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방도현(龐道玄) 1

태화당 2026. 5. 21. 07:39

龐居士(馬祖道一法嗣)

龐居士 諱蘊 字道玄 襄陽人 父任衡陽太守 士建菴修行於宅西數年 全家得道 後捨菴下舊宅爲寺 唐貞元間 用船載家財數萬 縻於洞庭湘右罄溺中流 自是生涯惟一葉 士有妻及一男一女 女名靈照 常鬻竹器 以供朝夕 偈曰 有男不婚 有女不嫁 大家團圝頭 共說無生話 時江西有馬祖 南嶽有石頭 士初謁石頭 問 不與萬法爲侶者 是甚麽人 頭以手掩其口 豁然有省 一日問曰 子見老僧以來 日用事作麽生 士曰 若問某甲日用事 直下無開口處 頭曰 知子恁麽 方始問子 士遂呈偈曰 日用事無別 惟吾自偶諧 頭頭非取捨 處處沒張乖 朱紫誰爲號 丘山絕點埃 神通並妙用 運水及搬柴 頭然之曰 子以緇耶 素耶 士曰 願從所慕 遂不剃染 後參馬祖 問 不與萬法爲侶者 是甚麽人 祖曰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士於言下頓領玄旨 呈頌曰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自是機鋒電掣 諸方無禦 一日問祖曰 如水無筋骨 能勝萬斛舟 此理如何 祖曰 我這裏無水亦無舟 說什麽筋骨 又一日問祖曰 不取本來人 請師高著眼 祖直下覷 士曰 一種沒絃琴 惟師彈得妙 祖直上覷 士作禮 祖歸方丈 士隨後入 曰 弄巧成拙 後至藥山 山問 一乘法中 還着得這箇事麽 士曰 只了日求升合 不知還著得這箇事麽 山曰 居士還見石頭 得麽 士曰 拈一放一 不是好手 山曰 老僧住持事多 士便珍重 山曰 拈一放一 是老僧 士曰 好箇一乘問宗 今日失却去也 山曰 是 是 士盤桓旣久 遂辭藥山 山命十禪客相送 時値雪下 士指雪曰 好雪片片 不落別處 有全禪客曰 落在甚處 士遂與一掌 全曰 也不得草草 士曰 恁麽稱禪客 閻羅老子未放汝在 全曰 居士作麽生 士又打一掌 曰 眼見如盲 口說如啞 丹霞天然禪師來訪 見靈照洗菜次 霞曰 居士在否 照放下菜籃 叉手而立 又問 居士在否 照提籃便行 霞遂回 須臾士歸 照擧前話 士曰 丹霞在否 照曰 去也 士曰 赤土塗牛嬭 霞復來 士見霞不起 亦不言 霞竪起拂子 士竪起槌子 霞曰 只恁麽 更別有 士曰 這回見師 不似於前 霞曰 不妨減人聲價 士曰 比來折你一下 霞曰 恁麽則啞却天然口也 士曰 你啞繇本分 累我亦啞 霞擲下拂子而去 士召曰 然闍梨 然闍梨 霞不顧 士曰 不惟患啞 兼更患聾 又一日 霞訪士至門相見 霞問 居士在否 曰 飢不擇食 霞曰 龐老在否 曰 蒼天 蒼天 便入宅去 霞曰 蒼天 蒼天 便回 又霞問 昨日相見 何似今日 士曰 如法擧昨日事來 作箇宗眼 霞曰 祇如宗眼 還著得龐公麽 曰 我在你眼裡 霞曰 某甲眼窄 何處安身 曰 是眼何窄 是身何安 霞不顧 士曰 更道一轉 便得此話圓 霞亦不顧 士曰 就中這一句 無人道得 一日 士訪霞 向霞前叉手立 少時 便出去 霞不顧 士却來坐 霞却向士前叉手立 少時 便入方丈 士曰 汝入我出 未有事在 霞曰 這老翁 出出入入 有甚了期 曰 略無些子慈悲 霞曰 引得箇漢到這田地 曰 把什麽引 霞拈起士幞頭 曰 恰似箇老師僧 士拈幞頭安霞頭上 曰 恰似箇少年俗人 霞應諾三聲 士曰 猶有昔時氣息在 霞拋下幞頭 曰 大似一箇烏紗巾 士亦應諾三聲 霞曰 昔時氣息爭忘得 士彈指三下 曰 動天動地 又一日 士與霞行次 見一泓水 指曰 得恁麽也 還辨不出 霞曰 的箇辨不出 士以手戽水 潑霞三徧 霞曰 莫恁麽 莫恁麽 士曰 須恁麽 須恁麽 霞亦戽水潑士 曰 正恁麽時 堪作箇甚麽 士曰 無物外 霞曰 得便宜者少 士曰 誰是落便宜者 一日 霞見士來 便作走勢 士曰 猶是拋身勢 怎生是嚬呻勢 霞便坐 士以拄杖畫地 作七字 霞於下面劃箇一字 士曰 因七見一 見一忘七 霞便起去 士曰 更坐少時 尙有第二句在 霞曰 向這裡著語 得麽 士遂哭出去 一日到仰山 久響仰山 到來爲甚却覆 山竪起拂子 士曰 恰是 山曰 是仰是覆 士打露柱 曰 雖然無人 也要露柱證明 山擲拂子 曰 若到諸方 一任擧似 一日賣笊籬 下橋喫撲 照見亦去身邊臥 士曰 你作甚麽 照曰 見爹倒地 特來扶起 士曰 賴是無人見 士坐次 問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作麽生 照曰 老老大大 作箇語話 士曰 你作麽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一日菴中獨坐驀地曰 難 難 難 十石油麻樹上攤 龐婆接聲曰 易 易 易 如下眠床脚蹈地 照曰 也不難 也不易 百草頭上祖師意 士於元和初 方寓襄陽 棲止巖竇時 州牧于頔 得居士篇 深加慕異 乃伺便就謁 如宿善友 往來無間 士將入滅 謂照曰 幻化無實 隨汝所緣 可出視日蚤晚 及午以報 照出戶 遽報曰 日已中矣 而有蝕焉 可試暫觀 士曰 有之乎 曰 有之 士避席臨窓 照卽登父座 合掌坐亡 士回見笑曰 我女鋒捷矣 乃拾薪營後事 于是更延七日 頔往問安 士以手藉頔之膝 流盻良久 曰 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 好住世間 皆如影響 又說偈曰 空華落影 陽𦦨翻波 言訖異香滿室 端躬若思 頔亟追呼 已長往矣 頔乃如法茶毗 旋遣使人報諸妻子 龐婆曰 這愚痴女與無智老漢 不報而去 是可忍也 因往告子 見劚畬曰 龐公與靈照去也 子釋鋤應曰 良久亦立而亡 母曰 愚子癡一何甚也 亦以焚化 衆皆奇之 未幾 龐婆徧詣鄕閭 告別歸隱 自後沈跡杳然 莫有知其所歸者

道一; (709-788) 唐代僧 南嶽懷讓之法嗣 漢州(四川廣漢)人 俗姓馬 世稱馬大師 馬祖 名道一 容貌奇異 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紋 依資州唐和尙(卽處寂)剃染 就渝州圓律師受具足戒 開元(713-741)年間 就懷讓習曹溪禪法 言下領旨 密受心法 初止於建陽之佛跡嶺 未久 遷至臨川之南康龔公二山 大曆四年(769) 駐錫鍾陵(江西進賢)開元寺 是時學者雲集 化緣大盛 馬祖以平常心是道 卽心是佛大弘禪風 貞元四年二月四日示寂 壽八十 唐憲宗諡大寂禪師 其派稱爲洪州宗 道一之於懷讓 恰如希遷之於行思 於禪法之弘揚二者竝稱 馬祖因於江西闡揚南嶽系禪風 亦稱江西禪 [宋高僧傳十 景德傳燈錄六 傳法正宗記 五燈會元三]

團圝頭; 團圓

石頭; 希遷(700-790) 唐代僧 又稱無際大師 端州高要(廣東高要)人 俗姓陳 曾禮六祖慧能 靑原行思爲師 得靑原行思之印可 天寶(742-755)初年 居衡山南寺 寺之東有石狀如臺 乃結庵其上 時號石頭和尙 時江西以馬祖爲主 湖南以石頭爲主 四方學徒多輻湊於二師之門 唐貞元六年十二月示寂 壽九十一 臘六十三 諡無際大師 著有參同契 草庵歌各一篇行世 [宋高僧傳九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甚麽; 又作什麽 疑問之辭 如言何也

某甲; 一自稱之詞 相當于我 二代替人名 此指一

偶諧; 偶 相對 投合 諧 和諧 配偶 偶諧卽相對而和諧之義.

