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장방평(張方平)

태화당 2026. 6. 17. 07:23

張方平

字安道 號樂全 宋城人 官太子少師 諡文定 以廣大心爲淸淨覺 慶曆中 嘗爲滁州守 游瑯瑘山 抵藏院 偶見楞伽經 取視之 忽感悟前身事 入手恍然如獲舊物 開卷未終 夙障氷解 細視筆畫 手跡宛然 讀至世間離生滅 猶如虗空華 遂明己見 偈曰 一念在生滅 千機縛有無 神鋒輕擧處 透出走盤珠 暮年以此經授蘇軾 且以錢三十萬使印施江淮間 軾乃爲書而刻之 王安石嘗問平曰 孔子去世百年而有孟子 後絕無人 何也 平曰 豈無人 亦有過之者 曰 誰 曰南嶽讓 嵩山珪 馬祖 石頭 丹霞 無業 雪峰 巖頭 若此類是也 安石聞擧 意不甚解 乃問曰 何謂也 平曰 儒門淡薄 收拾不住 盡歸釋氏矣 安石欣然嘆服 後擧似張無盡 無盡撫几曰 達人之論也

太子少師; 官名 太子太師 太子太傅 太子太保 太子少師 太子少傅 太子少保 簡稱三師三少 原是天子或太子左右最親近的人 師是傳授其知識的 傅是監督其行動的 保是照管其身體的 卽分別是負責君主智育德育體育的人 隋唐以後 太子的師傅 均以別的官銜任命 三師三少 公爲加官贈官的官銜 沒有職事 宋代三師是宰相親王的加官官銜 三師是正一品 三少是從一品 明淸兩代 三師爲從一品 三少是正二品 [百度百科]

楞伽經; 四卷 全稱楞伽阿跋多羅寶經 收於大正藏第十六冊 楞伽 山名 此云不可往 阿云無 跋多羅云上 寶 貴重義 經 貫攝義 是名不可往無上寶經 爲法相宗所依六經之一 本經宣說世界萬有皆由心所造 吾人認識作用之對象不在外界而在內心 是結合如來藏思想與唯識阿賴耶識思想 爲代表印度後期大乘佛敎思想之經典 本經的漢譯本有三種 一劉宋求那跋陀羅譯本 楞伽阿跋多羅寶經 又稱四卷楞伽經 宋譯楞伽經 二北魏菩提流支譯 入楞伽經 又稱十卷楞伽經 魏譯楞伽經 三唐實叉難陀譯 大乘入楞伽經 又稱七卷楞伽經 唐譯楞伽經 四卷楞伽經爲菩提達摩所付囑慧可之書 特別爲禪宗所重

蘇軾; (1036-1101) 北宋居士 四川眉山人 字子瞻 自號東坡 唐宋八大家之一 工詩詞 竝擅書畫 元豐三年(1080) 訪江州東林禪院常總禪師(嗣黃龍慧南) 於對談中有悟 遂贈詩偈一首 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吐露其悟境 至今仍膾炙人口 遺作有東坡全集一一五卷 東坡易傳九卷 東坡書傳十三卷 東坡志林五卷 東坡詞一卷等 [佛祖統紀四十六 普燈錄二十三 東坡先生年譜(東坡七集卷首) 宋史三三八]

王安石; (1021-1086) 宋代居士 字介甫 臨川(今屬江西)人 皇祐(1049- 1053)進士 神宗朝拜相 變法圖强 多所建樹 一日訪蔣山元禪師 坐問談論 品藻古今 後茹素持名 參究心要 讀首楞嚴得旨 居金陵 由蔣山至其故宅 當半道 捨宅爲寺 因號半山 有王文公文集 臨川先生文集等 [名公法喜志三 普燈錄二十三]

南嶽讓; 懷讓(677-744) 唐代僧 金州安康(陝西漢陰)人 俗姓杜 十五歲出家 一度習律 後參曹溪 爲六祖慧能之高足 留侍十五年 六祖示寂 始於唐玄宗先天二年(713) 住於湖南南嶽般若寺觀音臺 大闡禪宗 開南嶽一系 世稱南嶽懷讓 其法系相對於靑原行思之法系(靑原下) 而稱南嶽下 同爲南宗禪之二大法流 弟子馬祖道一繼其法流 其後成五家七宗之系派 於天寶三年八月十一日 圓寂於衡嶽(南嶽) 壽六十八 敬宗時 追諡大慧禪師 [宋高僧傳九 傳燈錄五 五燈會元三]

