넘지 아니한 전에 발꿈치 아래 좋이 30방 주어야 한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산승이 금일 또한 이, 대중을 위해 갈력(竭力)했다. 진중(珍重)하라. 상당(上堂) 이 무슨 물건이기에 이렇게(恁) 완완효효(頑頑嚚嚚)하고 전전현현(𥈅𥈅睍睍)함을 얻는가. 부장(拊掌)하며 하하대소하고 가로되 금조(今朝)의 파비(巴鼻)는 바로 이 황면구담(黃面瞿曇)이 통신(通身; 온몸)이 이 입일지라도 또한 분소하지 못할 것이다(分疎不下). 구립(久立)했다.
●杜家; 전장(典章)에 건너지 않고 계고(稽古)를 곁하지 않고 움직였다 하면 곧 고론(高論)을 발표하는 사람을 일컬어 두찬가(杜撰家)ㆍ두가(杜家)라 함.
●拆東籬補西壁; 동변의 완정(完整)한 이파(籬笆; 울타리)를 부수어 서변의 파손된 장벽을 보수함이니 사정이나 혹 국면(局面)에 응대하기 어렵고 시종 결점과 약점을 면하지 못함에 비유함.
●頑頑嚚嚚; 우망(愚妄)하고 간사한 모양.
●𥈅𥈅睍睍; 전전현현(靦靦睍睍)과 같음. 혼란하고 호도(糊塗)함. 또 면현(勔臔)으로 지음.
越州淨衆梵言首座
示衆 南陽國師道 說法有所得 斯則野干鳴 說法無所得 是名師子吼 師曰 國師恁麽道 大似掩耳偸鈴 何故 說有說無 盡是野干鳴 諸人要識師子吼麽 咄
월주(越州) 정중(淨衆) 범언수좌(梵言首座)
시중(示衆) 남양국사(南陽國師)가 말하되 설법하여 소득이 있으면 이는 곧 야간명(野干鳴)이며 설법하여 소득이 없어야 이 이름이 사자후다. 사왈 국사의 이러한 말씀은 엄이투령(掩耳偸鈴)과 매우 흡사하다. 무슨 연고냐, 설(說)이 있거나 설이 없거나 모두 이 야간명이다. 제인이 사자후를 알고자 하느냐. 돌(咄).
舒州山谷三祖冲會圓智禪師
臨安府人也 初開堂日 僧問 如何是第一義諦 師曰 百雜碎 曰 恁麽則褒禪一會 不異靈山 師曰 將糞箕掃帚來 問 師登寶座 壁立千仞 正令當行 十方坐斷 未審將何爲人 師曰 千鈞之弩 曰 大衆承恩 師曰 量才補職 問 理雖頓悟 事假漸除 除卽不問 如何是頓悟底道理 師曰 言中有響 曰 便恁麽又且如何 師曰 金毛師子 問 生也猶如著衫 死也還同脫袴 未審意旨如何 師曰 譬如閑 曰 爲甚麽如此 師曰 因行不妨掉臂 問 如何是天堂 師曰 太遠在 曰 如何是地獄 師曰 放你不得 曰 天堂地獄 相去多少 師曰 七零八落 問 白雲綻處 樓閣門開 善財爲甚麽從外而入 師曰 開眼卽瞎 曰 未審落在甚麽處 師曰 塡溝塞壑 問 如何是不動尊 師曰 寸步千里
●譬如閑; 沒關係 不打緊 又作匹似閑
서주(舒州) 산곡(山谷) 삼조(三祖) 충회(冲會) 원지선사(圓智禪師)
임안부(臨安府) 사람이다. 처음 개당일(開堂日) 승문 무엇이 이 제일의제(第一義諦)입니까. 사왈 백잡쇄(百雜碎)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포선(褒禪; 院名)의 일회(一會)가 영산(靈山)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왈 분기(糞箕)와 소추(掃帚)를 가지고 오너라. 묻되 스님이 보좌(寶座)에 오르니 벽립천인(壁立千仞)이며 정령(正令)을 마땅히 행하매 시방을 좌단(坐斷)합니다. 미심하오니 무엇을 가지고 위인(爲人)합니까. 사왈 천균지노(千鈞之弩)다. 가로되 대중이 승은(承恩)했습니다. 사왈 재능을 헤아려 보직한다(量才補職). 묻되 이치는 비록 돈오(頓悟)나 일은 점제(漸除)를 빌립니다. 제(除)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돈오(頓悟)의 도리입니까. 사왈 언중(言中)에 울림이 있다. 가로되 바로 이러하면 우차(又且; 또) 어떻습니까. 사왈 금모사자(金毛師子)다. 묻되 생(生)은 마치 적삼을 입음과 같고 사(死)는 도리어 바지를 벗음과 같다 했거니와 미심하오니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비여한(譬如閑)이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다님으로 인해 팔을 흔듦에 방애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천당입니까. 사왈 너무 멀다(太遠在). 가로되 무엇이 이 지옥입니까. 사왈 너를 놓아줌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천당과 지옥이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 사왈 칠령팔락(七零八落)이다. 묻되 백운이 터진 곳에 누각문이 열렸거늘 선재(善財)가 무엇 때문에 밖으로부터 들어왔습니까. 사왈 눈을 뜨면 곧 눈먼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느 곳에 떨어져 있습니까. 사왈 도랑을 메우고 골을 메웠다(塡溝塞壑). 묻되 무엇이 이 부동존(不動尊)입니까. 사왈 촌보(寸步)가 천 리다.
●譬如閑; 관계가 없음. 긴박하지 않음. 또 필사한(匹似閑)으로 지음.
泉州資壽院捷禪師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鐵牛生石卵 曰 如何是接人句 師曰 三門前合掌 曰 如何是大用句 師曰 腦門著地 曰 如何是無事句 師曰 橫眠大道 曰 如何是奇特句 師曰 的
천주(泉州) 자수원(資壽院) 첩선사(捷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철우(鐵牛)가 석란(石卵)을 낳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접인구(接人句)입니까. 사왈 삼문(三門) 앞에서 합장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대용구(大用句)입니까. 사왈 뇌문(腦門; 前額)이 땅에 붙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무사구(無事句)입니까. 사왈 큰길에 가로 누워 잔다. 가로되 무엇이 이 기특구(奇特句)입니까. 사왈 적(的; 분명)하다.
洪州觀音啓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松長栢短 曰 意旨如何 師曰 葉落歸根
홍주(洪州) 관음계(觀音啓) 선사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소나무는 길고 잣나무는 짧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
越州天章元善禪師
僧問 大無外 小無內 旣無內外 畢竟是甚麽物 師曰 開口見膽 曰 學人未曉 師曰 苦中苦 曰 爲衆竭力 禍出私門 師打曰 敎休不肯休 須待雨淋頭 問 如何是最初句 師曰 末後問將來 曰 爲甚如此 師曰 先行不到 曰 入水見長人也 師曰 秦皇擊缶 上堂 君問西來意 馬師踏水潦 若認一毛頭 何曾知起倒 劫火纔洞然 愚夫覓乾草 寧知明眼人 爲君長懊惱
월주(越州) 천장(天章) 원선선사(元善禪師)
승문 크기로는 밖이 없고 작기로는 안이 없다 하니 이미 안팎이 없다면 필경 이 무슨 물건입니까. 사왈 입을 열어 쓸개를 보이는구나(開口見膽).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고(苦) 중의 고다. 가로되 대중을 위해 갈력(竭力)했으나 화(禍)가 사문(私門)에서 나옵니다. 스님이 때리고 가로되 쉬게 했으나 쉼을 긍정하지 않더니 모름지기 머리에 비가 쏟아짐을 기다리는구나. 묻되 무엇이 이 최초구(最初句)입니까. 사왈 말후(末後)를 물어 가지고 오너라. 가로되 무엇 때문에(爲甚) 이와 같습니까. 사왈 먼저 가면 이르지 못한다. 가로되 입수(入水)해야 장인(長人; 나은 사람)을 봅니다. 사왈 진황(秦皇)이 장군(缶)을 쳤다. 상당(上堂) 그대가 서래의를 묻느냐/ 마사(馬師; 마조)가 수료(水潦; 수료화상)를 밟았다/ 만약 일모두(一毛頭)라도 인정한다면/ 어찌 일찍이 기도(起倒)할 줄 알았겠는가/ 겁화(劫火)가 겨우 통연(洞然; 환희 타다)하자/ 우부(愚夫)가 건초(乾草)를 찾는다/ 명안인(明眼人)이/ 그대를 위해 늘 오뇌(懊惱)하는 줄 어찌(寧) 알겠는가.
眞州長蘆體明圓鑑禪師
上堂 顧視左邊曰 師子之狀 豈免嚬呻 顧右邊曰 象王之儀 寧忘回顧 取此逃彼 上士奚堪 識變知機 野狐窠窟 到這裏須知有凡聖不歷處 古今不到處 且道是甚麽人行履 良久曰 丈夫自有衝天志 莫向如來行處來
진주(眞州) 장로(長蘆) 체명(體明) 원감선사(圓鑑禪師)
상당(上堂) 좌변(左邊)을 돌아보고(顧視) 가로되 사자(師子)의 형상(形狀; 狀)이 어찌 빈신(嚬呻)을 면하겠는가. 우변(右邊)을 돌아보고(顧) 가로되 상왕(象王)의 형의(形儀; 儀)가 어찌(寧) 회고(回顧)를 잊겠는가.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도피(逃避; 逃)g 함을 상사(上士)가 어찌 감내하겠는가(奚堪). 변함을 알아서 지기(知機)함은 야호(野狐)의 과굴(窠窟)이다. 이 속에 이르러 범성(凡聖)이 겪지 못하는 곳과 고금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 있는 줄 꼭 알아야 한다. 차도(且道)하라, 이 어떤 사람의 행리(行履)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장부(丈夫)는 스스로 충천(衝天)의 의지(意志)가 있어 여래가 행하는 곳을 향해 오지 않는다.
汀州開元智孜禪師
上堂 衲僧家向針眼裡藏身稍寬 大海中走馬甚窄 將軍不上便橋 勇士徒勞挂甲 晝行三千 夜行八百卽不問 不動步一句作麽生道 若也道得 觀音勢至文殊普賢祇在目前 若道不得 直須撩起布裙 緊峭草鞋 參 上堂 寒空落落 大地漫漫 雲生洞口 水出高原 若也把定 則十方世界恍然 若也放行 則東西南北坦然 茫茫宇宙人無數 一箇箇鼻孔遼天 且問諸人把定卽是 放行卽是 還有人斷得麽 若無人斷得 三門外有兩箇大漢 一箇張眉握劒 一箇努目揮拳 參
●落落; 一稀疏貌 二豁達 大方 孤獨 三粗劣貌 此指二
정주(汀州) 개원(開元) 지자선사(智孜禪師)
상당(上堂) 납승가(衲僧家)가 침안(針眼; 바늘 구멍) 속을 향해 몸을 감추면 조금 넓고(稍寬) 대해 속에서 말을 달리면 심히 좁다. 장군은 편교(便橋)에 오르지 않거늘 용사(勇士)가 도로(徒勞) 갑옷(甲)을 걸친다. 낮에 3천(3천 리)을 가고 밤에 8백을 감은 곧 묻지 않거니와 걸음을 움직이지 않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만약에 말함을 얻는다면 관음ㆍ세지ㆍ문수ㆍ보현이 다만 목전에 있으려니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바로 꼭 포군(布裙)을 잡아 올려(撩) 일으키고 짚신을 단단히 묶어 죄어야(緊峭) 하리라. 참(參)하라. 상당(上堂) 한공(寒空)이 낙락(落落)하고 대지(大地)가 만만(漫漫)하고 구름이 동구(洞口)에서 나오고(生) 물이 고원(高原)에서 나온다(出). 만약에 파정(把定)한다면 곧 시방세계가 황연(恍然)하고 만약에 방행(放行)한다면 동서남북이 탄연(坦然)하다. 망망(茫茫)한 우주에 사람이 무수하나니 일개개(一箇箇; 한 개마다)의 비공이 요천한다(鼻孔遼天). 다만(且) 제인에게 묻나니 파정(把定)이 곧 옳으냐, 방행(放行)이 곧 옳으냐. 도리어 단득(斷得)할 사람이 있느냐. 만약 단득할 사람이 없다면 삼문 밖에 두 개의 대한(大漢)이 있어 1개는 눈썹을 치켜세우고(張眉) 검을 움켜 쥐었고 1개는 눈을 부라리며(努目) 주먹을 휘두른다. 참(參)하라.
●落落; 1. 희소(稀疏)한 모양. 2. 활달. 대방(大方). 고독. 3. 조열(粗劣)한 모양.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平江府澄照慧慈禪師
僧問 了然無所得 爲甚麽天高地闊 師曰 窄 上堂 若論此事 眨上眉毛 早是蹉過 那堪進步向前 更要山僧說破 而今說破了也 還會麽 昨日雨 今日晴
평강부(平江府) 징조(澄照) 혜자선사(慧慈禪師)
승문 요연(了然)히 소득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하늘은 높고 땅은 넓습니까. 사왈 좁다(窄). 상당(上堂)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눈썹을 깜작하매(眨上; 上은 조사) 벌써 이는 차과(蹉過)했거늘 어찌(那) 앞을 향해 진보(進步)함을 감내하겠는가. 다시 산승의 설파(說破)를 요한다면 이금(而今)에 설파해 마쳤다. 도리어 아느냐, 어제는 비 왔고 오늘은 개였다.
臨安府法雨慧源禪師
僧曰 如何是最初一句 師曰 梁王不識 曰 如何是末後一句 師曰 達磨渡江
임안부(臨安府) 법우(法雨) 혜원선사(慧源禪師)
승왈 무엇이 이 최초의 1구입니까. 사왈 양왕(梁王)이 알지 못했다. 가로되 무엇이 말후의 1구입니까. 사왈 달마가 도강(渡江)했다.
秀州崇德智澄禪師
上堂 覿面相呈 更無餘事 若也如此 豈不俊哉 山僧蓋不得已 曲爲諸人 若向衲僧面前 一點也著不得 諸禪德 且道衲僧面前說箇甚麽卽得 良久曰 深秋簾幕千家雨 落日樓臺一笛風
수주(秀州) 숭덕(崇德) 지징선사(智澄禪師)
상당(上堂) 적면(覿面)하여 상정(相呈)하고 다시 여사(餘事)가 없다. 만약에 이와 같다면 어찌 준재(俊哉)가 아니겠는가. 산승이 대개 부득이하여 위곡(委曲; 曲)히 제인을 위하거니와 만약 납승의 면전을 향한다면 일점도 또한 붙임을 얻지 못한다. 제선덕(諸禪德)이여 차도(且道)하라, 납승의 면전에 저(箇) 무엇을 설해야 곧 옳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심추(深秋)의 염막(簾幕)의 천가(千家)에 비가 내리고 낙일(落日)의 누대에 일적(一笛)의 바람이다.
泉州棲隱有評禪師
僧問 如何是平常道 師曰 和尙合掌 道士擎拳 問 十二時中如何趣向 師曰 著衣喫飯 曰 別還有事也無 師曰 有 曰 如何卽是 師曰 齋餘更請一甌茶
천주(泉州) 서은(棲隱) 유평선사(有評禪師)
승문 무엇이 이 평상도(平常道)입니까. 사왈 화상은 합장하고 도사는 경권(擎拳)한다. 묻되 12시 중에 어떻게 취향(趣向)해야 합니까. 사왈 착의끽반(著衣喫飯)하라. 가로되 달리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재여(齋餘)에 다시 한 사발의 차를 청하라.
平江府定慧雲禪師
僧問 如何是爲人一句 師曰 見之不取 曰 學人未曉 師曰 思之千里
평강부(平江府) 정혜운(定慧雲) 선사
승문 무엇이 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이를 보고도 취하지 않는구나.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이를 사유함이 천 리다.
建寧府乾符大同院旺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入市烏龜 曰 意旨如何 師曰 得縮頭時且縮頭
건녕부(建寧府) 건부(乾符) 대동원(大同院) 왕선사(旺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입시(入市)한 오귀(烏龜)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머리를 옴츠림을 얻을 때 다만 머리를 옴츠린다.
無爲軍鐵佛因禪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一尋寒木自爲隣 三事秋雲更誰識 曰 和尙家風蒙指示 爲人消息又如何 師曰 新月有圓夜 人心無滿時
무위군(無爲軍) 철불인(鐵佛因) 선사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일심(一尋; 尋은 8척)의 한목(寒木; 저본에 寒本으로 지었음)은 스스로 이웃으로 삼거니와 삼사(三事)의 추운(秋雲)을 다시 누가 아는가. 가로되 화상의 가풍은 지시를 입었거니와 위인(爲人)하는 소식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신월(新月)은 둥근 밤이 있거니와 인심은 만족할 때가 없다.
