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장산원(蔣山元)

태화당 2026. 4. 1. 06:46

蔣山元 嗣慈明 元後得雪竇雅 雅得慈覺印 混融然實嗣之 乾道間 然住金陵天禧 時玅癡禪住保寧 明大禪住蔣山 明薄然以其流派非黃龍楊岐直下也 甞與然諍 然口辯捷 明頗遭所困 竟得癡禪解之 然器量過人 但出世太早 不歷諸方門戶 宗眼混淆 故叢林多以此薄之 後住南華 滅於五羊 臨行脫灑 邦人積沈香以荼毗之 一段殊勝非小小 余與然生緣同處 恨不識其慈範 最愛其祭慈覺一文 甚佳 曰 建炎三年 我忽顚怪 拈下幞頭 把斷腰帶 夜盜師庭 遭師捉敗 旣無一物 空禮三拜 自是退思 恨不小小 人或罵師 老不唧𠺕 了無能解 我卽擧首 仰天慶怪 人或譽師 道超佛祖 量廓滄海 我卽持杖 擊其頭碎 如何若何 錯會者多 敬陳薄奠 師咲婆娑 然有小師大驥者 淳熈間 住衢之靈曜 時朝廷方行役法 二浙江淮處竝差定 驥乃糾率衢婺處三州僧尼道士 造朝免之 今天下僧道由此獲安 不爲國家之差役者 葢驥之力耶 後之圓頂方袍者 當知所自耳 驥後住天台平田而卒

蔣山元; 贊元(?-1086) 宋代臨濟宗僧 浙江義烏人 字普宗 號覺海 爲傅大士之後裔 又字萬宗 三歲出家 七歲受菩薩戒 遍歷諸方 參石霜楚圓會下 竝嗣其法 後住持蘇臺 天峰 龍華 白雲等寺 又應府帥之請 住持金陵蔣山寶誌道場(卽太平興國寺) 王安石奏其德 受賜章服 及覺海禪師號 元祐元年示寂 [五燈會元十二 續傳燈錄七 禪林僧寶傳二十七]

雪竇雅; 法雅 宋代臨濟宗僧 富春(浙江富陽)人 依蔣山贊元受法 住明州雪竇 [續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二]

慈覺印; 普印 宋代臨濟宗僧 泉州(今屬福州)許氏 嗣雪竇法雅 出住衢州光孝 [傳燈錄十七 普燈錄八]

玅癡禪; 元妙(1111-1164) 南宋雲門宗僧 雙溪(浙江)東陽人 俗姓王 號癡禪 年十二出家 嗣寂室慧光(雲門下八世)之法 曾弘法於靈石 中天竺寺等四處道場 故世人又稱師爲中竺元妙 孝宗隆興元年(1163)退隱欈李之李氏庵 次年示寂 壽五十四 [普燈錄十七]

明大禪; 了明(?-1165) 宋代楊岐派僧 秀州(浙江嘉興)人 俗姓陸 初名近禮 身長八尺 腹大數圍 人稱大禪 依大慧杲參究 竝嗣其法 性率眞剛毅 衆欽敬之 會杲師謫梅陽 師護翼甚勤 十餘年如一日 後出主投子 長蘆 徑山諸刹 法緣頗勝 世傳其爲布袋和尙後身 晩歲頗有異行 孝宗乾道元年示寂 享壽不詳 人皆圖像供之 [續傳燈錄三十二 五燈會元補遺]

荼毗; <> jhāpeti 翻譯名義集五 闍維 或耶旬 正名茶毘 此云焚燒 西域記云 涅疊槃那 舊闍維訛也 通慧音義云 親問梵僧未聞闍維之名 正字通 梵言闍維 卽茶毘 僧死而焚之也 或作闍毘 亦作荼毘 譯音字本無定 荼茶古本一字 尤易混也

