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이준욱(李遵勗)

태화당 2026. 6. 16. 07:12

李遵勗(谷隱蘊聰禪師法嗣)

駙馬都尉李遵勗 謁蘊聰禪師 問出家事 聰擧崔趙公問徑山欽 弟子出家得否 欽曰 出家是大丈夫事 非將相之所能爲 以此公案答之 勗於言下大悟 作偈曰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後以此偈寄發運朱正辭 時許式亦漕淮南 辭請共和之 曰 學道須是銕漢 著手心頭便判 辭曰 雨催樵子還家 式曰 風送漁舟到岸 又請浮山法遠和 曰 參禪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通身雖是眼睛 也待紅爐再煅 鉏麑觸樹迷封 豫讓藏身呑炭 鷺飛影落秋江 風送蘆花兩岸 勗尋復自和 曰 參禪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趣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一日與堅上座送別 勗問 近離上黨 得屆中都 方接麈談 遽回虎錫 指雲屛之翠嶠 訪雪嶺之淸流 未審此處彼處的的事作麽生 堅曰 利劒拂開天地靜 霜刀纔擧斗牛寒 勗曰 恰値今日耳聵 堅曰 一箭落雙鵰 勗曰 上座爲甚麽著草鞋睡 堅以衣袖一拂 勗低頭曰 今日可謂降伏也 堅曰 普化出僧堂 慈明館於楊億齋中 日夕質疑智證 一日億朝中見勗 曰 近得一道人 眞西河師子 勗曰 我以拘文 不能就謁奈何 億歸 語明曰 李公佛法中人 聞道風遠至 有願見之心 政以法 不得與侍從過從 明於是黎明謁勗 勗閱謁 使童子問曰 道得 卽與上座相見 明曰 今日特來相看 又令童子曰 碑文刊白字 當道種靑松 明曰 不因今日節 餘日定難逢 童子又出曰 都尉言與麽則與上座相見也去 明曰 脚頭脚底 勗乃出 坐定 問曰 我聞西河有金毛師子 是否 明曰 什麽處得此消息 勗便喝 明曰 野干鳴 勗又喝 明曰 恰是 勗大笑 旣辭去 勗問 如何是上座臨行一句 明曰 好將息 曰 何異諸方 明曰 都尉又作麽生 曰 放上座二十棒 明曰 專爲流通 勗又喝 明曰 瞎 曰 好去 明曰 諾諾 億嘗問 釋迦六年苦行 成得甚麽邊事 勗曰 擔折知柴重 寶元戊寅 遣使邀明 曰 海內法友 惟師與楊大年 大年棄我而先 僕年來頓覺衰落 忍死以一見公 明惻然 舟而東下 抵京與勗會 月餘而勗果歿 歿時 膈胃燥熱 有尼道堅謂曰 衆生見劫盡 大火所燒時 都尉切宜照管主人公 勗曰 大師與我煎一服藥來 堅無語 勗曰 這師姑藥也不會煎得 乃畵一圓相 又作偈獻明曰 世界無依 山河匪礙 大海微塵 須彌納芥 拈起幞頭 解下腰帶 若覔死生 問取皮袋 明曰 如何是本來佛性 曰 今日熱如昨日 隨聲便問明 臨行一句作麽生 明曰 本來無𦊱礙 隨處任方圓 曰 昨來困倦 更不答話 明曰 無佛處作佛 於是泊然而逝

蘊聰; (965-1032) 宋代臨濟宗僧 廣東南海人 俗姓張 出家後 參百丈道常 繼之參首山省念 大悟 後歷參湖北洞山守初 大陽山警延 智門師戒等 景德三年(1006) 住襄州谷隱山石門寺 天禧四年(1020) 移住谷隱山太平興國禪寺 徒衆多達千人 竝交結翰林楊文億 中山劉筠等 天聖十年示寂 壽六十八 諡號慈照禪師 李遵勗爲撰碑文 著有語錄石門山慈照禪師鳳巖集一卷 [廣燈錄十七 五燈會元十一 釋氏稽古略四 禪林寶訓音義]

