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육긍(陸亘)

태화당 2026. 5. 22. 07:08

陸亘(南泉法嗣)

陸亘 字景山 吳郡人 官御史大夫 久參南泉 一日問曰 弟子從六合來 彼中還更有身否 泉曰 分明記取 擧似作家 亘又謂泉曰 和尙大不可思議 到處世界皆成就 泉曰 適來總是大夫分上事 又一日 問泉曰 弟子家內缾中養一鵞 鵞漸長大 出缾不得 如今不得毀缾 不得損鵞 和尙作何方出得 泉召曰 大夫 亘應諾 泉曰 出也 亘從此開解 一日謂泉曰 弟子亦薄會佛法 泉便問 大夫十二時中作麽生 亘曰 寸絲不掛 泉曰 猶是階下漢 不見道 有道君王不納有智之臣 一日泉上堂 亘曰 請和尙爲衆說法 曰 敎老僧作麽生說 亘曰 和尙豈無方便 泉曰 道他欠少什麽 亘曰 爲什麽有六道四生 泉曰 老僧不敎他 一日問泉 弟子家中有一片石 有時坐 有時臥 欲鐫作佛 得否 泉曰 得 亘曰 莫不得否 泉曰 不得 亘與泉見人雙陸 拈起骰子 曰 恁麽 不恁麽 只恁麽信彩去時如何 泉拈起骰子曰 臭骨頭十八 一日謂泉曰 肇法師也甚奇怪 道萬物與我同根 天地與我一體 泉指庭前牡丹花曰 大夫 時人見此一株花 如夢相似 亘罔測 亘又問 天王居何地位 泉曰 若是天王 卽非地位 亘曰 弟子聞說天王是居初地 泉曰 應以天王身得度者 卽現天王身而爲說法 亘辭 歸宣城治所 泉問 大夫去彼 以何治民 亘曰 以智慧治民 泉曰 恁麽卽彼處生靈盡遭塗炭去也 泉入宣州 亘出迎接 指城門曰 人人盡喚作甕門 未審和尙喚作什麽門 泉曰 老僧若道 恐辱大夫風化 亘曰 忽然賊來時 作麽生 泉曰 王老師罪過 亘又問 大悲菩薩用許多手眼 作什麽 泉曰 只如國家 又用大夫作什麽 泉遷化 亘聞喪 入寺下祭 却呵呵大笑 院主曰 先師與大夫有師資之義 何不哭 亘曰 道得卽哭 院主無語 亘大哭曰 蒼天 蒼天 先師去世久矣

御史大夫; 官名 秦置 漢因之 御史臺長官 地位僅次於丞相 掌管彈劾糾察及圖籍祕書 與丞相(大司徒) 太尉(大司馬)合稱三公 後改稱大司空 司空 晉以後多不置 唐復置 實權已輕 至宋 又多缺而不補 明廢 [百度百科] 大夫; 官名 各個朝代所指的內容不盡相同 有時可指中央機關的要職 禮記王制篇 天子 三公 九卿 二十七大夫 八十一元士 大國 三卿皆命于天子 下大夫五人 上士二十七人(云云) 又指官僚謂大夫

六合; 天地與四方 天下 宇宙 祖庭事苑五 六合 莊子(齊物論) 六合之外 聖人存而不論 六合之內 聖人論而不議

作家; 同作者 機用傑出的禪家高手

世界; 梵語曰路迦 世爲遷流之義 謂過現未時之遷行也 界謂具東西南北之界畔 卽有情依止之國土也 又曰世間 間爲間隔之義 故與界之義同 此二者雖通用於有情與國土 而常言者爲國土也 [楞嚴經四 名義集三]