安吉州報本法存禪師
錢塘陸氏子 僧問 無味之談 塞斷人口 作麽生是塞斷人口底句 師便打 僧曰 恁麽則一句流通 天人聳耳 師曰 祇恐不是玉 是玉也大奇 曰 專爲流通 師曰 一任亂道 在天衣受請 上堂曰 吳江聖壽見召住持 進退不遑 且隨緣分 此皆堂頭和尙 提耳訓育 終始獎諭 若據今日 正令當行 便好一棒打殺 那堪更容立在座前 雖然如是 養子方見父慈
●提耳; 謂提耳垂而訓誨 懇切指導之義
안길주(安吉州) 보본(報本) 법존선사(法存禪師)
전당(錢塘) 육씨(陸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미(無味)한 얘기가 사람의 입을 색단(塞斷)한다. 무엇이 이, 사람의 입을 색단하는 구(句)입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1구(句)를 유통(流通)하매 천인(天人)이 귀를 쫑긋 세울 것입니다(聳耳). 사왈 다만 이 옥(玉)이 아닐까 염려하나니 이 옥은 또한 크게 기이하다. 가로되 오로지(專) 유통하겠습니다. 사왈 어지럽게 말하는 대로 일임한다. 천의(天衣)에 있으면서 수청(受請)했다. 상당(上堂)해 가로되 오강(吳江)의 성수(聖壽)에서 주지로 부름을 보고서 진퇴에 여가가 없으나 다만(且) 연분(緣分)을 따름은 이는 모두 당두화상(堂頭和尙)이 제이(提耳)하여 훈육(訓育)하면서 종시(終始) 장유(獎諭; 奬勵하며 訓諭함)하여서이다. 만약 금일에 의거하여 정령(正令)을 마땅히 행한다면 바로 좋게 1방(棒)으로 타살(打殺)해야 하거늘 어찌(那) 감(堪; 可)히 다시 좌전(座前)에 서 있음을 용납하겠는가.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자식을 양육해야 바야흐로 아버지의 사랑을 본다.
●提耳; 이르자면 귓불(耳垂)을 잡아 훈회(訓誨)함이니 간절히 지도함의 뜻.
和州開聖院棲禪師
開堂垂語曰 選佛場開人天普會 莫有久歷覺場 罷參禪客 出來相見 時有僧出 師曰 作家作家 僧曰 莫著忙 師曰 元來不是作家 僧提起坐具曰 看看 摩竭陀國 親行此令 師曰 祇今作麽生 僧禮拜 師曰 龍頭蛇尾 問 東西不辯 南北不分 學人上來 乞師一接 師曰 不接 曰 爲甚麽不接 師曰 爲你東西不辯 南北不分 曰 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 師曰 蘇嚧蘇嚧 問 如何是道 師曰 放汝三十棒 曰 爲甚麽如此 師曰 殺人可恕 無禮難容 上堂 拈拄杖曰 大衆 急著眼看 須彌山 畫一畫百雜碎 南贍部洲打一棒 東傾西側 不免且收在開聖手中 敎伊出氣不得 卓一下
●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 意謂强手之外 還有更强者
화주(和州) 개성원(開聖院) 서선사(棲禪師)
개당(開堂)하여 수어(垂語)해 가로되 선불장(選佛場)을 열어 인천(人天)이 널리 모였다. 각장(覺場)을 구력(久歷)하고 파참(罷參)한 선객이 있지 않느냐. 나와서 상견하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왔다. 사왈 작가로다, 작가로다. 승왈 바쁘게 굴지 마십시오(莫著忙). 사왈 원래 이 작가가 아니었구나. 중이 좌구를 제기(提起)하고 가로되 보십시오, 보십시오. 마갈타국(摩竭陀國)에서 이 영(令)을 친히 행했습니다. 사왈 지금(祇今)은 어떠한가. 중이 예배했다. 사왈 용두사미로구나. 묻되 동서를 분변(分辨; 辯)하지 못하고 남북을 분별(分)하지 못하는 학인이 올라왔으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구걸합니다. 사왈 접인(接引; 接)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접인하지 않습니까. 사왈 네가 동서를 분변하지 못하고 남북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로되 장차 이르기를 오랑캐 수염(胡鬚)이 붉다 하렸더니 다시 붉은 수염의 오랑캐가 있습니다(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 사왈 소로소로(蘇嚧蘇嚧).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너에게 30방 놓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살인은 가히 용서하지만 무례는 용납하기 어렵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대중이여, 급히 착안해 보아라. 수미산이 그어서 한 번 그으매 백잡쇄(百雜碎)며 남섬부주를 1방 때리매 동으로 기울고 서로 기울거니와(東傾西側) 다만(且) 개성(開聖)의 손안에 거두어져 있음을 면하지 못하나니 그(伊)로 하여금 출기(出氣)함을 얻지 못하게 한다. 한 번 쳤다(卓).
●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 뜻으로 이르자면 강수(强手)의 밖에 도리어 다시 강자가 있음.
福州衡山惟禮禪師
上堂 若論此事 直下難明 三賢罔測 十聖不知 到這裏須高提祖令 橫按鏌鎁 佛尙不存 纖塵何立 直敎須彌粉碎 大海焦枯 放一線道與諸人商量 且道商量箇甚麽 良久曰 鹽貴米賤
복주(福州) 형산(衡山) 유례선사(惟禮禪師)
상당(上堂)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직하(直下)에 밝히기 어렵나니 삼현(三賢)이 헤아리지 못하고(罔測) 십성(十聖)이 알지 못한다. 이 속에 이르러선 모름지기 조령(祖令)을 높이 들고(提) 막야(鏌鎁)를 가로 어루만지나니 부처도 오히려 두
지 않거늘 섬진(纖塵)을 어찌 세우겠는가. 바로(直) 수미(須彌)가 분쇄되고 대해가 초고(焦枯)케 해야 한다. 일선도(一線道)를 놓아 제인과 상량(商量)하겠다. 차도(且道)하라, 저(箇) 무엇을 상량하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소금은 귀하고 쌀은 흔하다(鹽貴米賤).
臨安府北山顯明善孜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九年空面壁 懡㦬又西歸 曰 爲甚麽如此 師曰 美食不中飽人餐 問 如何是無情說法 師曰 燈籠挂露柱 曰 甚麽人得聞 師曰 牆壁有耳
임안부(臨安府) 북산(北山) 현명(顯明) 선자선사(善孜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9년 동안 공연히 면벽했다가 부끄럽게도(懡㦬) 또 서방으로 돌아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미식(美食; 맛있는 음식)도 배부른 사람이 먹기(餐)엔 맞지 않다. 묻되 무엇이 이 무정설법(無情說法)입니까. 사왈 등롱(燈籠)이 노주(露柱)에 걸렸다. 가로되 어떤(甚麽) 사람이 득문(得聞)합니까. 사왈 장벽(牆壁)에 귀가 있다.
明州啓霞思安禪師
僧問 諸佛出世 葢爲羣生 和尙出世 當爲何人 師曰 不爲闍黎 曰 恁麽則潭深波浪靜 學廣語聲低 師曰 棒上不成龍
명주(明州) 계하(啓霞) 사안선사(思安禪師)
승문 제불이 출세함은 대개 군생을 위함입니다만 화상은 출세하여 마땅히 어떤 사람을 위합니까. 사왈 사리(闍黎)를 위하지 않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못이 깊어 파랑이 고요하고 학문이 넓어 어성(語聲)이 낮습니다. 사왈 방상(棒上)에선 용을 이루지 못한다.
越州雲門靈侃禪師
僧問 十二時中 如何用心 師曰 佛殿裏燒香 曰 學人不會 師曰 三門頭合掌 上堂 塵勞未破 觸境千差 心鑑圓明 絲毫不立 靈光皎皎 獨露現前 今古兩忘 聖凡路絕 到這裏始能卷舒自在 應用無虧 出沒往還 人間天上 大衆 雖然如是 忽被人把住 問你道拄杖子向甚麽處著 又如何祇對 還有人道得麽 出來道看 衆無對 乃拍禪牀 下座
월주(越州) 운문(雲門) 영간선사(靈侃禪師)
승문 12시 중에 어떻게 용심해야 합니까. 사왈 불전 속에서 소향(燒香)한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삼문두(三門頭)에서 합장한다. 상당(上堂) 진로(塵勞)를 깨뜨리지 못하면 촉경(觸境; 접촉하는 경계)이 천차(千差)지만 심감(心鑑)이 원명(圓明)하면 사호(絲毫)도 서지 않는다. 영광(靈光)이 교교(皎皎)히 독로(獨露)하여 현전(現前)하나니 금고(今古)를 양망(兩忘)하면 성범(聖凡)의 길이 끊긴다. 이 속에 이르러야 비로소 능히 권서(卷舒)에 자재하고 응용(應用)하매 무휴(無虧)하고 인간과 천상에 출몰하고 왕환(往還)한다. 대중이여,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홀연히 사람이 파주(把住)하면서 너희에게 물어 말하되 주장자를 어느 곳을 향해 두겠는가(著) 함을 입으면 또 어떻게 지대(祇對)하겠는가. 도리어 말함을 얻을 사람이 있느냐. 나와서 말해 보아라. 대중이 대답이 없자 이에 선상을 두드리고 하좌했다.
天台太平元坦禪師
上堂 是法無宗 隨緣建立 聲色動靜 不昧見聞 擧用千差 如鐘待扣 於此薦得 且隨時著衣喫飯 若是德山臨濟 更須打草鞋行脚 參
천태(天台) 태평(太平) 원탄선사(元坦禪師)
상당(上堂) 이 법은 종(宗)이 없고 수연(隨緣)하여 건립하나니 성색과 동정(動靜)에 견문(見聞)이 불매(不昧)하며 거용(擧用)이 천차(千差)라도 종이 두드림(扣)을 기다림과 같다. 여기에서 천득(薦得; 領悟)하면 다만(且) 수시(隨時)하여 착의끽반(著衣喫飯)하리니 만약 이 덕산과 임제일지라도 다시 꼭 짚신을 삼아(打草鞋) 행각해야 하리라. 참(參)하라.
臨安府佛日文祖禪師
僧問 峭峻之機 請師垂示 師曰 十字街頭八字立 曰 祇如大洋海底行船 須彌山上走馬 又作麽生 師曰 烏龜向火 曰 恁麽則能騎虎頭 善把虎尾 師以拄杖點一下曰 禮拜著
임안부(臨安府) 불일(佛日) 문조선사(文祖禪師)
승문 초준지기(峭峻之機)가 스님의 수시(垂示)를 청합니다. 사왈 십자가두(十字街頭)에 팔자(八字)로 섰다. 가로되 지여(祇如) 대양해저(大洋海底)에서 배를 운행하고 수미산상(須彌山上)에서 말을 달리면 또 어떻습니까. 사왈 오귀(烏龜)가 불을 향한다(向火).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능히 호두(虎頭)를 타고 잘 호미(虎尾)를 잡습니다. 스님이 주장자로써 한 번 점찍고 가로되 예배하거라(禮拜著).
沂州望仙山宗禪師
僧問 四時八節卽不問 平常一句事如何 師曰 禾山打鼓 曰 莫是學人著力處也無 師曰 歸宗拽石 僧無語 師曰 眞箇衲僧 上堂 南台烏藥 北海天麻 新羅附子 辰錦朱砂 良久曰 大衆會麽 久立 上堂 你等諸人 還肯放下麽 若不放下 且擔取去 便下座
●四時八節; 四時 指春夏秋冬四季 八節:指立春 春分 立夏 夏至 立秋 秋分 立冬 冬至
●烏藥; 樟科植物烏藥的乾燥塊根 藥性辛溫
●天麻; 又名赤箭 獨搖芝 合離草 鬼督郵 定風草 白龍皮等 是蘭科天麻屬多年生草本植物 根狀莖肥厚 [百度百科]
기주(沂州) 망선산(望仙山) 종선사(宗禪師)
승문 사시팔절(四時八節)은 곧 묻지 않습니다. 평상(平常)의 일구사(一句事)가 무엇입니까. 사왈 화산(禾山)이 타고(打鼓)했다. 가로되 이 학인이 착력(著力)할 곳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귀종(歸宗)이 예석(拽石)했다.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진개(眞箇; 진짜) 납승이로구나. 상당(上堂) 남태(南台)의 오약(烏藥)이며 북해(北海)의 천마(天麻)며 신라(新羅)의 부자(附子)며 진금(辰錦)의 주사(朱砂)다. 양구하고 가로되 대중은 아느냐. 구립(久立)했다. 상당(上堂) 너희 등 제인이 도리어 방하(放下)를 수긍하느냐. 만약 방하하지 못한다면 다만(且) 짊어지고(擔取) 가거라. 바로 하좌했다.
●四時八節; 사시(四時)는 춘하추동 사계(四季)를 가리킴. 팔절(八節)은 입춘ㆍ춘분ㆍ입하ㆍ하지ㆍ입추ㆍ추분ㆍ입동ㆍ동지를 가리킴.
●烏藥; 장과식물(樟科植物; 樟은 녹나무) 오약(烏藥)의 건조한 괴근(塊根)이니 약성이 신온(辛溫)함.
●天麻; 또 이름이 적전ㆍ독요지ㆍ합리초ㆍ귀독우ㆍ정풍초ㆍ백룡피 등이니 이는 난과(蘭科) 천마속(天麻屬)의 다년생 초본식물이며 뿌리의 형상과 줄기가 비후(肥厚)함 [백도백과].
瑞州五峰淨覺院用機禪師
僧問 如何是道 師曰 十字街頭踏不著 曰 便恁麽去時如何 師曰 且緩緩 上堂 淸平過水 投子賣油 一年三百六十日 不須頻向數中求 以拂擊禪牀 下座
서주(瑞州) 오봉(五峰) 정각원(淨覺院) 용기선사(用機禪師)
승문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십자가두(十字街頭)에서 밟지 못한다(踏不著).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다만 완완하라(且緩緩). 상당(上堂) 청평(淸平)은 과수(過水)했고 투자(投子; 大同)는 매유(賣油)했다. 1년 3백6십 일에 자주 수중(數中)을 향해 구함을 쓰지 말아라. 불자로써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無爲軍佛足處祥禪師
僧問 如何是般若體 師曰 琉璃殿裏隱寒燈 曰 何如是般若用 師曰 活卓卓地 問 一色無變異 喚作露地白牛 還端的也無 師曰 頭角生也 曰 頭角未生時如何 師曰 不要犯人苗稼
●活卓卓; 猶活生生
무위군(無爲軍) 불족(佛足) 처상선사(處祥禪師)
승문 무엇이 이 반야체(般若體)입니까. 사왈 유리전(琉璃殿) 속에 한등(寒燈)을 숨겼다. 가로되 무엇이 이 반야용(般若用)입니까. 사왈 활탁탁지(活卓卓地; 地는 조사)다. 묻되 일색(一色)은 변이(變異)가 없음을 노지백우(露地白牛)라고 불러짓는다면 도리어 단적(端的)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두각(頭角)이 생겨났다. 가로되 두각이 생기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사람의 묘가(苗稼; 곡식)를 범함을 요하지 않는다.
●活卓卓; 활생생(活生生)과 같음.
平江府明因慧贇禪師
上堂 橫按拄杖曰 若恁麽去 直得天無二日 國無二王 釋迦老子 飮氣呑聲 一大藏敎 如蟲蝕木 設使鑽仰不及 正是無孔鐵鎚 假饒信手拈來 也是殘羹餿飯 一時吐却 方有少分相應 更乃墮在空亡 依舊是鬼家活計 要會麽 雨後始知山色翠 事難方見丈夫心 卓拄杖 下座
평강부(平江府) 명인(明因) 혜각선사(慧贇禪師)
상당(上堂) 주장자를 가로 어루만지며 가로되 만약 이렇게 간다면 바로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나라에 두 왕이 없음을 얻으리니 석가노자(釋迦老子)가 음기탄성(飮氣呑聲)하고 일대장교(一大藏敎)가 여충식목(如蟲蝕木; 벌레가 나무를 좀먹음과 같음)이리라. 설사(設使) 찬앙(鑽仰)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바로(正)이 무공철추(無孔鐵鎚)며 가요(假饒) 신수념래(信手拈來)하더라도 또한 이 잔갱수반(殘羹餿飯)이다. 일시에 토해버려야 바야흐로 소분(少分) 상응함이 있나니 다시 이에 공망(空亡; 空無)에 떨어져 있다면 의구히 이 귀가(鬼家)의 활계(活計)다. 알고자 하느냐, 비 온 후라야 비로소(始) 산색의 푸름(翠)을 알고 일이 어려워야 바야흐로 장부의 마음을 안다.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興化軍西臺其辯禪師
上堂 擧臨濟無位眞人語 乃召大衆曰 臨濟老漢 尋常一條脊梁硬似鐵 及乎到這裏 大似日中迷路 眼見空花 直饒道無位眞人是乾屎橛 正是泥龜曳尾 其僧祇知季夏極熱 不知仲冬嚴寒 若據當時 合著得甚麽語 塞斷天下人舌頭 西臺祇恁麽休去 又乃眼不見爲淨 不免出一隻手狼籍去也 臨濟一擔 西臺一堆 一擔一堆 分付阿誰 從敎撒向諸方去 笑殺當年老古錐
흥화군(興化軍) 서대(西臺) 기변선사(其辯禪師)
상당(上堂) 임제의 무위진인어(無位眞人語)를 들고 이에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임제노한(臨濟老漢)이 심상(尋常)에 한 가닥의 척량(脊梁; 척량골)이 단단하기가 쇠와 같더니 이 속에 이름에 이르러선(及乎) 낮(日) 중에 미로(迷路)함과 매우 흡사하여 눈으로 공화(空花)를 보았다. 직요(直饒) 무위진인이라고 말해도 이는 건시궐(乾屎橛)이며 바로(正) 이 이구(泥龜)가 꼬리를 끌어당김이다. 그 중은 다만 계하(季夏; 6월)가 극열(極熱)한 줄만 알았고 중동(仲冬)의 엄한(嚴寒)을 알지 못했다. 만약 당시에 의거한다면 합당히 어떤 말을 붙여야(著得) 천하인의 설두(舌頭)를 색단(塞斷)하겠는가. 서대(西臺)는 다만 이렇게 쉬어 가거니와 또 이에 눈으로 보지 않음을 깨끗함으로 삼는지라 일척수(一隻手)를 내어 낭자(狼籍)하여 감을 면하지 못한다. 임제는 일담(一擔; 한 짐)이며 서대(西臺)는 일퇴(一堆; 한 무더기)니 누구(阿誰)에게 분부하는가. 제방(諸方)을 향해 뿌리는 대로 좇더라도 당년(當年)의 노고추(老古錐)를 너무 웃겼다.
