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왕연빈(王延彬)

태화당 2026. 5. 29. 07:24

王延彬(長慶慧稜禪師法嗣)

太傅王延彬 一日入招慶佛殿 指鉢盂殿主 這箇是甚麽鉢 曰 藥師鉢 彬曰 只聞有降龍鉢 曰 待有龍卽降 曰 忽遇拏雲㸕浪來時 作麽生 曰 他亦不顧 彬曰 話墮也 長慶謂彬曰 雪峯竪拂子示僧 其僧便出去 若據此僧 合喚轉痛與一頓 彬曰 是甚麽心行 慶曰 洎合放過 一日入招慶煎茶 朗上座爲明招把銚 忽翻茶銚 彬曰 茶爐下是甚麽 朗曰 捧爐神 彬曰 旣是捧爐神 爲什麽翻却茶銚 朗曰 仕官千日 失在一朝 彬拂袖便出 招曰 朗上座喫招慶飯 却向外邊打野榸 朗曰 上座作麽生 招曰 非人得其便 又入院 見方丈門閉 問演侍者 敢道大師在否 演曰 有人敢道大師不在否 又問北院 古人曰 普現色身 徧行三昧 佛法爲甚不到北俱盧州 曰 只爲徧行 所以不到 明招在招慶因普請 至彬宅取木佛 彬問大衆曰 忽遇丹霞 又作麽生 衆無語 招當時提起 向頂上曰 也要分付著人 一日彬請玄沙師備禪師登樓 先語客司曰 待我引大師到樓前 汝便舁却梯 客司稟旨 彬曰 請大師登樓 沙視樓 復視其人 乃曰 佛法不是這箇道理

慧稜; (854-932) 五代後唐僧 號超覺 杭州(浙江)鹽官人(宋高僧傳作海鹽人) 俗姓孫 人稱孫公 十三歲於蘇州通玄寺出家受具足戒 歷參靈雲志勤 雪峰義存 玄沙師備等師 曾依止雪峰義存三十年 後爲其法嗣 唐代天祐三年(906) 住於泉州(福建)招慶院 後住福州(福建)長慶院 於後唐長興三年示寂 壽七十九 僧臘六十 [宋高僧傳十三 傳燈錄十八 佛祖歷代通載十七]

太傅; 天子或太子之師 助導天子而參與國政官職名也 宋史志百十四曰 宋承唐制 以大師大傅大保爲三師 大尉司徒司空爲三公

鉢盂; 百丈淸規五辨道具 梵云鉢多羅 此云應量器 今略云鉢 又呼云鉢盂 卽華梵兼名

殿主; 知殿之異名 又作殿司 西序六頭首之一 卽司掌佛殿之花燭及灑掃等事之職稱 [百丈淸規上兩序章西序頭首條]

藥師; 梵語鞞殺社窶嚕 又作藥師如來 藥師琉璃光如來 大醫王佛 醫王善逝 十二願王 爲東方淨琉璃世界之敎主 此佛於過去世行菩薩道時 曾發十二大願 [藥師如來本願經藥師如來觀行儀軌法]

降龍鉢; 祖庭事苑七 降龍鉢 本行經(佛本行集經四十一及四十二)云 佛初轉法輪 降三迦葉於火神堂 放威火滅彼火龍毒火 四面一時洞然熾盛 唯有如來所坐之處寂靜 不見火光 火龍見已 漸向佛所 便卽踊身入佛鉢中 爾時世尊 手擎於鉢 至頻螺迦葉所 又晉高僧涉公 以符堅建元十一年(375) 長安大旱 請涉呪龍 俄爾龍在涉鉢中 雨遂告足

拏雲; 凌雲 騰雲

雪峯; 義存(822-908) 唐代僧 泉州(福建)南安人 俗姓曾 號雪峰 十二歲從父遊蒲田玉潤寺 拜慶玄律師爲師 留爲童侍 十七歲落髮 謁芙蓉山恆照大師 唐宣宗中興佛敎後 歷遊吳楚梁宋燕秦 於幽州寶刹寺受具足戒 後至武陵德山(湖南常德) 參宣鑒 承其法系 唐懿宗咸通六年(865)歸芙蓉山 十一年登福州象骨山 立庵興法 其山爲閩越之勝景 未冬先雪 盛夏尙寒 故有雪峰之稱 師亦以之爲號 寺初成 緇素雲集 衆每逾千五百人 僖宗賜號眞覺大師 竝紫袈裟一襲 大順(890-891)年中 遊丹丘 四明之地 竝宣法於軍旅之中 後還閩 備受閩王禮遇 開平二年五月入寂 壽八十七 其法嗣有雲門文偃玄沙師備等 文偃乃雲門宗之祖 師備下有桂琛 琛下有法眼文益 乃法眼宗之祖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六 五燈會元七]

