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拙(石霜慶諸禪師法嗣)
張拙秀才 參智藏 問曰 山河大地 是有是無 三世諸佛 是有是無 藏曰 有 拙曰 錯 藏曰 先輩曾參見什麽人來 拙曰 參見徑山和尙來 某甲凡有所問話 徑山皆言無 藏曰 先輩有何眷屬 拙曰 有一山妻 兩箇癡頑 又問 徑山有甚眷屬 拙曰 徑山古佛 和尙莫謗渠好 藏曰 待先輩得似徑山時 一切言無 拙俛首而已 時石霜慶諸置枯木堂 齊己 貫休 泰布衲等 以詩筆爲佛事 惟泰布衲悟心入祖師圖 拙偶與三僧道話 曰 三師中 何不選一人爲長老 意少石霜不善詩筆 泰曰 先輩失言也 堂頭和尙肉身菩薩 會下一千五百人 如我輩者 七百餘人 如九峯 雲蓋 大光 覆船 湧泉等諸大宗師 皆在參學位中 勝我輩者七百餘人 拙愧服 同上拜見 霜問 先輩何姓 曰 姓張名拙 霜曰 覔巧了不可得 拙自何來 拙有省 乃獻詩曰 光明寂照遍河沙 凡聖含靈共我家 一念不生全體現 六根纔動被雲遮 斷除煩惱重增病 趣向眞如亦是邪 隨順衆緣無罣礙 涅槃生死是空華
●慶諸; (807-888) 唐代僧 靑原下四世 廬陵新淦(江西)人 俗姓陳 十三歲隨從紹鑾出家 二十三歲至嵩山受具足戒 學戒律 後專志於禪 投潙山靈祐門下 竝領米頭執 爲衆服勞 精勤不懈 次至潭州雲巖參道吾宗智 言下契機 從此洞悟 遂混俗於長沙 人莫能識 洞山良价遣僧訪尋 師始露面 遂住瀏陽石霜山 其後道吾將示寂 以師爲嫡嗣 乃親至石霜山訪之 迨道吾示寂 禪侶雲集石霜山 達五百衆 師止於石霜山二十年間 學衆有長坐不臥 屹若株杌者 世人稱之石霜枯木衆 唐僖宗聞師之道譽 遣使齎賜紫衣 師固辭不受 光啓四年示寂 壽八十二 臘五十九 敕諡普會大師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五 五燈會元五 敎外別傳十四 禪宗正脈五]
●秀才; 秀才是中國古代選拔官吏的科目 亦曾作爲學校生員的專稱 漢武帝改革選官制度 令地方官府考察和推擧人才 卽爲察擧 元封四年(前107) 命公卿 諸州每年各擧薦秀才一名 意爲優秀人才 東漢因避光武帝名諱 遂改稱茂才 三國曹魏時沿襲察擧 復改稱秀才 至南北朝時 擧薦秀才尤爲重視 隋代始行科擧制 設秀才科 唐初沿置此科 及第者稱秀才 後廢秀才科 秀才遂作爲一般讀書人的泛稱 宋代爲士子和應擧者的統稱 明代曾一度采用薦擧之法 亦有擧秀才 明淸時期 秀才亦專用以稱府州縣學生員 [百度百科]
●齊己; 唐末五代詩僧 湖南益陽人 俗姓胡 自號衡嶽沙門 幼於潙山同慶寺出家習學律儀 性喜吟詠 不求名利 後赴潭州石霜山慶諸會下 請知僧務 龍德元年(921) 後唐莊宗請師任僧正 師作渚宮莫問詩十五首(收於白蓮集五)表己志 愛樂山水 不近王侯 師之頸有瘤 時人戱稱爲詩囊 其所作詩 氣調淸淡 與同時先輩詩僧貫休爲唐代詩僧之首 遺詩有光憲所編白蓮集十卷 按釋氏疑年錄五 師示寂於後唐長興(930-933)末年 世壽七十餘 [宋高僧傳三十 釋氏稽古略三 通志略二十二 大淸一統志三六九]
●貫休; (832-912) 唐末五代僧 以詩畫著稱於世 婺州蘭谿(浙江金華)人 俗姓姜 字德隱 一字德遠 七歲出家於金華縣和安寺圓貞座下 受具足戒後 卽入浙東五洩山 修禪十年 曾參無相禪師 後往洪州開元寺聽講法華經及大乘起信論 皆能通達奧義 師善繪佛像 尤工水墨羅漢 又擅篆隸草書 其詩亦頗爲士林所稱譽 唐乾寧初 嘗謁吳越王錢鏐 竝獻詩章 頗見禮重 昭宗天復(901-904)年間入蜀 前蜀蜀主王建 其子王衍 同優遇之 因賜紫衣 署號禪月大師 乾化二年示寂 壽八十一 著有西嶽集 弟子曇域更其名爲禪月集 [宋高僧傳三十 釋氏稽古略三 五燈會元六]