頭頭; 事事 樣樣 每件

張乖; 同乖張 違背之義

剃染; 剃髮染衣的略稱 剃去頭髮 換著黑色僧衣 指出家爲僧

無爲; 無造作之意 有爲之對稱 卽非由因緣所造作 離生滅變化而絶對常住之法 又作無爲法 原是涅槃之異名 後世更於涅槃以外 立種種無爲 於是産生三無爲六無爲九無爲等諸說

方丈; 一丈四方之室 又作方丈室 丈室 卽禪寺中住持之居室或客殿 亦稱函丈 正堂 堂頭 印度之僧房多以方一丈爲制 維摩禪室亦依此制 遂有方一丈之說 轉而指住持之居室 今轉義爲禪林住持 或對師家之尊稱 通稱方丈 或方丈和尙 [維摩經文疏二十二 法苑珠林二十九 大唐西域求法高僧傳上慧輪傳]

藥山; 惟儼(751-834) 唐代僧 絳州(今山西新絳)人 俗姓韓 十七歲依潮陽(廣東)西山慧照出家 大曆八年(773) 就衡山希澡受具足戒 博通經論 嚴持戒律 後參石頭希遷 密領玄旨 次參馬祖道一 言下契悟 奉侍三年 後復還石頭 爲其法嗣 不久 至澧州藥山 廣開法筵 唐太和八年(834)示寂 壽八十四 一說太和二年十二月示寂 壽七十 敕諡弘道大師 [宋高僧傳十七 祖堂集四 傳燈錄十四 傳法正宗記七]

一乘; 成佛唯一之敎也 乘爲車乘 以譬佛之敎法 敎法能載人運於涅槃岸 故謂之乘 法華經專說此一乘 法華經方便品 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住持; ()安住於世而保持法也 ()一寺之主僧名住持 此由禪門起 百丈淸規二住持章曰 佛敎入中國四百年而達磨至 又八傳而至百丈 唯以道相授受 或岩居穴處 或寄律寺 未有住持之名 百丈以禪宗寖盛 上而君相王公 下而儒老百氏 皆嚮風問道 有徒實蕃 非崇其位則師法不嚴 始奉其師爲住持 而尊之曰長老 如天竺之稱舍利弗須菩提 以齒德俱尊也

珍重; 勸自重自愛之詞也 大宋僧史略一 臨去辭曰珍重者何 此則相見旣畢 情意已通 囑曰珍重 猶言善加保重 請加自愛 好將息 宜保惜 同也

盤桓; 一徘徊 滯留 盤 盤桓不進貌 正字通 桓 盤桓難進貌 又盤通磐 易 屯卦 象辭曰 雖磐桓 志行正也 二(情意)厚重懇切 此指一

草草; 草 草率 簡略 不精也

天然; (739-824) 唐代僧 鄧州(今屬河南)人 石頭希遷法嗣 初習儒業 後遇禪僧而悟 投南嶽石頭希遷門下 服役三年 剃髮受戒 尋謁江西馬大師 受天然之法號 居天台華頂峰三年 更往徑山參拜國一禪師 其後 大振禪風於南陽丹霞山 長慶四年示寂 壽八十六 敕諡智通禪師 [宋高僧傳十一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赤土塗牛嬭; 禪門拈頌集第三一三則 拈頌說話曰 赤土云云者 大觀本草云 牛嬭小柿 楚人以赤土塗之賣也 則謔你老爺 一本云這寃家子喪我門風 則山海經注云 西山之陰 灌水出焉 水中有流赭(赤士) 以塗牛焉則無疾 則赤土塗牛嬭 以攘牛馬之灾疾

拂子; 一用以撣塵拂蟲之具 禪師說法時常持之 二住持寺院的資格或權力的象徵物

比來; 近來 最近 比 副詞 近 近來

闍梨; 梵語阿闍梨的簡稱 又作闍黎 意爲僧人之師 常用作對僧人的稱呼

蒼天; 一四天之一 春天也 二感嘆語 或爲哭喊語 常見重復使用 多用于感嘆譏刺對方不契禪機 亦用以示機接機 此指二

何似; 卽如何之意 又卽似何物之意

宗眼; 卽正法眼 透徹了解宗旨奧義之明眼

一轉; 一次 一遍 轉 量詞 相當于回 次 又指一轉語 一轉話

幞頭; 古代一種頭巾 古人以皂絹三尺裹髮 有四帶 二帶系腦後垂之 二帶反系頭上 令曲折附項 故稱四脚 或折上巾 至北周武帝時 裁出脚後幞髮始名幞頭 初用軟帛垂脚 隋始以桐木爲骨子 唐方以羅代繒 帝服則脚上曲 人臣下垂 [百度詞典]

師僧; 堪爲人師之僧 又爲僧人之敬稱

烏紗巾; 卽烏紗帽 又稱唐巾 古代官吏戴的一種帽子

便宜; 多謂上風 優勢 碧巖錄第六十六則種電鈔 商家得利謂得便宜也

嚬呻; 金光明經文句文句記會本八 嚬呻 嚬音頻 呻音申 嚬呻師子振威也 祖庭事苑二 象王嚬呻 毛詩 傳 頻 急也 申 舒也 謂有勞倦者 以手足胸背左右上下 或急努 或舒展 自解其勞倦 今字從口

著語; 對他人的機緣語句 加以簡短評議 稱爲著語

仰山; 慧寂(807-883) 唐代僧 爲潙仰宗開山祖師之一 韶州(廣東韶關)葉氏 初生頗有異蹟 爲童穉 依番禺安和寺不語通出家 年十四 父母欲奪其志 遂斷二指以爲誓 因從剃落 通累加接引 而師無所啓發 年十八 通卒 因往謁乳源 洎筠州處微 吉州性空 鵶山躭源 皆不契 至大和三年(829) 參大潙靈祐 擧性空如人在井之緣 因而有省 山指令請戒於襄陽之大悲 師曰 慧寂平生不妄語 山云 你但依沙門法 師從之 時年三十三矣 復還潙山作直歲 尋領衆居郴州之王莽山 旣而移錫居袁州仰山 衆盈數百 一日 有梵僧負貝葉造師 師問 近離甚處 曰 早別西天 師曰 太遲生 曰 游山翫水 師曰 神通不無你 佛法未夢見 曰 來此禮文殊 却遇小釋迦 語訖隱去 大中十三年(859) 韋宙中丞 爲師創洪州觀音院居之 咸通(860-8 73)中 歸韶州之東平山 至中和三年二月十三日 集衆說偈 以兩手抱屈膝 儼然而終 歸葬於仰山 師行道於世 蒙寵賜者三 懿宗賜號知宗 僖宗賜澄虛 昭宗諡智通 [祖庭事苑七 宋高僧傳十二]

久響; 響 用同嚮 趣向 向著 久響長久敬慕 用於最初相見其人時的語

恰是; 恰 適當也 却也 禪門拈頌集第三一五則 拈頌說話云 恰是者 不是好心也

露柱; 顯露在外面的柱子 註華嚴經題法界觀門頌下 露柱者簷下柱也

擧似; 擧示 擧說言句告訴某人 似 相當于與 向

老老大大; 對年老者的譏刺語 隱含恁麽年老 猶不明悟之義

驀地; 忽然 突然 地 後綴

入滅; 入滅度 入寂滅之略稱 又云入涅槃 取滅度 示寂等 此語非但指佛陀之入滅 高僧聖者之死 亦稱入滅

蚤晚; 同早晩 同早暮 什麽時候 同早晩

流盻; 轉動眼睛斜視

良久; 默然 沈默 原意爲許久之時間 於禪林中 轉指無言無語之狀態

空華; 空花 指空中之花 全稱虛空花 又作空華 眼華 眼花 蓋空中原無花 然眼有病疾者因眼中有翳 常於空中妄見幻化之花

陽𦦨; 當作陽焰 陽光照耀下的浮塵好象水波 比喩由妄心所生之虛幻假象 慧琳音義七 陽焰 熱時遙望地上屋上陽氣也 似焰非焰故名陽焰

茶毗; <> jhāpeti 翻譯名義集五 闍維 或耶旬 正名茶毘 此云焚燒 西域記云 涅疊槃那 舊闍維訛也 通慧音義云 親問梵僧未聞闍維之名 正字通 梵言闍維 卽茶毘 僧死而焚之也 或作闍毘 亦作荼毘 譯音字本無定 荼茶古本一字 尤易混也

