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감지(甘贄)

태화당 2026. 5. 22. 07:03

甘贄(南泉普願禪師法嗣)

池州甘贄行者 一日入南泉設齋 黃檗運爲首座 贄請施財 運曰 財法二施 等無差別 贄曰 恁麽道 爭消得某甲䞋 便將出去 須臾復入 曰 請施財 運曰 財法二施 等無差別 贄乃行䞋 又一日入寺設粥 仍請南泉念誦 泉乃白椎曰 請大衆爲狸奴白牯摩訶般若波羅蜜 贄拂袖便出 泉粥後問典座 贄在甚處 座曰 當時便去也 泉乃打破鍋子 贄常接待往來 有僧問曰 行者接待不易 贄曰 譬如餧驢餧馬 僧休去 有住菴僧緣化什物 贄曰 有一問 若道得 卽施 乃書心字 問 是甚麽字 曰 心字 又問妻 甚麽字 妻曰 心字 贄曰 某甲山妻亦合住菴 僧無語 贄亦無施 又問一僧 甚麽處來 曰 潙山來 贄曰 曾有僧問潙山 如何是西來意 潙山擧起拂子 上座作麽生會潙山意 曰 借事明心 附物顯理 贄曰 且歸潙山去好 巖頭在贄家過夏 一日把鍼次 贄前立 頭乃以鍼作劄勢 贄遂歸 著衣擬出禮謝 妻乃問 翁作甚麽 贄曰 不得說 妻云 有甚事也要大家知 贄擧前話 妻云 從此三十年後 須知一度喫水 一度噎殺人 女子聞 乃云 還知盡大地人性命 被奯上座針頭上劄將去也無

普願; (748-834) 唐代僧 鄭州新鄭(河南開封新鄭)人 俗姓王 十歲受業於大隗山大慧 大曆七年(772) 就嵩山會善寺暠律師受具足戒 未久 遊諸講肆 聽楞伽華嚴等經 又通達中論百論十二門論等之玄義 後參江西馬祖道一 有所省悟 貞元十一年(795) 於池陽南泉山建禪宇 三十餘年不出山 太和(827 835)初年 應衆請出山 由是 學徒雲集 法道大揚 太和八年十二月二十五日示寂 壽八十七 世稱南泉普願 有語錄一卷 法嗣有從諗 曇照 師祖等十七人 [宋高僧傳十一 傳燈錄八 聯燈會要四 佛祖歷代通載二十二 禪宗正脈三]

行者; 乃指觀行者 或泛指一般佛道之修行者 又稱行人修行人 禪林中 行者乃指未出家而住於寺內幇忙雜務者 行者之居所稱爲行堂 行堂之主首稱行堂主 或單稱堂主 行者有剃髮者 亦有未剃髮而攜帶家眷者 種類繁多 例如 參頭行者 副參行者 執局行者(方丈行者 六局行者等之總稱) 庫司行者(隨從都寺) 堂司行者(隨從維那) 庫子(副寺寮之行者) 客頭行者 茶頭行者 喝食行者(飮食時 唱報飯食湯等名稱者 喝卽唱之意) 供頭行者(又作供過行者 卽分配飯食者) 直殿行者 衆寮行者 門頭行者等 年少之行者 稱爲童行 道者 童侍 僧童 或稱驅烏沙彌 沙喝(飯食時之嚮導 相當於充任喝食沙彌之意) 聽叫 類同於行者 有所謂淨人(又作苦行) 指不剃髮而專爲僧衆服務者 蓋禪林職位之繁多 猶如朝廷之文武兩班 以共維繫寺院之法命 然此職位制度 自宋代以降 諸宗融合 於一般較大之寺院皆循此制 而小寺院則無此細分 [百丈淸規四大衆章 禪苑淸規二 三 四 八 百丈淸規證義記六 象器箋職位類]

黃檗運; 希運(?-850) 唐代僧 福州閩縣人 姓氏不詳 幼出家於洪州黃檗山 聰慧利達 學通內外 人稱黃檗希運 相貌殊異 額肉隆起如珠 號爲肉珠 後遊京師 遇一姥指示 遂還洪州謁百丈懷海 得百丈所傳心印 後於黃檗山鼓吹直指單傳之心要 四方學子雲集而來 時河東節度使裴休鎭宛陵 建寺 迎請說法 以師酷愛舊山 故凡所住山 皆以黃檗稱之 大中四年示寂(入寂年度諸書不同 宗統編年十三作大中二年 佛祖統紀四十二作大中九年 佛祖歷代通載十六作大中三年等) 年壽不詳 諡號斷際禪師 門下有臨濟義玄 睦州道縱等十數人 裴休輯師之語錄二卷 黃檗斷際禪師宛陵錄 與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 廣行於世 [傳燈錄九 傳法正宗記七 佛祖歷代通載二十三 釋氏稽古略三十]

