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양걸(楊傑)

태화당 2026. 6. 18. 06:49

楊傑(天衣義懷禪師法嗣)

楊傑 字次公 無爲人 號無爲居士 少年登科 官尙書主客郞中 提點兩淅刑獄 尊崇佛法 歷參名宿 晚從天衣義懷禪師遊 懷每引老龐機語令參究 後奉祠泰山 一日鷄方鳴 睹日如盤湧忽大悟 乃別有男不婚有女不嫁之偈曰 男大須婚 女長須嫁 討甚閑工夫 更說無生話 書以寄懷 懷稱善 後會芙蓉道楷禪師 傑曰 與師相別幾年 曰 七年 曰 學道來 參禪來 曰 不打這鼓笛 曰 恁麽則空游山水 百無所能也 曰 別來未久 善能高鑒 傑大笑 一日與寶果昌遊山 傑拈起飯石問曰 旣是飯石 爲甚麽咬不破 昌曰 祇爲太硬 傑曰 猶涉煩詞 昌曰 未審提刑作麽生 傑曰 硬 昌曰 也是第二月 傑爲昌寫七佛殿額 乃問 七佛重出世時如何 昌曰 一回相見一回新 傑然之 傑嘗謂僧曰 大凡學道之人 十二時中 嘗須照顧 不見南泉道三十年看一頭水牯牛 若犯人苗稼 摘鼻拽回 如今變成露地白牛 躶躶地放他不肯去 諸人長須著精彩 不可說禪道之時 便有箇照帶的道理 洗菜作務之時 不可便無知也 如鷄抱卵 若拋離起去 暖氣便不接 不成種子 如今萬境森羅 六根煩動 略失照顧 便致喪身失命 不是小事 傑平居以淨土自信 繪丈六阿彌陀佛 隨身觀念 嘗曰 愛不重不生娑婆 念不一不生極樂 凡聖一體 機感相通 諸佛心內衆生 塵塵極樂 衆生心中淨土 念念彌陀 若自棄己靈 是誰之咎 臨終作辭世偈曰 生亦無可戀 死亦無可捨 大虗空中 之乎者也 將錯就錯 西方極樂 說偈已 端坐而化

義懷; (989-1060) 宋代僧 永嘉樂淸(浙江樂淸)人 俗姓陳 及長 入京師之景德寺爲童行 天聖(1023-1031)年中 試經得度 初參金鑾善 又謁葉縣歸省 皆不契 乃東遊姑蘇翠峰 謁雪竇重顯 因汲水次 擔墮于地 豁然大悟 顯卽印可 後出世於鐵佛寺 提倡法要 未久 住越州天衣寺 凡五遷法席 所到皆興其荒廢 大振雲門之法道 嘉祐五年入寂 壽七十二 世稱天衣義懷 諡號振宗禪師 法嗣有慧林圓照 法雲法秀 長蘆應夫 佛日智才等八十餘人 [續傳燈錄六 禪林僧寶傳十一 佛祖歷代通載二十七 五燈會元十六 釋氏稽古略四]

提點; 宋朝官職之名 提點者 提擧點檢其事使無塵滯也 [象器箋七]

道楷; (1043-1118) 宋代曹洞宗僧 沂州沂水(山東沂水)人 俗姓崔 幼隱伊陽山中 學辟穀之術 後悟其非 棄而習佛 於京師術臺寺出家 後參投子義靑得法 元豐五年(1082)弘法於沂州仙洞山 竝先後住持洛陽之招提 郢州之大陽山 隨州之大洪山崇寧保壽禪院 東京天寧寺等刹 大揚洞上之風 從者如雲 崇寧三年(1104) 徽宗聞其名 召住京師十方淨因禪院 賜紫衣及定照禪師之號 師以衣非佛制 卻而不受 帝怒 黥而流放淄州 師終不屈 後帝悟 聽其自便 師遂於芙蓉湖上建寺 大揚禪風 學者風從 政和七年(1117) 徽宗賜以華嚴禪寺一額 後又賜名興化寺 於翌年五月入寂 壽七十六 世稱芙蓉道楷 法嗣有丹霞子淳 淨因法成等 有芙蓉道楷禪師語要一卷(又作定照禪師語要) [禪林僧寶傳十七 聯燈會要二十八 湖北金石志十]

