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당 우세남(唐虞世南)

태화당 2026. 4. 17. 07:28

虞世南 通曆有問曰 梁武夷凶剪暴 克成帝業 南面君臨五十餘載 葢有文武之道焉 至于留心釋典桑門比行 以萬乘之君 爲匹夫之善 熏修不保 危亡已及 豈其之所非耶 何福謙之無効 先生對云 夫釋敎者 出世之津梁 絶塵之軌躅 運於方寸之間 超於有無之表 塵累旣盡 攀緣已息 然後入於解脫之門 至於化俗之法 則有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 是爲六波羅密 與夫仁義禮智信 亦何異哉 葢以所修爲因 所報爲果 人修此六行皆多不全 有一缺焉 果亦隨減 是以鬷明醜於貌 慧於心 趙一高於才 下於位 羅褒福而無義 原憲貧而有道 其不同也 如斯懸絶 興喪得失 咸必由之 下士庸夫 見比干之剖心 以爲忠直不必爲也 聞偃王之亡國 以爲仁義不足法也 若然者 盜跖高枕於東陵 莊蹻懸車於西蜀 老終厥命 良足貴乎 又問曰 周武帝毀滅二敎 是耶非耶 先生曰 非耶 或曰 請問其說 先生曰 釋氏之法 則是空有無滯 人我兼忘 超出生死 歸於寂滅 此象外之談也 老氏之義 則谷神不死 玄牝長存 長生久視 騰雲駕鶴 此區中之敎也 至於止惡尙仁 勝殘去殺 竝有益於王化 無乖於俗典 今以常僧犯律 道士遺經 便謂其敎可棄 其言可絶 何異責檮杌而廢堯 怨有苗而黜禹 見瓠子泛濫 遠塞河源 覩崑嶽方偶 遽投金燧 曾不知潤下之德有利已深 變腥之用其功甚博 井蛙觀海 跼於所見 輪回長夜之迷 自貽沈溺之苦 疑悞後學 良可痛哉

虞世南; (558-638) 唐代居士 字伯施 餘姚(今屬浙江)人 隋大業(605-6 17)中 纍官至祕書郞 唐太宗時爲弘文館學士 後任銀靑光祿大夫 謚文懿 撰有幽州昭仁寺碑 [佛法金湯編八 叢林盛事下 名公法喜志二]

通曆; 唐代的一部簡明通史著作

萬乘; 祖庭事苑五 萬乘 孟子云 方千里而井 井九百畝是也 古之大國不過萬里 以百里賦千乘 今言萬乘 率千里之賦也 又孟子云 天子之制 地方千里 公侯之制 地方百里 伯七十里 男子五十里是也

匹夫; 指平民中的男子 泛指平民百姓

塵累; 指煩惱惡業 因煩惱惡業能染汚 繫縛心 故稱塵累

攀緣; 攀取緣慮 心念執著于塵俗事物 如同猿猴攀樹 佛家稱爲攀緣

波羅密; 又作波羅蜜 波羅蜜多 波囉弭多 播囉弭多 譯言究竟 到彼岸 度無極 又單譯曰度 大乘義章十二 波羅蜜者 是外國語 此翻爲度 亦名到彼岸 (中略)波羅者岸 蜜者是到

原憲; (515—?) 字子思 春秋末年宋國商丘人 孔子弟子 孔門七十二賢之一

比干; (1125-1063) 子姓 沫邑(今河南淇縣)人 商代帝王太丁的次子 帝辛的叔父 官少師(丞相) [百度百科] 祖庭事苑五 史記(38) 王子比干 紂之親戚也 以紂沈湎於酒 婦人是用 亂敗湯德 見箕子諫不聽而爲奴 則曰 君有過而不以死爭 則百姓何辜 乃直言諫紂 紂怒曰 吾聞聖之心有七竅 信有諸乎 乃殺王子比干 刳視其心 比干王子也 爲殷少師令

