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愈
字退之 官刑部侍郞 唐憲宗遣使迎佛骨入禁中 王公士庶奔走膜拜 騰蹈係路 愈上表極諫 帝大怒 將抵之死 裴度崔群請少寬假 乃貶潮州刺史 到潮之初 以表勸帝東封泰山 久而無報 鬱鬱不樂 聞大顚禪師道德名重 三以書招 乃至 留數十日 或入定數日方起 愈甚敬焉 後復造顚之廬訪道 一日問 和尙春秋多少 顚提起數珠曰 會麽 愈曰 不會 顚曰 晝夜一百八 愈不曉 次日再來 至門前 見首座 擧前話 問 意旨如何 座叩齒三下 及見顚 理前問 顚亦叩齒三下 愈曰 元來佛法無兩般 顚曰 是何道理 愈曰 適來問首座亦如是 顚乃召首座問 是汝如此對否 曰 是 顚乃打趂出院 愈一日白顚曰 弟子軍州事繁 佛法省要處 乞師一語 顚良久 愈罔措 時三平爲侍者 乃敲禪牀三下 顚曰 作麽 平曰 先以定動 後以智㧞 愈曰 和尙門風高峻 乃於侍者邊得箇入處 改袁州刺史 留衣二襲而別 答尙書孟簡書稱 顚頗聰 明識道理 實能外形骸 以理自勝 不爲事物侵亂 雖不盡解其語 要自胸中無滯礙 以爲難得 因與往來
●侍郞; 官名 秦漢代爲郞中令之屬官 掌握宮門事 唐代爲中書省門下省之長官 後代爲六府次官
●禁中; 指帝王所居宮內
●王公; 王爵和公爵 泛指顯貴的爵位
●膜拜; 長跪而拜也
●係路; 相繼於路 絡繹不絕
●裴度; 唐代居士 字中立 河東聞喜(今屬山西)人 貞元(785- 805)初進士 纍官中書侍郞 封晉國公 因閹竪煽虐 退歸集賢里 問道於徑山道欽 執弟子禮 [名公法喜志二 佛法金湯編九]
●東封泰山; 指皇帝到泰山擧行封禪大典
●大顚; 寶通(732-824) 唐代僧 穎川人 俗姓陳(一說楊) 號大顚 據潮州府志載 大歷年中 與藥山惟儼竝師事惠照於西山 復與之遊南嶽 參石頭希遷 大悟宗旨 得曹溪之緖 於潮州西幽嶺下創建靈山禪院 出入有猛虎相隨 韓愈被謫貶潮州時 聞大顚之名 召至 留十餘日 謂其能外形骸 以理自勝 因與師往來相交 長慶四年 辭衆而逝 壽九十三 [傳燈錄十四 祖庭事苑四 五燈會元五]
●道德; 心通曰道 又成名之謂道 卽佛祖微妙之道也 在儒卽允執厥中之妙道也 身正曰德 立身之謂也 僧有戒定慧 儒有孝悌忠信 皆謂之德也 [禪林寶訓音義]
●首座; 寺院參禪僧衆中居于首位者 又僧堂中居于首位的參禪僧 是禪寺職事僧之一 若僧堂分作前後兩堂 則分別設前堂首座與後堂首座 ▲大宋僧史略中 首座之名 卽上座也 居席之端 處僧之上 故曰也 尋唐世敕辯章 撿校修寺 宣宗賞其功 署三敎首座 (中略)次復經論之學 或置首座 三敎首座則辯章爲始也
●軍州事; 是宋代地方行政長官的差遣職務全稱權知某軍州事的簡稱 意爲暫行主管某州軍事與民政事務 其長官通常簡稱爲知州 [百度百科]
●省要處; 領悟禪法的關鍵之處
●三平; 義忠(781-872) 唐代僧 福州人 俗姓楊 初參石鞏慧藏 後爲大顚寶通之法嗣 靑原下三世 居於漳州(福建)三平山接化後學 咸通十三年十一月示寂 壽九十二 [祖堂集五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禪牀; 又作禪床 牀 同床 玉篇 床 俗牀字 禪牀又作繩牀 坐禪牀 卽以繩草或籐 所製之折疊牀 以其輕巧 且攜帶方便 故爲比丘經常攜行之道具 屬十八物之一
●先以定動; 涅槃經三十一曰 如拔堅木 先以手動 後則易出 菩薩定慧亦復如是 先以定動 後以智拔
●刺史; 官名 自漢設立 本爲監察郡縣的官員 隋唐以後沿用爲一州長官的別稱 屬官有長史司馬等 [百度漢語]
●尙書; 官名 最初是掌管文書奏章的官員 始置於戰國時 隋代始設六部 唐代確定六部爲吏 戶 禮 兵 刑 工 各部以尙書侍郞爲正副長官
한유(韓愈; 768-824)
