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弼(華嚴修顒禪師法嗣)
富弼 字彦國 河南人 慶曆中 與文彦博竝相 封鄭國公 繇趙淸獻䇿勵之 後晝夜精進 方鎭亳州時 聞修顒法席之盛 往質所疑 見顒登座顧視如象王回旋 已微有得 因執弟子禮 請爲入室 顒見卽曰 相公已入來 富弼猶在外 弼聞汗流浹背 卽大悟 尋以偈寄圓照本曰 一見顒公悟入深 因緣傳得老師心 江山千里雖云隔 目對靈光與妙音 又迎顒館於州治 咨以心法 別後答顒書有曰 弼遭遇和尙 卽無始以來忘失事 一旦認得 此後定須拔出生死海 不是尋常恩 知雖盡力道斷 道不出也 每念古尊宿 始初在本師處 動是三二十年 少者亦是十數年 日夕侍奉 聞道聞法 方得透頂透底 却思弼兩次蒙和尙垂顧 共得兩箇月請益 更作聰明過人 能下得多少工夫 若非和尙巧設方便 著力摘發 何繇見箇涯岸 復寄書本曰 弼留心祖道 爲日已久 常恨不遇明眼人開發蒙陋 昨幸守毫與頴州接境 請得顒師下訪相聚 幾月以慈悲方便之力 令有悟處 會結夏逼日 四月初 遽且歸頴 其於揩磨淘汰 則殊未有功 衰病相仍 昏鈍難入 昔古靈師所謂不期臨老得聞極則事 見之於弼今日矣 弼雖得法顒師 然本源繇老和尙而來 宗派甚的必須 亦欲成持 更望垂慈攝受 遠賜接引 未至令至 則爲南嶽下龐蘊 百丈下裴休也 後奏署顒師號 顒上堂 謝語有曰 彼一期之悞 我亦將錯而就錯 弼作偈贊曰 萬木千花欲向榮 臥龍猶未出滄溟 彤雲彩霧呈嘉瑞 依舊南山一色靑
●修顒; 宋代雲門宗僧 字證悟 趙城(山西洪洞)梁氏 參蘇州瑞光圓照宗本得法 初住壽州資聖 富鄭公甚加敬重 請住西京少林招提 末住舒州投子 道譽稱盛 [續燈錄十六 五燈會元十六 無錫南禪寺志二]
●䇿勵; 同策勵 督促勉勵
●圓照本; 宗本(1020-1099) 北宋雲門宗僧 常州無錫(江蘇無錫)人 俗姓管 字無喆 十九歲 入蘇州承天永安寺道昇禪師門下 苦修十年方剃髮受具足戒 又服勤三年 後拜辭道昇至池州景德寺 參天衣義懷 有所契悟 義懷推擧於蘇州瑞光寺開法 法席日盛 徒衆達五百人 後住淨慈寺 旣而蘇州道俗請師往萬壽龍華二寺弘法 迎者千餘人 元豐五年(1082) 受神宗之詔 爲相國寺慧林禪刹第一祖 開法翌日 帝召至延和殿問道 哲宗詔賜圓照禪師 元祐元年(1086)以老乞歸 出都城 送行者車騎相屬 師臨別敎誨 聞者流涕 晩年住平江靈光寺 閉門修禪 專力淨業 元符二年示寂 壽八十 著有歸元直指集二卷 慧辨錄(別錄)一卷 [五燈會元十六 佛祖統紀二十七 禪林僧寶傳十四 釋氏稽古略四]
●本師; (一)謂根本之敎師 亦卽本緣導師 本從師之意 一般多用於稱呼釋迦如來 與敎主本主本佛同義 (二)弟子尊稱其師 亦稱爲本師 禪錄多稱其受業師爲本師
●蒙陋; 蒙昧淺陋
●淘汰; 佛祖統紀三 淘汰者 大論云 澄洗也 以空慧水 濤淅㶕擇
●古靈; 神贊 亦作神讚 唐代僧 福州(今屬福建)人 初于福州大中寺受業 後行脚遇百丈懷海開悟 回大中寺 爲本師說法 本師于言下感悟 晩住古靈 聚徒敎化 [五燈會元四 聯燈會要七]
●成持; 傍助使(某人某事)成功 亦作成褫(成就)
부필(富弼)(華嚴 修顒禪師의 法嗣)
부필(富弼; 1004-1083)은 자가 언국(彦國)이며 하남(河南) 사람이다. 경력(慶曆; 1041-1048) 중 문언박(文彦博; 바로 이 아래에 나옴)과 아울러 재상(宰相)이 되었고 정국공(鄭國公)으로 봉(封)해졌다. 조청헌(趙淸獻; 趙抃)이 그(之)를 책려(䇿勵)함으로 말미암아(繇) 후에 주야로 정진(精進)했다. 바야흐로 박주(亳州; 지금의 安徽 亳縣)를 진수(鎭守)할 때 수옹(修顒)의 법석(法席)이 성(盛)하다 함을 듣고 가서 소의(所疑)를 질문했다. 수옹이 등좌(登座)하여 고시(顧視)함이 상왕(象王)의 회선(回旋)과 같음을 보고 이미 조금(微) 얻음이 있었다. 인하여 제자례(弟子禮)를 가졌다(執). 청하여 입실(入室)하자 수옹이 보고 곧 가로되 상공(相公)은 이미 들어왔으나 부필은 오히려 밖에 있습니다. 부필이 듣고서 땀이 흘러 등을 적셨다(汗流浹背). 곧 대오했다. 