公案; 禪家應於佛祖所化之機緣 而提起越格之言語動作之垂示也 後人稱之名爲公案 又曰因緣 公案者 公府之公文 卽律令也 至嚴而不可犯者 可以爲法 可以斷是非 從上佛祖之垂示 是宗門之正令 以判迷悟者類之 故彼擬名公案 碧巖集 三敎老人序曰 祖敎之書謂之公案者 唱於唐而盛於宋 其來尙矣 二字乃世間法中吏牘語

發運; 指水陸發運使 卽轉運使

法遠; (991-1067) 宋代臨濟宗僧 自稱柴石野人 鄭州(今屬河南)王氏 從三交智嵩出家 嗣法於河南廣敎院歸省 歐陽修嘗參其門下 後住舒州浮山 闡揚宗風 治平四年示寂 壽七十七 諡號圓鑒禪師 [續燈錄四 聯燈會要十三 禪林僧寶傳十七 五燈會元十二 釋氏稽古略四]

鉏麑觸樹迷封; 鉏麑 一亦作鉏霓 春秋時 晉國力士 左傳宣公二年 宣子驟諫 公患之 使鉏麑賊之 晨往 寢門辟矣 盛服將朝 尙早 坐而假寐 麑退 嘆而言曰不忘恭敬 民之主也 賊民之主 不忠 棄君之命 不信 有一於此 不如死也 觸槐而死 [百度漢語]

豫讓藏身呑炭; 豫讓 又作預讓 姬姓 畢氏 春秋戰國時期晉國人 是晉卿智瑤(智伯)家臣 晉出公二十二年(453) 趙韓魏共滅智氏 豫讓用漆塗身 呑炭使啞 暗伏橋下 謀刺趙襄子未遂 後爲趙襄子所捕 臨死時 求得趙襄子衣服 拔劍擊斬其衣 以示爲主復仇 然後伏劍自殺 [百度百科]

中都; 泛指中國歷史上的古都 亦指中國歷史上不同朝代的國都 首都 中京

麈談; 執麈尾而淸談 亦泛指閑居談論

虎錫; 虎 性凶猛 力大 後引申爲勇猛 威武

霜刀; 雪亮鋒利的刀

斗牛; 二十八宿中 斗星與牛星 卽北斗星與牽牛星

西河師子; 西河 位於山西洪洞西南 汾陽市位于山西省 唐肅宗上元元年(766) 縣名改稱西河 汾陽語錄上 上堂云 汾陽門下 有西河師子 當門踞坐 但有來者 卽便齩殺 有何方便 入得汾陽門 得見汾陽人

過從; 指來訪 相互往來

照管; 照察管理

主人公; 禪家提倡自心是佛 自我爲主 因稱自心爲主人公

皮袋; 卽指肉體 所謂身體 猶如於皮袋中藏入一切骨肉臟等物 故又作臭皮袋 臭皮囊

泊然; 恬淡無欲貌

 

이준욱(李遵勗)(谷隱 蘊聰禪師法嗣)