高鑒; 敬詞 稱他人對事物的明察

第二月; 與第一月相對 泛指似有非有之事物 猶如眼翳之人 望眞月時幻見二月 轉指分別妄心情見知解

水牯牛; 一卽水牛 玉篇 牯 牝牛 正字通 牯 俗稱牡牛曰牯 二喩自心自性 此指二

露地白牛; 露地 爲門外之空地 喩平安無事之場所 白牛 意指淸淨之牛 法華經譬喩品中 以白牛譬喩一乘敎法 從而指無絲毫煩惱汚染之淸淨境地爲露地白牛 新華嚴經論二 是故門前之乘對三乘設 露地白牛方明至無依之處 露地者 卽佛地也 爲佛智無依止故 故云露地 白牛者 卽法身悲智也 以法身無相名之爲白 智能觀機悲心濟物 名之爲牛

躶躶地; 指放下萬事 身心脫落 天眞獨朗 無纖毫情塵之貌 地 助詞

精彩; 精神煥發 有風彩

機感; 衆生有善根之機 而感佛也 又衆生有善根之機 故佛感應之也

之乎者也; 一指文章言句 二詩偈中揷入句子 無實義 此指二

 

양걸(楊傑)(天衣 義懷禪師法嗣)

양걸(楊傑)은 자가 차공(次公)이며 무위(無爲) 사람이며 호가 무위거사(無爲居士). 소년(少年)에 등과(登科)했고 벼슬이 상서주객랑중(尙書主客郞中) 제점양절형옥(提點兩淅刑獄)이었다. 불법을 존숭(尊崇)했고 명숙(名宿; 著名禪宗高僧)을 역참(歷參)했고 만년에 천의(天衣; 天衣寺) 의회선사(義懷禪師)를 좇아 노닐었다. 의회가 매번 노방(老龐; 방거사)의 기어(機語)를 인용하여 참구하게 했다. 후에 태산(泰山)에 봉사(奉祠)했는데 어느 날 닭이 방금(方今; ) 우는데 해가 소반(小盤) 같이 솟아오름()을 보고() 홀연히 대오했다. 이에 아들이 있으나 결혼하지 않고 딸이 있으나 시집가지 않는다는 게(有男不婚有女不嫁之偈; 방거사의 게)에 별(; 다르게 말함)하여 가로되 아들이 크면 모름지기 결혼해야 하고/ 딸이 자라면 모름지기 시집가야 한다/ 무슨 쓸데없는 공부(閑工夫)를 찾아()/ 다시 무생화(無生話)를 설하리오. 써서() 의회에게 기탁하자 의회가 칭선(稱善)했다. 후에 부용(芙蓉; 芙蓉湖) 도해선사(道楷禪師)를 만나자 걸왈(傑曰) 스님과 상별(相別)한 지 몇 년입니까. 가로되 7년입니다. 가로되 학도(學道)하고 왔습니까, 참선하고 왔습니까. 가로되 이 고적(鼓笛)을 치지() 않습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곧 공연히 산수(山水)를 유람(游覽)했고 온갖 것에 능한 바가 없습니다(百無所能也). 가로되 헤어진 지 오래지 않았거늘 잘 능히 고감(高鑒)합니다. 양걸이 대소(大笑)했다. 어느 날 보과창(寶果昌)과 더불어 유산(遊山)했다. 양걸이 반석(飯石; 돌 이름)을 집어 일으키고 문왈(問曰) 이미 이 반석이거늘 무엇 때문에 물어 깨뜨리지 못합니까. 창왈(昌曰) 다만() 너무 단단하기(太硬) 때문입니다. 걸왈(傑曰) 오히려 번사(煩詞)에 건넜습니다(). 창왈(昌曰) 미심하나니 제형(提刑)은 어떻습니까(作麽生). 걸왈 단단합니다(). 창왈 또한 이는 제이월(第二月)입니다. 양걸이 창()을 위해 칠불전액(七佛殿額)을 서사(書寫; )했다. 이에 묻되 칠불이 거듭() 출세(出世)할 땐 어떻습니까. 창왈(昌曰) 일회(一回) 상견하면 일회 새롭습니다. 양걸이 그렇다 하였다(然之). 양걸이 일찍이 승인에게 일러 가로되 대범(大凡) 학도(學道)하는 사람은 십이시(十二時; 子時부터 亥時까지) 중에 늘(; 과 통함) 꼭 조고(照顧; 注意)해야 합니다. 보지 못했습니까, 남천(南泉; 普願)이 말하되 30년 동안 한 마리(一頭)의 수고우(水牯牛)를 간()했나니 만약 사람의 묘가(苗稼; 곡식)를 범한다면 코를 취해 끌어 돌아왔다(摘鼻拽回). 여금에 노지백우(露地白牛)로 변성(變成)하여 나라지(躶躶地), 그것을 놓아 주어도 떠남을 수긍하지 않는다 하였다. 제인(諸人)은 늘() 모름지기 정채(精彩)를 붙일지니 선도(禪道)를 설할 때 바로(便) () 조대(照帶; 照顧하며 携帶)하는 도리가 있다고 함은 옳지 못하며 세채(洗菜)하고 작무(作務)할 때 바로 무지(無知)함은 옳지 못하다. 닭이 알을 품음과 같나니 만약 포리(拋離)하고 기거(起去)한다면 난기(暖氣)가 바로 접속(接續; )되지 않아 종자(種子)를 이루지 못한다. 여금에 만경(萬境)이 삼라(森羅; 紛然羅列)하고 6()이 번동(煩動)하나니 조금이라도() 조고(照顧)를 잃는다면 바로 상신실명(喪身失命)에 이르나니() 이 소사(小事)가 아니다. 양걸이 평거(平居; 평일. 평소)에 정토(淨土)로써 자신(自信)했다. 장륙(丈六) 아미타불을 그려() 수신(隨身)하며 관념(觀念)했다. 일찍이 가로되 애()가 부중(不重; 무겁지 않음)하면 사바(娑婆)에 출생하지 않고 념()이 불일(不一)하면 극락에 출생하지 않는다. 범성(凡聖)이 일체(一體)며 기감(機感)이 상통(相通)한다. 제불심내(諸佛心內)의 중생인지라 진진(塵塵)이 극락이며 중생심중(衆生心中)의 정토(淨土)인지라 염념(念念)이 미타(彌陀). 만약 스스로 기령(己靈)을 버린다면 이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임종에 사세게(辭世偈; 세상을 떠나는 게)를 지어 가로되 생()도 또한 가히 연모함이 없고/ ()도 또한 가히 버림이 없다/ 대허공(大虗空) 중에/ 지호자야(之乎者也)/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가나니(將錯就錯)/ 서방(西方)이 극락이다. 게를 설해 마치자 단좌(端坐)하여 화(; 遷化)했다.