分上; 分數 形便 資格 境地

上堂; 一上法堂 爲演法而上法堂也 此有旦望上堂 五參上堂 九參上堂 謝秉拂上堂 謝都寺上堂 出隊上堂 出鄕上堂等 二上僧堂 爲喫粥飯而上僧堂也 三上間

雙陸; 又作雙六 古代的一種賭博遊戱 祖庭事苑七 雙陸 博戲也 如樗蒲 雉盧是也

骰子; 賭具 也用以占卜 行酒令或作遊戲 多以獸骨製成 爲小正方塊 六面分刻一 二 三 四 五 六點 一 四 塗以紅色 餘塗黑色 擲之視所見點數或顔色爲勝負

信彩; 骰子彫一二三等數 此言彩 信彩 本指在雙陸博戲中信手擲骰子 引申指隨意 不拘 信 隨意 任凭 如信手拈來 彩 又文彩 文章 又彩 賞品或賞金 賭博或某種競爭活動中 給得勝者的錢物 唐代李白送外甥鄭灌從軍三首之一 六博爭雄好彩來 金盤一擲萬人開

肇法師; 僧肇(384-414) 略稱肇法師 東晉僧 長安人 俗姓張 家貧 以傭書爲業 遂得博覽經史 初好老莊 及讀維摩經而感悟 遂出家 善方等大乘經典 兼通三藏 冠年名聲已震關中 才思幽玄 精於談論 聞鳩摩羅什羈留涼土 前往從之 羅什歎爲奇才 及至姚秦破涼 乃隨侍羅什入長安 稟姚興之命 與僧叡等於逍遙園詳定經論 解悟彌深 被稱爲解空第一 弘始六年(404) 羅什譯出大品般若經 師乃撰般若無知論呈之 後又撰述不眞空論 物不遷論 涅槃無名論 注維摩詰經十卷等 義熙十年示寂 年僅三十一 後人收集僧肇所著之宗本義 物不遷 不眞空 般若無知 涅槃無名諸論 題名爲肇論行世 [佛祖歷代通載八 梁高僧傳六 出三藏記集八 同九 肇論疏上 魏書釋老志二十]

初地; 菩薩乘五十二位中 十地之第一歡喜地 故初地菩薩稱爲歡喜地菩薩

塗炭; 尙書 仲虺之誥第二 民墜塗炭 注 夏桀昏亂 不恤下民 民之危險 若陷泥墜火無救

大悲菩薩; 觀音菩薩也 大悲之名 雖通於諸佛諸菩薩 而此菩薩爲慈悲門之主 故特以名之

遷化; 略作化 指僧侶之示寂 有遷移化滅之義 或謂有德之人 於此土敎化衆生之緣已盡 而遷移於他方世界 化度衆生 與涅槃圓寂滅度順世歸眞等同義 在家人亦用遷化之語 漢書九十七上外戚傳 漢武帝於李夫人卒後 爲其作賦 忽遷化而不返兮 魄放逸以飛揚

下祭; 下者 猶言安置也 同下嚫之下義

院主; 又名寺主 禪家監事之舊名也 今之監事 古稱院主或寺主 院主之名 以住持之稱 號旣濫故 改爲監事云

 

육긍(陸亘)(南泉法嗣; 저본에 로 지었음)

