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群(徑山法欽禪師法嗣)
崔群 武城人 未冠擧進士 累官翰林學士 參徑山法欽禪師 問 弟子欲出家 得否 欽曰 出家乃大丈夫之事 非將相之所能爲 群於言下有省 唐憲宗朝 出爲湖廣觀察使 纔至任 便訪如會禪師 問曰 師以何得會 曰 以見性得 時會方病眼 群曰 旣云見性 其奈眼何 會曰 見性非眼 眼病何害 群稽首稱謝 穆宗朝 超拜吏部尙書 封趙公
●法欽; 道欽(714-792) 唐代僧 鶴林玄素法嗣 牛頭法融下六世 蘇州昆山人 俗姓朱 又作法欽 初學儒敎 於赴京途中 遇鶴林玄素禪師 遂剃度受戒 修習禪法 後住杭州徑山 參學者甚衆 代宗大曆三年(768)詔入京 賜號國一禪師 後復受德宗敬重 貞元六年(790) 移住龍興寺淨土院 八年示寂 壽七十九 德宗諡號大覺禪師 世稱徑山道欽 [宋高僧傳九 傳燈錄四 釋氏稽古略三]
●進士; 古代科擧殿試及第者之稱 此稱始見於禮記王制 隋唐科擧考試設進士科 錄取後爲進士 明淸時稱殿試考取的人
●翰林學士; 官名 學士始設於南北朝 唐初常以名儒學士起草詔令而無名號 唐玄宗時 翰林學士成爲皇帝心腹 常常能升爲宰相 北宋翰林學士承唐制 仍掌制誥 此後地位漸低 然相沿至明淸 拜相者一般皆爲翰林學士之職 淸以翰林掌院學士爲翰林院長官 無單稱翰林學士官 [百度百科]
●將相; 將帥和丞相 亦泛指文武大臣
●觀察使; 官職名 唐代按察諸州政事 補佐節度使而監督刺史 按新唐書 上元元年(874)置觀察使
●如會; (744-823) 唐代僧 韶州(廣東)始興人 幼卽出家 大曆八年(773)參徑山道欽 後又參訪馬祖道一 爲其法嗣 於馬祖處時 因來參者衆多 僧堂禪床爲之而折 故有折床會之稱 其後 入主長沙東寺 法門鼎盛 時號東寺禪窟 穆宗長慶三年示寂 壽八十 諡號傳明大師 [宋高僧傳十一 傳燈錄七 釋氏稽古略二]
최군(崔群)(徑山 法欽禪師의 法嗣)
최군(崔群; 772-832)은 무성(武城) 사람이며 미관(未冠; 20세 전)에 진사(進士)에 거천(擧薦; 擧)되었고 누관(累官; 공을 쌓아 벼슬이 올라감)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 경산(徑山) 법흠선사(法欽禪師)를 참(參)해 묻되 제자(弟子)가 출가하려고 하는데 얻겠습니까. 흠왈(欽曰) 출가는 곧 대장부의 일인지라 장상(將相)이 능히 할 바가 아닙니다. 최군이 언하에 살핌이 있었다. 당 헌종조(憲宗朝)에 나가서 호광(湖廣; 湖北과 湖南) 관찰사(觀察使)가 되었다. 겨우 임지(任地; 任)에 이르자 바로(便) 여회선사(如會禪師)를 방문해 문왈(問曰) 스님은 무엇으로써 회(會; 理會)를 얻었습니까. 가로되 견성(見性)으로써 얻었습니다. 때에 여회가 바야흐로 병안(病眼)이었다. 군왈(群曰) 이미 이르되 견성이라 했거니와 눈은 그 어찌할 것입니까(其奈眼何). 회왈(會曰) 견성은 눈이 아니거늘 안병(眼病)이 어찌 방해되겠습니까. 최군이 계수(稽首)하며 감사(感謝; 謝)를 일컬었다. 목종조(穆宗朝)에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초배(超拜; 초월해 除拜)되었고 조공(趙公)으로 봉(封)해졌다.