義懷; (989-1060) 송대승. 영가 낙청(절강 낙청)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진(). 성장함에 이르자 경사(京師; 首都)의 경덕사에 들어가 동행(童行)이 되었으며 천성(1022-1031)년 중에 시경득도(試經得度)했음. 처음엔 금란선(金鑾善; 慈明高弟)을 참알했고 또 섭현귀성(葉縣歸省; 임제하 5)을 참알했으나 다 계합(契合)하지 못했음. 이에 동쪽으로 고소(姑蘇)의 취봉(翠峰)에 노닐다가 설두중현(雪竇重顯; 운문하 3)을 참알했는데 물 긷던 차에 멜대가 땅에 떨어짐으로 인해 휑하게 대오했으며 중현이 곧 인가(印可)했음. 후에 철불사(鐵佛寺)에서 출세해 법요를 제창(提倡)했음. 오래지 않아 월주(越州)의 천의사(天衣寺)에 주지(住持)했으며 무릇 다섯 번 법석을 옮겼음. 이르는 곳마다 그 황폐(荒廢)를 부흥(復興)했으며 운문의 법도(法道)를 크게 떨쳤음. 가우 5년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72며 세칭이 천의의회(天衣義懷). 시호는 진종선사(振宗禪師)며 법사(法嗣)에 혜림원조(慧林圓照)ㆍ법운법수(法雲法秀)ㆍ장로응부(長蘆應夫)ㆍ불일지재(佛日智才) 80여 인이 있음 [속전등록6. 선림승보전11. 불조역대통재27. 오등회원16. 석씨계고략4].

提點; 송조(宋朝) 관직의 이름이니 제점(提點)이란 것은 그 사무를 제거(提擧)하고 점검하여 진체(塵滯)가 없게 함임 [상기전7].

