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향거사(向居士)

태화당 2026. 4. 24. 07:58

向居士(二祖慧可法嗣)

向居士幽棲林野 木食㵎飮 北齊天保初 聞二祖慧可盛化 乃致書通好 曰 影繇形起 響逐聲來 弄影勞形 不識形爲影本 揚聲止響 不知聲是響根 除煩惱而趣涅槃 喻去形而覔影 離衆生而求佛果 喻默聲而尋響 故知迷悟一途 愚智非別 無名作名 因其名則是非生矣 無理作理 因其理則爭論起矣 幻化非眞 誰是誰非 虗妄無實 何空何有 將知得無所得 失無所失 未及造謁 聊申此意 伏望答之 二祖命筆廻示曰 備觀來意皆如實 眞幽之理竟不殊 本迷摩尼瓦礫 豁然自覺是眞珠 無明智慧等無異 當知萬法卽皆 愍此二見之徒輩 申辭措筆作斯書 觀身與佛不差別 何須更覔彼無餘 居士捧披祖偈 乃伸禮覲 密承印記

慧可; (487-593) 又作惠可 亦作僧可 東土禪宗二祖 南北朝之僧 河南洛陽人 俗姓姬 初名神光 幼時於洛陽龍門香山 依寶靜出家 於永穆寺受具足戒 早年周遊聽講 精硏孔老之學與玄理 北魏正光元年(520) 參達磨祖師於嵩山少林寺 從學六年 達磨乃傳大法竝衣鉢 師於北齊天保三年(552) 傳法僧璨 其後赴河南鄴都 演說楞伽經意 凡三十餘年 韜光晦跡 人莫能識 後於筦城縣匡救寺三門下 談無上道 聽者林會 時有辯和法師者 於寺中講涅槃經 學徒聞師闡法 稍稍引去 辯和不勝其憤 興謗于邑宰翟仲侃 仲侃惑其邪說 加師以非法 師怡然委順 時年一百七歲 卽隋文帝開皇十三(一說十二)年癸丑歲三月十六日也 唐德宗諡大祖禪師 [傳燈錄三 寶林傳八 傳法正宗記六]

木食; 謂住山中修苦行者 絶食五穀 唯噉果實

通好; 彼此友好往來

弄影; 搖擺 動搖

勞形; 勞作之形儀

揚聲止響; 比喩手段和目的互相矛盾

佛果; 爲萬行之所成 故云佛果 能成之萬行爲因 而所成之萬德爲果也

造謁; 拜訪進見 參拜

命筆; 執筆作詩文或書畫

摩尼; <> maṇi 翻譯名義集三 摩尼 或云踰摩 應法師云 正云末尼 卽珠之總名也 此云離垢 此寶光淨 不爲垢穢所染 或加梵字顯其淨也 又翻增長 有此寶處 增長威德 大品(大般若經十)云 如摩尼寶 若在水中 隨作一色 以靑物裹 水色卽靑 若黃赤白紅縹物裹 隨作黃赤白紅縹色

瓦礫; 破碎的磚頭瓦片 比喩無價値的物件

; 又作如如 眞如 如實 卽一切萬物眞實不變之本性 蓋一切法雖有其各各不同之屬性 如地有堅性 水有濕性等 然此各別之屬性非爲實有 而一一皆以空爲實體 故稱實性爲如 又如爲諸法之本性 故稱法性 而法性爲眞實究竟之至極邊際 故又稱實際 由此可知 如法性實際三者 皆爲諸法實相之異名

無餘; 無餘他 無殘餘

印記; 印可授記

 

향거사(向居士; 二祖慧可法嗣)