偃王; 嬴姓徐氏 名誕 是西周時徐國國君 徐國統轄今淮 泗一帶 建都徐城(今宿遷市泗洪縣周穆王末年 徐君偃好行仁義 前來歸順的東夷國家有四十多個 周穆王巡視各國 聽聞徐君威德日遠 遣楚國襲其不備 大破之 殺偃王 [百度百科]

盗跖; 原名展雄 姬姓 展氏 名跖 一作蹠 又名柳下跖 柳展雄 在先秦古籍中被稱爲盜跖和桀跖 傳說是春秋時期的率領盜匪數千人的大盜 當時魯國賢臣柳下惠(柳下季)之弟 爲魯孝公的兒子公子展的後裔 因以展爲氏 [百度百科]

莊蹻; (?-256) 又作莊豪 莊嶠 企足 戰國時期楚國將軍 楚莊王之苗裔 古滇國建立者 [百度百科]

懸車; 致仕 古人一般至七十歲辭官家居 廢車不用 故云

周武帝; (543-578) 姓宇文氏 名邕 鮮卑人 宇文泰第四子 建德元年(572)親政 銳意求治 初崇佛法 後惑於衛元嵩等 嚴禁佛敎 境內佛寺 悉遭毁滅 熔尊像法器爲錢幣 勒令僧人還俗 北方佛法遭受空前浩劫 史稱周武滅法 [周書五 同六 北史十]

谷神; 道德經谷神章第六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勝殘去殺; 感化殘暴的人使其不再作惡 便可廢除死刑 也指以德化民 太平至治

檮杌; 釋氏稽古略一云 帝鴻氏有不才子 號曰渾沌 驩兜也 少皡氏有不才子 號曰窮奇 共工氏顓頊氏有不才子 號曰檮杌 鯀也 縉雲氏有不才子 號曰饕餮 三苗也 是謂四凶 仕於堯 堯未能去 舜皆投諸四裔

有苗; 又稱三苗 苗民 是中國上古堯舜時期活躍於長江中游洞庭湖至鄱陽湖一帶的部落集團 [百度百科]

金燧; 中國古代利用金屬器具聚光取火的工具 又稱陽燧

 

