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18 계남선사(系南禪師)-응단선사(應端禪師)

태화당 2025. 10. 8. 08:33

五燈會元卷第十八

南嶽下十三世下

雲居祐禪師法嗣

廬山羅漢院系南禪師

汀州張氏子 上堂 禪不禪道不道 三寸舌頭胡亂掃 昨夜日輪飄桂華 今朝月窟生芝草 阿呵呵 萬兩黃金無處討 一向絕思量 諸法不相到 師臨示寂 陞座告衆曰 羅漢今日 倒騎鐵馬 逆上須彌 踏破虛空 不留眹迹 乃歸方丈 跏趺而逝

 

여산(廬山) 라한원(羅漢院) 계남선사(系南禪師)

강주(汀州) 장씨(張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이 선이 아니며 도가 도가 아니니/ 세 치 설두(舌頭)로 호란(胡亂)히 쓴다()/ 어젯밤 일륜(日輪)이 계화(桂華)에 나부끼더니/ 금조(今朝) 월굴(月窟)에 지초(芝草)가 났다/ 아하하(阿呵呵)/ 만량(萬兩) 황금을 찾을() 곳이 없다/ 일향(一向) 사량이 끊겼나니/ 제법(諸法)이 서로 이르지(相到) 못한다. 스님이 시적(示寂)에 임해 승좌(陞座)하여 고중(告衆)해 가로되 라한(羅漢)이 금일 철마를 거꾸로 타고 수미(須彌)를 거꾸로 올라 허공을 답파(踏破)하고 짐적(眹迹)을 남기지 않겠다. 이에 방장으로 돌아가 가부(跏趺)하고 서거했다.

 

潭州慈雲彦隆禪師

上堂 擧玄沙示衆曰 盡大地都來是一顆明珠 時有僧問 旣是一顆明珠 學人爲甚不識 沙曰 全體是珠 更敎誰識 曰 雖然全體是 爭奈學人不識 沙曰 問取你眼 師曰 諸禪德 這箇公案 喚作嚼飯餧小兒 把手更與杖 還會麽 若未會 須是扣己而參 直要眞實 不得信口掠虛 徒自虛生浪死

嚼飯餧小兒; 嚼爛飯粒餧給小兒 喩指慈婦心腸 禪家稱作老婆心

 

담주(潭州) 자운(慈雲) 언륭선사(彦隆禪師)

상당(上堂) ()하다. 현사가 시중(示衆)해 가로되 온 대지가 도래(都來; 모두) 이 한 알의 명주(明珠).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이미 이 한 알의 명주이거늘 학인이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합니까. 현사가 가로되 전체가 이 구슬이거늘 다시 누구로 하여금 알게 하겠는가. 가로되 비록 그러히 전체가 이것이지만 학인이 알지 못함을 어찌합니까(爭奈). 현사가 가로되 너의 눈에게 문취(問取)하라. 사왈(師曰) 제선덕(諸禪德)이여, 저개(這箇) 공안을 밥을 씹어 소아에게 먹이고(嚼飯餧小兒) 손잡고 다시 장(; )을 준다고 불러 짓는다. 도리어 아느냐, 만약 알지 못한다면 모름지기 이는 자기에게 물어() ()해야 하나니 바로() 진실을 요하고 신구(信口; 随口)하여 약허(掠虛)하며 도연히 스스로 허생낭사(虛生浪死)함을 얻지 말아야 한다.

嚼飯餧小兒; 밥알을 씹어 파쇄하여 소아에게 먹여 공급함이니 자부(慈婦)의 심장에 비유함. 선가에서 호칭하기를 노파심이라 함.

 

郢州子陵山自瑜禪師

僧問 如何是古佛心 師曰 赤脚䟕泥冷似冰 曰 未審意旨如何 師曰 休要拖泥帶水 問 泗洲大聖 爲甚麽楊州出現 師曰 業在其中 曰 意旨如何 師曰 降尊就卑 曰 謝和尙答話 師曰 賊是小人 智過君子

 

영주(郢州) 자릉산(子陵山) 자유선사(自瑜禪師)

승문 무엇이 이 고불심입니까. 사왈 맨발로 진흙을 밟으니() 차기가 얼음 같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타니대수(拖泥帶水)하려고 하지 말아라. 묻되 사주대성(泗洲大聖)이 무엇 때문에 양주(楊州)에 출현했습니까. 사왈 업()이 그 가운데 있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존귀를 낮추어 비천함에 나아간다(降尊就卑). 가로되 화상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사왈 도적이 이 소인이지만 지혜가 군자를 초과한다.

 

隆興府東山景福省悅禪師

上堂 十二時中 跛跛挈挈 且與麽過 大衆 利害在甚麽處 良久曰 聽諸方斷看 擊禪牀 下座

 

융흥부(隆興府) 동산(東山) 경복(景福) 성열선사(省悅禪師)

상당(上堂) 12시 중에 파파계계(跛跛挈挈)하며 다만 이렇게 지낸다. 대중이여, 이해(利害)가 어느 곳에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제방의 판단을 들어() 보아라.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亳州白藻淸儼禪師

信州人 僧問 楊廣失橐駞 到處無人見 未審是甚麽人得見 師以拂子約曰 退後退後 妨他別人所問 曰 畢竟落在甚麽處 師曰 可煞不識好惡 便打

楊廣失橐駞; 猶楊廣失駱駝 唐宋時歇後語 楊廣 隋煬帝 意謂一失無覓處

可煞; 煞 同殺 所八切 所拜切 表示程度深

 

박주(亳州) 백조(白藻) 청엄선사(淸儼禪師)

신주(信州) 사람이다. 승문 양광이 낙타를 잃자(楊廣失橐駞; 橐駞駱駝) 도처에서 발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미심하오니 이 어떤 사람이 득견합니까. 스님이 불자로 약()하며 가로되 뒤로 물러나라, 뒤로 물러나라. 저 다른 사람의 소문(所問)을 방애한다. 가로되 필경 어느 곳에 떨어져 있습니까. 사왈 가쇄(可煞) 호오(好惡)를 알지 못하는구나. 바로 때렸다.

楊廣失橐駞; 양광실낙타(楊廣失駱駝)와 같음. 당송 시 헐후어(歇後語; 兩部分으로 말미암아 組成固定語句니 앞 일부분은 비유를 많이 사용하고 謎面을 형상하며 후 일부분은 이 本意謎底를 형상함. 통상 다만 앞 일부분을 설하면 후 일부분은 말하지 않고도 비유함). 양광(楊廣)은 수양제니 뜻으로 이르자면 한 번 놓치면 찾을 곳이 없음.

可煞; ()는 쇄()와 같음. 소팔절(所八切; ), 소배절(所拜切; )이니 정도의 깊음을 표시.

 

台州寶相元禪師

僧問 一切諸佛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 皆從此經出 如何是此經 師曰 長時誦不停 非義亦非聲 曰 如何受持 師曰 若欲受持者 應須用眼聽

 

태주(台州) 보상원(寶相元) 선사

승문 일체제불 및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모두 차경(此經)으로 좇아나온다. 무엇이 이 차경입니까. 사왈 장시(長時)에 외우며 멈추지 않나니 뜻()도 아니고 또한 소리도 아니다. 가로되 어떻게 수지(受持)해야 합니까. 사왈 만약 수지하고 싶은 자는 응당 꼭 눈을 써서 들어라.

 

信州永豐慧日庵主

本郡丘氏子 丱歲出家 於明心寺得度 自機契雲居 熟遊湘漢 暨歸永豐 或處巖谷 或居鄽市 令鄕民稱丘師伯 凡有所問 以莫曉答之 忽語邑人曰 吾明日行脚去 汝等可來相送 於是賮路者畢集 師笑不已 衆問其故 卽書偈曰 丘師伯莫嘵 寂寂明皎皎 日午打三更 誰人打得了 投筆而逝

 

신주(信州) 영풍(永豐) 혜일암주(慧日庵主)

본군(本郡) 구씨(丘氏)의 아들이다. 관세(丱歲)에 출가했고 명심사(明心寺)에서 득도(得度)했다. ()가 운거(雲居)에게 계합함으로부터 상한(湘漢; 湘水漢水)을 숙유(熟遊; 익히 유람)했다. 영풍(永豐)으로 돌아옴에 이르러() 혹은 암곡(巖谷)에 거처하고 혹은 전시(鄽市)에 거주하면서 향민(鄕民)으로 하여금 구사백(丘師伯)으로 일컫게 하였다. 무릇 묻는 바가 있으면 막효(莫曉; 깨닫지 말아라)로써 답했다. 홀연히 읍인(邑人)에게 말해 가로되 내가 명일(明日) 행각하겠으니 너희 등은 가히 와서 상송(相送)하라. 이에 신로(賮路; 길을 餞送)하는 자가 다 모이자(畢集) 스님이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不已). 대중이 그 연고를 묻자 스님이 게를 써 가로되 구사백(丘師伯)의 막효(莫嘵)/ 적적(寂寂)하고 밝아 교교(皎皎)하다/ 일오(日午; 정오)3경을 치니/ 어떤 사람(誰人)이 타득(打得)해 마치겠는가. 붓을 던지고 서거했다.

 

泉州南峯永程禪師

示衆 始自雞峯續𦦨 少室流芳 大布慈雲 宏開慧日 敎分三藏 直指一心 或全提而棒喝齊施 或縱奪而賓主互設 或金剛按劍 或師子飜身 或照用雷奔 或機鋒電掣 無非剪除邪妄 開廓玄微 直下明宗 到眞實地 諸仁者 到此方許一線道 與你商量 苟或未然 盡是依師作解 無有是處

 

천주(泉州) 남봉(南峯) 영정선사(永程禪師)

시중(示衆) 처음 계봉(雞峯; 계족산)에서 속염(續𦦨)하고 소실(少室; 소실산)에서 유방(流芳)함으로부터 자운(慈雲)을 대포(大布)하고 혜일(慧日)을 굉개(宏開)하니 교()가 삼장(三藏)으로 나뉘고 일심(一心)을 직지(直指)했다. 혹은 전제(全提)하여 방할(棒喝)을 제시(齊施)하고 혹은 종탈(縱奪)하면서 빈주(賓主)를 호설(互設)하고 혹은 금강이 안검(按劍)하고 혹은 사자(師子)가 번신(飜身)하고 혹은 조용(照用)이 뇌분(雷奔)하고 혹은 기봉(機鋒)이 전체(電掣; 번개가 치다)하니 사망(邪妄)을 전제(剪除)하고 현미(玄微)를 개확(開廓; 開拓. 擴展)하고 직하(直下)에 명종(明宗)하여 진실지(眞實地)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 제인자(諸仁者), 여기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일선도(一線道)로 너희와 상량함을 허락한다. 구혹(苟或; 만일 혹) 그렇지 못할진대 모두 이 스승에 의해 작해(作解)함인지라 옳은 곳이 있지 않다.

 

大潙秀禪師法嗣

潭州大潙祖瑃禪師

福州吳氏子 僧問 如何是潙山家風 師曰 竹有上下節 松無今古靑 曰 未審其中飮噉何物 師曰 饑餐相公玉粒飯 渴點神運倉前茶 上堂 道無定亂 法離見知 言句相投 都無定義 自古龍門無宿客 至今鳥道絕行蹤 欲會箇中端的意 火裏蝍蟟呑大蟲 咄 上堂 雨下堦頭濕 晴乾水不流 鳥巢滄海底 魚躍石山頭 衆中大有商量 前頭兩句是平實語 後頭兩句是格外談 若如是會 祇見石磊磊 不見玉落落 若見玉落落 方知道寬廓 咦

神運倉; 南嶽總勝集中 南臺禪寺 殿之下有石 乃丹霞削髮處 又有石號飛羅漢 世傳神運倉 今遺基尙在

平實; 平常穩實

磊磊; 爲衆多委積貌

 

담주(潭州) 대위(大潙) 조춘선사(祖瑃禪師)

복주(福州) 오씨(吳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엇이 이 위산(潙山)의 가풍입니까. 사왈 대나무는 상하의 마디가 있으나 소나무는 금고(今古)의 푸름이 없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그 중에서 무슨 물건을 음담(飮噉; 마시고 먹다)합니까. 사왈 주리면 상공(相公)의 옥립반(玉粒飯)을 먹고 갈증이 나면 신운창(神運倉) 앞의 차를 점다(點茶)한다. 상당(上堂) 도는 정란(定亂)이 없고 법은 견지(見知)를 여의었나니 언구(言句)를 상투(相投)함은 모두() 정의(定義)가 없다. 자고로 용문엔 숙객(宿客)이 없고/ 지금(至今)토록 조도(鳥道)에 행종(行蹤; 다니는 자취)이 끊겼다/ 개중(箇中)의 단적(端的)한 뜻을 알고 싶다면/ 화리(火裏)의 즉료(蝍蟟)가 대충(大蟲)을 삼켰다. (). 상당(上堂) 비가 내리니 섬돌(堦頭)이 축축하고()/ 맑아 건조하니 물이 흐르지 않는다/ 새는 창해의 바닥에 둥지 틀고/ 고기는 석산(石山)의 꼭대기()에 뛴다. 중중(衆中)에 매우() 상량(商量)함이 있나니 전두(前頭; 전면)의 양구(兩句)는 이 평실어(平實)며 후두(後頭; 후면)의 양구(兩句)는 이 격외담(格外談)이라 하거니와 만약 이와 같이 안다면 다만 돌이 뇌뢰(磊磊)함만 보고/ ()이 낙락(落落; 稀疏)함을 보지 못했다/ 만약 옥의 낙락함을 본다면/ 바야흐로 도가 관확(寬廓)함을 본다. ().

神運倉; 남악총승집중. 남대선사(南臺禪寺)의 전(殿) 아래 돌이 있는데 곧 단하가 삭발한 곳이다. 또 돌이 있는데 호가 비라한(飛羅漢)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운창(神運倉)은 지금 유기(遺基)가 아직 존재한다.

平實; 평상의 온실(穩實; 穩當하면서 踏實).

磊磊; 중다(衆多)가 위적(委積; 聚積)한 모양이 됨.

 

南嶽福嚴文演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當面便唾

 

남악(南嶽) 복엄(福嚴) 문연선사(文演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스님이 당면(當面)에 바로 침 뱉았다.

 

南嶽南臺允恭禪師

開堂日 上堂 稀逢難遇 正在此時 何謂釋迦已滅 彌勒未生 拈拂子曰 正當今日 佛法盡在這箇拂子頭上 放行把住 一切臨時 放行也 風行草偃 瓦礫生光 拾得寒山 點頭拊掌 把住也 水洩不通 精金失色 德山臨濟 飮氣呑聲 當恁麽時 放行卽是 把住卽是 良久曰 後五日看

 

남악(南嶽) 남대(南臺) 윤공선사(允恭禪師)

개당일(開堂日) 상당(上堂) 만남이 드물고 만나기 어려움(稀逢難遇)이 바로() 차시(此時)에 있다. 어찌하여 이르기를 석가는 이멸(已滅)했고 미륵은 미생(未生)했다 하는가. 불자를 잡고 가로되 바로() 금일에 당하여 불법이 모두 저개(這箇) 불자두상(拂子頭上)에 있다. 방행(放行)과 파주(把住)가 일체가 임시(臨時)니 방행함엔 바람이 불어 풀이 눕고(風行草偃) 와력(瓦礫)이 빛을 내나니 습득과 한산이 점두(點頭)하고 부장(拊掌)한다. 파주(把住)함엔 수설불통(水洩不通; 물이 샐 틈이 없음)하고 정금(精金)이 실색(失色)하나니 덕산과 임제가 음기탄성(飮氣呑聲)한다. 이러한 때를 당해 방행이 곧 옳으냐, 파주가 곧 옳으냐. 양구하고 가로되 5일 후에 보아라.

