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상(居士分燈錄卷上) 왕안석(王安石)

태화당 2026. 6. 18. 06:59

王安石

字介甫 與蔣山贊元遊如昆弟 問祖師意旨 元不答 益扣之 元曰 公般若有障三 有近道之質一 更一兩生來 或得純熟 曰 願聞其說 曰 公受氣剛大 世緣深 以剛大氣遭深世緣 必以身任天下之重 懷經濟之志 用舍不能必 則心未平 以未平之心 持經世之志 何時能一念萬年哉 又多怒而學問尙理 於道爲所知愚 此其三也 特視名利如脫髮 甘澹泊如頭陀 此爲近道 且當以敎乘滋茂之 可也 石再拜受敎 及貴震天下 無月無耗 元未嘗發視 罷政府 舟至石頭 入寺已二鼓 元出迎 一揖而退 石坐東偏 從官賓客滿座 石環視問師所在 侍者曰 已𥨊久矣

贊元; (?-1086) 宋代臨濟宗僧 浙江義烏人 字普宗 號覺海 爲傅大士之後裔 又字萬宗 三歲出家 七歲受菩薩戒 遍歷諸方 參石霜楚圓會下 竝嗣其法 後住持蘇臺 天峰 龍華 白雲等寺 又應府帥之請 住持金陵蔣山寶誌道場(卽太平興國寺) 王安石奏其德 受賜章服 及覺海禪師號 元祐元年示寂 [五燈會元十二 續傳燈錄七 禪林僧寶傳二十七]

一念萬年; 一念卽萬年 萬年卽一念 義同一卽一切

頭陀; <> dhuta 梵語也 又作杜荼(同茶) 杜多 投多 偸多 謂去除塵垢煩惱 苦行之一 此翻爲抖擻 修治 棄除 沙汰 浣洗 搖振 意卽對衣食住等棄其貪著 以修鍊身心 有十二頭陀行 迦葉爲頭陀行第一 故有迦葉頭陀 金色頭陀之名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자가 개보(介甫)며 장산찬원(蔣山贊元)과 더불어 교유(交遊; )했는데 곤제(昆弟; 형제)와 같았다. 조사(祖師)의 의지(意旨)를 묻자 찬원이 답하지 않았다. 더욱() 구문(扣問; 扣之)하자 원왈(元曰) ()은 반야(般若)에 장애가 셋 있습니다. 근도(近道)의 바탕()이 있음이 하나니 다시 일양생래(一兩生來)에 혹 순숙(純熟)함을 얻을 것입니다. 가로되 그 설()을 듣기를 원합니다. 가로되 공()은 수기(受氣)가 강대(剛大)하고 세연(世緣)이 깊습니다. 강대한 기()가 깊은 세연을 만나면 반드시 몸으로써 천하의 중대(重大; )함을 맡을 것이며 경제(經濟;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救濟)의 의지(意志; )를 품을() 것이다. 쓰거나 버림(用舍)에 능히 꼭 그렇지 못하면(不能必) 곧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 것이며 평온하지 않은 마음으로써 경세지지(經世之志)를 가진다면 어느 때 능히 일념만념(一念萬年)이겠습니까. 또 다노(多怒)하면서 학문이 이치를 숭상(崇尙; )하니 도에는 소지우(所知愚)가 됩니다. 이것이 그 셋입니다. 특별히 명리(名利)를 봄이 탈발(脫髮; 머리카락이 脫落)과 같고 담박(澹泊)을 달게 여김이 두타(頭陀)와 같아야 이것이 근도(近道)가 됩니다. () 마땅히 교승(敎乘)으로써 자무(滋茂; 繁茂)케 해야 옳습니다. 안석(安石)이 재배(再拜)하고 수교(受敎)했다. 및 현귀(顯貴; )가 천하를 진동(震動; )하자 무모(無耗; 소식이 있지 않음)한 달이 없었지만(無月無耗) 찬원이 일찍이 발시(發視; 열어 봄)하지 않았다. 정부(政府)를 마치자() 배로 석두(石頭)에 이르렀고 입사(入寺)하매 이미 2(二鼓; 二更과 같음)였다. 찬원이 출영(出迎)하여 한 번 읍()하고 물러났다. 안석이 동편(東偏; 東邊)에 앉았고 종관(從官)과 빈객이 만좌(滿座)했다. 안석이 환시(環視; 둘러보다)하며 스님의 소재(所在)를 묻자 시자가 가로되 이미 취침(就𥨊; 𥨊과 같음)하신 지 오래입니다.

贊元; (?-1086) 송대 임제종승. 절강 의오 사람이며 자는 보종이며 호는 각해(覺海)니 부대사(傅大士)의 후예가 되며 또 자가 만종(萬宗). 3세에 출가했고 7세에 보살계를 받았음. 제방을 편력(遍歷)하다가 석상초원(石霜楚圓)의 회하에서 참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소대ㆍ천봉ㆍ용화ㆍ백운 등의 사원에 주지했음. 또 부수(府帥)의 요청에 응해 금릉 장산(蔣山) 보지도량(寶誌道場; 太平興國寺)에 주지했음. 왕안석이 그의 덕을 상주하여 장복(章服) 및 각해선사(覺海禪師)의 호를 수사(受賜)했음. 원우 원년에 시적했음 [오등회원12. 속전등록7. 선림승보전27].