() 우세남(虞世南). 통력(通曆)에 물음이 있어 가로되 양무(梁武; 梁武帝)가 이흉전폭(夷凶剪暴; 흉폭한 이를 죽이고 베다)하여 능히() 제업(帝業)을 이루었고 남면(南面)하여 군림(君臨)하기 50여 재()에 대개 문무(文武)의 도가 있었다. 석전(釋典)과 상문(桑門; 沙門)에 유심(留心)하여 비행(比行; 並排하여 行進)함에 이르렀거니와 만승지군(萬乘之君)으로서 필부(匹夫)의 선()을 지어() 훈수(熏修)를 보전(保全; )하지 못하고 위망(危亡)이 이미 미쳤으니 어찌() 그것()이 잘못된 바(所非)인가. 왜 복겸(福謙; 복과 謙讓)이 무효(無効)한가. 선생(先生)이 대운(對云) 무릇() 석교(釋敎)란 것은 출세(出世; 出世間)의 진량(津梁; 나루와 橋梁)이며 절진(絶塵; 塵勞를 끊음)의 궤촉(軌躅; 法則, 規範)이다. 방촌지간(方寸之間)에서 운행(運行; )하여 유무지표(有無之表; 유무의 밖)를 초월한다(). 진루(塵累)가 이미 다하고 반연(攀緣)을 이미 쉰() 연후에 해탈지문(解脫之門)에 들어간다. 화속지법(化俗之法; 세속을 교화하는 법)에 이르러선 곧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있으니 이것()6바라밀(波羅密)이 되나니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더불어(與夫; 는 조사) 또한 어찌 다르다 하겠는가. 대개 소수(所修)로써 인()을 삼고 소보(所報)로 과()를 삼거니와 사람이 이 육행(六行)을 수행하면서 모두 많이 부전(不全)한지라 일결(一缺)이 있으면 과()도 또한 수감(隨減)한다. 이런 까닭으로 종명(鬷明)은 모습이 추()했으나(醜於貌) 마음이 지혜로웠고(慧於心) 조일(趙一; 趙壹과 같음. 東漢辭賦家)은 재능이 높았으나(高於才) 지위가 낮았고(下於位) 나포(羅褒; 저본에 羅裒로 지었음. 西漢時期官員이며 文學家)는 복인(福人; )이면서 의()가 없었고 원헌(原憲)은 빈곤하면서 도가 있었으니 그 부동(不同)함이다. 이와 같이(如斯) 헌절(懸絶; 相差極遠)하나니 흥상득실(興喪得失)은 모두() () 이를 말미암는다(由之). 하사(下士)와 용부(庸夫; 저본에 庸失로 지었음)가 비간(比干)의 부심(剖心; 심장을 쪼갬)을 보고 충직(忠直)은 꼭() 하지 않아야 하며 언왕(偃王)의 망국(亡國)을 듣고 인의(仁義)는 족히 본받지() 않아야 한다 하거니와 만약 그러할진대 도척(盜跖)이 동릉(東陵)에 고침(高枕)하고 장교(莊蹻)가 서촉(西蜀)에 헌거(懸車)하며 궐명(厥命; 命運)을 노종(老終; 늙어 죽도록 누림)하리니 참으로() 족히 귀()하다고 하겠는가. 또 문왈(問曰) 주무제(周武帝)가 이교(二敎; 불교와 도교)를 훼멸(毀滅)했거니와 옳은가 그른가. 선생이 가로되 그르다(非耶). 혹왈(或曰) 기설(其說)을 청문(請問)한다. 선생이 가로되 석씨지법(釋氏之法)은 곧 이 공유(空有)에 무체(無滯)하고 인아(人我)를 겸망(兼忘)하고 생사를 초출하고 적멸로 돌아가나니 이것은 상외지담(象外之談)이다. 노씨지의(老氏之義)는 곧 곡신(谷神)이 불사(不死)하고 현빈(玄牝)이 장존(長存)하고 장생구시(長生久視; 久視長壽. 不老)하고 등운가학(騰雲駕鶴)하나니 이것은 구중지교(區中之敎). 지악상인(止惡尙仁)하고 승잔거살(勝殘去殺)함에 이르러선 모두() 왕화(王化)에 유익(有益)하며 속전(俗典)에도 어긋남()이 없다. 여금에 상승(常僧)이 범률(犯律)하고 도사(道士)가 유경(遺經)함으로써 바로 이르기를 그 교()를 버림이 옳고 그 말을 끊음이 옳다고 한다면 도올(檮杌)을 책망(責望; )하여 폐요(廢堯)하고 유묘(有苗)를 원망(怨望; )하여 출우(黜禹)함과 어찌 다르겠는가. 호자(瓠子; 표주박)가 범람(泛濫)함을 보고 멀리 하원(河源)을 막고() 곤악(崑嶽; 昆嶽으로 지음. 昆侖山別稱)의 방우(方偶)를 보고() 급히() 금수(金燧)를 던진다면 일찍이 윤하(潤下)의 덕이 유리(有利)함이 이미 깊고 변성(變腥)의 용()이 그 공()이 심박(甚博)함을 알지 못함이다. 정와(井蛙)가 관해(觀海)하면 소견(所見)에 국한(局限; )되나니 장야지미(長夜之迷)에 윤회하고 스스로 침닉지고(沈溺之苦)를 끼치고() 후학을 의오(疑悞; 疑惑. 錯誤或失誤)하리니 참으로() 가히 통재(痛哉)로다.

虞世南; (558-638) 당대 거사. 자는 백시며 여요(지금 절강에 속함) 사람. 수 대업(605-617) 중 벼슬을 거듭하여 비서랑에 이르렀음. 당태종 시 홍문관학사가 되었고 후에 은청광록대부에 임명되었음. 시호는 문의. 찬술(撰述)에 유주소인사비(幽州昭仁寺碑)가 있음 [불법금탕편8. 총림성사하. 명공법희지2].

通曆; 당대(唐代)의 일부(一部) 간명(簡明)한 통사저작(通史著作).

