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백거이(白居易)

태화당 2026. 5. 25. 08:30

白居易(佛光如滿禪師法嗣)

白居易 字樂天 官太子少傅 捨宅爲香山寺 號香山居士 久參佛光如滿 得心法 元和四年 惟寬至闕 易問曰 旣曰禪師 何以說法 寬曰 無上菩提者 被於身爲律 說於口爲法 行於心爲禪 應用者三 其致一也 譬如江湖淮漢 在處立名 名雖不一 水性無二 律卽是法 法不離禪 云何於中妄起分別 曰 旣無分別 何以修心 寬曰 心本無傷損 云何要修理 無論垢與淨 一切勿念起 曰 垢卽不可念 淨無念可乎 寬曰 如人眼睛上 一物不可住 金屑雖珍寶 在眼亦爲病 曰 無修無念 又何異凡夫耶 寬曰 凡夫無明 二乘執著 離此二病 是曰眞修 眞修者 不得勤 不得忘 勤則近執著 忘卽落無明 此爲心要云爾 元和十五年 牧杭州 因入山謁鳥窠道林問曰 禪師住處甚危險 林曰 太守危險尤甚 易曰 弟子位鎭江山 何險之有 林曰 薪火相交 識性不停 得非險乎 又問 如何是佛法大意 林曰 諸惡莫作 衆善奉行 易曰 三歲孩兒也解恁麽道 林曰 三歲孩兒雖道得 八十老人行不得 又以偈問曰 特入空門問苦空 敢將禪事叩禪翁 爲當夢是浮生事 爲復浮生是夢中 林答曰 來時無跡去無踪 去與來時事一同 何須更問浮生事 祇此浮生是夢中 易作禮而退 又易甞求心要于凝禪師得八言 曰觀 曰覺 曰定 曰慧 曰明 曰通 曰濟 曰捨 易因廣爲八漸偈 偈曰 (一觀)以心中眼 觀心外相 從何而有 從何而喪 觀之又觀 則辨眞妄 (二覺)惟眞常在 爲妄所蒙 眞妄苟辨 覺生其中 不離妄有 而得眞空 (三定)眞若不滅 妄卽不起 六根之源 湛如止水 是爲禪定 乃脫生死 (四慧)專之以定 定猶有繫 濟之以慧 慧則無滯 如珠在盤 盤定珠慧 (五明)定慧相合 合而後明 照彼萬物 物無遁形 如大圓鏡 有應無情 (六通)慧至乃明 明則不昧 明至乃通 通則無礙 無礙者何 變化自在 (七濟)通力不常 應念而變 變相非有 隨求而見 是大慈悲 以一濟萬 (八捨)衆苦旣濟 大悲亦捨 苦旣非眞 悲亦是假 是故衆生 實無度者

●如滿; 唐代僧 嗣馬祖道一 初居五臺山金閣寺 後住洛陽佛光寺 與唐順宗語禪宗法要 帝聞大悅 益重禪宗 [傳燈錄六]

●太子少傅; 官名 太子太師 太子太傅 太子太保 太子少師 太子少傅 太子少保 簡稱三師三少 原是天子或太子左右最親近的人 師是傳授其知識的 傅是監督其行動的 保是照管其身體的 卽分別是負責君主智育德育體育的人 隋唐以後 太子的師傅 均以別的官銜任命 三師三少 公爲加官贈官的官銜 沒有職事 宋代三師是宰相親王的加官官銜 三師是正一品 三少是從一品 明淸兩代 三師爲從一品 三少是正二品 [百度百科]

●惟寬; (755-817) 唐代僧 俗姓祝 衢州(今屬浙江)人 初習毘尼 修止觀 後參馬祖道一 乃得心要 行化于吳越間 元和四年(809) 唐憲宗詔住安國寺 問道于麟德殿 公卿名流 爭往參叩 白居易事以師禮 弟子千餘 得法者三十九人 卒諡大徹禪師 [宋高僧傳十 傳燈錄七]

●無明; 謂闇鈍之心 無照了諸法事理之明 卽癡之異名也

●二乘; 乘卽運載之義 乘人使各到其果地之敎法名爲乘 有一乘乃至五乘(人乘 天乘 聲聞乘 緣覺乘 菩薩乘)之別 其中二乘有三種 一大乘與小乘 二聲聞乘與緣覺乘 三一乘(一佛乘)與三乘(聲聞乘 緣覺乘 菩薩乘)