; 聲破 莊子庚桑楚 兒子終日嗥而嗌不嗄 和之至也

 

방거사(龐居士)(馬祖道一法嗣)

방거사(龐居士; ?-808)는 휘()가 온()이며 자가 도현(道玄)이며 양양(襄陽) 사람이며 부()는 형양태수(衡陽太守)에 임용(任用; )되었다. 거사가 택서(宅西)에 건암(建菴)하여 수행한 지 몇 년 만에 전가(全家)가 득도(得道)했다. 후에 암하(菴下)의 구택(舊宅)을 버려 사원(寺院; )으로 삼았다. () 정원(貞元; 785-805) 간 배를 이용해 가재(家財) 수만(數萬)을 실어 동정호(洞庭湘) 오른쪽에 매어 놓고() 중류(中流)에 모두() 빠뜨렸다(). 이로부터 생애(生涯)가 오직 일엽(一葉; 世代)이었다. 거사에게 처 및 일남일녀(一男一女)가 있었는데 딸의 이름이 영조(靈照)였고 늘 죽기(竹器)를 팔아(; 팔 육) 조석(朝夕)에 이바지했다. 게왈(偈曰) 아들이 있으나 결혼(結婚; )하지 않았고/ 딸이 있으나 시집가지 않았다/ 대가(大家; 衆人)가 단란두(團圝頭)하여/ 함께 무생화(無生話)를 설한다. 당시에 강서(江西)엔 마조(馬祖)가 있었고 남악(南嶽)엔 석두(石頭; 希遷)가 있었다. 거사가 처음 석두를 참알(參謁)해 묻되 만법(萬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甚麽) 사람입니까. 석두가 손으로써 그의 입을 가렸다(). 활연(豁然; 很快)히 살핌이 있었다. 어느 날 물어 가로되 자네가 노승(老僧; 自稱之詞)을 본 이래로 일용사(日用事)가 어떠한가(作麽生). 사왈(士曰) 만약 모갑(某甲)의 일용사를 물으신다면 직하(直下; 즉시)에 입을 열 곳이 없습니다. 두왈(頭曰) 자네가 이러한(恁麽) 줄 안지라 비로소() 처음으로() 자네에게 물었다네. 거사가 드디어 정게(呈偈; 게를 보이다)해 가로되 일용의 일이 다른 게 없나니/ 오직 내가 스스로 우해(偶諧)한다/ 낱낱마다(頭頭) 취사(取捨)가 아니며/ 곳곳마다 장괴(張乖)가 없다()/ 주자(朱紫)를 누가 호했나/ 구산(丘山)이 점애(點埃)도 끊겼다/ 신통과 아울러 묘용(妙用)이여/ 물 옮김(運水)과 및 땔감 운반함이다(搬柴). 석두가 그렇다 하며 가로되 자네는 치(; )인가, (; )인가. 사왈(士曰) 소모(所慕)를 좇기를 원합니다. 드디어 체염(剃染)하지 않았다. 후에 마조(馬祖)를 참()하여 묻되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조왈(祖曰) 네가 서강수(西江水)를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거사가 언하(言下)에 현지(玄旨)를 문득 깨달았다(頓領). 정송(呈頌)해 가로되 시방(十方)이 함께 취회(聚會)하여/ 개개(箇箇)가 무위(無爲)를 배운다/ 여기는 이 선불장(選佛場)이니/ 마음이 공()해야 급제(及第)해 돌아간다. 이로부터 기봉(機鋒)의 전체(電掣; 번개가 치다)였고 제방에서 막을() 이 없었다. 어느 날 마조에게 물어 가로되 물이 근골(筋骨)이 없지만 능히 만곡주(萬斛舟)를 이김과 같다.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조왈(祖曰) 나의 저리(這裏)엔 물도 없고 또한 배도 없거늘 무슨(什麽) 근골을 설하느냐. 또 어느 날 마조에게 물어 가로되 본래인(本來人)을 취하지 말고 청컨대 스님이 높이 착안(著眼)하십시오. 마조가 직하(直下; 바로 아래)를 쳐다보았다(). 사왈(士曰) 일종(一種)의 몰현금(沒絃琴)을 오직 스님이 퉁겨 묘함을 얻었습니다. 마조가 직상(直上)을 쳐다보았다. 거사가 작례(作禮)했다. 마조가 방장(方丈)으로 돌아가자 거사가 뒤따라 들어가며 가로되 교묘를 희롱하다가 졸렬을 이루었습니다(弄巧成拙). 후에 약산(藥山)에 이르자 산문(山問) 일승법(一乘) 가운데 도리어 저개사(這箇事; 向上事를 가리킴)를 착득(着得)합니까. 사왈(士曰) 다만 명료하게() 날로 승합(升合; 되와 홉)을 구하거니와 알지 못하나니 도리어 저개사(這箇事)를 착득(著得)합니까. 산왈(山曰) 거사가 도리어 석두(石頭)를 참견(參見; )했다 함을 얻겠습니까(得麽). 사왈(士曰) 염일방일(拈一放一)함은 이 호수(好手)가 아닙니다. 산왈(山曰) 노승은 주지사(住持)가 많습니다. 거사가 바로 진중(珍重)이라 했다. 산왈(山曰) 염일방일(拈一放一)함은 이 노승입니다. 사왈(士曰) 호개(好箇)의 일승(一乘)으로 종(; 宗旨)을 묻더니 금일 실각(失却)하여 갔습니다. 산왈(山曰) 옳습니다(), 옳습니다. 거사가 반환(盤桓)한 지 이미 오래되자 드디어 약산에게 고별했다. 약산이 십선객(十禪客)에게 명()하여 상송(相送; 一方이 다른 일방에 대해 동작하는 바가 있음을 표시함)케 했는데 때에 눈이 내림을 만났다(). 거사가 눈을 가리키며 가로되 호설(好雪)이 편편(片片)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구나. 전선객(全禪客)이 있어 가로되 떨어져 어느 곳(甚處)에 있는가. 거사가 드디어 일장(一掌) 주었다. 전왈(全曰) 또한 초초(草草)함을 얻지 말아라. 사왈(士曰) 이러하면서(恁麽) 선객(禪客)이라고 일컫는다면 염라노자(閻羅老子; 閻羅王이니 後綴)가 너를 방면(放免; )하지 않을 것이다. 전왈(全曰) 거사는 어떠한가(作麽生). 거사가 또 일장(一掌) 때리고 가로되 눈으로 보아도 맹인과 같고 입으로 설해도 벙어리와 같구나. 단하(丹霞) 천연선사(天然禪師)가 내방(來訪)했다. 영조(靈照)를 보매 채소를 씻던 차였다. 하왈(霞曰) 거사가 계시는가. 영조가 채람(菜籃; 채소 광주리)을 내려놓고 차수(叉手)하고 섰다. 또 묻되 거사가 계시는가. 영조가 광주리를 들고() 바로 갔다. 단하가 드디어 돌아갔다(). 수유(須臾)에 거사가 돌아오자 영조가 전화(前話)를 들었다(). 사왈(士曰) 단하가 있는가. 조왈(照曰) 가셨습니다. 사왈 적토로 우내에 발랐네(赤土塗牛嬭). 단하가 다시 왔다. 거사가 단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고 또한 말하지도 않았다. 단하가 불자(拂子)를 세워 일으켰다. 거사가 추자(槌子; 방망이. 後綴)를 세워 일으켰다. 하왈(霞曰) 다만 이러한가(恁麽), 다시 다른 게 있는가. 사왈(士曰) 저회(這回)에 스님을 보매 전과 같지 않구먼. 하왈(霞曰) 사람의 성가(聲價; 聲望社會地位)를 감()함에 방애(妨礙; )되지 않는다. 사왈 요사이(比來) 너를 한 번(一下) 꺾었다. 하왈(霞曰) 이러하다면 곧 천연(天然)의 입을 벙어리가 되게 했다(啞却). 사왈(士曰) 네가 벙어리임은 본분을 말미암지만() 나에게 누()를 끼쳐 또한 벙어리가 되었다. 단하가 불자(拂子)를 던져 떨어뜨리고 떠났다. 거사가 불러 가로되 연사리(闍梨), 연사리(然闍梨). 단하가 돌아보지 않았다. 사왈(士曰) 오직 벙어리의 질환(患啞)만이 아니라 겸하여 다시 귀머거리의 질환(患聾)이로구나. 또 어느 날 단하가 거사를 방문하여 문에 이르러 상견했다. 단하가 묻되 거사가 있는가. 가로되 배고프면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하왈(霞曰) 방로(龐老)가 있는가. 가로되 창천(蒼天), 창천(蒼天).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하왈(霞曰) 창천, 창천. 바로 돌아갔다. 또 단하가 묻되 작일(昨日) 상견은 금일과 어떠한가(何似). 사왈(士曰) 여법(如法)하게 작일사(昨日事)를 들어() 와야 저() 종안(宗眼)을 짓는다. 하왈(霞曰) 지여(祇如) 종안(宗眼)을 도리어 방공(龐公)에게 붙임을 얻겠는가. 가로되 내가 너의 눈 속에 있다. 