육긍(陸亘; 764-834)은 자가 경산(景山)이며 오군(吳郡) 사람이며 벼슬이 어사대부(御史大夫)였다. 남천(南泉; 普願)을 구참(久參)했는데 어느 날 물어 가로되 제자(弟子)가 육합(六合)으로 좇아왔거니와 그() 가운데 도리어 다시 신()이 있습니까. 천왈(泉曰) 분명히 기취(記取)하여 작가(作家)에게 거사(擧似; 들어 보이다)하라. 육긍이 또 남천에게 일러 가로되 화상은 크게 불가사의하나니 도처(到處)에서 세계(世界)를 모두 성취합니다. 천왈(泉曰) 적래(適來)에 모두() 이 대부(大夫)의 분상사(分上). 또 어느 날 남천에게 물어 가로되 제자가 가내(家內)의 병중(缾中)에 한 마리 거위()를 길렀는데 거위가 점차 장대(長大)하여 병에서 나옴을 얻지 못합니다. 여금에 훼병(毀缾)을 얻지 않고 손아(損鵞)를 얻지 않고 화상이 어떤 방법을 지어 나오게 함을 얻겠습니까. 남천이 불러 가로되 대부(大夫), 육긍이 응낙(應諾)했다. 천왈(泉曰) 나왔다. 육긍이 이로 좇아 개해(開解)했다. 어느 날 남천에게 일러 가로되 제자도 또한 불법을 희박(稀薄; )하게 압니다(). 남천이 바로 묻되 대부는 십이시(十二時) 중에 어떠한가. 긍왈(亘曰) 촌사(寸絲)도 걸치지() 않습니다. 천왈(泉曰) 오히려 이는 계하한(階下漢)이다. 말함을 보지 못했는가, 유도군왕(有道君王)은 유지지신(有智之臣)을 용납(容納;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남천이 상당(上堂)했다. 긍왈(亘曰) 청컨대 화상이 대중을 위해 설법하십시오. 가로되 노승으로 하여금() 어떻게 설하게 하겠는가. 긍왈(亘曰) 화상이 어찌 방편(方便)이 없겠습니까. 천왈(泉曰) 말하노니 그()가 흠소(欠少)한 게 무엇인가(什麽). 긍왈(亘曰) 무엇 때문에 육도사생(六道四生)이 있습니까. 천왈(泉曰) 노승이 그를 가르친 게 아니다(不敎他). 어느 날 남천에게 묻되 제자의 가중(家中)에 하나의 편석(片石)이 있는데 어떤 때는 앉고 어떤 때는 눕습니다. 깎아서() 부처를 만들려고 하는데 얻겠습니까. 천왈(泉曰) 얻는다. 긍왈(亘曰) 얻지 못함이 아니겠습니까. 천왈 얻지 못한다. 육긍이 남천과 더불어 쌍륙(雙陸)하는 사람을 보았다. 투자(骰子; 주사위)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이러한가(恁麽) 이러하지 않는가. 다만 이렇게(恁麽) 신채(信彩)하여 갈 때 어떻습니까. 남천이 투자(骰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취골두(臭骨頭; 骰子)가 십팔(十八)이다. 어느 날 남천에게 일러 가로되 조법사(肇法師)가 심히 기괴하나니 말하되 만물이 나와 더불어 동근(同根)이며 천지가 나와 더불어 일체(一體). 남천이 뜰 앞의 모란화(牡丹花)를 가리키며 가로되 대부여, 시인(時人)이 이 한 그루의 꽃을 봄이 마치 꿈과 상사(相似)하다. 육긍이 헤아리지 못했다(罔測). 육긍이 또 묻되 천왕(天王)은 어떤 지위(地位)에 거처합니까. 천왈(泉曰) 만약 이 천왕일진대 곧 지위가 아니다. 긍왈(亘曰) 제자가 설함을 듣건대 천왕은 이, 초지(初地)에 거처한다 합디다. 천왈 응당 천왕신(天王身)을 써야() 득도(得度)할 자에겐 곧 천왕신을 나타내어 설법한다. 육긍이 고별하고() 선성(宣城) 치소(治所)로 돌아가자() 천문(泉問) 대부가 거기로 가면 무엇으로써 치민(治民)하겠는가. 긍왈(亘曰) 지혜로써 치민하겠습니다. 천왈(泉曰) 이러하다면(恁麽) 곧 그곳의 생령(生靈; 生民)이 모두() 도탄(塗炭)을 만날 것이다. 남천이 선주(宣州; 지금의 安徽省 宣城縣에 속함)에 들어가자 육긍이 나가서 영접(迎接)했다. 성문(城門)을 가리키며 가로되 사람마다 모두 옹문(甕門)이라고 불러 짓거니와 미심(未審)하오니 화상은 무슨 문이라고 불러 짓겠습니까. 천왈(泉曰) 노승이 만약 말한다면 대부(大夫)의 풍화(風化; 風俗)를 욕되게 할까 염려스럽다. 긍왈(亘曰) 홀연히 도적이 올 때 어떻습니까. 천왈(泉曰) 왕노사(王老師)의 죄과(罪過). 육긍이 또 묻되 대비보살(大悲菩薩)이 허다한 수안(手眼)을 써서() 무엇합니까. 천왈 지여(只如) 국가에서 또 대부를 써서 무엇하는가. 남천이 천화(遷化)하자 육긍이 문상(聞喪)하고 입사(入寺)하여 하제(下祭)하는데 도리어 하하대소(呵呵大笑)했다. 원주(院主)가 가로되 선사(先師)와 대부는 사자지의(師資之義)가 있거늘 왜 곡()하지 않습니까. 긍왈(亘曰) 말함을 얻으면 곧 곡하겠습니다. 원주가 말이 없었다. 육긍이 대곡(大哭)하며 가로되 창천(蒼天) 창천, 선사(先師)가 거세(去世)한 지 오래되셨다.