 

黃檗勝禪師法嗣

成都府昭覺純白紹覺禪師

上堂 寒便向火 熱卽搖扇 饑時喫飯 困來打眠 所以趙州庭前柏 香嚴嶺後松 栽來無別用 祇要引淸風 且道畢竟事作麽生 甲子乙丑海中金 丙寅丁卯罏中火

海中金; 六十甲子納音之一 七修類稿一云 謂天干乃氣之運 甲乙爲始 丙丁爲旺 戊己爲化 庚辛乃成 壬癸爲終 所謂海中金者 甲乙氣之始 金始生而在子丑北方大水之位 故爲海中金

罏中火; 爐中火 六十甲子納音之一 七修類稿一 爐中火者 丙丁氣之旺 又居寅卯長生之地 乃爐中之火存而不息者也

 

성도부(成都府) 소각(昭覺) 순백(純白) 소각선사(紹覺禪師)

상당(上堂) 추우면 바로 향화(向火)하고 더우면 곧 요선(搖扇)하고 주릴 때 끽반하고 피곤하면(困來) 타면(打眠; 자다)한다. 소이로 조주의 정전백(庭前柏)과 향엄(香嚴)의 영후송(嶺後松)은 심어서(栽來) 별다른 씀이 없고 다만 청풍을 당김을 요한다. 차도(且道)하라, 필경사(畢竟事)가 어떠한가. 갑자을축(甲子乙丑)은 해중금(海中金)이며 병인정묘(丙寅丁卯)는 노중화(罏中火).

海中金; 60갑자 납음(納音)의 하나. 칠수류고1에 이르되 이르자면 천간(天干)은 곧 기()의 운()이다. 갑을은 시()가 되고 병정은 왕()이 되고 무기는 화()가 되고 경신은 곧 성()이며 임계는 종()이 된다. 이른 바 해중금(海中金)이란 것은 갑을이 기의 시()니 금()이 시생(始生)하여 자축(子丑) 북방 대수(大水)의 위()에 있는지라 고로 해중금이 된다.

罏中火; 노중화(爐中火)와 같음. 육십갑자 납음(納音)의 하나. 칠수류고1. 노중화(爐中火)란 것은 병정(丙丁)은 기가 왕성하며 또 인묘(寅卯)의 장생(長生)의 땅에 거처한다. 곧 노중(爐中)의 화()가 존재하면서 꺼지지 않는 것이다.

 

開元琦禪師法嗣

饒州薦福道英禪師

僧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曰 瑠璃缾貯華 曰 出世後如何 師曰 瑪瑙鉢盛果 曰 未審和尙今日是同是別 師曰 趯倒缾 拽倒鉢 上堂 據道而論 語也不得 默也不得 直饒語默兩忘 亦沒交涉 何故 句中無路 意在句中 無意無不意 非計較之所及 若是劈頭點一點 頂門豁然眼開者 於此却有疾速分 若低頭向意根下尋思 卒摸索不著 是知萬法無根 欲窮者錯 一源絕迹 欲返者迷

瑪瑙; 七寶之一 赤色寶之意 梵語阿濕摩揭拉婆 遏濕摩揭婆 阿輸摩竭婆 又作石藏 胎藏 杵藏 又按慧苑音義上 玄應音義二十一 又謂相通於虎魄 慧琳音義二十七 馬瑙 遏濕摩揭婆 此云杵藏 遏濕摩杵義 揭婆藏義 或言胎 取其堅實 言馬瑙者 色如馬腦故也

劈頭; 一最初之義 [碧巖錄第一則種電鈔] 二對著頭 劈 冲著 正對著 此指二

 

요주(饒州) 천복(薦福) 도영선사(道英禪師)

승문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유리병(瑠璃缾)에 꽃이 담겼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마노발(瑪瑙)에 과일이 가득하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화상은 금일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병()을 차서() 넘어뜨리고 발()을 끌어() 넘어뜨린다. 상당(上堂) 도에 의거해 논하자면 어()도 얻지 못하고 묵()도 얻지 못한다. 직요(直饒) 어묵(語默)을 양망(兩忘)하더라도 또한 교섭이 없다. 무슨 연고냐, 구중(句中)에 길이 없으나 뜻이 구중에 있나니 뜻도 없고 뜻 아님도 없어 계교(計較)의 미칠 바가 아니다. 만약 이 머리에다(劈頭) 일점(一點)을 점 찍으매 정문(頂門)이 활연(豁然)하면서 개안(眼開)하는 자는 여기에서 도리어 질속(疾速)할 분한이 있겠지만 만약 머리 숙이며 의근(意根) 아래를 향해 심사(尋思)한다면 마침내() 모색하지 못한다(摸索不著). 이로 알지니 만법은 뿌리가 없는지라 궁구하려는 자가 어긋나고() 일원(一源)은 자취가 끊긴지라 돌아가려고() 자가 미()한다.

瑪瑙; 7보의 하나. 적색보의 뜻. 범어로는 아습마갈랍바(阿濕摩揭拉婆; aśma-garbha)ㆍ알습마갈바ㆍ아수마갈바. 또 석장(石藏)ㆍ태장(胎藏)ㆍ저장(杵藏)으로 지음. 또 혜림음의상ㆍ현음음의21을 안험컨대 또 이르되 호백(虎魄)과 상통한다. 혜림음의27. 마노(馬瑙) 알습마갈바(遏濕摩揭婆)니 여기에선 이르되 저장(杵藏)이다. 알습마는 저(; 공이)의 뜻이며 갈바는 장()의 뜻이다. 혹 말하기를 태()니 그 견실(堅實)을 취했다. 마노(馬瑙)라고 말하는 것은 색이 마뇌(馬腦)와 같은 연고이다.

劈頭; 1. 최초의 뜻 [벽암록제1칙종전초]. 2. 머리에 대착(對著). ()은 충착(冲著; 찌르다). 정대착(正對著).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看他古佛光明先德風彩 一一從無欲無依中發現 或時孤峻峭㧞 竟不可搆 或時含融混會 了無所睹 終不樁定一處 亦不繫係兩頭 無是無不是 無非無不非 得亦無所得 失亦無所失 不曾隔越纖毫 不曾移易絲髮 明明古路 不屬玄微 覿面擎來 瞥然便過 不居正位 豈落邪途 不蹈大方 那趨小徑 騰騰兀兀 何住何爲 回首不逢 觸目無對 一念普觀 廓然空寂 此之宗要 千聖不傳 直下了知 當處超越

騰騰兀兀; 任其自然 無事無爲的樣子 亦作兀兀騰騰

 

저 고불의 광명과 선덕(先德)의 풍채(風彩)를 보건대 하나하나 무욕무의(無欲無依) 가운데로 좇아 발현(發現)한다. 어떤 때(或時)는 고준(孤峻)하여 초발(峭㧞; 가파르게 빼어남)한지라 마침내() 가히 이회(理會; )하지 못하고 어떤 때는 함융(含融)하여 혼회(混會)한지라 마침내() 볼 바가 없다. 마침내() 일처(一處)에 장정(樁定; 말뚝을 박아 정함)하지 못하고 또한 양두(兩頭)에 계계(繫係; 묶다. 저본에 擊係로 지었음)하지 못한다. ()도 없고 불시(不是)도 없고 비()도 없고 불비(不非)도 없고 득()해도 또한 소득(所得)이 없고 실()해도 또한 소싪(所失)이 없다. 일찍이 섬호(纖毫)도 격월(隔越)하지 않고 일찍이 사발(絲髮)도 이역(移易)하지 않는다. 명명(明明)한 고로(古路)가 현미(玄微)에 속하지 않나니 적면(覿面)하여 경래(擎來)했다가 별연(瞥然)히 편과(便過; 바로 지나감)한다. 정위(正位)에도 거처하지 않거늘 어찌 사도(邪途)에 떨어지겠는가. 대방(大方)도 밟지() 않거늘 어찌() 소경(小徑)으로 달리겠는가(). 등등올올(騰騰兀兀)하거늘 어디에 머물며 무엇을 하겠는가(何住何爲). 회수(回首)해도 만나지 못하고 촉목(觸目)해도 대함이 없나니 일념으로 보관(普觀)하매 확연(廓然)히 공적(空寂)하다. 이것의 종요(宗要)는 천성(千聖)도 전하지 못하나니 직하(直下)에 요지(了知)해야 당처(當處)에서 초월한다.

騰騰兀兀; 그 자연에 맡겨 무사무위(無事無爲)한 양자(樣子; 모양). 또 올올등등으로 지음.

 

是知赤灑灑處 恁麽卽易 明歷歷處 恁麽還難 不用沾黏點染 直須剝脫屛除 若是本分手脚 放去無收不來底 一一放光現瑞 一一削跡絕蹤 機上了不停 語中無可露 徹底攪不渾 通身撲不碎 且道畢竟是箇甚麽 得恁麽靈通 得恁麽奇特 得恁麽堅確 諸仁者 休要識渠面孔 不用安渠名字 亦莫覓渠所在 何故 渠無所在 渠無名字 渠無面孔 纔起一念追求如微塵許 便隔十生五生 更擬管帶思惟 益見紛紛叢雜 不如長時放敎自由自在 要發便發 要住便住 卽天然非天然 卽如如非如如 卽湛寂非湛寂 卽敗壞非敗壞 無生戀 無死畏 無佛求 無魔怖 不與菩提會 不與煩惱俱 不受一法 不嫌一法 無在無不在 非離非不離 若能如是 見得釋迦自釋迦 達磨自達磨 干我甚麽椀 恁麽說話 衲僧門下 推勘將來 布裙芒靸 不免撩他些些泥水 豈況汝等諸人 更道這箇是平實語句 這箇是差別門庭 這箇是關棙巴鼻 這箇是道眼根塵 遞相敎習 如七家村傳口令相似 有甚交涉 無事珍重

沾黏; 沾濕黏附

點染; 本義指繪畫中點綴景物和著色 後轉義爲寫作時修飾文字 佛家用于指不直闡述佛法本意 而加修飾 北齊 顔之推顔氏家訓雜藝 武烈太子偏能寫眞 坐上賓客 隨意點染 卽成數人 以問童子 皆知姓名矣

剝脫; 刮削

甚麽椀; 椀 卽椀躂丘 椀脫丘的省略 猶言什麽東西 什麽玩意兒(玩具)

七家村; 指偏僻小村

傳口令; 喩拘泥于言句問答 或糾纏于公案古則 實際上竝不明悟禪法 口令 唐宋時代流行的酒令 其詞句 或采自古今詩詞 或係民間繞口令等

 

이로 알지니 적쇄쇄처(赤灑灑處)가 이렇게(恁麽) 곧 쉽고 명역력처(明歷歷處)가 이렇게 도리어 어렵다. 첨점(沾黏; 더하고 달라붙음)과 점염(點染; 조금씩 젖어 물듦)을 쓰지 말고 바로 박탈(剝脫)하여 병제(屛除; 제거)함을 써라. 만약 이 본분수각(本分手脚)이 방거(放去)하여 거둠이 없으매 오지 않는 것은(不來底) 하나하나 방광하며 현서(現瑞)하고 하나하나 삭적(削跡)하여 절종(絕蹤)하리니 기상(機上)에 마침내() 부정(不停)하고 어중(語中)에 가히 드러냄이 없다. 철저히 흔들어도 섞이지 않고 통신(通身; 온몸)을 쳐도 부서지지 않는다. 차도(且道)하라, 필경 이것(是箇)이 무엇이기에 이러한(恁麽) 영통(靈通)을 얻고 이러한 기특을 얻고 이러한 견확(堅確)을 얻는가. 제인자(諸仁者), ()의 면공(面孔; 鼻孔)을 알고자 함을 쉬고 거()의 명자(名字)를 둠()을 쓰지 말고 또한 거()의 소재를 찾지 말아라. 무슨 연고냐, ()는 소재가 없고 거는 명자가 없고 거는 면공(面孔)이 없다. 겨우 일념을 일으켜 추구함이 미진허(微塵許)와 같더라도 바로 십생오생(十生五生)을 격()하고 다시 관대(管帶)하여 사유하려고 한다면 더욱() 분분(紛紛)히 총잡(叢雜)함을 보리니 장시(長時)에 자유자재하게(放敎自由自在; 放敎使. ) 해 발()하려면 바로 발하고 주()하려면 바로 주함만 같지 못하다. 곧 천연(天然)이 천연이 아니며 곧 여여(如如)가 여여가 아니며 곧 담적(湛寂)이 담적이 아니며 곧 패괴(敗壞)가 패괴가 아니다. 생을 연모함이 없고(無生戀) 사를 두려워함이 없고(無死畏) 불을 구함이 없고(無佛求) 마를 두려워함이 없다(無魔怖). 보리(菩提)와 모이지() 않고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일법(一法)도 받지 않고 일법도 싫어하지 않고 재()도 없고 부재(不在)도 없고 리()도 아니고 불리(不離)도 아니다. 만약 능히 이와 같다면 석가는 스스로 석가며 달마는 스스로 달마임을 견득(見得)하리니 나의 심마완(甚麽椀)에 상간(相干; )되리오. 이러한 설화는 납승문하에서 추감(推勘)하여 가지고 오매 포군(布裙)과 망삽(芒靸; 억새로 만든 신)인지라 저() 사사(些些)한 이수(泥水)를 잡음()을 면하지 못한다. 어찌 하물며 너희 등 제인이 다시 말하되 이것(這箇)은 이 평실어구(平實語句)며 이것은 이 차별문정(差別門庭)이며 이것은 이 관려파비(關棙巴鼻)며 이것은 이 도안근진(道眼根塵)이다 하면서 갈마들며 서로 교습(敎習)함이 칠가촌(七家村) 속에서 구령을 전함(傳口令)과 상사하거늘 무슨 교섭이 있겠는가. 무사하니 진중(珍重)하라.

沾黏; 첨습(沾濕; 물기에 젖음)하고 점부(黏附; 붙이다).

點染; 본의(本義)는 회화(繪畫) 중 경물(景物)을 점철(點綴; 단장하다. 장식하다)하고 또 착색(著色)함을 가리킴. 후에 전의(轉義)하여 사작(寫作)할 때 문자를 수식(修飾)함이 됨. 불가에선 바로 불법의 본의를 천술(闡述)하지 않고 수식을 가함을 가리킴에 사용함. 북제(北齊) 안지추 안씨가훈 잡예(雜藝). 무열태자(武烈太子)는 오직 사진(寫眞)에 능했다. 좌상(坐上)의 빈객을 뜻 대로 점염(點染)하여 곧 몇 사람을 이루었다. 동자에게 묻자 모두 성명을 알았다.

甚麽椀; ()은 곧 완달구(椀躂丘)ㆍ완탈구(椀脫丘)의 생략이니 무슨(什麽) 동서(東西; 물건)인가, 무슨(什麽) 완의아(玩意兒; 완구)인가 라고 말함과 같음.

剝脫; 괄삭(刮削; 깎아 내다. 벗겨 내다).

七家村; 편벽(偏僻; 중심에서 떨어져 구석지다)한 작은 촌을 가리킴.

