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왕수(王隨)

태화당 2026. 6. 2. 07:26

王隨(首山省念禪師法嗣)

丞相王隨 字子正 河南人 居嘗慕裴休之爲人 參首山念禪師 得言外之旨 以御史中丞 出鎭錢塘 往興敎寺 謁洪壽禪師 至湖上 去騶從 獨步登寢堂 壽方負暄 擁毳自若 忽見之 問曰 官人何姓 曰 姓王名隨 壽推蒲團 席地與坐 語笑終日而去 門人諫曰 彼王臣來 奈何不爲禮 此一衆所係 非細事也 他日隨復來 寺衆橫撞大鐘 萬指出迎 而壽前趨 立於松下 隨望見出輿握其手曰 何不如前日相見 而遽爲此禮數耶 壽顧左右 且行且言曰 中丞卽得 奈知事嗔何 隨愈重之 自是履踐益深 竟明大法 與楊大年俱號參禪者 先是大年編次傳燈錄三十卷 隨去其繁爲十五卷 名玉英集 臨終書偈曰 畵堂燈已滅 彈指向誰說 去住本尋常 春風掃殘雪

省念; (926-993) 五代臨濟宗僧 萊州(今山東掖縣)人 俗姓狄 號首山 幼入南禪寺受業 纔受具足戒 遍遊叢席 常修頭陀行 密誦法華經 人稱念法華 師事風穴延沼 得其心傳 名振四方 風靡一世 其後開法於汝州首山 爲第一世 又住汝州葉縣寶安山廣敎院 及城下寶應院等 淳化三年(992)十二月四日 上堂說偈曰 今年六十七 老病隨緣且遣日 今年記取來年事 來年記著今朝日 翌年十二月四日上堂辭衆 仍說偈曰 白銀世界金色身 情與非情共一眞 明暗盡時俱不照 日輪午後見全身 言訖 安坐入寂 壽六十八 [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一]

丞相; 官名 一般指皇帝下面的最高行政官 輔佐皇帝總理百政的官員 戰國 秦朝 漢朝 輔佐君主的最高官吏 宰相不一定是丞相 宰相在不同朝代 有不同的官職對應 比如在唐玄宗時期改尙書僕射爲丞相 當時的丞相就不是宰相之職 元朝的行省丞相則爲地方官 亦非宰相 [百度百科]

御史中丞; 官名 漢以御史中丞爲御史大夫的助理 外督部刺史 內領御 受公卿章奏 糾察百僚 其權頗重 唐宋雖置御史大夫 亦往往缺位 卽以中丞代行其職 [百度百科]

洪壽; (944-1022) 宋代法眼宗僧 錢塘(浙江杭州)曹氏 禮天龍寺朗智落髮 參天台韶國師 一日聞墮薪有省 後住杭州興敎寺 [天聖廣燈錄二十七 聯燈會要二十八]

騶從; 封建時代貴族官僚出門時所帶的騎馬的侍從

獨步; 獨自一人在路上行走

負暄; 冬天受日光曝曬取暖

擁毳; 毳 鳥獸的細毛 指僧人衣服

蒲團; 以蒲草編織而成之圓形扁平坐具 乃僧人坐禪及跪拜時所用之物

席地; 原指在地上鋪了席(坐臥在上面) 後來泛指在地上(坐臥)

一衆; 所有人 大衆 指寺院所有僧人

萬指; 指 量詞 一人十指 萬指 形容人多

中丞; 官名 漢代御史大夫下設兩丞 一稱御史丞 一稱御史中丞 因中丞居殿中而得名 掌管蘭臺圖籍祕書 外督部刺史 內領侍御史 受公卿奏事 擧劾按章 [百度百科]

楊大年; 楊億(974-1020) 北宋臨濟宗居士 浦城(福建建甌)人 字大年 少時以文章名世 太宗嘗召入面試 歎爲神童 眞宗時 歷任翰林學士 侍郞 修撰等官 初不知佛 學士李維勉 以宗門事 相策發 遂生深信 後參汝州廣慧元璉得法 每翼護法門 多著洪力 一時學佛士夫推爲領袖 又屢奉詔命編製大藏目錄 校刊景德傳燈錄 於譯經院任潤文一職 天禧四年有疾 書偈遺李遵勗而逝 享年四十七 諡號文 有文集行世 [五燈會元十二 居士傳二十 宋史三]

 

왕수(王隨)(首山 省念禪師法嗣)

