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구양수(歐陽修)

태화당 2026. 6. 20. 07:42

歐陽修

字永叔 廬陵人 初不信佛 嘉祐六年 爲參知政事兼譯經潤文使 旣登二府 多病 嘗夢至一所 十人冠冕環坐 一人曰 參政安得至此 宜速返舍 修出門數步 復往問曰 君等豈非釋氏所謂十王者耶 曰 然 因問 世人飯僧造經 果有益乎 曰 安得無 旣窹 病良已 自是始生信心 居洛時 遊嵩山 却僕吏 放意而往 至一寺 修竹滿軒 風物鮮美 修休於殿內 旁有老僧閱經自若 修問 誦何經 曰 法華 修曰 古之高僧臨死生之際 類皆談笑脫去 何道致之 曰 定慧力耳 又問 今何寂寥無有 曰 古人念念定慧 臨終安得散亂 今人念念散亂 臨終安得定慧 修大嘆服 後以太子少師致仕 居頴州 因頴守極道修顒禪師德業 乃備饌延顒 旣至 修遽問曰 浮圖之敎何爲者 顒乃欵論 指妙揮微 優游於華藏法界之都 從容帝網明珠之內 修竦然曰 吾初不知佛書其妙至此 易簀時 召子弟切誡曰 吾生以文章名當世 力詆浮圖 今此衰殘 忽聞奧義 方將硏究 命也柰何 汝等勉旃無蹈後悔 於是捐酒肉 徹聲色 灰心默坐 令老兵近寺借華嚴經 讀至八卷 乃安坐而逝

二府; 宋代稱中書省和樞密院

冠冕; 古代帝王官員戴的帽子

十王; 在冥府裁斷亡者罪業之十判官 又作十殿閻王 依預修十王生七經載 人死後趣冥途時 初七日過秦廣王 二七日過初江王 三七日過宋帝王 四七日過五官王 五七日過閻羅王 六七日過變成王 七七日過太山王 百日過平等王 一周年過都市王 三周年過五道轉輪王 如斯次第受十王裁斷 十王之信仰起於唐末五代頃 有關十王說之起源 釋門正統四 佛祖統紀三十三皆以唐代道明爲十王之始唱者 有謂十王中除閻羅王外 其餘九王皆爲中日佛道二敎界之傳說 並非印度所傳 然其他另有多種異說 描繪十王之畫 釋門正統四謂 始於唐代張果老 其後敦煌 朝鮮 日本等地 亦相次圖繪 遺品不少 [灌頂經十二 藥師琉璃光經 淨度三昧經 佛祖統紀四十五 釋氏六帖十六]

優游; 一生活得十分閑適 二從容遊樂 此指二

從容; 逍遙 安靜 悠悠自適

帝網; 因陀羅網 又作天帝網 帝網 爲帝釋天之寶網 網之一一結皆附寶珠 其數無量 一一寶珠皆映現自他一切寶珠之影 又一一影中亦皆映現自他一切寶珠之影 如是寶珠無限交錯反映 重重影現 互顯互隱 重重無盡 華嚴經以因陀羅網譬喩諸法之一與多相卽相入 重重無盡之義 [華嚴經探玄記一 華嚴五敎章一]

易簀; 更換床席 指人將死 禪林疏語考證三 易簀 記檀弓曰 曾子寢疾病 樂正子春坐於牀下 曾元曾申坐於足 童子隅坐而執燭 童子曰 華而睆 大夫之簀與 子春曰 止 曾子聞之瞿然曰 呼 曰 華而睆 大夫之簀與 曾子曰 然斯季孫之賜也 我未之能易也 元起易簀 曾元曰 夫子之病革矣 不可以變 幸至於旦 請敬易之 曾子曰 爾之愛我也不如彼 君子之愛人也以德 細人之愛人也以姑息 吾何求哉 吾得正而斃焉 斯已矣 擧扶而易之 反席未安而沒

勉旃; 旃 代詞 用于謂語之後 相當于之 廣韻 旃 之也

 

구양수(歐陽修; 1007-1072)

