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曇橘洲者 川人 乃別峰印和尙之法弟 學問該博 擅名天下 本朝自覺範後 獨推此人而已 住蜀之無爲山 遭橫逆 來下江 丞相史公尊其學業 擧以住明之仗錫 初入院時 二相親送 其後史公復造竹院以延之 凡有質疑事必問 故別峰自金山來雪竇 諸山一疏 乃曇撰之 其詞曰 住雪竇好 住翠峰好 老子當斷自胸中 爲法來耶 爲牀座耶 此行殆出人意表 無愧乎東山直下四世 望之如西湖雪後諸峰 但得心同道同出處同 休問佛界魔界衆生界 新乳峰禪師 聲飛吳越 價重岷峨 住海門國逾一十有二年 肆瀾飜口說八萬四千偈 如山屹屹 有陣堂堂 與其據滄波而擾蛟龍 孰若依蕙帳而友猿鶴 載念伊蘭之世 冀一現於優曇 計非師子之家 當盡摟其種類 歸來 及早慰我同門 此話江湖競傳之(時自得暉交代) 然曇賦性坦率 不事抅撿 在竹院日 復以酒事遭太守林侍郞追至 出對與之曰 酒曇過界 住無爲而無所不爲 葢曇曾住無爲故也 而曇卒不能對 復爲林流過丹丘 二年回寶奎 一日 沐浴更衣 請史魏公敘平日行紀 談咲中而化 闔城士俗皆送之 荼毗 獲舍利無數
●覺範; 德洪(1071-1128) 宋代黃龍派僧 瑞州(江西高安)人 俗姓喩(或謂彭 兪) 字覺範 號寂音尊者 年十九 試經於東京天王寺而得度 初名慧洪 參眞淨克文而得法 崇寧(1102-1106)年中 住持臨川北禪院 後遷金陵淸涼寺 未久 爲狂僧誣以度牒冒名旁連訕謗事 誣陷入獄 張無盡特奏得度改今名 太尉郭天民奏賜椹服 號寶覺圜明 自稱寂音尊者 政和元年(1111)頃 坐交張郭厚善 張罷政事 有嫉之者 誣指師與二人交通 詔奪袈裟 發配然州 三年始得歸 同年冬 復拘之於幷州獄 踰年獲釋 遂棄僧服入九峰洞山 以文章自娛 其後將赴湘西 途經南昌 復爲道士誣陷下獄 幸遇赦得免 遂入居南臺明白庵 靖康元年(1126) 蒙賜再度剃髮 恢復慧洪舊名 建炎二年寂於同安 壽五十八 著林間錄二卷 僧寶傳三十卷 高僧傳十二卷 智證傳十卷 志林十卷 冷齋夜話十卷 天厨禁臠一卷 石門文字禪三十卷 語錄偈頌一編 法華合論七卷 楞嚴尊頂義十卷 圓覺皆證義二卷 金剛法源論一卷 起信論解義二卷 並行于世 [佛祖歷代通載十九 普燈錄七 續傳燈錄二十二]
●横逆; 强暴不順理的行爲
●諸山一疏; 諸山疏 延請新住持時 勸請鄰近諸山住持駕臨之文疏
●孰若; 疑問語氣詞 詢問二者相比 何者優劣
●蕙帳; 喻指芳美雅致的帷帳
●伊蘭; <梵> eraṇḍa 慧琳音義二十五 伊蘭 具足應云伊那拔羅 此云極臭木也
●優曇; 玄應音義二十一 烏曇跋羅花 舊言優曇波羅花 或作何雲婆羅花 此葉似梨 果大如捲 其味甛 無花而結子 亦有花而難値 故經中以喩希有者也 ▲合部金光明經壽量品 於無量時 諸佛世尊 乃出於世 譬如優曇婆羅華 於無量時乃出於世 ▲佛本行集經三十一 有一大樹 名優曇婆羅(隋言求願) 時彼樹有一大獼猴 在於樹頭 取果子食 ▲大寶積經一百九 譬如尼拘陀樹子 或優曇婆羅等諸樹子 雖復細小 而能生極大樹枝
●舍利; <梵> śarīra 梵語也 新作設利羅 室利羅 此云骨身 身骨 通常指佛之遺骨 亦卽佛舍利 又尊稱死者之遺骨 亦稱靈骨