이윽고 게(偈)를 원조본(圓照本; 宗本)에게 기탁해 가로되 옹공(顒公)을 한 번 보자 오입(悟入)이 깊었나니/ 인연(因緣)은 노사(老師; 宗本)의 마음을 전득(傳得)했다/ 강산(江山) 천 리를 비록 이르되 격(隔)했다 하나/ 눈으로 영광(靈光)과 묘음(妙音)을 대(對)했다. 또 수옹을 맞이해 주치(州治; 주의 治所)에 거처케 하고(館) 심법(心法)을 물었다(咨). 이별한 후에 수옹에게 답한 글에 말함(曰)이 있었다. 부필이 화상을 조우(遭遇)하매 곧 무시이래(無始以來)로 망실(忘失)한 일을 일단(一旦)에 인득(認得)했습니다. 차후(此後)로 꼭(定) 생사해(生死海)를 발출(拔出)함을 썼으니(須) 이 심상(尋常)의 은혜가 아닙니다. 비록 진력(盡力)으로 도단(道斷; 말해 끊다)할 줄 알아도 말을 내지 못합니다. 고존숙(古尊宿)을 매념(每念)하건대 시초(始初)에 본사(本師)의 처소에 있으면서 동(動)했다 하면 이, 삼이십 년이었으며 적은 것도 또한 이, 십 수 년이었습니다. 일석(日夕)으로 시봉하며 문도문법(聞道聞法)하여 비로소 투정투저(透頂透底)를 얻었습니다. 도리어 사유컨대 부필이 양차(兩次)에 화상의 수고(垂顧; 垂念)를 입었으며(蒙) 한가지로 양개월(兩箇月)의 청익(請益)을 얻었습니다. 다시 총명(聰明)이 과인(過人)함을 지어야 능히 다소(多少)의 공부(工夫)를 하득(下得; 做得)합니다. 만약 화상의 교설(巧設)의 방편으로 착력(著力)하여 적발(摘發; 摘要하여 開發)함이 아니었다면 무엇을 말미암아(繇) 저(箇) 애안(涯岸)을 보았겠습니까. 다시 종본(宗本; 本)에게 기서(寄書)하여 가로되 부필이 조도(祖道)에 유심(留心)한, 날이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늘 명안인(明眼人)이 몽루(蒙陋)를 개발(開發)함을 만나지 못했음을 한(恨)했습니다. 지난날(昨) 다행히(幸) 박(毫; 亳州)과 영주(頴州; 지금의 安徽 阜陽) 접경(接境)을 다스리다가(守) 옹사(顒師)의 하방(下訪)을 청득(請得)해 상취(相聚)하매 몇 달 동안 자비와 방편의 힘으로써 오처(悟處)가 있게 하였습니다. 마침(會) 결하(結夏)의, 날이 닥친지라(逼日) 4월 초 급히(遽) 다만(且) 귀영(歸頴; 頴州)했습니다. 그, 개마(揩磨)하고 도태(淘汰)함에 곧 특수히 공(功)이 있지 않았습니다. 쇠(衰)와 병(病)이 서로 인했고(仍) 혼돈(昏鈍)하여 난입(難入)했습니다. 옛적(昔) 고령(古靈; 神贊)의 스승이 이른 바 임로(臨老)에 극칙사(極則事)를 득문(得聞)할 줄 기대(期待; 期)하지 못했다 했는데 부필의 금일을 보는 듯합니다. 부필이 비록 옹사(顒師)에게서 득법했으나 그러나 본원(本源)은 노화상(老和尙; 宗本)을 말미암아(繇) 왔습니다. 종파(宗派)는 심적(甚的)으로 필수(必須)며 또한 성지(成持)하려고 함입니다. 다시 바라건대 수자(垂慈)하여 섭수(攝受)하고 멀리서 접인(接引)을 내리시어(賜) 이르지 못한 것(未至)을 이르게 하신다면 곧 남악하(南嶽下)의 방온(龐蘊)과 백장하(百丈下)의 배휴(裴休)가 될 것입니다. 후에 옹사(顒師)의 호(號)를 주서(奏署; 奏請해 임명)했다. 수옹이 상당(上堂)해 감사하는 말에 말함(曰)이 있었으니 그(彼)는 일기(一期)의 착오(錯誤; 悞)며 나(我)도 또한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갔다. 부필이 작게(作偈)하여 찬왈(贊曰) 만목천화(萬木千花)가 영화(榮華; 榮)를 향하고 싶어 하는데/ 와룡(臥龍)은 오히려 창명(滄溟)을 벗어나지 않았다/ 동운(彤雲; 붉은 구름)과 채무(彩霧)가 가서(嘉瑞)를 보이나(呈)/ 의구히 남산(南山)은 일색(一色)의 푸름(靑)이다.