念誦; 意念口誦佛名及經咒也

白椎; 同白槌 椎 捶擊的器具 後作槌 百丈淸規八 椎 齋粥二時 僧堂內開鉢 念佛唱食遍食 施財白衆皆鳴之 維那主之 下堂時聖僧侍者鳴之 知事告退時 請知事時亦鳴之 住持入院開堂將說法時 諸山上首鳴之 謂之白椎也

狸奴; 猫的別名 畜養之可令食鼠 故稱狸奴 狸 山猫 玉篇 狸 似猫 廣韻 狸 野猫

白牯; 白牛也 玉篇 牯 牝牛 正字通 牯 俗稱牡牛曰牯

摩訶般若波羅蜜; <> mahā-prajñā-pāramitā 梵語也 此云大智慧到達彼岸 摩訶 大 般若 智慧 波羅蜜 到達彼岸 翻譯名義集五 大論云 摩訶此含三義 謂大多勝

典座; 禪林主大衆床座 及齋粥等雜事之役也

緣化; 與勸化同 勸化有緣者 使行布施也

潙山; 靈祐(771-853) 唐代僧 爲潙仰宗始祖 福州長溪(今福建省霞浦縣南)人 俗姓趙 法名靈祐 十五歲隨建善寺法常(又稱法恆)律師出家 於杭州龍興寺受具足戒 曾先後遇寒山拾得 二十三歲至江西參謁百丈懷海 爲上首弟子 於此頓悟諸佛本懷 遂承百丈之法 憲宗元和末年 棲止潭州大潙山 山民感德 群集共營梵宇 由李景讓之奏請 敕號同慶寺 其後(一說大中初年)相國裴休亦來諮問玄旨 聲譽更隆 禪侶輻輳 海衆雲集 會昌(841-846)法難之際 師隱於市井之間 至大中元年(847)復敎之命下 衆迎返故寺 巾服說法 不復剃染 裴休聞之 親臨勸請 始歸緇流 師住山凡四十年 大揚宗風 世稱潙山靈祐 大中七年正月示寂 壽八十三 臘六十四 諡號大圓禪師 有語錄警策各一卷傳世 嗣法弟子有仰山慧寂 承其後而集大成 世稱潙仰宗 [福建高僧傳一 宋高僧傳十一 傳燈錄九 聯燈會要七]

西來意; 指禪宗初祖菩提達摩從西方來東土 傳授的禪法意旨 是祖師西來意的省稱

上座; 參禪僧中的首座稱爲上座 多用作對禪僧的尊稱 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下三之二 毘尼母云 從無夏至九夏是下座 十夏至十九夏名中座 二十夏至四十九夏名上座 五十夏已去 一切沙門國王所尊敬 是耆舊長老

巖頭; 全豁(828-887) 又作全奯 唐代僧 泉州(今屬福建)人 俗姓柯 出家於靈泉寺 受具足戒於長安西明寺 與雪峰義存 欽山文邃同修互勉 竝參訪仰山慧寂 又參學於德山宣鑑 承其法嗣 出居鄂州(今湖北武昌)巖頭院 大振宗風 故又稱巖頭全豁 唐光啓三年四月 賊亂 臨刃仍泰然自若 大喝一聲而終 壽六十 諡號淸儼大師 [宋高僧傳二十三 祖堂集七 景德傳燈錄十六]

噎殺; 殺 所八切 所拜切 表示程度深

性命; 有情之性與命也

 

감지(甘贄)(南泉 普願禪師法嗣)

