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興嗣(黃龍慧南禪師法嗣)
潘興嗣 字延之 南州人 初調德化縣尉 同郡許瑊 始拜江州守 嗣往見之 瑊不爲禮 遂懷刺歸 竟不之官 問道於慧南 獲其印可 嘗曰 我淸世之逸民 故自號淸逸居士 當是時黃龍法道大振 四方學徒竭蹷恐後 雖自謂飽參者 至則撫然 就弟子之列 嗣問其故 南曰 父嚴則子孝 今日之訓 後日之範也 譬諸地隆者下之 窪者平之 彼將登於千仞之上 吾亦與之俱 困而極於九淵之下 吾亦與之俱 伎之窮則妄盡 而自釋也 又曰 姁之嫗之 春夏之所以生育也 霜之雪之 秋冬之所以成熟也 吾欲無言得乎 南又嘗以佛手驢脚生緣三語勘問學者 莫能契其旨 天下叢林目爲黃龍三關 脫有詶者 南無可否 斂目危坐 人莫涯其意 嗣又問其故 南曰 已過關者 掉臂徑去 安知有關吏 從吏問可否 此未透關者也 嗣自嘉祐以來 公卿交薦章數十上 堅不就隱居豫章東湖 琴書自娛 一日潛菴源來訪 見其拂琴次 源曰 老老大大 猶弄箇線索在 嗣曰 也要彈敎響 源曰 也不少 嗣曰 知心能幾人
●慧南; (1002-1069) 宋代僧 臨濟宗黃龍派之祖 信州玉山(江西上饒)人 俗姓章 少習儒業 博通經史 十一歲從定水院智鑾出家 十九歲受具足戒 遍參棲賢澄諟 雲峰文悅 石霜楚圓等諸宿 遂嗣石霜楚圓之法 師初住同安崇勝禪院開堂說法 四衆歸趨 未久移至歸宗寺 因堂宇突遭火災 全寺盡毁 遂蒙冤坐獄 吏者百端求隙 而師怡然引咎 久而後赦 乃退居黃檗 於溪上築積翠庵 四方接踵而至 受請至黃龍山崇恩院 大振宗風 遍及湖南 湖北 江西 閩粤等地 此一系統乃蔚成黃龍派 日本臨濟宗之祖榮西卽源出此一流派 師每以公案廣度四衆 室中嘗設佛手驢脚生緣三轉語 以勘驗學人 三十餘年鮮有契其旨者 世稱黃龍三關 師住黃龍時 法席鼎盛 於宋熙寧二年入寂 壽六十八 世稱黃龍慧南 徽宗大觀四年(1110) 追諡普覺禪師 與同門方會之楊岐派對峙 與臨濟 潙仰 曹洞 雲門 法眼等五家 竝稱爲五家七宗 遺有黃龍南禪師語錄 語要 書尺集等各一卷行世 門下之晦堂祖心 寶峰克文 泐潭洪英等 皆馳名禪林 [續傳燈錄七 禪宗正脈十七 釋氏稽古略四]
●印可; 指印證認可 卽弟子修道成就時 爲師者加以印證而承認許可其所悟境界之意 此詞屢見於維摩經上之經文 禪宗密敎亦常用之
●逸民; 古代稱避世隱居不做官的人
●竭蹷; 形容顚仆跌倒或急促行走的形態
●飽參; 謂廣泛參問名師 多年參究禪法 頗具造詣
●撫然; 茫然自失貌
●姁之嫗之; 禪林寶訓音義 姁嫗 上許御切 下衣遇切 陰陽相得 覆育萬物 以氣曰姁 以體曰嫗 姁當作煦 出禮記
●九淵; 淵 深也 海有九轉 回水漩澓 其水至深 故爲九淵 [禪林寶訓音義]
●生緣; 本貫 籍貫 家鄕
●黃龍三關; 禪苑蒙求中 黃龍三關 (會元十七)黃龍室中常問僧曰 人人盡有生緣 上座生緣在何處 正當問答交鋒 却復伸手曰 我手何似佛手 又問諸方參請宗師所得 却復垂脚曰 我脚何似驢脚 三十餘年示此三問
●潛菴源; 淸源(1032-1129) 宋代黃龍派僧 號潛庵 新建(江西南昌)鄧氏 依洪崖法智爲童子 年二十一受具戒 嘗遊武泉嘗 寶峰月 雲居舜三老間 疑終未決 後親侍黃龍慧南七年始悟 南歿 隱跡西山 重新慧嚴院 功成不居 去遊廬阜 居南山淸隱寺十八年 年八十失明 隱居龍興 [補續高僧傳二十三 五燈會元十七]