하왈(霞曰) 모갑(某甲)은 눈이 좁거늘 어느 곳에 안신(安身)하겠는가. 가로되 이 눈이 어디가() 좁으며 이 몸을 어디에 안치하겠는가. 단하가 돌아보지 않았다. 사왈(士曰) 다시 일전(一轉)을 말해야 바로 차화(此話)가 원만함을 얻는다. 단하가 또한 돌아보지 않았다. 사왈(士曰) 취중(就中; 此中)에 저() 일구(一句)를 말함을 얻는 사람이 없다. 어느 날 거사가 단하를 방문해 단하 앞을 향해 차수(叉手)하고 섰다가 소시(少時; 不多時)에 바로 나갔다. 단하가 돌아보지 않았다. 거사가 돌아와(却來) 앉았다. 단하가 도리어 거사 앞을 향해 차수하고 섰다가 소시(少時)에 바로 방장(方丈)으로 들어갔다. 사왈(士曰) 너는 들어가고 나는 나가니 사()가 있지 않다. 하왈(霞曰) () 노옹(老翁)이 출출입입(出出入入)하니 무슨 마칠 기약(期約; )이 있으랴. 가로되 조금()도 사자(些子; 些少)의 자비(慈悲)가 없구나. 하왈(霞曰) 개한(箇漢)을 인득(引得)하여 저() 전지(田地; 境地)에 이르게 했다. 가로되 무슨(什麽) ()을 잡았는가(). 단하가 거사의 복두(幞頭)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저() 늙은 사승(師僧)과 흡사하구나. 거사가 복두(幞頭)를 집어 단하의 머리 위에 놓고 가로되 저() 소년(少年) 속인(俗人)과 흡사하구나. 단하가 삼성(三聲) 응낙(應諾)했다. 사왈(士曰) 오히려 석시(昔時)의 기식(氣息)이 있구나. 단하가 복두를 던져 떨어뜨리고(拋下) 가로되 일개(一箇)의 오사건(烏紗巾)과 대사(大似; 매우 흡사)하다. 거사도 또한 삼성(三聲) 응낙했다. 하왈(霞曰) 석시(昔時)의 기식(氣息)을 어찌() 잊음을 얻겠는가. 거사가 세 번(三下) 탄지(彈指)하고 가로되 동천동지(動天動地)하는구나. 또 어느 날 거사가 단하와 더불어 가던 차에 한 홍수(泓水; 넓고 깊은 물)를 보고는 가리키며 가로되 이러함(恁麽)을 얻었으니 도리어 분변해 내지 못한다. 하왈(霞曰) 분명히(的箇) 분변해 내지 못한다. 거사가 손으로써 물을 떠() 단하에게 삼편(三徧; 三回) 뿌렸다(). 하왈(霞曰) 이러하지 말아라(莫恁麽), 이러하지 말아라. 사왈(士曰) 어러함을 써야 한다(須恁麽), 이러함을 써야 한다. 단하도 또한 물을 떠 거사에게 뿌리고 가로되 바로 이러한 때 감(; )히 저() 무엇(甚麽)을 짓느냐. 사왈(士曰) 물외가 아니다(無物外). 하왈(霞曰) 편의(便宜)를 얻는 자가 적구나. 사왈(士曰) 누가 이 편의에 떨어진 자인가. 어느 날 단하가 거사가 옴을 보자 바로(便) 달아나는 자세(姿勢; )를 지었다. 사왈(士曰) 오히려 이는 몸을 던지는() 자세니 어떻게 해야(怎生) 이 빈신(嚬呻)하는 자세인가. 단하가 바로 앉았다. 거사가 주장자로써 땅에 그어() 칠자(七字)를 지었다. 단하가 하면(下面)에 저() 일자(一字)를 그었다(). 사왈(士曰) ()로 인해 일()을 보거니와 일()을 보면 칠()을 잊는다. 단하가 바로 일어나 떠났다. 사왈(士曰) 다시 소시(少時) 앉아라, 오히려() 제이구(第二句)가 있다. 하왈(霞曰) 저리(這裡)를 향해 착어(著語)함을 얻겠는가. 거사가 드디어 곡()하며 나갔다. 어느 날 앙산(仰山)에 이르러 묻되 앙산을 구향(久響)했더니 도래하매 무엇 때문에(爲甚) 도리어 엎어졌습니까(). 앙산이 불자(拂子)를 세워 일으켰다. 사왈(士曰) 흡시(恰是). 산왈(山曰) 이 앙()입니까, 이 복()입니까. 거사가 노주(露柱)를 때리고 가로되 비록 그러히 사람이 없으나 또한 노주(露柱)의 증명을 요합니다. 앙산이 불자를 던지고 가로되 만약 제방에 이르거든 거사(擧似)하는 대로 일임합니다. 어느 날 조리(笊籬)를 팔고는 하교(下橋)하다가 끽박(喫撲; 땅에 넘어짐)했다. 영조(靈照; )가 보고는 또한 신변(身邊)으로 가서 누웠다. 사왈(士曰) 네가 무엇(甚麽)을 짓느냐. 조왈(照曰) 아버지()가 땅에 넘어짐(倒地; 喫撲)을 보았으니 특별히 와서 부기(扶起; 부축해 일으키다)합니다. 사왈(士曰) 다행히() , 보는 사람이 없구나. 거사가 좌차(坐次)에 영조에게 물어 가로되 고인(古人)이 말하되 밝디밝은 백초두(百草頭; 는 조사)에 밝디밝은 조사의(祖師意). 어떠한가(作麽生). 조왈(照曰) 노로대대(老老大大)가 저() 어화(語話)를 짓습니까. 사왈(士曰) 너는 어떠한가(作麽生). 조왈(照曰) 밝디밝은 백초두(百草頭)에 밝디밝은 조사의(祖師意)입니다. 거사가 이에 웃었다. 어느 날 암중(菴中)에 독좌(獨坐)하다가 맥지(驀地; 갑자기) 가로되 어렵고() 어렵고 어려움이여, 십석(十石; 열 섬)의 유마(油麻)를 수상(樹上)에 폄이다(; 펼 탄). 방파(龐婆; 방거사 부인)가 접성(接聲)해 가로되 쉽고() 쉽고 쉬움이여, 면상(眠床)에서 내려와 발로 땅을 밟음()과 같구나. 조왈(照曰) 또한 어렵지 않고 또한 쉽지 않음이여 백초두상(百草頭上; 저본에 百卓頭上으로 지었음)의 조사의(祖師意). 거사가 원화(元和; 806-820) 초에 바야흐로 양양(襄陽)에 우거(寓居; )하면서 암두(巖竇)에 서지(棲止)할 때 주목(州牧) 우적(于頔)이 거사의 편(; 서책의 부류)을 얻고 깊이 모이(慕異; 흠모하며 기이하게 여김)를 더했다. 이에 편의를 살피다가(伺便) 나아가 예알했는데 묵은(宿) 선우(善友)와 같았고 왕래하며 간격이 없었다(無間). 거사가 장차 입멸(入滅)하려 하면서 영조에게 일러 가로되 환화(幻化)는 무실(無實)하니 너의 소연(所緣)을 따르거라. 가히 나가서 해의 조만(蚤晚)을 보다가 오(; 正午)에 이르면() 알리거라. 영조가 출호(出戶)했다가 급히() 알려 가로되 해가 이미 중(; 正午. 저본에 로 지었음)입니다만 식(; 日蝕)이 있습니다. 가히 시험 삼아 잠시 보십시오(). 사왈(士曰) 그것이 있느냐(有之乎). 가로되 그것이 있습니다. 거사가 피석(避席)하여 임창(臨窓)했다. 영조가 곧 부좌(父座)에 올라 합장하고 좌망(坐亡)했다. 거사가 돌아보고(回見) 웃으며 가로되 내 딸의 기봉(機鋒; )이 빠르구나(捷矣). 이에 섶을 거두어() 후사(後事)를 영위(營爲; )했다. 이에 다시 7일을 연기(延期; )했다. 우적이 가서 문안(問安)하자 거사가 손으로써 우적의 무릎을 깔고() 유혜(流盻)하더니 양구(良久)하고는 가로되 단지 모든 소유(所有)가 공()하기를 원할지언정 삼가 모든 소무(所無)를 실답다 하지 말아라. 세간에 호주(好住)함이 모두 영향(影響)과 같다. 또 게를 설해 가로되 공화(空華)가 낙영(落影)하고 양염(陽𦦨)이 번파(翻波)한다. 말을 마치자() 이향(異香)이 만실(滿室)했고 단궁(端躬; 端雅한 몸)이 사유하는 것 같았다. 우적이 급히() 좇아 불렀는데(追呼) 이미 장왕(長往)했다. 우적이 이에 여법(如法)하게 다비(茶毗)하고 바로() 사인(使人)을 보내 여러 처자(妻子)에게 알렸다. 방파(龐婆)가 가로되 저() 우치녀(愚痴女)와 무지노한(無智老漢)이 알리지도 않고 떠났으니 이를 가히 참겠는가. 인하여 가서 아들에게 고()하는데 새밭(; 새밭 여)을 깎음(; 깎을 촉)을 보고 가로되 방공(龐公)과 영조(靈照)가 떠났다. 아들이 호미를 놓고(釋鋤) 응해 가로되 사(), 양구(良久)하고는 또한 서서 죽었다(). 모왈(母曰) 우자(愚子)의 어리석음이 하나같이 어찌 심하냐(一何甚也). 또한 분화(焚化; 태워 변화시킴)했다. 중인(衆人; )이 모두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奇之). 미기(未幾; 동안이 오래지 않음)에 방파(龐婆)가 향려(鄕閭)로 두루 나아가(徧詣) 고별하고는 귀은(歸隱)했는데 자후(自後; 이로 좇아 以後)로 침적(沈跡)하여 묘연(杳然)했고 그의 소귀(所歸)를 아는 자가 있지 않았다.