부마도위(駙馬都尉) 이준욱(李遵勗; 988-1038)이 온총선사(蘊聰禪師)를 참알(參謁)하여 출가사(出家事)를 묻자 온총이 거()하되 최조공(崔趙公)이 경산흠(徑山欽; 道欽)에게 묻되 제자가 출가함을 얻겠습니까. 흠왈(欽曰) 출가는 이 대장부사(大丈夫事)라 장상(將相)이 능히 할 바가 아닙니다. 이 공안(公案)으로써 답했다. 준욱이 언하에 대오했다.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학도(學道)는 모름지기 이 철한(鐵漢)이라야 하나니/ 심두(心頭; 心上. 心間)에 착수(著手)하면 바로 판단(判斷; )한다. 후에 이 게()를 발운(發運) 주정사(朱正辭)에게 기탁했고 때에 허식(許式; 次條를 보라)도 또한 회남(淮南)에서 조운(漕運; )했다. 정사(正辭; )가 함께 이()에 화(; 唱和)함을 청했다. 가로되 학도는 모름지기 이 철한이라야 하나니 심두에 착수하면 바로 판단한다. 사왈(辭曰) 비가 초자(樵子)를 재촉()하여 환가(還家)한다. 식왈(式曰) 바람이 어주(漁舟)를 보내어 도안(到岸)했다. 또 부산법원(浮山法遠)에게 화()를 청하자 가로되 참선은 모름지기 이 철한이라야 하나니/ 심두(心頭)에 착수(著手)하면 곧 판단한다/ 통신(通身; 온몸)이 비록 이 안정(眼睛; 눈동자)일지라도/ 또한() 홍로(紅爐)에 다시 단련함(再煅)을 기다려야 한다/ 서예는 나무에 부딪치며 봉강(封疆)을 혼미했고(鉏麑觸樹迷封)/ 예양은 몸을 숨기고 숯을 삼켰다(豫讓藏身呑炭)/ 해오라기가 날아 그림자가 추강(秋江)에 떨어지고/ 바람이 전송(餞送; )하는 노화(蘆花)의 양안(兩岸)이다. 준욱이 이윽고 다시 스스로 화()해 가로되 참선은 모름지기 이 철한이라야 하나니/ 심두에 착수하면 바로 판단한다/ 바로() 무상보리(無上菩提)로 취향(趣向)하고/ 일체의 시비에 상관(相管; )하지 말아라. 어느 날 견상좌(堅上座)를 위해() 송별했다. 욱문(勗問) 요사이 상당(上黨)을 떠나 중도(中都)에 이름()을 얻어 바야흐로 주담(麈談)을 접()했고 급히 호석(虎錫)을 돌이키며() 운병(雲屛)의 취교(翠嶠; 翠峰)를 가리키고 설령(雪嶺)의 청류(淸流)를 심방(尋訪; )했습니다. 미심하나니 차처피처(此處彼處)의 적적(的的; 진실)한 일이 어떻습니까. 견왈(堅曰) 이검(利劒)으로 불개(拂開)하니 천지가 고요하고 상도(霜刀)를 겨우 들매 우두(斗牛)가 차갑습니다. 욱왈(勗曰) 마침 금일 귀가 먹음(耳聵)을 만났습니다(). 견왈 1()에 쌍조(雙鵰)가 떨어졌습니다. 욱왈 상좌는 무엇 때문에 짚신을 신고 잡니까(著草鞋睡). ()이 옷소매를 한 번 떨쳤다. 준욱이 머리를 숙이고 가로되 금일 가히 항복(降伏)했다고 이를 만합니다. 견왈 보화(普化)가 승당(僧堂)에서 나갔습니다. 자명(慈明; 楚圓)이 양억(楊億)의 재중(齋中; 家中)에 유숙(留宿; )했고 일석(日夕)으로 지증(智證)을 질의(質疑)했다. 어느 날 양억이 조정(朝廷; ) 중에서 준욱(遵勗)을 보자 가로되 요사이 한 도인을 얻었는데 참다운 서하사자(西河師子)입니다. 욱왈(勗曰) 나는 문서(文書; )에 구속되어 능히 나아가 예알하지 못하니 어찌하겠습니까(奈何). 양억이 돌아와 자명(慈明)에게 말해 가로되 이공(李公)은 불법 중의 사람입니다. 도풍(道風)이 멀리서 이르렀다 함을 듣고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나 법으로써 정사(政事)하는지라(政以法) 시종(侍從)하거나 과종(過從)함을 얻지 못합니다. 