嵩山珪; 元珪(644-716) 唐代北宗僧 俗姓李 伊闕(今河南伊川)人 幼年出家 唐永淳二年(683) 受具足戒 隷嵩山閑居寺 硏習毘尼 後謁慧安國師 頓悟玄旨 遂遷龐塢 屢有異迹 名聲益彰 [宋高僧傳十九 五燈會元二]

無業; (762-823) 唐代僧 商州上洛(今陝西商縣)人 姓杜氏 九歲依開元寺志本禪師受大乘經 五行俱下 十二落髮 二十受具戒於襄州幽律師 後往江西 瞻禮馬祖 竝嗣其法 往淸涼金閣寺 重閱大藏 周八稔而畢 復南下至汾州(今山西汾陽) 住開元寺二十載 唐憲宗屢召 皆辭疾不赴 長慶三年十二月而逝 壽六十二 臘四十二 勅諡大達國師 [傳燈錄八 聯燈會要五]

張無盡; 張商英(1043-1121) 北宋黃龍派居士 蜀州(四川崇慶)新津人 字天覺 號無盡居士 自幼卽銳氣倜儻 日誦萬言 初任通州主簿 一日入寺見藏經之卷冊齊整 怫然曰 吾孔聖之書 乃不及此 欲著無佛論 後讀維摩經有感 乃歸信佛法 神宗(1068-1085)時 受王安石推擧入朝 大觀年間 爲尙書右僕射 未久因事謫於外 及遷江西運使 禮謁東林寺常總(嗣黃龍) 得其印可 復投兜率寺從悅(黃龍下二世) 就巖頭末後之句有所參究 得嗣其法 紹聖(1094-1098)初年 受召爲左司諫 因上書論司馬光呂公著而左遷 又常詆當時宰相蔡京 故屢受貶 大觀四年(1110)六月 天久旱 乃受命祈雨 晩忽雨 徽宗大喜 賜商霖二字 後受蔡京讒言 貶知河南府 宣和四年歿 壽七十九 賜諡文忠 著有護法論一卷 [釋氏稽古略四 居士傳二十八 宋史三五一]

 

장방평(張方平; 1007-1091)

자가 안도(安道)며 호가 낙전(樂全)이며 송성(宋城) 사람이며 벼슬이 태자소사(太子少師)며 시()가 문정(文定)이며 광대심(廣大心)으로써 청정각(淸淨覺)을 삼았다. 경력(慶曆; 1041-1048) 중 일찍이 저주수(滁州守)가 되었는데 낭야산(瑯瑘山)을 노닐다가 장원(藏院)에 다다라 우연히 릉가경(楞伽經)을 보았다. 취하여 그것()을 보다가 홀연히 전신사(前身事)를 감오(感悟)했다. 입수(入手)하여 황연(恍然; 저본에 恊然으로 지었음)히 구물(舊物)을 획득함과 같았고 개권(開卷)하여 마치지 아니한 전에 숙장(夙障)이 얼음 풀리 듯했다(氷解). 필획(筆畫)을 자세히 보매 수적(手跡)이 완연(宛然)했다. 읽다가 세간(世間)에서 생멸을 여의매 마치 허공화(虗空華)와 같다에 이르자 드디어 기견(己見; 자기의 지견)을 밝혔다. 게왈(偈曰) 일념이 생멸에 있으면/ 천기(千機)가 유무(有無)에 계박(繫縛; )된다/ 신봉(神鋒)을 가볍게 드는 곳에/ 투출(透出)하여 소반(小盤; )에 달리는 구슬이다. 모년(暮年)에 차경(此經)을 소식(蘇軾)에게 주었고 또() () 30()으로써 강회(江淮) 사이에 인시(印施)하게 했다. 소식이 이에 서사(書寫; )하여 그것을 새겼다(刻之). 왕안석(王安石)이 일찍이 방평(方平)에게 물어 가로되 공자(孔子)가 거세(去世)한 지 백 년에 맹자(孟子)가 있었고 후에 단절되어 사람이 없음은 어찌하여서입니까. 평왈(平曰) 어찌 사람이 없다 하리오, 또한 그()를 초과하는 자가 있습니다. 가로되 누구입니까. 가로되 남악양(南嶽讓; 懷讓), 숭산규(嵩山珪; 元珪), 마조(馬祖; 道一), 석두(石頭; 希遷), 단하(丹霞; 天然), 무업(無業), 설봉(雪峰; 義存), 암두(巖頭; 全豁)니 차류(此類)와 같은() 이가 이것입니다. 안석(安石)이 문거(聞擧)하고 뜻에 심해(甚解)하지 못했다. 이에 문왈(問曰) 무엇을 이르심입니까. 평왈(平曰) 유문(儒門)은 담박(淡薄)하여 수습(收拾)해도 부주(不住)하고 모두() 석씨(釋氏)로 돌아갔습니다(). 안석이 흔연(欣然)하며 탄복(嘆服)했다. 후에 장무진(張無盡)에게 거사(擧似; 들어 보임)하자 무진이 무궤(撫几; 案席을 어루만짐)하며 가로되 달인(達人)의 논()입니다.