傳口令; 언구의 문답에 구니(拘泥; 구애)되거나 혹 공안의 고칙(古則)에 규전(糾纏; 서로 뒤얽힘)되어 실제상으론 모두 선법을 명오(明悟)하지 못함에 비유함. 구령(口令)은 당송시대 유행하던 주령(酒令)이니 그 사구(詞句)는 혹 고금의 시사(詩詞)로부터 채집하거나 혹은 민간의 요구령(繞口令; 중국 민간의 언어 유희) 등에 연계됨.

 

泉州尊勝有朋講師

本郡蔣氏子 丱歲試經 中選下髮 多歷敎肆 甞疏楞嚴維摩等經 學者宗之 每疑祖師直指之道 故多與禪衲遊 一日 謁開元 跡未及閫 心忽領悟 元出遂問 座主來作甚麽 師曰 不敢貴耳賤目 元曰 老老大大 何必如是 師曰 自是者不長 元曰 朝看華嚴 夜讀般若則不問 如何是當今一句 師曰 日輪正當午 元曰 閑言語更道來 師曰 平生仗忠信 今日任風波 然雖如是 祇如和尙恁麽道有甚交涉 須要新戒草鞋穿 元曰 這裏且放你過 忽遇達磨問 你作麽生道 師便喝 元曰 這座主 今日見老僧氣衝牛斗 師曰 再犯不容 元拊掌大笑

中選; 選舉或選擇時被選上 特指科舉應試時被錄取

敎肆; 講說佛經 解釋經義之所 屬禪宗以外的其他佛敎宗派

 

천주(泉州) 존승(尊勝) 유붕강사(有朋講師)

본군(本郡) 장씨(蔣氏)의 아들이다. 관세(丱歲; 어린 나이)에 시경(試經)하고 중선(中選)하여 하발(下髮)했다. 교사(敎肆)를 다력(多歷)했고 일찍이 릉엄ㆍ유마 등의 경을 소()했는데 학자들이 종앙(宗仰; )했다. 매양 조사의 직지지도(直指之道)를 의심한지라 고로 많이 선납(禪衲)과 더불어 노닐었다. 어느 날 개원(開元; 子琦)을 참알했는데 발자취가 문지방()에 미치지 아니하여서 마음이 홀연히 영오(領悟)했다. 개원(開元)이 나와서 드디어 묻되 좌주는 와서 무엇하려는가. 사왈 감히 귀이천목(貴耳賤目;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하지 않겠습니다. 원왈(元曰) 노로대대(老老大大)가 하필 이와 같은가. 사왈 자기를 옳다고 하는 자는 장(; 훌륭하다)하지 않습니다. 원왈(元曰) 아침에 화엄을 보고 밤에 반야를 읽음은 곧 묻지 않는다. 무엇이 이 당금(當今)1구인가. 사왈 일륜(日輪)이 바로 오()에 당했습니다. 원왈 쓸데없는 말이니 다시 말해 오너라. 사왈 평생 충신(忠信)에 기댔는데() 금일 풍파(風波)에 맡깁니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지여(祇如) 화상의 이러한 말씀이 무슨 교섭이 있겠습니까. 신계(新戒)가 짚신을 신음(穿)을 수요(須要)합니다. 원왈 저리(這裏)는 다만() 너의 허물을 방면(放免; )한다. 홀연히 달마의 물음을 만나면 네가 어떻게 말하겠는가. 스님이 바로 할했다. 원왈 이 좌주가 금일 노승을 보더니 기()가 우두(牛斗)를 찌르는구나(). 사왈 재범(再犯)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개원이 부장(拊掌)하며 크게 웃었다.

中選; 선거 혹 선택 시 선상(選上; 뽑혀 오름)을 입음. 특히 과거 응시 시 녹취(錄取)를 입음을 가리킴.

敎肆; 불경을 강설하거나 경의를 해석하는 장소. 선종 이외의 기타 불교종파에 속함.

 

仰山偉禪師法嗣

潭州龍王山善隨禪師

僧問 如何是龍王境 師曰 水晶宮殿 曰 如何是龍王如意寶珠 師曰 頂上髻中 僧禮拜 師曰 莫道不如意好

 

담주(潭州) 용왕산(龍王山) 선수선사(善隨禪師)

승문 무엇이 이 용왕경(龍王境)입니까. 사왈 수정궁전(水晶宮殿)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용왕의 여의보주(如意寶珠)입니까. 사왈 정상(頂上)의 게(; 상투) 가운데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여의(如意)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다.

 

瑞州黃檗山祗園永泰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鐵鑄就 僧擬議 師曰 會麽 僧禮拜 師曰 何不早如此

 

서주(瑞州) 황벽산(黃檗山) 기원(祗園) 영태선사(永泰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쇠로 부어 만든다(鐵鑄就). 중이 의의(擬議)하자 사왈 아느냐. 중이 예배했다. 사왈 왜 일찍 이와 같지 못했느냐.

 

廬山慧日明禪師

上堂 不用求心 唯須息見 三祖大師 雖然回避金鉤 殊不知已呑紅線 慧日又且不然 不用求眞幷息見 倒騎牛兮入佛殿 牧笛一聲天地寬 稽首瞿曇眞箇黃面

 

여산(廬山) 혜일명(慧日明) 선사

상당(上堂) 마음을 구함을 쓰지() 말고 오직 견해를 쉼을 써라(). 3조 대사가 비록 그렇게 금구(金鉤)를 회피했지만 이미 홍선(紅線)을 삼킨 줄 너무 알지 못한다. 혜일(慧日)은 우차(又且) 그렇지 않다. ()을 구함과 아울러 견해를 쉼을 쓰지 않고/ 소를 거꾸로 타고 불전(佛殿)에 들어간다/ 목적(牧笛; 목동의 피리) 일성(一聲)에 천지가 넓나니()/ 구담(瞿曇)의 진개(眞箇) 황면(黃面)에 계수(稽首)한다.

 

福嚴感禪師法嗣

慶元府育王法達寶鑑禪師

饒州余氏子 僧問 不落階級處請師道 師曰 蠟人向火 曰 畢竟如何 師曰 薄處先穿

慶元府; 宋紹熙五年(1194) 寧宗卽位 明年改元慶元 以明州爲寧宗潛邸 遂以年號爲名 升明州爲慶元府 府治設在鄞縣(今浙江省寧波市區) 城東七十里有大梅山 唐代法常禪師入此山創建護聖寺 [百度百科 大明一統志]

 

경원부(慶元府) 육왕(育王) 법달(法達) 보감선사(寶鑑禪師)

요주(饒州) 여씨(余氏)의 아들이다. 승문 계급에 떨어지지 않는 곳을 청컨대 스님이 말하십시오. 사왈 납인(蠟人)이 향화(向火)한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얇은 곳을 먼저 꿴다(穿).

慶元府; 송 소희 5(1194) 영종이 즉위하자 명년에 경원으로 개원하고 명주(明州)가 영종의 잠저(潛邸)였기 때문에 드디어 연호로써 이름을 삼아 명주를 승격해 경원부라 했음. 부치(府治)는 은현(지금 절강성 영파시구)에 설치해 두었음. 성의 동쪽 70리에 대매산이 있으며 당대(唐代)의 법상선사(法常禪師)가 이 산에 들어가 호성사를 창건했음 [백도백과. 대명일통지].

 

雲蓋智禪師法嗣

安吉州道場法如禪師

衢州徐氏子 參雲蓋 悟汾陽十智同眞話 尋常多說十智同眞 故叢林號爲如十同也 水庵圓極皆依之 圓極甞贊之曰 生鐵面皮難湊泊 等閑擧步動乾坤 戲拈十智同眞話 不負黃龍嫡骨孫 上堂 知見立知 卽無明本 知見無見 斯卽涅槃 無漏眞淨 云何是中 更容他物 釋迦老子和身放倒 後代兒孫如何接續 要會麽 通玄不是人間世 滿目靑山何處尋

嫡骨孫; 嫡親孫兒 指第三代直系傳人

 

안길주(安吉州) 도량(道場) 법여선사(法如禪師)

구주(衢州) 서씨(徐氏)의 아들이다. 운개(雲蓋; 守智)를 참()해 분양(汾陽)의 십지동진화(十智同眞話)를 깨쳤다. 심상(尋常)에 십지동진을 많이 설한지라 고로 총림에서 호해 여십동(如十同)이라 했다. 수암(水庵)과 원극(圓極)이 모두 의지했다. 원극(圓極)이 일찍이 찬()하여 가로되 생철(生鐵)의 면피(面皮)라 주박(湊泊)하기 어렵나니/ 등한(等閑)히 거보(擧步)하매 건곤을 진동(振動; )한다/ 십지동진화를 희념(戲拈; 희롱으로 하다)하매/ 황룡(黃龍; 혜남)의 적골손(嫡骨孫)을 저버리지 않는다. 상당(上堂) 지견(知見)에 지()를 세우면 곧 무명의 근본이며 지견에 견()이 없어야 이것()이 곧 열반이다. 무루(無漏)의 진정(眞淨)이거늘 어찌(云何) 이 가운데 다시 타물(他物)을 용납하겠는가(릉엄경5). 석가노자(釋迦老子)가 몸마저(和身) 놓아 넘어졌다. 후대의 아손이 어떻게 접속(接續)하겠는가. 알고자 하느냐. 통현(通玄; 천태산에 通玄峰이 있음)은 이 인간세(人間世)가 아니거늘 만목(滿目)한 청산을 어느 곳에서 찾겠는가.

嫡骨孫; 적친(嫡親; 혈통이 가장 가까운 親屬)의 손아(孫兒; 손자)니 제3()의 직계의 전인(傳人)을 가리킴.

 

福州寶壽最樂禪師

古田人也 上堂 諸佛不眞實 說法度羣生 菩薩有智慧 見性不分明 白雲無心意 灑爲世間雨 大地不含情 能長諸草木 若也會得 猶存知解 若也不會 墮在無記 去此二途 如何卽是 海闊難藏月 山深分外寒

 

복주(福州) 보수(寶壽) 최락선사(最樂禪師)

고전(古田) 사람이다. 상당(上堂) 제불은 진실하지 않으면서 설법하여 군생을 제도하고 보살은 지혜가 있지만 견성(見性)이 불분명하다. 백운은 심의(心意)가 없지만 뿌려서() 세간의 비가 되고 대지(大地)는 정을 함유하지 않았지만 능히 모든 초목을 자라게 한다. 만약에 회득(會得)하면 오히려 지해(知解)가 존재하고 만약에 알지() 못하면 무기(無記)에 떨어져 있다. 2()를 떠나서 어찌해야 곧 옳으냐. 바다가 광활하지만 달을 감추기 어렵고 산이 깊지만 분외(分外; 過分. 特別)로 춥다.

 

紹興府石佛慧明解空禪師

僧問 如何是寶相境 師曰 三生鑿成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一佛二菩薩

紹興府; 南宋首都 宋朝建炎四年(1130) 高宗駐蹕越州 以紹奕世之宏休 興百年之丕緒之意 次年改爲紹興元年 升越州爲紹興府 定都紹興 府治所在地山陰會稽兩縣同城而治 元至元十三年(1276) 改爲紹興路 明洪武二年(1369) 復爲紹興府 淸繼明制 民國二年(1912) 廢府 山陰會稽合並爲紹興縣 [百度百科]

 

소흥부(紹興府) 석불(石佛) 혜명(慧明) 해공선사(解空禪師)

승문 무엇이 이 보상경(寶相境)입니까. 사왈 3()에 파서() 이루었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12보살이다.

紹興府; 소흥부(紹興府) 남송의 수도. 송조(宋朝) 건염 4(1130) 고종이 월주(越州)에 주필(駐蹕; 잠시 머묾)하면서 혁세(奕世; 여러 대)의 굉휴(宏休; 洪福)를 잇고() 백 년의 비서(丕緒; 국가의 대업)를 일으킬() 뜻을 세웠음. 다음해 소흥(紹興) 원년으로 고치고 월주를 승격해 소흥부로 삼고 소흥에 정도(定都)했음. 부치(府治)의 소재지는 산음(山陰)ㆍ회계(會稽) 양현(兩縣)을 동성(同城)으로 하여 다스렸음. 원 지원 13(1276) 고쳐 소흥로라 했고 명 홍무 2(1369) 다시 소흥부라 했으며 청은 명의 제도를 이었음. 민국 2(1912) ()를 폐하고 산음과 회계를 합병하여 소흥현으로 삼았음 [백도백과].

 

玄沙文禪師法嗣

福州廣慧達杲禪師

上堂 佛爲無心悟 心因有佛迷 佛心淸淨處 雲外野猿啼

 

복주(福州) 광혜(廣慧) 달고선사(達杲禪師)

상당 부처는 무심(無心)해야 깨닫고/ 마음은 부처가 있음으로 인해 미()한다/ 부처와 마음이 청정한 곳이여/ 구름 밖에서 야원(野猿)이 운다.

 

建隆慶禪師法嗣

平江府泗洲用元禪師

一日問建隆曰 臨濟在黃檗 三回問佛法大意 三回被打 意旨如何 語猶未了 被打一拂子 師頓領宗旨 開堂日 僧問 四衆雲臻 請師說法 師曰 有眼無耳朵 六月火邊坐 曰 一句截流 萬機頓息 師曰 聽事不眞 喚鐘作甕 問 朝參暮請 成得甚麽邊事 師曰 祇要你歇去 曰 早知燈是火 飯熟已多時 師曰 你鼻孔因甚麽著拄杖子穿却 曰 拗曲作直又爭得 師曰 且敎出氣 上堂 一二三四五 火裏蝍蟟呑却虎 六七八九十 水底泥牛波上立 一日一夜雨霖霖 無孔鐵鎚灑不入 灑不入著底急 百川洶湧須彌岌 八臂那吒撞出來 稽首讚歎道難及 咦 上堂 橫按拄杖 顧視大衆曰 今日平地上喫交 便下座

早知燈是火 飯熟已多時; 形容後悔莫及之樣子

 

평강부(平江府) 사주(泗洲) 용원선사(用元禪師)

어느 날 건륭(建隆; 昭慶)에게 물어 가로되 임제가 황벽에 있으면서 3회 불법의 대의를 물었다가 3회 피타(被打)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말이 아직 마치지 않았는데 1불자(拂子) 피타(被打)했다. 스님이 종지(宗旨)를 돈령(頓領; 문득 領解)했다. 개당일(開堂日) 승문 4()이 운진(雲臻; 운집)했으니 스님의 설법을 청합니다. 사왈 눈이 있으나 이타(耳朵; 귓불)가 없이 6월에 화변(火邊)에 앉았다. 가로되 1()로 흐름을 끊으니 만기(萬機)가 문득 쉽니다(). 사왈 듣는 일이 진()이 아니면 종을 일러 독()이라 한다. 묻되 조참모청(朝參暮請)하며 심마변사(甚麽邊事; 어느 쪽의 일)를 성득(成得)합니까. 사왈 다만 네가 헐거(歇去)함을 요한다. 가로되 등이 이 불인 줄 일찍 알았지만 밥이 익은 지 이미 많은 시간입니다(早知燈是火 飯熟已多時).사왈 너의 콧구멍이 무엇으로 인해 주장자에 뚫려버림(穿却)을 입었는가(). 가로되 굽은 것을 꺾어() 곧은 것으로 만듦을 또 어찌 얻겠습니까. 사왈 다만() 출기(出氣)하게 한다. 상당(上堂) 일이삼사오 화리(火裏)의 즉료(蝍蟟)가 뱀을 삼켜버렸다. 육칠팔구십 물밑의 이우(泥牛)가 파도 위에 섰다. 일일일야(一日一夜)에 비가 임림(霖霖; 장마가 지는 모양)한데 무공철추(無孔鐵鎚)에 뿌려도 들어가지 않는다. 뿌려도 들어가지 않아 잡는 것(著底)이 급하니 백천(百川)이 흉용(洶湧; 용솟음치다)하고 수미(須彌)가 위태하다(). 팔비나타(八臂那吒)가 치고() 나와서 계수(稽首)하고 찬탄하며 말해도 미치기 어렵다. (). 상당(上堂) 주장자를 횡안(橫按)하고 대중을 돌아보며 가로되 금일 평지 위에서 끽교(平地上喫交)했다. 바로 하좌했다.