자가 영숙(永叔)이며 여릉(廬陵) 사람이다. 처음엔 부처를 믿지 않았다. 가우(嘉祐) 6(1061) 참지정사(參知政事) () 역경윤문사(譯經潤文使)가 되었다. 이미 이부(二府)에 올랐으나 다병(多病)했다. 일찍이 꿈에 한 곳(一所)에 이르렀는데 10인이 관면(冠冕)하고 환좌(環坐)했다. 1인이 가로되 참정(參政)이 어찌하여() 여기에 이름을 얻었는가. 의당 속히 집으로 돌아가라(返舍). 양수(陽修)가 출문(出門)하여 몇 걸음 걷다가 다시 가서 문왈(問曰) 군등(君等)은 어찌 석씨(釋氏)가 이른 바 십왕(十王)이란 자가 아니겠습니까. 가로되 그렇다. 인하여 묻되 세인(世人)이 반승(飯僧; 齋僧)하고 조경(造經)하면 과연 유익(有益)합니까. 가로되 어찌 없음을 얻겠는가. 이미 깨자() 병이 양호(良好)했다(良已). 이로부터 신심(信心)을 처음으로() 내었다. 거락(居洛; 洛水. 洛陽)할 때 숭산(嵩山)을 유람했다. 복리(僕吏; 奴僕과 관리)를 물리치고 방의(放意)하여 가다가 일사(一寺)에 이르렀다. 수죽(修竹; 細長한 대나무)이 만헌(滿軒)했고 풍물(風物)이 선미(鮮美)했다. 양수가 전내(殿內)에서 쉬는데 곁()에 노승이 있어 열경(閱經)하며 자약(自若)했다. 수문(修問) 어떤 경을 외웁니까. 가로되 법화(法華)입니다. 수왈(修曰) 옛날의 고승은 사생지제(死生之際)에 임해 유개(類皆; 大抵全都) 담소하다가 탈거(脫去)했거니와 무슨 도로 이에 이릅니까(何道致之). 가로되 정혜력(定慧力)일 뿐입니다. 우문(又問) 지금은 왜 적료(寂寥)하여 있지 않습니까. 가로되 고인은 염념(念念)이 정혜거늘 임종에 어찌 산란(散亂)함을 얻겠습니까. 금인은 염념이 산란하거늘 임종에 어찌 정혜를 얻겠습니까. 양수가 크게 탄복(嘆服)했다. 후에 태자소사(太子少師)로써 치사(致仕; 退休)했다. 영주(頴州)에 거주했는데 영수(頴守)가 수옹선사(修顒禪師)의 덕업(德業)을 지극히 말함으로 인해 이에 비찬(備饌)하여 수옹을 불러들였다(). 이미 이르자 양수가 급히 문왈(問曰) 부도(浮圖; 佛陀)의 교()는 어떠한 것입니까(何爲者). 수옹이 이에 관론(欵論; 精誠으로 논함)하며 지묘휘미(指妙揮微)했고 화장법계(華藏法界)의 도(; 도읍)에 우유(優游)하고 제망명주(帝網明珠)의 내()에 종용(從容)했다. 양수가 송연(竦然)히 가로되 내가 애초에 불서(佛書)의 그 묘()가 여기에 이르는 줄 알지 못했습니다. 역책(易簀; 임종) 시 자제(子弟)를 불러 간절히 경계(警戒; )해 가로되 나의 생애(吾生)는 문장으로써 당세(當世)에 이름났고 힘껏 부도(浮圖)를 꾸짖었다(; 음이 저). 금차(今此) 쇠잔(衰殘)하여서야 홀연히 오의(奧義)를 들었고 비로소 장차 연구하려 했으나 명인 것을 어찌하겠는가(命也柰何). 너희 등은 면전(勉旃; 이에 힘쓰다)하여 후회(後悔)를 밟지() 말아라. 이에 주육(酒肉)을 버리고() 성색(聲色)을 거두고() 회심(灰心)하여 묵좌(默坐)했다. 노병(老兵)을 시켜 근사(近寺)에서 화엄경을 빌려 와 읽다가 8권에 이르러 이에 안좌(安坐)하여 서거했다.

二府; 송대 중서성(中書省)과 추밀원(樞密院_을 일컬었음.

冠冕; 고대 제왕이나 관원이 썼던() 모자(帽子).