자명이 이에 여명(黎明)에 준욱을 예알했다. 준욱이 열알(閱謁; 名帖을 열람)하고 동자를 시켜 문왈(問曰) 말함을 얻으면 곧 상좌와 상견하겠습니다. 명왈(明曰) 금일 특별히 와서 상간(相看)합니다. 또 동자를 시켜 가로되 비문(碑文)에 백자(白字)를 새겼고() 당도(當道)에 청송(靑松)을 심었습니다(). 명왈 금일절(今日節)을 인하지 않는다면 여일(餘日)엔 꼭() 만나기 어렵습니다. 동자가 또 나가 가로되 도위(都尉)가 말씀하되 그러하다면 곧 상좌와 상견하겠습니다. 명왈 각두각저(脚頭脚底; 발 위와 발밑). 준욱이 이에 나왔다. 좌정(坐定)하자 문왈(問曰) 내가 듣기로 서하(西河)에 금모사자(金毛獅子)가 있다던데 그렇습니까. 명왈 어느 곳에서 이 소식을 얻었습니까. 준욱이 바로 할()했다. 명왈 야간명(野干鳴)입니다. 준욱이 또 할했다. 명왈 흡시(恰是). 준욱이 크게 웃었다. 이미 고별하고 떠나자 준욱이 묻되 무엇이 이 상좌의 임행(臨行)1구입니까. 명왈 좋이 다만 쉬시오(好將息). 가로되 어찌 제방과 다르다 하겠습니까. 명왈 도위(都尉)는 또 어떻습니까. 가로되 상좌에게 20() 놓습니다. 명왈 오로지() 유통(流通)하겠습니다. 준욱이 또 할했다. 명왈 눈멀었습니까(). 가로되 잘 가시오(好去). 명왈 낙낙(諾諾; , ). 양억이 일찍이 묻되 석가가 6년 고행하여 심마변(甚麽邊; 어떤 가)의 일을 성득(成得)했습니까. 욱왈(勗曰) 질대()가 부러져야 섶()이 무거움을 압니다. 보원(寶元) 무인(戊寅; 1038) 사자(使者)를 보내 자명(慈明; )을 맞이하며() 가로되 해내(海內)의 법우(法友)는 오직 스님과 양대년(楊大年; 楊億)인데 대년은 나를 버리고 먼저 갔고(棄我而先) (; 謙辭)도 연래(年來)에 쇠락(衰落)을 돈각(頓覺)했습니다. 죽음을 인내하며(忍死) ()을 일견(一見)하려 합니다. 자명이 측연(惻然)하여 배를 타고() 동하(東下)하였고 경사(京師; )에 다다라() 준욱과 만났다. 월여(月餘; 한 달 남짓)에 과연 몰(歿)했다. 몰시(歿時) 가슴()과 위()가 조열(; 건조하고 열이 남)했다. () 도견(道堅)이 있어 일러 가로되 중생이, 겁이 다하여 큰 화재에 타는 바를 볼 때입니다. 도위는 간절하고 마땅하게(切宜) 주인공(主人公)을 조관(照管)하십시오. 욱왈(勗曰) 대사(大師)는 나를 위해() 한 번 복용할 약을 다려 오십시오. 도견이 말이 없었다. 욱왈(勗曰) 이 사고(師姑; 비구니)가 약도 또한 다릴 줄 알지 못하는구나. 이에 일원상(一圓相)을 그리고 또 작게(作偈)하여 자명에게 바쳐 가로되 세계(世界)가 의지함이 없고/ 산하가 장애되지 않는다(匪礙)/ 대해가 미진(微塵)이며/ 수미(須彌; 수미산)가 개자(芥子; )를 수납(受納; )한다/ 복두(幞頭)를 집어 일으키고/ 요대(腰帶)를 풀어 내린다(解下)/ 만약 사생(死生)을 찾는다면()/ 피대(皮袋)에게 문취(問取)하라. 명왈(明曰) 무엇이 이 본래의 불성입니까. 가로되 금일의 열()이 작일과 같습니다. 수성(隨聲)하여 바로 자명에게 묻되 임행(臨行)의 일구(一句)가 무엇입니까(作麽生). 명왈(明曰) 본래 괘애(𦊱礙)가 없으며 곳 따라 방원(方圓)에 맡깁니다. 가로되 작래(昨來)에 곤권(困倦)하여 다시 답화(答話)하지 않겠습니다. 명왈 무불처(無佛處)에 작불(作佛)하시오. 이에 박연(泊然)히 서거했다.