반흥사(潘興嗣)(黃龍 慧南禪師의 法嗣)
반흥사(潘興嗣; 約 1023-1100)는 자가 연지(延之)며 남주(南州) 사람이다. 처음 덕화현위(德化縣尉)에 뽑혔는데 (調) 동군(同郡)의 허감(許瑊)이 처음으로(始) 강주수(江州守)에 제배(除拜; 拜)되었다. 흥사가 가서 그(之)를 뵙자 허감이 예(禮)하지 않았다. 드디어 가시(刺)를 품고 돌아왔고 마침내 벼슬하지 않았다. 혜남(慧南)에게 문도(問道)했고 그의 인가(印可)를 획득했다. 일찍이 가로되 나는 청세(淸世)의 일민(逸民)이다. 고로 자호(自號)가 청일거사(淸逸居士)다. 이때를 당해 황룡(黃龍)의 법도(法道)가 대진(大振)하였고 사방의 학도(學徒)가 갈궐(竭蹷)하며 뒤처질까 염려했다. 비록 스스로 이르되 포참(飽參)이라 한 자도 이르면(至) 곧 무연(撫然)하며 제자지열(弟子之列)로 나아갔다. 흥사가 그 연고를 묻자 남왈(南曰) 부(父)가 엄(嚴)해야 곧 자(子)가 효(孝)한다. 금일의 교훈(敎訓; 訓)은 후일의 모범(模範; 範)이다. 비유컨대 여러 땅(諸地)에 융자(隆者)는 그것을 낮추고(下之) 와자(窪者; 우묵한 것)는 그것을 평탄케 하고(平之) 그(彼)가 장차 천인지상(千仞之上)에 오르려 하면 나도 또한 그와 함께하고 곤(困)하여 구연지하(九淵之下)를 다하더라도(極) 나는 또한 그와 함께한다. 기량(伎倆; 伎)이 다하면(窮) 곧 망(妄)도 다하여(盡) 스스로 풀린다(釋). 우왈(又曰) 후지구지(姁之嫗之; 撫育하다)하여 춘하(春夏)가 소이(所以)로 생육(生育)하고 상지설지(霜之雪之)하여 추동(秋冬)이 소이로 성숙(成熟)한다. 내가 말이 없고자 함을 얻겠는가. 혜남이 또 일찍이 불수(佛手)ㆍ여각(驢脚)ㆍ생연(生緣) 삼어(三語)로써 학자에게 감문(勘問)했는데 능히 그의 의지(意旨)에 계합하지 못했다. 천하의 총림에서 제목해 황룡삼관(黃龍三關)이라 했다. 혹시(脫) 대답하는(詶; 음이 수) 자가 있더라도 혜남이 가주(可否)가 없었고 염목(斂目; 閉目)하고 위좌(危坐; 端坐)했다. 사람들이 그의 뜻을 헤아리지(涯) 못했다. 흥사가 또 그 연고를 묻자 남왈(南曰) 이미 과관(過關)한 자는 팔을 흔들며 곧장(徑) 가리니 어찌(安) 관리(關吏)가 있음을 알겠는가. 관리로 좇아 가부를 묻는다면 이것은 투관(透關)하지 못한 자이다. 흥사가 가우(嘉祐; 1056-1063) 이래로 공경(公卿)이 교대로 천장(薦章; 推薦의 章)을 수십 번 올렸지만 굳건히 나아가지 않았고 예장(豫章)의 동호(東湖)에 거주하며 거문고와 글(琴書)로 자오(自娛)했다. 어느 날 잠암원(潛菴源)이 내방하여 그를 보매 거문고를 퉁기던(拂) 차(次)였다. 원왈(源曰) 노로대대(老老大大)가 오히려 저(箇) 선삭(線索; 줄)을 회롱합니까. 사왈(嗣曰) 또한 퉁겨서(彈) 울리게(響) 함을 요합니다. 원왈 또한 적지 않습니다. 사왈(嗣曰) 마음을 아는 이 능히 몇 사람이던가.