道一; (709-788) 당대승. 남악회양의 법사. 한주(사천 광한) 사람이며 속성은 마()니 세칭 마대사(馬大師)ㆍ마조(馬祖)며 이름은 도일(道一). 용모가 기이하여 우행호시(牛行虎視)에 혀를 빼면 코를 지났으며 발 아래 두 바퀴의 문채(二輪紋)가 있었음. 자주 당화상(唐和尙; 곧 처적)에게 의지해 체염(剃染)하고 유주의 원율사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개원(713-741)년 간 회양(懷讓)에게 나아가 조계의 선법을 익혔는데 언하에 지취를 영오(領悟)해 몰래 심법을 받았음. 처음엔 건양의 불적령에 머물다가 오래지 않아 임천의 남강과 공공 두 산에 이르렀음. 대력 4(769) 종릉(강서 진현)의 개원사에 주석했는데 이때 학자가 운집하여 화연(化緣)이 대성(大盛)했음. 마조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써 선풍을 크게 홍양(弘揚)했음. 정원 424일에 시적했음. 나이 80. 당헌종이 대적선사(大寂禪師)로 시호했음. 그 파를 일컬어 홍주종(洪州宗)이라 함. 회양(懷讓)에 있어서의 도일(道一)은 마치 행사(行思)에 있어서의 희천(希遷)과 같아서 선법의 홍양(弘揚)2()를 병칭함. 마조가 강서에서 남악계(南嶽系)의 선풍을 천양(闡揚)했으므로 인해 또한 강서선(江西禪)이라 일컬음 [송고승전10. 경덕전등록6. 전법정종기. 오등회원3].

團圝頭; 단원(團圓; 1. 둥근 것. 2. 가정이 원만함).

石頭; 희천(希遷; 700-790)이니 당대승. 또 호칭이 무제대사(無際大師). 단주(端州) 고요(高要; 광동 고요)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진(). 일찍이 6조 혜능을 참례했고 청원행사(靑原行思)를 스승으로 삼아 청원행사의 인가(印可)를 얻었음. 천보(天寶; 742-755) 초년(初年)에 형산(衡山)의 남사(南寺)에 거주했는데 사원의 동쪽에 암석이 있어 형상(形狀)이 돈대()와 같았으며 이에 암자를 그 위에 엮은지라 당시에 호하기를 석두화상(石頭和尙)이라 했음. 당시(當時)에 강서(江西)는 마조(馬祖)를 주체(主體)로 삼았고 호남(湖南)에선 석두(石頭)를 주체로 삼았는데 사방의 학도(學徒)가 많이 두 스님의 문으로 복주(輻湊)하였음. 당 정원(貞元) 612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91이며 승랍은 63. 시호(諡號)가 무제대사(無際大師)며 저서에 참동계(參同契)ㆍ초암가(草庵歌) 1()이 있어 세상에 행함 [송고승전9. 전등록14. 오등회원5].

甚麽; 또 십마(什麽)로 지음. 의문의 사()니 하()라고 말함과 같음.

某甲; 1. 자칭의 말이니 아()에 상당(相當). 2. 인명(人名)을 대체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偶諧; ()는 상대, 투합이며 해()는 화해(和諧), 배우(配偶)니 우해는 곧 상대하여 화해(和諧)함의 뜻.

頭頭; 사사(事事). 양양(樣樣). 매건(每件).

張乖; 괴장(乖張)과 같음. 위배의 뜻.

剃染; 체발염의(剃髮染衣)의 약칭. 두발을 깎아 제거하고 흑색 승의로 환착(換著)함이니 출가하여 승인이 됨을 가리킴.

無爲; 조작이 없음의 뜻이니 유위의 대칭임. 곧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된 바가 아닌,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여읜 절대상주(絶對常住)의 법임. 또 무위법으로 지으며 원래 이것은 열반의 다른 이름임. 후세에 다시 열반의 밖에 갖가지 무위를 세워 이에 3무위ㆍ6무위ㆍ9무위 등의 여러 설을 산생(産生)했음.

方丈; 1()의 사방의 실()이니 또 방장실ㆍ장실로 지음. 곧 선사(禪寺) 중 주지의 거실 혹 객전(客殿). 또 명칭이 함장(函丈)ㆍ정당(正堂)ㆍ당두(堂頭). 인도의 승방은 다분히 사방 1장을 제도(制度)로 삼았으며 유마의 선실(禪室)도 또한 이 제도에 의했으니 드디어 사방 1장의 설이 있음. ()하여 주지의 거실을 가리키며 이제 전의(轉義)하여 선림의 주지가 됨. 혹 사가(師家)에 대한 존칭이니 통칭이 방장이며 혹 방장화상임 [유마경문소22. 법원주림29. 대당서역구법고승전상혜륜전].

藥山; 유엄(惟儼; 751-834)이니 당대승. 강주(지금의 산서 신강)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한(). 17세에 조양(광동) 서산의 혜조(慧照)에게 의지해 출가했음. 대력 8(773) 형산(衡山)의 희조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으며 경론을 널리 통달했고 계율을 엄히 가졌음. 후에 석두희천(石頭希遷)을 참알(參謁)해 몰래 현지(玄旨)를 영오(領悟)했음. 다음으로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알해 언하에 계합(契合)해 깨쳤고 3년 동안 받들어 모시다가 뒤에 다시 석두로 돌아와 그의 법사(法嗣)가 되었음. 오래지 않아 예주(澧州)의 약산(藥山)에 이르러 법연(法筵)을 널리 열었음. 당 태화 8(834)애 시적했으니 나이는 84이며 일설엔 태화 212월에 시적했으니 나이가 70이라 함. 칙시(敕諡)가 홍도대사(弘道大師). [송고승전17. 조당집4. 전등록14. 전법정종기7].