早知燈是火 飯熟已多時; 후회막급의 양자를 형용함.

 

報本元禪師法嗣

平江府承天永安元正傳燈禪師

鄆州鄭氏子 上堂 天人羣生𩔗 皆承此恩力 大衆 有一人道我不承佛恩力 不居三界 不屬五行 祖師不敢定當 先佛不敢安名 你且道是箇甚麽人 良久曰 倚石巖前燒鐵鉢 就松枝上挂銅缾

 

평강부(平江府) 승천(承天) 영안(永安) 원정(元正) 전등선사(傳燈禪師)

운주(鄆州) 정씨(鄭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천인군생류(天人羣生𩔗)가 모두 이 은력(恩力)을 승수(承受)했다. 대중이여, 어떤 한 사람은 말하되 나는 부처의 은력을 승수하지 않았고 3()에 거주하지 않고 5(五行; 금ㆍ목ㆍ수ㆍ화ㆍ토.)에 속하지 않았나니 조사가 감히 정당(定當; 辨識. 判明)하지 못하고 선불(先佛)이 감히 안명(安名; 이름을 두다)하지 못한다. 너희가 그래 말하라, 이것(是箇)이 어떤 사람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석암(石巖) 앞에 기대어 철발(鐵鉢)을 불사르고 송지(松枝) 위로 나아가() 동병(銅缾)을 건다().

 

隆慶閑禪師法嗣

潭州安化啓寧聞一禪師

上堂 拈華微笑虛勞力 立雪齊腰枉用功 爭似老盧無用處 却傳衣鉢振眞風 大衆 且道那箇是老盧傳底衣鉢 莫是大庾嶺頭提不起底麽 且莫錯認定盤星 以拂子擊禪牀 下座

立雪齊腰; 二祖慧可向初祖達摩求法的故事

老盧; 指六祖慧能 師姓盧氏 有時代指禪宗 老 老練 富有經驗 如老手 老幹部

 

담주(潭州) 안화(安化) 계녕(啓寧) 문일선사(聞一禪師)

상당(上堂) 염화미소(拈華微笑)는 헛된() 노력(勞力)이며/ 입설제요(立雪齊腰)는 헛된() 용공(用功)이다/ 어찌 노로(老盧; 혜능)가 쓸 곳은 없지만/ 도리어 의발(衣鉢)을 전해 진풍(眞風)을 진작(振作)함과 같으랴. 대중이여, 그래 말하라 나개(那箇)가 이 노로(老盧)가 전한 의발인가. 이 대유령두(大庾嶺頭)에서 들어 일으키지 못한 것이 아닐까. 다만() 정반성(定盤星)을 착인(錯認)하지 말아라. 불자로써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立雪齊腰; 2조 혜가가 초조 달마를 향해 구법한 고사.

老盧; 6조 혜능을 가리킴. 스님의 성이 노씨(盧氏). 어떤 때는 선종을 대지(代指). ()는 노련하면서 경험이 풍부하게 있음이니 예컨대() 노수(老手)ㆍ노간부(老幹部).

 

三祖宗禪師法嗣

寧國府光孝惟爽禪師

上堂 今朝六月旦 一年已過半 奉報參玄人 識取孃生面 孃生面 薦不薦 鷺鷥飛入碧波中 抖擻一團銀繡線

寧國府; 作爲一級地方府始於南宋乾道二年(1166) 在此之前又名宣州 宣城郡 寧國郡 [百度百科]

 

영국부(寧國府) 광효(光孝) 유상선사(惟爽禪師)

상당(上堂) 금조(今朝)6월 단(; 초하루)이니 1년이 이미 반이 지났다. 참현인(參玄人)에게 봉보(奉報)하나니 양생면(孃生面)을 식취(識取)하라. 양생면을 천(; 領會)하느냐 불천(不薦)하느냐. 노사(鷺鷥; 해오라기)가 벽파(碧波) 중에 날아 들어가니 일단(一團; 한 덩이)의 은수선(銀繡線; 은색 수놓는 실)을 두수(抖擻; 털다)한다.

寧國府; 1급 지방부로 지어진 것은 남송 건도 2(1166)에 비롯하였음. 이 앞에 있어서는 또 이름이 선주(宣州)ㆍ선성군ㆍ영국군이었음 [백도백과].

 

泐潭英禪師法嗣

南嶽法輪齊添禪師

僧問 學人上來 乞師指示 師曰 汝適來聞皷聲麽 曰 聞 師曰 還我話頭來 僧禮拜 師曰 令人疑著 上堂 喝一喝曰 師子哮吼 又喝一喝曰 象王嚬呻 又喝一喝曰 狂狗趂塊 又喝一喝曰 鰕跳不出斗 乃曰 此四喝 有一喝堪與祖佛爲師 明眼衲僧試請揀看 若揀不出 大似日中迷路 上堂 良久曰 性靜情逸 乃喝一喝曰 心動神疲 遂顧左右曰 守眞志滿 拈拄杖曰 逐物意移 驀召大衆曰 見怪不怪 其怪自壞 靠拄杖 便下座

 

남악(南嶽) 법륜(法輪) 제첨선사(齊添禪師)

승문 학인이 올라왔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네가 아까 북소리를 들었느냐. 가로되 들었습니다. 사왈 나에게 화두를 송환해 오너라. 중이 예배했다. 사왈 사람으로 하여금 의착(疑著)하게 한다. 상당(上堂)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사자의 효후(哮吼). 또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상왕(象王)의 빈신(嚬呻)이다. 또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광구(狂狗)가 흙덩이를 쫓아간다(). 또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새우가 뛰어도 말을 벗어나지 못한다(鰕跳不出斗). 이에 가로되 이 4()에 어떤 1할은 가히 조불에게 스승이 되어 주나니 명안납승(明眼衲僧)은 시험 삼아 청하건대 가려 보아라(揀看). 만약 가려 내지 못한다면 일중(日中; 대낮)에 미로(迷路)함과 매우 흡사하다. 상당(上堂) 양구하고 가로되 성()이 고요하면 정()이 편안하다(). 이에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심()이 움직이면 신(; 정신)이 피곤하다. 드디어 좌우를 돌아보고 가로되 진()을 지키면 지()가 가득하다.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사물을 쫓으면 뜻이 이동한다(逐物意移). 갑자기()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괴이를 보고 괴이히 여기지 않으면 그 괴이가 스스로 무너진다. 주장자에 기대어() 바로 하좌했다.

 

泉州慧明雲禪師

僧問 般若海中 如何爲人 師曰 雲開銀漢逈 曰 畢竟如何 師曰 棒頭見血 問 毗婆尸佛早留心 直至如今不得妙 意旨如何 師曰 醜拙不堪當

 

천주(泉州) 혜명운(慧明雲) 선사

승문 반야해(般若海) 가운데 어떻게 위인(爲人)합니까. 사왈 구름이 개이니 은한(銀漢; 銀河)이 멀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방두(棒頭)에서 피를 본다. 묻되 비바시불(毗婆尸佛) 때 벌써 유심(留心)했으나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묘()를 얻지 못했다.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추졸(醜拙)을 감당하지 못한다.

 

保寧璣禪師法嗣

慶元府育王無竭淨曇禪師

嘉禾人也 晩歸錢塘之法慧 一日上堂 本自深山臥白雲 偶然來此寄閑身 莫來問我禪兼道 我是喫飯屙屎人 紹興丙寅夏 辭朝貴歸付院事 四衆擁眎 揮扇久之 書偈曰 這漢從來沒縫罅 五十六年成話覇 今朝死去見閻王 劍樹刀山得人怕 遂打一圓相 曰 一任諸方鑽龜打瓦 收足而化 火後設利如霰 門人持骨 歸阿育王山建塔

朝貴; 朝廷中的權貴

; 聲破 莊子庚桑楚 兒子終日嗥而嗌不嗄 和之至也

 

경원부(慶元府) 육왕(育王) 무갈(無竭) 정담선사(淨曇禪師)

가화(嘉禾) 사람이다. 만년에 전당(錢塘)의 법혜(法慧)로 돌아갔다. 어느 날 상당(上堂)했다. 본래 스스로 심산(深山) 백운에 누웠다가/ 우연히 여기로 와서 한신(閑身)을 기탁했다/ 나에게 와서 선()과 아울러() 도를 묻지 말지니/ 나는 이 밥 먹고 똥 누는 사람이다. 소흥(紹興) 병인(丙寅; 1146) 여름 조귀(朝貴)에게 고별하고 돌아와 원사(院事)를 분부(分付)했다. 사중(四衆)이 옹시(擁眎; 에워싸고 봄)하는데 부채를 휘두름이 오래되었다. 서게(書偈)하여 가로되 저한(這漢)은 종래로 봉하(縫罅; 꿰맨 틈)가 없나니/ 오십육 년 동안 화패(話覇; 說話霸者)를 이루었다/ 금조(今朝)에 사거(死去)하여 염왕(閻王)을 상견하면/ 검수도산(劍樹刀山)에 사람의 두려움()을 얻으리라. 드디어 1원상을 짓고() 가로되 사(; 목메다). 제방의 찬귀타와(鑽龜打瓦)에 일임한다. 발을 거두고 화()했다. 화장한 후 설리(設利)가 싸라기() 같았다. 문인(門人)이 뼈를 가지고 아육왕산으로 돌아와 건탑했다.

朝貴; 조정(朝廷) 중의 권귀(權貴).

; 성파(聲破; 음성이 깨어지다). 장자 경상초. 아이가 종일 울어도 목구멍이 쉬지() 않음은 화합의 지극함이다.

 

台州眞如戒香禪師

興化林氏子 上堂 孟冬改旦曉天寒 葉落歸根露遠山 不是見聞生滅法 當頭莫作見聞看

 

태주(台州) 진여(眞如) 계향선사(戒香禪師)

흥화(興化) 임씨(林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맹동(孟冬)의 개단(改旦)에 효천(曉天)이 차가운데/ 잎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 원산(遠山)이 드러났다/ 이 견문과 생멸하는 법이 아니니/ 당두(當頭; 當面)에 견문으로 지어 보지 말아라.

 

五祖常禪師法嗣

蘄州南烏崖壽聖楚淸禪師

僧問 亡僧遷化向甚麽處去 師曰 靈峯水急 曰 恁麽則不生也 師曰 蒼天蒼天

 

기주(蘄州) 남오애(南烏崖) 수성(壽聖) 청초선사(楚淸禪師)

승문 망승이 천화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영봉(靈峯)의 물이 급하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불생(不生)입니까. 사왈 창천(蒼天) 창천.

 

黃龍肅禪師法嗣

瑞州百丈維古禪師

上堂 大衆集定 拈拄杖示衆曰 多虛不如少實 卓一下 便起

 

서주(瑞州) 백장(百丈) 유고선사(維古禪師)

상당(上堂) 대중이 집정(集定)했다. 주장자를 잡고 시중(示衆)해 가로되 다허(多虛)가 소실(少實)만 같지 못하다. 한 번 치고() 바로 일어났다.

 

嘉定府月珠祖鑑禪師

僧請筆師語要 師曰 達磨西來 單傳心印 曹谿六祖 不識一字 今日諸方出世 語句如山 重增繩索 乃拍禪牀曰 於斯薦得 猶是鈍根 若也未然 白雲深處從君臥 切忌寒猿中夜啼

嘉定府; 地處四川省中部偏南 元升嘉定府爲嘉定路 治龍游縣 明太祖洪武元年(1368) 改爲直隸四川布政司嘉定州 撤龍游縣 [百度百科]

 

가정부(嘉定府) 월주(月珠) 조감선사(祖鑑禪師)

중이 스님의 어요(語要)를 필기(筆記; )하기를 청했다. 사왈달마가 서래하여 심인을 단전(單傳)했고 조계 6조는 1자도 알지 못했다. 금일 제방에서 출세하여 어구(語句)가 산과 같거늘 승삭(繩索)을 거듭 더하려는가(重增). 이에 선상을 두드리고 가로되 여기()에서 천득(薦得)하더라도 오히려 이 둔근(鈍根)이다. 만약에 그렇지 못할진대 백운 깊은 곳에 그대의 눕는 대로 좇거니와 한원(寒猿)이 중야(中夜)에 욺을 절기(切忌)한다.

嘉定府; 땅이 사천성 중부 편남(偏南; 궁벽한 남쪽)에 처함. ()이 가정부를 승격시켜 가정로로 삼았고 치소(治所)는 용유현. 명 태조 홍무 원년(1368) 고쳐 직례사천포정사가정주(直隸四川布政司嘉定州)로 만들고 용유현을 철수(撤收)했음 [백도백과].

 

石霜琳禪師法嗣

鼎州德山靜照庵什庵主

僧問 如何是庵中主 師曰 從來不相許 僧擬議 師曰 會卽便會本來底 不得安名著字 僧擬開口 師便打出 師室中常以拂子示衆曰 喚作拂子 依前不是 不喚作拂子 特地不識 汝喚作甚麽 因僧請益 師頌答之曰 我有一柄拂子 用處別無調度 有時挂在松枝 任他頭垂角露

調度; 調養身之一切資具也 度者 器物各自之度量 行事鈔資持記下釋鉢器篇 調度 謂調養具度 卽衆物之通名

 

정주(鼎州) 덕산(德山) 정조암(靜照庵) 십암주(什庵主)

승문 무엇이 이 암중주(庵中主)입니까. 사왈 종래로 상허(相許)하지 않는다. 중이 의의(擬議)하자 사왈 알려거든() 곧바로 본래의 것(本來底)을 알고 안명착자(安名著字)함을 얻지 말아라. 중이 개구(開口)하려고 하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쫓아내었다. 스님이 실중(室中)에서 늘 불자로써 시중(示衆)해 가로되 불자라고 불러 지으면 의전(依前)히 옳지() 못하고 불자라고 불러 짓지 않으면 특지(特地) 알지 못함이다. 네가 무엇이라고 불러 짓겠는가. 중이 청익함으로 인해 스님이 송()으로 답해 가로되 나에게 한 자루() 불자가 있나니/ 용처(用處)에 달리 조도(調度)가 없다/ 어떤 때 송지(松枝)에 걸려 있나니/ 그것의 머리가 처지고 뿔이 드러남에 맡긴다.

調度; 몸을 조양(調養)하는 일체의 자구(資具). ()란 것은 기물(器物) 각자의 도량(度量). 행사초자지기하 석발기편(釋鉢器篇). 조도(調度) 이르자면 조양구도(調養具度)니 곧 중물(衆物)의 통명(通名)이다.

