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祥正(白雲守端禪師法嗣)
郭祥正 字功甫 母夢李白而生 皇祐四年 守端寓歸宗時 正任星子主簿 往叩心法 迨端住承天遷圓通 正復尉於德化 往來尤密 端移白雲海會 正自當途往謁 端曰 牛醇乎 曰 醇矣 端厲聲叱之 正不覺拱而立 端曰 醇乎 醇乎 南泉大潙無異此也 於是鳴鼓陞座曰 牛來山中 水足草足 牛出山去 東觸西觸 夜來枕上 作得箇山頌 謝功甫大儒 廬山二十年之舊 今日遠訪白雲之勤請 已後分明擧似諸方 直要與天下有鼻孔衲僧脫却着肉汗衫 莫言不道 乃曰 上大人丘乙己化三千七十士爾 小生八九子佳 作仁可知禮也 正切疑 後聞小兒誦之 忽有省 以書報端 端答偈曰 藏身不用縮頭 斂跡何須收脚 金烏半夜撩天 玉兔趕他不着 元祐中 往衢之南禪 謁泉萬卷 請陞座 正趨前拈香曰 海邊枯木入手成香 爇香爐中 橫穿香積如來鼻孔 作此大事 須是對衆白過始得 雲居老人 有箇無縫布衫分付南禪 禪師着得 不長不短 進前則諸佛護位 退步則海水澄波 今日嚬呻六種震動 遂召曰 大衆還委悉麽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泉曰 遞相鈍置 正曰 因誰致得 崇寧初到五祖請法 演陞座 正趨前拈香曰 此一瓣香 爇向爐中 供養我堂頭法兄禪師 伏願於方廣座上 劈開面門 放出先師頂相 與他諸人描邈 何以如此 白雲巖畔舊相逢 往日今朝事不同 夜靜水寒魚不食 一爐香散白蓮峯 演遂曰 曩謨薩怛哆鉢囉野 恁麽恁麽 幾度白雲谿上望黃梅 花向雪中開 不恁麽不恁麽 嫩柳垂金線 且要應時來 不見龐居士問馬大師云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麽人 大師云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大衆 一口吸盡西江水 萬丈深潭窮到底 略彴不是趙州橋 明月淸風安可比 又到雲居請了元陞座 正拈香曰 覺地相逢一何早 鶻臭布衫今脫了 要識雲居一句玄 珍重後園驢喫草 召大衆曰 此一瓣香薰天炙地去也 元曰 今日不着便 被這漢當面塗糊 便打 乃曰 謝公千里來相訪 共話東山竹徑深 借與一龍騎出洞 若逢天旱便爲霖 擲拄杖下座 正拜起 元曰 收得龍麽 曰 已在這裏 元曰 作麽生騎 正擺手作舞便行 元拊掌曰 祇有這漢猶較些子 正隱靑山 所著有醉吟菴詩文三十卷 號靑山集
●守端; (1025-1072) 宋代楊岐派僧 湖南衡陽人 俗姓周(一作葛) 二十歲依茶陵郁得度 後至諸方參學 於楊岐方會處得悟 承其法嗣 其後由圓通居訥推擧 住於江西承天禪院 歷住圓通崇勝禪院 安徽法華山證道禪院 龍門山乾明禪院 興化禪院 白雲山海會禪院等處 弘揚佛法 宋神宗熙寧五年示寂 壽四十八 門人法演編有白雲守端禪師語錄二卷 白雲端和尙廣錄四卷 [續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九 釋氏稽古略四]
●李白; (701-762) 唐居士 字太白 號靑蓮居士 成紀(甘肅秦安西北)人 博學廣覽 任性好俠 天寶(742-755)初 住長安 見賀知章 章見其文 奏玄宗 甚見愛重 詔供奉翰林 有西方淨土贊 [名公法喜志二 佛法金湯編八 西舫彙徵下 舊唐書一九〇下]
●主簿; 官名 是各級主官屬下掌管文書的佐吏 魏晉以前主簿官職廣泛存在於各級官署中 隋唐以後 主簿是部分官署與地方政府的事務官 重要性減少 [百度百科]
●山頌; 粗俗的偈頌 是禪僧稱自己偈詩的謙詞