●慧南; (1002-1069) 송대승. 임제종 황룡파(黃龍派)의 개조(開祖). 신주(信州) 옥산(玉山; 강서 상요)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章). 어릴 적에 유업(儒業)을 익혔으며 경사(經史)를 박통(博通)했음. 11세에 정수원(定水院) 지란(智鑾)을 좇아 출가했으며 19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서현징식(棲賢澄諟)ㆍ운봉문열(雲峰文悅)ㆍ석상초원(石霜楚圓) 등 여러 존숙을 두루 참알(參謁)하다가 드디어 석상초원의 법을 이었음. 스님이 처음엔 동안(同安) 숭승선원(崇勝禪院)에 주(住)하며 개당설법(開堂說法)했는데 4중(衆)이 귀추(歸趨)했음. 오래지 않아 귀종사(歸宗寺)로 이지(移至)했는데 당우(堂宇)가 돌연(突然)히 화재를 만나 전사(全寺)가 모두 훼손(毁損)됨으로 인해 드디어 원통(寃痛)하게 옥사(獄事)에 연좌(連坐)됨을 입었음. 이자(吏者; 獄吏)가 백단(百端; 온갖 방법)으로 틈을 구했으나 스님이 이연(怡然)히 허물을 끌어당겼음. 오래 후에 사면(赦免)되어 이에 황벽(黃檗)으로 퇴거했으며 계곡 위에 적취암(積翠庵)을 축조(築造)했는데 사방에서 접종(接踵; 사람이 잇따르다)하여 이르렀음. 요청을 받아 황룡산(黃龍山) 숭은원(崇恩院)에 이르러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며 호남ㆍ호북ㆍ강서ㆍ민월(閩粤) 등의 땅에 두루 미쳤음. 이 일계통(一系統)이 곧 황룡파를 위성(蔚成)했으며 일본 임제종의 개조(開祖)인 영서(榮西)도 곧 이 한 유파(流派)에서 원출(源出)했음. 스님이 매번 공안으로 4(衆)을 널리 제도했는데 실중(室中)에서 늘 불수(佛手)ㆍ여각(驢脚)ㆍ생연(生緣)의 3전어(三轉語. 轉은 양사)를 시설해 학인을 감험(勘驗)했음. 30여 년에 그 지취(旨趣)에 계합하는 자가 드물게 있는지라 세칭이 황룡삼관(黃龍三關)임. 스님이 황룡에 주(住)할 때 법석이 정성(鼎盛; 융성)하였으며 송(宋) 희녕(熙寧) 2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68. 세칭이 황룡혜남(黃龍慧南)이며 휘종(徽宗) 대관(大觀) 4년(1110) 추시(追諡)하여 보각선사(普覺禪師)라 했음. 동문인 방회(方會)의 양기파(楊岐派)와 대치(對峙)하며 임제ㆍ위앙ㆍ조동ㆍ운문ㆍ법안 등 5가(家)와 더불어 병칭(竝稱)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 함. 유작(遺作)에 황룡남선사어록(黃龍南禪師語錄)ㆍ어요(語要)ㆍ서척집(書尺集) 각 1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문하(門下)의 회당조심(晦堂祖心)ㆍ보봉극문(寶峰克文)ㆍ늑담홍영(泐潭洪英) 등은 다 선림에 치명(馳名)했음 [속전등록7. 선종정맥17. 석씨계고략4].