승상(丞相) 왕수(王隨; 975-1033)는 자가 자정(子正)이며 하남(河南) 사람이다. 거상(居嘗; 平時. 平常)에 배휴(裴休)의 사람됨을 흠모했다. 수산념(首山念) 선사를 참()해 언외지지(言外之旨)를 얻었다.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서 나가 전당(錢塘)을 진수(鎭守; )했다. 흥교사(興敎寺)로 가서(; 저본에 로 지었음) 홍수선사(洪壽禪師)를 참알(參謁; )하는데 호상(湖上)에 이르자 추종(騶從)을 물리치고() 독보(獨步; 홀로 감)로 침당(寢堂)에 올랐다. 홍수가 바야흐로 부훤(負暄)하면서 옹취(擁毳; 옷을 끼다)하고 자약(自若)했다. 홀연히 보고는 문왈(問曰) 관인(官人)은 무슨 성()입니까. 가로되 성()이 왕()이며 이름은 수()입니다. 홍수가 포단(蒲團)을 밀어() 석지(席地; 땅에 폄)하여 앉게 하고는(與坐) 종일(終日) 어소(語笑)하다가 떠났다. 문인(門人)이 간왈(諫曰) ()는 왕신(王臣)으로서 왔는데 어찌하여(奈何)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일중(一衆)이 관계(關係; )되는 바라 세사(細事)가 아닙니다. 타일(他日)에 왕수가 다시 오자 사중(寺衆)이 대종(大鐘)을 횡당(橫撞)하고 만지(萬指)가 출영(出迎)했고 홍수가 앞으로 달려가() 송하(松下)에 섰다. 왕수가 바라보고는(望見) 수레(輿)에서 나와 그의 손을 잡으며 가로되 어찌하여 전일의 상견과 같지 않고 급히() 이 예수(禮數; 禮貌. 禮節)를 합니까. 홍수가 좌우를 돌아보더니 차행차어(且行且言)해 가로되 중승(中丞)은 곧 옳지만(; 괜찮지만) 지사가 성냄을 어찌하겠습니까(奈知事嗔何). 왕수가 더욱() 존중했다. 이로부터 이천(履踐; 履行. 實踐)이 더욱() 깊어졌고 마침내() 대법(大法)을 밝혔다. 양대년(楊大年)과 더불어 모두() 참선자(參禪者)로 호()했다. 이에 앞서 대년(大年)이 전등록(傳燈錄) 30권을 편차(編次)했는데 왕수가 그 번다(繁多; )를 제거하고 15권으로 삼았으니 이름이 옥영집(玉英集)이다. 임종에 서게(書偈)하여 가로되 화당(畵堂)에 등()이 이미 꺼졌거늘/ 탄지(彈指)하여 누굴 향해 설하나/ 거주(去住)가 본래 심상(尋常)하나니/ 춘풍이 잔설(殘雪)을 쓴다().

省念; (926-993) 오대 임제종승. 내주(萊州; 지금의 산동 액현) 사람이며 속성은 적()이며 호가 수산(首山). 어릴 적에 남선사에 들어가 수업(受業)했고 겨우 구족계를 받자 총석(叢席)을 두루 다녔음. 늘 두타행(頭陀行)을 닦았으며 몰래 법화경을 외운지라 사람들이 호칭하기를 염법화(念法華)라 했음. 풍혈연소(風穴延沼)를 사사(師事)하여 그 심전(心傳)을 얻었으며 명성을 사방에 떨쳐 일세(一世)를 풍미(風靡)했음. 그 후 여주(汝州) 수산(首山)에서 개법(開法)하여 제1세가 되었고 또 여주 섭현(葉縣) 보안산(寶安山)의 광교원(廣敎院) 및 성() 아래의 보응원(寶應院) 등에 주()했음. 순화 3(992) 124일에 상당해 게를 설해 가로되 금년에 67이니/ 늙고 병들어 인연 따라 또 날을 보낸다/ 금년에 내년의 일을 기취(記取)하고/ 내년에 금조(今朝)의 일을 기억하라. 다음해 124일에 상당하여 대중에게 고별하며 이에 게를 설해 가로되 백은세계(白銀世界)의 금색신(金色身)이여/ ()과 비정(非情)이 한가지로 일진(一眞)이다/ 명암이 다한 때 다 비추지 못하나니/ 일륜(日輪)의 오후에 전신을 보이리라. 말을 마치자 안좌(安坐)하여 입적했으니 나이는 68 [전등록13. 오등회원11].

丞相; 벼슬 이름. 일반으로 황제 하면(下面)의 최고 행정관을 가리킴. 황제를 보좌하며 백정(百政)을 총리(總理)하는 관원임. 전국(戰國)ㆍ진조(秦朝)ㆍ한조(漢朝)에선 군주를 보좌하는 최고 괸리였음. 재상(宰相)은 일정한 이 승상이 아니었음. 재상은 부동(不同)의 조대(朝代)에 부동의 관직의 대응이 있었으니 비여(比如) 당 현종 시기엔 상서복야(尙書僕射)를 고쳐 승상(丞相)이라 했고 당시의 승상은 그대로 이 재상의 직이 아니었음. 원조(元朝)의 행성(行省)의 승상은 지방관이 되었으며 또한 재상이 아니었음 [백도백과].

御史中丞; 벼슬 이름. ()은 어사중승을 어사대부의 조리(助理; 보좌)로 삼았음. 밖은 독부자사(督部刺史)며 안은 영어(領御)니 공경(公卿)의 장주(章奏)를 접수하고 백료(百僚)를 규찰(糾察)했으며 그 권한이 자못 막중했음. 당ㆍ송은 비록 어사대부를 설치했지만 또한 왕왕 결위(缺位)했으며 곧 중승(中丞)으로 그 직책을 대행(代行)했음 [백도백과].