 

華光恭禪師法嗣

郴州萬壽念禪師

僧問 龍華勝會 肇啓茲晨 未審彌勒世尊現居何處 師曰 猪肉案頭 曰 旣是彌勒世尊 爲甚麽却在猪肉案頭 師曰 不是弄潮人 休入洪波裏 曰 畢竟事又且如何 師曰 番人不繫腰 歲旦 上堂 往復無際 動靜一源 含有德以還空 越無私而逈出 昔日日 今日日 照無兩明 昔日風 今日風 鼓無兩動 昔日雨 今日雨 澤無兩潤 於其中間覓去來相而不可得 何故 自他心起 起處無蹤 自我心忘 忘無滅迹 大衆 若向這裏會去 與天地而同根 共萬物爲一體 若也未明 山僧爲你重重頌出 元正一 古佛家風從此出 不勞向上用工夫 歷劫何曾異今日 元正二 寂寥冷淡無滋味 趙州相喚喫茶來 剔起眉毛須瞥地 元正三 上來稽首各和南 若問香山山裏事 靈源一派碧如藍 遂喝一喝 下座

 

침주(郴州) 만수념(萬壽念) 선사

승문 용화(龍華)의 승회(勝會)가 비로소() 이 새벽(茲晨)에 열렸습니다(). 미심하오니 미륵세존이 현재 어느 곳에 거주합니까. 사왈 돼지고기 안두(猪肉案頭). 가로되 이미 이 미륵세존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저육안두(猪肉案頭)에 있습니까. 사왈 이 농조인(弄潮人)이 아니거든 홍파(洪波) 속에 들어가지 말아라(). 가로되 필경사(畢竟事)는 우차(又且) 어떻습니까. 사왈 번인(番人)은 허리를 매지() 않는다. 세단(歲旦) 상당(上堂) 왕복하며 가가 없고(無際) 동정(動靜)이 일원(一源)이다. 유덕(有德)을 싸서() 공으로 돌아가고(還空) 무사(無私)를 초월해 멀리 벗어났다(逈出). 석일(昔日)의 해와 금일의 해가 비춤에 양명(兩明)이 없고 석일의 바람과 금일의 바람이 두드림()에 양동(兩動)이 없고 석일의 비와 금일의 비가 혜택(惠澤; )이 양윤(兩潤)이 없다. 그 중간에 거래상(去來相)을 찾으매 불가득이다. 무슨 연고냐, 자타심(自他心)이 일어나매 기처(起處)가 종적이 없고 자아심(自我心)을 잊으매() 잊음이 자취()가 멸()했다. 대중이여, 만약 이 속을 향해 이회(理會; )하여 간다면 천지와 더불어 동근(同根)이며 만물과 함께 일체(一體)가 되거니와 만약에 밝히지 못한다면 산승이 너희를 위해 중중(重重) 송해 내겠다. 원정일(元正一)이여/ 고불의 가풍이 이로 좇아나온다/ 노고롭게 향상하여 공부(工夫)를 쓰지 말지니/ 역겁(歷劫)이 어찌 일찍이 금일과 다르리오. 원정이(元正二)/ 적료(寂寥)하고 냉담(冷淡)하여 자미(滋味)가 없다/ 조주(趙州)가 상환(相喚)하여 끽다하나니(喫茶來)/ 눈썹을 척기(剔起; 치켜 일으킴)하고 별지(瞥地)를 써라(). 원정삼(元正三)이여/ 상래(上來; 방금. 以上) 계수(稽首)하고 각기 화남(和南)했다/ 만약 향산(香山)의 산속의 일을 묻는다면/ 영원(靈源)의 일파(一派)가 쪽 같이 푸르다. 드디어 할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上藍順禪師法嗣

參政蘇轍居士

字子由 元豐三年以睢陽從事 左遷瑞州搉筦之任 是時 洪州上藍順禪師與其父文安先生有契 因往訪焉 相得歡甚 公咨以心法 順示搐鼻因緣 已而有省 作偈呈曰 中年聞道覺前非 邂逅相逢老順師 搐鼻徑參眞面目 掉頭不受別鉗鎚 枯藤破衲公何事 白酒靑鹽我是誰 慚愧東軒殘月上 一杯甘露滑如飴

搉筦; 主管專賣

白酒; 中國産酒類 大別有二種 卽黃酒白酒 白酒 又稱燒酒 酒質無色(或微黃)透明

靑鹽; 鹽的一種 多産於中國西南西北各地的鹽井鹽池之中 大而靑白 故稱 也稱戎鹽

 

참정(參政) 소철거사(蘇轍居士)

자가 자유(子由). 원풍(元豐) 3(1080) 휴양종사(睢陽從事)로서 서주(瑞州) 각관(搉筦)의 직임(職任)으로 좌천(左遷)되었다. 이때(是時) 홍주(洪州) 상람순(上藍順) 선사가 그 부친 문안선생(文安先生)과 더불어 약속(約束; )이 있어 인하여 왕방(往訪)했고 서로 환희가 심함을 얻었다. ()이 심법(心法)을 묻자() ()이 휵비인연(搐鼻因緣; 百丈野鴨)을 보였다. 이미 그러고선 성찰이 있었고 작게(作偈)하여 보여 가로되 중년(中年)에 문도(聞道)하고 전비(前非)를 깨달으니/ 해후(邂逅)하여 노순사(老順師)를 상봉했다/ 휵비(搐鼻)로 진면목을 경참(徑參)했으니/ 머리 흔들며 다른 겸추(鉗鎚)를 받지 않았다/ 고등(枯藤)과 파납(破衲)의 공()은 무슨 일이며/ 백주(白酒)와 청염(靑鹽)의 나는 이 누구인가/ 동헌(東軒)에 잔월(殘月)이 오름에 부끄럽나니(慚愧)/ 일배(一杯)의 감로(甘露)가 매끄럽기 엿(; 음이 이)과 같다.

搉筦; 전매(專賣)를 주관(主管).

白酒; 중국산 주류를 크게 나누면 2종이 있으니 곧 황주와 백주임. 백주는 또 명칭이 소주(燒酒)니 주질(酒質)이 무색(微黃)이며 투명함.

靑鹽; 소금의 일종이니 중국 서남과 서북 각지의 염정(鹽井)과 염지(鹽池) 가운데서 많이 산출됨. 크면서 청백(靑白)인지라 고로 일컬으며 또 명칭이 융염(戎鹽).

 

南嶽下十四世

黃龍新禪師法嗣

吉州禾山超宗慧方禪師

上堂 擧拂子曰 看看 祇這箇 在臨濟則照用齊行 在雲門則理事俱備 在曹洞則偏正叶通 在潙山則暗機圓合 在法眼則何止唯心 然五家宗派 門庭施設則不無 直饒辯得倜儻分明去 猶是光影邊事 若要抵敵生死 則霄壤有隔 且超越生死一句作麽生道 良久曰 洎合錯下注脚

超越生死; 佛敎認爲有情衆生都處在生死輪回苦海裏 徹底超脫生死輪回 稱爲超越生死 禪家將此作爲參習目的 竝稱之爲本分大事

 

길주(吉州) 화산(禾山) 초종(超宗) 혜방선사(慧方禪師)

상당(上堂) 불자를 들고 가로되 보아라 보아라, 다만 이것(這箇)이 임제에 있으면 곧 조용(照用)을 제행(齊行)하고 운문에 있으면 곧 이사(理事)를 구비(俱備)하고 조동(曹洞)에 있으면 곧 편정(偏正)을 협통(叶通; 저본에 葉通으로 지었음)하고 위산에 있으면 곧 암기(暗機)가 원합(圓合)하고 법안에 있으면 곧 어찌 유심(唯心)에 그치겠는가. 그러하여 오가종파(五家宗派)가 문정(門庭)의 시설은 곧 없지 않으나 직요(直饒) 변득(辯得)하여 척당(倜儻)이 분명하더라도 오히려 이는 광영변사(光影邊事). 만약 생사에 저적(抵敵; 對敵)함을 요한다면 곧 하늘과 땅(霄壤)처럼 막힘이 있다. 다만() 생사를 초월(超越生死)하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거의 합당히 잘못 주각(注脚)을 내릴 뻔했다.

超越生死; 불교에서 인식하기를 유정중생(有情衆生)이 모두 생사윤회의 고해 속에 처해 있으며 철저히 생사윤회를 초탈함을 일컬어 초월생사라 함. 선가에서 이것을 가지고 참습(參習)의 목적으로 삼으며 아울러 이를 일컬어 본분대사라 함.

 

臨安府崇覺空禪師

姑孰人也 上堂 十方無壁落 四面亦無門 淨躶躶 赤灑灑 沒可把 遂擧拂子曰 灌溪老漢向十字街頭 逞風流 賣惺惺 道我解穿眞珠 解玉版 亂絲 卷筒絹 婬坊酒肆 瓦合輿臺 虎穴魔宮 那吒忿怒 遇文王興禮樂 逢桀紂逞干戈 今日被崇覺覷見 一場懡㦬 師頌野狐話曰 含血噀人 先污其口 百丈野狐 失頭狂走 驀地喚回 打箇筋斗

玉版; 珍貴的典籍

; 烏和切 水流回旋 水回

輿臺; 輿和臺是古代奴隸社會中兩個低的等級的名稱 後來泛指奴僕及地位低下的人 [百度漢語]

瓦合; 形容臨時湊合

 

임안부(臨安府) 숭각공(崇覺空) 선사

고숙(姑孰) 사람이다. 상당(上堂) 시방에 벽락(壁落)이 없고 사면에 또한 문이 없다. 정나라(淨躶躶)하고 적쇄쇄(赤灑灑)하여 가히 잡을 데가 없다. 드디어 불자를 들고 가로되 관계(灌溪) 노한이 십자가두를 향해 풍류를 자랑하고() 성성(惺惺)을 팔면서 말하되 내가 진주(眞珠)를 꿸 줄 알고 옥판(玉版)을 알고 난사(亂絲)를 돌리고() 통견(筒絹)을 말고() 음방(婬坊)과 주사(酒肆)에서 여대(輿臺)와 와합(瓦合)하고 호혈(虎穴)과 마궁(魔宮)에서 나타(那吒)가 분노(忿怒)한다. 문왕(文王)을 만나면 예악을 일으키고 걸주(桀紂)를 만나면 간과(干戈)를 자랑()한다. 금일 숭각(崇覺)이 처견(覷見)함을 입어 일장마라(一場懡㦬). 스님이 야호화(野狐話)를 송해 가로되 피를 머금어 사람에게 뿜으면()/ 먼저 그 입을 더럽힌다/ 백장의 야호가/ 머리를 잃고 광주(狂走)한다/ 맥지(驀地; 갑자기)에 불러 돌이키니/ () 근두(筋斗)를 짓는다().

玉版; 진귀한 전적(典籍).

; 오화절(烏和切; ). 물이 흘러 회선(回旋). 물이 돎(水回).

輿臺; (輿)와 대()는 이 고대 노예사회 중 두 개의 낮은 등급의 명칭임. 후래에 널리 노복(奴僕) 및 지위가 낮은 사람을 가리켰음 [백도한어].

瓦合; 임시로 주합(湊合; 모이어 합함)함을 형용.

 

潭州上封祖秀禪師

常德府何氏子 上堂 枯木巖前夜放華 鐵牛依舊臥煙沙 儂家鞭影重拈出 擊拂子曰 一念回心便到家 遂喝一喝 下座

常德府; 宋孝宗(在位1163-1189)卽位之前 爲普安郡王時 曾在鼎州任常德軍節度使 故鼎州爲孝宗潛藩 孝宗卽位後 便將鼎州升格爲常德府 八年(1172) 復爲鼎州 [百度百科]

 

담주(潭州) 상봉(上封) 조수선사(祖秀禪師)

상덕부(常德府) 하씨(何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고목암전(枯木巖前)에서 밤에 방화(放華)하고 철우가 의구히 연사(煙沙)에 누웠다. 농가(儂家)가 편영(鞭影)을 거듭 염출(拈出)하니, 불자를 치고 가로되 일념에 회심(回心)하여 바로 도가(到家)한다. 드디어 할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常德府; 송효종(재위 1163-1189)이 즉위하기 전 보안군왕(普安郡王)이 되었을 때 일찍이 정주(鼎州)에 있으면서 상덕군절도사에 임명된지라 고로 정주는 효종의 잠번(潛藩)이 됨. 효종이 즉위한 후 곧 정주를 가져다 승격하여 상덕부로 삼았음. 9(1172) 다시 정주로 삼았음 [백도백과].

 

嘉定府九頂寂惺惠泉禪師

僧問 心迷法華轉 心悟轉法華 未審意旨如何 師曰 風暖鳥聲碎 日高華影重 上堂 昔日雲門有三句 謂函蓋乾坤句 截斷衆流句 隨波逐浪句 九頂今日亦有三句 所謂饑來喫飯句 寒卽向火句 困來打睡句 若以佛法而論 則九頂望雲門 直立下風 若以世諦而論 則雲門望九頂 直立下風 二語相違 且如何是九頂爲人處

 

가정부(嘉定府) 구정(九頂) 적성(寂惺) 혜천선사(惠泉禪師)

승문 마음이 미()하면 법화(法華)에 굴리고() 마음이 깨치면 법화를 굴린다(惠能語). 미심하오니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바람이 따스하니 조성(鳥聲)이 부서지고 해가 높으니 화영(華影)이 두텁다(). 상당(上堂) 석일(昔日) 운문이 3구가 있었으니 이르자면 함개건곤구(函蓋乾坤句)ㆍ절단중류구(截斷衆流句)ㆍ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 구정(九頂)도 금일 또한 3구가 있다. 이른 바 주리면 끽반하는 구(饑來喫飯句)ㆍ추우면 곧 향화하는 구(寒卽向火句)ㆍ피곤하면 타수하는 구(困來打睡句). 만약 불법으로써 논하자면 곧 구정이 운문을 바라보매 바로() 하풍(下風; 下位)에 서지만 만약 세제(世諦)로써 논하자면 곧 운문이 구정을 바라보매 바로 하풍에 선다. 2()가 상위(相違)하니 또() 무엇이 이 구정이 위인(爲人)하는 곳인가.

 

嘉興府華亭性空妙普庵主

漢州人 久依死心獲證 乃抵秀水 追船子遺風 結茅靑龍之野 吹鐵笛以自娛 多賦詠 得之者必珍藏 其山居曰 心法雙忘猶隔妄 色塵不二尙餘塵 百鳥不來春又過 不知誰是住庵人 又警衆曰 學道猶如守禁城 晝防六賊夜惺惺 中軍主將能行令 不動干戈治太平 又曰 不耕而食不蠶衣 物外淸閑適聖時 未透祖師關棙子 也須存意著便宜 又曰 十二時中莫住工 窮來窮去到無窮 直須洞徹無窮底 踏倒須彌第一峯

 

가흥부(嘉興府) 화정(華亭) 성공(性空) 묘보암주(妙普庵主)

한주(漢州) 사람이다. 오랫동안 사심(死心)에게 의지하여 획증(獲證)했다. 이에 수수(秀水)에 다다라 선자(船子; 德誠)의 유풍(遺風)을 쫓았다(). 청룡(靑龍)의 들에 결모(結茅)하고 철적(鐵笛)을 불며 스스로 오락(娛樂; )했는데 부영(賦詠)이 많았고 이를 얻는 자는 반드시 진장(珍藏; 珍重收藏)했다. 그 산거(山居)에 가로되 심법(心法)을 쌍망(雙忘)해도 오히려() 격망(隔妄)했고/ 색진(色塵)이 불이(不二)라도 오히려() 여진(餘塵)이다/ 백조(百鳥)가 오지 않고 봄은 또 지났는데/ 누가 이 주암인(住庵人)인 줄 알지 못하겠네. 또 경중(警衆)하여 가로되 학도(學道)는 마치 금성(禁城; 宮城)을 지킴과 같나니/ 낮엔 육적(六賊)을 방비하고 밤엔 성성(惺惺)하라/ 중군(中軍)의 주장(主將)이 능히 행령(行令)하면/ 간과(干戈)를 움직이지 않고 태평을 다스린다. 우왈(又曰) 경작(耕作; )하지 않고 먹고 양잠(養蠶; )하지 않고 옷 입나니/ 물외(物外)에 청한(淸閑)하여 성시(聖時; 聖明의 때)에 알맞다()/ 조사의 관려자(關棙子)를 투과하지 못했다면/ 또한 꼭 뜻을 두어() 편의(便宜)에 붙어라. 우왈(又曰) 십이시(十二時) 중에 공()에 머물지 말고/ 궁래궁거(窮來窮去)하여 무궁(無窮)에 이르거라/ 바로() 꼭 무궁한 것(無窮底)을 통철(洞徹)해야/ 수미(須彌)의 제일봉(第一峯)을 답도(踏倒)하리라.