禮部楊傑居士
字次公 號無爲 歷參諸名宿 晩從天衣遊 衣每引老龐機語 令姸究深造 後奉祠泰山 一日鷄一鳴 睹日如盤湧 忽大悟 乃別有男不婚有女不嫁之偈曰 男大須婚 女長須嫁 討甚閑工夫 更說無生話 書以寄衣 衣稱善 後會芙蓉楷禪師 公曰 與師相別幾年 蓉曰 七年 公曰 學道來 參禪來 蓉曰 不打這鼓笛 公曰 恁麽則空遊山水 百無所能也 蓉曰 別來未久 善能高鑒 公大笑 公有辭世偈曰 無一可戀 無一可捨 太虛空中 之乎者也 將錯就錯 西方極樂
●之乎者也; 一指文章言句 二詩偈中揷入句子 無實義 此指二
예부(禮部) 양걸거사(楊傑居士)
자는 차공(次公)이며 호는 무위(無爲)다. 여러 명숙(名宿)을 역참(歷參)했고 만년에 천의(天衣)를 좇아 노닐었다. 천의가 매번 노방(老龐; 방거사)의 기어(機語)를 인용하며 연구하여 깊이 나아가게 했다. 후에 태산(泰山)에 봉사(奉祠; 祭祀)했는데 어느 날 닭이 한 번 울었고 해를 보매(睹) 소반의 솟음(湧)과 같았고 홀연히 대오했다. 이에 아들(男)이 있으나 결혼하지 않고 딸이 있으나 시집가지 않는다는 게에 별(別)하여 가로되 아들이 크면 꼭 결혼하고/ 딸이 장성하면 꼭 시집간다/ 무슨 한공부(閑工夫)를 찾아/ 다시 무생화(無生話)를 설하겠는가. 써서(書) 천의에게 기탁했더니 천의가 좋다고(善) 칭찬했다. 후에 부용해(芙蓉楷; 道楷)를 선사를 만나자 공왈(公曰) 스님과 상별(相別)한 지 몇 해입니까. 용왈(蓉曰) 7년입니다. 공왈 학도(學道)하러 왔습니까. 참선하러 왔습니까. 용왈 이(這) 고적(鼓笛)를 치지 않습니다. 공왈 이러하다면 곧 공연히 산수를 유람하는지라 온갖 것(百)에 능한 바가 없습니다. 용왈 헤어져 온 지 오래되지 않았거늘 잘 능히 고감(高鑒)하는군요. 공이 대소(大笑)했다. 공이 사세게(辭世偈; 세상을 고별하는 게)가 있어 가로되 하나도 가히 연모할 게 없고/ 하나도 가히 버릴 게 없다/ 태허공 가운데/ 지호자야(之乎者也)로다/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가나니/ 서방이 극락이다.
●之乎者也; 1. 문장언구(文章言句)를 가리킴. 2. 시게(詩偈) 가운데 삽입(揷入)하는 구자(句子; 子는 助詞)며 실의(實義)가 없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稱心倧禪師法嗣
彭州慧日堯禪師
僧問 古者道 我有一句 待無舌人解語 却向汝道 未審意旨如何 師曰 無影樹下好商量 僧禮拜 師曰 瓦解冰消
팽주(彭州) 혜일요(慧日堯) 선사
승문 고자(古者)가 말하되 나에게 1구가 있나니 혀가 없는 사람이 말할 줄 앎을 기다렸다가 도리어 너를 향해 말하겠다. 미심하오니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무영수(無影樹) 아래에서 상량함이 좋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와해빙소(瓦解冰消)로다.
報本蘭禪師法嗣
福州中際可遵禪師
上堂 咄咄咄 井底啾啾是何物 直饒三千大千 也祇是箇鬼窟 咄 上堂 昨夜四更起來 呵呵大笑不歇 幸然好一覺睡 霜鐘撞作兩橛 上堂 禾山普化忽顚狂 打鼓搖鈴戲一場 劫火洞然宜煑茗 嵐風大作好乘凉 四蛇同篋看他弄 二鼠侵藤不自量 滄海月明何處去 廣寒宮殿白銀牀 咄 上堂 八萬四千深法門 門門有路超乾坤 如何箇箇踏不著 祇爲蜈蚣太多脚 不唯多脚亦多口 釘觜鐵舌徒增醜 拈椎竪拂泥洗泥 揚眉瞬目籠中雞 要知佛祖不到處 門掩落花春鳥啼
●霜鐘; 指鐘或鐘聲
●嵐風; 毘嵐風 又作吠嵐婆風 毘藍婆風 毘藍風 隨藍風 旋藍風 此云迅猛風 恆起風 旋風 指宇宙形成之始(劫初)與成立之終(劫末)所刮起迅速猛烈之大風 [雜阿含經十七 大寶積經三十七 慧苑音義上]
●四蛇; 以喩地水火風之四大也 [智度論十二 金光明最勝王經五]
●廣寒宮殿; 想像上月裏宮殿
복주(福州) 중제(中際) 가준선사(可遵禪師)
상당(上堂) 돌돌돌(咄咄咄; 쯧, 쯧, 쯧)/ 우물 밑에 추추(啾啾)하는 게 이 무슨 물건인가/ 직요(直饒) 삼천대천이라도/ 또한 다만 시개(是箇)의 귀굴(鬼窟)이다. 돌(咄). 상당(上堂) 어젯밤 4경(更)에 일어나서(起來)/ 하하대소하며 쉬지 못했다/ 행연(幸然)히 좋게 한 번 잠에서 깨매/ 상종(霜鐘)이 쳐서(撞) 양궐(兩橛)을 이루었다. 상당(上堂) 화산(禾山; 無隱)과 보화(普化)가 홀연히 전광(顚狂)하여/ 북을 치고 방울을 흔들며 한바탕 희롱했다/ 겁화가 통연(洞然)하니 의당 차(茗)를 끓이고/ 람풍(嵐風)이 대작(大作; 크게 일어남)하니 승량(乘凉)하기 좋다/ 4사(四蛇)가 같은 상자에서 그 희롱을 보느라고/ 2서가 침등(二鼠侵藤)함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한다/ 창해의 월명(月明)이 어느 곳으로 갔는가/ 광한궁전(廣寒宮殿)에 백은상(白銀牀)이다. 돌(咄). 상당(上堂) 팔만사전의 깊은 법문이여 문마다 길이 있어 건곤을 초월한다. 어찌하여 개개(箇箇)가 밟지 못하느냐(踏不著) 하면 다만 오공(蜈蚣; 지네)이 너무 발이 많기 때문이다. 발이 많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입도 많나니 정취철설(釘觜鐵舌)이 도연히 추(醜)함을 더한다. 염추수불(拈椎竪拂)은 진흙으로 진흙을 씻음이며 양미순목(揚眉瞬目)은 농(籠) 속의 닭이다. 불조가 이르지(到) 못하는 곳을 알고자 하느냐, 문이 낙화를 가리고(掩) 춘조(春鳥)가 지저귄다.
●霜鐘; 종 혹은 종소리를 가리킴.
●嵐風; 비람풍(毘嵐風; 梵 vairambhaka)이니 또 폐람바풍ㆍ비람바풍ㆍ비람풍(毘藍風)ㆍ수람풍(隨藍風)ㆍ선람풍(旋藍風)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신맹풍(迅猛風)ㆍ항기풍(恆起風)ㆍ선풍(旋風)임. 우주가 형성되는 처음(劫初)과 성립의 마지막(劫末)에 괄기(刮起)하는 바의 신속하고도 맹렬한 대풍을 가리킴 [잡아함경17. 대보적경37. 혜원음의상].
●四蛇; 지ㆍ수ㆍ화ㆍ풍의 4대에 비유함 [지도론12. 금광명최승왕경5].
●廣寒宮殿; 상상상(想像上)의 달 속의 궁전.
邢州開元法明上座
依報本未久 深得法忍 後歸里事落魄 多嗜酒呼盧 每大醉唱柳詞數闋 日以爲常 鄕民侮之 召齋則拒 召飮則從 如是者十餘年 咸指曰醉和尙 一日謂寺衆曰 吾明旦當行 汝等無他往 衆竊笑之 翌晨 攝衣就座 大呼曰 吾去矣 聽吾一偈 衆聞奔視 師乃曰 平生醉裏顚蹶 醉裏却有分別 今宵酒醒何處 楊柳岸曉風殘月 言訖寂然 撼之已委蛻矣
●呼盧; 古代一種賭博遊戲 共有五子 五子全黑的叫盧 得頭彩 擲子時 高聲喊叫 希望得全黑 所以叫呼盧 [百度百科]
●柳詞; 是柳永所作的詞 宋朝婉約派詞人柳永的詞在表現手法上以白描見長 長於鋪敘 描寫細致 在市民中有很大影響 [百度百科]
●數闋; 闋 量詞 歌曲或詞 一首爲一闋 [百度漢語]
형주(邢州) 개원(開元) 법명상좌(法明上座)
보본(報本; 有蘭)에게 의지한 지 오래지 않아 깊이 법인(法忍)을 얻었다. 후에 돌아가 사정(事情)으로 낙백(落魄; 失意. 곤궁)했고 다분히 술을 즐기며 호로(呼盧)했고 매번 대취하면 유사(柳詞) 수결(數闋; 몇 수)을 노래불렀고 날로 상사(常事)가 되었다. 향민(鄕民)이 이를 모멸(侮蔑; 侮)했다. 재(齋)로 부르면 곧 거절했고 음(飮; 음주)으로 부르면 곧 좇았다. 이와 같이 한 것이 10여 년이었고 모두(咸) 가리키며 가로되 취화상(醉和尙)이라 했다. 어느 날 사중(寺衆)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명단(明旦; 明朝)에 마땅히 가리니 너희 등은 딴 데로 가지 말아라. 대중이 몰래 비웃었다(竊笑之). 익신(翌晨; 익일 새벽)에 옷을 거두고 자리로 나아가 크게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가겠다. 나의 1게를 들어라. 대중이 듣고 달려가(奔) 보았다. 스님이 이에 가로되 평생 취한 속에 전궐(顚蹶; 굴러 넘어짐)했나니/ 취한 속에 도리어 분별이 있다/ 오늘 밤 술이 깨었으니 어느 곳인가/ 양류안(楊柳岸)에 효풍(曉風)의 잔월(殘月)이다. 말을 마치자 적연(寂然)했고 그를 흔들매 이미 위세(委蛻)했다.
●呼盧; 고대 일종의 도박유희(賭博遊戲). 모두 5자(子; 주사위)가 있는데 5자가 전흑(全黑)의 규로(叫盧; 盧를 부르짖음)면 두채(頭彩)를 얻음. 척자(擲子)할 때 고성으로 함규(喊叫; 喊聲을 지름)하면서 전흑(全黑)을 얻기를 희망하므로 소이로 호로(呼盧)라 이름 [백도백과].
●柳詞; 이는 유영(柳永)이 지은 바의 사(詞)임. 송조(宋朝) 완약파(婉約派) 사인(詞人) 유영(柳永)의 사(詞)는 표현 수법상에 있어서 백묘(白描; 문자가 간결하며 두드러진 과장을 하지 않음)로써 장점을 보임. 포서(鋪敘; 상세히 서술함)에 뛰어나고 묘사가 세치(細致; 자세하고 치밀함)함. 시민 중에서 매우 큰 영향이 있음 [백도백과].
●數闋; 결(闋)은 양사니 가곡 혹 사(詞)의 1수가 1결이 됨 [백도한어].
稱心明禪師法嗣
洪州上藍院光寂禪師
上堂 橫按拄杖 召大衆曰 還識上藍老漢麽 眼似木𣔻 口如匾擔 無問精粗 不知鹹淡 與麽住持 百千過犯 諸禪德 還有爲山僧懺悔底麽 良久曰 氣急殺人 卓拄杖 下座
●木𣔻; 又作木突 木拖鞋 [百度漢語]
홍주(洪州) 상람원(上藍院) 광적선사(光寂禪師)
상당(上堂) 주장자를 가로 어루만지면 대중을 불러 가로되 도리어 상람노한(上藍老漢)을 아느냐. 눈은 목돌(木𣔻)과 비슷하고 입은 편담(口如匾擔)과 같고 정조(精粗)를 물음이 없고 함담(鹹淡)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與麽) 주지(住持)하니 백천(百千)의 과범(過犯; 過錯)이다. 제선덕(諸禪德)이여, 도리어 산승을 위해 참회할 이가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기가 급해 살인하는구나(氣急殺人).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木𣔻; 또 목돌(木突)로 지음. 나무로 만든 슬리퍼 [백도한어].
廣因要禪師法嗣
福州妙峯如璨禪師
上堂 今朝是如來降生之節 天下緇流 莫不以香湯灌沐 共報洪恩 爲甚麽敎中却道 如來者無所從來 旣是無所從來 不知降生底是誰 試請道看 若道得 其恩自報 若道不得 明年四月八 還是驀頭澆
복주(福州) 묘봉(妙峯) 여찬선사(如璨禪師)
상당(上堂) 금조(今朝)는 이 여래의 강생지절(降生之節)이니 천하의 치류(緇流; 緇侶)가 향탕(香湯)으로써 관목(灌沐)하며 홍은(洪恩)을 함께 보답하지 않음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교중(敎中)에 도리어 말하되 여래란 것은 좇아오는 바가 없다고 했는가. 이미 이 좇아오는 바가 없거늘 알지 못하나니 강생하는 이가 이 누구인가. 시험 삼아 청하노니 말해보아라. 만약 말함을 얻는다면 그 은혜를 스스로로 갚으려니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명년 4월 8일에도 도리어 이 맥두(驀頭; 홀연히) 뿌릴 것이다.
雲居元禪師法嗣
臨安府百丈慶善院淨悟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問誰 曰 特問和尙 師曰 鷂子過新羅 上堂 說則搖唇 行則動脚 直饒不說不行時 錯錯 拍禪牀下座
임안부(臨安府) 백장(百丈) 경선원(慶善院) 정오선사(淨悟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누구에게 묻느냐. 가로되 특별히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사왈 요자(鷂子; 새매)가 신라를 지났다. 상당(上堂) 말하면 곧 입술을 움직이고(搖) 다니면 곧 다리를 움직인다(動). 직요(直饒) 말하지 않고 다니지 않을 때라도 틀렸다 틀렸다. 선상을 치고(拍) 하좌했다.
常州善權慧泰禪師
上堂 諸佛出世 廣演三乘 達磨西來 密傳大事 上根之者 言下頓超 中下之流 須當漸次 發明心地 或一言唱道 或三句敷揚 或善巧應機 遂成多義 撮其樞要 總是空花 一句窮源 沉埋祖道 敢問諸人 作麽生是依時及節底句 良久曰 微雲淡河漢 疎雨滴梧桐 參
상주(常州) 선권(善權) 혜태선사(慧泰禪師)
상당(上堂) 제불이 출세하여 3승(乘)을 광연(廣演)하고 달마가 서래하여 대사(大事)를 밀전(密傳)했다. 상근지자(上根之者)는 언하에 돈오(頓超)하려니와 중하지류(中下之流)는 마땅히 점차(漸次)로 심지(心地)를 발명함을 써야(須) 한다. 혹 1언(言)으로 창도(唱道)하고 혹 3구(句)로 부양(敷揚)하고 혹 선교(善巧)로 응기(應機)하여 드디어 다의(多義)를 이루거니와 그 추요(樞要)를 모으자면(撮) 모두(總) 이 공화(空花)며 1구로 궁원(窮源)하더라도 조도(祖道)를 침매(沉埋)한다. 감히 제인에게 묻나니 무엇이 이 시에 의하고 절에 미치는 구인가(依時及節底句). 양구하고 가로되 미운(微雲)은 하한(河漢; 銀河)에 엷고(淡) 소우(疎雨)는 오동(梧桐)에 방울져 떨어진다. 참(參)하라.
饒州崇福德基禪師
上堂 若於這裏會得 便能入一佛國 坐一道場 水鳥樹林 共談斯要 樓臺殿閣 同演眞乘 續千聖不盡之燈 照八面無私之燄 所以道 在天同天 在人同人 還有知音者麽 良久曰 水底金烏天上日 眼中瞳子面前人
요주(饒州) 숭복(崇福) 덕기선사(德基禪師)
상당(上堂) 만약 저리(這裏)에서 회득(會得)한다면 바로 능히 1불국(佛國)에 들어가 1도량(道場)에 앉으리니 수조(水鳥)와 수림(樹林)이 사요(斯要)를 공담(共談)하고 누대와 전각(殿閣)이 진승(眞乘)을 동연(同演)하면서 천성(千聖)이 다하지 않는 등(燈)을 잇고 팔면에 무사(無私)한 불꽃(燄)을 비추리라. 소이로 말하되 천(天)에 있으면 천과 같고 인(人)에 있으면 인과 같다. 도리어 지음자(知音者)가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수저(水底)의 금오(金烏)는 천상의 해며 안중(眼中)의 동자(瞳子)는 면전의 사람이다.
婺州寶林懷吉眞覺禪師
上堂 善慧遺風五百年 雲黃山色祇依然 而今祖令重行也 一句流通徧大千 大衆且道 是甚麽句 莫是函葢乾坤截斷衆流隨波逐浪底麽 吽 有甚交涉 自從有佛祖已來 未曾動著 今日不可漏泄眞機去也 顧視大衆曰 若到諸方 不得錯擧
무주(婺州) 보림(寶林) 회길(懷吉) 진각선사(眞覺禪師)
상당(上堂) 선혜(善慧; 傅翕)의 유풍(遺風)이 5백 년이며/ 운황산색(雲黃山色)이 다만 의연(依然)하다/ 이금(而今)에 조령(祖令)을 거듭 행하리니/ 1구로 유통하여 대천(大千)에 두루하다. 대중이여 그래 말하라, 이 무슨 구인가. 이 함개곤건ㆍ절단중류ㆍ수파축랑의 구가 아닐까. 후(吽).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불조가 있은 이래로부터 일찍이 동착(動著)하지 않았거늘 금일 진기(眞機)를 누설하여 감은 옳지 못하다. 대중을 돌아보고 가로되 만약 제방에 이르거든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洪州資福宗誘禪師
上堂 龍泉今日與諸人說些葛藤 良久曰 枝蔓上更生枝蔓
홍주(洪州) 자복(資福) 종유선사(宗誘禪師)
상당 용천이 금일 제인에게 조금(些)의 갈등을 설해 주겠다. 양구하고 가로되 지만(枝蔓) 위에 다시 지만을 내었다.