一頓; 頓 量詞 名量用于飯的餐數 動量用于喫飯 斥責 勸說 打罵等行爲的次數 或說 唐土之刑 打罪人二十棒爲一頓

心行; 一心爲念念遷流者 故曰心行 又善惡之所念 謂之心行 二心中念念不忘爲心行 禪宗明心見性 不使心有昏昧也 此指一

明招; 德謙 宋代僧 受羅山道閑印記 不滯一隅 擊揚玄旨 人皆畏其敏捷 鮮敢當鋒 後住明招山四十餘年 以失左目 遂號獨眼龍 [傳燈錄二十三 聯燈會要二十五 祖庭事苑二]

打野榸; 打 砍取 榸 卓皆切 廣韻 榸 枯木根 打野榸 意謂不向正處行 遊方行脚 多含貶義

非人; 一對於人而謂 天龍八部及夜叉惡鬼之冥衆 總爲非人 二不合適者 不能勝任者 此指一

北俱盧州; 又作北俱盧洲 四洲之一 舊稱北鬱單越 俱盧 意謂勝處 以其地勝於他三洲而得名 地形正方 猶如池沼 人面亦然 [俱舍論光記八] 祖庭事苑五 北俱盧 或云北單越 鬱單越 正云鬱怛羅究𠺕 此云高上作 謂四天下中 比餘三洲 最高最上最勝 國土城邑 四事所須 宛同諸天 毘婆沙論(薩婆多毘尼毘婆沙一)云 北俱盧洲無有佛法 亦不得戒 以福報障故 亦愚癡故

普請; 一禪林集衆作務曰普請 二但集衆云普請 此指一

師備; (835-908) 唐末五代僧 福州(今屬福建)閩縣人 俗姓謝 幼好垂釣 汎小艇於南臺江 狎諸漁者 唐咸通(86 0-873)初 年屆三十 始脫塵志 投芙蓉山靈訓禪師落髮 受具足戒後 行頭陀法 終日宴坐 人稱備頭陀 與法兄雪峰義存 親近若師徒(嗣法雪峰) 同力締構 參學者衆 偶閱楞嚴經 發明心地 諸方請益者如水歸海 初住梅谿普應院 遷福州玄沙山 應機接物凡三十餘載 學侶八百餘人 時有閩帥王審知 事以師禮 曲盡殷勤 竝奏賜紫衣 號宗一大師 梁開平二年示寂 壽七十四(一說七十或七十五) 有語錄三卷傳世 [宋高僧傳十三 傳燈錄十八]

客司; 禪林中司掌迎送與應接賓客之職稱 又作典客 典賓 知客

 

왕연빈(王延彬)(長慶 慧稜禪師法嗣)