●印可; 인증(印證)하여 인가(認可)함을 가리킴. 곧 제자가 수도를 성취했을 때 스승 된 자가 인증을 가하여 그의 깨친 바 경계를 승인하여 허가함의 뜻. 이 사(詞)는 유마경상(維摩經上)의 경문에 여러 차례 보임. 선종과 밀교에서도 또한 이를 상용함.
●逸民; 고대에 피세(避世)하여 은거하면서 벼슬살이하지 않는 사람을 일컬었음.
●竭蹷; 전부질도(顚仆跌倒; 넘어지고 미끄러짐)하거나 혹 급촉(急促)히 행주(行走; 걷다)하는 형태(形態)를 형용.
●飽參; 이르자면 광범(廣泛)하게 명사(名師)를 참문하고 여러 해 선법을 참구하여 자못 조예(造詣)를 갖춤.
●撫然; 망연자실(茫然自失)하는 모양.
●姁之嫗之; 선림보훈음의 후구(姁嫗) 상은 허어절(許御切)이며 하는 의우절(衣遇切)이다. 음양이 상득(相得)하여 만물을 부육(覆育)함이다. 기(氣)를 씀을 가로되 후(姁)며 체(體)를 씀을 가로되 구(嫗)다. 후(姁)는 마땅히 후(煦)로 지어야 한다. 예기(禮記)에 나온다.
●九淵; 연(淵)은 깊음임. 바다에 9전(轉)이 있고 물을 돌려 선복(漩澓; 소용돌이치며 흐름)하면서 그 물이 깊음에 이르는지라 고로 구연이 됨 [선림보훈음의].
●生緣; 본관(本貫)ㆍ적관(籍貫; 本貫)ㆍ가향(家鄕).
●黃龍三關; 선원몽구중. 황룡삼관(黃龍三關) (회원17) 황룡이 실중(室中)에서 늘 중에게 물어 가로되 사람마다 모두 생연(生緣)이 있나니 상좌의 생연은 어느 곳에 있느냐. 바로 문답하며 교봉(交鋒)함을 당해 도리어 다시 손을 내밀고(伸手) 가로되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我手何似佛手). 또 제방에 종사를 참청(參請)하여 얻은 바를 묻고는 도리어 다시 다리를 내리고(垂脚) 가로되 내 다리가 어찌하여 나귀 다리와 같으냐(我脚何似驢脚). 30여 년을 이 세 질문을 보였다.
●潛菴源; 청원(淸源; 1032-1129)이니 송대 황롱파승. 호는 잠암(潛庵)이며 신건(강서 남창) 등씨. 홍애법지에게 의지하며 동자가 되었고 나이 21에 구계(具戒)를 받았음. 일찍이 무천상ㆍ보봉월ㆍ운거순 3로(老)의 사이에 노닐었으나 의심을 마침내 해결하지 못했음. 후에 황룡혜남(黃龍慧南)을 7년 동안 친시(親侍)하면서 비로소 깨쳤음. 혜남이 죽자 서산에 은적(隱跡)했고 혜엄원을 중신(重新)했는데 공을 성취했으나 거주하지 않았음. 가서 여부(廬阜)에 노닐다가 남산 청은사에 18년 동안 거주했음. 나이 80에 실명했고 용흥에 은거했음 [보속고승전23. 오등회원17].