●道林; (741-824) 唐代僧 嗣徑山道欽 牛頭法融下六世 杭州富陽人 俗姓潘(一說翁) 幼名香光 按傳燈錄四道林傳 師九歲出家 二十一歲至荊州(湖北)果願寺受具足戒 後於長安西明寺隨從復禮法師 硏習華嚴經 大乘起信論 代宗詔道欽禪師入京 道林參之 契悟心要 及南歸 見秦望山有長松盤曲如蓋 遂棲止其上 故時人稱爲鳥窠禪師 其側有鵲構巢 故亦稱鵲巢和尙 白居易出任杭州刺史 與師相交 乃築造竹閣 令居之 屢就問道 此竹閣卽後來之廣化寺 長慶四年二月十日示寂 壽八十四 臘六十三 諡號圓修禪師 又宋高僧傳十一所載略異 [五燈會元二 佛祖歷代通載十六]

●空門; (一)佛敎之總名 以佛敎主以空法爲涅槃之門故也 智度論二十曰 涅槃城有三門 所謂空 無相 無作 (二)爲破常有之見 我空法空有爲空無爲空等空相之法門也 智度論十八曰 空門者 生空 法空 (三)四門之一 諸敎各有四門 可入於涅槃 此指(一)

●浮生; 謂人生在世 如天上浮雲 水上浮萍 難以常在 故曰浮生

●無情; 無情識者 謂山川草木等

●衆生; <梵> bahu-jana jantu jagat 或 sattva 梵語僕呼繕那 禪頭 社伽 薩埵 華言有情 含識(卽含有心識者) 含生 含情 含靈 群生 群萌 群類 ▲長阿含經二十二世本緣品 無有男女尊卑上下 亦無異名 衆共生世 故名衆生

 