지주(池州; 지금의 安徽 貴池) 감지행자(甘贄行者)가 어느 날 남천(南泉)에 들어가 설재(設齋)하는데 황벽운(黃檗運; 希運)이 수좌(首座)가 되었다. 감지가 시재(施財)를 청하자 운왈(運曰) 재법(財法; 財施法施) 이시(二施)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습니다. 지왈(贄曰) 이렇게(恁麽) 말씀하신다면 어찌() 모갑(某甲; )의 친(; 䞋錢)을 소득(消得)하겠습니까. 바로 가지고 나갔다가 수유(須臾)에 다시 들어와 가로되 시재(施財)를 청합니다. 운왈(運曰) 재법(財法) 이시(二施)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습니다. 감지가 이에 행친(行䞋)했다. 또 어느 날 입사(入寺)하여 죽을 베푸는데(設粥) 인하여() 남천(南泉)에게 염송(念誦)을 청했다. 남천이 이에 백추(白椎)하고 가로되 대중에게 청하노니 이노백고(狸奴白牯)를 위해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을 외웁시다(). 감지가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 남천이 죽후(粥後)에 전좌(典座)에게 묻되 감지가 어느 곳(甚處)에 있느냐. 좌왈(座曰) 당시에 바로 갔습니다. 남천이 이에 과자(鍋子; . 後綴)를 타파(打破)했다. 감지가 늘 왕래(往來; 왕래인)를 접대(接待)했다. 어떤 중이 물어 가로되 행자가 접대하느라 쉽지 않겠습니다. 지왈(贄曰) 비유컨대 나귀에게 먹이고(; 먹일 위) 말에게 먹임과 같습니다. 중이 쉬러 갔다. 주암승(住菴僧)이 있어 집물(什物)을 연화(緣化)했다. 지왈(贄曰) 일문(一問)이 있는데 만약 말함을 얻는다면 곧 보시(布施; )하겠습니다. 이에 심자(心字)를 쓰고는 묻되 이 무슨 자()입니까. 가로되 심자입니다. 또 처()에게 묻되 무슨 자입니까. 처왈(妻曰) 심자(心字)입니다. 지왈(贄曰) 모갑(某甲)의 산처(山妻; 謙辭)도 또한 합당히 주암(住菴)할 만합니다. 중이 말이 없었다. 감지도 또한 보시함이 없었다. 또 일승(一僧)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옵니까. 가로되 위산(潙山)에서 왔습니다. 지왈(贄曰) 일찍이 어떤 승인(僧人; )이 위산(潙山; 靈祐)에게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위산이 불자(拂子)를 거기(擧起)했거니와 상좌(上座)는 위산의 뜻을 어떻게(作麽生) 이회(理會; )합니까. 가로되 사()를 빌려 심()을 밝히고 물()에 붙어 리()를 나타내었습니다. 지왈(贄曰) 다만() 위산으로 돌아가심이 좋겠습니다. 암두(巖頭)가 지가(贄家)에 있으면서 과하(過夏)했다. 어느 날 파침(把鍼; 바느질)하던 차에 감지가 앞에 섰다. 암두가 이에 침으로써 찌르는() 자세를 지었다. 감지가 드디어 돌아가 옷을 입고 나가서 예사(禮謝; 예배하며 감사)하려고 하자 처()가 이에 묻되 옹()이 무엇을 하시렵니까(作甚麽). 지왈(贄曰). 설함을 얻지 못합니다. 처운(妻云) 무슨 일이 있는지 또한 대가(大家; 모두)가 알고자 합니다. 감지가 전화(前話)를 들었다. 처운(妻云) 이로 좇아 삼십 년 후에 수지(須知)할지니 한 차례(一度) 끽수(喫水)하매 한 차례 사람을 너무 목 메이게(噎殺; 은 목 멜 열) 할 것입니다. 여자(女子; 감지의 딸)가 듣고 이에 이르되 온 대지 사람의 성명(性命)이 활상좌(奯上座)의 침두상(針頭上)에 찔림을 입어 가지고 감을 도리어 아느냐 또는 아니냐.

普願; (748-834) 당대승. 정주 신정(하남 개봉 신정) 사람이며 속성은 왕(). 10세에 대외산의 대혜(大慧)에게 수업(受業)하고 대력 7(772) 숭산 회선사 호()율사(暠律師)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오래지 않아 여러 강사(講肆)에 노닐면서 릉가와 화엄 등의 경을 청강(聽講)했으며 또 중론(中論)ㆍ백론(百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의 현의(玄義)를 통달했음. 후에 강서의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알(參謁)하고 성오(省悟)하는 바가 있었음. 정원 12(795) 지양(池陽)의 남천산(南泉山)에 선우(禪宇)를 건립하고 30여 년 동안 산을 벗어나지 않았음. 태화(827-835) 초년(初年) 대중의 청에 응해 출산(出山)하자 이로 말미암아 학도(學徒)가 운집하고 법도를 크게 날렸음. 태화 81225일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7. 세칭이 남천보원(南泉普願). 어록 1권이 있으며 법사(法嗣)에 종심(從諗)ㆍ담조(曇照)ㆍ사조(師祖) 17인이 있음 [송고승전11. 전등록8. 연등회요4. 불조역대통재22. 선종정맥3].