태부(太傅) 왕연빈(王延彬; 886-930)이 어느 날 초경(招慶; 招慶院)의 불전(佛殿)에 들어갔다. 발우(鉢盂)를 가리키며 전주(殿主)에게 묻되 저개(這箇)는 이 무슨(甚麽) ()입니까. 가로되 약사발(藥師)입니다. 빈왈(彬曰) 다만 항룡발(降龍鉢)이 있다 함을 들었습니다. 가로되 용()이 있음을 기다렸다가 곧 항복시키겠습니다(). 가로되 홀연히 나운확랑(拏雲㸕浪; 구름에 오르고 파랑을 움킴)하여 올 때를 만난다면 어떻습니까(作麽生). 가로되 그는 또한 돌아보지 않습니다. 빈왈(彬曰) 화타(話墮)했다. 장경(長慶)이 연빈(延彬; )에게 일러 가로되 설봉(雪峯; 義存)이 불자(拂子)를 세워 중에게 보였는데 그 중이 바로 나갔습니다. 만약 차승(此僧)에 의거한다면 합당히 불러 돌이켜서(喚轉) 통렬히 일돈(一頓)을 주어야 합니다. 빈왈(彬曰) 이 무슨 심행(心行)입니까. 경왈(慶曰) 합당히 방과(放過; 放棄)함에 이를 뻔했습니다(). 어느 날 초경(招慶)에 들어가 전다(煎茶)하는데 랑상좌(朗上座)가 명초(明招; 德謙)를 위해 파요(把銚; 쟁개비를 잡다)하다가 홀연히 다요(茶銚)를 엎었다(). 빈왈(彬曰) 다로(茶爐) 아래는 이 무엇입니까. 랑왈(朗曰) 봉로신(捧爐神)입니다. 빈왈(彬曰) 이미 이 봉로신이거늘 무엇 때문에(爲什麽) 다요(茶銚)를 엎어버렸습니까. 랑왈 사관(仕官; 벼슬살이) 천일(千日)에 잃음이 일조(一朝)에 있습니다. 연빈이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拂袖便出; 수긍하지 않는 모양). 초왈(招曰) 랑상좌는 초경(招慶)의 밥을 먹고는 도리어 외변(外邊)을 향해 야태를 패는구나(打野榸). 랑왈 상좌(上座)는 어떠한가. 초왈(招曰) 비인(非人)이 그 편의를 얻었다. 또 입원(入院)하여 방장문(方丈門)이 닫혔음을 보고 연시자(演侍者)에게 묻되 감히 말하노니 대사(大師)가 계십니까. 연왈(演曰) 어떤 사람은 감히 말하노니 대사가 계시지 않습니까. 또 북원(北院)에게 묻되 고인이 가로되 널리 색신을 나타내고 두루 삼매(三昧)를 행한다 했거늘 불법(佛法)이 무엇 때문에(爲甚) 북구로주(北俱盧州)에 이르지 않습니까. 가로되 다만 두루 행하기 때문에() 소이로 이르지 않습니다. 명초(明招)가 초경(招慶)에 있으면서 보청(普請)으로 인해 빈택(彬宅)에 이르러 목불(木佛)을 취했다. 연빈이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홀연히 단하를 만난다면 또 어떻습니까(丹霞는 목불을 태웠음). 대중이 말이 없었다. 명초가 당시에 제기(提起)하여 정상(頂上)으로 향하고 가로되 또한 사람에게 분부함(分付著)을 요합니다. 어느 날 연빈이 현사(玄沙; 玄沙山) 사비선사(師備禪師)에게 등루(登樓)를 청했다. 먼저 객사(客司; 손님을 접대하는 사람)에게 말해 가로되 내가 대사를 인도(引導; )해 누전(樓前)에 이름을 기다렸다가 너는 바로 사다리를 메어버려라(舁却). 객사(客司)가 의지(意旨; )를 받았다(). 빈왈(彬曰) 대사의 등루(登樓)를 청합니다. 현사가 누각을 보라보고 다시 그 사람을 보고는 이에 가로되 불법이 이는 이런 도리(這箇道理)가 아닙니다.

慧稜; (854-932) 오대 후당승. 호는 초각(超覺)이며 항주(杭州; 절강) 염관(鹽官) 사람이며(송고승전엔 海鹽人으로 지어졌음) 속성(俗姓)은 손()이며 사람들이 손공(孫公)이라 일컬었음. 13세에 소주(蘇州) 통현사(通玄寺)에서 출가해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영운지근(靈雲志勤)ㆍ설봉의존(雪峰義存)ㆍ현사사비(玄沙師備) 등의 스님들을 역참(歷參)했음. 일찍이 30년 동안 설봉의존에게 의지(依止)했고 후에 그의 법사(法嗣)가 되었음. 당대(唐代) 천우(天祐) 3(906) 천주(泉州; 복건) 초경원(招慶院)에 주()하다가 뒤에 복주(福州; 복건) 장경원(長慶院)에 주()했음. 후당(後唐) 장흥(長興) 3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9며 승랍은 60 [송고승전13. 전등록18. 불조역대통재17].

太傅; 천자 혹 태자의 스승이니 천자를 조도(助導)하면서 국정에 참여하는 관직의 이름임. 송사지114(宋史志百十四)에 가로되 송은 당제(唐制)를 계승해 태사(大師)ㆍ태부(大傅)ㆍ태보(大保)3()로 삼았고 태위(大尉)ㆍ사도(司徒)ㆍ사공(司空)3()으로 삼았다.

鉢盂; 백장청규5 판도구(辨道具). 범어로 이르되 발다라(鉢多羅)는 여기에선 이르되 응량기(應量器). 여금에 생략해 이르기를 발()이라 한다. 또 호칭해 이르기를 발우(鉢盂)라 함음 곧 화범(華梵)의 겸명(兼名)이다.

