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황룡과 양기(黃龍楊岐)

태화당 2026. 4. 17. 07:23

黃龍楊岐二宗皆出於石霜慈明 初 黃龍之道大振 子孫世之 皆班班不減馬大師之數 自眞淨四傳而至塗毒 楊岐再世而得老演 演居海會 乃得南堂三佛以大其門戶 故今天下多楊岐之派 紹興末 塗毒旣沒 而雙徑交代乃育王佛照禪師 入院之初 首詣巖主塔頭置祭 有義銛書記者 爲其文 兄弟甚推其公 因筆錄于此 使後之學者知祖宗流派其有自 云 昔慈明老人得黃龍楊岐 猶一體之有左右手也 子孫派出 各世其家 典牛不負泐潭 其敬玅喜猶敬師也 德光實嗣玅喜 惟巖主因稟典牛 雖平生出處不仝 幸今日交承有在 道誼所在 存沒難忘 要源委其來 皆慈明屋裡人也 若巖主平日道德超邁 談辯軒豁 鉗鎚學者有大手段 江湖間特有定論 茲不事多語 以溷圓識 謹羞伊蒲 率大衆詣窣堵一奠 巖主其臨之

三佛; 宋代楊岐派法演門下多出俊秀 有佛眼淸遠 佛鑑慧懃(慧勤) 佛果克勤三人 時稱演門三佛

義銛; 宋代楊岐派僧 字朴翁 天資奇逸 辯博無礙 嗣法育王佛照德光 住湖州上方寺 [續傳燈錄三十五 五燈嚴統二十]

書記; 禪林六頭首之一 掌文疏翰墨之職稱 書記原爲古淸規之書狀 職掌文翰 凡山門之榜疏書問 祈禱之詞語 悉屬之 然古無書記之名 書記乃取元戎之幕府署記室參軍之名 於禪林特請書記以職之 非百丈禪師所設者 [百丈淸規下兩序章西序頭首書記條 象器箋職位類]

超邁; 超越 卓越高超

軒豁; 高大開闊

溷圓; 指形體非常圓或圓融周到的狀態

伊蒲; 禪林疏語考證一 斋供食曰伊蒲饌 後漢楚王映詣闕以縑贖罪 詔報曰 王好黃老之言 尙浮屠之敎 還其贖以助伊蒲塞桑門之饌 註 伊蒲塞卽優婆塞 此言近住 言受戒行甚近僧住也

窣堵; 窣堵波 又作窣覩波 藪斗婆 數斗波 塔婆 兜婆 塔 浮圖等 奉安佛物或經文 又爲標幟死者生存者之德 埋舍利 牙 髮等 以金石土木築造 使瞻仰者 譯曰大聚 方墳 圓塚 靈廟 高顯處 功德聚等 [西域記一 法華文句三 玄應音義六 慧琳音義二] 窣堵波 又作窣覩波 藪斗婆 數斗波 塔婆 兜婆 塔 浮圖等 奉安佛物或經文 又爲標幟死者生存者之德 埋舍利 牙 髮等 以金石土木築造 使瞻仰者 譯曰大聚 方墳 圓塚 靈廟 高顯處 功德聚等 [西域記一 法華文句三 玄應音義六 慧琳音義二]

 

황룡(黃龍; 慧南)ㆍ양기(楊岐; 方會) 2()은 모두 석상자명(石霜慈明; 楚圓)에서 나왔다. 처음 황룡의 도가 대진(大振)했고 자손(子孫)이 이()를 세전(世傳; )했다. 모두 반반(班班; 明顯貌)하여 마대사(馬大師; 馬祖道一)의 수()에 감()하지 않는다. 진정(眞淨; 克文)으로부터 4()하여 도독(塗毒; 智策)에 이르렀고 양기(楊岐)의 재세(再世)에 노연(老演; 法演)을 얻었다. ()이 해회(海會)에 거주하면서 이에 남당(南堂; 元靜)과 삼불(三佛)을 얻어 그 문호(門戶)를 크게 한지라 고로 여금의 천하에 양기지파(楊岐之派)가 많다. 소흥(紹興; 1131-1162) 말 도독(塗毒)이 이미 죽자() 쌍경(雙徑)에서 교대(交代)했으니 곧() 육왕(育王) 불조선사(佛照禪師; 德光). 입원(入院)한 초에 먼저() 암주(巖主; 塗毒을 가리킴)의 탑두(塔頭; 後綴)로 나아가() 치제(置祭)했다. 의섬(義銛) 서기(書記)란 자가 있었는데 기문(其文)을 지었으며() 형제가 심히 그 공()을 추앙(推仰; )한다. 인하여 여기에 필록(筆錄)하여 뒤의 학자로 하여금 조종(祖宗)의 유파(流派)가 그 비롯함()이 있음을 알게 하겠다. 이르되 옛적() 자명노인(慈明老人)이 황룡과 양기를 얻었으니 일체(一體)에 좌우수(左右手)가 있음과 같다(). 자손이 파출(派出)하여 각자 기가(其家)를 세전(世傳; )했다. 전우(典牛; 天游)는 늑담(泐潭; 文準)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그()가 묘희를 공경함이 경사(敬師)함과 같았다(). 덕광(德光; 佛祖)은 실로 묘희를 이었고 오직() 암주(巖主)는 전우(典牛)를 품승(稟承; )했음으로 인해 비록 평생 출처가 부동(不仝)하지만 다행히 금일 교승(交承)이 있음은(有在) 도의(道誼)의 소재(所在)며 존몰(存沒)을 잊기 어렵다. 근원(根源; )의 그 내유(來由; )를 알고자() 한다면 모두 자명(慈明)의 옥리(屋裡) 사람이다. 이에() 암주(巖主)는 평일에 도덕(道德)이 초매(超邁; 초월)했고 담변(談辯)이 헌활(軒豁; 훤히 터져 드넓은 모양)했다. 학자를 겸추(鉗鎚)하면서 큰 수단(手段)이 있었고 강호(江湖) 사이에 정론(定論)이 특별히 있다. 여기에선() 다어(多語)를 일삼지 않고 혼원식(溷圓)으로써 이포(伊蒲)를 삼가 올린다(謹羞). 대중을 인솔(引率; )하여 솔도(窣堵)에 나아가 일전(一奠)하나니 암주는 그, ()에 임하소서.