行者; 곧 관행(觀行)하는 자를 가리킴. 혹은 널리 일반(一般)의 불도(佛道)의 수행자를 가리킴. 또 호칭이 행인(行人)ㆍ수행인임. 선림 중에서의 행자는 곧 출가하지 않고 사내(寺內)에 거주하면서 바쁜 잡무(雜務)를 도우는 자를 가리킴. 행자의 거소(居所)를 일컬어 행당(行堂)이라 하고 행당의 주수(主首)를 일컬어 행당주(行堂主), 혹 단칭(單稱)이 당주(堂主). 행자는 머리를 깎은 자도 있고 또한 머리를 깎지 않고 가권(家眷; 가족)을 휴대한 자도 있음. 종류가 번다(繁多)하나니 예여(例如) 참두행자(參頭行者)ㆍ부참행자(副參行者)ㆍ집국행자(執局行者; 方丈行者六局行者 등의 總稱)ㆍ고사행자(庫司行者; 都寺隨從)ㆍ당사행자(堂司行者; 維那隨從)ㆍ고자(庫子副寺寮의 행자)ㆍ객두행자(客頭行者)ㆍ다두행자(茶頭行者)ㆍ할식행자(喝食行者; 飮食 飯食湯 등의 명칭을 唱報하는 자니 은 곧 의 뜻)ㆍ공두행자(供頭行者; 供過行者로 지음. 飯食을 분배하는 자)ㆍ직전행자(直殿行者)ㆍ중료행자(衆寮行者)ㆍ문두행자(門頭行者) 등임. 연소(年少)한 행자는 일컬어 동행(童行)ㆍ도자(道者)ㆍ동시(童侍)ㆍ시동(僧童)이라 하고 혹 명칭이 구오사미(驅烏沙彌)ㆍ사할(沙喝; 飯食 시의 嚮導喝食充任하는 沙彌의 뜻에 상당함)ㆍ청규(聽叫). 행자와 종류가 같은 것은 이른 바 정인(淨人; 苦行으로 지음)이 있으며 머리를 깎지 않고 오로지 승중을 위해 복무하는 자를 가리킴. 대개 선림 직위의 번다함은 마치 조정의 문무양반(文武兩班)과 같아서 사원의 법명(法命)을 한가지로 유계(維繫; 유지하며 聯系). 그러나 이런 직위 제도는 송대(宋代) 이강(以降; 이후)으로부터 제종(諸宗)에서 융합하여 일반의 조금 큰 사원에선 모두 이 제도를 따랐지만 작은 사원은 곧 이런 세분(細分)이 없었음 [백장청규4대중장. 선원청규2, 3, 4, 8. 백장청규증의기6. 상기전직위류].

黃檗運; 희운(希運; ?-850)이니 당대승. 복주(福州) 민현(閩縣) 사람이며 성씨는 불상. 어릴 적에 홍주(洪州)의 황벽산(黃檗山)에서 출가했음. 총명한 지혜가 날카롭고 통달해 학문이 내외(內外. 內典外典)를 통했음. 사람들이 황벽희운(黃檗希運)이라 일컬음. 상모(相貌)가 특수히 다르고 이마의 근육이 융기(隆起)하여 구슬과 같았으며 호()하여 육주(肉珠)라 했음. 후에 경사(京師)에 노닐다가 한 할미의 지시를 만나 드디어 홍주(洪州)로 돌아가 백장회해(百丈懷海)를 알현(謁見)했고 백장이 전한 바의 심인(心印)을 얻었음. 뒤에 황벽산(黃檗山)에서 직지단전(直指單傳)의 심요(心要)를 고취(鼓吹)하자 사방의 학자가 운집하여 왔음. 때에 하동(河東)의 절도사(節度使) 배휴(裴休)가 완릉(宛陵)을 진수(鎭守)하면서 사원을 세워 영접해 설법을 청했음. 스님이 옛 산을 혹애(酷愛)한지라 고로 무릇 머무는 바의 산을 모두 황벽(黃檗)으로 일컬었으며 대중(大中) 4년에 시적했음(入寂年度가 여러 서책에 같지 못함. 종통편년13엔 대중 2년으로 지어졌고 불조통기42엔 대중 9년으로 지어졌고 불조역대통재16엔 대중 3년으로 지어지는 등). 나이는 상세치 못하고 시호는 단제선사(斷際禪師). 문하(門下)에 임제의현(臨濟義玄)ㆍ목주도종(睦州道縱) 등 열 몇 사람이 있음. 배휴가 스님의 어록 2권을 모았으니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과 황벽산단제선사전심법요(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며 널리 세상에 행해짐 [전등록9. 전법정종기7. 불조역대통재23. 석씨계고략30].