●上大人丘乙己下; 現今解意紛紜 未有確信的定說 大慧書栲栳珠云 此孔子上其父書也 上大人(上 上書大人 謂叔梁紇) 丘(聖人名) 乙己化三千七十士爾(乙 一通 言一身所化士如許) 小生八九子佳(八九七十二也 言弟子三千中 七十二人更佳) 作仁(作猶爲也) 可知禮也(仁禮相爲用 言七十子善爲仁 其於禮可知)
●撩天; 撩 取也 挑弄也
●拈香; 拈起香而燒之也 [象器箋九]
●香積如來; 住於上方衆香世界之佛名
●六種震動; 指大地震動之六種相 又作六變震動 六反震動 略稱六震 六動 大品般若經一序品 依地動之方向 擧出東涌西沒 西涌東沒 南涌北沒 北涌南沒 邊涌中沒 中涌邊沒等六相 新華嚴經十六 廣博嚴淨不退轉輪經一等 則擧出動 起 涌 震 吼 擊(搖)等六相 各相復分小 中 大等三種 故計有動 遍動 等遍動 起 遍起 等遍起 涌 遍涌 等遍涌 震 遍震 等遍震 吼 遍吼 等遍吼 擊 遍擊 等遍擊等十八相
●鈍置; 意爲折磨 作弄 折騰
●一瓣香; 又作一炷香 瓣者 瓜瓣之意 香之形狀似瓜瓣 故稱一瓣香 又以瓣爲片之意 故稱一瓣香
곽상정(郭祥正)(白雲 守端禪師의 法嗣)
곽상정(郭祥正)은 자가 공보(功甫)다. 모친이 이백(李白)을 꿈꾸고 출생했다. 황우(皇祐) 4년(1049) 수단(守端)이 귀종(歸宗)에 우거(寓居; 寓)할 때 상정(祥正)은 성자(星子)의 주부(主簿)에 임직(任職; 任)했다. 가서 심법(心法)을 고문(叩問; 叩)했다. 수단이 승천(承天; 承天禪院)에 주(住)했다가 원통(圓通)으로 옮김에 이르러(迨) 상정이 다시 덕화(德化)의 위(尉; 벼슬 이름)였으며 왕래하며 더욱(尤) 친밀했다(密). 수단이 백운(白雲; 백운산) 해회(海會; 院名)로 옮기자(移) 상정이 당도(當塗)로부터 왕알(往謁)했다. 단왈(端曰) 소가 순(醇; 醇朴)한가. 가로되 순합니다. 수단이 여성(厲聲)으로 그를 꾸짖었다(叱之). 상정이 불각에 공수(拱手; 拱)하고 섰다. 단왈 순한가(醇乎), 순한가. 남천(南泉; 普願)과 대위(大潙; 靈祐)일지라도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 이에 명고(鳴鼓)하고 승좌(陞座)하여 가로되 우래산중(牛來山中)에/ 수족초족(水足草足)하다/ 소가 나가고 산이 떠나자(牛出山去)/ 동촉서촉(東觸西觸)한다. 야래(夜來; 來는 조사)에 침상(枕上)에서 저(箇) 산송(山頌)을 지음을 얻었으니 공보(功甫) 대유(大儒)에게 감사한다. 여산(廬山) 이십 년의 친구(親舊; 舊)가 금일 백운을 원방(遠訪)하여 근청(勤請)하니 이후(已後)에 분명히 제방에 들어 보여라. 바로 천하의 비공(鼻孔)이 있는 납승에게 주어 살갗에 붙은 한삼(着肉汗衫)을 벗어버리게 함을 요하나니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아라. 이에 가로되 상대인(上大人)하오니 구을기(丘乙己)가 화삼천(化三千) 칠십사이(七十士爾) 소생(小生) 팔구자(八九子)가 가(佳)니 작인(作仁)하고 가지례야(可知禮也). 상정이 간절히 의심했는데 후에 소아(小兒)가 이를 외움을 듣고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글로써 수단에게 알렸다. 수단의 답게(答偈)에 가로되 장신(藏身)하면서 축두(縮頭)를 쓰지 말지니/ 염적(斂跡; 자취를 거두다)하면서 어찌 수각(收脚)을 쓰겠는가(須)/ 금오(金烏; 해)가 반야(半夜)에 요천(撩天)하매/ 옥토(玉兔; 달)가 그것을 쫓아가지 못한다(趕他不着). 