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사대부가 존숙의 어록에 서하다(士大夫序尊宿語)

태화당 2026. 4. 1. 06:40

本朝士大夫與當代尊宿撰語錄序 語句斬絶者 無出山谷無爲無盡三大老 今代有蜀人馮當可者 於宗門深有造入 與石頭回禪師撰語錄序 江湖沸傳之 其詞曰 五祖晚得南堂 糙暴生獰 凌跨懃遠 天遒地窄 投老大隋 回道者以運鎚攻石之手 仰擊堅高 出力旣麤 一鎚便透 歸坐釣魚山上 乖崖峭壁十倍其師 狼毒砒礵不容下口 其徒彦聞更不瞥地 要收餘毒 散施諸方 余恐後人不著便宜 自取僵仆 故爲標其荼毒 以示來者 縉雲野老序

山谷; 黃庭堅(1045-1105) 宋代黃龍派居士 洪州分寧人 字魯直 號山谷 擅長詩 文 詞 草書 擧進士曾入仕途 政績卓著 然以黨見遭謫貶 嗣黃龍祖心(1025-1100)之法 嘗遊學安徽山谷寺 自號山谷道人 晩年築精舍於涪濱 修行淨土之法 又號涪翁 門人於其逝世後 私諡文節先生 又其所作之詩文 廣爲流行於日本足利時代之五山僧人之間 日本漢文學史之影響頗鉅 著有山谷內外集 別集等 [宋史四四四 宋史新編一七一 元祐黨人傳四 五燈會元十七]

馮當可; 宋朝詩人郭印的別稱或化名

南堂; 元靜(1065-1135) 宋代楊岐派僧 四川閬州玉山人 俗姓趙 後名道興 十歲時因病而立志出家 未幾入成都大慈寶生院宗裔之門下 哲宗元祐三年(1088)得度 其後 從五祖法演參學 竝承其法嗣 後於四川彭州大隨山開創南堂 故世稱南堂元靜 歷任成都昭覺寺 及能仁 大隨諸寺住持 高宗紹興五年示寂 壽七十一 撰有南堂興和尙語要一卷傳世 [普燈錄十一 五燈會元十九 續傳燈錄二十五 五燈全書四十二]

天遒地窄; 遒 迫也 盡也

乖崖; 怪異之巖崖

狼毒砒霜; 狼毒與砒霜皆爲劇毒之藥 喩禪師接人手段峻嚴猛烈

荼毒; 又作茶毒 荼 一種苦菜 毒 螫人之蟲 比喩毒害 殘害

 

본조(本朝; 宋朝) 사대부가 당대(當代) 존숙(尊宿)을 위해() 어록서(語錄序)를 지어 어구(語句)가 참절(斬絶; 가파르고 험준한 모양)한 자는 산곡(山谷; 黃庭堅)ㆍ무위(無爲; 楊傑)ㆍ무진(無盡; 張商英) 삼대로(三大老)를 벗어날 이가 없다. 금대(今代)에 촉인(蜀人) 풍당가(馮當可)란 자가 있는데 종문(宗門)에 깊이 조입(造入; 深入)함이 있다. 석두회(石頭回; 自回) 선사를 위해() 어록서(語錄序)를 지었는데 강호(江湖; 四方各地)에서 그것()을 비전(沸傳)한다. 기사(其詞)에 가로되 오조(五祖; 法演)가 만년(晩年; )에 남당(南堂; 元靜)을 얻었는데 조포(糙暴; 粗獷하고 暴烈)하고 생녕(生獰; 凶猛, 凶惡)하기가 근원(懃遠; 克勤淸遠)을 능과(凌跨; 초과)했고 천주지착(天遒地窄; 하늘이 압박 받고 땅이 좁음)했고 대수(大隋; 대수산)에 투로(投老; 垂老. 告老)했다. 회도자(回道者)는 운추(運鎚)하여 공석(攻石)하는 수단(手段; )으로써 견고(堅高)함을 앙격(仰擊)했고 출력(出力)이 이미 커서() 일추(一鎚)에 바로 투과했다(便透). 조어산상(釣魚山上)으로 돌아가 앉았는데(歸坐) 괴애초벽(乖崖峭壁)이 그 스승의 십배(十倍)며 낭독비상(狼毒砒礵)이라 하구(下口)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 문도(門徒; ) 언문(彦聞)은 다시 별지(瞥地)가 아니면서 여독(餘毒)을 거두어 제방(諸方)에 산시(散施)하고자 하니 내()가 후인(後人)이 편의를 만나지 못하고(不著便宜) 스스로 강부(僵仆; 엎어져 쓰러지다)를 취할까 염려한지라 고로 그 도독(荼毒)을 표()하여 내자(來者)에게 보인다. 진운(縉雲) 야로서(野老序).

山谷;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니 송대 황룡파 거사. 홍주 분녕 사람이며 자()가 노직(魯直)이며 호가 산곡(山谷). ()ㆍ문()ㆍ사()ㆍ초서(草書)에 천장(擅長; 뛰어나다. 정통하다)했음. 진사(進士)에 선발()되어 일찍이 사도(仕途)에 들었으며 정적(政績)이 탁저(卓著)했음. 그러나 당견(黨見) 때문에 적폄(謫貶)을 만나기도 했음. 황룡조심(黃龍祖心; 1025-1100)의 법을 이었으며 일찍이 안휘(安徽) 산곡사(山谷寺)에 유학(遊學)하면서 자호(自號)를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 했음. 만년에 부빈(涪濱)에 정사(精舍)를 건축하고 정토의 법을 수행하면서 또 호를 부옹(涪翁)이라 했음. 문인(門人)들이 그가 서세(逝世)한 후에 사시(私諡)하여 문절선생(文節先生)이라 했음. 또 그가 지은 바의 시문(詩文)은 일본 족리시대(足利時代)의 오산승인(五山僧人)의 사이에 널리 유행(流行)했으며 일본 한문학사(漢文學史)의 영향이 자못 컴. 저서에 산곡내외집(山谷內外集)과 별집(別集) 등이 있음 [송사444. 송사신편171. 원우당인전4. 오등회원17].

馮當可; 송조(宋朝) 시인 곽인(郭印)의 별칭 혹 화명(化名; 假名).

南堂; 원정(元靜; 1065-1135)이니 송대 양기파승. 사천 낭주 옥산 사람이니 속성은 조며 뒤의 이름은 도흥. 10세 때 병으로 인해 출가에 뜻을 세웠음. 오래지 않아 성도 대자보생원 종예의 문하에 투입했음. 철종 원우 3(1088) 득도했고 그 후 오조법연(五祖法演)을 좇아 참학했고 아울러 그의 법사(法嗣)를 계승했음. 후에 사천 팽주 대수산(大隨山)에서 남당(南堂)을 개창한지라 고로 세칭이 남당원정(南堂元靜). 성도 소각사 및 능인 대수 여러 사원의 주지를 역임(歷任)했음. 고종 소흥 5년 시적했고 나이는 71. 찬술(撰述)에 남당흥화상어요 1권이 있어 세상에 전함 [보등록11. 오등회원19. 속전등록25. 오등전서42].

天遒地窄; ()는 박(). ().

乖崖; 괴이한 암애(巖崖).

狼毒砒霜; 낭독과 비상은 모두 극독(劇毒)의 약이 됨. 선사의 접인(接人)하는 수단이 준엄하고 맹렬함에 비유.

荼毒; 또 다독(茶毒; 는 서로 통함)으로 지음. ()1종의 쓴 채소며 독()은 사람을 쏘는 벌레니 독해ㆍ잔해(殘害)에 비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