殿主; 지전(知殿)의 다른 이름. 또 전사(殿司)로 지음. 서서(西序) 6두수(頭首)의 하나. 곧 불전의 화촉(花燭) 및 쇄소(灑掃) 등의 일을 사장(司掌)하는 직칭 [백장청규상양서장서서두수조].

藥師; 범어로 비살사구로(鞞殺社窶嚕). 또 약사여래ㆍ약사유리광여래ㆍ대의왕불(大醫王佛)ㆍ의왕선서(醫王善逝)12원왕(十二願王)으로 지음. 동방정유리세계의 교주가 됨. 이 부처는 과거세에 보살도를 행할 때 일찍이 12대원을 발했음 [약사여래본원경약사여래관행의궤법].

降龍鉢; 조정사원7. 항룡발(降龍鉢) 본행경(불본행집경41 42)에 이르되 불타가 처음 법륜을 굴려 화신당(火神堂)에서 3가섭(迦葉)을 항복시켰다. 위화(威火; 威德의 불)를 놓아 그 화룡(火龍)의 독화(毒火)를 멸하자 사면이 일시에 통연(洞然; 은 밝을 통. 은 불탈 연. 곧 환히 탐)하여 치성했다. 오직 여래가 앉은 바의 곳이 적정(寂靜)함이 있고 화광이 보이지 않으므로 화룡이 보고 나서 점차 불타의 처소로 향하다가 바로 곧 몸을 솟구쳐 불발(佛鉢) 속에 들어갔다. 이때 세존이 손으로 발우를 받쳐 들고 빈라가섭의 처소에 이르렀다. 또 진()의 고승 섭공(涉公)이 부견 건원 11(375)에 장안이 크게 가문지라 섭에게 청해 용에게 빌게 했다(는 빌 주). 갑자기 용이 섭의 발중(鉢中)에 있었고 비가 드디어 풍족함을 고()했다.

拏雲; 능운(凌雲; 구름에 오름). 등운(騰雲; 구름에 오름).

雪峯; 의존(義存; 822-908)이니 당대승. 천주(泉州; 복건) 남안(南安) 사람이니 속성은 증()이며 호가 설봉. 12세에 아버지를 따라 포전(蒲田) 옥윤사(玉潤寺)에 놀러갔다가 경현율사를 배알(拜謁)하고 스승으로 삼았으며 머물며 동시(童侍)가 되었는데 17세에 낙발(落髮)하였고 부용산(芙蓉山)의 항조대사를 알현(謁見)했음. 당 선종(宣宗)이 불교를 중흥한 후 오()ㆍ초()ㆍ양()ㆍ송()ㆍ연()ㆍ진()을 지나며 노닐다가 유주(幽州) 보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후에 무릉(武陵) 덕산(德山; 湖南 常德)에 이르러 선감(宣鑒)을 참알하고 그 법계(法系)를 이었음. 당 의종(懿宗) 함통 6(865) 부용산에 돌아왔고 11년 복주(福州) 상골산(象骨山)에 올라 암자를 세우고 흥법(興法)했음. 그 산이 민월(閩越)의 승경(勝景)이 되며 겨울 전에 먼저 눈 오고 성하(盛夏)에도 오히려 서늘한지라 고로 설봉(雪峰)의 명칭이 있으며 스님도 또한 이로써 호를 삼았음. 절이 처음 이루어지자 치소(緇素; 僧俗)가 운집하여 대중이 매양(每樣) 천오백 인을 넘었음. 희종(僖宗)이 진각대사(眞覺大師)란 호와 아울러 자가사(紫袈裟) 한 벌을 주었음. 대순(大順; 890-891)년 중에 단구(丹丘)ㆍ사명(四明)의 땅에 노닐었으며 아울러 군려(軍旅; 軍隊)의 가운데서 선법(宣法)했고 후에 민()으로 돌아와 민왕(閩王)의 예우(禮遇)를 갖춰 받았음. 개평 25월에 입적했으니 나이는 87. 그의 법사(法嗣)에 운문문언(雲門文偃)ㆍ현사사비(玄沙師備) 등이 있음. 문언(文偃)은 곧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며 사비하(師備下)에 계침(桂琛)이 있으며 침하(琛下)에 법안문익(法眼文益)이 있으니 곧 법안종의 개조임 [송고승전12. 전등록16. 오등회원7].