洪壽; (944-1022) 송대 법안종승. 전당(절강 항주) 조씨. 천룡사 낭지를 예알하여 낙발(落髮)했고 천태소국사(天台韶國師)를 참했음. 어느 날 타신(墮薪; 섶이 떨어짐. 장작이 떨어짐)하는 소리를 듣고 깨침이 있었음. 후에 항주 흥교사에 주()했음 [천성광등록27. 연등회요28].

騶從; 봉건시대 귀족관료(貴族官僚)가 출문(出門)할 때 데리고 다닌 바(所帶)의 기마(騎馬)의 시종(侍從).

獨步; 독자(獨自) 일인(一人)이 노상(路上)에 있으면서 행주(行走; 걷다. 다니다).

負暄; 동천(冬天; 겨울)에 일광(日光)을 받아 포쇄(曝曬; 쬐어 말림)하며 취난(取暖).

擁毳; ()는 조수(鳥獸)의 세모(細毛). 승인의 의복을 가리킴.

蒲團; 포초(蒲草; 부들풀)로 편직(編織)하여 만든 원형이면서 편평(扁平; 납작하고 평평)한 좌구니 곧 승인이 좌선 및 궤배(跪拜)할 때 쓰는 바의 물건.

席地; 원래 지상(地上)에 자리를 펴고 (上面坐臥)을 가리켰음. 후래에 널리 지상에서 (좌와)함을 가리켰음.

一衆; 있는 바의 사람. 대중. 사원에 있는 바 승인(僧人)을 가리킴.

萬指; ()는 양사. 1인이 열 손가락이므로 만지는 사람의 많음을 형용함.

中丞; 벼슬 이름. 한대(漢代) 어사대부 아래 양승(兩丞)을 설립했으니 하나는 명칭이 어사승(史中丞)이며 하나는 명칭이 어사중승(御史中丞)이었음. 중승(中丞)은 전중(殿中)에 거처함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음. 난대(蘭臺)의 도적(圖籍)과 비서(祕書)를 장관했고 밖으론 부자사(部刺史)를 감독하면서 안으론 시어사(侍御史)를 거느렸음. 공경(公卿)의 주사(奏事)를 접수하고 거핵(擧劾; 허물을 들어 탄핵함)하고 안장(按章; 奏章을 안험함)했음 [백도백과].

楊大年; 양억(楊億; 974-1020)이니 북송의 임제종 거사며 포성(복건 건구) 사람이며 자가 대년(大年). 젊은 시절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났으며 태종이 일찍이 불러들여 면시(面試)하고 감탄하며 신동(神童)이라 했음. 진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ㆍ시랑(侍郞)ㆍ수찬(修撰) 등의 관직을 역임(歷任)했음. 처음엔 불법을 알지 못했는데 학사(學士) 이유면(李維勉)이 종문사(宗門事)로써 서로 책발(策發)하는지라 드디어 심신(深信)이 났으며 후에 여주(汝州)의 광혜원련(廣慧元璉)을 참알(參謁)해 득법했음. 매양(每樣) 법문(法門)을 익호(翼護)하여 많이 홍력(洪力)을 붙였으며 일시에 불법을 배우는 사부(士夫)들이 영수(領袖)로 추대했음. 또 누차 조명(詔命)을 받들어 대장목록(大藏目錄)을 편제(編製)하고 경덕전등록을 교간(校刊)하였고 역경원에서 윤문(潤文)의 일직(一職)을 맡았음. 천희 4년 질병이 있더니 게를 써서 이준욱(李遵勗)에게 남기고 서거했으니 향년은 47이며 시호는 문(). 문집이 있어 행세(行世)[오등회원12. 거사전20. 송사305].

 

贊曰 王公參首山 發明心地 且置是事跡 其去騶從候興敎 席地笑語 王臣耶 野僧耶 吾不知其爲誰

發明; 明悟 發現 廣雅 發 明也 開也 圓覺經普覺章 心花發明 照十方刹

心地; 心爲萬法之本 能生一切諸法 故曰心地 又修行者依心而近行 故曰心地 又三業中 心業最勝 故曰心地

 

찬왈(贊曰) 왕공(王公)이 수산(首山)을 참해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했거니와 이 사적(事跡)은 차치(且置)하고 그()가 추종(騶從)을 물리치고 흥교(興敎)에게 문후(問候; )하며 석지(席地)하여 소어(笑語)했으니 왕신(王臣)인가, 야승(野僧)인가. 나는 그가 누구인 줄 알지 못하겠다.

發明; 명오(明悟; 환히 깨침). 발현(發現; 숨겨져 있던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 보임. 또는 드러나게 함). 광아 발() ()이다. (). 원각경 보각장. 심화(心花)가 발명(發明)하여 시방찰(十方刹)을 비추다.

心地; 심은 만법의 근본이며 능히 일체의 제법을 내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지임. 또 수행자가 심에 의해 행에 접근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지며 또 3업 중에 심업이 가장 수승하므로 고로 가로되 심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