백거이(白居易)(佛光 如滿禪師의 法嗣)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자가 낙천(樂天)이며 벼슬이 태자소부(太子少傅)였다. 사택(捨宅)하여 향산사(香山寺)라 했고 호(號)가 향산거사(香山居士)니 불광여만(佛光如滿)을 구참(久參)하여 심법(心法)을 얻었다. 원화(元和) 4년(809) 유관(惟寬)이 대궐에 이르자 이(易)가 문왈(問曰) 이미 가로되 선사(禪師)라 했으니 무엇으로써(何以) 설법합니까. 관왈(寬曰) 무상보리(無上菩提)란 것은 몸에 입히면(被) 율(律)이 되고 입으로 설하면(說於口) 법(法)이 되고 마음으로 행하면 선(禪)이 되나니 응용하는 것은 셋이나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비유컨대 강호회한(江湖淮漢; 저본에 漢을 漠으로 지었음)을 재처(在處)에서 이름을 세움과 같나니 이름은 비록 하나가 아니지만 수성(水性)은 둘이 없습니다. 율은 곧 이 법이며 법이 선(禪)을 여의지 않거늘 어떻게(云何) 가운데에(於中) 허망하게 분별을 일으키겠습니까. 가로되 이미 분별이 없다면 무엇으로써(何以) 수심(修心)합니까. 관왈(寬曰) 마음은 본래 상손(傷損)이 없거늘 어찌하여(云何) 이치를 닦음(修理)을 요하겠습니까. 구(垢)와 정(淨)을 논할 게 없이 일체 사념(思念; 念)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가로되 구(垢)는 곧 사념함이 옳지 않거니와 정(淨)은 사념함이 없다면 옳겠습니까. 관왈(寬曰) 예컨대(如; 例擧를 표시) 사람의 눈동자 위에 일물(一物)도 가히 머물지 못하나니 금가루(金屑)가 비록 진보(珍寶)이지만 눈에 있으면 또한 병이 됩니다. 가로되 닦음이 없고 사념이 없다면 또 어찌 범부와 다르겠습니까. 관왈(寬曰) 범부는 무명(無明)이며 이승(二乘)은 집착하나니 이 이병(二病)을 여의어야 이를 가로되 진수(眞修)라 합니다. 진수란 것은 근(勤; 부지런함)을 얻지 못하고 망(忘)을 얻지 못합니다. 근(勤)은 곧 집착에 가깝고 망(忘)은 곧 무명(無明)에 떨어지나니 이것이 심요(心要)가 될 따름입니다(云爾). 원화(元和) 15년(820) 항주(杭州; 지금의 浙江省 省都)를 다스렸다(牧). 인하여 입산하여 조과도림(鳥窠道林)을 참알해 문왈(問曰) 선사의 주처(住處)가 심히 위험합니다(鳥窠가 長松 위에 棲止했음). 림왈(林曰) 태수(太守)의 위험이 더욱(尤) 심합니다. 이왈(易曰) 제자는 지위가 강산을 진압(鎭壓)하거늘 무슨 위험이 있겠습니까. 림왈 섶과 불이 상교(相交)하듯 식성(識性)이 부정(不停)하거늘 위험하지 않음을 얻겠습니까. 우문(又問)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림왈 제악(諸惡)을 짓지 말고 중선(衆善; 뭇 선)을 봉행함입니다. 이왈 삼세해아(三歲孩兒)라도 또한 이렇게 말할 줄 압니다. 림왈 삼세해아라도 비록 말함을 얻지만 팔십노인(八十老人)이라도 행함을 얻지 못합니다. 또 게(偈)로써 문왈(問曰) 특별히 공문(空門)에 들어 고공(苦空)을 묻고/ 감히 선사(禪事)를 가지고 선옹(禪翁)에게 묻는다(叩)/ 마땅히 몽(夢)이 이 부생사(浮生事)가 되는가/ 다시 부생(浮生)이 이 몽중(夢中)이 되는가. 림(林)이 답왈 올 때 적(跡; 자취)이 없고 가매 종(踪; 자취)이 없나니/ 감과 올 때의 일이 일동(一同)하다/ 어찌 모름지기 다시 부생사(浮生事)를 묻는가/ 다만(祇) 이 부생(浮生)이 이 몽중(夢中)이다. 이(易)가 작례(作禮)하고 물러났다. 또 이(易)가 일찍이 응선사(凝禪師)에게 심요(心要)를 구해 팔언(八言)을 얻었으니 왈관(曰觀), 왈각(曰覺), 왈정(曰定), 왈혜(曰慧), 왈명(曰明), 왈통(曰通), 왈제(曰濟), 왈사(曰捨)다. 이(易)가 인하여 넓혀(廣) 팔점게(八漸偈)라 했다. 게왈(偈曰) (一觀) 심중의 눈으로써/ 심외(心外)의 상(相)을 관(觀)한다/ 어디로 좇아 있으며/ 어디로 좇아 상(喪)하는가/ 관(觀)하고 또 관해야/ 곧 진망(眞妄)을 분변한다. (二覺) 오직 진(眞)만이 상주(常在)하거니와/ 망(妄)에 덮히는(蒙) 바가 된다/ 진망(眞妄)을 참으로(苟) 분변해야/ 각(覺)이 그 가운데 생한다/ 망유(妄有)를 여의지 않고 진공(眞空)을 얻는다. (三定) 진(眞)이 만약 불멸한다면/ 망(妄)이 곧 일어나지 않는다/ 6근(根)의 근원이/ 맑기(湛)가 지수(止水)와 같다/ 이것이 선정(禪定)이 되나니/ 이에 생사를 벗어난다. (四慧) 오로지 정(定)을 쓰면(以)/ 정(定)에 오히려 묶임(繫)이 있다/ 혜(慧)로써 제도(濟度; 濟)해야/ 혜가 곧 막힘(滯)이 없다/ 구슬이 쟁반(盤)에 있음과 같나니/ 쟁반은 정(定)이며 구슬은 혜(慧)다. (五明) 정혜(定慧)가 서로 합해야/ 합한 후에 밝다(明)/ 저(彼) 만물을 비추매/ 만물이 둔형(遁形; 달아나는 형상)이 없다/ 대원경(大圓鏡)과 같아서/ 무정(無情)에 응함이 있다. (六通) 혜(慧)가 지극하면 곧 밝고/ 밝으면 곧 어둡지(昧) 않다/ 밝음이 지극하면 이에 통하고/ 통하면 곧 무애(無礙)하다/ 무애란 것이 무엇인가/ 변화가 자재하다. (七濟) 통력(通力)이 불상(不常)하여/ 응념(應念)하여 변한다/ 변하는 상(相)이 비유(非有)지만/ 구함을 따라 나타난다/ 이것이 대자비니/ 일(一)로써 만(萬)을 제도한다. (八捨) 중고(衆苦; 뭇 고)를 이미 제도했으니/ 대비(大悲)도 또한 버린다(捨)/ 고(苦)가 이미 진(眞)이 아니니/ 비(悲)도 역시(亦是) 가(假)다. 이런 고로 중생(衆生)을/ 실로 멸도(滅度; 度)하는 자가 없다.