●法欽; 도흠(道欽; 714-792)이니 당대승. 학림현소(鶴林玄素)의 법사며 우두법융하 6세. 소주 곤산 사람이며 속성은 주(朱). 또 법흠(法欽)으로 지음. 처음엔 유교를 배웠는데 경도(京都)에 다다르는 도중에 학림현소선사를 만나 드디어 체도(剃度)하고 수계했으며 선법(禪法)을 수습(修習)했음. 뒤에 항주의 경산(徑山)에 머물렀는데 참학하는 자가 매우 많았음. 대종 대력 3년(768) 조칙으로 입경(入京)하자 국일선사(國一禪師)란 호를 주었음. 뒤에 다시 덕종의 경중(敬重; 恭敬尊重)을 받았음. 정원 6년(790) 용흥사의 정토원으로 이주했으며 8년에 시적했음. 나이 79. 덕종이 시호하여 대각선사라 했음. 세칭이 경산도흠(徑山道欽) [송고승전9. 전등록4. 석씨계고략3].
●進士; 고대 과거(科擧) 전시(殿試)의 급제자의 명칭이니 이 명칭은 예기 왕제(王制)에 처음으로 보임. 수ㆍ당의 과거고시에 진사과를 설치했고 녹취(錄取; 選定)한 후 진사가 되었음. 명ㆍ청 시엔 전시(殿試)에 고취(考取; 시험에 합격)된 사람을 일컬었음
●翰林學士; 벼슬 이름. 학사는 남북조에 처음 설치했고 당초(唐初)에 늘 명유학사(名儒學士)로 조령(詔令)을 기초(起草)하게 했으나 명호(名號)가 없었음. 당현종 시 한림학사는 황제의 심복이 되었고 늘 항상 능히 승진하여 재상이 되었음. 북송의 한림학사는 당제(唐制)를 계승해 그대로 제고(制誥)를 관장했음. 차후(此後)로 지위가 점차 낮아졌음. 그러나 상연(相沿)하여 명ㆍ청에 이르렀고 배상(拜相)하는 자는 일반으로 모두 한림학사의 관직이 되었음. 청(淸)은 한림장원학사(翰林掌院學士)를 한림원장관으로 삼았고 단칭(單稱)의 한림학사관(翰林學士官)이 없었음 [백도백과].
●將相; 장수(將帥)와 승상(丞相). 또한 널리 문무대신(文武大臣)을 가리킴.
●觀察使; 관직의 이름. 당대에 여러 주의 정사를 안찰하면서 절도사를 보좌하고 자사를 감독했음. 신당서를 안험컨대 상원 원년(874) 관찰사를 설치했음.
●如會; (744-823) 당대승. 소주(韶州; 광동) 시흥 사람. 어릴 적에 곧 출가하였고 대력 8년(773) 경산도흠(徑山道欽)을 참알(參謁)하고 후에 또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방(參訪)하여 그의 법사(法嗣)가 되었음. 마조에 거처할 때 내참(來參)하는 자의 무리가 많아 승당의 선상(禪床)이 부러진지라 고로 절상회(折床會)의 칭호가 있음. 그 후 장사(長沙)의 동사(東寺)에 들어가 주지(主持)하였는데 법문이 정성(鼎盛; 흥성)해 당시에 호하기를 동사선굴(東寺禪窟)이라 했음. 목종(穆宗) 장경 3년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0이며 시호가 전명대사(傳明大師) [송고승전11. 전등록7. 석씨계고략2].
贊曰 崔趙公且置 如何是大丈夫出家事 休 休 大平本是將軍致 不許將軍見太平
찬왈(贊曰) 최조공(崔趙公; 崔群)은 차치(且置)하고 무엇이 이 대장부의 출가사(出家事)인가. 쉬어라(休) 쉬어라, 태평(大平)은 본시(本是) 장군이 이루지만(致) 장군에게 태평을 봄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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