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여공저(呂公著)

태화당 2026. 6. 20. 07:52

呂公著

字晦叔 與司馬光竝相 光初不喜佛 著勸之曰 佛學心術簡要 掇其至要而識之 大率以正心 無念爲宗 非必事事服習 爲方外人也 光然之 一日帝從容問治道 遂及釋老 著問曰 堯舜知此道乎 帝曰 堯舜豈不知 著曰 堯舜知此 而惟以知人 安民爲急 所以爲堯舜也 屬纊時 雖子孫滿前 親朋遝至 初不談及身世事

簡要; 簡單扼要

屬纊; 是古代喪禮儀式 指用新棉絮置於瀕死者口鼻上測試呼吸是否停止 後也代指臨終

 

여공저(呂公著; 1018-1089)

자가 회숙(晦叔)이며 사마광(司馬光)과 더불어 병상(竝相; 아울러 재상이 됨)했다. ()이 처음엔 부처를 기뻐하지 않았다. 공저(公著; )가 그에게 권해 가로되 불학(佛學)의 심술(心術)은 간요(簡要)합니다. 그 지요(至要)를 가리어() 그것()을 알자면 대솔(大率; 대략. 대개) 정심(正心)으로써 무념(無念)을 종()으로 삼습니다. 반드시 사사(事事)를 복습(服習; 習熟. 適應)해야 방외인(方外人)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 그렇게 여겼다. 어느 날 황제가 종용(從容)히 치도(治道)를 묻다가 드디어 석로(釋老; 불교와 도교)에 미쳤다(). 공저(公著)가 문왈(問曰) 요순(堯舜)이 차도(此道)를 압니까. 제왈(帝曰) 요순이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저왈(著曰) 요순이 이것을 알았지만 오직 지인(知人)으로서 안민(安民)을 급하게 여겼으니 소이로 요순이라 합니다. 속광(屬纊; 임종) 시 비록 자손이 만전(滿前)하고 친붕(親朋; 親戚朋友)이 답지(遝至; 모여 이름)했지만 애초에 담설(談說; )이 몸과 세사(世事)에 미치지 않았다.

簡要; 간단히 액요(扼要; 要點을 잡음).

屬纊; 이는 고대의 상례의식(喪禮儀式)이니 새 면서(棉絮)를 써서 빈사자(瀕死者)의 구비상(口鼻上)에 놓아 호흡의 정지(停止) 시부(是否)를 측시(測試)함을 가리켰음. 후에 임종(臨終)을 대지(代指)했음.

 

贊曰 富鄭公嘗追念古尊宿 奉侍本師 動是三二十年 方得透頂透底 而自恨其請益日淺 此豈空腹高心 認鍮作金者哉 所謂硏窮至理 以悟爲則 生生居學地 而自鍛鍊者 殆其人矣 古德云 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是全身 予於鄭公 不能無低徊焉

 

찬왈(贊曰) 부정공(富鄭公; 富弼)은 늘(; 과 통함), 고존숙이 본사(本師)를 봉시(奉侍)하되 동()했다 하면 이, 삼이십 년에야 바야흐로 투정투저(透頂透底)를 얻었음을 추념(追念)하고는 스스로 그 청익(請益)한 날이 천()함을 한()했으니 이것이 어찌 공복고심(空腹高心)이면서 놋쇠를 인정해 금으로 짓는 자라 하겠는가. 이른 바 지리(至理)를 연궁(硏窮)함은 깨침으로써 법칙을 삼는다. 생생(生生)에 학지(學地)에 거처하며 스스로 단련(鍛鍊)한 자는 거의() 그 사람이다. 고덕(古德; 長沙景岑)이 이르되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보(進步)를 써야 시방세계가 이 전신(全身)이다. ()가 정공(鄭公)에 능히 저회(低徊; 徘徊)함이 없지 않다.

 

又贊曰 文潞公 歐陽永叔 范景仁 司馬君實 邵堯夫 呂晦叔 皆焜燿史冊振世人豪也 乃考其生平 靡不洞明佛理 無異作家禪客 永叔始雖力排 終能開悟 又詎可與淺根者同日道哉

 

또 찬왈(贊曰) 문로공(文潞公; 文彦博), 구양영숙(歐陽永叔; 歐陽修), 범경인(范景仁; 范鎭), 사마군실(司馬君實; 司馬光), 소요부(邵堯夫; 邵雍), 여회숙(呂晦叔; 呂公著)은 모두 사책(史冊)에 혼요(焜燿; 빛나다)하고 진세(振世)한 인호(人豪). 이에 그들의 생평(生平)을 고찰(考察; )하건대 불리(佛理)를 통명(洞明)하지 않음이 없으며() 작가선객(作家禪客)과 다름이 없다. 영숙(永叔)은 처음에 힘껏 배척했으나 마침내 능히 개오(開悟)했으니 또 어찌() 가히 천근자(淺根者)와 더불어 동일(同日)에 말하겠는가.

 

거사분등록 주역(居士分燈錄 註譯) 주문제본

 

거사분등록 주역(居士分燈錄 註譯) 주문제본

상하 2권. 합 780쪽. 2026년 仲春 번역필 本註補註 合計 1,26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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