향거사(向居士)는 임야(林野)에 유서(幽棲)하며 목식간음(木食㵎飮)했다. 북제(北齊) 천보(天保; 550-559) 2조 혜가의 성화(盛化)를 듣고 이에 치서(致書; 寄信)하여 통호(通好)해 가로되 그림자는 형체(形體)로 말미암아(; 말미암을 유) 일어나고 음향은 소리를 쫓아서() 옵니다. 농영(弄影)하며 노형(勞形)함은 형체가 그림자의 근본이 됨을 알지 못함이며 소리를 질러 음향을 그치게 함(揚聲止響)은 소리가 이 음향의 뿌리인 줄 알지 못함입니다. 번뇌를 제거해 열반으로 취향(趣向)함은 비유컨대 형체를 제거해 그림자를 찾음이며 중생을 여의어 불과(佛果)를 구함은 비유컨대 소리를 잠잠히() 하여 음향을 찾음입니다. 고로 아노니 미오(迷悟)가 일도(一途)며 우지(愚智)가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이 없는데 이름을 지으면 그 이름으로 인해 곧 시비가 생기고 이치가 없는데 이치를 지으면 그 이치로 인해 곧 쟁론(爭論)이 일어납니다. 환화(幻化)는 진()이 아니거늘 누가 옳으며 누가 그르겠습니까. 허망은 실()이 없거늘 무엇이 공()이며 무엇이 유()이겠습니까. 이에() 아나니 얻어도 얻는 바가 없고 잃어도 잃는 바가 없습니다. 조알(造謁)에 미치지 아니한 전에 애오라지 이 뜻을 펴나니() 복망(伏望)컨대 이에 답하소서. 2조가 명필(命筆)하여 회시(迴示)해 가로되 내의(來意)를 비관(備觀)하매 모두 여실(如實)하여/ 진유(眞幽)의 이치는 마침내 다르지 않다/ 본래 마니(摩尼)를 미()해 와력(瓦礫)이라고 이르다가/ 활연(豁然)히 자각(自覺)하매 이 진주(眞珠)로다/ 무명(無明)과 지혜가 제등(齊等)하여 다름이 없나니/ 마땅히 만법이 곧 모두 여()임을 안다/ 2()의 도배(徒輩)를 불쌍히 여겨()/ 신사(申辭)하고 조필(措筆; 下筆)하여 이 글을 짓는다/ 몸을 관()하매 부처와 차별이 없거늘/ 어찌 다시 저 무여(無餘)를 찾음을 쓰겠는가(). 거사가 조게(祖偈)를 받들어 펴고는() 이에 예근(禮覲; 예배하며 뵙다)을 펼쳤고() 비밀히 인기(印記)를 승수(承受; )했다.

慧可; (487-593) 또 혜가(惠可)로 지으며 또한 승가(僧可)로 지음. 동토선종(東土禪宗)2(). 남북조(南北朝)의 승인이며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이며 속성(俗姓)이 희()며 처음의 이름은 신광(神光)이었음. 어릴 때 낙양 용문(龍門)의 향산(香山)에서 보정(寶靜)을 의지(依止)해 출가하였고 영목사(永穆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젊은 나이에 돌아다니며 청강(聽講)하였으며 공로(孔老; 孔子老子)의 학문과 현리(玄理)를 정밀하게 연구했음. 북위(北魏) 정광(正光) 원년(520)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달마조사(達磨祖師)를 참알(參謁)해 좇아 배우기가 6년이었으며 달마가 이에 대법(大法)과 아울러 의발(衣鉢)을 전수(傳授)했음. 스님이 북제(北齊) 천보(天保) 3(552)에 승찬(僧璨)에게 전법(傳法)했고 그 후에 하남의 업도(鄴都)에 다다라 릉가경(楞伽經)의 뜻을 연설했음. 무릇 30여 년 동안 도광회적(韜光晦跡; 빛을 감추고 자취를 어둡게 함)하여 사람들이 능히 알지 못했음. 뒤에 관성현(筦城縣)의 광구사(匡救寺) 3() 아래에서 무상도(無上道)를 얘기하자 듣는 자가 숲처럼 모였음. 때에 변화법사(辯和法師)란 자가 있어 사중(寺中)에서 열반경을 강설했는데 배우는 무리가 스님의 법 여심을 듣고 조금씩 인도(引導)해 떠나자 변화가 그 분을 이기지 못해 읍재(邑宰)인 적중간(翟仲侃)에게 비방을 일으켰으며 적중간이 그 삿된 설에 현혹(眩惑)되어 스님에게 비법(非法)을 가했음. 스님이 기쁜 듯(怡然) 위순(委順; 세상을 떠남)했으며 당시의 나이가 107세였으니 곧 수() 문제(文帝) 개황(開皇) 13(一說12) 계축세(癸丑歲) 316일임. () 덕종(德宗)이 시호(諡號)하여 대조선사(大祖禪師)라 했음 [전등록3. 보림전8. 전법정종기6].

木食; 이르자면 산중에 거주하면서 고행을 닦는 자가 오곡의 식사를 끊고 오직 과실만 먹음.

通好; 피차(彼此) 우호(友好)로 왕래함. .

弄影; 요파(搖擺; 요동). 동요(動搖).

勞形; 노작(勞作; 힘을 들여 부지런히 일함)의 형의(形儀; 儀容).