智海逸禪師法嗣
瑞州黃檗志因禪師
僧問 如何是得力句 師曰 脚 曰 學人不會 師曰 一步進一步 上堂 四十九年說 恩潤禽魚 十萬途程來 警悟人天 這二老漢 各人好與三十棒 何故 一箇說長說短 一箇胡言漢語 雖然如是 且放過一著
서주(瑞州) 황벽(黃檗) 지인선사(志因禪師)
승문 무엇이 이 득력구(得力句)입니까. 사왈 다리(脚)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일보(一步) 걷고 진일보(進一步)한다. 상당(上堂) 사십구 년의 설은 은혜가 금어(禽魚)를 적셨고(潤) 십만의 도정(途程)으로 옴은 인천을 경오(警悟)했다. 이 두 노한은 각인(各人)에 좋게 30방 주어야 한다. 무슨 연고냐, 1개는 설장설단(說長說短)하고 1개는 호언한어(胡言漢語)했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또(且) 일착(一著)을 방과(放過)했다.
福州大中德隆海印禪師
上堂 法無異法 道無別道 時時逢見釋迦 處處撞著達磨 放步卽交肩 開口卽齩破 不齩破 大小大 上堂 夫欲智拔 先須定動 卓拄杖曰 唵囌嚧㗭唎娑婆訶 歸堂喫茶 上堂 觸境無滯底 爲甚麽擡頭不起 田地穩密底 爲甚麽下脚不得 譬如天王賜與華屋 雖獲大宅 要因門入 乃曰 門聻 樊噲踏開眞主出 巨靈擡手錦鱗噴 參 上堂 平旦寅 曉何人 處處彌陀佛 家家觀世音 月裏麒麟看北斗 向陽椑子一邊靑
●夫欲智拔 先須定動; 大涅槃經三十一 善男子 如拔堅木 先以手動 後則易出 菩薩定慧亦復如是 先以定動 後以智拔
●平旦寅; 平旦之寅時 平旦 淸晨
복주(福州) 대중(大中) 덕륭(德隆) 해인선사(海印禪師)
상당(上堂) 법은 이법(異法)이 없고 도는 별도(別道)가 없다. 시시(時時)로 석가를 봉견(逢見)하고 처처(處處)에서 달마를 당착(撞著)한다. 방보(放步)하면 곧 어깨를 교차하고 개구(開口)하면 곧 씹어 깨뜨리나니 씹어 깨뜨리지 않으면 대소대(大小大)로다. 상당(上堂) 무릇 지혜로 뽑으려고 한다면 먼저 꼭 정(定)으로 움직여야 한다(夫欲智拔 先須定動). 주장자를 치고(卓) 가로되 옴소리실리사바하(唵囌嚧㗭唎娑婆訶). 귀당(歸堂)하여 끽다(喫茶)하라. 상당(上堂) 촉경(觸境)하여 막힘(滯)이 없는 이가 무엇 때문에 머리를 들어 일으키지 못하며 전지(田地)가 온밀(穩密)한 이가 무엇 때문에 발을 내림을 얻지 못하는가. 비여(譬如) 천왕(天王)이 화옥(華屋; 화려한 집)을 사여(賜與)하매 비록 대택(大宅)을 얻지만 요컨대 문(門)으로 인해 들어간다. 내왈(乃曰) 문은(門聻). 번쾌(樊噲)가 밟아 여니 진주(眞主; 劉邦을 가리킴)가 벗어났고 거령(巨靈; 거령신)이 손을 들매 금린(錦鱗)이 뿜는다(噴). 참(參)하라. 상당(上堂) 평단의 인시여(平旦寅) 환함이 어떤 사람인가. 처처(處處)에 미타불(彌陀佛)이며 가가(家家)에 관세음이다. 달 속의 기린이 북두를 보고 태양을 향한 비자(椑子; 감나무)가 일변(一邊)이 푸르다.
●夫欲智拔 先須定動; 대열반경31. 선남자여 견고한 나무를 뽑으려고 할 것 같으면 먼저 손으로 움직이면 후에 곧 쉽게 뽑는다. 보살의 정혜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먼저 정(定)으로 움직이고 후에 지(智)로써 뽑는다(先以定動 後以智拔).
●平旦寅; 평단의 인시(寅時)니 평단은 청신(淸晨).
簽判劉經臣居士
字興朝 少以逸才登仕版 於佛法未之信 年三十二 會東林照覺總禪師與語 啓廸之 乃敬服 因醉心祖道 旣而抵京師 謁慧林冲禪師 於僧問雪竇 如何是諸佛本源 答曰 千峯寒色 語下有省 歲餘官雒幕 就參韶山杲禪師 將去任 辭韶山 山囑曰 公如此用心 何愁不悟 爾後或有非常境界 無量歡喜 宜急收拾 若收拾得去 便成法器 若收拾不得 則有不寧之疾 成失心之患矣
●簽判; 官職 宋代各州府 選派京官 充當判官 時稱簽書判官廳公事 簡稱簽判 掌諸案文移事務 [百度百科]
●仕版; 舊指記載官吏名籍的簿冊 亦借指仕途或官場
첨판(簽判) 유경신(劉經臣) 거사
자는 흥조(興朝)며 젊어서 뛰어난 재능으로 사판(仕版)에 올랐다. 불법을 믿지 않았는데 나이 32에 동림(東林) 조각총(照覺總; 常總) 선사를 만나 더불어 말하면서 그를 계적(啓廸; 開導. 啓發)하였고 이에 경복(敬服)했고 인하여 조도(祖道)에 취심(醉心)했다. 이미 그러고선(旣而) 경사(京師)에 다다라 혜림충(慧林冲; 若冲) 선사를 참알했다. (冲이 거하되) 중이 설두(雪竇)에게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본원(本源)입니까. 답왈 천봉(千峯)이 한색(寒色)이다에서 어하(語下)에 성찰이 있었다. 세여(歲餘; 1년 남짓한 동안)에 낙막(雒幕)에 임관(任官; 官)했는데 이에(就) 소산고(韶山杲; 宗本의 法嗣) 선사를 참(參)했다. 장차 가서 임직(任職; 任)하려고 소산에게 고별하자 소산이 부촉해 가로되 공(公)이 이와 같이 용심(用心)하거늘 어찌 불오(不悟)를 수심하겠습니까. 이후(爾後)에 혹 비상(非常)한 경계가 있으면 무량하게 환희하리니 의당 급히 수습(收拾)하십시오. 만약 수습함을 얻어 간다면 바로 법기(法器)를 이루려니와 만약 수습함을 얻지 못한다면 곧 안녕치 못한 질환이 있어 실심(失心)의 우환을 이룰 것입니다.
●簽判; 관직(官職). 송대 각 주부(州府)에 경관(京官)을 선파(選派)하여 판관(判官)에 충당했는데 당시의 명칭이 첨서판관청공사며 간칭이 첨판임. 제안(諸案)의 문이(文移; 文書公文) 사무를 관장했음 [백도백과]. 官職 宋代各州府 選派京官 充當判官 時稱簽書判官廳公事 簡稱簽判 掌諸案文移事務 [百度百科]
●仕版; 옛적에 관리의 명적(名籍)을 기재한 부책(簿冊)을 가리킴. 또 사도(仕途; 벼슬길)나 혹 관장(官場; 政界)을 가차(假借)하여 가리킴.
未幾復至京師 趨智海依正覺逸禪師 請問因緣 海曰 古人道 平常心是道 你十二時中放光動地 不自覺知 向外馳求 轉疎轉遠 公益疑不解 一夕入室 海擧傳燈所載香至國王問波羅提尊者何者是佛 尊者曰見性是佛之語問之 公不能對 疑甚 遂歸就寢 熟睡至五鼓 覺來方追念間 見種種異相 表裏通徹 六根震動 天地回旋 如雲開月現 喜不自勝 忽憶韶山臨別所囑之言 姑抑之 逗明趨智海 悉以所得告 海爲證據 且曰 更須用得始得 公曰 莫要踐履否 海厲聲曰 這箇是甚麽事 却說踐履 公默契
미기(未幾; 오래지 않음)에 다시 경사(京師)에 이르러 지해(智海)로 달려가(趨) 정각일(正覺逸; 本逸) 선사에게 의지하면서 인연을 청문(請問)하자 지해(智海)가 가로되 고인이 말하기를 평상심이 이 도(道)라 했다. 네가 12시 중에 방광(放光)하여 동지(動地)하면서 스스로 각지(覺知)하지 못하고 밖을 향해 치구(馳求)하니 더욱 소(疎)하고 더욱 원(遠)하다. 공(公)이 더욱(益) 의심하며 풀리지(解) 않았다. 어느 날 저녁(一夕) 입실하자 지해가 전등(傳燈)에 실린 바를 들었으니(擧) 향지국왕(香至國王)이 바라제(波羅提) 존자에게 묻되 무엇이(何者) 이 부처입니까. 존자가 가로되 견성(見性)이 이 부처입니다라고 한 말로 묻자 공이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의심이 심했고 드디어 돌아가 취침(就寢)했는데 푹 자다가(熟睡) 5고(鼓)에 이르러 깨어나서 바야흐로 추념(追念)하는 사이에 갖가지 이상(異相)을 보았는데 표리(表裏)가 통철(通徹)했고 6근(根)이 진동(震動)했고 천지가 회선(回旋)했으니 구름이 열려 달이 나타남과 같았고 기쁨을 스스로 이기지 못했다. 소산(韶山)이 임별(臨別)에 부촉한 바의 말을 홀연히 기억했다. 잠시(姑) 억제(抑制; 抑)하고 천명(天明; 明)에 이르러(逗) 지해(智海)에게 달려가 모두 얻은 바를 고하자 지해가 증거(證據)했다. 또(且) 가로되 다시 꼭 씀을 얻어야 비로소 옳다. 공왈(公曰) 천리(踐履; 履踐)를 요하지 않습니까. 지해가 사나운(厲) 소리로 가로되 저개(這箇)가 이 무슨 일인데 도리어 천리를 말하느냐. 공이 묵계(默契)했다.
乃作發明心地頌八首 及著明道諭儒篇以警世 詞曰 明道在乎見性 余之所悟者 見性而已 孟子曰 口之於味也 目之於色也 耳之於聲也 鼻之於臭也 四肢之於安佚也 性也 楊子曰 視聽言貌思 性所有也 有見於此 則能明乎道矣 當知道不遠人 人之於道 猶魚之於水 未甞須臾離也 唯其迷己逐物 故終身由之而不知 佛曰大覺 儒曰先覺 葢覺此耳 昔人有言曰 今古應無墜 分明在目前 又曰 大道祇在目前 要且目前難睹 欲識大道眞體 不離聲色言語 又曰 夜夜抱佛眠 朝朝還共起 起倒鎭相隨 語默同居止 欲識佛去處 祇這語聲是 此佛者之語道 爲最親者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也 瞻之在前也 忽焉在後也 取之左右逢其原也 此儒者之語道最邇者 奈何此道唯可心傳 不立文字 故世尊拈花而妙心傳於迦葉 達磨面壁而宗旨付於神光 六葉旣敷 千花競秀 分宗列派 各有門庭
●楊子; 楊朱的尊稱 楊姓 字子居 又稱楊生 楊子 楊子居 魏國(一說秦國)人 戰國初期思想家 哲學家 主張貴己重生 人人不損一毫的思想 是道家楊朱學派的創始人 他的見解散見於列子 莊子 孟子 韓非子 呂氏春秋等 [百度百科]
이에 발명심지송(發明心地頌) 8수(首)를 지었고(作) 및 명도유유편(明道諭儒篇)을 지어(著) 경세(警世)했다. 사왈(詞曰) 명도(明道)는 견성에 있나니 내가 깨친 바는 견성일 따름이다. 맹자(孟子)가 가로되 입의 미(味)와 눈의 색(色)과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臭)와 사지(四肢)의 안일(安佚; 安逸)은 성(性)이다. 양자(楊子)가 가로되 시(視)ㆍ청(聽)ㆍ언(言)ㆍ모(貌)ㆍ사(思)는 성(性)의 소유(所有)니 여기에서 봄이 있다면 곧 능히 도를 밝힌다. 마땅히 알지라,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나니 사람의 도는(人之於道) 물고기의 물과 같아서 일찍이 수유(須臾)라도 여의지 않거늘 오직 그 미기축물(迷己逐物)하는지라 고로 종신(終身)토록 이를 말미암으면서 알지 못한다. 불(佛; 불교)은 가로되 대각(大覺)이며 유(儒; 유교)는 가로되 선각(先覺)이라 하나니 대개 이것을 깨침이다(覺). 석인(昔人)이 말이 있어 가로되 금고(今古)에 응당 추락함이 없이 분명히 목전에 있다. 우왈(又曰) 대도(大道)가 다만 목전에 있지만/ 오차(要且; 도리어) 목전에서 보기 어렵다/ 대도의 진체(眞體)를 알고자 한다면/ 성색과 언어를 여의지 않는다(寶誌語). 우왈(又曰)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도리어 함께 일어나나니/ 기도(起倒)에 늘(鎭) 서로 따르고/ 어묵(語默)에 함께 거지(居止)한다/ 부처의 거처(去處)를 알고자 하느냐/ 다만 이 어성(語聲)이 이것이다(善慧語). 이것이 불자(佛者)가 도를 말함이니 가장 친절한 것이다. 선 즉 그것이 앞에 섞였음(參)을 보고 수레(輿)에 있은 즉 그것이 가로장(衡; 가로로 건너지른 나무 막대기)에 기대었음을 보고 쳐다보매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나니 이를 취하매 좌우에서 그 근원(根源; 原)을 만난다. 이것은 유자(儒者)가 도를 말하는 가장 가까운(邇) 것이다. 이 도는 오직 가히 마음으로 전하고 문자를 세우지 않음을 어찌하겠는가(奈何). 고로 세존이 염화(拈花)하여 묘심(妙心)을 가섭에게 전하고 달마가 면벽하며 종지(宗旨)를 신광(神光)에게 부촉했다. 6엽(葉)이 이미 퍼지매(敷). 천화(千花)가 경수(競秀)하여 분종열파(分宗列派)하여 각기 문정(門庭)이 있다.
●楊子; 양주(楊朱; 약 前 450-약 前 370)의 존칭. 양성(楊姓)이며 자는 자거니 또 명칭이 양생(楊生)ㆍ양자(楊子)ㆍ양자거(楊子居). 위국(魏國; 一說에 秦國) 사람이며 전국 초기의 사상가며 철학가. 귀기중생(貴己重生; 자기를 존귀하게 여기고 생을 존중하다)하여 사람마다 한 터럭이라도 손상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상을 주장했음. 이는 도가(道家) 양주학파(楊朱學派)의 창시인임. 그의 견해는 열자ㆍ장자ㆍ맹자ㆍ한비자ㆍ여씨춘추 등에 흩어져 보임 [백도백과].