원우(元祐; 1086-1094) 중 구(衢; 衢州)의 남선(南禪)으로 가서 천만권(泉萬卷; 法泉)을 참알해 승좌(陞座)를 청했다. 상정이 앞으로 나아가(趨; 行也) 염향(拈香)하고 가로되 해변(海邊)의 고목(枯木)이 손에 들어와 향(香)을 이루었으니 노중(爐中)에 향을 사루어 향적여래(香積如來)의 비공(鼻孔)을 횡천(橫穿)했습니다. 이 대사(大事)를 지었으니 모름지기 이는 대중(對衆)하여 알려야(白過; 過는 조사) 비로소 옳습니다. 운거(雲居; 曉舜) 노인이 저(箇) 무봉포삼(無縫布衫)이 있어 남선(南禪; 法泉)에게 분부(分付)했고 선사(禪師)가 착득(着得; 입다)하매 부장부단(不長不短)하였습니다. 진전(進前)하면 곧 제불이 양위(讓位)하고 퇴보(退步)하면 곧 해수(海水)가 징파(澄波; 파도를 맑힘)하고 금일 빈신(嚬呻)하면 육종으로 진동(六種震動)합니다. 드디어 불러 가로되 대중이여, 도리어 위실(委悉)합니까. 의기(意氣)가 있을 때 의기를 더하고 풍류하지 않을 곳에서 또한 풍류입니다. 천왈(泉曰) 체상(遞相) 둔치(鈍置)하는구나. 정왈(正曰) 누구로 인해 치득(致得; 이르게 하다)했습니까. 숭녕(崇寧; 1102-1106) 초 오조(五祖)에 이르러 청법(請法)했다. 연(演; 法演)이 승좌(陞座)하자 상정이 앞으로 가서(趨) 염향(拈香)하고 가로되 이 일판향(一瓣香)을 노중(爐中)을 향해 사루어 나의 당두(堂頭) 법형(法兄) 선사에게 공양합니다. 복원(伏願)컨대 방광(方廣; 方正廣大)의 좌상(座上)에서 면문(面門; 面部)을 벽개(擘開)하여 선사(先師)의 정상(頂相)을 방출하여 저(他) 제인이 묘막(描邈; 描畫)하게 하여 주십시오. 무엇 때문에(何以) 이와 같은가, 백운암반(白雲巖畔)에서 옛적(舊)에 상봉했거니와/ 왕일(往日)과 금조(今朝)의 일이 부동(不同)하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서 고기가 먹지 않나니/ 일로(一爐)의 향이 백련봉(白蓮峯)에 흩어진다. 법연이 드디어 가로되 낭모살달치발라야(曩謨薩怛哆鉢囉野). 이러하고 이러함이여, 몇 차례나 백운의 계상(谿上)에서 황매(黃梅)를 바라보매 꽃이 설중(雪中)을 향해 피었던가. 이러하지 않고 이러하지 않음이여, 눈류(嫰柳; 어린 버들. 고운 버들)가 금선(金線)을 드리우니 다만(且) 시기에 응해 옴을 요한다. 보지 못하느냐, 방거사가 마대사에게 물어 이르되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대사가 이르되 네가 한입에 서강수(西江水)를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대중이여, 한입에 서강수를 마셔 없애고/ 만장(萬丈)의 심담(深潭)에 바닥까지 궁구해 이른다/ 약작(掠彴; 외나무 다리)은 이 조주교(趙州橋)가 아니니/ 명월청풍으로 어찌(安) 가히 비교하리오. 또 운거(雲居)에 이르러 불인(佛印; 了元)에게 승좌를 청했다. 상정이 염향(拈香)해 가로되 각지(覺地)에서 상봉함이 한결같이 어찌 이른가(一何早)/ 골취(鶻臭; 송골매의 비린내)의 포삼(布衫)을 여금에 이미 벗었다/ 운거의 1구(一句)의 현(玄)을 알고자 한다면/ 진중(珍重) 후원(後園)에 나귀가 풀을 먹는다.