御史大夫; 벼슬 이름. ()에서 설치했고 한()에서 이를 따랐으니() 어사대 장관은 지위가 겨우 승상의 다음이었으며 탄핵과 규찰(糾察) 및 도적(圖籍)과 비서(祕書)를 장관했음. 승상(丞相; 大司徒), 태위(太尉; 大司馬)와 합칭이 3(). 후에 대사공(大司空)ㆍ사공(司空)으로 개칭했음. () 이후엔 다분히 설치하지 않았고 당()에서 다시 설치했으나 실권은 이미 경미했음. ()에 이르러 또 다결(多缺)하고 불보(不補)했고 명()에서 폐했음 [백도백과]. 大夫; 벼슬 이름. 각개 조대(朝代)에 가리키는 바의 내용이 다 서로 같지는 아니함. 어떤 때엔 가히 중앙기관의 요직을 가리켰음. 예기 왕제편 천자는 3()9()27대부(大夫)81원사(元士). 대국(大國) 3경은 다 천자에게서 임명 받는다. 하대부가 5인이며 상사가 27인이다 (운운). 또 관료를 가리켜 대부로 일컬음.

六合; 천지와 사방이니 천하, 우주. 조정사원5. 육합(六合) 장자(齊物論) 육합의 밖은 성인이 두되 논하지 않으며 육합의 안은 성인이 논하되 의(; 시비를 가림)하지 않는다.

作家; 작자와 같음. 기용이 걸출한 선가의 고수.

世界; 범어(梵語)로 가로되 로가(路迦; loka). ()는 천류(遷流)의 뜻이니 이르자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시간이 천행(遷行)함이며 계()는 이르자면 동서남북의 계반(界畔)을 갖췄으니 곧 유정(有情)이 의지하는 국토임. 또 가로되 세간(世間)이니 간()은 간격의 뜻이 되므로 고로 계()의 뜻과 한가지임. 2자가 비록 유정과 국토에 통용되지만 늘 말하는 것은 국토가 됨 [릉엄경4. 명의집3].

分上; 분수ㆍ형편ㆍ자격ㆍ경지.

上堂; 1. 법당(法堂)에 오름이니 연법(演法)하기 위해 법당에 오름임. 이에 단망상당(旦望上堂)ㆍ오참상당(五參上堂)ㆍ구참상당(九參上堂)ㆍ사병불상당(謝秉拂上堂)ㆍ사도사상당(謝都寺上堂)ㆍ출대상당(出隊上堂)ㆍ출향상당(出鄕上堂) 등이 있음. 2. 승당(僧堂)에 오름이니 죽반(粥飯)을 먹기 위해 승당에 오름임. 3. 상간(上間).

雙陸; 또 쌍륙(雙六)으로 지음. 고대의 1종 도박 유희임. 조정사원7. 쌍륙(雙陸) 박희(博戲; 도박놀이)니 저포(樗蒲; 는 가죽나무 저. 저포는 윷놀이의 한 가지. 옛날의 도박)와 치로(雉盧) 같은 게 이것임.

骰子; 도박 용구. 또한 사용하여 점복(占卜)하거나 주령(酒令)을 행하거나 혹 유희를 지음. 많이들 짐승의 뼈로 제작해 이룸. 작고 정방(正方)의 덩어리가 되며 6면에 각기 일()ㆍ이()ㆍ삼()ㆍ사()ㆍ오()ㆍ육() 점을 새기고 일()ㆍ사()는 홍색을 칠하고 나머지는 흑색을 칠함. 이를 던져 보이는 바 점수 혹 안색(顔色)을 보아서 승부를 지음.