蘊聰; (965-1032) 송대 임제종승. 광동 남해 사람이니 속성은 장. 출가한 후 백장도상을 참했고 이어서 수산성념(首山省念)을 참해 대오했음. 후에 호북 동산수초ㆍ대양산 경연ㆍ지문사계 등을 역참(歷參)했음. 경덕 3(1006) 양주 곡은산(谷隱山) 석문사(石門寺)에 주()했고 천희 4(1020) 곡은산 태평흥국선사로 이주했음. 도중이 많을 적엔 천 인에 달했음. 아울러 한림 양문억, 중산 유균 등과 교결(交結)했음. 천성 10년에 시적했고 나이는 68. 시호는 자조선사(慈照禪師)며 이준욱이 비문을 지었음. 저서에 어록인 석문산자조선사봉암집 1권이 있음 [광등록17. 오등회원11. 석씨계고략4. 선림보훈음의].

公案; 선가에서 불조의 소화(所化)의 기연에 응해 격식을 초월한 언어와 동작을 제기하여 수시함임. 후인이 이를 일컬어 공안이라고 이름했음. 또 가로되 인연(因緣). 공안이란 것은 공부(公府)의 공문이니 곧 율령임. 지엄하여 가히 범하지 못하는 것이며 가이(可以) 법이 되며 가이 시비를 끊음. 종상의 불조의 수시는 이 종문의 정령(正令)이니 미오자(迷悟者)를 판단함이 이와 유사한지라 고로 그 이름을 본떠 공안이라 함. 벽암집 삼교노인의 서에 가로되 조교(祖敎)의 글을 일컬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당나라에서 창()하고 송나라에서 성했으니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두 글자는 곧 세간법 중의 이독(吏牘; 公文)의 말이다.

發運; 수륙(水陸)의 발운사(發運使)를 가리킴. 곧 전운사(轉運使).

法遠; (991-1067) 송대 임제종승. 자칭이 시석야인(柴石野人)이며 정주(지금 하남에 속함) 왕씨. 삼교지숭(三交智嵩)을 좇아 출가하고 하남(河南) 광교원(廣敎院) 귀성(歸省)에게서 법을 이었음. 구양수(歐陽修)가 일찍이 그의 문하에서 참구했음. 후에 서주(舒州) 부산(浮山)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천양(闡揚)했고 치평 4년에 시적했음. 나이는 77이며 시호는 원감선사(圓鑒禪師) [속등록4. 연등회요13. 선림승보전17. 오등회원12. 석씨계고략4].

鉏麑觸樹迷封; 서예(鉏麑)는 한편으론 서예(鉏霓)로 지음. 춘추 시 진국(晉國)의 역사(力士). 좌전 선공(宣公) 2. 선자(宣子)가 취간(驟諫; 여러 차례 나아가 간함)했다. 선공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 서예(鉏麑)를 시켜 그를 죽이게() 했다. 새벽에 갔는데 침문(寢門)이 열렸다. 성복(盛服; 화려한 옷차림)하고 장차 조현(朝見)하려 하는데 아직 일러 앉아서 가매(假寐)했다. 서예가 물러나 탄식하며 말해 가로되 공경을 잊지 않으니 인민의 주(). 인민의 주를 죽이면 불충(不忠)이며 주군의 명을 버리면 불신(不信)이다. 여기에서 하나가 있으니 죽음만 같지 못하다. 홰나무에 부딪쳐 죽었다 [백도한어].