故或瞬目揚眉 擎拳擧指 或行棒行喝 竪拂拈槌 或持叉張弓 輥毬舞笏 或拽石般土 打鼓吹毛 或一默一言 一吁一笑 乃至種種方便 皆是親切爲人 然祇爲太親 故人多罔措 瞥然見者 不隔絲毫 其或沉吟 迢迢萬里 欲明道者 宜無忽焉 祖祖相傳 至今不絕 眞得吾儒所謂忿而不發 開而弗違者矣 余之有得 實在此門 反思吾儒 自有其道 良哉孔子之言 默而識之 一以貫之 故目擊而道存 指掌而意喻 凡若此者 皆合宗門之妙旨 得敎外之眞機 然而孔子之道 傳之子思 子思傳之孟子 孟子旣沒 不得其傳 而所以傳於世者 特文字耳 故余之學 必求自得而後已 幸余一夕開悟 凡目之所見 耳之所聞 心之所思 口之所談 手足之所運動 無非妙者 得之旣久 日益見前 每以與人 人不能受 然後知其妙道果不可以文字傳也 嗚呼 是道也 有其人則傳 無其人則絕 余旣得之矣 誰其似之乎 終余之身而有其人邪 無其人邪 所不可得而知也 故爲記頌歌語 以流播其事 而又著此篇 以諭吾徒云
●子思; 孔伋 字子思 孔子的嫡孫 孔子之子孔鯉的兒子 大約生於周敬王三十七年(前483) 卒於周威烈王二十四年(前402) 享年八十二歲 春秋時期著名的思想家 受敎於孔子的高足曾參 孔子的思想學說由曾參傳子思 子思的門人再傳孟子 後人把子思孟子並稱爲思孟學派 [百度百科]
●所以; 指實在的情由或適當擧動 [百度漢語]
고로 혹 눈을 깜작이고 눈썹을 치키고(瞬目揚眉) 주먹을 받들고 손가락을 들고(擎拳擧指) 혹 방을 행하고 할을 행하고(行棒行喝) 불자를 세우고 망치를 잡고(竪拂拈槌) 혹 작살을 가지고 활을 당기고(持叉張弓) 공을 굴리고 홀을 춤추고(輥毬舞笏) 혹 돌을 끌어당기고 흙을 나르고(拽石般土) 북을 치고 털을 불고(打鼓吹毛) 혹 일묵일언(一默一言)하고 일우일소(一吁一笑)하고 내지 갖가지 방편이 모두 이 친절히 위인(爲人)함이다. 그러나 다만 너무 친절하기 때문에(爲) 고인(故人)이 많이 망조(罔措)했다. 별연(瞥然)히 본 자는 사호(絲毫)도 막히지 않겠지만 그 혹 침음(沉吟)하여 초초(迢迢; 아주 멂)하기가 만 리니 도를 밝히고자 하는 자는 의당 소홀(疏忽; 忽)함이 없어야 한다.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하여 지금토록 끊기지 않으니 오유(吾儒)가 이르는 바 분(忿)하면서 불발(不發)하고 개(開; 開發)하매 불위(弗違)하는 것을 참으로 얻었음이다. 내가 얻음이 있음은 실로 차문(此門)에 있나니 오유(吾儒)를 돌이켜 사유하매(反思) 저절로 그 도가 있다. 양재(良哉)라, 공자(孔子)의 말씀이여, 묵이지지(默而識之; 묵묵히 그것을 기록함)하고 일이관지(一以貫之)하나니 고로 목격(目擊)하매 도가 존재하고 지장(指掌)하매 뜻으로 깨닫는다. 무릇(凡) 이와 같은(若) 자는 모두 종문의 묘지(妙旨)에 합하고 교외(敎外)의 진기(眞機)를 얻는다. 그러하여 공자의 도는 자사(子思)에게 전했고 자사는 맹자에게 전했다. 맹자가 이미 몰(沒; 죽다)하매 그 전(傳)을 얻지 못했으며 세상에 전(傳)한 소이(所以)란 것은 특별한 문자일 뿐이다. 고로 나의 학(學)은 반드시 구하여 자득(自得)한 후일 따름이다. 다행히 내가 일석(一夕)에 개오(開悟)하매 무릇 눈으로 보는 바와 귀로 듣는 바와 마음으로 사유하는 바와 입으로 말하는 바와 수족(手足)으로 운동하는 바가 묘(妙)가 아님이 없다. 이를 얻음이 이미 오래되었고 날로 현전(見前)을 더하여(益) 매양 사람에게 시여(施與; 與)했지만 사람이 능히 받지를 못했으니 연후에 그 묘도(妙道)는 과연 가히 문자로써 전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오호(嗚呼)라, 이 도는 그 사람(其人)이 있으면 곧 전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곧 단절된다. 내가 이미 이를 얻었거니와 누가 그것과 비슷하겠는가. 나의 몸이 마치도록 그 사람이 있겠는가 그 사람이 없겠는가. 앎을 가히 얻지 못할 바이다. 고로 송가어(頌歌語)를 기록하여 그 일을 유파(流播)하고 또 차편(此篇)을 지어(著) 오도(吾徒)에게 고지(告知; 諭)한다.
●子思; 공급(孔伋)이니 자가 자사. 공자의 적손(嫡孫)이니 공자의 아들 공리(孔鯉)의 아들임. 대약(大約) 주경왕(周敬王) 37년(前 483)에 출생하여 주 위열왕(威烈王) 24년(前 402)에 죽었으니 향년은 82세. 춘추시기 저명한 사상가며 공자의 고족(高足) 증삼(曾參)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음. 공자의 사상과 학설이 증삼으로 말미암아 자사에게 전해졌고 자사의 문인이 다시 맹자에게 전했음. 후인이 자사와 맹자를 가지고 병칭하여 사맹학파(思孟學派)라 함 [백도백과].
●所以; 실재적인 정유(情由)나 혹 적당한 거동을 가리킴 [백도한어].
靑原下十二世
蔣山泉禪師法嗣
淸獻公趙抃居士
字悅道 年四十餘 擯去聲色 系心宗敎 會佛慧來居衢之南禪 公日親之 慧未甞容措一詞 後典靑州 政事之餘 多宴坐 忽大雷震驚 卽契悟作偈曰 默坐公堂虛隱几 心源不動湛如水 一聲霹靂頂門開 喚起從前自家底 慧聞笑曰 趙悅道撞彩耳 富鄭公初於宗門 未有所趣 公勉之書曰 伏惟執事 富貴如是之極 道德如是之盛 福壽康寧如是之備 退休閑逸如是之高 其所未甚留意者 如來一大事因緣而已 能專誠求所證悟 則他日爲門下賀也
●撞彩; 與喝彩同義
청헌공(淸獻公) 조변거사(趙抃居士)
자가 열도(悅道)다. 나이 40 남짓에 성색(聲色)을 물리쳐 보내고(擯去) 마음을 종교(宗敎)에 매었다(系). 마침(會) 불혜(佛慧; 法泉의 시호)가 구(衢)의 남선(南禪)에 내거(來居)했고 공(公)이 날로 친근했다. 불혜가 일찍이 일사(一詞)도 둠을 용납하지 않았다. 후에 청주(靑州)를 관장(管掌; 典)했는데 정사(政事)의 여가에 다분히 연좌(宴坐)했다. 홀연히 대뢰(大雷)가 진경(震驚)하매 곧 계오(契悟)하고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공당(公堂)에 묵좌(默坐)하여 공허(空虛; 虛)히 궤안(几案; 几)에 기댔는데(隱)/ 심원(心源)이 부동(不動)하여 맑기(湛)가 물과 같다/ 일성벽력(一聲霹靂)에 정문(頂門; 정수리)이 열려/ 종전(從前)의 자가(自家)의 것을 환기(喚起)했다. 불혜가 듣고 웃으며 가로되 조열도(趙悅道)가 당채(撞彩)했을 뿐이다. 부정공(富鄭公; 富弼)이 처음 종문(宗門)에 지향(志向; 趣)하는 바가 있지 않았다. 공이 권면(勸勉; 勉)하여 글을 써 가로되 복유(伏惟)컨대 집사(執事)는 부귀가 이와 같이 지극(至極; 極)하고 도덕이 이와 같이 성대(盛大; 盛)하고 복수강녕(福壽康寧)을 이와 같이 구비(具備; 備)했고 퇴휴(退休)하여 한일(閑逸)함이 이와 같이 고상(高尙; 高)하십니다. 그 심히 유의(留意)하지 못하는 바의 것은 여래의 일대사인연일 따름입니다. 능히 전성(專誠)으로 증오(證悟)할 바를 구한다면 곧 타일(他日)에 문하(門下)의 경하(慶賀; 賀)가 될 것입니다.
●撞彩; 갈채(喝彩)와 같은 뜻.
公年七十有二 以太子少保致仕而歸 親舊里民 遇之如故 作高齋以自適 題偈見意曰 腰佩黃金已退藏 箇中消息也尋常 世人欲識高齋老 祇是柯村趙四郞 復曰 切忌錯認 臨薨遺佛慧書曰 非師平日警誨 至此必不得力矣 慧悼以偈曰 仕也邦爲瑞 歸歟世作程 人間金粟去 天上玉樓成 慧劒無纖缺 冰壺徹底淸 春風瀫水路 孤月照雲明
●少保; 古代官名 三孤(少師 少傅 少保)之一 太師太傅太保都是東宮官職 太師敎文 太傅敎武 太保保護其安全 少師少傅少保均是他們的副職 [百度百科]
●致仕; 交還官職 卽退休
공(公)이 나이 72에 태자소보(太子少保)로서 치사(致仕; 벼슬을 그만 둠)하고 귀환했는데 친구(親舊)와 이민(里民)의 대우(待遇; 遇)가 예(故)와 같았다. 고재(高齋)를 만들어 자적(自適)하면서 제게(題偈)하여 뜻을 나타내어 가로되 허리에 황금을 차고(佩) 이미 퇴장(退藏)했고/ 개중(箇中; 이 중)의 소식이 또한 심상(尋常)하다/ 세인(世人)이 고재(高齋)의 노인을 알고 싶다면/ 다만 이 가촌(柯村)의 조사랑(趙四郞)이다. 다시 가로되 착인(錯認)을 절기(切忌)한다. 임훙(臨薨)하여 불혜(佛慧)에게 글을 남겨 가로되 스님의 평일의 경회(警誨)가 아니었다면 여기에 이르러 반드시 득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혜가 게로써 슬퍼하며(悼) 가로되 벼슬하매(仕也) 방국(邦國; 邦)에서 상서(祥瑞)가 되었고/ 귀환하매(歸歟) 세인(世人)에게 길(程)이 되었다/ 인간에서 금속(金粟)이 떠나매/ 천상에서 옥루(玉樓)가 이루어진다/ 혜검(慧劒)은 섬결(纖缺)도 없고/ 빙호(冰壺)가 철저히 맑다/ 춘풍은 수로(水路)에 출렁이고(瀫; 물소리 곡)/ 고월(孤月)은 구름을 비추며 밝다. 照雲明
●少保; 고대의 벼슬 이름. 삼고(三孤; 少師ㆍ少傅ㆍ少保)의 하나. 태사(太師)ㆍ태부(太傅)ㆍ태보(太保)는 모두 이 동궁의 관직이며 태사는 글을 가르치고 태부는 무(武)를 가르치고 태보는 그의 안전을 보호함. 소사ㆍ소부ㆍ소보는 균일하게 이 그들의 부직(副職)임 [백도백과].
●致仕; 관직을 교환함. 곧 퇴휴(退休).
慧林本禪師法嗣
東京法雲善本大通禪師
族董氏 漢仲舒之裔也 大父琪 父溫 皆官于潁 遂爲潁人 母無子 禱白衣大士 乃得師 及長 博極羣書 然淸修無仕宦意 嘉祐八年 與弟善思往京師地藏院 選經得度 習毗尼 東遊至姑蘇 禮圓照於瑞光 照特顧之 於是契旨 經五稔 益躋微奧 照令依圓通秀 師去又盡其要 元豐七年 渡淮 留太守巖 久之出住雙林 遷淨慈 尋被旨徙法雲
●白衣大士; 卽白衣觀音菩薩 又曰大白衣 又曰白處觀音 以此尊常著白衣 在白蓮中 故就其被服名爲白衣 以其住處名爲白處 白者 表淳淨之菩提心也 [大日經疏五]
동경(東京) 법운(法雲) 선본(善本) 대통선사(大通禪師)
족(族; 겨레)이 동씨(董氏)니 한(漢) 중서(仲舒)의 후예(後裔; 裔)다. 대부(大父; 祖父)는 기(琪)며 부(父)는 온(溫)이니 모두 영(潁)에서 벼슬한지라 드디어 영인(潁人)이 되었다. 모친이 아들이 없어 백의대사(白衣大士)에게 기도해 이에 스님을 얻었다. 및 장성(長成; 長)하자 군서(羣書)를 박극(博極)했으나 그러나 청수(淸修)하며 사환(仕宦; 벼슬살이)의 뜻이 없었다. 가우(嘉祐) 8년(1063) 동생 선사(善思)와 더불어 경사(京師) 지장원(地藏院)에 가서 선경(選經; 試經하여 선발됨)하여 득도(得度)했고 비니(毗尼)를 학습했다. 동유(東遊)하다 고소(姑蘇)에 이르러 서광(瑞光)에서 원조(圓照; 宗本의 賜號)를 참례하자 원조가 특별히 돌아보았고(顧) 이에 계지(契旨)했다. 5임(稔; 해)을 경과하며 더욱(益) 미오(微奧)에 올랐다(躋). 원조가 원통수(圓通秀; 法秀)에게 의지하게 했고 스님이 가서 또 그 요령(要領; 要)을 다했다. 원풍(元豐) 7년(1084) 도회(渡淮)하여 태수암(太守巖)에 머물렀고 오래되자 쌍림(雙林)으로 나가 주(住)했고 정자(淨慈)로 옮겼다가 이윽고 피지(被旨)하여 법운(法雲)으로 이사했다.
●白衣大士; 곧 백의관음보살이니 또 가로되 대백의(大白衣)며 또 가로되 백처관음(白處觀音)임. 이 존(尊)이 늘 백의를 입고 백련 중에 있는지라 고로 그가 입은 의복으로 나아가 백의로 이름하고 그의 주처(住處)로써 이름해 백처(白處)라 함. 백(白)이란 것은 그 순정(淳淨)의 보리심을 표함 [대일경소5].
僧問 寶塔元無縫 如何指示人 師曰 煙霞生背面 星月遶簷楹 曰 如何是塔中人 師曰 竟日不知淸世事 長年占斷白雲鄕 曰 向上更有事也無 師曰 太無厭生 問 若論此事 譬如兩家著碁 學人上來 請師一著 師曰 早見輸了也 僧曰 錯 師曰 是 僧曰 進前無路也 師卓拄杖一下曰 爭奈這箇何 僧曰 祇如黑白未分時 又作麽生 師曰 且饒一著 問 百尺竿頭 如何進步 師曰 險 曰 便恁麽去又作麽生 師曰 百雜碎 問 九夏賞勞卽不問 從今向去事如何 師曰 光剃頭 淨洗鉢 曰 謝師指示 師曰 滴水難消 上堂 上不見天 下不見地 畐塞虛空 無處回避 爲君明破卽不中 且向南山看鼈鼻 擲拄杖下座
승문 보탑(寶塔)은 원래 꿰맨 틈이 없거늘 어떻게 사람에게 지시합니까. 사왈 연하(煙霞; 안개와 노을)가 배면(背面)에 나고 성월(星月)이 첨영(簷楹)을 돈다(遶). 가로되 무엇이 이 탑중인(塔中人)입니까. 사왈 경일(竟日; 온종일)토록 청세(淸世)의 일을 알지 못하고 장년(長年; 오랜 해)토록 백운의 고향을 점단(占斷)했다. 가로되 향상(向上)에 다시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태무염생(太無厭生; 너무 만족이 없음)이로구나 묻되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비유컨대 양가(兩家)가 착기(著碁; 바둑을 두다)함과 같습니다. 학인이 올라왔으니 스님의 일착(一著)을 청합니다. 사왈 벌써 진(輸) 것을 보았다. 승왈 틀렸습니다(錯). 사왈 그렇다. 승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길이 없습니다. 스님이 주장자를 한 번 치고(卓) 가로되 이것(這箇)은 어찌하겠는가. 승왈 지여(祇如) 흑백이 나뉘지 않았을 때 또 어떻습니까. 사왈 다만(且) 일착(一著)을 용서(饒)한다. 묻되 백척간두에서 어떻게 진보(進步)합니까. 사왈 위험하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갈 때 또 어떻습니까. 사왈 백잡쇄(百雜碎)로다. 묻되 구하(九夏)의 상로(賞勞)는 곧 묻지 않습니다. 지금으로 좇아 향거(向去)하는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머리를 빛나게 깎고 발우를 깨끗이 씻어라. 가로되 스님의 지시에 감사합니다. 사왈 적수(滴水)도 소화하기 어렵다. 상당(上堂) 위로는 하늘을 보지 않고 아래론 땅을 보지 않나니 허공에 복색(畐塞; 가득차다)하여 희피할 곳이 없다. 그대를 위해 명파(明破)하면 곧 맞지 않나니 다만(且) 남산을 향해 별비(鼈鼻)를 보아라.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鎭江府金山善寧法印禪師
僧問 天皇也恁麽道 龍潭也恁麽道 未審和尙作麽生道 師曰 手握白玉鞭 驪珠盡擊碎 曰 退身有分 師曰 知過必改 上堂 顧視大衆曰 古人道 在眼曰見 在耳曰聞 在鼻嗅香 在舌談論 在身覺觸 在意攀緣 雖然如是 祇見錐頭利 不見鑿頭方 若是金山卽不然 有眼覰不見 有耳聽不聞 有鼻不知香 有舌不談論 有身不覺觸 有意絕攀緣 一念相應 六根解脫 敢問諸禪德 且道與前來是同是別 莫有具眼底衲僧 出來通箇消息 若無 復爲諸人重重注破 放開則私通車馬 揑聚則毫末不存 若是飽戰作家 一任是非貶剝
●鎭江府; 北宋政和三年(1113) 升潤州置鎭江府 治丹徒縣(今江蘇鎭江市) 元至元十三年(1276) 改鎭江路 [百度百科]
진강부(鎭江府) 금산(金山) 선녕(善寧) 법인선사(法印禪師)
승문 천황(天皇)도 이렇게 말했고 용담(龍潭)도 이렇게 말했거니와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게 말씀하겠습니까. 사왈 손에 백옥편(白玉鞭)을 움켜쥐고 이주(驪珠)를 모두 격쇄(擊碎)한다. 가로되 퇴신(退身)할 분한이 있습니다. 사왈 허물을 알았거든 반드시 고쳐라(知過必改). 상당(上堂) 대중을 돌아보며 가로되 고인이 말하되 눈에 있으면 가로되 견(見)이며 귀에 있으면 가로되 문(聞)이며 코에 있으면 향을 맡고 혀에 있으면 담론하고 몸에 있으면 각촉(覺觸; 접촉을 깨닫다)하고 뜻에 있으면 반연(攀緣)한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다만 추두(錐頭; 송곳)의 날카로움만 보고 착두(鑿頭; 끌)의 모남을 보지 못했다. 만약 이 금산(金山)이라면 곧 그렇지 않나니 눈이 있지만 보아도(覰) 보지 못하고 귀가 있지만 들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지만 향내를 알지 못하고 혀가 있지만 담론하지 못하고 몸이 있지만 각촉(覺觸)하지 못하고 뜻이 있지만 반연이 끊겼나니 일념이 상응하면 6근(根)이 해탈한다. 감히 제선덕(諸禪德)에게 묻나니 차도(且道)하라, 전래(前來; 以前)와 이 같은가 이 다른가. 구안(具眼)한 납승이 있지 않느냐, 나와서 저(箇) 소식을 통하라. 만약 없다면 다시 제인(諸人)을 위해 중중(重重) 주파(注破)하겠다. 방개(放開)하면 곧 사적으로 거마도 통하지만 날취(揑聚; 주워 모으다)하면 곧 호말(毫末; 털끝)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 포전(飽戰; 저본에 鮑戰으로 지었음)의 작가일진대 시비하며 폄박(貶剝)하는 대로 일임한다.