●泰布衲; 玄泰 五代僧 沈默寡言 未嘗衣帛 時謂之泰布衲 初參德山 後參石霜慶諸 嗣其法 爲其掌翰墨二十年 與貫休 齊己爲友 居衡山金剛臺 四方後進依附 皆用交友之禮 見山民斬伐燒畬 作畬山謠 遠近傳播 朝廷下詔禁止燒畬 六十五歲時 說法而化 [宋高僧傳十七 五燈會元六]
●長老; 指年齡長而法臘高 智德俱優之大比丘 又稱上座 上首 耆宿 耆舊 老宿 具壽 長阿含八衆集經 列擧三種長老 一年耆長老 指入佛道經年之僧 二法長老 指精通敎法之高僧 三作長老 爲世俗假名之長老 長老雖對年臘高者之敬稱 然未必爲年老者 增一阿含經二十二 我今謂長老 未必先出家 修其善本業 分別於正行 設有年幼少 諸根無漏缺 正謂名長老 分別正法行 此外 禪林中 多稱接引學人之師家爲長老 又禪宗稱寺院住持僧人爲長老
●堂頭; 指住持也 又謂住持居室也
●肉身菩薩; 指生身菩薩 卽以父母所生之身而至菩薩深位者
●九峯; 道虔 五代僧 住瑞州九峰 石霜慶諸法嗣
●雲蓋; 志元 五代僧 法諱源禪 從學於石霜慶諸(靑原下四世) 竝嗣其法 以師曾於潭州(湖南長沙)雲蓋山 大擧弘化 故又稱雲蓋志元 署號圓淨大師 [祖堂集九 傳燈錄十六]
●大光; 居誨(837-903) 京兆(陝西西安)王氏 嗣石霜慶諸 居大光山提唱宗敎 唐天復三年癸亥九月三日歸寂 壽六十有七 [傳燈錄十六]
●宗師; 一專指傳佛心宗(禪宗)之師 傳正法爲衆所尊崇者 稱曰宗師 二指體得經律論三藏之宗旨 學德兼備 堪爲萬人師範之高僧
●罣礙; 謂障於前後左右上下而進退無途也 罣爲四面之障礙
●涅槃; 一<梵> nirvāṇa 又作般涅槃 涅槃那 泥洹 泥曰等 此翻爲滅 寂滅 滅度 二(僧人)逝世 此指一
장졸(張拙)(石霜 慶諸禪師의 法嗣)
장졸수재(張拙秀才)가 지장(智藏; 馬祖의 法嗣)을 참(參)하여 문왈(問曰) 산하대지가 이 있습니까 이 없습니까. 삼세제불이 이 있습니까 이 없습니까. 장왈(藏曰) 있습니다. 졸왈(拙曰) 틀렸습니다(錯). 장왈 선배(先輩)는 일찍이 어떤(什麽) 사람을 참견(參見)하고 왔습니까. 졸왈 경산화상(徑山和尙)을 참견하고 왔습니다. 모갑(某甲)이 무릇 문화(問話)하는 바가 있으면 경산이 모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왈 선배는 어떤 권속(眷屬)이 있습니까. 졸왈 하나의 산처(山妻; 山은 謙辭)와 양개(兩箇)의 치완(癡頑; 愚癡하고 頑固한 子息이니 謙辭)이 있습니다. 우문(又問) 경산은 무슨(甚) 권속이 있습니까. 졸왈 경산은 고불(古佛)이거늘 화상은 거(渠; 그)를 비방하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장왈 선배가 경산과 같음을 얻는 때를 기다렸다가 일체가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장졸이 머리를 숙일(俛; 숙일 부) 따름이었다. 당시(當時; 時)에 석상경제(石霜慶諸)가 고목당(枯木堂)을 설치했다. 제기(齊己)ㆍ관휴(貫休)ㆍ태포납(泰布衲; 玄泰) 등이 시필(詩筆)로써 불사(佛事)로 삼았는데(爲) 오직 태포납 만이 오심(悟心)하여 조사도(祖師圖)에 들었다. 