 

建炎初 徐明叛 道經烏鎭 肆殺戮 民多逃亡 師獨荷䇿而往 賊見其偉異 疑必詭伏者 問其來 師曰 吾禪者 欲抵密印寺 賊怒 欲斬之 師曰 大丈夫要頭便斫取 奚以怒爲 吾死必矣 願得一飯以爲送終 賊奉肉食 師如常齋出生畢 乃曰 孰當爲我文之以祭 賊笑而不答 師索筆大書曰 嗚呼 惟靈勞我以生 則大塊之過 沒我以壽 則陰陽之失 乏我以貧 則五行不正 困我以命 則時日不吉 吁哉 至哉 賴有出塵之道 悟我之性 與其妙心 則其妙心 孰與爲隣 上同諸佛之眞化 下合凡夫之無明 纖塵不動 本自圓成 妙矣哉 妙矣哉 日月未足以爲明 乾坤未足以爲大 磊磊落落 無罣無礙 六十餘年 和光混俗 四十二臘 逍遙自在 逢人則喜 見佛不拜 笑矣乎 笑矣乎 可惜少年郞 風流太光彩 坦然歸去付春風 體似虛空終不壞 尙饗 遂擧箸飫䬸 賊徒大笑 食罷 復曰 劫數旣遭離亂 我是快活烈漢 如今正好乘時 便請一刀兩段 乃大呼 斬斬 賊方駭異 稽首謝過令衛而出 烏鎭之廬舍免焚 實師之惠也 道俗聞之愈敬

詭伏; 奸詐而隱藏不露

出生; 生飯之異名 出衆生食之略 僧人在食前分出少量飯食以示施給衆生與諸鬼神衆 稱爲出生 而非指未經煮熟之飯

大塊; 大自然 大地 世界 莊子齊物論 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成玄英疏 大塊者 造物之名 亦自然之稱也 禪林疏語考證三 莊子曰 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磊磊落落; 壯偉貌 形容大丈夫相 從容錄第四十五則曰 巍堂磊落 皆大丈夫相

和光混俗; 亦作混俗和光 混同塵俗 不顯鋒芒 指悟道者不離塵俗 持平常心 一切時中 常顯機用

離亂; 變亂 常指戰亂

 

건염(建炎; 1127-1130) 초 서명(徐明)이 반란(叛亂; )했다. 도로가 오진(烏鎭)을 경유(經由; )하며 방자(放恣; )하게 살육(殺戮)했고 백성이 많이 도망(逃亡)했다. 스님이 홀로 지팡이를 지고(荷䇿) 갔다. 도적들이 그 위이(偉異)함을 보고는 의심하기를 반드시 궤복자(詭伏)이리라 하고 그 옴을 묻자 사왈 나는 선자(禪者). 밀인사(密印寺)에 다다르려고 한다. 도적이 노하여 베려고 하자 사왈 대장부가 머리를 요하거든 바로 잘라() 취할 것이지 어찌하여() 노하느냐(怒爲). 내가 죽는 것은 필연(必然; )이다. 원컨대 일반(一飯)을 얻어 송종(送終)을 삼게 하라. 도적이 육식(肉食)을 바치자 스님이 상시(常時; )의 재()와 같이 출생(出生)을 마쳤다. 이에 가로되 누가() 마땅히 나를 위해 글로써 제사를 지내겠는가. 도적이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스님이 붓을 찾아 대서(大書)하여 가로되 오호(嗚呼), 오직 영()이 생으로써 나를 노고롭게 하니(勞我以生) 곧 대괴(大塊)의 허물이며 나이로써 나를 잠기게 하니(沒我以壽) 곧 음양의 잃음()이며 가난으로써 나를 모자라게 하니(乏我以貧) 곧 오행(五行)이 바르지 못함이며 목숨으로써 나를 지치게 하니(困我以命) 곧 시일이 길하지 못함이다. 우재(吁哉)로다, 지재(至哉)로다. 다행히() 출진지도(出塵之道)가 있어 나의 성을 깨닫게 한다(悟我之性). 그 묘심(妙心)과 더불면 곧 그 묘심이거늘 누가() 더불어 이웃하겠는가. 위로는 제불의 진화(眞化)와 함께하고() 아래론 범부의 무명과 합하여 섬진(纖塵)도 움직이지 않고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했다. 묘의재(妙矣哉)로다, 묘의재로다. 일월이 족히 밝음이 되지 못하고 건곤이 족히 큼이 되지 못하나니 뇌뢰낙락(磊磊落落)하고 무괘무애(無罣無礙)하다. 60여 년에 화광혼속(和光混俗)하고 42()에 소요(逍遙)하며 자재(自在)했다. 사람을 만나면 곧 기뻐했고 부처를 보면 예배하지 않았으니 소의호(笑矣乎; 우습다 하겠는가), 소의호아. 가석하다 소년랑(少年郞)이여 풍류가 너무 광채(太光彩)로구나. 탄연(坦然)히 귀거(歸去)하여 춘풍에게 부여(付與)하리니 체()가 허공과 같아서 마침내 무너지지 않는다. 상향(尙饗). 드디어 젓가락을 들어 어찬(飫䬸; 실컷 먹다)했다. 적도(賊徒)가 대소(大笑)했다. 식사를 마치자 다시 가로되 겁수(劫數)가 이미 이란(離亂)을 만났고 나는 이 쾌활한 열한(烈漢; 猛烈한 자)이다. 여금에 바로 좋은 승시(乘時)니 바로 청하건대 일도양단(一刀兩段)하라. 이에 크게 부르되 베어라, 베어라. 도적이 비야흐로 해이(駭異; 놀라며 이상하게 여김)하여 계수(稽首)하며 사과(謝過)하고 호위하게 해 내보냈다(令衛而出). 오진(烏鎭)의 여사(廬舍)가 면분(免焚)한 것은 실로 스님의 은혜였다. 도속(道俗)이 이를 듣고 더욱 공경했다.

詭伏; 간사하게 은장(隱藏)하여 드러내지 않음.

出生; 생반(生飯)의 다른 이름이며 출중생식(出衆生食)의 약칭임. 승인이 식전(食前)에 소량의 반식(飯食)을 분출(分出)하여 중생과 모든 귀신중(鬼神衆)에게 시급(施給)함을 보임을 일컬어 출생이라 하는데 자숙(煮熟; 삶아 익힘)을 경과하지 아니한 반식을 가리킴이 아님.

大塊; 대자연. 대지. 세계. 장자 제물론. 무릇 대괴(大塊)의 희기(噫氣; 1. 내쉬는 입김. 2. 하품)는 그 이름을 바람이라 한다. 성현영 소() 대괴란 것은 조물의 이름이다. 또한 자연의 명칭이다. 선림소어고증3. 장자에 가로되 대괴(大塊)가 나에게 형체를 실어 주고 나에게 생()으로써 노고롭게 하고 나에게 노()로써 편안하게 하고 나에게 사()로써 쉬게 한다.

磊磊落落; 장위(壯偉)한 모양. 대장부상을 형용. 종용록 제45칙에 가로되 외당(巍堂)과 뇌락(磊落)은 모두 대장부상이다.

和光混俗; 또한 혼속화광(混俗和光)으로 지음. 진속(塵俗)에 혼동(混同)하여 봉망(鋒芒)을 나타내지 않음이니 오도자(悟道者)가 진속(塵俗)을 떠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일체의 시중(時中)에 늘 기용(機用)을 나타냄을 가리킴.

離亂; 변란. 늘 전란을 가리킴.

 

有僧睹師見佛不拜歌 逆問曰 旣見佛 爲甚麽不拜 師掌之曰 會麽 云 不會 師又掌曰 家無二主 紹興庚申冬 造大盆 穴而塞之 修書寄雪竇持禪師曰 吾將水葬矣 壬戌歲 持至 見其尙存 作偈嘲之曰 咄哉老性空 剛要餧魚鼈 去不索性去 祇管向人說 師閱偈 笑曰 待兄來證明耳 令徧告四衆 衆集 師爲說法要 仍說偈曰 坐脫立亡 不若水葬 一省柴燒 二省開壙 撒手便行 不妨快暢 誰是知音 船子和尙 高風難繼百千年 一曲漁歌少人唱 遂盤坐盆中 順潮而下 衆皆隨至海濵 望欲斷目 師取塞戽水而回 衆擁觀水無所入 復乘流而往 唱曰 船子當年返故鄕 沒蹤跡處妙難量 眞風徧寄知音者 鐵笛橫吹作散場 其笛聲嗚咽 頃於蒼茫間 見以笛擲空而沒 衆號慕 圖像事之 後三日 於沙上趺坐如生 道俗爭往迎歸 留五日 闍維 設利大如菽者莫計 二鶴徘徊空中 火盡始去 衆奉設利靈骨 建塔于靑龍

蒼茫; 空闊遼遠 沒有邊際

 

어떤 중이, 스님이 불(; 불상)을 보고도 배가(拜歌)하지 않음을 보고() 맞이해() 물어 가로되 이미 견불(見佛)했거늘 무엇 때문에 불배(不拜)합니까. 스님이 그를 장(; 손바닥으로 침)하고 가로되 아느냐.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 스님이 또 장()하고 가로되 집에 2()가 없다. 소흥(紹興) 경신(庚申; 1140) 겨울 대분(大盆)을 건조(建造; )하여 굴을 뚫고() 그것을 채웠다(塞之). 수서(修書; 書信을 씀)하여 설두지(雪竇持) 선사에게 기탁해 가로되 내가 장차 수장(水葬)할 것이다. 임술세(壬戌歲; 1142) ()가 이르러 그가 아직() 생존했음을 보고 작게(作偈)하여 조롱(嘲弄; )해 가로되 돌재(咄哉)로다, 노성공(老性空)/ 굳이() 어별(魚鼈)에게 먹임()이려 했구나/ 가더라도() 색성(索性; 자성을 찾다)하여 가지 않고/ 다만 관대(管帶)하여 사람을 향해 설했구나. 스님이 열게(閱偈)하고 웃으며 가로되 형이 와서 증명하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사중(四衆)에게 두루 고하게 하였다. 대중이 모이자 스님이 법요를 설하고 이에 설게(說偈)해 가로되 좌탈입망(坐脫立亡)/ 수장(水葬)만 같지() 못하다/ 하나는 시소(柴燒; 섶으로 태움)를 줄이고()/ 둘은 개광(開壙)을 줄인다/ 살수(撒手)하고 바로 가니/ 쾌창(快暢)에 방애되지 않는다/ 누가 이 지음(知音)인가/ 선자화상(船子和尙)이다/ 고풍(高風)을 백천 년 잇기 어렵나니/ 일곡(一曲) 어가(漁歌)를 부르는 사람이 적다. 드디어 분중(盆中)에 도사리고() 앉아 조류(潮流) 따라() 내려갔다. 대중이 모두 따라 해빈(海濵; 바닷가)에 이르러 바라보며 단목(斷目; 極目. 望斷)하려고 했다. 스님이 채운 것을 취해 물을 퍼내며() 돌아왔다. 대중이 옹관(擁觀)하여 물이 들어갈 바가 없었다. 다시 흐름을 타고 가면서 창왈(唱曰) 선자(船子)가 당년(當年)에 고향으로 돌아가니/ 종적이 없는 곳이 묘하여 사량하기 어렵다/ 진풍(眞風)을 두루 지음자(知音者)에게 기탁하나니/ 철적(鐵笛)을 횡취(橫吹)하며 산장(散場)이 되었다. 그 피리 소리가 오열(嗚咽)했고 창망(蒼茫) 사이에 기울었다(). 보매 피리를 허공에 던지고 잠겼다. 대중이 호모(號慕; 부르짖으며 그리워함)했고 상을 그려(圖像) 섬겼다. 3일 후에 모래 위에 가부(趺坐)했는데 산 것과 같았다. 도속(道俗)이 다투어 가서 맞이해 돌아왔고 5일 동안 머물렀다가 사유(闍維)했다. 설리(設利)가 크기가 콩과 같은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두 학이 공중에 배회(徘徊)했고 불이 다하자(火盡) 비로소 떠났다. 대중이 설리(設利)와 영골(靈骨)을 받들어 청룡에 건탑했다.

蒼茫; 공활(空闊)하고 요원(遼遠). 변제(邊際)가 있지 않음.

 

嚴州鍾山道隆首座

桐廬董氏子 於鍾山寺得度 自遊方所至 耆衲皆推重 晩抵黃龍 死心延爲座元 心順世 遂歸隱鍾山 慕陳尊宿高世之風 掩關不事事 日鬻數籰自適 人無識者 手常穿一襪 凡有禪者至 提以示之曰 老僧這襪 著三十年了也 有寺僧戲問 如何是無諍三昧 師便掌

耆衲; 年高望重的僧人

座元; 又作首座 第一座 卽僧堂內座位之元首

 

엄주(嚴州) 종산(鍾山) 도륭수좌(道隆首座)

동려(桐廬) 동씨(董氏)의 아들이다. 종산사(鍾山寺)에서 득도(得度)했고 유방(遊方)함으로부터 이르는 곳에 기납(耆衲)이 모두 추중(推重)했다. 만년에 황룡에 다다르자 사심(死心)이 맞이해 좌원(座元)으로 삼았다. 사심이 순세(順世)하자 드디어 종산(鍾山)에 귀은(歸隱)했다. 진존숙(陳尊宿)의 고세지풍(高世之風; 세상에서 뛰어난 풍모)을 흠모해 엄관(掩關)하고 사무에 종사하지 않았다(不事事). 날마다 몇 자새(; 자새 확)를 팔아서(; 팔 육) 자적(自適)했고 사람이 아는 자가 없었다. 손에 늘 하나의 버선(; 버선 말)을 신고(穿) 무릇 선자(禪者)가 이름이 있으면 들어 보이며 가르되 노승이 이 버선을 신은() 30년이다. 어떤 사승(寺僧)이 희롱으로 묻되 무엇이 이 무쟁삼매(無諍三昧)입니까. 스님이 바로 장()했다. .

耆衲; 나이가 많고 명망이 높은 승인.

座元; 또 수좌ㆍ제1좌로 지음. 곧 승당 내 좌위(座位)의 원수(元首).