一乘; 성불할 유일한 교임. ()은 거승(車乘)이 되며 불타의 교법에 비유함. 교법이 능히 사람을 싣고 열반의 언덕으로 운행하는지라 고로 이를 일러 승이라 함. 법화경은 오로지 이 1승을 설함. 법화경 방편품. 시방의 불토 중에/ 오직 일승법만 있고/ 둘이 없고 또 셋이 없나니/ 불타의 방편설을 제한다.

住持; (1). 세간에 안주하며 법을 보지(保持)함임. (2). 1()의 주승(主僧)을 이름해 주지니 이는 선문(禪門)으로부터 일어났음. 백장청규2 주지장(住持章)에 가로되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지 4백 년에 달마가 이르렀고 또 8()하여 백장에 이르렀다. 오직 도상(道相)을 주고 받았으며 혹은 바위에 거처커나 동굴에 거처커나 혹은 율사(律寺)에 기탁하면서 주지란 명칭이 있지 않았다. 백장이, 선종이 점점 성대해지자 위로는 군상왕공(君相王公)과 아래론 유로백씨(儒老百氏)가 다 도풍을 향해 도를 물었으며 도중이 실로 번성함이 있었는데 그 지위를 숭상하지 않으면 사법(師法)이 엄하지 않으므로 비로소 그 스승을 받들어 주지로 삼고 존중해 가로되 장로라 했다. 천축의 사리불과 수보리를 일컬음과 같나니 나이와 덕이 다 높기 때문이다.

珍重; 자중자애(自重自愛)를 권하는 말임. 대송승사략1. 떠남에 임해서 말해 가로되 진중(珍重)이라고 하는 것은 왜인가 하면 이것은 곧 상견을 이미 마치고 정의(情意)가 이미 통했음이다. 부촉(付囑)해 가로되 진중이라 함은 오히려 말하되 잘 보중(保重)을 더하라, 청컨대 자애(自愛)를 더하라, 좋게 장차 쉬어라(好將息), 의당 보호하여 아껴라(宜保惜) 함과 같음이다.

盤桓; 1. 배회. 체류. ()은 반환(盤桓)하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 정자통 환() 반환하며 나아가기 어려운 모양이다. 또 반()은 반(; 머뭇거림)과 통하나니 역 둔괘(屯卦) 상사(象辭)에 가로되 비록 반환(磐桓)하더라도 지행(志行)은 바르다. 2. (情意)가 후중(厚重)하고 간절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草草; ()는 초솔(草率; 거칠고 엉성함)ㆍ간략ㆍ부정(不精).

天然; (739-824) 당대승. 등주(鄧州; 지금 하남에 속함) 사람이며 석두희천(石頭希遷)의 법사(法嗣). 처음은 유업(儒業)을 익혔으며 뒤에 선승을 만나 깨닫고 남악(南嶽) 석두희천의 문하(門下)에 투신하여 3년을 복역(服役)하고서 머리 깎고 수계했음. 이윽고 강서(江西) 마대사(馬大師)를 알현(謁見)해 천연(天然)이란 법호(法號)를 받았음. 천태(天台) 화정봉(華頂峰)3년을 거주하고 다시 경산(徑山)에 가서 국일선사(國一禪師)를 참배했음. 그 후 남양(南陽) 단하산(丹霞山)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고 장경(長慶) 4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6이며 칙시(敕諡)가 지통선사(智通禪師) [송고승전11. 전등록14. 오등회원5].

赤土塗牛嬭; 선문염송집 제313. 염송설화에 가로되 적토운운(赤土云云)한 것은 대관본초(大觀本草)에 이르되 우내(牛嬭)는 작은 감(小柿)이다. 초인(楚人)이 적토(赤土)로 이에 발라서() 판매한다 했으니 곧 너의 늙은 아비(老爺)를 희롱(; 희롱할 학)함임. 어떤 책(一本)에 이르되 이 원가자(寃家子)가 나의 문풍(門風)을 죽인다 했는데 곧 산해경(山海經) ()에 이르되 서산(西山)의 북쪽()에 관수(灌水)가 나는데 수중에 유자(流赭; 赤士)가 있으며 소에게 바르면 곧 질병이 없다 했으니 곧 적토도우내(赤土塗牛嬭)는 우마(牛馬)의 재질(灾疾; 災疾)을 물리침임.

拂子; 1. 먼지를 털거나 벌레를 떨치는 데 사용하는 도구. 선사가 설법할 때 늘 이것을 가짐. 2. 사원에 주지하는 자격 혹 권력의 상징물.

比來; 근래. 최근. ()는 부사니 근()ㆍ근래.

闍梨; 범어 아사리(阿闍梨; ācārya)의 간칭. 또 사리(闍黎)로 지음. 뜻이 승인의 스승이 됨. 상용하여 승인에 대한 칭호로 지음.

蒼天; 4()의 하나니 춘천(春天). 2. 감탄어. 혹은 곡함어(哭喊語; 울부짖는 말)가 됨. 늘 중복으로 사용함을 보임. 다분히 상대방의, 선기(禪機)에 계합하지 못함을 감탄(感嘆)하며 기자(譏刺)에 사용함. 또한 시기접기(示機接機)로 사용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何似; 곧 여하(如何)의 뜻. 또 곧 어떤 물건과 같은가의 뜻.

宗眼; 곧 정법안이니 종지의 오의(奧義)를 투철하게 요해(了解)하는 명안.

一轉; 1. 1(). ()은 양사니 회()ㆍ차()에 상당함. 또 일전어(一轉語)ㆍ일전화(一轉話)를 가리킴.

幞頭; 고대 1종의 두건. 고인이 3척의 검은 비단으로 머리카락을 쌌는데 4(; )가 있었으니 2()는 두뇌 뒤에 매어서 드리우고 2대는 두상에 반대로 매었음. 굽게 꺾어지게 해 목에 붙인지라 고로 명칭이 사각(四脚) 혹 절상건(折上巾). 북주(北周) 무제 시에 이르러 각후(脚後)의 복발(幞髮)을 잘라 내었으며 비로소 복두(幞頭)로 이름했음. 처음은 부드러운 비단을 써서 각()을 내렸음. ()에서 비로소 오동나무로 골자(骨子)를 만들었으며 당()에서 비로소 나(; . 비단)로 증(; 비단)을 대체했음. 제복(帝服)은 곧 각상(脚上)이 굽었고 인신(人臣)은 아래로 처졌음 [백도사전].

師僧; 사람의 스승이 됨을 감내할 만한 승인. 또 승인의 경칭(敬稱)이 됨.

烏紗巾; 곧 오사모(烏紗帽)니 또 명칭이 당건(唐巾). 고대 관리가 쓰던 일종의 모자.

便宜; 다분히 상풍(上風)ㆍ우세를 말함. 벽암록 제66칙 종전초. 상가(商家)에서 득리(得利)하면 이르기를 편의(便宜)를 얻었다.

嚬呻; 금광명경문구문구기회본8. 빈신(嚬呻) ()은 음이 빈이며 신()은 음이 신이다. 빈신은 사자가 위엄을 떨침이다. 조정사원2. 상왕빈신(象王嚬呻) 모시(毛詩; 詩經異名) (; 經書의 설명 전) ()은 급()이며 신()은 서(; 천천할 서). 이르자면 노권(勞倦)함이 있는 자가 수족과 흉배(胸背)를 좌우상하(좌우상하로 움직임)하되 혹은 급히 애쓰거나 혹은 서서히 펴서 스스로 그 노권을 푸는 것이다. 지금의 글자는 구()를 좇는다.

著語; 타인의 기연어구(機緣語句)에 대해서 간단한 평의(評議)를 더함을 착어라고 호칭함.

