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대혜가 조경에게 송을 주다(大慧與祖慶頌)

태화당 2026. 4. 1. 06:34

大慧在雙徑時 一千七百龍象 有行者祖慶 爲母設忌乞頌 慧見其骨相不凡 與之一頌曰 透過那一著 佛亦不能容 猛虎當路坐 狐兔自潛蹤 慶玅年而出世南源 移道林 一夕夢寶公以二十隻箸與之 旣覺罔測 時劉樞密洪父帥金陵 以鍾山招之 一住二十年 中間因回祿復新之 豈偶然者哉 慶元初 佛照自五峰歸育王 慶遂繼踵 二年而沒 信玅喜之言不謬矣

一著; 本爲圍棋用語 猶言一事也 又一回一次也 又稱一著子

玅年; 少年 年少 幼少

寶公; 寶誌(418-514) 南朝僧 又作寶志 保誌 世稱寶公 志公 誌公和尙 金城(陝西南鄭 或江蘇句容)人 俗姓朱 年少出家 師事道林寺僧儉 修習禪業 劉宋泰始年間(466-471) 往來於都邑 居無定所 時或賦詩 其言每似讖記 四民遂爭就問福禍 齊武帝以其惑衆 投之於獄 然日日見師遊行於市里 乃往獄中檢視 卻見師猶在獄中 帝聞之 乃迎入華林園供養 禁其出入 而師不爲所拘 仍常遊訪龍光 罽賓 興皇 淨名等諸寺 至梁武帝建國 始解其禁 師每與帝長談 所言皆經論義 師於天監十三年十二月示寂 壽九十六 敕葬鍾山獨龍阜 於墓側立開善寺 諡號廣濟大師 後代續有追贈 如妙覺大師 道林眞覺菩薩 道林眞覺大師 慈應惠感大師 普濟聖師菩薩 一際眞密禪師等號 師嘗爲學者述文字釋訓三十卷 十四科頌十四首 十二時頌十二首 大乘讚十首等 [梁高僧傳十 佛祖統紀三十六 同三十七 佛祖歷代通載十 寶華山志七誌公法師墓誌銘 神僧傳四]

回祿; 相傳爲火神之名 引申指火災

 

대혜(大慧; 宗杲)가 쌍경(雙徑; 쌍경사)에 있을 때 15백 용상(龍象)이었다. 행자(行者) 조경(祖慶)이 있었는데 모친을 위해 설기(設忌; 忌齋를 베풀다)하고 걸송(乞頌)했다. 대혜가 그의 골상(骨相)이 불범(不凡)함을 보고 1송을 그()에게 주었으니 가로되 저() 일착(一著)을 투과(透過)하면/ 부처도 또한 능히 용납하지 않는다/ 맹호가 당로(當路)하여 앉았으니/ 호토(狐兔)가 스스로 잠종(潛蹤; 潛跡)한다. 조경(祖慶; )이 묘년(玅年; 妙年과 같음)에 남원(南源)에서 출세했고 도림(道林)으로 옮겼다(). 어느 날 밤(一夕) 꿈에 보공(寶公)20()의 젓가락()을 그()에게 주었다. 이미 깨자() 헤아리지 못했다(罔測). 당시에 유추밀(劉樞密) 홍부(洪父)가 금릉(金陵)을 통솔(統率; )했는데 종산(鍾山)으로써 그()를 초치(招致)했다. 일주(一住)20년이었고 중간에 회록(回祿; 화재)으로 인해 다시 신축(新築; 新之)했으니 어찌 우연(偶然)인 것이라 하겠는가. 경원(慶元; 1195-1200) 초 불조(佛照; 德光)가 오봉(五峰)으로부터 육왕(育王)으로 돌아가자 경()이 드디어 계종(繼踵)했고 2년 만에 몰(; 죽음)했다. 묘희의 말이 어긋나지() 않음을 믿을 것이다.

一著; 본래 위기(圍棋; 바둑) 용어가 됨. 1()라고 말함과 같음. 1, 1차임. 또 명칭이 일착자(一著子).

玅年; 소년(少年)이니 묘()는 연소(年少). 유소(幼少).

寶公; 보지(寶誌; 418-514)니 남조승(南朝僧). 또 보지(寶志)ㆍ보지(保誌)로 지음. 세칭이 보공(寶公)ㆍ지공(志公)ㆍ지공화상(誌公和尙). 금성(섬서 남정 혹 강소 구용) 사람이며 속성은 주(). 연소할 적에 출가하여 도림사 승검(僧儉)을 사사(師事)했고 선업(禪業)을 수습(修習)했음. 유송(劉宋) 태시년 간(466-471) 도읍에 왕래하며 거처에 정한 곳이 없었음. 때로 혹 시를 읊었는데 그 말이 매번 참기(讖記)와 같았으며 사민(四民; )이 드디어 다투며 문으로 나아가 복화(福禍)를 물었음. 제무제(齊武帝)가 그것을 혹중(惑衆; 무리를 惑亂)이라 하여 뇌옥(牢獄) 에 투옥(投獄)시켰음. 그러나 날마다 시리(市里)에 유행하는 스님을 본지라 이에 뇌옥 속에 가서 검시(檢視)하였는데 도리어 스님이 아직 옥 속에 있음을 보았음. ()가 이를 듣고 드디어 화림원으로 영입해 공양하고 그의 출입을 금지시켰으나 스님은 구애되는 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늘 용광ㆍ계빈ㆍ흥황ㆍ정명 등 여러 사원을 유방(遊訪)했음. 양무제가 건국함에 이르러 비로소 그 금지가 풀렸음. 스님이 매번 무제와 길게 얘기했는데 말하는 바가 모두 경론의 뜻이었음. 스님이 천감 1312월에 시적했는데 나이는 96이며 칙령으로 종산(鍾山) 독룡부(獨龍阜)에 장사 지내고 묘 곁에 개선사를 세웠음. 시호는 광제대사. 후대에 이어서 추증(追贈)이 있었으니 묘각대사ㆍ도림진각보살ㆍ도림진각대사ㆍ자응혜감대사ㆍ보제성사보살ㆍ일제진밀선사 등과 같은 호임. 스님이 일찍이 학자를 위해 문자석훈(文字釋訓) 30권ㆍ14과송 14수ㆍ십이시송 12수ㆍ대승찬 10수 등을 서술했음 [양고승전10. 불조통기36, 37. 불조역대통재10. 보화산지7지공법사묘지명. 신승전4].

回祿; 상전(相傳)하기를 화신(火神)의 이름이라 함. 인신(引申; 轉義)하여 화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