一頓; 頓 量詞 名量用于飯的餐數 動量用于喫飯 斥責 勸說 打罵等行爲的次數 或說 唐土之刑 打罪人二十棒爲一頓 () 양사니 명량(名量)으론 밥의 먹는 수()에 쓰이고 동량(動量)으론 끽반(喫飯)ㆍ척책(斥責)ㆍ권설(勸說)ㆍ타매(打罵) 등의 행위의 차수(次數; 次例의 수)에 쓰임. 혹은 설하기를 당토(唐土)의 형벌은 죄인을 때리면서 20()1()으로 삼는다 함.

心行; 1. 심은 염념(念念)에 천류(遷流)하는 것이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행임. 또 선악의 소념(所念)을 일러 심행이라 함. 2. 심중의 염념에 잊지 않음을 심행이라 함. 선종은 명심견성하여 마음에 혼매(昏昧)가 있지 않게 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明招; 덕겸(德謙)이니 송대승. 나산도한(羅山道閑)의 인기(印記)를 받았음. 한 모퉁이에 지체하지 않고 현지(玄旨)를 거양(擊揚)했으며 사람들이 모두 그 민첩함을 경외하여 감히 당봉(當鋒)함이 적었음. 후에 명초산에 거주하기 40여 년이었음. 왼쪽 눈을 잃었으므로 드디어 독안룡(獨眼龍)이라 호칭했음 [전등록23. 연등회요25. 조정사원2].

打野榸; ()는 쪼개어 취함임. () 탁개절(卓皆切). 광운 태() 마른 나무뿌리다. 타야태는 뜻으로 이르자면 정처(正處)를 향해 행하지 않고 유방하며 행각함이니 폄하하는 뜻을 많이 머금었음.

非人; 1. ()을 상대해 말함이니 천룡팔부 및 야차ㆍ악귀의 명중(冥衆)이 모두 비인(非人)이 됨. 2. 합적(合適; 적합)하지 않는 자. 능히 임무를 이기지 못하는 자.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北俱盧州; 북구로주(北俱盧洲)로 지음(는 후에 로 지었음). 4()의 하나. 구칭은 북울단월(北鬱單越). 구로(俱盧; kuru)는 뜻으로 이르자면 승처(勝處)니 그 땅이 다른 3주보다 수승하여 이름을 얻었음. 지형은 정방(正方)이며 마치 지소(池沼)와 같으며 인면도 또한 그러함 [구사론광기8]. 조정사원5. 북구로(北俱盧) 혹은 이르되 북단월(北單越)ㆍ울단월(鬱單越; uttara-kuru)이라 하나니 바로 이르자면 울달라구루(鬱怛羅究𠺕)며 여기에선 이르되 고상작(高上作). 이르자면 4천하 중에 나머지 3()에 비해서 최고며 최상이며 최승임. 국토의 성읍과 사사(四事; 의복ㆍ음식ㆍ와구ㆍ탕약)의 쓰는 바가 완연히 제천과 한가지임. 비바사론(毗婆沙論; 살바다비니비바사1)에 이르되 북구로주엔 불법이 있지 않고 또한 계()를 얻지 않나니 복보(福報)가 장애가 되는 연고며 또한 우치한 연고다.

普請; 1. 선림에서 대중을 소집해 작무(作務)함을 가로되 보청임. 2. 다만 대중을 소집함을 일러 보청이라 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師備; (835-908) 당말 오대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민현(閩縣) 사람이며 속성은 사(). 어릴 적에 낚시질을 좋아해 작은 배를 남대강(南臺江)에 띄우고 여러 어자(漁者; 어부)를 친압(親狎)하던 자였음. 당 함통(860-873) () 나이가 30에 이르자 비로소 탈진(脫塵)의 뜻을 세우고 부용산(芙蓉山) 영훈선사(靈訓禪師)에게 투신해 낙발(落髮)했음. 구족계를 받은 후 두타법(頭陀法)을 행해 종일 연좌(宴坐)한지라 사람들이 비두타(備頭陀)로 일컬었음. 법형(法兄)인 설봉의존(雪峰義存)과 친근하기가 마치 사도(師徒; 스승과 제자) 같았으며(설봉의 법을 이었음) 힘을 합쳐 체구(締構)하여 참학자(參學者)가 많았음. 우연히 릉엄경을 열람하다가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했으며 제방에서 청익하는 자가 마치 물이 바다로 돌아감과 같았음. 처음엔 매계(梅谿) 보응원(普應院)에 거주하다가 복주(福州)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겼음. 응기접물(應機接物)하기 무릇 30여 재(; )며 학려(學侶)8백여 인이었음. 때에 민수(閩帥) 왕심지(王審知)가 스승의 예()로 모시면서 은근(殷勤)을 곡진(曲盡)함이 있었으며 아울러 주청(奏請)하여 자의(紫衣)와 종일대사(宗一大師)란 호를 주었음. () 개평 2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4(일설엔 70 혹은 75). 어록 3권이 있어 세상에 전함 [송고승전13. 전등록18].