豫讓藏身呑炭; 예양(豫讓)은 또 예양(預讓)으로 지음. 희성(姬姓)이며 필씨(畢氏). 춘추전국 시기 진()나라 사람. 이는 진경(晉卿) 지요(智瑤; 智伯)의 가신(家臣). () 출공 22(453) 조한위(趙韓魏)가 함께 지씨(智氏)를 없앴음. 예양이 옻을 사용해 몸에 바르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게 하였으며 몰래 다리 아래 숨어 조양자(趙襄子)를 모자(謀刺; 찔러 죽임을 도모함)했으나 이루지 못했음. 후에 조양자에게 사로잡히는 바가 되었고 죽음에 임한 때 조양자의 의복을 구득(求得)하여 검을 뽑아 그 옷을 격참(擊斬)하여 주군을 위해 복구(復仇; 복수)함을 보였음. 연후에 복검(伏劍; 검으로 스스로 벰)하여 자살했음 [백도백과].

中都; 널리 중국 역사상의 고도(古都)를 가리킴. 또한 중국 역사상의 같지 않은 조대(朝代)의 국도ㆍ수도ㆍ중경(中京)을 가리킴.

麈談; 주미(麈尾)를 가지고 청담(淸談). 또한 널리 한거(閑居)하며 담론함을 가리킴.

虎錫; ()는 성품이 사납고 힘이 큼. 후에 인신(引申; 轉義)하여 용맹, 위무(威武)로 삼았음.

霜刀; 눈처럼 밝고 칼날이 날카로운 칼.

斗牛; 28(宿) 중에 두성(斗星)과 우성(牛星)이니 곧 북두성과 견우성.

西河師子; 서하는 산서 홍동 서남에 위치하고 분양시는 산서성에 위치함. 당 숙종 상원 원년(766) 현명(縣名)을 서하로 개칭했음. 분양어록상. 상당해 이르되 분양의 문하에 서하사자(西河師子)가 있어 당문(當門)에 웅크리고 앉았다. 단지 오는 자가 있으면 바로 곧 물어 죽인다. 어떤 방편이 있어 분양문에 입득(入得)하여 분양인을 득견하겠는가.

過從; 내방을 가리킴. 상호 왕래함

主人公; 선가에선 자기의 마음이 이 부처라고 제창(提倡; 提唱)하며 자아(自我)를 주()로 삼는지라 인하여 자기의 마음을 일컬어 주인공이라 함.

照管; 조찰(照察)하며 관리함.

皮袋; 곧 육체를 가리킴. 이른 바 신체는 마치 피대(皮袋) 속에 일체의 골육(骨肉)과 장기(臟器) 등의 물건을 저장(貯藏)해 넣은 것과 같은지라 고로 또한 취피대(臭皮袋)ㆍ취피낭(臭皮囊)으로 지음.

泊然; 염담(恬淡; 고요하고 담박함)하며 욕심이 없는 모양.

 

贊曰 無孔笛子撞著氈拍板

無孔笛子; 無孔竅的笛子 不能吹出通常的曲調 喩指超越言句 玄妙奇特的禪法或機鋒

氈拍板; 又作氈拍版 拍版 一種樂器也 調節音律的薄版 氈拍版 以氈裹表的拍版 撞著無聲也 喩指超越言句玄妙奇特的禪法或機鋒

 

찬왈(贊曰) 무공적자(無孔笛子)로 전박판(氈拍板)을 두드렸다(撞著).

無孔笛子; 구멍이 없는 피리니 능히 통상의 곡조를 불어 내지 못함. 언구를 초월한 현묘하고 기특한 선법 혹 기봉을 비유로 가리킴.

氈拍板; 또 전박판(氈拍版)으로 지음. 박판은 일종의 악기니 음률을 조절하는 얇은 판임. 전박판은 전(; 毛氈)으로 표면을 싼 박판이니 두드려도 소리가 없음. 언구를 초월한 현묘하고 기특한 선법 혹 기봉을 비유로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