 

楊州齊謐首座

本郡人也 死心稱爲飽參 諸儒屢以名山致之 不可 後示化於潭之谷山 異跡頗衆 門人甞繪其像 請贊 爲書曰 箇漢灰頭土面 尋常不欲露現 而今寫出人前 大似虛空著箭 怨怨 可惜人間三尺絹

 

양주(楊州) 제밀수좌(齊謐首座)

본군(本郡) 사람이다. 사심(死心)이 일컬어 포참(飽參)이라 했다. 여러 유자(儒者; )가 여러 차례() 명산(名山)으로써 불렀으나(致之) 불가했다. 후에 담()의 곡산(谷山)에서 시화(示化; 遷化를 보임)했고 이적(異跡)이 자못 많았다(). 문인(門人)이 일찍이 그 상()을 그려() 청찬(請贊)하자 글을 써() 가로되 개한(箇漢; 이 자)이 회두토면(灰頭土面)하여/ 심상(尋常)에 노현(露現)하려 하지 않았다/ 이금(而今)에 인전(人前)에 사출(寫出)하니/ 허공에 화살을 붙임()과 대사(大似)하다/ 원망한다(), 원망한다/ 인간의 세 척 비단이 가히 아깝다.

 

空室道人智通者

龍圖范珣女也 幼聰慧 長歸丞相蘇頌之孫悌 未幾厭世相 還家求祝髮 父難之 遂淸修 因看法界觀 頓有省 連作二偈見意 一曰 浩浩塵中體一如 縱橫交互印毗盧 全波是水波非水 全水成波水自殊 次曰 物我元無異 森羅鏡像同 明明超主伴 了了徹眞空 一體含多法 交參帝網中 重重無盡處 動靜悉圓通 後父母俱亡 兄涓領分寧尉 通偕行 聞死心名重 往謁之 心見知其所得 便問 常啼菩薩賣却心肝 敎誰學般若 通曰 你若無心我也休 又問 一雨所滋 根苗有異 無陰陽地上生箇甚麽 通曰 一華五葉 復問 十二時中向甚麽處安身立命 通曰 和尙惜取眉毛好 心打曰 這婦女亂作次第 通禮拜 心然之 於是道聲籍甚

淸修; (操行)潔美 二指在家修習佛法 此指二

法界觀; 證入華嚴經所說之法界之觀法也 華嚴家之初祖杜順修之而立三重 一眞空觀 二理事無礙觀 三周徧含容觀

常啼菩薩賣却心肝; 祖庭事苑五 常啼賣心 般若三百九十八云 爾時 常啼往東方法涌菩薩 求學般若 當以何物而爲供養 然我貧匱 無有花香上妙供具 我今應自賣身 以求價直 持用供養 遂入市肆中高聲唱言 我今自賣 誰欲買人 時天帝釋言 我當試之 化爲婆羅門身 詣常啼所言 汝今何緣憂愁不樂 答言 我今貧乏 無諸財寶 愛重法故 欲自賣身 徧此城中 無相問者 曰 我於今者正欲祠天 不用人身 但須人血人髓人心 頗能賣否 曰 仁所買者 我悉能賣 卽伸右手 執取利刀 刺己左臂 令出其血 復割右髀 皮肉置地 破骨出髓 復趣牆邊 欲剖心出 天帝復形 以至平復如本 常啼菩薩; 梵名薩陀波倫 按智度論九十六云 問 何以名薩陀波倫(薩陀秦言常 波倫名啼) 是因緣得名字耶 答 有人言 其少時喜啼 故名常啼 有人言 此菩薩行大悲柔軟故 見衆生在惡世貧苦老病憂苦 爲之悲泣 是故衆人號爲薩陀波倫 有人言 是菩薩求佛道故 憂愁啼哭七日七夜 是故天龍鬼神號曰常啼

籍甚; 盛大 盛多

 

공실도인(空室道人) 지통(智通)이란 자는

용도(龍圖; 龍圖閣 學士) 범순(范珣)의 딸이다. 어릴 적에 총혜(聰慧)했고 장성(長成; )하자 승상 소송(蘇頌)의 손자 제()에게 시집갔다(). 미기(未幾)에 세상((世相)을 싫어해() 환가(還家)하여 축발(祝髮)을 요구했으나 부친이 곤란하게 여겼다. 드디어 청수(淸修)했다. 법계관(法界觀)을 봄으로 인해 문득 성찰이 있었다. 연달아 2게를 지어 뜻을 보였다. 일왈(一曰) 호호(浩浩)한 진중(塵中)에 체()가 일여(一如)/ 종횡으로 교호(交互)하며 비로(毗盧)를 인() 친다/ 전파(全波)가 이 수()지만 파()는 수()가 아니며/ 전수(全水)가 파()를 이루지만 수()가 스스로 다르다(). 차왈(次曰) 물아(物我)가 원래 다름이 없고/ 삼라(森羅)가 경상(鏡像)과 같다/ 명명(明明)히 주반(主伴)을 초월했고/ 요료(了了)히 진공(眞空)에 통했다()/ 일체(一體)가 다법(多法)을 포함했고/ 제망(帝網) 가운데 교참(交參)한다/ 중중(重重) 무진(無盡)한 곳에/ 동정(動靜)이 모두() 원통(圓通)한다. 후에 부모가 모두 사망했고 형() ()은 분녕(分寧)을 다스리는() ()였다. 지통(智通)이 함께 가다가(偕行) 사심(死心)의 명성이 존중(尊重)됨을 듣고서 가서 예알했다. 사심이 그의 소득을 견지(見知)하고 바로 묻되 상제보살이 심간을 매각한(常啼菩薩賣却心肝) 것은 누구로 하여금 반야를 배우게 했음인가. 통왈(通曰) 네가 만약 무심하면 나도 또한 쉰다. 또 묻되 일우(一雨)가 불리는 바(所滋)에 근묘(根苗)가 다름이 있거니와 음양이 없는 지상(地上)에 저() 무엇이 나는가. 통왈 일화에 오엽입니다(一華五葉). 다시 묻되 12시 중에 어느 곳을 향해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가. 통왈 화상은 미모(眉毛)를 석취(惜取)해야 좋을 것입니다. 사심이 때리고 가로되 이 부녀(婦女)가 어지럽게 차제(次第)를 짓는구나. 지통이 예배했다. 사심이 그렇다 했고 이에 도성(道聲)이 자심(籍甚)했다.

淸修; 1. (操行)이 결미(潔美). 2. 재가(在家)하며 불법을 수습(修習)함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法界觀; 화엄경에서 설한 바 법계에 증입(證入)하는 관법임. 화엄가의 초조 두순(杜順)이 이를 닦아 3()을 세웠으니 1은 진공관이며 2는 이사무애관이며 3은 주편함용관임.

常啼菩薩賣却心肝; 조정사원5. 상제매심(常啼賣心) 반야 398에 이르되 이때 상제(常啼)가 동방의 법용보살(法涌菩薩)에게 가서 반야를 배움을 구했다. 마땅히 어떤 물건으로써 공양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나는 빈궤(貧匱; 는 없을 궤. 곧 가난해서 아무 것도 없음)하여 화향(花香)의 상묘(上妙)의 공구(供具)가 있지 않다. 내가 이제 마땅히 스스로 몸을 팔아 가치(價直; 는 값 치)를 구해, 가지고 써서 공양하리라. 드디어 시사(市肆; 는 저자 사니 곧 시장) 가운데 들어가서 고성(高聲)으로 불러 말하되 내가 이제 스스로 팔려고 한다. 누가 사려는 사람인가. 때에 천제석(天帝釋)이 말하되 내가 마땅히 그것을 시험하리라. 변화해 바라문의 몸이 되어 상제의 장소로 나아가 말하되 너는 지금 무엇 때문에 우수(憂愁)하여 즐겁지 않는가. 답해 말하되 내가 지금 빈핍(貧乏; 은 모자랄 핍)하여 모든 재보(財寶)가 없다. 법을 애중(愛重)하는 고로 스스로 몸을 팔려고 한다. 이 성중(城中)을 두루 다녔지만 상문(相問; 묻다)하는 자가 없다. 가로되 내가 금자(今者; 지금)에 바로 하늘에 제사하려고 한다. 사람의 몸을 쓰지 않고 단지 사람의 피와 사람의 골수와 사람의 심장()을 써야 한다. 자못 능히 팔겠는가. 가로되 인(; 상대의 경칭)이 사려는 바의 것을 내가 다 능히 팔겠다. 곧 우수(右手)를 펴 이도(利刀)를 집취(執取)해 자기의 왼팔을 찔러 그 피가 나오게 하고 다시 오른쪽 넓적다리를 베어 피육(皮肉)을 땅에 놓고 뼈를 부수어 수()를 내고 다시 담장 가로 나아가 심장을 도려내려고 했다. 천제(天帝)가 형상(形象)을 회복(回復)하자 이지(以至; 내지) 평복(平復)하여 본래와 같았다. 常啼菩薩; 범명이 살타파륜(薩陀波倫; Sadaprarudita). 지도론96을 안험컨대 이르기를 묻되 무엇 때문에 이름이 살타파륜(薩陀波倫; 살타는 秦言으로 이며 파륜은 이름이 )인가. 이는 인연으로 명자(名字)를 얻었는가. 답하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가 소시(少時)에 울기를 좋아한지라 고로 이름이 상제(常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보살은 대비(大悲)의 유연(柔軟)을 행하는 고로 중생이 악세(惡世)에 있으면서 빈고(貧苦)ㆍ노병(老病)ㆍ우고(憂苦)함을 보고 비읍(悲泣)한지라 이런 고로 중인이 호해 살타파륜이라 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보살은 불도를 구하는 고로 77(七日七夜) 동안 우수(憂愁)하며 제곡(啼哭)한지라 이런 고로 천룡(天龍)과 귀신이 호해 가로되 상제라 했다.

籍甚; 성대함. 성다(盛多).

 

政和間居金陵 甞設浴於保寧 揭榜于門曰 一物也無 洗箇甚麽 纖塵若有 起自何來 道取一句子玄 乃可大家入浴 古靈祇解揩背 開士何曾明心 欲證離垢地時 須是通身汗出 盡道水能洗垢 焉知水亦是塵 直饒水垢頓除 到此亦須洗却 後爲尼 名惟久 挂錫姑蘇之西竺 緇白日夕師問 得其道者頗衆 俄示疾書偈 趺坐而終 有明心錄行於世

離垢地; 菩薩修行五十二階位中十地位之第二位 成就戒波羅蜜 斷修惑 除毁犯之垢 使身淸淨 故云離垢地

 

정화(政和; 1111-1117) 간 금릉에 거주했다. 일찍이 보녕(保寧)에 욕실(浴室; )을 시설하고 문에 방()을 걸어() 가로되 일물(一物)도 없거늘 저() 무엇을 씻느냐. 섬진(纖塵)이 만약 있다면 어디로부터 일어나 오는가. 일구자(一句子)를 도취(道取)해 현()해야 이에 가히 대가(大家)가 입욕(入浴)한다. 고령(古靈; 神贊)은 다만 개배(揩背; 등을 문지르다)할 줄만 알았거늘 개사(開士)가 어찌 일찍이 명심(明心)했겠는가. 이구지(離垢地)를 증득하고 싶을 때 모름지기 이 온몸(通身)에서 땀을 내야 한다. 모두() 말하기를 물이 능히 세구(洗垢)한다지만 어찌() 물도 또한 이 진()임을 알겠는가. 직요(直饒) 물과 때를 돈제(頓除)하더라도 여기에 이르러선 또한 세각(洗却)함을 써야() 한다. 후에 니()가 되었고 이름이 유구(惟久). 고소(姑蘇)의 서축(西竺)에 괘석(挂錫; 錫杖을 걸다)했는데 치백(緇白)이 일석(日夕)으로 사사(師事; )하며 물었고 그의 도를 얻은 자가 자못 많았다(). 갑자기 시질(示疾)하더니 서게(書偈)하고 부좌(趺坐)하여 마쳤다. 명심록(明心錄)이 있어 세상에 행한다.

離垢地; 보살이 수행하는 52계위(階位) 10지위의 제3. 계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修惑)을 끊고 훼범(毁犯)의 구()를 제거하여 몸으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이구지(離垢地).

 

黃龍淸禪師法嗣

潭州上封佛心才禪師

福州姚氏子 幼得度受具 遊方至大中 依海印隆禪師 見老宿達道者看經 至一毛頭師子 百億毛頭一時現 師指問曰 一毛頭師子作麽生得百億毛頭一時現 達曰 汝乍入叢林 豈可便理會許事 師因疑之 遂發心領淨頭職 一夕汛掃次 印適夜參 至則遇結座 擲拄杖曰 了卽毛端呑巨海 始知大地一微塵 師豁然有省 及出閩 造豫章黃龍山 與死心機不契 乃參靈源 凡入室 出必揮淚 自訟曰 此事我見得甚分明 祇是臨機吐不出 若爲柰何 靈源知師勤篤 告以須是大徹 方得自在也 未幾 竊觀鄰案僧讀曹洞廣錄 至藥山採薪歸 有僧問 甚麽處來 山曰 討柴來 僧指腰下刀曰 鳴剝剝 是箇甚麽 山㧞刀作斫勢 師忽欣然 摑鄰案僧一掌 揭簾趨出 衝口說偈曰 徹 徹 大海乾枯 虛空迸裂 四方八面絕遮攔 萬象森羅齊漏泄 後分座於眞乘 應上封之命 屢遷名刹

許事; 這樣的事情

淨頭; 又作圊頭 禪林掌廁所之僧也 淨頭之居所 稱淨頭寮

結座; 謂禪師上堂說法其終拈提古則 或擧偈語 而結一會也 [象器箋十一]

勤篤; 勤奮專一

鳴剝剝; 聲音響亮

衝口; 動口 衝 動也

 

담주(潭州) 상봉(上封) 불심재(佛心才; 本才) 선사

복주(福州) 요씨(姚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득도(得度)하고 수구(受具)했다. 유방(遊方)하다가 대중(大中)에 이르러 해인륭(海印隆) 선사에게 의지했다. 노숙(老宿) 달도자(達道者)가 간경(看經)함을 보았는데 일모두(一毛頭) 사자가 백억모두(百億毛頭)에 일시에 나타난다 함에 이르러 스님이 가리키며 문왈(問曰) 일모두(一毛頭) 사자가 어찌하여 백억모두(百億毛頭)에 일시에 나타남을 얻습니까. 달왈(達曰) 너는 처음() 총림에 들어왔거늘 어찌 가히 바로 허사(許事; 이러한 일)를 이회(理會)하겠는가. 스님이 인하여 의심했다. 드디어 발심하여 정두직(淨頭)을 수령(受領)했다. 일석(一夕)에 신소(汛掃; 뿌리고 쓸다)하는 차에 해인(海印)이 마침() 야참(夜參)했는데 이르매() 곧 결좌(結座)를 만났다. 주장자를 던지고 가로되 깨치면() 곧 모단(毛端)이 거해(巨海)를 삼키나니 비로소 대지가 일미진(一微塵)인 줄 안다. 스님이 활연(豁然)히 성찰이 있었다. 및 민()에서 나와 예장(豫章) 황룡산으로 나아갔으나() 사심(死心)과 기()가 계합하지 못했다. 이에 영원(靈源)을 참()했다. 무릇() 입실했다가 나오면 반드시 눈물을 뿌렸다(揮淚). 자송(自訟; 自責)해 가로되 차사(此事)를 내가 견득(見得)함이 심히 분명하지만 다만 이 임기(臨機)하여 토해 내지 못하니 이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若爲柰何). 영원이 스님의 근독(勤篤)을 알고 고하되 모름지기 이 대철(大徹)해야 바야흐로 자재를 얻는다. 미기(未幾)에 인안(鄰案)의 중이 조동광록(曹洞廣錄)를 잃는 것을 훔쳐 보았다(竊觀). 약산(藥山)이 채신(採薪)하고 돌아오자 어떤 중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십니까. 산왈(山曰) 섶을 찾고() 왔다. 중이 요하(腰下)의 칼을 가리키며 가로되 명박박(鳴剝剝)한 이것이 무엇입니까. 약산이 발도(㧞刀)하여 쪼개는 자세를 지었다 함에 이르러 스님이 홀연히 흔연(欣然)했다. 인안승(鄰案僧)을 일장(一掌) 후려갈기고 게렴(揭簾)하고 달려 나갔다(趨出). 충구(衝口)하여 설게(說偈)해 가로되 철()/ ()/ 대해가 건고(乾枯)하고/ 허공이 병렬(迸裂)한다/ 사방팔면이 차란(遮攔)이 없어/ 만상삼라가 일제히 누설(漏泄)한다. 후에 진승(眞乘)에서 분좌(分座)했고 상봉(上封)의 명()에 응했고 여러 번() 명찰(名刹)로 옮겼다.