客司; 선림 중에선 빈객을 영송함과 더불어 응접함을 사장(司掌; 맡아 관장)하는 직칭임. 또 전객(典客)ㆍ전빈ㆍ지객(知客)으로 지음.

 

合贊曰 西來大法 六代傳衣 五燈分焰 如師子王吼而百獸腦裂 如白澤圖懸而群妖影遁 至今閱其語要 未甞不恨予生之晚 無繇親炙參承也 乃當時若裴相國 陳尙書 李刺史 王常侍 王太傅 張秀才輩 皆能除我慢禮知識 以印明此一大事 雖去聖時遙 靈山一會儼然未散 今何如哉 吾不能無望於同志者

白澤; 一古代神話中想像的神獸 二師子的異名 明代李昱撰白澤賦云 桓山之陽 溟海之北 粤有神獸 名爲白澤 麐角而鼇趾 龍身而虎額 牙參差而礪銳 目閃爍而洞射 百獸逄之駭膽慄魄 此形容其彷彿者也

親炙; 直接受到敎誨或傳授

靈山; 靈鷲山 梵語耆闍崛 位於中印度摩揭陀國王舍城東北 簡稱靈山 或稱鷲峰 靈嶽 山形似鷲頭 又以山中多鷲故名 如來嘗講法華等大乘經於此

 

합찬왈(合贊曰) 서래(西來)의 대법(大法; 불법)을 육대(六代)가 전의(傳衣)하고 오등(五燈; 五家)으로 분염(分焰)하니 사자왕(師子王)이 부르짖음()에 백수(百獸)가 뇌열(腦裂)함과 같고 백택도(白澤)를 걸매() 군요(群妖)가 영둔(影遁)함과 같다. 지금(至今) 그 어요(語要)를 읽으매() 나의 생()의 늦음()을 한()하지 아니한 적이 없나니(未甞不) 친자(親炙)하여 참승(參承)할 길(; 음이 유)이 없다. () 당시(當時) 배상국(裴相國; 裴休)ㆍ진상서(陳尙書; 陳操)ㆍ이자사(李刺史; 李翱)ㆍ왕상시(王常侍; 王敬初)ㆍ왕태부(王太傅; 王延彬)ㆍ장수재(張秀才; 張拙) () 같은 이는 모두 능히 아만(我慢)을 제()하고 지식(知識)에게 예()하며 인(; 心印)으로써 이 일대사(一大事)를 밝혔다. 비록 성인과 떨어진 때가 멀지만 영산일회(靈山一會; 영산의 법회)가 엄연(儼然)하여 미산(未散)했다. 지금은 어떠하던가(何如哉), 내가 능히 동지자(同志者)에게 바람이 없음(無望)이 아니다.

白澤; 1. 고대 신화 중의 상상의 신수(神獸). 2. 사자의 다른 이름. 명대 이욱이 지은 백택부(白澤賦)에 이르되 환산(桓山)의 양()과 명해(溟海)의 북(), 이에 신수(神獸)가 있으니 이름해 백택(白澤)이다. 기린의 뿔이면서 자라의 발이며 용의 몸에 범의 이마다. 이빨은 참치(參差; 길고 짧고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 아니함)하고 여예(礪銳; 숫돌에 간 듯 예리함)하며 눈은 번쩍이면서 환히 쏜다. 백수가 이를 만나면 간담이 놀라고 혼백이 벌벌 떠나니 이것은 그 방불(彷彿; 비슷함)함을 형용한 것이다.

親炙; 직접 교회(敎誨) 혹 전수(傳授)를 수도(受到).

靈山; 영취산(靈鷲山)이니 범어(梵語)는 기사굴(耆闍崛; Gṛdhrakūṭa). 중인도 마갈타국(摩揭陀國; Magadha) 왕사성의 동북에 위치함. 간칭(簡稱)이 영산(靈山) 혹은 취봉(鷲峰)ㆍ영악(靈嶽). 산형(山形)이 독수리 머리와 같으며 또 산중에 독수리가 많은 연고로써 이름함. 여래가 일찍이 법화(法華) 등의 대승경전을 여기에서 강설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