●如滿; 당대승. 마조도일을 이었음. 처음은 오대산 금각사에 거주했고 후에 낙양 불광사(佛光寺)에 주(住)했음. 당순종(唐順宗)과 선종의 법요를 말했는데 제(帝)가 듣고 크게 기뻐했고 더욱 선종을 중시했음 [전등록6].

●太子少傅; 벼슬 이름. 태자태사(太子太師)ㆍ태자태부(太子太傅)ㆍ태자태보(太子太保)ㆍ태자소사(太子少師)ㆍ태자소부(太子少傅)ㆍ태자소보(太子少保)를 간칭하여 3사3소(三師三少)라 함. 원래 이는 천자 혹 태자의 좌우에서 가장 친근한 사람임. 사(師)는 이 그의 지식을 전수(傳授)하는 것이며 부(傅)는 이 그의 행동을 감독(監督)하는 것이며 보(保)는 이 그의 신체를 조관(照管)하는 것임. 곧 분별하면 이는 군주의 지육(智育)ㆍ덕육(德育)ㆍ체육(體育)을 부책(負責)하는 사람임. 수ㆍ당 이후로는 태자의 사부(師傅)는 균일하게 다른 관함(官銜)으로써 임명했음. 3사3소는 공적(公的)으로 가관증관(加官贈官)의 관함이 되고 직사(職事)가 있지 않았음. 송대(宋代) 3사(師)는 이 재상과 친왕(親王)의 가관관함(加官官銜)이었고 3사(師)는 이 정1품이며 3소(少)는 이 종1품이었음. 명ㆍ청 양대(兩代)는 3사는 종1품이 되었고 3소는 이 정2품이었음 [백도백과].

●惟寬; (755-817) 당대승. 속성은 축이며 구주(지금 절강에 속함) 사람. 처음은 비니를 익히고 지관을 닦았음. 후에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해 곧 심요을 얻었고 오월(吳越) 사이에서 행화(行化)했음. 원화 4년(809) 당 헌종이 불러 안국사에 주(住)하게 하고 인덕전(麟德殿)에서 도를 물었음. 공경(公卿)과 명류(名流)가 다투어 가서 참고(參叩)했으며 백거이가 스승의 예(禮)로 모셨음. 제자가 천여(千餘)며 법을 얻은 자가 39인이며 졸시(卒諡)는 대철선사 [송고승전10. 전등록7].

●無明; 이르자면 암둔한 마음임. 제법의 사리를 비추는 밝음이 없음이니 곧 치(癡)의 다른 이름.

●二乘; 승(乘)은 곧 운재(運載)의 뜻이니 사람을 태워(乘) 각기 그 과지(果地)의 교법(敎法)에 이르게 함을 이름해 승(乘)임. 1승(乘)에서 내지 5승(五乘; 人乘ㆍ天乘ㆍ聲聞乘ㆍ緣覺乘ㆍ菩薩乘)의 차별이 있음. 그 중에 2승(乘)은 세 가지가 있음. 1 대승과 소승, 2 성문승과 연각승, 3 1승(一乘; 1불승)과 3승(三乘; 성문승ㆍ연각승ㆍ보살승).

●道林; (741-824) 당대승. 경산도흠(徑山道欽)을 이었음. 우두법융하 6세. 항주 부양 사람. 속성은 반(일설은 翁)이며 어릴 적의 이름은 향광이었음. 전등록4 도림전을 안험컨대 스님은 9세에 출가하고 21세에 형주(호북) 과원사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았음. 후에 장안 서명사에서 복례법사를 수종(隨從)하며 화엄경과 대승기신론을 연습했음. 대종이 도흠선사를 불러 입경하게 하자 도림이 그에게 참하여 심요를 계합해 깨쳤음. 그리고 남방으로 돌아가 진망산을 바라보니 장송이 있는데 반곡(盤曲; 얽히어 꼬불꼬불함)한 게 지붕 같았으며 드디어 그 위에서 서지(棲止)했음. 고로 당시의 사람이 일컬어 조과선사(鳥窠禪師)라 했음. 그 곁에 까치가 있어 둥지를 틀었으므로 고로 또한 일컬어 작소화상(鵲巢和尙)이라 했음. 백거이가 나가서 항주자사를 맡았는데 스님과 서로 교류했으며 이에 죽각(竹閣)을 축조하여 거기에 거주하게 하고 누차 나아가 도를 물었음. 이 죽각이 곧 후래의 광화사임. 장경 4년 2월 10일에 시적했고 나이는 84며 납은 63. 시호는 원수선사(圓修禪師). 또 송고승전11에 실린 바와 조금 다름 [오등회원2. 불조역대통재16].

