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䨓菴受首座 平江人 道貌脩偉 久依月堂㑃堂諸老 曾集普燈三十卷 又註楞伽 菴于霅之曹氏菴 與抒山居士劉季高之姪平氏者最善 慶元初 復菴于西湖 劉公任丹丘 以巾子峰報恩招之 以頌謝云 結茆方喜倚長松 一枕淸風睡正濃 禪道尙無心理會 肯將身入閙藍中 劉見大喜 再遣使迫之 亦和前韻云 昂藏骨相倚喬松 晚歲淸陰只自濃 好向紅塵姑著脚 何妨都在咲談中 竟不赴 時皆高之 當今搖尾乞憐之時 寧復有此人邪
●䨓菴受; 正受(1146-1208) 宋代雲門宗僧 字虛中 號雷庵 常熟(今屬江蘇)邵氏 初業儒 因遊邑之慧日寺 與主僧心鑒語 遂出家 受具遊方 首見應庵於天童 回侍淨慈月堂道昌(雲門下八世)得其道 後住平江報恩 光孝 有嘉泰普燈錄 楞嚴經合論 [嘉泰普燈錄一雷庵受禪師行業]
●月堂; 道昌(1089-1171) 宋代雲門宗僧 浙江寶溪人 俗姓吳 號月堂 六歲投鹿苑證門下 十三歲剃髮 參道場山之妙湛思慧 遊歷參訪後 從學於淨慈寺妙湛思慧 竝嗣其法 紹興初年入閩 住持大吉寺 龜山 又主金陵之蔣山 徑山 靈隱等名刹 乾道二年(1166) 入淨慈寺 七年示寂 壽八十三 臘六十有九 賜號佛行禪師 [普燈錄十二]
●㑃堂; 守仁(?-1203) 宋代楊岐派僧 號㑃堂 洛陽(今屬河南)人 初依東京奉先 宣和間試經得度 時禪風大盛 乃謁天寧佛果克勤 言下大悟 淳熙元年(1174) 召對稱旨 嘉泰三年(1203) 丹書復至 集衆說法畢 卽法座而逝 [南宋元明禪林僧寶傳四]
●普燈; 嘉泰普燈錄 三十卷 另有目錄三卷 略稱普燈錄 宋代僧雷庵正受(1146- 1208)編 寧宗嘉泰四年(1204)編成 故名嘉泰 進於寧宗 奉敕入藏 收於卍續藏第一三七冊 正受費時十七年 繼景德傳燈錄 天聖廣燈錄 建中靖國續燈錄之後 輯錄諸方宗師 王侯 公卿 尼師等 禪林緇素之機緣語要 內容包括示衆機語 聖君賢臣 應化聖賢(附拾遺) 廣語 拈古 頌古 偈贊 雜著等 目錄卷首附有雷庵受禪師行業 進聖宋嘉泰普燈錄上皇帝書等
●昂藏; 儀表雄偉 氣宇不凡的樣子
●紅塵; 塵俗世間 ▲祖庭事苑五 紅塵 塵本不紅 以言其染也
○뇌암수(䨓菴受; 正受) 수좌(首座)는 평강(平江) 사람이며 도모(道貌; 道人의 모습)가 수위(脩偉; 풍채가 좋고 端雅함)했다. 오래 월당(月堂; 道昌)ㆍ요당(㑃堂; 守仁) 제로(諸老)에게 의지했다. 일찍이 보등(普燈) 30권을 모았으며(集) 또 릉가(楞伽)를 주(註)했다. 삽(霅)의 조씨암(曹氏菴)에서 암거(菴居; 菴)했는데 서산거사(抒山居士) 유계고(劉季高)의 조카(姪) 평씨(平氏)란 자와 가장 잘 지냈다(善). 경원(慶元; 1195-1200) 초 다시(復) 서호(西湖)에서 암거(菴居; 菴)했고 유공(劉公)은 단구(丹丘)에서 임직(任職; 任)했는데 건자봉(巾子峰)의 보은(報恩)으로써 그(之)를 초치(招致; 招)했다. 송(頌)으로써 사양(辭讓; 謝)해 이르되 띳집을 엮어(結茆) 바야흐로 장송(長松)에 의지(依支; 倚)함을 기뻐하나니/ 일침(一枕)의 청풍에 수면(睡眠; 睡)이 바로 짙다(正濃)/ 선도(禪道)도 오히려(尙) 마음으로 이회(理會)함이 없거늘/ 어찌(肯; 豈也) 몸을 가져다 요람(閙藍; 시끄러운 伽藍) 가운데(中) 넣겠는가. 유(劉)가 보고서 크게 기뻐했고 거듭(再) 사자(使者)를 보내 압박(壓迫; 迫之)했다. 또한 전운(前韻)에 화(和)해 이르되 앙장(昂藏)한 골상(骨相)이 교송(喬松; 高松)에 의지하며(倚)/ 만세(晚歲)에 청음(淸陰; 시원한 그늘)이 다만 절로 짙다(濃)/ 좋이 홍진(紅塵)을 향해 잠시(姑) 발을 붙여/ 모두(都) 소담(咲談) 가운데(中) 있음이 어찌 방애되리오. 마침내(竟) 다다르지 않았다. 당시에 모두 고상(高尙; 高)히 여겼다. 당금(當今)의 요미걸련(搖尾乞憐)하는 시절(時)에 어찌(寧) 다시 이런 사람이 있겠는가.