자가 퇴지(退之)며 벼슬이 형부시랑(刑部侍郞)이었다. 당 현종이 사자(使者)를 보내 불골(佛骨; 佛舍利)을 맞이해 금중(禁中)에 들이자 왕공(王公)과 사서(士庶)가 분주(奔走)하며 막배(膜拜)했고 등도(騰蹈)하며 계로(係路)했다. 한유(韓愈; 愈)가 상표(上表)하여 극간(極諫)하자 황제가 대노(大怒)했고 장차 죽음에 다다랐는데 배도(裴度)와 최군(崔群; 바로 아래에 나옴)이 청하여 조금(少) 관가(寬假; 寬容. 寬恕)했고 이에 조주자사(潮州刺史; 潮州는 지금의 광동성 潮州)로 폄직(貶職; 貶)되었다. 조주(潮州; 潮)에 이른 초기(初期; 初)에 표문(表文; 表)으로써 황제에게 동봉태산(東封泰山)하기를 권했으나 오래도록 보고(報告; 報)가 없었고 울울(鬱鬱; 마음 속에 苦悶함)하여 즐겁지 않았다. 대전선사(大顚禪師)의 도덕(道德)이 명중(名重; 名聲이 顯赫)하다 함을 듣고 세 번 글로써 부르자(招) 이에 이르렀다. 수십 일을 머물렀는데 혹 입정(入定)한 지 며칠 만에 비로소 일어났고 한유가 심히 존경(尊敬; 敬)했다. 후에 다시 대전(大顚)의 초려(草廬; 廬)로 나아가(造) 방도(訪道; 問道)했다. 어느 날 묻되 화상은 춘추가 얼마입니까. 대전이 수주(數珠; 念珠)를 제기(提起)하며 가로되 압니까. 유왈(愈曰) 알지 못합니다. 전왈(顚曰) 주야(晝夜)로 일백팔(一百八)입니다. 한유가 깨닫지(曉) 못했다. 다음날 재래(再來)하여 문 앞에 이르러 수좌(首座)를 보자 전화(前話)를 들고(擧) 묻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수좌가 세 번(三下) 고치(叩齒; 이를 두드림)했다. 및 대전을 뵙고 전문(前問)을 정리(整理; 理)하자 대전도 또한 세 번 고치(叩齒)했다. 유왈(愈曰) 원래 불법이 두 가지가 없습니다. 전왈(顚曰) 이 무슨 도리입니까. 유왈(愈曰) 적래(適來; 조금 전) 수좌에게 물었더니 또한 이와 같았습니다. 대전이 이에 수좌를 불러(召) 묻되 이 네가 이와 같이 응대(應對; 對)했느냐. 가로되 그렇습니다(是). 대전이 이에 때리고 사원에서 쫓아내었다(趂出). 한유가 어느 날 대전에게 사뢰어 가로되 제자(弟子)는 군주사(軍州事)가 번다(繁多; 繁)하니 불법의 성요처(省要處)를 스님에게 일어(一語)를 구걸합니다. 대전이 양구(良久)했다. 한유가 망조(罔措)했다. 때에 삼평(三平; 義忠)이 시자(侍者)가 되었는데 이에 선상(禪牀)을 세 번(三下) 두드렸다(敲). 전왈(顚曰) 무엇하느냐(作麽). 평왈(平曰) 먼저 정으로써 움직이고(先以定動) 후에 지로써 뽑습니다(後以智㧞). 유왈(愈曰) 화상의 문풍(門風)이 고준(高峻)하여 이에 시자변(侍者邊)에서 저(箇) 입처(入處)를 얻었습니다. 원주자사(袁州刺史; 袁州는 지금의 강서성 북서부 宜春縣의 옛 명칭)로 바뀌자(改) 옷 두 벌(襲)을 머물러두고 헤어졌다. 상서(尙書) 맹간(孟簡)의 글에 답해 일컫되 대전은 자못 총명(聰明; 聰)하고 도리를 환히 알았으며(明識) 실로 능히 형해(形骸)의 밖이었으며 이치로써 스스로 수승(殊勝; 勝)했으며 사물에 침란(侵亂)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요컨대 스스로 흉중(胸中)에 체애(滯礙)가 없음을 난득(難得)으로 삼는지라 인하여 더불어 왕래했습니다.