太子少師; 벼슬 이름. 태자태사(太子太師)ㆍ태자태부(太子太傅)ㆍ태자태보(太子太保)ㆍ태자소사(太子少師)ㆍ태자소부(太子少傅)ㆍ태자소보(太子少保)를 간칭하여 33(三師三少)라 함. 원래 이는 천자 혹 태자의 좌우에서 가장 친근한 사람임. ()는 이 그의 지식을 전수(傳授)하는 것이며 부()는 이 그의 행동을 감독(監督)하는 것이며 보()는 이 그의 신체를 조관(照管)하는 것임. 곧 분별하면 이는 군주의 지육(智育)ㆍ덕육(德育)ㆍ체육(體育)을 부책(負責)하는 사람임. 수ㆍ당 이후로는 태자의 사부(師傅)는 균일하게 다른 관함(官銜)으로써 임명했음. 33소는 공적(公的)으로 가관증관(加官贈官)의 관함이 되고 직사(職事)가 있지 않았음. 송대(宋代) 3()는 이 재상과 친왕(親王)의 가관관함(加官官銜)이었고 3()는 이 정1품이며 3()는 이 종1품이었음. 명ㆍ청 양대(兩代)3사는 종1품이 되었고 3소는 이 정2품이었음 [백도백과].

楞伽經; 4. 전칭이 릉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이며 대정장(大正藏) 16책에 수록되었음. 릉가는 산 이름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불가왕(不可往. 가히 가지 못한다). ()는 이르되 무()며 발다라(跋多羅)는 이르되 상()이며 보()는 귀중(貴重)의 뜻이며 경()은 관섭(貫攝)의 뜻이니 이 이름이 불가왕무상보경(不可往無上寶經). 법상종(法相宗)에서 의지(依持)하는 바의 6()의 하나. 본경(本經)은 세계만유(世界萬有)가 다 마음으로부터 지어진 바며 우리 사람의 인식작용(認識作用)의 대상(對象)이 외계(外界)에 있지 않으며 내심(內心)에 있다고 선설(宣說). 이것은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과 유식(唯識)의 아뢰야식사상(阿賴耶識思想)이 결합된 인도 후기의 대승불교사상을 대표하는 경전임. 본경(本經)의 한역본(漢譯本)3()이 있음. 1. 유송(劉宋)의 구나발다라역본(求那跋陀羅譯本)의 릉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이니 또 명칭이 사권릉가경(四卷楞伽經)ㆍ송역릉가경(宋譯楞伽經). 2. 북위(北魏)의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입릉가경(入楞伽經)이니 또 명칭이 십권릉가경(十卷楞伽經)ㆍ위역릉가경(魏譯楞伽經). 3. ()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대승입릉가경(大乘入楞伽經)이니 또 명칭이 칠권릉가경(七卷楞伽經)ㆍ당역릉가경(唐譯楞伽經). 사권릉가경은 보리달마가 혜가(慧可)에게 부촉(付囑)한 바의 책이라서 특별히 선종에서 소중히 여김.

蘇軾; (1036-1101) 북송 거사. 사천 미산 사람이며 자는 자첨(子瞻)이며 자호(自號)가 동파(東坡)니 당송 8대가(大家)의 하나. 시사(詩詞)에 공교(工巧)했고 아울러 서화(書畫)에 뛰어났음(). 원풍 3(108 0) 강주 동림선원 상총선사(常總禪師; 황룡혜남을 이었음)를 참방하여 대담하던 중에 깨침이 있었음. 드디어 시게 1수를 드렸으니 계성(溪聲)이 곧 이 광장설(廣長舌)이거늘/ 산색인들 어찌 청정신이 아니랴/ 야래(夜來)의 팔만사천 게를/ 다른 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거사(擧似; 들어 보임)할까. 그 깨친 경계를 토로했는데 지금토록 그대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유작(遺作)에 동파전집 11 5권ㆍ동파역전 9권ㆍ동파서전 13권ㆍ동파지림 5권ㆍ동파사 1권 등이 있음 [불조통기46. 보등록23. 동파선생연보(동파7집권수) 송사338].