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이 일판향(一瓣香)이 훈천자지(熏天炙地)하여 갈 것입니다. 원왈(元曰) 금일 편의를 만나지 못해(不着便) 저한(這漢)이 당면(當面)에서 도호(塗糊)함을 입었다. 바로 때렸다. 이에 가로되 공(公)이 천 리에서 와 상방(相訪)함에 감사하나니/ 동산(東山)의 죽경(竹徑)의 깊음을 공화(共話)한다/ 일룡(一龍)을 빌려 주어 타고 출동(出洞)하나니/ 만약 천한(天旱; 가뭄)을 만나면 바로 장마(霖)가 되리라.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상정이 예배하고 일어나자 원왈(元曰) 용을 수득(收得)했는가. 가로되 이미 저리(這裏)에 있습니다. 원왈 어떻게 타겠는가. 상정이 손을 흔들며(擺) 춤추고 바로 갔다. 요원(了元)이 부장(拊掌)하고 가로되 다만 저한(這漢)이 있어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상정이 청산(靑山)에 은거했다. 소저(所著)에 취음암시문(醉吟菴詩文) 30권이 있으니 호가 청산집이다.
●守端;(1025-1072) 송대 양기파승. 호남 형양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주(周; 한편으론 葛로 지음). 20세에 다릉욱(茶陵郁)에 의지해 득도(得度)했으며 후에 제방에 이르러 참학(參學)하다가 양기방회(楊岐方會)의 처소에서 깨침을 얻었고 그 법사(法嗣)를 승계했음. 그 후 원통거눌(圓通居訥; 운문하 4세)의 추거(推擧; 추천)로 말미암아 강서 승천선원(承天禪院)에 주지했음. 원통 숭승선원(崇勝禪院)ㆍ안휘 법화산 증도선원(證道禪院)ㆍ용문산 건명선원(乾明禪院)ㆍ흥화선원(興化禪院)ㆍ백운산 해회선원(海會禪院) 등의 곳을 역주(歷住)하며 불법을 홍양(弘揚)하다가 송 신종 희녕 5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48. 문인 법연(法演)이 편(編)한 백운수단선사어록 2권과 백운단화상광록 4권이 있음 [속전등록13. 오등회원19. 석씨계고략4].
●李白; 당(唐) 거사.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며 성기(감숙 진안 서북) 사람. 박학하고 광람(廣覽)했으며 임성(任性;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하고 호협(好俠; 豪俠을 좋아함)했음. 천보(742-755) 초에 장안에 거주하며 하지장(賀知章)을 뵈었는데 지장이 그의 문장을 보고 현종에게 아뢰자 매우 애중(愛重)을 보였고 공봉한림(供奉翰林)으로써 불렀음. 서방정토찬이 있음 [명공법희지2. 불법금탕편8. 서방휘징하. 구당서190하].
●主簿; 벼슬 이름이니 이는 각급(各級) 주관(主官) 속하(屬下)의, 문서를 장관하는 좌리(佐吏)임. 위진(魏晉) 이전 주부 관직은 광범하게 각급 관서 중에 존재했음. 수ㆍ당 이후 주부는 이, 부분 관서와 지방 정부의 사무관이었고 중요성이 감소했음 [백도백과].