●侍郞; 벼슬 이름. 진한대(秦漢代)에 낭중령의 속관(屬官)이 되어 궁문사(宮門事)를 장악했음. 당대(唐代)에 중서성과 문하성의 장관이 되었으며 후대에 6부(府)의 차관이 되었음.
●禁中; 제왕(帝王)이 거주하는 바의 궁내를 가리킴.
●王公; 왕작(王爵)과 공작(公爵)이니 널리 현귀(顯貴)의 작위를 가리킴.
●膜拜; 오래 꿇어앉아 예배함.
●係路; 길에 상계(相繼)하여 낙역부절(絡繹不絕)함.
●裴度; 당대 거사. 자는 중립이며 하동 문희(지금 산서에 속함) 사람. 정원(785-805) 초 진사(進士)며 벼슬을 거듭해 중서시랑이 되었고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음. 엄수(閹竪; 宦官에 대한 멸칭)로 인해 학정(虐政)이 심했으며 집현리(集賢里)로 퇴귀했음. 경산도흠(徑山道欽)에게 도를 물었고 제자의 예의를 가졌음 [명공법희지2. 불법금탕편9].
●東封泰山; 황제가 태산에 이르러 봉선대전(封禪大典)을 거행함을 가리킴.
●大顚; 보통(寶通; 732-824)이니 당대승. 영천 사람이며 속성은 진(陳; 일설엔 楊)이며 호는 대전(大顚). 조주부지(潮州府志)의 기재에 의하자면 대력년 중에 약산유엄과 아울러 서산에서 혜조(惠照)를 사사(師事)했고 다시 그와 더불어 남악에 노닐다가 석두희천(石頭希遷)을 참해 종지를 대오했고 조계의 실마리를 얻었음. 조주(潮州) 서쪽 유령 아래 영산선원(靈山禪院)을 창건했음. 출입에 맹호가 서로 따름이 있었음. 한유(韓愈)가 조주로 적폄(謫貶; 강등되어 邊遠의 땅에 措置됨)됨을 입었을 때 대전의 명성을 듣고 불러 이르게 해 10여 일 머물게 했음. 이르기를 그는 능히 형해(形骸)의 밖이며 이치로써 스스로 이긴다. 인하여 스님과 왕래하며 상교(相交)했음. 장경 4년 대중에게 고별하고 떠났음. 나이 93 [전등록14. 조정사원4. 오등회원5].
●道德; 마음으로 통함을 가로되 도(道)며 또 이룸(成)을 이름하여 도라고 말함. 곧 불조의 미묘한 도니 유(儒)에 있어선 곧 윤집궐중(允執厥中)의 묘도임. 신정(身正)을 가로되 덕(德)이니 입신(立身)을 말함임. 승(僧)은 계정혜가 있고 유(儒)는 효제충신(孝悌忠信)이 있으니 다 이를 일러 덕이라 함 [선림보훈음의].