三佛; 송대 양기파 법연의 문하에 준수(俊秀)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불안청원(佛眼淸遠)ㆍ불감혜근(佛鑑慧懃; 慧勤)ㆍ불과극근(佛果克勤) 3인이 있어 당시에 연문삼불(演門三佛)로 일컬었음.

義銛; 송대 양기파승. 자는 박옹(朴翁)이며 천자(天資)가 기이하고 뛰어났으며 변박(辯博; 博學)하고 무애했음. 육왕 불조덕광(佛照德光)의 법을 이었고 호주 상방사에 주()했음 [속전등록35. 오등엄통20].

書記; 선림 6두수(頭首)의 하나. 문소(文疏)의 한묵(翰墨; 필묵. 문장)을 관장하는 직칭(職稱). 서기는 원래 고청규의 서장(書狀)이며 문한(文翰; 문장)을 직장(職掌; 맡아서 관장)했음. 무릇 산문의 방소(榜疏)와 서문(書問; 書信), 기도의 사어(詞語)가 모두 그에 속했음. 그러나 옛적에 서기의 명칭이 없었음. 서기는 곧 원융(元戎; 主將)의 막부(幕府; 衙署) 서기실(署記室) 참군(參軍)의 명칭을 취했음. 선림에선 특별히 서기를 청해 이것을 맡겼음(). 백장선사가 설립한 바의 것이 아님 [백장청규하양서장서서두수서기조. 상기전직위류].

超邁; 초월. 탁월하고 고초(高超).

軒豁; 고대(高大)하고 개활(開闊).

溷圓; 형체가 비상(非常)으로 둥글거나 혹 원융하여 주도(周到)한 상태를 가리킴.

伊蒲; 선림소어고증1. 재공식(斋供食; 簡體)을 가로되 이포찬(伊蒲饌). 후한 초왕(楚王) ()이 대궐로 나아가 비단으로 속죄했다. 조칙으로 알려 가로되 왕은 황로(黃老)의 말을 좋아하고 부도(浮屠)의 교를 숭상한다. 그 속()을 반환하니 이포새(伊蒲塞)로서 상문(桑門)의 찬(; 음식)을 부조(扶助)하라. () 이포새는 곧 우바새(優婆塞)니 여기 말로는 근주(近住). 말하자면 수계하여 행하면서 심히 승가에 가까이 머묾이다.

窣堵; 솔도파(窣堵波; stūpa)니 또 솔도파(窣覩波)ㆍ수두파(藪斗婆)ㆍ수두파(數斗波)ㆍ탑파(塔婆)ㆍ두파(兜婆)ㆍ탑ㆍ부도(浮圖) 등으로 지음. 불물(佛物) 혹 경문을 봉안함. 또 죽은 자나 생존자의 덕을 표치(標幟). 사리ㆍ이빨ㆍ머리카락 등을 묻으며 금석이나 토목(土木)으로 축조하여 첨앙(瞻仰)하게 하는 것. 번역해 가로되 대취(大聚)ㆍ방분(方墳)ㆍ원총(圓塚)ㆍ영묘(靈廟)ㆍ고현처(高顯處)ㆍ공덕취(功德聚) 등임 [서역기1. 법화문구3. 현응음의6. 혜림음의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