●空門; (1). 불교의 총명이니 불교는 주로 공법으로써 열반의 문을 삼는 연고임. 지도론20에 가로되 열반성에 세 문이 있으니 이른 바 공ㆍ무상ㆍ무작이다. (2). 상유(常有)의 지견을 깨뜨림이 됨이니 아공ㆍ법공ㆍ유위공ㆍ무위공 등 공상의 법문임. 지도론18에 가로되 공문이란 것은 생공ㆍ법공이다. (3). 4문(門)의 하나. 제교에서 각자 4문이 있어 가히 열반에 듦.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浮生; 이르자면 인생이 세상에 있음이 천상의 부운, 수상의 부평과 같아서 항상 존재하기 어려운지라 고로 가로되 부생임.

●無情; 정식(情識)이 없는 것이니 이르자면 산천초목 등.

●衆生; <범> bahu-jana. jantu. jagat. 혹 sattva. 범어 복호선나(僕呼繕那)ㆍ선두(禪頭)ㆍ사가(社伽)ㆍ살타(薩埵)는 화언(華言)으로 유정ㆍ함식(含識; 곧 心識을 함유한 자)ㆍ함생ㆍ함정ㆍ함령ㆍ군생ㆍ군맹ㆍ군류임. ▲장아함경22 세본연품. 남녀ㆍ존비ㆍ상하가 있지 않으며 또한 이명(異名)이 없이 무리가 함께 세상에 사는(衆共生世) 고로 이름이 중생이다.

 

贊曰 樂天參佛光 悟明心地 其機緣莫可考已 乃所至尊宿 若鳥窠輩 樂天莫不嚮風瞻禮俛焉 受其鉗鎚 何以故 其心虗也 虗則明 明則淫房酒肆不離道場 絃管花鈿無非佛事 故曰 達哉 達哉 白樂天

●機緣; 一機謂根機 緣謂因緣 衆生之根機與悟法之因緣 兩者契合 則獲省悟 二禪師臨機應緣的問答語句 擧止作略 此指二

●尊宿; 德尊年長者 ▲觀無量壽佛經疏二 德高曰尊 耆年曰宿

●鉗鎚; 鉗 鐵鋏 鎚 鐵鎚 兩者皆爲鍛鍊金屬所必使用之器具 禪宗用以比喩師家敎導弟子之嚴格

●花钿; 古代女子面部妝容的一種裝飾

 

찬왈(贊曰) 낙천(樂天)이 불광(佛光)을 참(參)해 심지(心地)를 오명(悟明)했으나 그 기연(機緣)은 가히 고찰(考察; 考)하지 못할 따름이다(已). 이에 이르는 바의 존숙(尊宿), 조과배(鳥窠輩) 같은(若) 이를 낙천이 향풍(嚮風)하여 첨례(瞻禮)하며 구푸리지(俛) 않음이 없었고 그 겸추(鉗鎚)를 받았다. 무슨 연고냐, 그 마음을 비워서이다(虗). 비우면 곧 밝고 밝으면 곧 음방(淫房)과 주사(酒肆)가 도량(道場)을 여의지 않으며 현관(絃管; 弦樂器와 管樂器. 널리 악기를 가리킴)과 화전(花鈿)이 불사가 아님이 없다. 고왈(故曰) 달재(達哉)로다 달재로다, 백낙천(白樂天)이여.

●機緣; 1. 기(機)는 이르자면 근기며 연(緣)은 이르자면 인연이니 중생의 근기와 법을 깨칠 인연임. 양자가 계합해야 곧 성오를 얻음. 2. 선사가 임기하여 응연하는 문답의 어구와 거지(擧止)의 작략.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尊宿; 덕이 높은 연장자. ▲관무량수불경소2. 덕고(德高)를 가로되 존(尊)이며 기년(耆年)을 가로되 숙(宿)이다.

●鉗鎚; 겸(鉗)은 쇠집게며 추(鎚)는 쇠망치. 양자는 다 금속을 단련하는 곳에서 반드시 사용하는 기구. 선종에서 사가가 제자를 교도하면서의 엄격함의 비유로 씀.

●花钿; 고대 여자의 면부(面部)에 장용(妝容; 얼굴을 꾸밈)하는 일종의 장식(裝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