장졸이 우연히 삼승(三僧)과 더불어 도화(道話; 話를 말함)하면서 가로되 삼사(三師) 중에 왜 일인(一人)을 선택(選擇; 選)하여 장로(長老)로 삼지 않습니까. 뜻에 석상(石霜)이 시필(詩筆)을 잘하지 못함을 얕잡아 봄이었다(少). 태왈(泰曰) 선배(先輩)는 실언(失言)했습니다. 당두화상(堂頭和尙)은 육신보살(肉身菩薩)이며 회하(會下)의 1천5백 인에 아배(我輩)와 같은 자가 7백여 인입니다. 예컨대(如) 구봉(九峯; 道虔)ㆍ운개(雲蓋; 志元)ㆍ대광(大光; 居誨)ㆍ복선(覆船)ㆍ용천(湧泉) 등 여러 대종사(大宗師)가 모두 참학위(參學位) 가운데 있으니 아배(我輩)보다 수승(殊勝; 勝)한 자가 7백여 인입니다. 장졸이 괴복(愧服; 부끄럽게 여기며 굴복)했다. 함께 올라가 배견(拜見)하자 상문(霜問) 선배는 무슨 성(姓)입니까. 가로되 성은 장(張)이며 이름은 졸(拙)입니다. 상왈(霜曰) 교(巧)를 찾아도 마침내(了) 불가득이거늘 졸(拙)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장졸이 성찰이 있었다. 이에 헌시(獻詩)해 가로되 광명이 적조(寂照)하여 하사(河沙)에 두루하니/ 범성함령(凡聖含靈)이 한가지(共)로 아가(我家)다/ 일념이 불생(不生)해야 전체가 나타나나니/ 6근(根)이 겨우 동(動)하면 구름에 가림을 입는다/ 번뇌를 단제(斷除)하면 거듭 병(病)을 더하고/ 진여(眞如)로 취향(趣向)해도 역시 삿되다/ 중연(衆緣)을 수순(隨順)해도 괘애(罣礙)가 없나니/ 열반(涅槃)과 생사가 이 공화(空華)로다.
●慶諸; (807-888) 당대승. 청원하 4세. 여릉 신감(강서) 사람이며 속성은 진. 13세에 소란을 수종(隨從)하다가 출가했고 23세에 숭산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았음. 계율을 배우고는 후에 선(禪)에 전지(專志; 專心)하였음. 위산영우의 문하에 투입하였고 아울러 미두(米頭)의 집무(執務)를 받아 대중을 위해 복로(服勞)하며 정근하면서 느슨하지 않았음. 다음에 담주 운암에 이르러 도오종지(道吾宗智)를 참했고 언하에 계기(契機)하고 이로부터 환히 깨쳤음. 드디어 장사에서 세속에 섞였는데 사람들이 능히 알지 못했음. 동산양개가 중을 보내어 방심(訪尋)케 하자 스님이 비로소 얼굴을 노출했으며 드디어 유양 석상산(石霜山)에 거주했음. 그 후에 도오가 장차 시적하려 하면서 스님을 적사(嫡嗣)로 삼았으며 이에 친히 석상산에 이르러 그를 방문했음. 도오가 시적함에 이르러선 선려(禪侶)가 석상산에 운집하기가 5백 중(衆)에 달했음. 스님이 석상산에 머문 20년 간에 학중(學衆)이 장좌불와하며 우뚝하기가 나무 그루터기 같은자가 있어 세인이 이를 호칭하기를 석상의 고목중(枯木衆)이라 했음. 당 희종이 스님의 도예(道譽)를 듣고 사신을 보내 자의(紫衣)를 싸서 주었으나 스님이 고사하며 받지 않았음. 광계 4년에 시적했음. 나이는 82며 납은 59며 칙시(敕諡)가 보회대사 [송고승전12. 전등록15. 오등회원5. 교외별전14. 선종정맥5].