王安石; (1021-1086) 송대 거사. 자는 개보며 임천(지금 강서에 속함) 사람. 황우(1049-1053)에 진사(進士)였고 신종조(神宗朝)에 배상(拜相)했음. 변법(變法)을 도모함이 강했고 많이 건수(建樹; 세우다)하는 바였음. 어느 날 장산원선사(蔣山元禪師)를 예방하여 좌문(坐問)하며 담론하면서 고금을 품조(品藻; 品評)했음. 후에 여소(茹素; 素食을 먹음)로 지명(持名)했고 심요를 참구했고 수릉엄을 읽고서 득지(得旨)했음. 금릉에 거주했는데 장산(蔣山)으로 말미암아 그의 고택(故宅)에 이르다가 반도(半道)에 당하여 고택을 희사해 사원으로 삼은지라 인하여 반산(半山)으로 호했음. 왕문공문집과 임천선생문집 등이 있음 [명공법희지3. 보등록23].

南嶽讓; 회양(懷讓; 677-744)이니 당대승. 금주(金州) 안강(安康; 섬서 한음)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두(). 15세에 출가하여 한 차례 율()을 익히고 뒤에 조계(曹溪)를 참알(參謁)하여 6조 혜능(慧能)의 고족(高足)이 되었음. 15년 동안 머물며 시봉했고 6조가 시적(示寂)하자 비로소 당현종(唐玄宗) 선천(先天) 2(713) 호남 남악(南嶽)의 반야사 관음대(觀音臺)에 머물면서 선종을 크게 천양(闡揚)해 남악의 한 법계(法系)를 열었으니 세칭 남악회양(南嶽懷讓). 그 법계가 청원행사(靑原行思)의 법계(靑原下)에 상대하므로 남악하(南嶽下)로 일컬으며 한가지로 남종선(南宗禪)2() 법류(法流)가 되며 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이 그 법류(法流)를 계승하였음. 그 후 57(五家七宗)의 계파를 이루었음. 천보(天寶) 3811일에 형악(衡嶽; 남악)에서 원적(圓寂)했으니 나이는 68. 경종(敬宗) 때 추시(追諡)하여 대혜선사(大慧禪師)라 했음 [송고승전9. 전등록5. 오등회원3].

嵩山珪; 원규(元珪; 644-716)니 당대 북종승. 속성은 이()며 이궐(지금의 하남 이천) 사람. 유년에 출가했고 당 영순 2(683) 구족계를 받았음. 숭산 한거사에 예속되어 비니를 연습했고 후에 혜안국사(慧安國師)를 예알해 현지(玄旨)를 돈오했고 드디어 방오(龐塢)로 옮겼으며 자주 이적(異迹)이 있어 명성이 더욱 드러났음 [송고승전19. 오등회원2].

無業; (762-823) 당대승. 상주 상락(지금의 섬서 상현) 사람이며 성은 두씨. 9세에 개원사 지본선사에게 의지해 대승경을 수학(受學)했는데 5행을 함께 내리읽었음. 12에 낙발(落髮)했고 20에 양주 유율사에게서 구계(具戒)를 받았음. 후에 강서로 가서 마조를 첨례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청량 금각사로 가서 대장경을 두 번 열람했는데 여덟 해를 돌아 마쳤음. 다시 남하하여 분주(지금의 산서 분양) 개원사에 주()하기 스무 해였음. 당 헌종이 여러 번 불렀으나 모두 사질(辭疾;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 다다르지 않았음. 장경 312월에 떠났음. 나이 62, 42. 칙시가 대달국사(大達國師) [전등록8. 연등회요5].