揚聲止響; 수단과 목적이 호상 모순됨에 비유함

佛果; 만행(萬行)으로 이루는 것이 되는지라 고로 이르되 불과임. 능성(能成)의 만행이 인이되고 소성(所成)의 만덕이 과가 됨.

造謁; 배방(拜訪)하여 진견(進見). 참배(參拜).

命筆; 집필(執筆)하여 시문(詩文) 혹 서화(書畫)를 지음.

摩尼; <<> maṇi. 번역명의집3. 마니(摩尼) 혹은 이르되 유마(踰摩). 응법사(應法師)가 이르되 바르게 이르자면 말니(末尼). 곧 구슬의 총명(總名)이다. 여기에선 이르되 이구(離垢)니 이 보주는 빛나고 맑으며 구예(垢穢)에 더럽혀지는 바가 되지 않는다. 혹 범자(梵字)를 더해 그 맑음을 나타낸다. 또 증장(增長)으로 번역하나니 이 보주가 있는 곳엔 위덕을 증장한다. 대품(大品; 대반야경10)에 이르되 예컨대() 마니보(摩尼寶)를 만약 수중에 두면 따라서 1색을 짓는다. 청물(靑物)로 싸면 수색(水色)도 곧 청()이 된다. 만약 황ㆍ적ㆍ백ㆍ홍ㆍ표(; 옥색)()로 싸면 따라서 황ㆍ적ㆍ백ㆍ홍ㆍ표색을 짓는다.

瓦礫; 파쇄된 전두(磚頭; 벽돌)와 와편(瓦片; 기와 조각)이니 가치가 없는 물건에 비유.

; 또 여여ㆍ진여ㆍ여실로 지음. 곧 일체 만물의 진실하여 변하지 않는 본성임. 대개 일체법은 비록 그 각각 부동(不同)의 속성(屬性)이 있어 예컨대() 땅은 견성(堅性)이 있고 물은 습성(濕性)이 있는 등이나 그러나 이것은 각별(各別)의 속성이며 실유(實有)가 되지 않고 하나하나가 모두 공()으로 실체를 삼는지라 고로 실성(實性)을 일컬어 여()라 함. 또 여()는 제법의 본성이 되므로 고로 명칭이 법성(法性)이며 법성이 진실로 구경(究竟)의 지극한 변제(邊際)가 되므로 고로 또 명칭이 실제(實際). 이로 말미암아 가히 아나니 여()ㆍ법성ㆍ실제(實際) 3자는 모두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다른 이름이 됨.

無餘; 1. 여타(餘他)가 없음. 2. 잔여(殘餘)가 없음.

印記; 인가(印可)하고 수기(授記).

 

贊曰 向居士直捷見 暗合孫吳 然非二祖印證 不免天然外道

; 一眞實不虛之義 言眞實之道理不虛妄也 如俗事虛妄之道理 名爲俗諦 涅槃寂靜之道理 名爲眞諦 見此諦理者爲聖者 不然爲凡夫 [大日經疏八 義林章二末 二諦義上] 二細察 仔細 此指一

孫吳; 春秋戰國時期著名的軍事家孫武和吳起的合稱 皆古代兵家 孫武著兵法十三篇 吳起著吳子四十八篇

天然外道; 六祖壇經 策(玄策)云 威音王已前卽得 威音王已後 無師自悟 盡是天然外道

 

찬왈(贊曰) 향거사(向居士)는 직첩(直捷) 견제(; 眞諦를 봄)했고 몰래() 손오(孫吳)에 합한다. 그러나 2조의 인증(印證)이 아니었다면 천연외도(天然外道)를 면하지 못했으리라.

; 1. 진실불허(眞實不虛)의 뜻. 말하자면 진실한 도리가 허망하지 않음임. 예컨대() 속사(俗事)의 허망한 도리를 이름하여 속제(俗諦; 慣音이 제)며 열반의 적정(寂靜)의 도리를 이름하여 진제(眞諦)니 이 체리(諦理)를 본 자는 성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범부가 됨 [대일경소8. 의림장2. 이체의상]. 2. 자세히 관찰함(細察). 자세(仔細).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孫吳; 춘추전국 시기의 저명한 군사가 손무(孫武)와 오기(吳起)의 합칭. 모두 고대의 병가(兵家). 손무는 병법(兵法) 13()을 지었고 오기는 오자(吳子) 48편을 지었음.

天然外道; 육조단경. (玄策)이 이르되 위음왕 이전은 곧 얻지만 위음왕 이후에 스승 없이 스스로 깨치면 모두 이 천연외도(天然外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