幞頭; 古代一種頭巾 古人以皂絹三尺裹髮 有四帶 二帶系腦後垂之 二帶反系頭上 令曲折附項 故稱四脚 或折上巾 至北周武帝時 裁出脚後幞髮始名幞頭 初用軟帛垂脚 隋始以桐木爲骨子 唐方以羅代繒 帝服則脚上曲 人臣下垂 [百度詞典]

不唧𠺕; 指不伶俐 暗昧不慧之鈍漢

如何若何; 指禪僧之間言句問答 按禪家提倡不立文字語言 反對言語糾纏

婆娑; 形容盤旋和舞動的樣子 二枝葉紛披的樣子

差定; 象器箋 經國大典註解云 差定 差擇也 言差任也 定安也

差役; 舊時强迫人民承擔的無償勞動

圓頂方袍; 形容出家人之形貌 圓頂 完成剃髮而呈現出家人之形相 方袍 比丘之法衣(袈裟)皆爲方形 故稱方服 又稱方袍

 

장산원(蔣山元; 贊元)은 자명(慈明; 楚圓)을 이었다. ()이 후에 설두아(雪竇雅; 法雅)를 얻었고 아()는 자각인(慈覺印; 普印)을 얻었는데 혼융연(混融然)이 실로 그(; 普印)를 이었다. 건도(乾道; 1165-1173) 간 연()이 금릉(金陵) 천희(天禧)에 주()했는데 당시에 묘치선(玅癡禪; 元妙)은 보녕(保寧)에 주()했고 명대선(明大禪; 了明)은 장산(蔣山)에 주()했다. ()이 박연(薄然; 淺薄히 여기다)히 그(; 混融然)의 유파(流派)가 황룡(黃龍; 慧南)ㆍ양기(楊岐; 方會)의 직하(直下; 直系下)가 아니라 했다. 일찍이 연(; 저본에 으로 지었음)과 더불어 쟁론(諍論; )했는데 연()의 구변(口辯)이 민첩(敏捷; )해 명()이 자못 소곤(所困)을 만났다(). 마침내() 치선(癡禪)이 이를 해지(解之; 풀어줌)함을 얻었다. ()은 기량(器量)이 과인(過人)했으나 단지 출세가 너무 일러(太早) 제방의 문호(門戶)를 겪지 못했고 종안(宗眼)이 혼효(混淆; 迷惑)했던지라 고로 총림에서 많이 이로써 그()를 천박(淺薄; )하게 여겼다. 후에 남화(南華)에 주()했고 오양(五羊)에서 멸(; 入滅)했는데 임행(臨行)에 탈쇄(脫灑)했다. 방인(邦人; 百姓)이 침향(沈香)을 쌓아 그()를 다비(荼毗)했으니 일단(一段)의 수승(殊勝)은 소소(小小)하지 않다. ()와 연()은 생연(生緣; 家鄕)이 같은 곳이다. 그의 자범(慈範; 慈愛로운 風範)을 알지 못함이 한()스럽다. 가장 사랑함은 그가 자각(慈覺)을 제()한 일문(一文)이니 심히 아름답다(). 가로되 건염(建炎) 3(1129) (; )가 홀연히 정수리()가 괴상(怪狀; )했다. 복두(幞頭)를 집어 내리고(拈下) 요대(腰帶)를 잡아 끊고(把斷) 밤에 사정(師庭)을 훔쳤다가() 스님(; 慈覺)의 착패(捉敗; 挫敗. 受挫)를 만났다. 이미 일물(一物)도 없었고 공연히() 삼배(三拜)로 예배했다. 이로부터(自是) 퇴사(退思)하매 한()이 소소(小小)하지 않았다. 사람이 혹 스님을 욕하되() 늙어 부즉류(不唧𠺕)며 마침내() 능히 아는() 게 없다 하거니와 내가() 곧 거수(擧首)하여 앙천(仰天)하며 경괴(慶怪; 괴이함을 慶賀)한다. 사람이 혹 스님을 기리되() 도가 불조(佛祖)를 초월하고 양()이 창해(滄海)를 두른다() 하거니와 나는 곧 지장(持杖)하여 그 머리를 쳐서() 부수나니() 여하약하(如何若何)한가, 착회(錯會)하는 자가 많다. 박전(薄奠)을 경진(敬陳)하니 스님이 웃으며 파사(婆娑)하신다. ()에게 소사(小師) 대기(大驥)란 자가 있었는데 순희(淳熈; 1174-1189) 간 구(; 衢州)의 영요(靈曜)에 주()했다. 당시 조정(朝廷)에서 바야흐로 역법(役法; 勞役兵役法律)을 행하려고 했다. 이절(二浙; 浙江東路浙江西路)과 강희(江淮; 揚子江淮水)ㆍ처(; 處州)에서 모두() 차정(差定 ; 差擇)했다. ()가 이에 구()ㆍ무()ㆍ처() 삼주(三州)의 승니(僧尼)와 도사(道士)를 규솔(糾率; 聚合引率)하여 조정(朝廷; )으로 나아가() 그것()을 면하게 했다. 여금의 천하 승도(僧道; 僧尼道士)가 이로 말미암아 획안(獲安)하여 국가에 차역(差役)되지 않는 것은 대개 기()의 힘인가(力耶). 뒤의 원정방포(圓頂方袍)한 자는 비롯한 바(所自)를 당지(當知)해야 하리라. ()는 후에 천태(天台) 평전(平田; 평전선원)에 주()하다가 졸()했다.