贊曰 覺範題公畵像云 毗盧無生之藏 震旦有道之器 談妙義借身爲舌 擎大千以手爲地 機鋒不減龐蘊 而解文字禪 行藏大類孺子 而値休明世 舒王疆之而不可 神考致之而不起 此天下士大夫所共聞 然公豈止於是而已哉 噫 豈止於是四箇字 分明畵出潘延之
●覺範; 德洪(1071-1128) 宋代黃龍派僧 瑞州(江西高安)人 俗姓喩(或謂彭 兪) 字覺範 號寂音尊者 年十九 試經於東京天王寺而得度 初名慧洪 參眞淨克文而得法 崇寧(1102-1106)年中 住持臨川北禪院 後遷金陵淸涼寺 未久 爲狂僧誣以度牒冒名旁連訕謗事 誣陷入獄 張無盡特奏得度改今名 太尉郭天民奏賜椹服 號寶覺圜明 自稱寂音尊者 政和元年(1111)頃 坐交張郭厚善 張罷政事 有嫉之者 誣指師與二人交通 詔奪袈裟 發配然州 三年始得歸 同年冬 復拘之於幷州獄 踰年獲釋 遂棄僧服入九峰洞山 以文章自娛 其後將赴湘西 途經南昌 復爲道士誣陷下獄 幸遇赦得免 遂入居南臺明白庵 靖康元年(1126) 蒙賜再度剃髮 恢復慧洪舊名 建炎二年寂於同安 壽五十八 著林間錄二卷 僧寶傳三十卷 高僧傳十二卷 智證傳十卷 志林十卷 冷齋夜話十卷 天厨禁臠一卷 石門文字禪三十卷 語錄偈頌一編 法華合論七卷 楞嚴尊頂義十卷 圓覺皆證義二卷 金剛法源論一卷 起信論解義二卷 並行于世 [佛祖歷代通載十九 普燈錄七 續傳燈錄二十二]
●大千; 大千世界 三千大千世界也 經說 世界有小千中千大千之別 合四大洲日月諸天爲一世界 一千世界名小千世界 小千加千倍名中千世界 中千加千倍名大千世界 ▲俱舍論十一 頌曰 四大洲日月 蘇迷盧欲天 梵世各一千 名一小千界 此小千千倍 說名一中千 此千倍大千 皆同一成壞
●文字禪; 又作葛藤禪 謂以文字言語解說禪法
●休明; 指美好淸明 用以贊美明君或盛世
●舒王; 王安石(1021-1086) 北宋政治家 死後於政和三年(1113)被追封爲舒王
●神考; 指宋代對宋神宗趙頊(1048-1085) 其中神爲廟號 考指對亡父的尊稱
찬왈(贊曰) 각범(覺範)이 공(公; 潘興嗣)의 화상(畵像)에 제(題)하여 이르되 비로(毗盧)의 무생지장(無生之藏)이며 진단(震旦; 중국)의 유도지기(有道之器)다. 묘의(妙義)를 얘기하되 몸을 빌려 혀로 삼고 대천(大千)을 받들되(擎) 손으로써 땅을 삼는다. 기봉(機鋒)은 방온(龐蘊)에 모자라지(減) 않고 문자선(文字禪)을 이해했다. 행장(行藏; 行迹, 來歷)은 유자(孺子; 幼兒)와 매우 유사하고(大類) 휴명(休明; 美好淸明)의 세상을 만났다(値). 서왕(舒王)이 강권(强勸)했으나(疆之) 불가(不可)했고 신고(神考)가 초치(招致)했으나(致之)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천하 사대부가 공문(共聞)한 바이지만 그러나 공(公)이 어찌 이에 머물(豈止於是) 따름이겠는가. 희(噫)라 기지어시(豈止於是) 4개 자(字)가 분명히 반연지(潘延之; 潘興嗣)를 그려 내었다.