○담귤주(曇橘洲)란 자는 천(川; 四川) 사람이다. 곧(乃) 별봉인(別峰印; 寶印) 화상의 법제(法弟)다. 학문이 해박(該博)했고 천하에 천명(擅名; 名聲을 享有)했다. 본조(本朝) 각범(覺範; 德洪) 후로부터 오직(獨) 이 사람을 추앙(推仰; 推)할 따름이다. 촉(蜀)의 무위산(無爲山)에 거주했는데 횡역(橫逆)을 만나 하강(下江; 長江 下游地區)으로 왔다. 승상(丞相) 사공(史公)이 그의 학업(學業)을 존중했고 거천(擧薦; 擧)하여 명(明; 明州)의 장석(仗錫)에 주(住)하게 했다. 처음 입원(入院)할 때 이상(二相; 左右丞相)이 친송(親送)했다. 그 후 사공(史公)이 다시 죽원(竹院)을 지어 그(之)를 연청(延請; 延)했고 무릇 질의(質疑)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물었다. 고로 별봉(別峰; 寶印)이 금산(金山)으로부터 설두(雪竇)로 오자 제산일소(諸山一疏)를 이에 담(曇)이 지었다(撰之). 기사(其詞)에 가로되 설두(雪竇)에 주(住)함이 좋으냐, 취봉(翠峰)에 주(住)함이 좋으냐. 노자(老子; 老漢)가 흉중(胸中)으로부터 당단(當斷)해야 한다. 법(法)을 위해 왔느냐, 상좌(牀座)를 위함이냐, 차행(此行)은 거의(殆) 사람의 의표(意表; 意想의 밖)를 벗어난다(出). 동산(東山; 法演) 직하(直下) 4세(世)에 부끄러움(愧)이 없나니 바라보매(望之) 서호(西湖)의 설후(雪後)의 제봉(諸峰)과 같다. 단지 심동(心同)ㆍ도동(道同)ㆍ출처동(出處同)을 얻고 불계(佛界)ㆍ마계(魔界)ㆍ중생계(衆生界)를 묻지 말아라(休). 신유봉(新乳峰; 乳峰은 雪竇. 別峰寶印을 가리킴) 선사는 명성(名聲; 聲)이 오월(吳越)에 날고(飛) 가치(價)가 민아(岷峨; 岷山과 峨眉山) 보다 무겁다(重). 해문국(海門國)에 주(住)한 지 일십유이년(一十有二年)을 넘었고(逾) 사란(肆瀾; 물결을 베풀다)하고 번구(飜口; 입을 놀림)하며 팔만사천게(八萬四千偈)를 설했다. 산이 흘흘(屹屹; 우뚝 솟다)함과 같고 진(陣)이 당당(堂堂)함이 있다. 그(其)와 더불어 창파(滄波)에 기대어(據) 교룡(蛟龍)을 길들이거늘(擾) 숙약(孰若; 누가) 혜장(蕙帳)에 의지해 원학(猿鶴)과 벗하겠는가. 재념(載念; 載는 조사)컨대 이란지세(伊蘭之世)에 우담(優曇)이 일현(一現)함을 바라며(冀) 계탁(計度; 計)컨대 사자지가(師子之家)가 아니면 마땅히 그 종류를 다 끌어모아(盡摟) 귀래(歸來)하여 및 나의 동문(同門)을 조위(早慰)하라. 차화(此話)를 강호(江湖)에서 다투어 전했다(時에 自得暉가 交代했다). 그러나 담(曇)은 부성(賦性; 天性. 禀性)이 탄솔(坦率; 直率)했고 구검(抅撿)을 일삼지 않았다. 죽원(竹院)에 있던 날 다시 주사(酒事)로써 태수(太守) 임시랑(林侍郞)의 추지(追至)를 만났다(遭). 나가자 상대해 주어 가로되 주담(酒曇)이 과계(過界; 경계를 초과)하여 무위(無爲)에 주(住)하면서 하지 못하는 바가 없구나. 대개 담(曇)이 일찍이 무위(無爲; 無爲山)에 주한 연고이다. 담(曇)이 마침내(卒)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다시 임(林)이 유배(流配; 流)되어 단구(丹丘)에 이르렀다가(過) 2년 만에 보규(寶奎)로 돌아왔다. 어느 날 목욕경의(沐浴更衣)하고 사위공(史魏公)을 청해 평일의 행기(行紀; 行程)를 서술(敍述; 敘)하고 담소(談咲)하던 중에 화(化; 遷化)했다. 합성(闔城; 全城)의 사속(士俗)이 모두 장송(葬送)했다(送之). 다비(荼毗)하여 사리(舍利)를 무수(無數)히 얻었다.