許事; 저양(這樣)의 사정(事情).

淨頭; 또 청두(圊頭)로 지음. 선림에서 측소(廁所; 뒷간)를 관장하는 승인임. 정두의 거소(居所)를 일컬어 정두료(淨頭寮)라 함.

結座; 이르자면 선사가 상당하여 설법하고는 그 마지막에 고칙을 염제(拈提)하거나 혹은 게송을 들고 1()를 맺음임 [상기전11].

勤篤; 근분(勤奮; 근면)하며 전일(專一).

鳴剝剝; 성음(聲音)의 울림이 밝음.

衝口; 동구(動口)니 충()은 동().

 

住乾元日 開堂示衆曰 百千三昧門 無量福德藏 放行也 如開武庫 錯落交輝 把住也 似雪覆蘆華 通身莫辨 使見之者撩起便行 聞之者單刀直入 箇箇具頂門正眼 人人懸肘後靈符 掃佛祖見知 作叢林殃害 憶得寶壽開堂日 三聖推出一僧 寶壽便打 三聖云 與麽爲人 瞎却鎭州一城人眼去在 且如乾元今日開堂 或有僧出來 山僧亦打 不唯此話大行 且要開却福州一城人眼去 何也 劒爲不平離寶匣 藥因救病出金缾

撩起便行; 形容接機敏捷 當下領會 撩 用手取物 上已出

 

건원(乾元)에 주()하던 날 개당(開堂)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백천(百千) 삼매문(三昧門)과 무량한 복덕장(福德藏)이다. 방행(放行)함엔 무고(武庫)를 엶과 같아서 착락(錯落)하며 교휘(交輝)하고 파주(把住)함엔 눈이 노화(覆蘆)를 덮음과 같아서 온몽(通身)으로도 분변하지 못하나니 보는 자가 요기편행(撩起便行)하고 듣는 자가 단도직입(單刀直入)케 한다. 개개(箇箇)가 정문정안(頂門正眼)을 갖추고 인인(人人)이 주후영부(肘後靈符)를 매달아 불조의 견지(見知)를 소제(掃除)해야 하나니 총림의 앙해(殃害)가 되어서이다. 억득(憶得)하건대 보수(寶壽)가 개당일(開堂日)에 삼성(三聖)이 일승(一僧)을 밀어내매(推出) 보수가 바로 때렸다. 삼성이 이르되 이렇게 위인(爲人)한다면 진주(鎭州) 일성(一城)의 사람의 눈을 멀어버리게 할 것이다. 차여(且如) 건원(乾元)이 금일 개당했는데 혹 어떤 중이 나온다면 산승도 또한 때리겠다. 차화(此話)가 대행(大行)할 뿐만 아니라 또() 요컨대 복주(福州) 일성(一城)의 사람의 눈을 열어버리겠다(開却). 왜냐, 검은 불평(不平; 공평하지 못함)하기 때문에 보갑(寶匣)을 여의고 약은 구병(救病)으로 인해 금병(金缾)에서 나온다.

撩起便行; 접기(接機)가 민첩하여 당하에 영회(領會)함을 형용. ()는 손을 사용하여 물건을 취함. 위에 이미 나왔음.

 

上堂 達磨未來東土已前 人人懷媚水之珠 箇箇抱荊山之璞 可謂壁立千仞 及乎二祖禮却三拜之後 一一南詢諸友 北禮文殊 好不丈夫 或有一箇半箇 不求諸聖 不重已靈 匹馬單鎗 投虛置刃 不妨慶快平生 如今有麽 自是不歸歸便得 五湖煙景有誰爭 上堂 宗乘提唱 妙絕名言 一句該通 乾坤函蓋 直似首羅正眼 竪亞面門 又如三點 橫該法界 乃卓拄杖曰 向這一點下明得 出身猶可易 脫體道應難 又卓拄杖曰 向第二點下明得 縱橫三界外 隱顯十方身 又卓拄杖曰 向第三點下明得 魚龍鎻戶 佛祖潛蹤 不然 放過一著 隨分有春色 一枝三四華 上堂 一法有形該動植 百川湍激競朝宗 昭琴不鼓雲天淡 想像毗耶老病翁 維摩病則上封病 上封病則拄杖子病 拄杖子病 則森羅萬象病 森羅萬象病 則凡之與聖病 諸人還覺病本起處麽 若也覺去 情與無情同一體 處處皆同眞法界 其或未然 甜瓜徹蔕甜 苦瓠連根苦

 

상당(上堂) 달마가 동토(東土)에 오지 아니한 이전에 인인(人人)이 미수지주(媚水之珠)를 품었고 개개(箇箇)가 형산지박(荊山之璞)을 안았으니 가히 벽립천인(壁立千仞)이라고 이를 만하다. 2조가 삼배(三拜)를 예배한 후에 이르러(及乎) 하나하나 제우(諸友)를 남순(南詢)하고 북쪽으로 문수(文殊)에게 예배하니 좋은 부장부다(好不丈夫). 혹 일개반개(一箇半箇)가 있어 제성(諸聖)을 구하지 않고 기령(已靈)을 존중하지 않고 필마단창(匹馬單鎗)으로 허망(虛妄; )을 투기(投棄)하고 칼날을 방치(放置)한다면 경쾌(慶快)한 평생에 방애되지 않으리니 여금에 있느냐. 스스로 이 돌아가지 못하다가 돌아감을 바로 얻으면 오호(五湖)의 연경(煙景)을 누가 있어 다투겠는가. 상당(上堂) 종승(宗乘)의 제창(提唱)은 명언(名言; 명자와 언구)을 묘철(妙絕)했고 1구로 해통(該通)하여 건곤(乾坤)이 함개(函蓋)한다. 바로 수라(首羅; 마혜수라)의 정안(正眼)과 같이 면문(面門)수압(竪亞; 세로로 배치함)하고 또 원이삼점(三點)과 같이 법계를 횡해(橫該)한다. 이에 주장자를 치고 가로되 이 일점 아래를 향해 명득(明得)하면 출신(出身; 몸에서 냄)은 오히려 가히 쉬우나 탈체(脫體; 전체)를 말하기는 응당 어렵다. 또 주장자를 치고 가로되 제2(第二點) 아래를 향해 명득(明得)하면 3계 밖으로 종횡(縱橫)하고 시방에 은현(隱顯)하는 몸이다. 또 주장자를 치고 가로되 제3점 아래를 향해 명득(明得)하면 어별(魚龍)이 쇄호(鎻戶)하고 불조가 잠종(潛蹤)한다. 그렇지 못해 일착을 방과하면(放過一著) 수분(隨分)하여 춘색이 있어 일지(一枝)에 삼사화(三四華). 상당(上堂) 일법(一法)이 유형(有形)하여 동식(動植; 동물과 식물)을 해라(該羅; )하고/ 백천(百川)이 단격(湍激; 水流猛急)하며 다투어 조종(朝宗)한다/ 소금(昭琴; 빛나는 거문고)을 두드리지() 않아도 운천(雲天)이 맑고()/ 비야(毗耶)의 늙고 병든 옹()을 상상(想像)한다. 유마(維摩)의 병이 곧 상봉(上封)의 병이며 상봉의 병이 곧 주장자의 병이며 주장자의 병이 곧 삼라만상의 병이며 삼라만상의 병이 곧 범()과 성()의 병이다. 제인이 도리어 병이 본래 일어나는 곳을 깨닫느냐. 만약 깨달아 간다면 정()과 무정(無情)이 동일한 체()라서 처처에 모두 진법계()와 같으리라.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단 오이는 꼭지까지 달고 쓴 박은 뿌리까지 쓰다.

 

隆興府黃龍德逢通照禪師

郡之靖安胡氏子 生有龐眉 年十七 從上藍晉禪師落髮 往依靈源 卽明深旨 上堂 擧夾山境話 師曰 法眼徒有此語 殊不知夾山老漢被這僧輕輕拶著 直得脚前脚後 設使不作境話會 未免猶在半途

龐眉; 眉毛黑白雜色 形容老貌

脚前脚後; 兩事發生的時間一前一後 緊緊相連 極言時間間隔之短

 

융흥부(隆興府) 황룡(黃龍) 덕봉(德逢) 통조선사(通照禪師)

()의 정안(靖安) 호씨(胡氏)의 아들이다. 출생하면서 방미(龐眉)가 있었다. 나이 17에 상람진(上藍晉) 선사를 좇아 낙발(落髮)했다. 가서 영원(靈源)에게 의지하며 곧 심지(深旨)를 밝혔다. 상당(上堂) 협산경화(夾山境話)를 들고 사왈 법안(法眼)은 도연히 차어(此語)가 있었다. 너무 알지 못하나니 협산 노한이 이 중의 경경(輕輕)한 찰착(拶著)을 입자 바로 각전각후(脚前脚後)를 얻었다. 설사(設使) 경화회(境話會)를 짓지 않더라도 오히려 반도(半途)에 있음을 면하지 못한다.

龐眉; 눈썹이 흑백의 잡색이니 늙은 모양을 형용.

脚前脚後; 두 일이 발생하는 시간이 하나는 앞서고 하나는 뒤서서 아주 긴히 서로 연결됨이니 시간 간격의 짧음을 극단적으로 말함.

 

潭州法輪應端禪師

南昌徐氏子 少依化度善月 圓顱登具 謁眞淨文禪師 機不諧 至雲居 會靈源分座 爲衆激昂 師扣其旨 然以妙入諸經自負 源甞痛劄之 師乃援馬祖百丈機語 及華嚴宗旨爲表 源笑曰 馬祖百丈固錯矣 而華嚴宗旨與箇事喜沒交涉 師憤然欲他往 因請辭 及揭簾 忽大悟 汗流浹背 源見乃曰 是子識好惡矣 馬祖百丈文殊普賢幾被汝帶累 由此譽望四馳 名士夫爭挽應世 皆不就 政和末 太師張公司成以百丈堅命開法 師不得已 始從

圓顱; 又稱圓頂 卽完成剃髮而呈現出家人之形相

 

담주(潭州) 법륜(法輪) 응단선사(應端禪師)

남창(南昌) 서씨(徐氏)의 아들이다. 소년(少年; )에 화도선월(化度善月)에게 의지하여 원로(圓顱)하고 등구(登具)했다. 진정문(眞淨文) 선사를 참알해 기()가 어울리지() 않았다. 운거(雲居)에 이르자 마침() 영원(靈源; 惟淸)이 분좌(分座)하여 대중을 위해 격앙(激昂; 激揚)했다. 스님이 그 의지(意旨)를 물었다(). 그러하여 제경(諸經)에 묘입(妙入)함으로써 자부(自負)하자 영원이 일찍이 통자(痛劄)했다. 스님이 이에 마조와 백장의 기어(機語) 및 화엄의 종지를 당겨() ()하자 영원이 웃으며 가로되 마조와 백장은 고착(固錯)했고 화엄의 종지와 개사(箇事; 此事)는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喜沒交涉). 스님이 분연(憤然)하며 딴 데로 가려고 하였다. 인하여 고별을 청하고 및 게렴(揭簾)하다가 홀연히 대오했고 땀이 흘러 등을 적셨다(). 영원이 보고 이에 가로되 이 자(; 남자)가 호오(好惡)를 알았구나. 마조ㆍ백장ㆍ문수ㆍ보현이 거의 너의 대루(帶累)를 입을 뻔했다. 이로 말미암아 명망(譽望; 名譽聲望)이 사방으로 달렸다(四馳). 명사부(名士夫)가 다투어 당기며() 응세(應世)하라 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정화(政和; 1111-1117) () 태사(太師) 장공(張公) 사성(司成)이 백장(百丈)으로써 개법을 견명(堅命)한지라 스님이 부득이하여 비로소 좇았다.

圓顱; 또 명칭이 원정(圓頂)이니 곧 체발(剃髮; 머리를 깎다)을 완성하여 출가인의 형상(形相)을 나타내어 보임.

 

上堂 擧大隋劫火洞然話 遂曰 六合傾飜劈面來 暫披麻縷混塵埃 因風吹火渾閑事 引得遊人不肯回 壞不壞隨不隨 徒將聞見强鍼錐 太湖三萬六千頃 月在波心說向誰 僧問 如何是賓中賓 師曰 芒鞋竹杖走紅塵 曰 如何是賓中主 師曰 十字街頭逢上祖 曰 如何是主中賓 師曰 御馬金鞭混四民 曰 如何是主中主 師曰 金門誰敢擡眸覷 曰 賓主已蒙師指示 向上宗乘又若何 師曰 昨夜霜風刮地寒 老猿嶺上啼殘月

四民; 舊稱士農工商爲四民

 

상당(上堂) 대수(大隋)의 겁화통연화(劫火洞然話)를 들고 드디어 가로되 육합(六合)이 경번(傾飜)하며 벽면(劈面; 얼굴에 닥침)하여 오니/ 잠시 마루(麻縷)를 입고() 진애(塵埃)에 섞였다()/ 바람으로 인해 취화(吹火)함은 온통() 한사(閑事)/ 유인(遊人)이 돌아옴을 수긍하지 않음을 인득(引得)했다/ ()인가 불괴(不壞)인가, ()인가 불수(不隨)인가/ 도연히 문견(聞見)을 가지고 억지로 침추(鍼錐)했다/ 태호(太湖) 36천 경()/ 달이 파도 가운데() 있음을 누굴 향해 설할까. 승문 무엇이 이 빈중빈(賓中賓)입니까. 사왈 망혜(芒鞋; 억새로 만든 짚신)와 죽장(竹杖)으로 홍진(紅塵)을 달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빈중주(賓中主)입니까. 사왈 십자가두에서 상조(上祖; 조상. 선조)를 만났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사왈 말을 부리며() 금편(金鞭)으로 사민(四民)에 섞였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주(主中主)입니까. 사왈 금문(金門; 궁궐문)을 누가 감히 눈을 들어(擡眸) 엿보겠는가. 가로되 빈주(賓主)는 이미 스님의 지시를 입었습니다. 향상종승(向上宗乘)은 또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작야(昨夜)에 상풍(霜風)이 땅을 긁으며 차더니 노원(老猿)이 영상(嶺上)에서 잔월(殘月)을 운다().

四民; 옛날 사ㆍ농ㆍ공ㆍ상을 일컬어 4민이라 했음.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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