●修顒; 송대 운문종승. 자는 증오며 조성(산서 홍동) 양씨. 소주 서광 원조종본(圓照宗本)을 참해 득법했고 처음엔 수주 자성에 거주했음. 부정공(富鄭公)이 심히 경중(敬重)을 더했고 청하여 서경 소림초제에 주(住)했음. 마지막에 서주 투자(投子)에 주(住)했으며 도예(道譽)를 칭성(稱盛)했음 [속등록16. 오등회원16. 무석남선사지2].
●䇿勵; 책려(策勵)와 같음. 독촉하며 면려(勉勵; 남을 고무하여 힘쓰게 함).
●圓照本; 종본(宗本; 1020-1099)이니 북송 운문종승. 상주 무석(無錫; 江蘇 무석)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관(管)이며 자(字)는 무철(無喆). 19세에 소주 승천 영안사(永安寺)의 도승선사(道昇禪師) 문하에 들어가 고되게 수행하기 10년 만에 비로소 머리 깎고 구족계를 받았음. 또 복근(服勤)하기 3년이었음. 후에 도승을 배사(拜辭; 예배하고 고별)하고 지주(池州) 경덕사(景德寺)에 이르러 천의의회(天衣義懷; 운문하 4세. 설두중현의 법사)를 참알(參謁)하고 계오(契悟)한 바가 있었음. 의회가 추거(推擧; 推薦)하여 소주 서광사(瑞光寺)에서 개법(開法)했음. 법석이 날로 흥성하여 도중(徒衆)이 5백 인에 도달했음. 후에 정자사(淨慈寺)에 주지(住持)했음. 이미 그러고선 소주(蘇州)의 도속(道俗)이 스님을 청하는지라 만수(萬壽)ㆍ용화(龍華) 두 절로 가서 홍법(弘法)했는데 영접하는 자가 천여 인이었음. 원풍5년(元豐五年; 1082) 신종(神宗)의 조서(詔書)를 받아 상국사혜림선찰(相國寺慧林禪刹)의 제1조(第一祖)가 되었음. 개법한 다음날 황제가 불러 연화전(延和殿)에 이르게 하여 도를 물었음. 철종(哲宗)은 조칙으로 원조선사(圓照禪師)란 호를 주었음. 원우원년(元祐元年; 1086) 늙었기 때문에 돌아감을 걸구(乞求)하였는데 도성(都城)을 나오자 송행(送行; 餞送)하는 자의 거기(車騎; 수레와 말)가 서로 이어졌으며 스님이 임별(臨別)에 교회(敎誨)하자 듣는 자가 눈물을 흘렸음. 만년에 평강(平江)의 영광사(靈光寺)에 주지(住持)하며 문을 닫고 수선(修禪)하며 정업(淨業)에 전력하였음. 원부2년(元符二年)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0이며 저서에 귀원직지집(歸元直指集) 2권과 혜변록(慧辨錄; 別錄) 1권이 있음 [오등회원16. 불조통기27. 선림승보전14. 석씨계고략4].
●本師; (1). 이르자면 근본의 교사임. 또 곧 본연(本緣)의 도사(導師)니 본래 좇는 스승의 뜻. 일반으로 다분히 석가여래의 칭호로 사용함. 교주ㆍ본주(本主)ㆍ본불과 같은 뜻. (2), 제자가 그 스승을 존칭함이니 또한 일컬어 본사라 함. 선록에선 다분히 그 수업사(受業師)를 일컬어 본사라 함.
●蒙陋; 몽매(蒙昧)하고 천루(淺陋)함.
●淘汰; 불조통기3. 도태(淘汰)란 것은 대론에 이르되 징세(澄洗; 깨끗이 씻음)니 공혜(空慧)의 물로 도석간택(濤淅㶕擇; 씻고 일어서 택함)함이다.
●古靈; 신찬(神贊)이니 또 신찬(神讚)으로 지음. 당대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처음에 복주 대중사(大中寺)에서 수업했고 후에 행각하다가 백장회해를 만나 개오(開悟)했음. 대중사로 돌아와 본사(本師)를 위해 설법했고 본사가 언하에 감오(感悟)했음. 만년에 고령(古靈)에 거주하면서 무리를 모아 교화했음 [오등회원4. 연등회요7].
●成持; 방조(傍助)하여 (某人 某事)를 성공하게 함. 또 성치(成褫; 成就)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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