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책(ㄱ)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책(ㄱ) 538쪽

태화당 2019. 5. 4. 18:24

古尊宿語錄四十八卷 宋代賾藏主(僧挺守賾)集 靈谷寺淨戒重校 今收於卍續藏第一一八冊 內蒐羅南嶽懷讓以下 馬祖 百丈 臨濟 雲門 眞淨 佛眼 東山等四十餘家禪宗名德之語錄 多爲景德傳燈錄所未載者 乃硏究南嶽以下禪風之至要典籍 明萬曆年間北藏重修時 曾收入大藏經中 然缺其序 目次 撰號等 繼本書之後 宋代師明撰續古尊宿語要六卷 然仍以本書爲較卓越之古尊宿語要 迄今猶著稱於世 又賾藏主原撰有古尊宿語要一書 僅有四卷 刊於紹興年間 其內收集唐宋期間禪宗二十家之語錄 爲本書(古尊宿語錄)編輯之基本資料 [閱藏知津四十二 大明三藏目錄]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48. 송대 색장주(賾藏主. 僧挺守賾)가 편집하고 영곡사 정계가 중교(重校)했음. 지금 만속장 제118책에 수록되었음. 내용은 남악회양 이하의 마조ㆍ백장ㆍ임제ㆍ운문ㆍ진정ㆍ불안ㆍ동산 등 40여 가()의 선종명덕(禪宗名德)의 어록을 모아 나열했음. 다분히 경덕전등록에 실리지 않은 것들임. 곧 남악 이하의 선풍을 연구하는데 지극히 중요한 전적임. 명 만력년 간에 북장(北藏)을 중수할 때 일찍이 대장경 속에 수록해 넣었으나 그러나 그 서ㆍ목차ㆍ선호(撰號) 등이 모자랐음. 본서의 뒤를 이어 송대 사명(師明)이 속고존숙어요 6권을 지었으나 그러나 그대로 본서로써 비교적 탁월한 고존숙어요로 삼으며 여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명칭이 드러남. 또 색장주거 원래 지은 고존숙어요 1()가 있는데 겨우 4권이 있으며 소흥년 간에 간행했음. 그 안에 당ㆍ송 기간의 선종 24가의 어록을 수집했으며 본서(고존숙어록)의 편집의 기본자료가 됨 [열장지진42. 대명삼장목록].

 

古拙圓淸代臨濟宗僧超圓 字古拙 詳見超圓

고졸원(古拙圓) 청대 임제종승 초원의 자가 고졸이니 상세한 것은 초원(超圓)을 보라.

 

古拙俊元末明初臨濟宗僧昌俊 字古拙 詳見昌俊

고졸준(古拙俊) 원말명초 임제종승 창준의 자가 고졸이니 상세한 것은 창준(昌俊)을 보라.

 

高宗夢得說高宗 殷()第二十代國君武丁 小乙之子 廟號高宗 史記三殷本紀曰 帝小乙崩 子帝武丁立 帝武丁卽位 思復興殷 而未得其佐 三年不言 政事決定於塚宰 以觀國風 武丁夜夢得聖人 名曰說 以夢所見視群臣百吏 皆非也 於是乃使百工營求之野 得說於傅險中 是時說爲胥靡 築於傅險 見於武丁 武丁曰是也 得而與之語 果聖人 擧以爲相 殷國大治 故遂以傅險姓之 號曰傅說 大慧語錄二十九 佛夢金鼓 高宗夢得說 孔子夢奠兩楹

고종몽득열(高宗夢得說) 고종은 은(; )의 제20대 국군 무정(武丁)이니 소을의 아들이며 묘호가 고종임. 사기3 은본기에 가로되 제소을(帝小乙)이 붕어하자 아들인 제무정(帝武丁)을 세웠다. 제무정이 즉위하자 은을 부흥함을 생각했으나 그 보좌를 얻지 못했다. 3년 동안 말하지 않았으며 정사는 총재(塚宰; 太宰니 지위가 三公의 다음)에게서 결정하여 국풍을 보게 했다. 무정이 밤의 꿈에 성인(聖人)을 얻었는데 이름해 가로되 열()이었다. 꿈에서 본 바로써 군신과 백리(百吏)를 보았으나 다 아니었다. 이에 곧 백공(百工)이 영구(營求)하는 들판으로 사신을 보내어 열을 부험(傅險; 땅 이름) 가운데서 얻었다. 이때 열은 서미(胥靡;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하고 미천한 자를 일컬음)가 되어 부험에서 건축하고 있었다. 무정에게 보였더니 무정이 가로되 이것이다. 얻어서 그와 더불어 말해보니 과연 성인이었다. 천거해 재상을 삼았더니 은국이 크게 다스려졌다. 고로 드디어 부험으로써 그의 성을 삼아 호해 가로되 부열이라 했다. 대혜어록29. 부처가 금고를 꿈꾸고(金鼓) 고종이 꿈에 열을 얻고(高宗夢得說) 공자가 꿈에 두 기둥에서 제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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