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당수세록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3년 게담연선사육구현유(揭湛然禪師六句懸喩)

태화당 2019. 8. 8. 10:27

게담연선사육구현유(揭湛然禪師六句懸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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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위사구병칠사(五位四句竝七事)

내지삼현급기여(乃至三玄及其餘)

담연선사육구단(湛然禪師六句斷)

어간의명소가거(語簡意明所可據)

종탈문답여탐발(縱奪問答與探拔)

차현상벌회호구(遮顯賞罰回互句)

제가소립명상별(諸家所立名相別)

각구현유명명거(各句懸喩明明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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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위(五位) 사구(四句)와 칠사(七事)

내지 삼현(三玄) 및 그 나머지를

담연선사(湛然禪師)가 육구(六句)로 판단하니

말씀이 간단하고 뜻이 분명하여 가히 의거(依據)할 바이로다.

종탈(縱奪) 문답(問答)과 탐발(探拔)

차현(遮顯) 상벌(賞罰) 회호구(回互句)

제가(諸家)가 건립한 바가 명상(名相)이 다르지만

각구(各句)에 비유를 달아 밝디밝게 들었도다.


제목 해석 담연선사(湛然禪師. 圓澄이니 慈舟方念法嗣. 洞山下三十一世), 육구(六句)에 비유를 단 것을 높이 들다. ()는 높이 들 게.

1~2행 오위(五位)는 정중편(正中偏) 편중정(偏中正) 정중래(正中來) 편중지(偏中至) 겸중도(兼中到). 사구(四句)는 유() () 비유비무(非有非無) 비비유비비무(非非有非非無). 칠사(七事)는 내외(內外)의 칠사가 있음. 내칠사(內七事)는 주장(拄杖) 불자(拂子) 선판(禪版) 궤안(几案) 여의(如意) 죽비(竹篦) 목사(木蛇). 삼현(三玄)은 임제가 이르되 일구어(一句語)에 모름지기 삼현문(三玄門)을 갖추고 일현문 (一玄門)에 모름지기 삼요(三要)를 갖추어 권()도 있고 용()도 있어야 한다 했음 [臨濟錄].

5~8행 종탈(縱奪)이란 것은 예컨대() 두 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가 불러 가로되 모랑(某郞. 아무개). ()가 꾸짖어 가로되 네가 감히 나를 모랑(某郞)이라고 부르느냐. ()가 가로되 만약 그렇다면 너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비로소 옳겠는가. ()가 가로되 노상공(老相公)이라 해야 하리라. ()가 가로되 나를 부를 땐 무엇이라 하겠는가. 옛적의 이른 바 빈주종탈(賓主縱奪)이란 것이 꼭 이와 같지 않다고 하지 못하리라. 문답(問答)이란 것은 예컨대() 한 사람이 있어 시중에서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을 만나매 물어 가로되 수중(手中)에 이 무엇인가. 사람이 수중의 물건을 들어 그에게 보임이니 차()는 무답(無答)으로써 답한 것이요 피()도 또한 말하지 않고도 믿는 것이니라. 옛적의 이른 바 문답(問答)이란 것이 꼭 이와 같지 않다고 하지 못하리라. 탐발(探拔)이란 것은 어떤 사람이 피가(彼家)에 칼이 없는 줄을 환히 알면서도 고의(故意)로 그에게 물어 가로되 사람이 전하기를 너의 집이 칼을 갖고 살인했다 하더라. ()가 알리어 가로되 내 집에선 조개 껍질로 나물을 자르거늘 어찌 칼이 있어 살인함을 얻으리오. 한 번 힐문(詰問)하매 곧 불러들이고 의의(擬議)를 용납하지 않나니 옛적의 이른 바 탐발(探拔)이란 것이 꼭 이와 같지 않다고 하지 못하리라. 차현(遮顯)이란 것은 옛적에 어떤 수재(秀才)가 오로지 관설(關說. 관련어를 설함)에 능했는데 현재(縣宰)가 성내어 이에 가로되 달이 밝고 달이 밝아 달마다 밝거늘 무슨 연고로 중추에 더욱 달이 밝은가 (月明月明月月明 何故中秋更月明). 수재가 능히 대꾸하지 못하자 곁의 아전이 사어(私語)로 말하되 해가 지나고 해가 지나 해마다 지나거늘 단지 금년이 있어 가장 지나기 어렵도다 (年過年過年年過 只有今年最難過). 현재(縣宰)가 그를 할()했으나 또한 현재가 스스로 이르되 뜻에 알맞다 했는데 수재는 의연(依然.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아전도 또한 알지 못함이니 소이로 옛적의 이른 바 차현(遮顯)이란 것이 꼭 이와 같지 않다고 하지 못하리라. 상벌(賞罰)이란 것은 예컨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계집종이 능히 말이 많았다. 대객(對客)하여 음주(飮酒)하던 차에 그에게 금지(禁止)하여 가로되 말을 더하는 것을 허락치 않나니 위배하면 곧 중책(重責)하리라 했다. 한 객이 주령(酒令)을 일으켜 가로되 잎의 큰 것을 말하는 자는 수승(殊勝)하므로 권하여 일배(一盃)를 마시게 하자. 한 사람이 가로되 오동의 잎이 크다. 한 사람이 가로되 토란의 잎이 크다. 한 사람이 가로되 연잎이 크다. 계집종이 가로되 족히 큼이 되지 못하나니 어찌 이 파초잎이 큰 게 아니겠습니까. 그 주인이 드디어 일장(一掌)을 갈겼다. 단지 이 일장(一掌)이 곧 상벌(賞罰)을 갖췄으니 어찌해서냐 하면 상()이란 것은 그 마땅함을 상준 것이요 벌()이란 것은 그 금지(禁止)를 벌준 것이니라. 일기(一機)로 양쪽에 응함이며 득실을 함께 갖췄음이니 옛적의 이른 바 상벌(賞罰)이란 것이 꼭 이와 같지 않다고 하지 못하리라. 회호(回互)란 것은 예컨대() 사람이 우()에 속한 자가 있었다 (이름이 ). 사람이 가서 그의 소를 빌리고자 했으나 감히 이름을 저촉(抵觸)하지 못하여 단지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대력(大力)을 한 번 빌리자. 주인이 가로되 나의 집에는 아울러 대력(大力)이 없느니라. 가로되 없을 것 같으면 밭을 가는 것은 무엇인가. 답해 가로되 곧 소요 대력이 아니니라. 당시의 사람들이 다 그 회호(回互)를 알지 못함을 웃을 뿐이었다. 비록 그러하나 소라고 말함만 같지 못하나니 피차 숨김이 없어야 가히 진언(眞言)이라 이르리라. 옛적의 이른 바 회호(回互)란 것이 꼭 이와 같지 않다고 하지 못하리라 [湛然禪師宗門或問]. ()은 놓을 종. ()은 염탐(廉探)할 탐. 더듬을 탐. ()은 매달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