念誦; 불명 및 경주(經咒)를 뜻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외움임.

白椎; 백추(白槌)와 같음. ()는 추격(捶擊; 치다)하는 기구니 후에 추()로 지었음. 백장청규8. () 재죽(齋粥) 2()와 승당 내에서의 개발(開鉢)과 염불ㆍ창식(唱食)ㆍ편식(遍食)과 시재(施財)ㆍ백중(白衆)에 다 이를 울린다. 유나가 그것을 주관한다. 하당(下堂)할 때 성승시자(聖僧侍者)가 그것을 울린다. 지사(知事)가 고퇴(告退)할 때 지사를 청할 때 그것을 울린다. 주지가 입원하여 개당하고 장차 설법하려 할 때 제산(諸山)의 상수(上首)가 그것을 울린다. 이를 일러 백추(白椎)라 한다.

狸奴; 고양이의 별명. 그것을 축양(畜養; 기르다)하여 가히 쥐를 잡아먹게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이노(狸奴). ()는 산묘(山猫; 살쾡이). 옥편 리() 고양이와 흡사하다. 광운 리() 야묘(野猫; 살쾡이).

白牯; 흰 소임. 옥편 고() 빈우(牝牛; 암소). 정자통 고() 속칭 모우(牡牛; 수소)를 가로되 고().

摩訶般若波羅蜜; <> mahā-prajñā-pāramitā. 범어니 여기에선 이르되 대지혜도달피안(大智慧到達彼岸; 대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다). 마하는 대, 반야는 지혜, 바라밀은 도달피안(피안에 도달하다). 번역명의집5. 대론에 이르되 마하는 여기에선 세 뜻을 함유한다. 이르자면 대()ㆍ다()ㆍ승()이다.

典座; 선림에서 대중의 상좌(床座) 및 재죽 등 잡사를 주관하는 역().

緣化; 권화(勸化)와 같음. 인연이 있는 자에게 권화하여 보시를 행하게 함.

潙山; 영우(靈祐; 771-853)니 당대승. 위앙종(潙仰宗)의 시조(始祖)가 됨. 복주 장계(長溪. 지금의 복건성 하포현의 남쪽)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조()며 법명은 영우(靈祐). 15세에 건선사 법상(法常; 또 칭호가 法恆)율사를 따라 출가했으며 항주 용흥사(龍興寺)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일찍이 선후(先後)로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을 만났으며 23세에 강서에 이르러 백장회해(百丈懷海)를 참알(參謁)해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되었음. 여기에서 제불의 본회(本懷)를 돈오(頓悟)했으며 드디어 백장의 법을 승계했음. 헌종 원화 말년에 담주(潭州)의 대위산(大潙山)에 서지(棲止)했는데 산민(山民)이 감덕(感德)하여 무리가 모여 범우(梵宇; . 사원)를 함께 지었음. 이경양(李景讓)의 주청(奏請)으로 말미암아 동경사(同慶寺)라 칙호(敕號)했음. 그 후(一說大中初年) 상국(相國) 배휴(裴休)가 또한 와서 현지(玄旨)를 자문(諮問)하자 성예(聲譽)가 더욱 융성했으며 선려(禪侶)가 복주(輻輳)하여 해중(海衆)이 운집했음. 회창(會昌; 841-846)의 법난(法難)의 즈음에 스님이 시정(市井)의 사이에 은거하다가 대중 원년(847)에 복교(復敎)의 명이 떨어짐에 이르러 대중이 영접하여 옛 절로 돌아갔으나 건복(巾服; 옷갓)으로 설법하고 다시 체염(剃染)하지 않았음. 배휴가 이를 듣고 친림(親臨)하여 권청(勸請)하자 비로소 치류(緇流; 僧徒)로 돌아왔음. 스님이 산에 머문 무릇 40년에 종풍을 크게 날려 세칭이 위산영우(潙山靈祐). 대중 7년 정월에 시적(示寂)했음. 나이는 83이며 납(. 僧臘)64. 시호는 대원선사(大圓禪師)며 어록과 경책(警策) 1권이 있어 세상에 전해짐. 법을 이은 제자에 앙산혜적(仰山慧寂)이 있어 그 뒤를 이어 집대성(集大成)했으니 세칭이 위앙종(潙仰宗)[복건고승전1. 송고승전11. 전등록9. 연등회요7].