信彩; 투자(骰子; 주사위)에 일이삼(一二三) 등의 수를 새기는데 이것을 채()라고 말함. 신채(信彩)는 본래 쌍륙(雙陸)의 박희(博戲; 노름) 중에 손 닿는 대로 투자를 던짐을 가리킴. 인신(引申; 轉義)하여 수의(隨意)ㆍ불구(不拘)를 가리킴. ()은 수의(隨意)ㆍ임빙(任凭; 마음대로 하게 하다)이니 신수염래(信手拈來)와 같음. ()는 또 문채ㆍ문장임. 또 채()는 상품 혹 상금이니 도박 혹 모종의 경쟁 활동 중 승자에게 급여하는 전물(錢物). 당대 이백(李白), 종군하는 외생 정관을 보냄(送外甥鄭灌從軍)3수의 하나 육박(六博)에서 쟁웅(爭雄)하매 호채(好彩)가 오고 금반(金盤)에 한 번 던지니 만인이 열리다.

肇法師; 승조(僧肇; 384-414)니 약칭이 조법사(肇法師). 동진(東晉)의 승려며 장안 사람이며 속성(俗姓)이 장(). 집안이 가난해 용서(傭書; 남에게 고용되어 글씨를 쓰는 일)로써 업()을 삼았으며 드디어 경사(經史)를 박람(博覽)함을 얻었음. 처음엔 노장(老莊)을 좋아했는데 및 유마경을 읽고서 감오(感悟)하여 드디어 출가했음. 방등(方等)의 대승경전을 잘했으며 겸하여 3()을 통달했음. 관년(冠年)에 명성이 이미 관중(關中)을 진동(震動)했고 재사(才思)가 유현(幽玄)하고 담론에 정밀했음. 구마라집이 양토(涼土)에 기류(羈留)한다 함을 듣고 앞으로 가서 그를 좇았는데 라집이 기재(奇才)라고 탄복했으며 그리고 요진(姚秦)이 파량(破涼)함에 이르자 이에 라집을 수시(隨侍)하며 장안에 들어갔음. 요흥(姚興)의 명령을 받아 승예(僧叡) 등과 함께 소요원(逍遙園)에서 경론을 상정(詳定)하면서 해오(解悟)가 더욱 깊어졌으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일컬어짐을 입었음. 홍시 6(404) 라집이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역출(譯出)하자 스님이 이에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을 지어 그에게 드렸으며 후에 또 부진공론(不眞空論)ㆍ물불천론(物不遷論)ㆍ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ㆍ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 10권 등을 찬술(撰述)했음. 의희 10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겨우 31. 후인이 승조가 지은 바인 종본의(宗本義)ㆍ물불천(物不遷)ㆍ부진공(不眞空)ㆍ반야무지(般若無知)ㆍ열반무명(涅槃無名)의 여러 논을 수집(收集)하여 조론(肇論)으로 제명(題名)했으며 세상에 유행함 [불조역대통재8. 양고승전6. 출삼장기집8, 9. 조론소상. 위서석로지20].

初地; 보살승(菩薩乘) 52위 중 10지의 제1이 환희지며 고로 초지보살을 일컬어 환희지보살이라 함.

塗炭; 상서 중훼지고 제2. 백성이 도탄(塗炭)에 추락했다. () 하걸(夏桀)이 혼란하여 하민(下民; 백성)의 위험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음이 마치 진흙탕에 빠지고 불에 추락해도 구제하지 않음과 같다.

大悲菩薩; 관음보살임. 대비의 명칭은 비록 제불과 제보살에 통하지만 이 보살이 자비문의 주()가 되므로 고로 특별히 이것을 이름함.