●秀才; 수재는 이 중국 고대 관리를 선발하는 과목이며 또한 일찍이 학교 생원(生員)의 전칭(專稱)으로 지었음. 한무제(漢武帝)가 선관제도(選官制度)를 개혁해 지방 관부(官府)에 인재를 고찰(考察)하고 그리고 추거(推擧; 추천)하게 했으니 곧 찰거(察擧)가 됨. 원봉 4년(前 107) 공경(公卿)과 제주(諸州)에 명해 매년 각기 수재 1명을 거천(擧薦; 천거)하게 했으니 뜻이 우수한 인재가 됨. 동한(東漢)은 광무제의 명휘(名諱)를 피함으로 인해 드디어 무재(茂才)로 개칭했음. 삼국 조위(曹魏) 때 연습(沿襲; 전례를 따라서 함)하여 찰거(察擧; 선발)하면서 다시 수재로 개칭했음. 남북조 때에 이르러 수재를 거천(擧薦)함을 더욱 중시했음. 수대(隋代)에 과거제(科擧制)를 시행(始行)했고 수재과(秀才科)를 설치했음. 당초(唐初) 이 과(科)를 따라서 설치했고 급제한 자를 일컬어 수재라 했음. 후에 수재과를 폐지했으며 수재는 드디어 일반 독서인의 범칭(泛稱)이 되었음. 송대엔 사자(士子; 지식인)와 응거자(應擧者; 과거에 응시하는 자)의 통칭(統稱)이 되었음. 명대에 일찍이 천거(薦擧)의 법을 한 차례 채용했고 또한 수재를 천거함이 있었음. 명ㆍ청 시기 수재는 또한 부주현(府州縣)의 학생원(學生員)의 명칭으로 전용했음 [백도백과].
●齊己; 당말 오대 시승(詩僧). 호남 익양 사람이며 속성은 호며 자호(自號)는 형악사문. 어릴 적에 위산 동경사에서 출가하여 율의(律儀)를 습학(習學)했음. 성격이 음영(吟詠)을 좋아했고 명리를 구하지 않았음. 후에 담주 석상산 경제의 회하(會下)에 다다랐고 요청하여 승무(僧務)를 지(知; 主宰)했음. 용덕 원년(921) 후당 장종이 스님을 초청해 승정(僧正)에 임명하자 스님이 저궁막문시(渚宮莫問詩) 15수(白蓮集五에 수록되었음)를 지어 자기의 의지(意志)를 표했음. 산수를 애요(愛樂)했고 왕후를 가까이하지 않았음. 스님의 목에 혹이 있어 시인(時人)이 희롱으로 시낭(詩囊)이라 호칭했음. 그가 지은 바 시는 기조(氣調)가 청담(淸淡)했고 같은 시대의 선배 시승 관휴(貫休)와 더불어 당대(唐代) 시승의 으뜸이었음. 유시(遺詩)에 광헌(光憲)이 편(編)한 바 백련집(白蓮集) 10권이 있음. 석씨의년록5를 안험컨대 스님은 후당 장흥(930-933) 말년에 시적했고 세수는 70여임 [송고승전30. 석씨계고략3. 통지략22. 대청일통지369].
●貫休; (832-912) 당말 오대승. 시와 그림으로 세상에 명칭이 드러났음. 무주 난계(절강 금화) 사람이며 속성은 강, 자는 덕은이며 다른 자는 덕원임. 7세에 금화현 화안사 원정의 좌하(座下)에서 출가했음. 구족계를 받은 후에 곧 절동 오설산으로 들어가 수선(修禪)하기 10년이었음. 일찍이 무상선사를 참했으며 후에 홍주 개원사로 가서 법화경 및 대승기신론을 청강했으며 다 능히 오묘한 뜻을 통달했음. 스님은 불상을 잘 그렸고 특히 수묵라한(水墨羅漢)에 공교(工巧)했음. 또 전ㆍ예ㆍ초서를 독천(獨擅)했으며 그의 시도 또한 자못 사림(士林)에서 칭예(稱譽)하는 바가 됨. 당 건녕 초에 일찍이 오월왕 전류를 알현하고 아울러 시장(詩章)을 바치자 자못 예의로 존중함을 보였음. 소종 천복(901-904)년 사이에 촉에 들어갔는데 전촉(前蜀)의 촉주 왕건과 그 아들 왕연이 한가지로 넉넉히 그를 대우했으며 인하여 자의(紫衣)를 주고 서호(署號)하여 선월대사(禪月大師)라 했음. 건화 2년 시적했음. 나이 81. 저서에 서악집이 있는데 제자 담역이 그 이름을 고쳐 선월집(禪月集)이라 했음 [송고승전30. 석씨계고략3. 오등회원6].
●泰布衲; 현태(玄泰)니 오대승. 침묵하며 말이 적었고 일찍이 비단옷을 입지 않았으며 당시에 그를 일러 태포납(泰布衲)이라 했음. 처음 덕산을 참했고 후에 석상경제(石霜慶諸)를 참해 그의 법을 이었으며 그를 위해 20년 동안 한묵(翰墨)을 관장했음. 관휴(貫休)ㆍ제기(齊己)와 벗이 되었고 형산 금강대에 거주하자 사방의 후진(後進)이 의부(依附)했는데 모두 교우지례(交友之禮)를 썼음. 산민(山民)이 참벌(斬伐)하고 소여(燒畬)함을 보고 여산요(畬山謠)를 지었는데 원근에 전파되자 조정에서 하조(下詔)하여 소여(燒畬)를 금지했음. 65세 때 설법하고 화(化)했음 [송고승전17. 오등회원6].