西來意; 선종 초조 보리달마가 서방으로부터 동토에 와서 전수한 선법의 의지(意旨)를 가리킴. 이는 조사서래의의 생칭(省稱).

上座; 참선승(參禪僧) 중에 수좌(首座)를 상좌(上座)라고 호칭함. 다분히 선승(禪僧)에 대한 존칭으로 쓰임.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하32. 비니모(毘尼母)에 이르되 무하(無夏)로부터 내지 9()는 이 하좌(下座)10() 내지 19()는 이름이 중좌(中座)20하 내지 49하는 이름이 상좌(上座)50하 이거(已去; 이후)는 일체의 사문과 국왕이 존경하는 바이니 이는 기구장로(耆舊長老).

巖頭; 전활(全豁; 828-887)이니 또 전활(全奯)로 지음. 당대승이며 천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이며 속성은 가(). 영천사에서 출가하였고 장안의 서명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설봉의존(雪峰義存)ㆍ흠산문수(欽山文邃)와 함께 수행하고 서로 권면(勸勉)했음. 함께 앙산혜적(仰山慧寂)을 참방했고 또 덕산선감(德山宣鑑)에게 참학(參學)해 그 법사(法嗣)를 이었음. 출세하여 악주(鄂州; 지금의 湖北 武昌)의 암두원(巖頭院)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크게 떨친지라 고로 또 칭호가 암두전활(巖頭全豁). 당 광계 34월에 도적이 난입하자 칼날에 임해 그대로 태연자약(泰然自若)했으며 대갈일성(大喝一聲)하고 마쳤으니 나이는 60이며 시호는 청엄대사(淸儼大師) [송고승전23. 조당집7. 경덕전등록16].

噎殺; ()은 소팔절(所八切; )ㆍ소배절(所拜切; )이니 정도의 깊음을 표시함.

性命; 유정(有情)의 성()과 명().

 

贊云 甘贄行者機鋒不減老龐 而其妻若女 亦彷彿龐婆靈照 雖然心空要問 行者甚麽年中行道 直饒威音王以前 猶是王老師兒孫

威音王以前; 又作威音王佛出世已前 乃禪林常用以指點學人自己本來面目之語句 意同父母未生以前 天地未分以前 空劫以前等語 蓋威音王佛 乃過去莊嚴劫最初之佛名 故以之表示無量無邊的久遠之前

王老師; 池州南泉之普願禪師 姓王氏 承馬祖之法 弘道於南泉 常自稱王老師

 

찬운(贊云) 감지행자의 기봉(機鋒)은 노방(老龐; 龐居士)에 감()하지 않으며 그 처나 딸도 또한 방파(龐婆)ㆍ영조(靈照)와 방불(彷彿)하다. 비록 그러하나 심공(心空; 朱時恩)이 묻고자 한다. 행자는 어느 해 가운데 행도(行道)했는가. 직요(直饒; 設令) 위음왕이전(威音王以前)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이는 왕노사(王老師)의 아손(兒孫)이다.

威音王以前; 또 위음왕불출세이전(威音王佛出世已前)으로 지음. 곧 선림에서 상용하여 학인 자기의 본래면목을 지점(指點; 지시)하는 어구임. 뜻이 부모미생이전ㆍ천지미분이전ㆍ공겁이전 등의 말과 같음. 대개 위음왕불은 곧 과거장엄겁 최초의 부처 이름이니 고로 이로써 무량무변의 아주 오랜 앞을 표시함.

王老師; 지주(池州) 남천의 보원선사는 성이 왕씨며 마조의 법을 승계했고 남천에서 홍도(弘道)했는데 늘 자칭이 왕노사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