●䨓菴受; 정수(正受; 1146-1208)니 송대 운문종승. 자는 허중이며 호는 뇌암(雷庵; 䨓菴과 같음)이니 상숙(지금 강소에 속함) 소씨. 처음은 업유(業儒; 유학을 업으로 삼음)였고 읍의 혜일사를 유람함으로 인해 주승(主僧) 심감과 이야기 하고는 드디어 출가했음. 수구(受具)하고 유방(遊方)하다가 처음은 천동에서 응암을 참견했고 돌아와 정자 월당도창(月堂道昌; 운문하 8세)을 시봉하면서 그의 도를 얻었음. 후에 평강 보은ㆍ광효에 거주했음.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ㆍ릉엄경합론(楞嚴經合論)이 있음 [가태보등록1뇌암수선사행업].
●月堂; 도창(道昌; 1089-1171)이니 송대 운문종승. 절강 보계 사람. 속성은 오며 호는 월당(月堂). 6세에 녹원증의 문하에 투신했고 13세에 머리를 깎았음. 도량산의 묘담사혜(妙湛思慧)를 참했고 유력(遊歷)하며 참방한 후 정자사의 묘담사혜를 좇아 배웠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소흥 초년 민에 들어가 대길사와 귀산에 주지했고 또 금릉의 장산ㆍ경산ㆍ영은 등의 명찰을 주지했음. 건도 2년(1166) 정자사에 들어갔고 7년에 시적했음. 나이는 83이며 납은 69. 사호(賜號)가 불행선사 [보등록12].
●㑃堂; 수인(守仁; ?-1203)이니 송대 양기파승. 호는 요당(㑃堂)이며 낙양(지금 하남에 속함) 사람. 처음에 동경 봉선에게 의지했고 선화(宣和) 간에 시경득도(試經得度)했음. 당시에 선풍이 대성(大盛)했고 곧 천녕 불과극근(佛果克勤)을 알현하여 언하에 대오했음. 순희 원년(1174) 소대(召對)하여 칭치(稱旨)했고 가태 3년(1203) 단서(丹書)가 다시 이르렀음. 대중을 소집해 설법하여 마치자 곧 법좌에서 서거했음 [남송원명선림승보전4].
●普燈;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이니 30권. 따로 목록 3권이 있음. 약칭이 보등록. 송대승(宋代僧) 뇌암정수(雷庵正受; 1146-1208)가 편(編)했으며 영종(寧宗) 가태(嘉泰) 4년(1204)에 편성한지라 고로 이름이 가태임. 영종에게 진상하자 칙령을 받들어 입장(入藏)했으며 만속장 제137책에 수록되었음. 정수가 17년의 시절을 소비하여 경덕전등록ㆍ천성광등록ㆍ건중정국속등록의 뒤를 이어 제방의 종사ㆍ왕후(王侯)ㆍ공경(公卿)ㆍ니사(尼師) 등 선림 치소(緇素)의 기연과 어요를 집록(輯錄)했음. 내용은 시중(示衆)ㆍ기어(機語)ㆍ성군ㆍ현신ㆍ응화현성(應化聖賢; 拾遺를 부록)ㆍ광어ㆍ염고ㆍ송고ㆍ게찬ㆍ잡저 등을 포괄했음. 목록의 권수(卷首)에 뇌암수선사의 행업과 성송(聖宋)의 가태보등록을 진상하여 황제에게 올리는 글 등이 부록되었음.
●昂藏; 의표(儀表)가 웅위(雄偉)하고 기우(氣宇)가 범상하지 아니한 양자.
●紅塵; 진속(塵俗)의 세간. ▲조정사원5. 홍진(紅塵) 진(塵)은 본디 붉지 않으나 그 오염을 말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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