●鎭江府; 북송 정화 3년(1113) 윤주(潤州)를 승격하여 진강부를 설치했음. 치소(治所)는 단도현(지금의 강소 진강시). 원 지원 13년(1276) 진강로로 개칭했음 [백도백과].
壽州資壽院圓澄巖禪師
僧問 大藏經中還有奇特事也無 師曰 祇恐汝不信 曰 如何卽是 師曰 黑底是墨 黃底是紙 曰 謝師答話 師曰 領取鉤頭意 莫認定盤星 上堂 雲生谷口 月滿長川 樵父斫深雲 漁翁釣沙島 到這裏 便是吳道子張僧繇 無你下手處 良久曰 歸堂問取聖僧 參 上堂 乾坤肅靜 海晏河淸 風不鳴條 雨不破塊 春生夏長 秋收冬藏 這箇是世間法 作麽生是佛法 良久曰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
●吳道子; (約686-760前後) 名道玄 字道子 唐代畫家 開封陽翟(河南禹縣)人 少孤貧 及長 遊洛陽 與張旭 賀知章習書法而無成就 後專心習畫 深究其妙 寫蜀道山水 創一家之體 又其佛像 鬼神 人物 禽獸 山水 臺閣等 皆爲當時之冠 其筆法超妙 人稱百代畫聖 初嘗仕袞州瑕邱尉 更召入宮中授內敎博士 帝不詔則不畫 早年行筆稍細 中年則磊落渾厚 曾於開封景公寺繪地獄變相 不著鬼怪而陰森襲人 久操屠沽漁罟之徒 見而懼罪 改業者甚多 後不知所終 [佛祖統紀四十 歷代名畫記九 萬寶全書四 太平廣記二一二 酉陽雜俎續集五 琅琊代醉編十八]
수주(壽州) 자수원(資壽院) 원징암(圓澄巖) 선사
승문 대장경 중에 도리어 기특사(奇特事)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다만 네가 불신(不信)할까 염려스럽다. 가로되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검은 것(黑底)은 이 먹이며 누런 것은 이 종이다. 가로되 스님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사왈 갈고리(鉤頭)의 뜻을 영취(領取; 領會)하고 정반성(定盤星)을 인정하지 말아라. 상당(上堂) 구름이 곡구(谷口)에 생기(生起)하고 달이 장천(長川)에 가득하다. 초부(樵父)는 심운(深雲)에서 쪼개고(斫) 어옹(漁翁)은 사도(沙島)에서 낚시질한다. 이 속에 이르러선 바로 이 오도자(吳道子)나 장승요(張僧繇)일지라도 네가 하수(下手; 착수)할 곳이 없다. 양구하고 가로되 귀당(歸堂)하여 성승(聖僧)에게 문취(問取)하라. 참(參)하라. 상당(上堂) 건곤이 숙정(肅靜)하고 바다는 편안하고 내는 맑고(海晏河淸) 바람은 가지를 울리지 않고(風不鳴條) 비는 흙덩이를 부수지 않고(雨不破塊) 봄에 나고 여름에 자라고(春生夏長)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감춘다(秋收冬藏). 저개(這箇)는 이 세간법이니 무엇이(作麽生) 이 불법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음을 얻고 싶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吳道子; (약 686-760 전후) 이름은 도현(道玄)이며 자는 도자(道子)니 당대의 화가며 개봉 양적(하남 우현) 사람. 어릴 적에 고빈(孤貧)했고 장성함에 이르자 낙양에 노닐면서 장욱(張旭)ㆍ하지장(賀知章)과 더불어 서법을 익혔으나 성취가 없었음. 후에 전심(專心)으로 습화(習畫)하면서 그 묘를 깊이 연구하여 촉도산수(蜀道山水)를 그려 1가(家)의 체를 창작했음. 또 그의 불화ㆍ귀신ㆍ인물ㆍ금수ㆍ산수ㆍ대각(臺閣) 등은 모두 당시의 으뜸이 되었음. 그의 필법은 초묘(超妙)하여 사람들이 호칭하기를 백대화성(百代畫聖)이라 했음. 처음에 일찍이 곤주 하구위(瑕邱尉)로 출사(出仕)했고 다시 불러 궁중에 들어가 내교박사(內敎博士)에 제수(除授)되었음. 제(帝)가 조칙하지 않으면 그리지 않았음. 젊은 나이엔 행필(行筆)이 조금 세밀했고 중년엔 곧 뇌락(磊落; 壯大)하고 혼후(渾厚; 朴實하고 雄厚)했음. 일찍이 개봉 경공사(景公寺)에 지옥변상(地獄變相)을 그렸는데 귀괴(鬼怪)에 붙지 않아도 음삼(陰森; 우거져 어두움)이 습인(襲人; 사람에게 掩襲)했음. 오래 도고어고(屠沽漁罟; 도축ㆍ沽酒ㆍ어망)를 가진 무리가 이를 보고 죄가 두려워 개업(改業)하는 자가 많았음. 후에 마친 곳을 알지 못함 [불조통기40. 역대명화기9. 만보전서4. 태평광기212. 유양잡조속집5. 낭야대주편18].
秀州本覺寺守一法眞禪師
江陰沈氏子 僧問 如何是句中玄 師曰 崑崙騎象藕絲牽 曰 如何是體中玄 師曰 影浸寒潭月在天 曰 如何是玄中玄 師曰 長連牀上帶刀眠 曰 向上還有事也無 師曰 放下著 上堂 擧拂子曰 三世諸佛 六代祖師 總在這裏 還見麽 見汝不相當 又爲說法云 無二無二分 無別無斷故 還聞麽 汝又不惺惺 一時却往上方香積世界去也 𢷾拂子曰 退後退後 突著你眼睛 上堂 折半列三 人人道得 去一拈七 亦要商量 正當今日 雲門道底不要別 作麽生露得箇消息 良久曰 日月易流
●句中玄; 祖庭事苑二 三玄 臨濟家有三玄三要 謂體中玄 玄中玄 句中玄 以接學者 ▲禪林僧寶傳十二薦福古 僧問 三玄三要之名 願爲各各標出 古曰 三玄者一體中玄 二句中玄 三玄中玄 此三玄門 是佛祖正見 學道人 但隨入得一玄 已具正見 入得諸佛閫域 ▲臨濟宗旨 臨濟但曰 一句中具三玄 一玄中具三要 有玄有要而已 初未甞目爲句中玄 意中玄(或作玄中玄) 體中玄也 古塔主者悞認玄沙三句爲三玄 故但分三玄而遺落三要 叢林安之不以爲非 爲可太息
수주(秀州) 본각사(本覺寺) 수일(守一) 법진선사(法眞禪師)
강음(江陰) 심씨(沈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엇이 이 구중현(句中玄)입니까. 사왈 곤륜(崑崙; 崑崙奴)이 코끼리를 탔고 우사(藕絲)로 끈다(牽). 가로되 무엇이 이 체중현(體中玄)입니까. 사왈 그림자가 한담(寒潭)에 잠겼고(浸) 달은 하늘에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현중현(玄中玄)입니까. 사왈 장련상(長連牀) 위에서 칼을 차고 잔다. 가로되 향상에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방하착(放下著)하라. 상당(上堂) 불자를 들고 가로되 삼세제불과 육대조사가 모두 이 속에 있나니 도리어 보느냐. 너희가 상당(相當)하지 못함을 보고 또 설법하여 이르되 둘도 없고 둘로 나뉨도 없나니 다름도 없고 끊김도 없는 연고이다. 도리어 듣느냐. 너희가 또 성성(惺惺)하지 못한지라 일시에 도리어 상방(上方) 향적세계(香積世界)로 갔다. 불자를 흔들고 가로되 뒤로 물러나라(退後), 뒤로 물러나라. 너희의 눈동자와 부딪혔다(突著). 상당(上堂) 반을 꺾어 셋으로 나열함(折半列三)은 사람마다 말함을 얻으며 하나를 보내고 일곱을 집음(去一拈七)도 또한 상량(商量)을 요하거니와 바로(正) 금일에 당해 운문이 말한 것은 분별을 요하지 않는다. 어떻게(作麽生) 저(箇) 소식을 드러냄을 얻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일월이 쉽게 흐른다.
●句中玄; 조정사원2. 3현(玄) 임제가에 3현3요(三玄三要)가 있음. 이르자면 체중현(體中玄)ㆍ현중현(玄中玄)ㆍ구중현(句中玄)이니 학자를 접인함. ▲선림승보전12 천복고. 중이 묻되 3현3요(三玄三要)의 명칭을, 각각 표출(標出)하시기를 원합니다. 고(古)가 가로되 3현이란 것은 1은 체중현(體中玄)이며 2는 구중현(句中玄)이며 3은 현중현(玄中玄)이다. 이 3현문(玄門)은 이 불조의 정견(正見)이다. 학도인(學道人)이 다만 1현만 따라서 입득(入得)하면 이미 정견을 갖추어 제불의 곤역(閫域)에 입득한다. ▲임제종지. 임제는 다만 가로되 1구 중에 3현을 갖추고 1현 중에 3요를 갖추어 유현유요(有玄有要)하다 했을 따름이다. 애초에 일찍이 구중현(句中玄)ㆍ의중현(意中玄; 혹 玄中玄으로 지음)ㆍ체중현(體中玄)이라고 명목하지 않았다. 고탑주(古塔主)란 자가 현사(玄沙)의 3구(句)를 오인(悞認)하여 3현(玄)으로 삼은지라 고로 다만 3현만 구분하고 3요를 유락(遺落)했다. 총림에서 이에 안주해 그름으로 삼지 않으니 가히 태식(太息)할만하다.
舒州投子修顒證悟禪師
僧問 是法平等 無有高下 爲甚麽趙州三等接人 師曰 入水見長人 曰 爭奈學人未會 師曰 喚不回頭爭奈何 上堂 楞伽峯頂 誰能措足 少室巖前 水泄不通 正當恁麽時 黃頭老子張得口 碧眼胡僧開得眼 雖然如是 事無一向 先聖幸有第二義門 足可共諸人東說西說 所以道春生夏長 秋落冬枯 四時遷改 輪轉長途 愚者心生彼此 達者一味無殊 良久曰 陝府鐵牛呑大像 嘉州佛向藕絲藏 上堂 巍巍少室 永鎭群峰 有時雲中捧出 有時霧罩無蹤 有時突在目前 有口道不得 被人喚作壁觀胡僧 諸仁者作麽生免得此過 休休 不如且持課 良久曰 一元和 二佛陀 三釋迦 自餘是甚椀躂丘 參
●趙州三等接人; 上四趙州從諗章 眞定帥王公攜諸子入院 師坐而問曰 大王會麽 王曰 不會 師曰 自小持齋身已老 見人無力下禪牀 王尤加禮重 翌日令客將傳語 師下禪牀受之 侍者曰 和尙見大王來 不下禪牀 今日軍將來 爲甚麽却下禪牀 師曰 非汝所知 第一等人來 禪牀上接 中等人來 下禪牀接 末等人來 三門外接
●楞伽; 在師子國(卽錫蘭島)之山名 楞伽爲寶名 又曰不可到 難入之義也 卽山以有楞伽寶得名 又以險絶常人難入得名 佛嘗在此說大乘經 名楞伽經 [西域記十一 慧琳音義三十一]
●水泄不通; 比喩禪法固密玄妙 言語不能授受 俗智不能理解
●黃頭; 指釋迦牟尼佛 又稱黃頭大士 黃頭老子 黃頭老 黃頭 黃面瞿曇 黃面老 黃面 黃老 如來爲金色身 故有斯等之稱
●一向; 意向於一處 無餘念 無散亂之心也
서주(舒州) 투자(投子) 수옹(修顒) 증오선사(證悟禪師)
승문(僧問) 이 법이 평등하여 고하가 있지 않거늘 무엇 때문에 조주는 3등으로 접인(趙州三等接人)했습니까. 사왈 입수(入水)해야 장인(長人)을 본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불러도 머리를 돌리지 않음을 어찌하겠는가. 상당(上堂) 릉가봉정(楞伽峯頂)에 누가 능히 발을 둘 것이며 소실암전(少室巖前)에 수설불통(水泄不通; 물이 샐 틈이 없음)이다.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황두노자(黃頭老子)도 입을 벌림을 얻고 벽안호승(碧眼胡僧; 달마)도 눈을 뜸을 얻는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사(事)가 일향(一向; 한결같음)이 없나니 선성(先聖)이 다행히 제2의문(第二義門)이 있어 족히 가히 제인과 함께 동설서설(東說西說)한다. 소이로 말하되 봄에 나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떨어지고 겨울에 마르나니(枯) 사시(四時)가 천개(遷改)하며 장도(長途)에 윤전(輪轉)한다. 우자(愚者)는 마음에 피차(彼此)를 내고 달자(達者)는 일미(一味)라 다름(殊)이 없다. 양구하고 가로되 섬부철우(陝府鐵牛)가 대상(大像)을 삼키매 가주불(嘉州佛)이 우사(藕絲)를 향해 숨는다(藏). 상당(上堂) 외외(巍巍)한 소실(少室)이 길이(長) 군봉(群峰)을 진정(鎭定; 鎭)하여 어떤 때는 구름 가운데 받들어(捧) 내고 어떤 때는 안개가 끼어(罩) 자취가 없고 어떤 때는 돌출(突出; 突)하여 목전에 있나니 입이 있어도 말함을 얻지 못해 사람들이 벽관호승(壁觀胡僧)이라고 불러 지음을 입었다. 제인자(諸仁者)여 어떻게 해야 이 허물을 면득(免得)하겠는가. 그만두겠다(休), 그만 두겠다. 다만(且) 지과(持課)함만 같지 못하다. 양구하고 가로되 1은 원화(元和)며 2는 불타며 3은 석가니 자여(自餘; 以外. 此外)는 이 무슨(甚) 완달구(椀躂丘)인가. 참(參)하라.
●趙州三等接人; 위 4 조주종심장(趙州從諗章) 진정수(眞定帥)인 왕공(王公; 王公鎔이니 五代 때의 偏覇. 釋氏稽古略三에 이르되 王鎔이 鎭州의 眞定府를 통솔하며 趙王이라고 일컬었다)이 여러 아들을 데리고 입원(入院)했다. 스님이 앉은 채 물어 가로되 대왕이여 아시겠습니까. 왕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스님이 가로되 어릴 적부터 재(齋)를 가져 몸이 이미 늙은지라 사람을 보고도 선상에서 내려올 힘이 없습니다(自小持齋身已老 見人無力下禪牀). 왕이 더욱 예중(禮重)을 더했다. 다음날 객장(客將)을 시켜 전어(傳語)하자 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그것을 접수했다. 시자가 가로되 화상께선 대왕이 오심을 보고도 선상에서 내려오지 않으시더니 오늘은 군장(軍將)이 왔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선상에서 내려오십니까. 스님이 가로되 네가 알 바가 아니니 제일등인(第一等人)이 오면 선상 위에서 접인(接引)하고 중등인(中等人)이 오면 선상에서 내려와 접인하고 말등인(末等人)이 오면 3문(門) 밖에서 접인한다.
●楞伽; 사자국(師子國; 곧 錫蘭島; 스리랑카)에 있는 산 이름. 릉가(楞伽; 梵 Laṅkā)는 보배의 이름이며 또 가로되 불가도(不可到)ㆍ난입(難入)의 뜻. 곧 산에 릉가보(楞伽寶)가 있음으로써 이름을 얻었음. 또 험절(險絶; 몹시 험함)하여 보통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움으로써 이름을 얻었음. 불타가 일찍이 여기에 있으면서 대승경을 설했으니 명칭이 릉가경임 [서역기11. 혜림음의31].
●水泄不通; 선법은 고밀(固密)하고 현묘해 언어로는 능히 수수(授受)하지 못하고 속지(俗智)로는 능히 이해하지 못함에 비유함.
●黃頭; 석가모니불을 가리킴. 또 명칭이 황두대사ㆍ황두노자ㆍ황두로ㆍ황두ㆍ황면구담ㆍ황면로ㆍ황면ㆍ황로. 여래는 금색의 몸이 되는지라 고로 이런 등의 명칭이 있음.
●一向; 뜻이 한 곳을 향하고 여념이 없고 산란한 마음이 없음임.
福州地藏守恩禪師
本州丘氏子 僧問 如何是佛 師曰 晝眠無益 曰 意旨如何 師曰 早起甚長 問 如何是西來祖意 師曰 風吹滿面塵 上堂 竪起拳曰 或時爲拳 復開曰 或時爲掌 若遇衲僧有功者賞 遂放下曰 直是土曠人稀 相逢者少 上堂 雨後鳩鳴 山前麥熟 何處牧童兒 騎牛笑相逐 更把短笛橫吹 風前一曲兩曲 參
복주(福州) 지장(地藏) 수은선사(守恩禪師)
본주(本州) 구씨(丘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낮잠은 무익하다.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일찍 일어남은 심히 낫다(長). 묻되 무엇이 이 서래(西來)의 조의(祖意)입니까. 사왈 바람이 만면(滿面)의 티끌을 분다. 상당(上堂) 주먹을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어떤 때(或時)는 주먹이 되고, 다시 열고 가로되 어떤 때는 손바닥이 된다. 만약 납승에 공이 있는 자를 만나면 상준다(賞). 드디어 방하(放下)하고 가로되 바로(直) 이, 국토가 넓고 사람이 드물어(土曠人稀) 상봉하는 자가 적다. 상당(上堂) 비 온 후 비둘기가 울고 산 앞에 보리가 익었다. 어느 곳에선 목동아(牧童兒)가 소를 타고 웃으며 상축(相逐)한다. 다시 짧은 피리를 잡아 가로 부니 바람 앞에 일곡양곡(兩曲)이다. 참(參)하라.