一念萬年; 일념이 곧 만년이며 만년이 곧 일념이니 뜻이 일즉일체(一卽一切)와 같음.

頭陀; <> dhuta. 범어임. 또 두다(杜荼; 와 같음)ㆍ두다(杜多)ㆍ투다(投多)ㆍ투다(偸多)로 지음. 이르자면 진구(塵垢)와 번뇌를 제거하는 고행의 하나임. 여기에서 번역하면 두수(抖擻)ㆍ수치(修治)ㆍ기제(棄除)ㆍ사태(沙汰)ㆍ완세(浣洗)ㆍ요진(搖振)이 됨. 뜻으로는 곧 의식주(衣食住) 등에 대해서 그 탐착을 버리고 신심(身心)을 수련함. 12두타행(頭陀行)이 있으며 가섭이 두타행의 제일이 됨. 고로 가섭두타ㆍ금색두타의 명칭이 있음.

 

贊曰 嘗讀楊岐參石霜 至幽鳥語喃喃 辭雲入亂峰 便覺通身汗下 厥後臨濟一宗 惟楊岐子孫獨盛 悉符異日兒孫滿天下之記 蓋源遠流長 理勢所必至耳 當時無論勘騐衲子 跡其煅煉 孫居士數語亦大煞誵訛 還委悉麽 直饒玄會得猶是眼中沙 又曰 楊提刑雖師承無據 乃作家相見 箇是老手 王介甫 卽宗眼未開 然虗心訪道亦自可人

喃喃; 呢喃 玉篇 喃 呢喃 玄應音義九 引埤蒼曰 喃 語聲也

大煞; 同大殺 甚辭 猶十分 甚

誵訛; 混淆訛誤 又作誵譌 淆訛 殽訛 聱訛 肴訛 譊訛 詨訛 從容錄音義云 誵訛 不謹也 同事略云 言辭不平易貌

可人; 有長處可取的人

 

찬왈(贊曰) 일찍이 읽었는데 양기(楊岐; 方會)가 석상(石霜; 楚圓)을 참()했다. 유조(幽鳥)가 남남(喃喃) 지저귀며() 구름에게 고별하고 난봉(亂峰)으로 들어간다에 이르러 바로 통신(通身)에 땀 흘림(汗下)을 느꼈다. 궐후(厥後; 그 후) 임제일종(臨濟一宗)에 오직 양기의 자손이 독성(獨盛)했으니 이일(異日)에 아손이 천하에 가득하다는 기(; 讖記)에 모두() 부합(符合; )한다. 대개 근원이 멀고 흐름이 길면(源遠流長) 이세(理勢)가 필지(必至)하는 바일 뿐이다. 당시(當時)에 납자(衲子)를 감험(勘騐)함은 논하지 않고 그 단련(煅煉)을 뒤밟자면() 손거사(孫居士; 孫比部)의 수어(數語)도 또한 대쇄(大煞) 효와(誵訛)니 도리어 위실(委悉; 확실이 앎)하느냐. 직요(直饒; 가령) 현묘하게 희득(會得)하더라도 오히려 이는 안중의 모래다. 우왈(又曰) 양제형(楊提刑; 楊畋)은 비록 사승(師承)이 무거(無據; 근거가 없음)하지만 이에 작가와 상견했으니 이는 이(箇是) 노수(老手; 노련한 수단). 왕개보(王介甫; 왕안석)는 곧 종안(宗眼)이 열리지 못했지만 그러나 허심(虗心)으로 방도(訪道; 問道)했으니 또한 스스로 가인(可人)이다.

喃喃; 니남(呢喃; 재잘거림. 지지배배). 옥편 남() 니남(呢喃)이다. 현응음의9. 비창(埤蒼)을 인용해 가로되 남() 말하는 소리다.

大煞; 대쇄(大殺)와 같음. 심사(甚辭). 십분ㆍ심()과 같음.

誵訛; 어지럽게 섞여 그릇되고 잘못된 것(混淆訛誤). 또 효와(誵譌)ㆍ효와(淆訛)ㆍ효와(殽訛)ㆍ오와(聱訛)ㆍ효와(肴訛)ㆍ요와(譊訛)ㆍ효와(詨訛)로 지음. 종용록음의(從容錄音義)에 이르되 효와(誵訛) 불근(不謹; 삼가지 않음)이다. () 사략(事略)에 이르되 언사(言辭)가 평이하지 아니한 모양이다.

可人; 장처()長處가 있어 가히 취할 만한 사람.

 

靑蓮居士對

 

청련거사(靑蓮居士)가 대(; 對照)하다.

 

居士分燈錄卷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