萬乘; 조정사원5. 만승(萬乘) 맹자에 이르되 사방 천 리가 정()이며 정이 9백묘(百畝; 는 이랑 묘. 원음이 무)라 한 게 이것이다. 옛적의 대국은 만 리를 넘지 않았고 백 리마다 천승(千乘)을 부과(賦課)했으므로 이제 말한 만승이란 비율(比率)이 천 리의 구실()이다. 또 맹자(萬章下)에 이르되 천자의 제도(制度)는 땅이 사방 천 리며 공후(公侯; 公爵侯爵)의 제도는 땅이 사방 백 리며 백(; 伯爵)70리며 남(; 男爵)과 자(; 子爵)50리 라 한 게 이것이다.

匹夫; 평민 중의 남자를 가리킴. 널리 평민백성을 가리킴.

塵累; 번뇌와 악업을 가리킴. 번뇌와 악업으로 인해 능히 염오(染汚)하고 마음을 계박(繫縛)하는지라 고로 일컬어 진루임.

攀緣; 연려(緣慮)를 반취(攀取; 당겨서 취함)함이니 심념이 진속(塵俗)의 사물에 집착함이 마치 원후(猿猴; 원숭이)가 반수(攀樹; 나무에 매달림. 나무를 잡아당김)함과 같음이니 불가에서 반연으로 호칭함.

波羅密; 또 바라밀(波羅蜜; pāramitā)ㆍ바라밀다(波羅蜜多)ㆍ바라미다(波囉弭多)ㆍ파라미다(播囉弭多)로 지으며 번역해 말하면 구경(究竟)ㆍ도피안(到彼岸)ㆍ도무극(度無極)이며 또 단역(單譯)해 가로되 도(). 대승의장12. 바라밀(波羅蜜)이란 것은 이 외국어다. 여기에선 번역해 도()라 하며 또 이름이 도피안(到彼岸)이다 (중략) 바라(波羅)란 것은 안()이며 밀()이란 것은 이 도().

原憲; (515—?) 자는 자사(子思)며 춘추 말년의 송국(宋國) 상구(商丘) 사람. 공자의 제자며 공문(孔門) 칠십이현(七十二賢)의 하나.

比干; (1125-1063) 자성(子姓)이며 말읍(지금의 하남 기현) 사람. 상대(商代) 제왕 태정(太丁)의 둘째 아들이며 제신(帝辛)의 숙부. 관직이 소사(少師; 丞相)였음 [백도백과]. 조정사원5. 사기(38) 왕자 비간(比干)은 주(; 商王朝의 마지막 왕)의 친척이다. ()가 술에 침면(沈湎; 은 빠지다)하고 부인(婦人)을 곧() 쓰기 때문에 탕왕(湯王; 夏王朝傑王鳴條에서 敗死시키고 나라를 건국했음)의 덕을 난패(亂敗)했다. 기자(箕子; 太丁帝의 아들로 紂王叔父)가 간했으나 듣지 않고 노비로 삼는 것을 보고 곧 가로되 군왕이 과오가 있는데 죽음으로써 간쟁(諫爭; 은 간할 쟁)하지 않는다면 곧 백성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이에 직언으로 주를 간했다. 주가 노해 가로되 내가 듣기로 성인(聖人)의 심장엔 일곱 구멍이 있다던데 진실로() 그것이(代詞. 그 제. 원음이 저) 있는가. 이에 왕자 비간을 죽여 그 심장을 쪼개어 보았다. 비간은 왕자며 은(; 처음엔 이라 했으나 17代 盤庚 으로 옮겨 이라 고침)의 소사령(少師令)이 되었음.

偃王; 영성(嬴姓) 서씨(徐氏)며 이름은 탄()이니 이는 서주(西周) 시 서국(徐國)의 국군(國君). 서국은 지금의 회()와 사() 일대를 통할(統轄)했고 서성(徐城; 지금의 숙천시 사홍현)에 건도(建都)했음. 주목왕(周穆王) 말년 서군(徐君) ()이 인의(仁義)를 행하기 좋아하자 앞으로 와서 귀순하는 동이(東夷)의 국가가 40다개(多個) 있었음. 주목왕이 각국을 순시하다가 서군의 위덕이 날로 멀리 퍼진다 함을 듣고 초국(楚國)을 파견해 그 불비(不備)를 습격하여 그것을 대파(大破)하고 언왕을 죽였음 [백도백과].