遷化; 생략하여 화()로 지음. 승려의 시적(示寂)을 가리킴. 옮겨 이동하여 화멸(化滅)하는 뜻이 있음. 혹은 이르기를 덕이 있는 사람이 이 국토에서 중생을 교화할 인연이 이미 다하매 다른 방면의 세계로 옮겨 이동해 중생을 화도(化度)함이라 함. 열반(涅槃)ㆍ원적(圓寂)ㆍ멸도(滅度)ㆍ순세(順世)ㆍ귀진(歸眞) 등과 같은 뜻임. 재가인(在家人)도 또한 천화(遷化)의 말을 씀. 한서97상 외척전(外戚傳). 한무제(漢武帝)가 이부인(李夫人)이 죽은 후 그를 위해 부()를 지었다. 홀연히 천화(遷化)해 돌아오지 못하나니 혼백(魂魄)이 방일(放逸)하여 비양(飛揚)하는구나.

下祭; ()란 것은 안치라고 말함과 같음. 하친(下嚫)의 하()의 뜻과 같음.

院主; 또 명칭이 사주(寺主)니 선가의 감사(監事)의 옛 명칭임. 여금의 감사는 옛 명칭이 원주 혹 사주였음. 원주의 명칭은 주지(住持)의 호칭으로 썼으나 호가 이미 범람하는 고로 고쳐 감사라 했음.

 

贊曰 大哉 南泉座下皆英靈衲子 無論趙州長沙 叢林哮吼 卽陸亘大夫一俗漢耳 方且激揚酬對 鍼芥相投 洎泉遷化 勘驗院主 掣電之機 無慚師友 眞龍生龍子 鳳出鳳雛 此足以誌當年法道極盛云

衲子; 指禪僧 又作衲者 衲僧

趙州; 從諗(778-897) 唐代僧 曹州郝鄕(一說靑州臨淄)人 俗姓郝 法號從諗 幼年於曹州扈通院(一說靑州龍興院)出家 受具足戒前 卽往池陽參南泉普願 南泉深器之 復往嵩山琉璃壇受戒 尋返南泉 依止二十年 其後 歷參黃檗 寶壽 鹽官 夾山 五臺等諸大德 八十歲時 衆請住趙州城東觀音院 四十年間 大揚禪風 師夙居北地 振南宗禪 其玄言法語遍布天下 世稱趙州古佛 昭宗乾寧四年示寂 壽一百二十 敕諡眞際大師 著有眞際大師語錄三卷 [傳燈錄十 宋高僧傳十一 聯燈會要六 五燈會元四 佛祖歷代通載十七]

長沙; 景岑(?-868) 唐代僧 幼年出家 參南泉普願 嗣其法 初住長沙(湖南)鹿苑寺 其後居無定所 但隨緣接物 隨宜說法 復住湖南長沙 大宣敎化 時人稱爲長沙和尙 師機鋒峻峭 與仰山對話中 曾踏倒仰山 仰山謂如大蟲()之暴亂 故諸方稱其爲岑大蟲 諡號招賢大師 [祖堂集十七 聯燈會要六 佛祖歷代通載十七]

激揚; 激發(禪機) 闡揚(宗旨)

酬對; 酬 應對 答對

鍼芥相投; 又作針芥相投 仰針於地 自天上投芥子 欲適中其針鋒甚難 以譬佛出世之難遇也 南本涅槃經純陀品 芥子投針鋒 佛出難於是 涅槃經會疏二曰 仰針於地 梵宮投芥 墮在針鋒 此事甚難 値佛生信 復難於是 生信聞法復難於是

勘驗; 亦作 勘辨 禪人之間試驗對方悟道之深淺稱爲勘

 

찬왈(贊曰) 대재(大哉), 남천의 좌하(座下)엔 모두 영령(英靈; 英明靈秀)한 납자(衲子)였으니 조주(趙州; 從諗)ㆍ장사(長沙; 景岑)는 논할 게 없고 총림에서 효후(哮吼)한 것은 곧 육긍대부(陸亘大夫) 일속한(一俗漢)일 따름이다(). 방차(方且; 尙且) 격양(激揚)하며 수대(酬對; 응대)하매 침개상투(鍼芥相投)하였다. 남천이 천화(遷化)함에 이르러() 원주(院主)를 감험(勘驗)하매 체전지기(掣電之機)인지라 사우(師友; 스승의 朋友)에 부끄러울 게 없었으니 참으로 용()이 용자(龍子)를 낳고 봉()이 봉추(鳳雛)를 출생함이라 할 만하다. 이것은 족히 당년(當年)의 법도(法道)가 극성(極盛)함을 기록했음이다().