上堂 山僧今日略通一線 不用狐疑 麥中有麵 上堂 拈拄杖擊禪牀一下曰 有智若聞 則能信解 無智疑悔 則爲永失 三十年後 不得道山僧今日上堂 祇念法華經 參 上堂 衲僧現前三昧 釋迦老子不會 住世四十九年 說得天花亂墜 爭似飢餐渴飮 展脚堂中打睡 上堂 諸人知處 山僧盡知 山僧知處 諸人不知 今日不免布施諸人 良久曰 頭上是天 脚下是地 參
●疑悔; 疑念與後悔
상당(上堂) 산승이 금일 간략히 일선(一線)을 통하리니 호의(狐疑)를 쓰지 말아라. 보리(麥) 속에 밀가루가 있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아 선상을 한 번 치고 가로되 지혜가 있는 이가 만약 듣는다면 곧 능히 신해(信解)하려니와 지혜가 없는 이는 의회(疑悔)하며 곧 영실(永失)하리라. 30년 후 산승이 금일 상당하여 다만 법화경을 외웠다고(念) 말함을 얻지 말아라. 참(參)하라. 상당(上堂) 납승의 현전삼매(現前三昧)는 석가노자(釋迦老子)도 알지 못하나니 49년 주세(住世)하며 설해 천화(天花)가 난추(亂墜)함을 얻더라도 어찌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다리를 펴 당중(堂中)에서 타수(打睡)함만 같겠는가. 상당(上堂) 제인이 아는 곳은 산승이 다 알지만 산승이 아는 곳은 제인이 알지 못하나니 금일 제인에게 보시함을 면하지 못한다. 양구하고 가로되 두상(頭上)은 이 하늘이며 각하(脚下)는 이 땅이다. 참(參)하라.
●疑悔; 의념(疑念)과 후회.
衢州靈曜寺辯〈音辯〉良佛慈禪師
饒州吳氏子 淸獻趙公命開法於越州福果衢州超化海會靈曜四刹 僧問 三變禪林 四回出世 於和尙分上 成得甚麽邊事 師曰 鉢盂口向天 曰 三十年來關棙子 而今流落五湖傳 師曰 那箇是山僧關棙子 曰 一言超影象 不墜古人風 師曰 惜取眉毛 上堂 不知時分之延促 不知日月之大小 灰頭土面 且與麽過 山僧每遇月朔 特地鬬釘家風 抑揚問答 一場笑具 雖然如是 因風撒土 借水獻花 有箇葛藤露布 與諸人共相解摘看 驀拈拄杖擊香臺曰 參堂去
●鬬釘; 當作鬪飣 餖飣 鬪 通餖
●借水獻花; 譬如佛前有水器 乃獻花借此水也
구주(衢州) 영요사(靈曜寺) 변(辯; 五燈嚴統에 𧦬으로 지었음)〈音辯〉량(良) 불자선사(佛慈禪師)
요주(饒州) 오씨(吳氏)의 아들이다. 청헌(淸獻) 조공(趙公)이 명(命)하여 월주(越州) 복과(福果), 구주(衢州) 초화(超化)ㆍ해회(海會)ㆍ영요(靈曜) 4찰(刹)에서 개법했다. 승문 선상이 3변(變)했고 4회(回) 출세했거니와 화상의 분상(分上)에서 심마변사(甚麽邊事; 어떤 쪽의 일)를 성득(成得)했습니까. 사왈 발우구(鉢盂口)가 하늘을 향했다. 가로되 30년 래의 관려자(關棙子)가 이금(而今)에 오호(五湖)에 유락(流落)하여 전(傳)합니다. 사왈 어느 것(那箇)이 이 산승의 관려자냐. 가로되 일언(一言)이 영상(影象)을 초월해 고인(古人)의 풍모(風貌; 風)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왈 눈썹을 석취(惜取)하라. 상당(上堂) 시분(時分)의 연촉(延促; 長短)을 알지 못하고 일월의 대소를 알지 못하고 회두토면(灰頭土面)하고 다만 이렇게 지낸다. 산승이 매번 월삭(月朔; 매달 초하루)을 만나면 특지(特地) 가풍을 투정(鬬釘)하여 문답을 억양(抑揚)하거니와 한바탕 웃음거리(一場笑具)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바람으로 인해 흙을 뿌리고 물을 빌려 꽃을 바치듯이(借水獻花) 저(箇) 갈등(葛藤)의 노포(露布)가 있어 제인과 더불어 함께 서로 해적(解摘; 解析. 解釋)해 보겠다. 갑자기 주장자를 집어 향대(香臺)를 치고 가로되 참당(參堂)하러 가거라.
●鬬釘; 마땅히 투정(鬪飣)으로 지어야 함. 두정(餖飣; 1. 식품을 소반에 첩첩이 陳設함. 2. 詞句의 안배와 나열을 가리킴). 투(鬪)는 두(餖)와 통함.
●借水獻花; 비여(譬如) 불전(佛前)에 물그릇이 있어 이에 헌화하면서 이 물을 빌림임.
明州香山延泳正覺禪師
上堂 心隨境現 境逐心生 心境兩忘 是箇甚麽 拈起拄杖曰 且道這箇甚處得來 若道是拄杖 瞎却汝眼 若道不是拄杖 眼在甚麽處 是與不是 一時拈却 且騎拄杖出三門去也 遂曳杖下座
명주(明州) 향산(香山) 연영(延泳) 정각선사(正覺禪師)
상당(上堂) 마음이 경계 따라 나타나고 경계가 마음을 쫓아 생겨나거니와 마음과 경계를 양망(兩忘)하면 이것이 무엇인가(是箇甚麽).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차도(且道)하라, 이것(這箇)을 어느 곳에서 얻어 왔느냐. 만약 말하되 이 주장자라 한다면 너희의 눈을 멀게해버릴 것이며 만약 말하되 이 주장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눈이 어느 곳에 있느냐. 시(是)와 불시(不是)를 일시에 집어 물리치고(拈却) 다만(且) 주장자를 타고 삼문(三門)을 나가겠다. 드디어 주장자를 끌면서(曳) 하좌했다.
安吉州道場慧印禪師
上堂 韶石渡頭 舟橫野水 汾陽浪裏 棹撥孤煙 雲月無私 谿山豈異 一言合轍 千里同風 敢問諸人 作麽生是同風底句 良久曰 八千子弟今何在 萬里山河屬帝家
●八千子弟; 漢書三十一項籍傳 於是羽遂引東 欲渡烏江 烏江亭長檥船待 謂羽曰 江東雖小 地方千里 衆數十萬 亦足王也 願大王急渡 今獨臣有船 漢軍至 亡以渡 羽笑曰 乃天亡我 何渡爲 且籍與江東子弟八千人渡而西 今亡一人還 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哉
안길주(安吉州) 도량(道場) 혜인선사(慧印禪師)
상당(上堂) 소석도두(韶石渡頭; 소석 나룻가)에 배가 야수(野水)에 가로놓였고 분양랑리(汾陽浪裏)에 노가 고연(孤煙)을 헤친다(撥). 구름과 달이 무사(無私)하다면 개울과 산이 어찌 다르겠는가. 일언(一言)이 합철(合轍)하면 천리동풍(千里同風)이다. 감히 제인에게 묻나니 무엇이 이 동풍의 구(句)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8천의 자제(八千子弟)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만 리 산하가 제가(帝家)에 속했다.
●八千子弟; 한서31 항적전(項籍傳). 이에 항우가 드디어 인동(引東; 동쪽으로 軍兵을 인솔함)하여 오강(烏江)을 건너려고 하였다. 오강 정장(亭長)이 배를 대고 기다렸다가 항우에게 일러 가로되 강동(江東)이 비록 작으나 지방이 천 리며 무리가 수십만이니 또한 왕노릇하기에 족합니다. 원컨대 대왕은 급히 도강하십시오. 여금에 오직 신(臣)만 배가 있습니다. 한군(漢軍)이 이르면 도강하지 못합니다. 항우가 웃으며 가로되 곧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거늘 어찌 도강하겠는가. 또 항적(項籍)이 강동자제(江東子弟) 8천인과 서쪽으로 도강했다가 지금 한 사람도 귀환하는 이가 없다. 비록 강동의 부형(父兄)이 연민하여 나를 왕으로 여긴다 해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臨安府西湖妙慧文義禪師
上堂 會麽 已被熱謾了也 今早起來 無言可說 下牀著鞋 後架洗面 堂內展鉢喫粥 粥後打睡 睡起喫茶 見客相喚 齋時喫飯 日日相似 有甚麽過 然雖如是 更有一般令我笑 金剛倒地一堆泥 拍禪牀 下座
임안부(臨安府) 서호(西湖) 묘혜(妙慧) 문의선사(文義禪師)
상당(上堂) 아느냐. 이미 열만(熱謾)을 입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 가히 설할 말이 없나니 상에서 내려와(下牀) 착혜(著鞋; 신을 신다)하고 후가(後架)에서 세면(洗面)하고 당내(堂內)에서 전발(展鉢)하여 끽죽(喫粥)하고 죽후(粥後)에 타수(打睡; 자다)하고 자고 일어나 끽다(喫茶)하고 객을 보면 상환(相喚)하고 재시(齋時)에 끽반(喫飯)하나니 날마다 상사(相似)하거늘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다시 일반(一般)이 있어 나로 하여금 웃게 하나니 금강(金剛; 금강역사)이 땅에 넘어지매 한 무더기의 진흙이다. 선상을 두드리고 하좌했다.
處州靈泉山宗一禪師
上堂 美玉藏頑石 蓮華出淤泥 須知煩惱處 悟得卽菩提 咄
처주(處州) 영천산(靈泉山) 종일선사(宗一禪師)
상당 미옥(美玉)이 완석(頑石; 단단한 돌)에 숨겨졌고 연화가 어니(淤泥; 진흙)에서 나온다. 수지(須知)할지니 번뇌하는 곳에 오득(悟得)하면 곧 보리다. 돌(咄).
泗州普照寺處輝眞寂禪師
滁州趙氏子 開堂日 僧問 世尊出世 地湧金蓮 和尙出世 有何祥瑞 師曰 掃却門前雪
사주(泗州) 보조사(普照寺) 처휘(處輝) 진적선사(眞寂禪師)
저주(滁州) 조씨(趙氏)의 아들이다. 개당일 승문 세존이 출세하매 땅에서 금련(金蓮)이 솟았거니와 화상이 출세하여 무슨 상서(祥瑞)가 있습니까. 사왈 문 앞의 눈을 쓸어버려라.
常州南禪寧禪師
僧問 廬陵米價作麽生詶 師曰 欵出囚口
●欵出囚口; 同款出囚口 情款出自罪囚之口 款 情款(眞實 情況)
상주(常州) 남선녕(南禪寧) 선사
승문 여릉의 쌀값을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詶). 사왈 정관(情款)이 죄수의 입에서 나오는구나(欵出囚口).
●欵出囚口; 관출수구(款出囚口)와 같음. 정관(情款)이 죄수의 입으로부터 나옴. 관(款)은 정관(情款; 진실. 정황).
越州石佛曉通禪師
上堂 冷似秋潭月 無心合太虛 山高流水急 何處駐游魚 僧問 如何是頓敎 師曰 月落寒潭 曰 如何是漸敎 師曰 雲生碧漢 曰 不漸不頓時如何 師曰 八十老婆不言嫁
월주(越州) 석불(石佛) 효통선사(曉通禪師)
상당(上堂) 차갑기는 추담(秋潭)의 달과 같고/ 무심해야 태허(太虛)에 합한다/ 산이 높아 유수(流水)가 급하거늘/ 어느 곳에 유어(游魚)를 머물게(駐) 하나. 승문 무엇이 이 돈교(頓敎)입니까. 사왈 달이 한담(寒潭)에 떨어졌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점교(漸敎)입니까. 사왈 구름이 벽한(碧漢)에 생기(生起; 生)한다. 가로되 점도 아니고 돈도 아닐(不漸不頓) 때 어떻습니까. 사왈 팔십 노파가 시집감(嫁)을 말하지 않는다.
法雲秀禪師法嗣
東京法雲惟白佛國禪師
上堂 離婁有意 白浪徒以滔天 罔象無心 明珠忽然在掌 以手打一圓相 召大衆曰 還見麽 良久曰 看卽有分 上堂 拈拄杖示衆曰 山僧住持七十餘日 未曾拈動這箇 而今不免現些小神通 供養諸人 遂卓拄杖 下座 上堂 過去已過去 未來且莫算 正當現在事 今朝正月半 明月正團圓 打鼓普請看 大衆看卽不無 畢竟喚甚麽作月 休於天上覓 莫向水中尋 師有續燈錄三十卷 入藏
●續燈錄; 建中靖國續燈錄之略名 三十卷 另有目錄三卷 宋代僧佛國惟白編 收於卍續藏第一三六冊 書成於徽宗建中靖國元年(1101) 故冠以此年號 本書繼景德傳燈錄 天聖廣燈錄之後 依禪門法脈相續之次第 編列師資略歷 機緣語句 古則公案 偈頌等而成 全書大別爲正宗 對機 拈古 頌古 偈頌等五門 而於臨濟 雲門諸師之語所錄較詳備
동경(東京) 법운(法雲) 유백(惟白) 불국선사(佛國禪師)
상당(上堂) 이루(離婁)는 유의(有意)하여 백랑(白浪)이 도연히 하늘에 넘쳤고(滔) 망상(罔象)은 무심하여 명주(明珠)가 홀연히 손바닥에 있었다. 손으로써 1원상을 짓고(打) 대중을 부르며 가로되 도리어 보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봄은 곧 분한이 있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고 시중(示衆)해 가로되 산승이 주지한 지 70여 일에 일찍이 이것(這箇)을 염동(拈動)하지 않았거니와 이금(而今)에 사소(些小)한 신통을 나타내어 제인에게 공양함을 면하지 못한다. 드디어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상당(上堂)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過去) 미래는 다만(且) 계산하지 못한다(莫). 바로(正) 현재사(現在事)에 당하여 금조(今朝)는 정월의 반이다. 명월이 바로(正) 단원(團圓)하니 북을 쳐서 보청(普請)해 보아라. 대중이여, 봄은 곧 없지 않으나 필경 무엇을 일러 달이라 하느냐. 천상에서 찾음(覓)을 그치고(休) 수중(水中)을 향해 찾지(尋) 말아라. 스님이 속등록(續燈錄) 30권이 있어 입장(入藏)했다.
●續燈錄; 건중정국속등록(建中靖國續燈錄)의 약명(略名). 30권. 따로 목록 3권이 있음. 송대승 불국유백(佛國惟白)이 편(編)했고 만속장 제136책에 수록되었음. 책이 휘종 건중정국 원년(1101)에 이루어졌으므로 고로 이 연호로써 씌웠음. 본서는 경덕전등록과 천성광등록의 뒤를 승계해 선문 법맥의 상속의 차제에 의해 사자(師資)의 약력과 기연의 어구 고칙의 게송 등을 편열(編列)해 이루었음. 전서를 크게 나누면 정종ㆍ기연ㆍ염고ㆍ송고ㆍ게송 등의 5문이 되며 임제와 운문의 여러 스님의 말씀을 기록한 바가 조금 상세히 갖추어졌음.
建康府保寧子英禪師
錢塘人也 上堂 拈拄杖曰 日月不能竝明 河海不能競深 須彌不能同高 乾坤不能同固 聖凡智慧不及 且道這箇有甚麽長處 良久曰 節目分明 生來條直 冰雪敲開片片分 白雲點破承伊力 擊禪牀 下座
건강부(建康府) 보녕(保寧) 자영선사(子英禪師)
전당(錢塘) 사람이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일월이 능히 밝음을 함께하지(竝明) 못하고 하해(河海)가 능히 깊음을 다투지(競深) 못하고 수미(須彌)가 능히 높음을 함께(同)하지 못하고 건곤이 능히 견고함을 함께하지 못하고 성범(聖凡)의 지혜가 미치지 못한다. 차도(且道)하라, 이것(這箇)이 무슨 장처(長處)가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절목(節目; 條目)이 분명하여 나면서(生來) 가지(條)가 곧다. 빙설(冰雪)을 고개(敲開)하니 조각조각 나뉘고 백운을 점파(點破)하매 그(伊)의 힘을 승수(承受; 承)했다.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溫州僊巖景純禪師
僧問 德山棒 臨濟喝 和尙如何作用 師曰 老僧今日困 僧便喝 師曰 却是你惺惺
온주(溫州) 선암(僊巖) 경순선사(景純禪師)
승문 덕산은 방이며 임제는 할이거니와 화상은 어떻게 작용합니까. 사왈 노승은 금일 피곤하다. 중이 바로 할했다. 사왈 도리어 이 네가 성성(惺惺)하구나.