仰山; 혜적(慧寂; 807-883)이니 당대승. 위앙종(潙仰宗)의 개산조사(開山祖師)의 하나가 됨. 소주(韶州; 광동 소관) 섭씨(葉氏)며 처음 출생하자 자못 이적(異蹟)이 있었음. 어린이(童穉)가 되자 번옹(番禺) 안화사(安和寺)의 불어통(不語通)에 의지(依止)해 출가하였음. 나이 14에 부모가 그 뜻을 뺏으려 하자 드디어 두 손가락을 잘라 맹서(盟誓)를 삼았으며 인하여 체락(剃落)을 좇았음. ()이 누차(屢次) 접인(接引)을 가했으나 스님은 계발(啓發)한 바가 없었음. 나이 18에 통이 죽자 인해 유원(乳源)에게 가서 참알(參謁)했으며 균주(筠州)의 처미(處微)ㆍ길주(吉州)의 성공(性空)ㆍ아산(鵶山)의 탐원(躭源)에 이르렀으나 다 계합(契合)치 못했음. 대화(大和) 3(829)에 이르러 대위영우(大潙靈祐)를 참알해 성공(性空), 마치 어떤 사람이 우물에 있음과 같다는 인연을 들어 인해 살핌이 있었음. 위산(潙山)이 양양(襄陽)의 대비원(大悲院)에 청계(請戒; 곧 수계)를 지령(指令)하자 스님이 가로되 혜적(慧寂)은 평생에 망어(妄語)를 하지 않았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너는 단지 사문법(沙門法)에 의지(依止)하라. 스님이 이를 좇았는데 때의 나이는 33이었음. 다시 위산으로 돌아와 직세(直歲)가 되었으며 이윽고 대중을 거느리고 침주(郴州)의 왕망산(王莽山)에 거주하였음. 그러고는 이석(移錫)하여 원주(袁州)의 앙산(仰山)에 거주했는데 대중이 수백(數百)을 채웠음. 어느 날 어떤 범승(梵僧)이 패엽(貝葉; 佛經을 가리킴)을 지고 스님에게 나아가자 스님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아침에 서천(西天)을 떠났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너무 느리다. 가로되 유산완수(游山翫水)했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신통은 너에게 없지 않으나 불법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가로되 여기에 와서 문수(文殊)에게 예배하려 했더니 도리어 소석가(小釋迦)를 만났습니다. 말을 마치자 은몰(隱沒)했음. 대중 13(859) 위주중승(韋宙中丞)이 스님을 위해 홍주(洪州)에 관음원(觀音院)을 창건하고 거쳐하게 했음. 함통(咸通. 860-873) 중에 소주(韶州)의 동평산(東平山)으로 돌아갔다가 중화(中和) 3213일에 이르자 대중을 모아 게()를 설하고 두 손으로 무릎을 안아 구부러지게 하고는 엄연(儼然; 의젓이)히 마쳤음. 앙산으로 귀장(歸葬)했음. 스님이 세상에 도를 행해 총사(寵賜)를 입은 게 세 번이니 의종(懿宗)이 호()를 주어 지종(知宗)이라 했고 희종(僖宗)이 징허(澄虛)를 주었고 소종(昭宗)이 지통(智通)이라 시호(諡號)했음 [조정사원7. 송고승전12].

久響; ()은 향()과 씀이 같음. 취향, 향착(向著). 구향(久響)은 장구히 경모(敬慕)함이니 그 사람을 최초에 상견했을 때 쓰는 말임.

恰是; ()은 적당임. (; 도리어). 선문염송집 제315. 염송설화에 이르되 흡시(恰是)란 것은 이 호심(好心)이 아님이다.

露柱; 외면에 환히 드러난 기둥. 주화엄경제법계관문송하. 노주(露柱)란 것은 처마 아래의 기둥이다.

擧似; 들어 보임. 언구를 들어 설하면서 어떤 사람에게 알림. ()는 주다ㆍ향하다에 상당함.

老老大大; 연로한 자에 대한 기자어(譏刺語: 헐뜯고 비꼬아서 하는 말). 이렇게 연로하면서 오히려 밝게 깨치지 못했는가 하는 뜻을 은함(隱含)하였음.

驀地; 홀연. 돌연. 지는 후철.

入滅; 입멸도ㆍ입적멸의 약칭. 또 이르되 입열반ㆍ취멸도ㆍ시적 등이니 이 말은 다만 불타의 입멸만 가리킴이 아니라 고승이나 성자의 죽음도 또한 칭호가 입멸임.

蚤晚; 조만(早晩)과 같음. 조모(早暮)와 같음. 어떤 시후(時候; 시각).

流盻; 눈동자를 전동(轉動)하면서 사시(斜視).

良久; 묵연. 침묵. 원래의 뜻은 허구(許久; 매우 오래)한 시간이 되지만 선림 중에선 전()하여 무언무어(無言無語)의 상태를 가리킴.

空華; 공화(空花)와 같음. 공중의 꽃을 가리킴. 전칭이 허공화며 또 공화ㆍ안화(眼華)ㆍ안화(眼花)로 지음. 대개 공중에는 원래 꽃이 없음. 그러나 눈에 질병이 있는 자는 안중에 가림이 있음으로 인하여 늘 공중에서 망령되이 환화(幻化)의 꽃을 봄.

陽𦦨; 마땅히 양염(陽焰)으로 지어야 함. 햇빛이 조요(照耀; 밝게 비추다)하는 아래의 부진(浮塵)이 물결을 아름답게 형상(形象)함이니 망심(妄心)으로 말미암아 난 바의 허환(虛幻)의 가상(假相)에 비유함. 혜림음의7. 양염(陽焰) 뜨거울 때 멀리서 보이는 지상과 옥상의 양기(陽氣). () 같으나 염이 아닌지라 고로 이름이 양염이다.

茶毗; <> jhāpeti. 번역명의집5. 사유(闍維) 혹 야순(耶旬)이며 바른 이름은 다비(茶毘)니 여기에선 이르되 분소(焚燒). 서역기에 이르되 열첩반나(涅疊槃那) 구역의 사유(闍維)는 그르다. 통혜음의(通慧音義)에 이르되 친히 범승에게 물었더니 사유(闍維)란 명칭을 듣지 못했다. 정자통. 범언으로 사유(闍維)는 곧 다비(茶毘). 승인이 죽으면 그것을 불사름이다. 혹 사비(闍毘)로 짓거나 또 다비(荼毘)로 짓는다. 음자(音字)를 번역하면서 본래 정한 게 없다. 도다(荼茶)는 고본(古本)에 동일한 글자다. 더욱 쉽게 혼동된다.

; 성파(聲破; 음성이 깨어지다). 장자 경상초. 아이가 종일 울어도 목구멍이 쉬지() 않음은 화합의 지극함이다.

 

贊曰 馬駒四脚蹈殺天下 老龐一口吸盡西江 這兩箇老漢 把佛祖以來相傳家活 蕩費無遺 令後代兒孫 一貧如洗 又豈止棄家珍 沈湘漢而已哉

馬駒四脚蹈殺天下; 碧巖錄第七十三則云 又六祖謂讓和尙曰 向後佛法 從汝邊去 已後出一馬駒 踏殺天下人 厥後江西法嗣 布於天下 時號馬祖焉

家活; 一工具 日用器具 二家業 家私 多喩禪法道業 此指二

湘漢; 湘水與漢水的並稱

 

찬왈(贊曰) 마구(馬駒; 망아지. 馬祖)는 사각(四脚)으로 천하를 밟아 죽였고(馬駒四脚蹈殺天下) 노방(老龐)은 일구(一口)로 서강(西江)을 마셔 없앴다. () 양개(兩箇) 노한(老漢)이 불조이래(佛祖以來)의 상전(相傳)하는 가활(家活)을 가져다() 탕비(蕩費; 消費)하여 남음이 없으니 후대 아손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가난함이 씻은 듯하거늘(一貧如洗) 또 어찌 가진(家珍)을 버려 상한(湘漢)에 빠뜨림에 그칠 따름이겠는가.

馬駒四脚蹈殺天下; 벽암록 제73칙에 이르되 또 6조가 회양화상에게 일러 가로되 향후의 불법은 너의 가를 좇아가리니 이후에 한 마구(馬駒)가 나와 천하인을 밟아 죽이리라(踏殺天下人). 그 후에 강서의 법사(法嗣)가 천하에 퍼지니 때에 호하여 마조라 했다.

家活; 1. 공구(工具). 날마다 쓰는 기구. 2. 가업. 가사(家私). 다분히 선법(禪法)의 도업에 비유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湘漢; 상수(湘水)와 한수(漢水)의 병칭(並稱).