●首座; 사원의 참선하는 승중(僧衆) 가운데 수위(首位)에 거처하는 자임. 또 승당(僧堂) 중에 수위에 거처하는 참선승임. 이는 선사(禪寺)의 직사승(職事僧)의 하나임. 만약 승당을 전후의 양당(兩堂)으로 나누어 지으면 곧 전당수좌(前堂首座)와 후당수좌(後堂首座)를 분별해 시설함. ▲대송승사략중. 수좌(首座)란 이름은 곧 상좌(上座)다. 좌석의 첫째(端)에 거처하면서 승중의 위에 거처하는지라 고로 말함이다. 찾아보니 당세(唐世)에 변장(辯章)에게 칙령하여 사원을 검교(撿校)하고 다스리게 했는데 선종(宣宗)이 그 공을 상(賞)주어 삼교수좌(三敎首座)로 임명(署)했다 (중략) 다음에 다시 경론의 학(學)으로 혹 수좌를 두었으니 삼교수좌는 곧 변장(辯章)이 처음이 된다.
●軍州事; 이는 송대 지방행정장관의 차견직무(差遣職務)니 전칭이 권지모군주사(權知某軍州事)의 간칭(簡稱). 뜻이 모주(某州)의 군사(軍事)와 민정사무를 잠행(暫行)하여 주관(主管)함이 됨. 그 장관은 통상(通常) 간칭하여 지주(知州)라 함 [백도백과].
●省要處; 선법을 영오(領悟)하는 관건(關鍵)의 곳.
●三平; 의충(義忠; 781-872)이니 당대승. 복주 사람이며 속성은 양. 처음은 석공혜장을 참방했고 후에 대전보통(大顚寶通)의 법사가 되었으니 청원하 3세. 장주(복건) 삼평산에서 후학을 접화(接化)했으며 함통 13년 11월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92 [조당집오. 전등록14. 오등회원5].
●禪牀; 또 선상(禪床)으로 지음. 상(牀)은 상(床)과 같음. 옥편 상(床) 상(牀)의 속(俗) 글자다. 선상(禪牀)은 또 승상(繩牀)ㆍ좌선상(坐禪牀)으로 지음. 곧 승초(繩草)나 혹 등(籐)으로 제작한 바의 절첩상(折疊牀; 접이식 상)이니 그것이 경교(輕巧)하고 또 휴대하기가 방편(方便)한지라 고로 비구가 경상(經常; 平時) 가지고 다니는 도구가 됨. 18물의 하나에 속함.
●先以定動; 열반경31에 가로되 견고한 나무를 뽑으면서 먼저 손으로 움직이면 뒤에 곧 쉽게 나옴과 같이 보살의 정혜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먼저 정(定)으로 움직이고 후에 지(智)로 뽑는다.
●刺史; 벼슬 이름. 한(漢)으로부터 설립했으며 본래 군현(郡縣)을 감찰하는 관원이었음. 수ㆍ당 이후에 연용(沿用)하여 1주(州)의 장관의 별칭이 되었음. 속관(屬官)에 장사(長史)ㆍ사마(司馬) 등이 있음 [백도한어].
●尙書; 벼슬 이름. 최초엔 이 문서와 주장(奏章)을 장관하는 관원이었음. 전국 시 처음 설치했고 수대(隋代)에 비로소 6부(部)를 설치했고 당대에 6부를 이(吏)ㆍ호(戶)ㆍ예(禮)ㆍ병(兵)ㆍ형(刑)ㆍ공(工)으로 삼음을 확정했음. 각 부에 상서와 시랑(侍郞)을 정부(正副) 장관으로 삼았음.
心空曰 退之 退之 雖不盡解 畢竟誰解 誰不解
심공(心空)이 가로되 퇴지(退之; 한유의 자) 퇴지여, 비록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니 필경 누가 이해하며 누가 이해하지 못함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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