衲子; 선승을 가리킴. 또 납자(衲者)ㆍ납승으로 지음.

趙州; 종심(從諗; 778-897)이니 당대승. 조주(曹州) 학향(郝鄕; 일설엔 청주 임치)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학()이며 법호(法號)는 종심(從諗). 어린 나이에 조주(曹州) 호통원(扈通院; 일설엔 靑州 龍興院)에서 출가하였음. 구족계를 받기 전에 곧 지양(池陽)으로 가서 남천보원(南泉普願)을 참알(參謁)했으며 남천이 깊이 그를 법기(法器)로 여겼음. 다시 숭산(嵩山) 유리단(琉璃壇)으로 가서 수계하고는 이윽고 남천으로 돌아와 의지하기가 20년이었음. 그 후 황벽(黃檗)ㆍ보수(寶壽)ㆍ염관(鹽官)ㆍ협산(夾山)ㆍ오대(五臺) 등의 여러 대덕을 역참(歷參; 다니면서 참알)하였음. 80세 때 대중이 청하여 조주성(趙州城) 동쪽의 관음원(觀音院)에 거주했는데 40년 간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음. 스님이 일찍 북지(北地)에 거주하면서 남종선(南宗禪)을 진작(振作)하였으며 그 현언(玄言)과 법어가 천하에 두루 분포하였음. 세칭 조주고불(趙州古佛).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시적했으니 나이는 120. 칙시(敕諡)는 진제대사(眞際大師)며 저서에 진제대사어록(眞際大師語錄) 3권이 있음 [전등록10. 송고승전11. 연등회요6. 오등회원4. 불조역대통재17].

長沙; 경잠(景岑; ?-868)이니 당대승. 유년에 출가했고 남천보원(南泉普願)을 참알해 그의 법을 이었음. 처음엔 장사(호남) 녹원사에 주()했고 그 후엔 거처에 정한 곳이 없었으며 다만 인연 따라 사람을 접화(接化)하고 마땅함을 따라 설법했음. 다시 호남의 장사(長沙)에 머물면서 교화를 대선(大宣)했음. 당시의 사람들이 칭명(稱名)하여 장사화상이라 했음. 스님의 기봉이 준초(峻峭)하여 앙산과 대화하던 중에 일찍이 앙산을 답도(踏倒)하자 앙산이 이르되 마치 대충(大蟲. )의 폭란(暴亂)과 같다 한지라 고로 제방에서 그를 일컬어 잠대충이라 했음. 시호는 초현대사 [조당집17. 연등회요6. 불조역대통재17].

激揚; (禪機)를 격발(激發). (宗旨)를 천양(闡揚).

酬對; ()는 응대. 답대.

鍼芥相投; 또 침개상투(針芥相投)로 지음. 땅에 침(; 바늘)을 우러러보게 하고 천상으로부터 개자를 던져 그 침봉에 적중(適中)하고자 하면 매우 어렵나니 불출세(佛出世)의 만나기 어려움에 비유함. 남본열반경 순타품. 개자를 침봉(針鋒)에 던지나 불출(佛出)은 이보다 어렵다. 열반경회소2에 가로되 땅에 침을 우러러보게 하고 범궁(梵宮)에서 개자를 던져 침봉에 떨어진다면 이 일은 매우 어렵다. 불타를 만나고 믿음을 냄은 다시 이보다 어렵고 믿음을 내어 법을 들음은 다시 이보다 어렵다.

勘驗; 또한 감(), 감변(勘辨)으로 지음. 선인지간(禪人之間)에 상대방의 오도의 심천을 시험함을 일러 감()이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