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둔암연(遯菴演)

태화당 2026. 4. 20. 07:43

遯菴演 閩人 初見元枯木 後參玅喜於徑山 與最菴印同菴璉裒集大慧廣錄三十卷 盛行于世 慧旣沒 演不復出遊 一衲寒暑 居經三十年 數董板首 閩帥趙汝愚待以福之秀峰 堅臥不起 別峰作疏勸請 有幽蘭林下 豈無人而不芳 至寶道中 葢具眼而始識之句 一時罔不高其淸節 暮年 竟被塗毒推出於常之華藏 一坐十九年 法席盛興於三吳 其乃緣法有地耳

遯菴演; 宗演 宋代楊岐派僧 字遁菴 福州(今屬福建)鄭氏 居常州華藏 蘇州寒山等寺 嗣法大慧宗杲 [五燈會元二十 續傳燈錄三十二]

最菴印; 道印 宋代楊岐派僧 字最庵 漢州(四川廣漢)人 嗣大慧宗杲 住持臨安府靈隱 [五燈會元二十]

大慧廣錄; 大慧普覺禪師語錄 三十卷 略稱大慧語錄 大慧錄 南宋大慧宗杲禪師(1089-1163)語 雪峰蘊聞編 收於大正藏第四十七冊 內容分爲語錄(1-9) 頌古(10) 偈頌(11) 讚佛祖(12) 普說(13-18) 法語(19-24) (25-30)等七部 本語錄之異本中 大慧普覺禪師書(黃文昌重編 此爲語錄中之部分) 略稱大慧書(韓國稱書狀) 以書信體答門下縉紳居士所問 藉之說示宗門要旨 計收五十三篇書信 [大明三藏聖敎北藏目錄四 閱藏知津四十二]

板首; 指僧堂内床铺的首位之人

三吳; 一姑蘇 吳興 丹陽 二姑蘇 廣陵 建鄴 [虛堂錄犂耕] 泛指長江下流一帶 [百度漢語]

 

둔암연(遯菴演; 宗演)은 민() 사람이다. 처음 원고목(元枯木; 祖元)을 참견했고 후에 묘희(玅喜)를 경산(徑山)에서 참견했다. 최암인(最菴印; 道印)ㆍ동암련(同菴璉)과 더불어 대혜광록(大慧廣錄) 30권을 부집(裒集; 모으다)했는데 세상에 성행(盛行)한다. 대혜(大慧; )가 이미 몰()하자 연()이 다시 출유(出遊)하지 않았고 한서에 일납이었다(一衲寒暑). 거처하기 30년을 경과(經過; )하면서 판수(板首)를 몇 차례() 주관했다(主管; )했다. 민수(閩帥) 조여우(趙汝愚)가 복(; 福州)의 수봉(秀峰)으로써 초대(招待; )했으나 견와(堅臥)하며 일어나지 않았다. 별봉(別峰; 寶印)이 작소(作疏)하여 권청(勸請)했는데 유란(幽蘭)이 임하(林下)에서 어찌 사람이 없다고 향기롭지() 않을 것이며 지보(至寶)의 도중(道中)에 대개 구안(具眼)이라야 비로소 그것()을 안다는 구가 있다. 일시(一時)에 그 청절(淸節)을 고상(高尙; )히 여기지 않음이 없었다(). 모년(暮年)에 마침내() 도독(塗毒; 智策)이 상(; 常州)의 화장(華藏)으로 추출(推出)함을 입었고 일좌(一坐)하자 19년이었고 법석(法席)이 삼오(三吳)에서 성흥(盛興)했으니 그것()은 곧() 연법(緣法)에 지경(地境; )이 있을 따름이다().

遯菴演; 종연(宗演)이니 송대 양기파승. 자는 둔암(遁菴; 遯菴과 같음)이며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정씨. 상주 화장ㆍ소주 한산 등의 사원에 거주했고 대혜종고의 법을 이었음 [오등회원20. 속전등록32].

最菴印; 도인(道印)이니 송대 양기파승. 자는 최암(最庵)이며 한주(사천 광한) 사람. 대혜종고를 이었고 임안부 영은에 주지했음 [오등회원20].

大慧廣錄;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이니 30. 약칭이 대혜어록ㆍ대혜록이니 남송 대혜종고선사(大慧宗杲禪師; 1089-1163)의 어()며 설봉온문(雪峰蘊聞)이 편()했음. 대정장 제47책에 수록되었음. 내용은 어록(1-9)ㆍ송고(10)ㆍ게송(11)ㆍ찬불조(12)ㆍ보설(13-18)ㆍ법어(19-24)ㆍ서(25-30) 7부로 분류되었음. 본 어록의 이본(異本) 가운데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黃文昌 중편. 이것은 어록 중의 부분이 됨)는 약칭이 대혜서(大慧書; 한국에선 書狀으로 호칭)니 서신체로 문하의 진신(縉紳)과 거사가 물은 바에 답하면서 이를 빌려 종문의 요지를 설해 보였음. 합계 53편의 서신을 수록했음 [대명삼장성교북장목록4. 열장지진42].

板首; 승당 내 상포(床铺; 침대)의 수위지인(首位之人)을 가리킴.

三吳; 1. 고소ㆍ오흥ㆍ단양. 2. 고소ㆍ광릉ㆍ건업 [허당록이경]. 널리 장강 하류 일대를 가리킴 [백도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