蔣山元; 찬원(贊元; ?-1086)이니 송대 임제종승. 절강 의오 사람이며 자는 보종이며 호는 각해(覺海)니 부대사(傅大士)의 후예가 되며 또 자가 만종(萬宗). 3세에 출가했고 7세에 보살계를 받았음. 제방을 편력(遍歷)하다가 석상초원(石霜楚圓)의 회하에서 참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소대ㆍ천봉ㆍ용화ㆍ백운 등의 사원에 주지했음. 또 부수(府帥)의 요청에 응해 금릉 장산(蔣山) 보지도량(寶誌道場; 太平興國寺)에 주지했음. 왕안석이 그의 덕을 상주하여 장복(章服) 및 각해선사(覺海禪師)의 호를 수사(受賜)했음. 원우 원년에 시적했음 [오등회원12. 속전등록7. 선림승보전27].

雪竇雅; 법아(法雅)니 송대 임제종승. 부춘(절강 부양) 사람. 장산찬원(蔣山贊元)에게 의지해 법을 받았고 명주 설두(雪竇)에 거주했음 [속전등록13. 오등회원12].

慈覺印; 보인(普印)이니 송대 임제종승. 천주(지금 복주에 속함) 허씨. 설두법아(雪竇法雅)를 이었고 출세해 구주 광효에 거주했음 [전등록17. 보등록8].

玅癡禪; 원묘(元妙; 1111-1164) 남송 운문종승. 쌍계(절강) 동양 사람이니 속성은 왕이며 호는 치선(癡禪). 나이 12에 출가했고 적실혜광(寂室慧光; 운문하 8)의 법을 이었음. 일찍이 영석ㆍ중천축사 등 네 곳의 도량에서 홍법(弘法)한지라 고로 세인이 또 스님을 호칭하여 중축원묘(中竺元妙)라 했음. 효종 융흥 원년(1163) 취리의 이씨암(李氏庵)에 퇴은(退隱)했고 다음해 시적했음. 나이는 54 [보등록17].