●長老; 연령이 어른이면서 법랍이 높으며 지덕(智德)이 모두 우수한 대비구를 가리킴. 또 명칭이 상좌(上座)ㆍ상수(上首)ㆍ기숙(耆宿)ㆍ기구(耆舊)ㆍ노숙(老宿)ㆍ구수(具壽)임. 장아함8 중집경에 3종 장로를 열거했음. 1. 연기장로(年耆長老) 불도에 들어와 경년(經年)한 승인을 가리킴. 2. 법장로(法長老) 교법에 정통한 고승을 가리킴. 3. 작장로(作長老) 세속의 가명(假名)의 장로가 됨. 장로는 비록 연랍(年臘)이 높은 자에 대한 경칭이지만 그러나 꼭 연로자가 됨은 아님. 증일아함경22 내가 이제 장로를 말함음/ 꼭 먼저 출가함은 아니다/ 그 선(善)의 본업을 닦고/ 정행(正行)을 분별해야 한다/ 설사 나이가 유소(幼少)함이 있더라도/ 제근(諸根)에 누결(漏缺)이 없으면/ 바로 이르되 이름이 장로니/ 바른 정법의 행을 분별한다. 이 밖에 선림 중에선 다분히 학인을 접인하는 사가를 일컬어 장로라 함. 또 선종은 사원의 주지승인(住持僧人)을 일컬어 장로라 함.
●堂頭; 주지를 가리킴. 또 이르자면 주지의 거실임.
●肉身菩薩; 생신보살을 가리킴. 곧 부모가 낳은 바의 몸으로 보살의 심위(深位)에 이른 자임.
●九峯; 도건(道虔)이니 오대승(五代僧). 서주구봉(瑞州九峰)에 가주했으며 석상경제의 법사.
●雲蓋; 지원(志元)이니 오대승. 법휘는 원선(源禪)이며 석상경제(石霜慶諸; 청원하 4세)를 좇아 학습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스님이 일찍이 담주(호남 장사) 운개산(雲蓋山)에서 대거(大擧) 홍화(弘化)한지라 고로 또 칭호가 운개지원(雲蓋志元)이며 서호(署號)는 원정대사 [조당집9. 전등록16].
●大光; 거회(居誨; 837-903)니 경조(섬서 서안) 왕씨. 석상경제를 이었으며 대광산(大光山)에 거주하며 종교를 제창했음. 당 천복 3년 계해 9월 3일에 귀적했음. 나이는 67 [전등록16].
●宗師; 1. 오로지 부처의 심종(心宗; 禪宗)을 전하는 스님을 가리킴. 정법(正法)을 전해 대중에게 존숭(尊崇)되는 바가 되는 자를 호칭해 가로되 종사임. 2. 경률론(經律論) 3장의 종지(宗旨)를 체득하고 학덕을 겸비(兼備)하여 감(堪; 可)히 만인(萬人)의 사범(師範)이 되는 고승(高僧)을 가리킴.
●罣礙; 이르자면 전후ㆍ좌우ㆍ상하를 막아 진퇴할 길이 없음임. 괘(罣)는 사면의 장애가 됨.
●涅槃; 1. <범> nirvāṇa. 또 반열반(般涅槃)ㆍ열반나(涅槃那)ㆍ니원(泥洹)ㆍ니월(泥曰; 曰은 원음이 월) 등으로 지음. 여기에선 번역해 멸(滅)ㆍ적멸(寂滅)ㆍ멸도(滅度)임. 2. (僧人)의 서세(逝世; 죽음).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贊曰 一念不生全體現 太巧生 六根纔動被雲遮 太拙生 覔巧了不可得 拙自何來 咄 咄 沒處去 沒處去 作這箇語話
찬왈(贊曰) 일념이 불생해야 전체가 나타난다 하니 태교생(太巧生; 매우 교묘함. 生은 조사)이다. 6근이 겨우 동하면 구름에 가림을 입는다 하니 태졸생(太拙生; 매우 拙劣함). 졸(拙)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니 돌(咄; 꾸짖으며 물리치는 소리), 돌(咄). 가는 곳이 없다(沒處去), 가는 곳이 없다. 저개(這箇; 이런)의 어화(語話)를 짓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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