●覺範; 덕홍(德洪; 1071-1128)이니 송대 황룡파승. 서주(강서 고안) 사람이며 속성은 유(喩. 혹은 이르되 彭ㆍ兪)며 자는 각범(覺範)이며 호는 적음존자(寂音尊者). 나이 19에 동경 천왕사에서 시경(試經)하여 득도했음. 처음의 이름은 혜홍(慧洪)이었으며 진정극문(眞淨克文)을 참알해 법을 얻었음. 숭녕(1102-1106)년 중에 임천 북선원에 주지했으며 후에 금릉 청량사로 옮겼음. 오래지 않아 광승(狂僧)이, 도첩(度牒)의 모명(冒名)과 두루 산방(訕謗)의 일을 연결해 무고(誣告)하는 통에 무함(誣陷)으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장무진이 특주(特奏)하여 득도(得度)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음. 태위 곽천민이 주청하여 침복(椹服. 僧服)과 보각원명이란 호를 주었음. 자칭이 적음존자(寂音尊者)임. 정화 원년(1111) 무렵(頃) 장곽과 교유(交遊)하며 후선(厚善)함에 연좌되었으니 장곽은 정사(政事)를 그만두었으며 질투하는 자가 있어 스님이 두 사람과 교통(交通)했다고 무고(誣告)로 가리키는 통에 조칙으로 가사를 뺏고 연주로 유배를 떠났음. 3년 만에 비로소 돌아옴을 얻었으나 같은 해 겨울에 다시 병주옥에 구속되었다가 해를 넘기자 석방됨을 얻었음. 드디어 승복을 버리고 구봉의 동산(洞山)에 들어가 문장으로 자오(自娛)했음. 그 후 장차 상서(湘西)에 이르려는데 길이 남창을 경유했으며 다시 도사(道士)의 무함(誣陷)으로 하옥되었음. 다행히 사면을 만나 면함을 얻었음. 드디어 남대 명백암으로 들어가 거주했는데 정강 원년(1126) 재도(再度. 再次) 체발(剃髮)을 몽사(蒙賜)하여 구명(舊名) 혜홍(慧洪)을 회복했음. 건염 2년 동안(同安)에서 입적했으니 나이는 58. 저서에 임간록 2권ㆍ승보전 30권ㆍ고승전 12권ㆍ지증전 10권ㆍ지림 10권ㆍ냉재야화 10권ㆍ천주금련 1권ㆍ석문문자선 30권ㆍ어록게송 1편(編)ㆍ법화합론 7권ㆍ릉엄존정의 10권ㆍ원각개증의 2권ㆍ금강법원론 1권ㆍ기신론해의 2권이 있어 모두 세상에 행함 [불조역대통재19. 보등록7. 속전등록22].
●大千; 대천세계(大千世界)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임. 경에 설하기를 세계가 소천ㆍ중천ㆍ대천의 구별이 있다 했음. 사대주ㆍ 일월ㆍ제천을 합해서 한 세계가 되며 1천 세계를 이름해 소천세계며 소천에 천배를 가하면 이름이 중천세계며 중천에 천배를 가하면 이름이 대천세계임. ▲구사론11. 송에 가로되 사대주와 일월/ 소미로(蘇迷盧; 수미산)와 욕천(欲天; 六欲天)/ 범세(梵世; 色界 18天) 각 1천이/ 이름이 1소천계며/ 이 소천의 천배를/ 설해 1중천이라 이름하며/ 이것의 천배가 대천이니/ 다 동일하게 성괴한다.
●文字禪; 또 갈등선으로 지음. 이르자면 문자언어로 선법을 해설함.
●休明; 미호(美好)하고 청명(淸明)함. 써서 명군(明君) 혹 성세(盛世)를 찬미함.
●舒王;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니 북송의 정치가. 사후 정화(政和) 3년(1113) 서왕(舒王)에 추봉(追封)됨을 입었음.
●神考; 송대 송신종(宋神宗) 조욱(趙頊; 1048-1085)을 가리킴. 그 중 신(神)은 묘호(廟號)가 되고 고(考)는 망부(亡父)에 대한 존칭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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