明大禪; 요명(了明) (?-1165)이니 송대 양기파승. 수주(절강 가흥) 사람. 속성은 육()이며 처음의 이름은 근례(近禮)였음. 신장이 8척이며 배의 크기가 몇 아름이었고 사람들이 대선(大禪)이라 일컬었음. 대혜고(大慧杲)를 참구하였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성격이 솔진(率眞; 솔직하고 진실함)하고 강의(剛毅; 剛直하여 굴하지 않음)했으며 대중이 그를 흠경(欽敬)했음. 마침 고사(杲師)가 매양(梅陽)에 귀양을 가자 스님이 호익(護翼; 보호하고 도움)하며 매우 부지런했고 10여 년이 하루 같았음. 후에 출세해 투자ㆍ장로ㆍ경산 여러 사찰을 주지(主持)했음. 법연(法緣)이 자못 수승했으며 세간에서 전하기를 그는 포대화상의 후신이라 했음. 만세(晩歲; 만년)에 자못 이행(異行)이 있었음. 효종 건도 원년에 시적했는데 향수(享壽)는 불상(不詳). 사람들이 모두 형상을 그려서 공양했음 [속전등록32. 오등회원보유].

荼毗; <> jhāpeti. 번역명의집5. 사유(闍維) 혹 야순(耶旬)이며 바른 이름은 다비(茶毘)니 여기에선 이르되 분소(焚燒). 서역기에 이르되 열첩반나(涅疊槃那) 구역의 사유(闍維)는 그르다. 통혜음의(通慧音義)에 이르되 친히 범승에게 물었더니 사유(闍維)란 명칭을 듣지 못했다. 정자통. 범언으로 사유(闍維)는 곧 다비(茶毘). 승인이 죽으면 그것을 불사름이다. 혹 사비(闍毘)로 짓거나 또 다비(荼毘)로 짓는다. 음자(音字)를 번역하면서 본래 정한 게 없다. 도다(荼茶)는 고본(古本)에 동일한 글자다. 더욱 쉽게 혼동된다.

幞頭; 고대 1종의 두건. 고인이 3척의 검은 비단으로 머리카락을 쌌는데 4(; )가 있었으니 2()는 두뇌 뒤에 매어서 드리우고 2대는 두상에 반대로 매었음. 굽게 꺾어지게 해 목에 붙인지라 고로 명칭이 사각(四脚) 혹 절상건(折上巾). 북주(北周) 무제 시에 이르러 각후(脚後)의 복발(幞髮)을 잘라 내었으며 비로소 복두(幞頭)로 이름했음. 처음은 부드러운 비단을 써서 각()을 내렸음. ()에서 비로소 오동나무로 골자(骨子)를 만들었으며 당()에서 비로소 나(; . 비단)로 증(; 비단)을 대체했음. 제복(帝服)은 곧 각상(脚上)이 굽었고 인신(人臣)은 아래로 처졌음 [백도사전].

不唧𠺕; 영리하지 못함을 가리킴. 암매(暗昧)하여 지혜롭지 못한 둔한(鈍漢).

如何若何; 선승 사이의 언구의 문답을 가리킴. 안험컨대 선가는 문자와 어언을 세우지 않음을 제창하고 언어의 규전(糾纏; 서로 뒤얽힘)에 반대함.

婆娑; 1. 반선(盤旋; 꾸불꾸불하게 빙빙 돎)하고 아울러 무동(舞動)하는 양자를 형용. 2. 지엽(枝葉)이 분피(紛披; 흩어져 어지러움)하는 양자.

差定; 상기전(象器箋) 경국대전주해에 이르되 차정(差定) 차택(差擇; 選擇)이다. 말하자면 차()는 임()이며 정()은 안()이다.

差役; 구시에 인민을 강박하여 승담(承擔)하게 한 무상노동(無償勞動).

圓頂方袍; 출가인의 형모(形貌)를 형용함. 원정(圓頂)은 체발(剃髮; 머리를 깎다)을 완성하여 출가인의 형상(形相)을 나타내어 보임이며 방포(方袍)는 비구의 법의(法衣; 가사)가 모두 방형(方形)인지라 고로 명칭이 방복(方服)이며 또 명칭이 방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