道楷; (1043-1118) 송대 조동종승. 기주 기수(산동 기수) 사람이며 속성은 최. 어릴 적에 이양산 가운데 은거하며 벽곡(辟穀)의 술법을 배웠는데 후에 그 그름을 깨닫고 버리고서 불법을 학습했으며 경사(京師) 술대사에서 출가했음. 후에 투자의청(投子義靑)을 참알해 득법했음. 원풍 5(1082) 기주 선동산에서 홍법했고 아울러 선후(先後)로 낙양의 초제ㆍ영주의 대양산ㆍ수주의 대홍산숭녕보수선원ㆍ동경의 천녕사 등의 사찰에 주지(住持)하면서 동상(洞上)의 종풍을 크게 드날렸으며 따르는 자가 구름과 같았음. 숭녕 3(1104) 휘종이 그의 이름을 듣고 불러서 경사의 시방정인선원에 주()하게 하고 자의(紫衣)와 및 정조선사란 호를 주었으나 스님이 옷이 불제(佛制)가 아니란 까닭으로 돌려주고 받지 않자 제()가 노하여 경(. 刺字할 경이니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홈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던 벌)하고 치주로 유방(流放; 유배)했으나 스님은 마침내 굽히지 않았으며 뒤에 제()가 깨닫고 그 스스로 편한 대로 함을 청허(聽許. )했음. 스님이 드디어 부용호상(芙蓉湖上)에 절을 세우고 선풍을 크게 드날렸으며 학자가 풍종(風從. 바람처럼 따름)했음. 정화 7(1117) 휘종이 화엄선사(華嚴禪寺)1()을 주었으며 후에 또 흥화사란 이름을 주었음. 다음해 5월에 입적했음. 나이는 76이며 세칭이 부용도해(芙蓉道楷). 법사에 단하자순ㆍ정인법성 등이 있으며 부용도해선사어요(또 정조선사어요로 지음) 1권이 있음 [선림승보전17. 연등회요28. 호북금석지10].

高鑒; 경사(敬詞)니 타인이 사물에 대한 명찰(明察)을 일컬음.

第二月; 1(第一月)과 상대됨. 널리 사유비유(似有非有)의 사물을 가리킴. 마치 안예(眼翳)의 사람이 진월(眞月)을 바라볼 때 2()을 헛 봄과 같음. ()하여 분별하는 망심(妄心)과 정견(情見)의 지해(知解)를 가리킴.

水牯牛; 1. 곧 수우(水牛; 물소). 옥편 고() 빈우(牝牛; 암소). 정자통 고() 세속에서 모우(牡牛; 수소)를 일러 가로되 고()라 한다. 2. 자심과 자성에 비유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露地白牛; 노지는 문밖의 빈 땅이 되며 평안하고 무사한 장소에 비유하고 백우는 청정한 소를 뜻으로 가리킴. 법화경 비유품 중에 백우로써 1()의 교법에 비유했음. 이로부터 실터럭만큼의 번뇌와 오염이 없는 청정한 경지를 가리켜 노지백우라 함. 신화엄경론2. 이런 고로 문 앞의 수레는 3()을 상대하여 시설함이며 노지백우라야 비로소 의지함이 없는 곳에 이름을 밝힘이다. 노지(露地)란 것은 곧 불지(佛地). 불지는 의지함이 없는 연고니 고로 이르되 노지다. 백우란 것은 곧 법신의 비지(悲智). 법신의 무상(無相)을 이름하여 백()이며 지()라야 능히 기()를 보아 비심(悲心)으로 사람을 제도하나니 이름해 우()라 한다.

躶躶地; 만사를 방하(放下)하여 신심(身心)이 탈락하고 천진(天眞)이 홀로 밝아 가는 터럭만큼의 정진(情塵)도 없는 모양을 가리킴. ()는 조사(助詞).

精彩; 정신이 환발(煥發; 환하게 발산). 풍채가 있음.

機感; 중생이 선근의 기()가 있어 부처를 감(). 또 중생이 선근의 기()가 있는지라 고로 불타가 그에 감응함.

之乎者也; 1. 문장언구(文章言句)를 가리킴. 2. 시게(詩偈) 가운데 삽입(揷入)하는 구자(句子; 助詞)며 실의(實義)가 없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贊曰 參禪也錯 學道也錯 西方也錯 而是無爲子獨奮然將錯而就錯 噫 吾亦安得將錯就錯如無爲子 其人也者 而與之共商千古之一大錯

 

찬왈(贊曰) 참선도 착(; 錯誤)이며 학도(學道)도 착이며 서방(西方)도 착이니 이 무위자(無爲子; 楊傑)가 홀로 분연(奮然)히 착()을 가지고 착으로 나아갔다. (), 나도 또한 어찌() 장착취착(將錯就錯)함이 무위자와 같음을 얻겠는가. 그 사람이란 것은 그()와 더불어 함께 천고(千古)의 일대착(一大錯)을 상량(商量;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