●山頌; 거칠고 속된 게송. 이는 선승이 자기의 게시(偈詩)를 일컫는 겸사(謙詞).
●上大人丘乙己下; 현금(現今)에 해의(解意)가 분운(紛紜)하여 확신적인 정설(定說)이 있지 않음. 대혜서고로주(大慧書栲栳珠; 일본 無著道忠 著)에 이르되 이는 공자가 그 아버지에게 올린 글이다. 상대인(上大人; 上은 대인에게 글을 올림이니 이르자면 叔梁紇임)하오니 구(丘; 聖人의 이름)가 을기화삼천칠십사이(乙己化三千七十士爾; 乙은 一과 통함. 말하자면 一身으로 교화한 바의 사내가 이와 같음)니다. 소생팔구자가(小生八九子佳; 八九는 七十二니 말하자면 제자 3천 중에 72인이 다시 아름답다)니 작인(作仁; 作은 爲와 같음)하여 가지례야(可知禮也; 仁과 禮를 서로 씀이 됨이니 말하자면 70의 제자가 잘 仁을 지어 그 禮를 가히 안다)이다.
●撩天; 료(撩)는 취(取)임. 도롱(挑弄; 돋우어 희롱함)임.
●拈香; 향을 집어 일으켜 그것을 태움임 [상기전9].
●香積如來; 상방 중향세계(衆香世界)에 거주하는 불명(佛名).
●六種震動; 대지가 진동하는 6종의 상(相)을 가리킴. 또 육변진동(六變震動)ㆍ육반진동(六反震動)으로 지으며 약칭이 육진(六震)ㆍ육동(六動)임. 대품반야경1 서품에 지동(地動)의 방향에 의해 동용서몰ㆍ서용동몰ㆍ남용북몰ㆍ북용남몰ㆍ변용중몰ㆍ중용변몰 등 6상(相)을 거출(擧出)했음. 신화엄경16과 광박엄정불퇴전륜경1 등엔 곧 동(動)ㆍ기(起)ㆍ용(涌)ㆍ진(震)ㆍ후(吼)ㆍ격(擊; 搖) 등 6상을 거출했고 각 상(相)에 다시 소ㆍ중ㆍ대 등 3종으로 분류했음. 고로 합계하면 동ㆍ편동ㆍ등편동, 기ㆍ편기ㆍ등편기, 용ㆍ편용ㆍ등편용, 진ㆍ편진ㆍ등편진, 후ㆍ편후ㆍ등편후, 격ㆍ편격ㆍ등편격 등 18상이 있음.
●鈍置; 뜻은 절마(折磨; 괴롭히다)ㆍ희롱을 지음ㆍ절등(折騰; 반복하여 지음)이 됨.
●一瓣香; 또 일주향(一炷香)으로 지음. 판(瓣; 오이의 씨)이란 것은 과판(瓜瓣; 오이의 씨)의 뜻. 향의 형상이 과판과 같은지라 고로 호칭이 일판향임.
贊曰 無影樹 無縫塔 從何處描邈
●無縫塔; 卵塔也 昔南陽忠國師 對代宗謂爲老僧作箇無縫塔 後之禪者托斯語 窆亡僧削堅石 團圝而無縫稜 無層級 呼爲無縫塔 無縫塔之形如鳥卵 因名卵塔
찬왈(贊曰) 무영수(無影樹)와 무봉탑(無縫塔)을 어느 곳으로 좇아 묘막(描邈; 描繪)하겠는가.
●無縫塔; 난탑(卵塔)임. 옛적에 남양충국사가 대종을 상대해 이르기를 노승을 위해 무봉탑을 만드십시오. 후에 선자(禪者)가 이 말에 의탁해 망승을 매장(窆은 埋葬임)하고 견고한 돌을 깎았는데 둥글어서 꿰맴과 모가 없으며 층급도 없었으니 무봉탑이라고 부름. 무봉탑의 형상이 새알과 같아서 인하여 이름이 난탑임.
평심사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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