盗跖; 원명은 전웅(展雄). 희성(姬姓), 전씨(展氏)며 이름은 척()이니 한편으론 척()으로 지음. 또 이름이 유하척(柳下跖)ㆍ유전웅(柳展雄). 선진(先秦) 옛 서적 중에 있어선 도척ㆍ걸척(桀跖)으로 호칭됨을 입었음. 전설의, 이 춘추시기의 도비(盜匪) 수천 사람을 솔령(率領)한 대도. 당시 노국(魯國)의 현신 유하혜(柳下惠; 柳下季)의 동생이며 노효공의 아들 공자전(公子展)의 후예. 때문에 전()으로 씨()를 삼음 [백도백과].

莊蹻; (?-256) 또 장호(莊豪), 장교(莊嶠), 기족(企足)으로 지음. 전국시기(戰國時期) 초국(楚國)의 장군. 초장왕(楚莊王)의 묘예(苗裔) 옛 전국(滇國)의 건립자 [백도백과].

懸車; 치사(致仕; 벼슬을 그만 둠). 고인은 일반으로 70세에 이르면 사관(辭官)하고 귀거(家居)하며 폐거(廢車)하여 쓰지 않는지라 고로 이름.

周武帝; (543-578) 성은 우문씨(宇文氏)며 이름은 옹()이니 선비인(鮮卑人). 우문태의 제4자며 건덕 원년(572) 친정(親政)했고 예의(銳意)로 구치(求治)했음. 처음은 불법을 숭상했으나 후에 위원숭(衛元嵩) 등에게 현혹되어 불교를 엄금했음. 경내의 불사(佛寺)는 모두 훼멸(毁滅)을 만났고 존상(尊像)과 법기(法器)는 녹여 전폐(錢幣)로 만들었고 승인에게 칙령하여 환속하게 했음. 북방의 불법은 공전(空前)의 호겁(浩劫)을 조수(遭受)했으니 사칭(史稱)이 주무멸법(周武滅法)[주서5, 6. 북사10].

谷神; 도덕경 곡신장 제6. 곡신(谷神)은 죽지 않나니 이를 일러 현빈(玄牝)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이를 일러 천지의 뿌리라 하나니 면면하여 존재하는 듯하며 이를 쓰매 다하지() 않는다.

勝殘去殺; 잔폭(殘暴)한 사람을 감화(感化)하여 그로 하여금 다시 작악(作惡)하지 않게 하고 바로 가히 사형을 폐제(廢除)함임. 또한 덕으로써 화민(化民)하여 태평의 지치(至治)를 가리킴.

檮杌; 석씨계고략1에 이르되 제홍씨(帝鴻氏)에게 부재(不才)의 아들이 있었는데 호해 가로되 혼돈(渾沌)이니 환두(驩兜). 소호씨(少皡氏)에게 부재의 아들이 있었는데 호해 가로되 궁기(窮奇). 공공씨(共工氏) 전욱씨(顓頊氏)에게 부재의 아들이 있었는데 호해 가로되 도올(檮杌)이니 곤()이다. 진운씨(縉雲氏)에게 부재의 아들이 있었는데 호해 가로되 도철(饕餮)이니 삼묘(三苗). 이를 일러 사흉(四凶)이라 하는데 요()에게 벼슬했다. 요가 능히 제거하지 못했는데 순이 모두 사예(四裔)에 던져버렸다.

有苗; 또 명칭이 삼묘(三苗), 묘민(苗民). 이는 중국 고() 요순(堯舜時期) 시기 장강하유(長江中游), 동정호(洞庭湖)에서 파양호(鄱陽湖) 일대(一帶)에 이르기까지 활약한 부락집단(部落集團) [백도백과].

金燧; 중국 고대에 금속기구(金屬器具)를 이용해 취광취화(聚光取火)한 공구(工具). 또 명칭이 양수(陽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