●覺範; 덕홍(德洪; 1071-1128)이니 송대 황룡파승. 서주(강서 고안) 사람이며 속성은 유(喩. 혹은 이르되 彭ㆍ兪)며 자는 각범(覺範)이며 호는 적음존자(寂音尊者). 나이 19에 동경 천왕사에서 시경(試經)하여 득도했음. 처음의 이름은 혜홍(慧洪)이었으며 진정극문(眞淨克文)을 참알해 법을 얻었음. 숭녕(1102-1106)년 중에 임천 북선원에 주지했으며 후에 금릉 청량사로 옮겼음. 오래지 않아 광승(狂僧)이, 도첩(度牒)의 모명(冒名)과 두루 산방(訕謗)의 일을 연결해 무고(誣告)하는 통에 무함(誣陷)으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장무진이 특주(特奏)하여 득도(得度)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음. 태위 곽천민이 주청하여 침복(椹服. 僧服)과 보각원명이란 호를 주었음. 자칭이 적음존자(寂音尊者)임. 정화 원년(1111) 무렵(頃) 장곽과 교유(交遊)하며 후선(厚善)함에 연좌되었으니 장곽은 정사(政事)를 그만두었으며 질투하는 자가 있어 스님이 두 사람과 교통(交通)했다고 무고(誣告)로 가리키는 통에 조칙으로 가사를 뺏고 연주로 유배를 떠났음. 3년 만에 비로소 돌아옴을 얻었으나 같은 해 겨울에 다시 병주옥에 구속되었다가 해를 넘기자 석방됨을 얻었음. 드디어 승복을 버리고 구봉의 동산(洞山)에 들어가 문장으로 자오(自娛)했음. 그 후 장차 상서(湘西)에 이르려는데 길이 남창을 경유했으며 다시 도사(道士)의 무함(誣陷)으로 하옥되었음. 다행히 사면을 만나 면함을 얻었음. 드디어 남대 명백암으로 들어가 거주했는데 정강 원년(1126) 재도(再度; 再次) 체발(剃髮)을 몽사(蒙賜)하여 구명(舊名) 혜홍(慧洪)을 회복했음. 건염 2년 동안(同安)에서 입적했으니 나이는 58. 저서에 임간록 2권ㆍ승보전 30권ㆍ고승전 12권ㆍ지증전 10권ㆍ지림 10권ㆍ냉재야화 10권ㆍ천주금련 1권ㆍ석문문자선 30권ㆍ어록게송 1편(編)ㆍ법화합론 7권ㆍ릉엄존정의 10권ㆍ원각개증의 2권ㆍ금강법원론 1권ㆍ기신론해의 2권이 있어 모두 세상에 행함 [불조역대통재19. 보등록7. 속전등록22].
●横逆; 강폭(强暴)하고 순리(順理)가 아닌 행위.
●諸山一疏; 제산소(諸山疏)는 새 주지를 연청(延請)할 때 인근 제산(諸山)의 주지의 가림(駕臨)을 권청(勸請)하는 문소(文疏)임.
●孰若; 의문어기사(疑問語氣詞)니 이자(二者)를 상비(相比)하매 어느 것이 우열(優劣)한가 하고 순문(詢問)함.
●蕙帳; 방미(芳美)하고 아치(雅致)한 유장(帷帳)을 유지(喻指)함.
●伊蘭; <범> eraṇḍa. 혜림음의25. 이란(伊蘭) 구족하면 응당 이르되 이나발라(伊那拔羅)니 여기에선 이르되 극취목(極臭木)이다.
●優曇; 현응음의21 오담발라화(烏曇跋羅花; 梵 udumbara) 구역(舊譯)에 말하되 우담바라화(優曇波羅花)며 혹은 하운바라화(何雲婆羅花)로 지었다. 이것의 잎은 배나무와 같고 열매는 크기가 주먹과 같으며 그 맛은 달다. 꽃이 없으면서 열매를 맺는다. 또한 꽃이 있음을 만나기 어려우므로 고로 경중에서 희유한 것에 비유한다. ▲합부금광명경 수량품. 무량한 때 제불세존이 세상에 출현했으니 비유컨대 우담바라화(優曇婆羅華)가 무량한 때 세상에 출현함과 같다. ▲불본행집경31. 한 큰 나무가 있었으니 이름이 우담바라(優曇婆羅; 隋나라 말로 求願)다. 때에 그 나무에 한 마리의 큰 원숭이(獼猴)가 있어 나무 꼭대기에 있으면서 과자(果子; 열매)를 취해 먹었다. ▲대보적경109. 비유컨대 니구타수자(尼拘陀樹子; 子는 씨)나 혹 우담바라(優曇婆羅) 등 여러 수자(樹子)가 비록 다시 세소(細小)하지만 능히 극대(極大)의 수지(樹枝)를 냄과 같다.
●舍利; <범> śarīra. 범어임. 신역엔 설리라(設利羅)ㆍ실리라(室利羅)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골신(骨身)ㆍ신골(身骨)임. 통상적으론 불타의 유골을 가리키므로 또한 곧 불사리임. 또 죽은 자의 유골을 존칭함이며 또한 영골이라고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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