張無盡; 장상영(張商英; 1043-1121)이니 북송 황룡파 거사. 촉주(蜀州; 사천 숭경) 신진(新津) 사람이며 자는 천각(天覺)이며 호는 무진거사(無盡居士). 어릴 적부터 곧 예기(銳氣)가 척당(倜儻; 근기가 卓異)하여 하루에 만언(萬言)을 외웠음. 처음에 통주주부(通州主簿)에 임용되었는데 어느 날 입사(入寺)하여 장경(藏經)의 권책(卷冊)이 제정(齊整)함을 보고 발끈하며 가로되 우리 공성(孔聖)의 서책이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겠는가 하고는 무불론(無佛論)을 지으려고 했음. 후에 유마경을 읽고 느끼는 게 있어 이에 불법에 귀신(歸信)했음. 신종(神宗; 1068-1085) 때 왕안석(王安石)의 추거(推擧)를 받아 입조(入朝)했고 대관년 간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가 되었으며 오래지 않아 사건으로 인해 외지(外地)로 적강(謫降)되었다가 강서운사(江西運使)로 좌천(左遷)됨에 이르렀음. 동림사(東林寺) 상총(常總; 황룡을 이었음)을 예알(禮謁)하고 그의 인가(印可)를 얻었음. 다시 도솔사 종열(從悅; 황룡하 2)에게 투입해 암두(巖頭)의 말후지구(末後之句)로 나아가 참구하는 바가 있었고 그의 법 이음을 얻었음. 소성(紹聖; 1094-1098) 초년(初年) 부름을 받아 좌사간(左司諫)이 되었는데 글을 올려 사마(司馬) 광려공(光呂公)의 저서를 논함으로 인해 좌천되었고 또 늘 당시의 재상 채경(蔡京)을 욕한지라 고로 여러 차례 폄강(貶降)을 받았음. 대관(大觀) 4(1110) 6월에 하늘이 오래 가물었는데 칙명을 받고 기우(祈雨)하여 저녁에 홀연히 비가 와 휘종(徽宗)이 크게 기뻐하며 상림(商霖) 2()를 주었음. 후에 채경(蔡京)의 참언(讒言)을 받아 지하남부(知河南府)로 폄강(貶降)되었음. 선화(宣和) 4년에 죽었으니 나이는 79며 사시(賜諡)가 문충(文忠). 저서에 호법론(護法論) 1권이 있음 [석씨계고략4. 거사전28. 송사351].

 

贊曰 史稱范公 宋朝人物 第一及考 其參慧覺 有盡收識性入玄關之句 自非禪學精深 何以解行卓絕乃爾 孟軻氏云 有本者如是 予亦云 但得本 莫愁末 又曰 向上一著 其知有此事者 宋以後 出自宰官居士爲多 如晁文元 李文靖 杜祁公 張文定輩 雖師承印證 考據無從 然皆見地高明 履踐眞確 有古尊宿遺風 因各附錄之 以爲宗乘之一助云

卓絕; 程度達到極點 超過一切

向上一著; 無上至眞之禪道 與向上一路 向上一竅同義 是千聖不傳之妙道

宗乘; 各宗所弘之宗義及敎典云宗乘 多爲禪門及淨土門標稱自家之語

 

찬왈(贊曰) 사칭(史稱)하되 범공(范公; 范仲淹)은 송조(宋朝)의 인물이며 제일급고(第一及考; 첫째로 考試及第). 그가 혜각(慧覺)을 참()해 식성(識性)을 진수(盡收)하여 현관(玄關)에 든다는 구가 있다. 스스로 선학(禪學)이 정심(精深)하지 않다면 무슨 까닭으로(何以) 해행(解行)이 탁절(卓絕)함이 이에 그러하겠는가(乃爾). 맹가씨(孟軻氏; 孟子의 이름이 )가 이르되 근본이 있는 자(有本者)는 이와 같다. 나도 또한 이르나니 단지 본()을 얻었다면 말()을 수심(愁心)하지 말아라. 우왈(又曰) 향상일착(向上一著)이다. , 차사(此事; 宗門一大事)가 있음을 아는 자는 송() 이후에 재관(宰官; 널리 官吏를 가리킴)과 거사(居士)로부터 나옴이 많음이 된다. 예컨대() 조문원(晁文元; 晁逈), 이문정(李文靖; 李沆), 두기공(杜祁公; 杜衍), 장문정(張文定; 張方平) (). 비록 사승(師承)의 인증(印證)은 고거(考據; 考證)가 좇음()이 없지만 그러나 모두 견지(見地)가 고명(高明)하고 이천(履踐)이 진확(眞確; 진실하고 확실)하여 고존숙(古尊宿)의 유풍(遺風)이 있다. 인하여 각기 그것()을 부록(附錄)하여 종승(宗乘)의 일조(一助)로 삼는다.

卓絕; 정도(程度)가 극점(極點)에 달도(達到)하여 일체를 초과함.

向上一著; 위없는 지진(至眞)의 선도(禪道)니 향상일로ㆍ향상일규(向上一竅)와 같은 뜻. 이는 천성(千聖)도 전하지 못하는 묘도(妙道).

宗乘; 각종(各宗)에서 홍포(弘布)하는 바의 종의(宗義)와 및 교전(敎典)을 종승이라고 말함. 다분히 선문(禪門)과 및 정토문(淨土門)에서 자가(自家)의 말을 표칭(標稱)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