十王; 명부(冥府)에 있으면서 망자의 죄업을 재단(裁斷)하는 10판관(判官). 10전염왕(十殿閻王)으로 지음.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의 기재에 의하면 사람이 사후에 명도(冥途)로 취향(趣向)할 때 초7일에 진광왕(秦廣王)에게 이르고 2칠일에 초강왕(初江王)에게 이르고 3칠일에 송제왕(宋帝王)에게 이르고 4칠일에 오관왕(五官王)에게 이르고 5칠일에 염라왕(閻羅王)에게 이르고 6칠일에 변성왕(變成王)에게 이르고 7칠일에 태산왕(太山王)에게 이르고 백 일엔 평등왕(平等王)에게 이르고 1주년엔 도시왕(都市王)에게 이르고 3주년엔 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에 이름. 이와 같이 차제로 10왕의 재단을 받음. 10왕의 신앙은 당말 오대 경에 일어났으며 10왕설의 기원에 유관한 것은 석문정통4와 불조통기33에 모두 당대 도명(道明)10왕의 시창자(始唱者)로 삼았음. 어떤 이가 이르기를 10왕 중 염라왕을 제한 밖, 그 나머지 9왕은 모두 중일(中日)의 불도(佛道) 2교계(敎界)의 전설이 되며 모두 인도에서 전한 바가 아니라 함. 그러나 기타 다른 다종의 이설이 있음. 10왕을 묘회(描繪)한 그림은 석문정통4에 이르기를 당대 장과로(張果老)에서 비롯했다. 그 후 돈황ㆍ조선ㆍ일본 등지에서도 또한 상차(相次)하여 도회(圖繪)했고 유품(遺品)도 적지 않음 [관정경12. 약사유리광경. 정도삼매경. 불조통기45. 석씨육첩16].

優游; 1. 생활에 십분 한적(閑適)함을 얻음. 2. 종용(從容)히 유락(遊樂).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從容; 소요(逍遙). 안정(安靜). 유유자적(悠悠自適).

帝網; 인다라망(因陀羅網)이니 또 천제망(天帝網)ㆍ제망(帝網)으로 지음. 제석천의 보망(寶網)이 됨. ()의 하나하나의 결()에 모두 보주를 부착(附著)했으며 그 수가 무량함. 하나하나의 보주에 모두 자타의 일체 보주의 그림자가 비치어 나타나며 또 하나하나의 그림자 중에 또한 모두 자타의 일체 보주의 그림자가 비치어 나타남. 이와 같이 보주가 무한히 서로 섞이고 반영(反映)하면서 겹겹으로 그림자가 나타나고 호현호은(互顯互隱)하면서 중중무진함. 화엄경에서 인다라망으로 제법의 일()과 다()가 상즉상입(相卽相入)하고 중중무진함의 뜻에 비유함 [화엄경탐현기1. 화엄오교장1].

易簀; 상석(床席)을 경환(更換)함이니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함을 가리킴. 선림소어고증3. 역책(易簀) 예기 단궁(檀弓)에 가로되 증자가 질병으로 자리에 누웠다. 악정자춘(樂正子春; 증자의 제자)이 침상 아래에 앉았고, 증원(曾元; 증자의 아들)과 증신(曾申; 증자의 아들)은 발치에 앉았으며, 동자가 구석에 앉아서 등불을 잡고 있었다. 동자가 말하기를 (자리의 그림이) 화려하면서 눈부신데 대부의 자리입니까. 자춘이 말하기를 그치거라. 증자가 듣고서 놀라며 가로되. (; 탄식. ). (동자가) 가로되 화려하면서 눈부신데 대부의 자리입니까. 증자가 말하기를 그러나 이것은 계손(季孫)이 준 것이라, 내가 능히 바꾸지 못했구나. 원아, 일어나서 자리를 바꾸거라. 증원이 가로되 부자(夫子)의 병이 위급하니, 가히 바꿀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아침에 이르면 공경히 그것을 바꿈을 청합니다. 증자가 가로되 네가 나를 사랑함이 그들만 같지 못하구나. 군자가 사람을 사랑함은 덕으로써 하는 것이고, 세인(細人; 소인)이 사람을 사랑함은 고식(姑息; 隨意)이니 내가 무엇을 구하겠는가. 나는 바름을 얻고 죽을 것이다. 이미 그러고선 들어 올려 그것을 바꾸었다. 자리를 바꾸고는 미안(未安)하게 죽었다().

勉旃; ()은 대사(代詞)니 위어(謂語)의 뒤에 씀. ()에 상당함. 광운 전() ().

 

 

거사분등록 주역(居士分燈錄 註譯) 주문제본

 

거사분등록 주역(居士分燈錄 註譯) 주문제본

상하 2권. 합 780쪽. 2026년 仲春 번역필 本註補註 合計 1,26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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