寧國府廣敎守訥禪師〈圓照上足 時稱訥叔〉
僧問 如何是古今常存底句 師曰 鐵牛橫海岸 曰 如何是衲僧正眼 師曰 針劄不入
영국부(寧國府) 광교(廣敎) 수눌선사(守訥禪師)〈圓照(宗本)의 上足이며 당시에 訥叔이라 일컬었다〉
승문 무엇이 이 고금에 상존(常存)하는 구(句)입니까. 사왈 철우가 해안에 가로놓였다. 가로되 무엇이 이 납승의 정안(正眼)입니까. 사왈 침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
興元府慈濟聰禪師
僧問 如何是道 師曰 此去長安三十七程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撞頭磕額 問 不是風動 不是幡動 未審是甚麽動 師曰 低聲低聲 問 如何是隨色摩尼珠 師曰 靑靑翠竹 鬱鬱黃花 曰 如何是正色 師曰 退後退後 問 釋迦已滅 彌勒未生 未審誰爲導首 師曰 鐵牛也須汙出 曰 莫便是爲人處也無 師曰 細看前話 問 如何是超佛越祖之談 師曰 陝府鐵牛 上堂 三乘敎典 不是眞詮 直指本心 未爲極則 若是通心上士 脫灑高流 出來相見 乃顧視大衆曰 休 上堂 終日孜孜相爲 恰似牽牛上壁 大衆何故如此 貪生逐日區區去 喚不回頭爭奈何 上堂 一卽一 二卽二 把定要津 何處出氣 拈拄杖曰 彼自無瘡 勿傷之也 卓一下 下座
흥원부(興元府) 자제총(慈濟聰) 선사
승문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여기에서 장안과의 거리가 37정(程)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머리를 두드리고 이마를 친다(撞頭磕額). 묻되 이 풍동(風動)이 아니며 이 번동(幡動)이 아니다. 미심하나니 이 무엇이 동(動)함입니까. 사왈 소리를 낮추어라, 소리를 낮추어라. 묻되 무엇이 이 수색(隨色)하는 마니주입니까. 사왈 청청(靑靑)한 취죽(翠竹)이며 울울(鬱鬱)한 황화(黃花)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정색(正色)입니까. 사왈 뒤로 물러나라, 뒤로 물러나라. 묻되 석가는 이미 멸했고 미륵은 생하지 않았습니다. 미심하나니 누가 도수(導首)가 됩니까. 사왈 철우일지라도 또한 꼭 땀을 낸다. 가로되 바로 이 위인(爲人)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전화(前話)를 세간(細看)하라. 묻되 무엇이 이 초불월조지담(超佛越祖之談)입니까. 사왈 섬부철우(陝府鐵牛)다. 상당(上堂) 삼승교전(三乘敎典)은 이 진전(眞詮)이 아니며 본심을 직지함도 극칙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이 통심(通心)한 상사(上士)나 탈쇄(脫灑)한 고류(高流)가 나와서 상견한다면, 이에 대중을 돌아보며 가로되 쉬어라(休). 상당(上堂) 종일 자자(孜孜; 꾸준하게 부지런함)하며 상위(相爲)하지만 소를 끌고 벽에 오름과 흡사하나니 대중이여 무슨 연고로 이와 같은가. 탐생(貪生)하여 축일(逐日)하며 구구(區區)히 가면서 불러도 머리를 돌리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상당(上堂) 일(一)은 곧 일이며 이(二)는 곧 이다. 요진(要津)을 파정(把定)하면 어느 곳에서 출기(出氣)하겠는가.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피자(彼自)가 부스럼(瘡)이 없으니 상해하지 말아라. 한 번 치고(卓) 하좌했다.
安州白兆山通慧珪禪師
上堂 幸逢嘉會 須采異聞 旣遇寶山 莫令空手 不可他時後日 門扇後壁角頭 自說大話也 窮天地 亘古今 卽是當人一箇自性 於是中間 更無他物 諸人每日行時行著 臥時臥著 坐時坐著 祇對語言時滿口道著 以至揚眉瞬目 嗔喜愛憎 寂默游戲 未始間斷 因甚麽不肯承當 自家歇去 良由無量劫來 愛欲情重 生死路長 背覺合塵 自生疑惑 譬如空中飛鳥 不知空是家鄕 水裏游魚 忘却水爲性命 何得自抑 却問傍人 大似捧飯稱飢 臨河呌渴 諸人要得休去麽 各請立地定著精神 一念回光 豁然自照 何異空中紅日 獨運無私 盤裏明珠 不撥自轉 然雖如是 祇爲初機 向上機關 未曾踏著 且道作麽生是向上機關 良久曰 仰面看天不見天
●壁角頭; 同壁角落頭 牆角落裏 落 籬也
●大話; 虛誇的話
안주(安州) 백조산(白兆山) 통혜규(通慧珪) 선사
상당(上堂) 다행히 가회(嘉會; 아름다운 法會)를 만났으니 꼭 이문(異聞)을 채집(采集; 采)하고 이미 보산(寶山)을 만났으니 빈손이 되게 하지 말아라. 타시후일(他時後日)에 문짝(門扇) 뒤나 벽각두(壁角頭)에서 대화(大話)를 자설(自說)함은 옳지 않다. 천지를 다하고(窮) 고금에 뻗친 것이 곧 이 당인(當人)의 일개(一箇) 자성이니 이 중간에 다시 다른 물건이 없다. 제인(諸人)이 매일 다닐 땐 행착(行著; 著은 조사)하고 누울 땐 와착(臥著)하고 앉을 땐 좌착(坐著)하고 지대(祇對)하며 어언(語言)할 땐 입 가득히 도착(道著)하고 이지(以至; 내지) 양미순목(揚眉瞬目;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작임)하고 진희애증(嗔喜愛憎; 성내고 기뻐하고 좋아하고 미워함)하고 적묵(寂默)커나 유희(游戲)하면서 일찍이(始) 간단(間斷)하지 않거늘 무엇으로 인해 승당(承當)하여 자가(自家)가 쉬어 감을 수긍하지 않느냐. 참으로(良) 무량겁래(無量劫來)로 애욕(愛欲)의 정이 무겁고 생사로(生死路)가 멂(長)으로 말미암아 배각합진(背覺合塵)하여 스스로 의혹을 낸다. 비유컨대 공중의 비조(飛鳥)가 허공이 이 가향(家鄕)임을 알지 못하고 물속의 유어(游魚)가 물이 성명(性命)이 됨을 망각(忘却)함과 같나니 어찌하여 자기를 숙이고(抑) 도리어 방인(傍人)에게 물음을 얻는가. 밥을 바쳐도 배고프다고 일컫고 내에 임해 목마르다고 부르짖음과 매우 흡사하다. 제인이 휴거(休去)를 얻고자 하느냐. 각자 청컨대 입지(立地)에 정신을 정착(定著)하여 한 생각 회광(回光)하면 활연(豁然)히 자조(自照)하리라. 공중의 홍일(紅日)이 독운(獨運; 홀로 운행)하며 무사(無私)하고 반리(盤裏)의 명주(明珠)가 헤치지(撥) 않아도 저절로 돎과 어찌 다르겠는가.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으나 다만 초기(初機)를 위함이며 향상의 기관(機關)은 일찍이 답착(踏著)하지 않았다. 차도(且道)하라, 무엇이 이 향상의 기관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앙면(仰面)하여 하늘을 보아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壁角頭; 벽각락두(壁角落頭)와 같음. 담장 모서리의 울타리 속. 락(落)은 울타리임.
●大話; 허과(虛誇)의 얘기.
廬州長安淨名法因禪師
上堂 天上月圓 人間月半 七八是數 事却難算 隱顯不辨卽且置 黑白未分一句作麽生道 良久曰 相逢秋色裏 共話月明中 上堂 祖師妙訣 別無可說 直饒釘觜鐵舌 未免弄巧成拙 淨名已把天機泄
여주(廬州) 장안(長安) 정명(淨名) 법인선사(法因禪師)
상당(上堂) 천상의 달은 둥글고 인간의 달은 반(半)이다. 칠팔은 이 수(數)이거니와 사(事)는 도리어 계산하기 어렵다. 은현(隱顯)을 불변(不辨)함은 곧 차치(且置)하고 흑백이 나뉘지 아니한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추색(秋色) 속에서 상봉하고 월명(月明) 중에서 공화(共話)한다. 상당(上堂) 조사의 묘결(妙訣)은 달리 가히 설할 게 없다. 직요(直饒; 가령) 정취철설(釘觜鐵舌)일지라도 교묘를 희롱하다가 졸렬을 이룸을 면치 못하나니 정명(淨名)이 이미 천기(天機)를 잡아 누설(漏泄; 泄)했다.
浮槎山福嚴守初禪師
僧問 如何是受用三昧 師曰 拈匙放筯 問 如何是正直一路 師曰 踏不著 曰 踏著後如何 師曰 四方八面 乃曰 若論此事 放行則曹谿路上月白風淸 把定則少室峰前雲收霧卷 如斯語論 已涉多途 但由一念相應 方信不從人得 大衆且道 從甚麽處得 良久曰 水流元在海 月落不離天 上堂 卽性之相 一亘晴空 卽相之性 千波競起 若徹來源 淸流無阻 所以擧一念而塵沙法門頓顯 拈一毫而無邊刹境齊彰 且道文殊普賢在甚麽處 下坡不走 快便難逢 便下座
●一亘; 空間和時間上延續不斷
부사산(浮槎山) 복엄(福嚴) 수초선사(守初禪師)
승문 무엇이 이 수용삼매(受用三昧)입니까. 사왈 숟가락을 집어 들고 젓가락을 놓음이다(拈匙放筯). 묻되 무엇이 이 정직(正直)한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밟지 못한다(踏不著). 가로되 밟은(踏著)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사방팔면이다. 이에 가로되 만약 차사(此事)를 논할진대 방행(放行)하면 곧 조계로상(曹谿路上)에 달은 희고 바람은 맑고(月白風淸) 파정(把定)하면 곧 소실봉전(少室峰前)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걷힌다(雲收霧卷). 이와 같은(如斯) 어론(語論)은 이미 다도(多途)에 건넜나니 단지 일념이 상응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남으로 좇아 얻지 않는 줄 믿는다. 대중이여 차도(且道)하라. 어느 곳(甚麽處)으로 좇아 얻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물은 흘러 원래 바다에 있고 달이 떨어져도 하늘을 여의지 않는다. 상당(上堂) 즉성(卽性; 性에 붙다)의 상(相)인지라 일긍(一亘)의 청공(晴空)이며 즉상(卽相)의 성(性)인지라 천파(千波)가 경기(競起)한다. 만약 내원(來源)을 통하면(徹) 청류(淸流)가 막힘(阻)이 없다. 소이로 일념을 들매(擧) 진사법문(塵沙法門)이 돈현(頓顯)하고 일호(一毫)를 집어 들매(拈) 무변찰경(無邊刹境)이 제창(齊彰)한다. 차도(且道)하라 문수와 보현이 어느 곳에 있느냐. 언덕을 내려가면서 달리지 않으면 쾌편(快便)을 만나기 어렵다. 바로 하좌했다.
●一亘; 공간과 시간상 연속하여 끊기지 않음.
鼎州德山仁繪禪師
僧問 如何是不動尊 師曰 來千去萬 曰 恁麽則脚跟不點地也 師曰 却是汝會 上堂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山僧卽不然 至道最難 須是揀擇 若無憎愛 爭見明白
정주(鼎州) 덕산(德山) 인회선사(仁繪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동존(不動尊)입니까. 사왈 옴은 천이며 감은 만이다(來千去萬).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았습니다(脚跟不點地). 사왈 도리어 이 네가 이회(理會)했다. 상당(上堂) 지도(至道)는 무난(無難)하지만/ 오직 간택을 꺼린다/ 단지 증애(憎愛)하지 않으면/ 통연(洞然)히 명백하리라. 산승은 곧 그렇지 않다. 지도(至道)는 최난(最難)하니/ 모름지기 이 간택해야 한다/ 만약 증애가 없다면/ 어찌 명백함을 보리오.
澧州聖壽香積用旻禪師
上堂 木馬衝開千騎路 鐵牛透過萬重關 木馬鐵牛卽今在甚麽處 良久曰 驚起暮天沙上鴈 海門斜去兩三行
예주(澧州) 성수(聖壽) 향적(香積) 용민선사(用旻禪師)
상당(上堂) 목마는 천기로(千騎路)를 충개(衝開)하고 철우는 만중관(萬重關)을 투과한다. 목마와 철우가 즉금 어느 곳에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모천(暮天)의 사상(沙上)의 기러기를 경기(驚起)하니 해문(海門)에 양삼행(兩三行) 사거(斜去; 비껴 가다)한다.
瑞州瑞相子來禪師
上堂 顧視衆曰 夫爲宗匠 隨處提綱 應機問答 殺活臨時 心眼精明 那容妖怪 若也棒頭取證 喝下承當 埋沒宗風 恥他先作 轉身一路 不在遲疑 一息不來 還同死漢 大衆直饒到這田地 猶是句語埋藏 未有逶脫一路 敢問諸人 作麽生是透脫一路 還有人道得麽 若無 山僧不免與諸人說破 良久曰 玉離荊岫寒光動 劒出豐城紫氣橫
서주(瑞州) 서상(瑞相) 자래선사(子來禪師)
상당(上堂) 대중을 돌아보며 가로되 무릇(夫) 종장(宗匠)이 되었다면 곳 따라 제강(提綱)하고 응기(應機)하여 문답하면서 살활(殺活)에 임시(臨時)하고 심안(心眼)이 정명(精明)해야 하거늘 어찌(那) 요괴(妖怪)를 용납하리오. 만약에 방두(棒頭)에서 취증(取證)하고 할하(喝下)에서 승당(承當)하면 종풍을 매몰하고 저(他) 선작(先作; 先代의 作家)에 부끄럽다. 전신(轉身)의 일로(一路)는 지의(遲疑; 주저하며 의심함)에 있지 않나니 일식(一息; 한 번의 호흡)이 불래(不來)하면 도리어 사한(死漢)과 같다. 대중이여, 직요(直饒) 이(這) 전지(田地)에 이르더라도 오히려 이는 구어(句語)에 매장(埋藏)되어 투탈(逶脫)의 일로(一路)가 있지 않다. 감히 제인에게 묻나니 무엇이 이 투탈의 일로인가. 도리어 말함을 얻을 사람이 있느냐. 만약 없다면 산승이 제인에게 설파(說破)하여 줌을 면하지 못한다. 양구하고 가로되 옥이 형수(荊岫; 荊山의 산굴)를 떠나지 않아도 한광(寒光)이 동(動)하고 검이 풍성(豐城)에서 나오매 자기(紫氣)가 가로놓였다.
廬州眞空從一禪師
上堂 心鏡明鑑無礙 遂拈起拄杖曰 喚這箇作拄杖 卽是礙 不喚作拄杖 亦是礙 離此之外 畢竟如何 要會麽 礙不礙 誰爲對 大地山河 廓然粉碎
여주(廬州) 진공(眞空) 종일선사(從一禪師)
상당(上堂) 심경(心鏡)이 밝아 비추매 무애(無礙)하다. 드디어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저개(這箇)를 일러 주장자라 하면 즉시(卽是) 애(礙)며 주장자라고 불러 짓지 않아도 역시 애(礙)다. 이것을 여읜 밖에 필경 어떠한가. 알고자 하느냐, 애와 불애(不礙)를 누가 상대하느냐. 대지산하가 확연(廓然)히 분쇄되었다.
襄州鳳凰山乾明廣禪師
上堂 日頭東畔出 月向西邊沒 來去急如梭 催人成白骨 山僧有一法 堪爲保命術 生死不相干 打破精魂窟 咄 咄 是何物 不是衆生不是佛 參
양주(襄州) 봉황산(鳳凰山) 건명광(乾明廣) 선사
상당(上堂) 일두(日頭; 해)가 동반(東畔)에서 나오고/ 달이 서변(西邊)을 향해 잠긴다/ 내거(來去)하며 급하기가 사(梭; 북)와 같나니/ 사람을 재촉해 백골을 이룬다/ 산승이 일법(一法)이 있나니/ 가히(堪) 보명술(保命術)이 된다/ 생사에 상간(相干)되지 않고/ 정혼굴(精魂窟)을 타파한다/ 돌(咄)/ 돌(咄)/ 이 무슨 물건인가/ 이 중생이 아니며 이 불(佛)이 아니다. 참(參)하라.
慧林冲禪師法嗣
東京永興華嚴寺智明佛慧禪師
常州史氏子 上堂 若論此事 在天則列萬象而齊現 在地則運四時而發生 在人則出沒卷舒 六根互用 且道在山僧拄杖頭上 又作麽生 良久 卓一下曰 高也著 低也著
●六根互用; 謂眼 耳 鼻 舌 身 意等六根 遠離染汚而得淸淨 則六根一一具有他根之用 按涅槃經二十三 如來一根則能見色 聞聲 嗅香 別味 覺觸 知法 一根如此 其餘諸根亦然
●高也著; 著 句尾助詞 相當于罷 使用此助詞 常須兩句對擧
동경(東京) 영흥(永興) 화엄사(華嚴寺) 지명(智明) 불혜선사(佛慧禪師)
상주(常州) 사씨(史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만약 이 일을 논하자면 하늘에 있으면 곧 만상이 나열하여 일제히 나타나고 땅에 있으면 곧 4시(時)를 운행해 발생하고 사람에게 있으면 곧 출몰하고 권서(卷舒)하면서 육근이 호용한다(六根互用). 그래 말하라, 산승의 주장자 두상에 있으면 또 어떠한가. 양구(良久)했다. 한 번 치고(卓) 가로되 높아도 또한 마치고(高也著) 낮아도 또한 마친다(低也著).
●六根互用; 이르자면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등 6근이 염오(染汚)를 멀리 여의고 청정을 얻으면 곧 6근의 하나하나가 다른 근(根)의 씀을 갖추고 있음. 열반경23을 안험컨대 여래의 1근(根)은 곧 능히 색을 보고 소리를 듣고 향기를 냄새 맡고 맛을 분별하고 촉(觸)을 느끼고 법을 안다. 1근이 이와 같아서 그 나머지 제근(諸根)도 또한 그러하다 했음.
●高也著; 착(著)은 구미조사(句尾助詞)니 파(罷; 마칠 파)에 상당(相當)함. 이 조사를 사용하면 늘 양구(兩句)를 대거(對擧)함을 씀.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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