 

又贊曰 洞山价曰 貪嗔癡太無知 果賴今朝捉得伊 行卽打坐卽槌 分付心王仔細推 無量劫來不解脫 問汝三人知不知 咄 洞山漏逗不少 神鼎諲云 貪瞋癡實無知 十二時中任從伊 行卽住坐卽隨 分付心王無可爲 無量劫來元解脫 何須更問知不知 咄 神鼎亦漏逗不少 老龐云 莫求佛兮莫求人 但自心裏莫貪嗔 貪嗔癡病前頓盡 便是如來的的親 咄 龐公漏逗不少 心空云 人卽佛兮佛卽人 本來何處是貪瞋 威獰獅子頻哮吼 那管如來親不親 咄 心空亦漏逗不少

洞山价; 良价(807-869) 曹洞宗之祖 唐代越州會稽(浙江會稽)人 俗姓兪 幼從師誦般若心經 以無眼耳鼻舌身意之義問其師 其師駭然 卽指往五洩山禮靈默禪師披剃 年二十一 詣嵩山受具足戒 尋謁南泉普願 深領其旨 又訪潙山靈祐 參無情說法之公案 不契 受指示詣雲巖曇晟 問無情說法之義 辭歸時 涉水睹影 大悟前旨 後嗣雲巖之法 於江西洞山弘揚佛法 倡五位君臣說 門風頗振 咸通十年 命剃髮披衣 鳴鐘辭衆 大衆號慟不止 師忽開目謂曰 夫出家之人 心不附物 是眞修行 勞生息死 於悲何有 衆猶戀慕不已 乃延七日 至第八日浴訖 於丈室端坐長往 壽六十三 臘四十二 敕諡悟本禪師 著有寶鏡三昧歌 玄中銘 洞山語錄等 [洞山良价禪師語錄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五 禪學思想史上]

漏逗; 逗 透也 露也 漏逗 泄露 泄漏 禪錄用例常指泄露禪法玄旨 按禪旨强不可言說 然高手宗師本分示人 自可直指心地 泄露禪旨的說法 帶有詼諧意味 或云老衰雜亂之義

神鼎諲; 洪諲 宋代臨濟宗僧 襄水(湖北)人 俗姓扈 嗣首山省念 初隱南嶽 一鉢自足 後遇湘陰豪右來遊 請主其邑之神鼎寺 師允諾之 然至寺則已敗毁 唯餘殘蹟 師遂淸苦自持 居之十載 道侶漸聚 猶以破朽木床爲獅子座 踞以說法 其淡泊如此 而以年臘俱高 諸方尊之如古趙州 寂年八十餘 [神鼎山第一代諲禪師語錄 續傳燈一 禪林僧寶傳十四]

十二時; 一日中之十二箇時辰 從子時至亥時

的的; 確實 眞實 的 實也

 

또 찬왈(贊曰) 동산개(洞山价)가 가로되 탐진치(貪嗔癡)하여 너무 알지 못하다가(太無知)/ 과연 다행히() 금조(今朝)에 그()를 착득(捉得)했다/ 다니면() 곧 타()하고 앉으면() 곧 추(; 방망이로 치다)하면서/ 심왕(心王)에게 분부(分付)하여 자세히 추구(推究; )하라/ 무량겁래(無量劫來)로 해탈하지 못했음을/ 너희 세 사람에게 묻노니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 ()/ 동산(洞山)이 누두(漏逗)가 적지 않았다. 신정인(神鼎諲)이 이르되 탐진치(貪瞋癡)하여 실로 알지 못하나니/ 십이시(十二時) 중에 일임하여 그()를 좇노라/ ()하면 곧 주()하고 좌()하면 곧 따르나니()/ 심왕에게 분부하매 가히 함()이 없다/ 무량겁래로 원래 해탈했거늘/ 어찌, 다시 아는지 알지 못하는지를 물음을 쓰겠는가()/ ()/ 신정(神鼎)도 또한 누두(漏逗)가 적지 않았다. 노방(老龐)이 이르되 부처에게 구하지 말고 사람에게 구하지 말고/ 단지 스스로 심리(心裏)에 탐진(貪嗔)하지 말아라/ 탐진치병(貪嗔癡病)을 전에 문득() 없앴나니/ 바로 이 여래를 적적(的的)히 친()하다/ ()/ 방공(龐公)이 누두(漏逗)가 적지 않았다. 심공(心空; 朱時恩)이 이르되 사람이 곧 부처며 부처가 곧 사람이거늘/ 본래 어느 곳이 이 탐진(貪瞋)인가/ 위녕(威獰)한 사자(獅子)가 자주() 효후(哮吼)하거늘/ 어찌() 여래를 친함과 친하지 않음에 상관(相管; )하겠는가/ ()/ 심공(心空)도 또한 누두(漏逗)가 적지 않았다.

洞山价; 양개(良价; 807-869)니 조동종의 개조(開祖). 당대 월주 회계(절강 회계) 사람이며 속성은 유(). 어릴 적에 스승을 좇아 반야심경을 외우다가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없다는 뜻으로써 그 스승에게 묻자 그 스승이 놀라서 곧 오설산(五洩山)에 가서 영묵선사(靈默禪師)를 예알(禮謁)하고 피체(披剃)하라고 지시했음. 나이 21에 숭산(嵩山)에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으며 이윽고 남천보원(南泉普願)을 참알(參謁)해 깊이 그 지취를 깨쳤음. 또 위산영우(潙山靈祐)를 방문해 무정설법(無情說法)의 공안을 참구했으나 계합치 못했고 운암담성(雲巖曇晟)에게 가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무정설법의 뜻을 물었음. 고별(告別; )하고 돌아갈 때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다가 앞의 지취를 대오했으며 후에 운암(雲巖)의 법을 이었음. 강서(江西)의 동산(洞山)에서 불법을 홍양(弘揚)했으며 오위군신(五位君臣)의 설을 선양하여() 문풍(門風)을 자못 진작(振作)했음. 함통 10(869) 명해 머리를 깎고 옷을 입고 종을 울리고 대중을 고별했음. 대중이 울고 통곡하며 그치지 않았는데 스님이 홀연히 눈을 뜨고 일러 가로되 무릇 출가한 사람은 마음이 사물에 붙지 않아야 이것이 참 수행이다. 살면서 노고하다가 죽어서 쉬거늘 슬픔이 어디에 있는가. 대중이 오히려 연모해 말지 않자 이에 7일을 연장하더니 8일째에 이르러 목욕해 마치고 장실(丈室)에서 단정히 앉아 장왕(長往)했음. 세수는 63이며 법랍은 42. 칙시(敕諡)가 오본선사(悟本禪師). 저서에 보경삼매가(寶鏡三昧歌)ㆍ현중명(玄中銘)ㆍ동산어록 등이 있음 [동산양개선사어록. 송고승전12. 전등록15. 선학사상사상].

漏逗; ()는 투(). (). 누두(漏逗)는 설로(泄露. 누설하여 노출함). 설루(泄漏. 漏泄). 선록(禪錄)의 용례는 늘 선법의 현지(玄旨)를 설로(泄露)함을 가리킴. 안험컨대 선지(禪旨)는 강력히 언설을 옳지 않다 함. 그리하여 고수종사(高手宗師)는 본분을 사람에게 보이므로 심지(心地)를 직지하여 선지를 설로(泄露)하는 설법을 스스로 옳다 함. 회해(詼諧. 조롱하며 농담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 혹은 이르기를 노쇠하여 잡란(雜亂)하다란 뜻.

神鼎諲; 홍인(洪諲)이니 송대 임제종승. 양수(襄水; 호북) 사람이며 속성은 호. 수산성념(首山省念)을 이었고 처음 남악에 은거하며 1()로 자족했음. 후에 상음(湘陰)의 호우(豪右)의 내유(來遊)를 만났는데 그 읍()의 신정사(神鼎寺)에 주지(主持)하기를 요청하는지라 스님이 윤낙(允諾)했음. 그러나 사원에 이르니 곧 이미 패훼(敗毁)하여 오직 잔적(殘蹟)만 남은지라 스님이 드디어 청고(淸苦)하며 자지(自持)했고 거주한 지 10() 만에 도려(道侶)가 점차 모였지만 오히려 파후(破朽)한 목상(木床)으로 사자좌로 삼아 걸터앉아 설법했으니 그 담박(淡泊)함이 이와 같았음. 연랍(年臘; 나이와 하랍)이 모두 높았으므로 제방에서 옛 조주와 같이 존경했음. 적년(寂年)80 가량 [신정산제일대인선사어록. 속전등1. 선림승보전14].

十二時; 1일 중의 12개 시진(時辰)이니 자시로부터 해시에 이르기까지.

的的; 확실. 진실. ()은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