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역해무문관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15칙 동산삼돈(洞山三頓)

태화당 2019. 8. 12. 08:33

洞山三頓

雲門因洞山參次 門問曰 近離甚處 山云 査渡 門曰 夏在甚處 山云 湖南報慈 門曰 幾時離彼 山云 八月二十五 門曰 放汝三頓棒 山至明日却上問訊 昨日蒙和尙放三頓棒 不知過在甚麽處 門曰 飯袋子 江西湖南便恁麽去 山於此大悟

無門曰 雲門當時便與本分草料 使洞山別有生機一路 家門不致寂寥 一夜在是非海裏 著到直待天明 再來又與他注破 洞山直下悟去 未是性燥 且問諸人 洞山三頓棒合喫不合喫 若道合喫 草木叢林皆合喫棒 若道不合喫 雲門又成誑語 向者裏明得 方與洞山出一口氣

頌曰 獅子敎兒迷子訣 擬前跳躑早翻身 無端再敘當頭著 前箭猶輕後箭深

洞山; 洞山守初 守初(九一~九九) 宋代雲門宗僧 鳳翔(今屬陝西)傅氏 年十六依渭州崆峒志諗薙髮 詣涇州淨圓受具 後至長沙 依雲門文偃悟旨 出住洞山 法道大宏 太平興國六年(九八一) 朝廷賜徽號紫衣 住山四十年 有語錄行世 [禪林僧寶傳八 續傳燈錄十二 五燈會元十五]

三頓; 三頓棒 頓 量詞 名量用于飯的餐數 動量用于喫飯 斥責 勸說 打罵等行爲的次數 或說 唐土之刑 打罪人二十棒爲一頓 三頓棒卽六十棒也

雲門; 雲門文偃 文偃(八六四~九四九) 唐末五代僧 爲雲門宗之祖 浙江嘉興人 俗姓張 法名文偃 幼懷出塵之志 從嘉興空王寺志澄出家 未久 至毘陵壇受具足戒 遍覽諸經 深究四分律 後至睦州(浙江省建德)參學於道明門下 經數載 盡得其道 又謁雪峰義存 依住三年 受其宗印 後歷叩諸方 參究玄要 名聲漸著 後梁乾化元年(九一一) 至曹溪(廣東省)禮六祖塔 後投於靈樹如敏會下 如敏推爲首座 貞明四年(九一八) 如敏示寂 師嗣其法席 主持靈樹寺 同光元年(九二三) 於雲門山創建光泰禪院 道風愈顯 海衆雲集 法化四播 後漢隱帝乾祐元年(九四八) 南漢王劉晟敕賜匡眞禪師 二年四月十日上表辭王 垂誡徒衆 端坐示寂 壽八十六 僧臘六十六 北宋乾德四年(九六六) 太祖復追諡大慈雲匡眞弘明禪師 師之機鋒險峻 門風殊絶 世稱雲門文偃 有雲門匡眞禪師廣錄三卷 語錄一卷行世 [古尊宿語錄十八 傳燈錄十九 禪林僧寶傳二 釋氏稽古略三 釋氏疑年錄五]

問訊; 合掌而口問安否也 但敬揖以表問安否之心 亦云問訊 說文 訊 問也

飯袋子; 猶今言飯桶 甚罵詈之語 子 助詞 喩指意在飮食用功 除食飮之外 一無所能者 與酒囊同義

本分草料; 草料 牛馬之飼料也 其味淡淡無味 喩天眞本分也 禪林卽指如實的禪法施設 日本無著道忠云 本分者 本來當己之分量也 草料者 馬所啖物料 其一日所啖豆麥等當已定分 是馬之本分草料也

生機; 生存的契機 生存的希望 指有生命力

注破; 破 助詞

性燥; 又作性懆性躁性僺 爽快 靈利 多指能迅疾無礙的領會禪義

 

동산삼돈(洞山三頓)

운문(雲門), 동산(洞山)이 참알(參謁)하던 차()로 인해 운문이 물어 가로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동산이 이르되 사도(査渡)입니다. 운문이 가로되 여름은 어느 곳에 있었느냐. 동산이 이르되 호남(湖南)의 보자(報慈)입니다. 운문이 가로되 어느 때 거기를 떠났느냐. 동산이 이르되 팔월 이십오입니다. 운문이 가로되 너에게 삼돈방(三頓棒)을 놓노라. 동산이 다음 날에 이르러 다시(. ) 올라가 문신(問訊)했다. 어제 화상(和尙)의 삼돈방(三頓棒) 놓음을 입었습니다만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운문이 가로되 밥주머니(飯袋子), 강서(江西)니 호남(湖南)이니 하면서 곧 이러히 가느냐. 동산이 이에서 대오(大悟)했다.

무문(無門)이 가로되 운문이 당시에 바로 본분초료(本分草料)를 주었더라면 동산으로 하여금 달리 생기(生機)의 일로(一路)를 있게 해 가문(家門)이 적료(寂寥)함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룻밤 동안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있다가 바로 날이 밝기를 기다림에 이르렀다. 다시 오매 또 그에게 주파(注破)하여 주었고 동산이 직하(直下. 卽時)에 깨쳤지만 이 성조(性燥)가 아니로다. 다만 여러분에게 묻노니 동산이 삼돈방(三頓棒)을 먹는 게 합당한가, 먹는 게 합당하지 않는가. 만약 먹는 게 합당하다고 말한다면 초목총림(草木叢林)이 다 몽둥이를 먹어야 하고 만약 먹는 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운문이 또 속이는 말을 이룰 것이다. 이 속을 향해 밝혀 얻어야 비로소 동산에게 일구(一口)의 기()를 토출(吐出)하게 해 줄 것이다.

송왈(頌曰) 사자가 새끼를 가르치며 새끼를 헷갈리게 하는 비결은/ 앞으로 뛰려다가 벌써 몸을 뒤집도다/ 무단(無端)히 다시 당두(當頭. 當面)에 베푸니/ 앞 화살은 오히려 가볍지만 뒷화살이 깊도다.

동산(洞山); 동산수초(洞山守初). 수초(守初. 910~990) 송대(宋代) 운문종(雲門宗)의 승려며 봉상(鳳翔. 지금 西에 속함) 부씨(傅氏). 나이 열여섯에 위주(渭州)의 공동지심(崆峒志諗)에게 의지(依止)해 머리를 깎았고 경주(涇州)의 정원(淨圓)에게 나아가 수구(受具. 구족계를 받음)했음. 후에 장사(長沙)에 이르러 운문문언(雲門文偃)에게 의지(依止)해 오지(悟旨)했음. 출세해 동산(洞山)에 거주하며 법도(法道)를 크게 넓혔으며 태평흥국육년(太平興國六年. 981) 조정(朝廷)에서 휘호(徽號)와 자의(紫衣)를 주었음. 주산(住山)하기 사십 년이었고 어록이 있어 행세(行世). [禪林僧寶傳八 續傳燈錄十二 五燈會元十五].

삼돈(三頓); 삼돈방(三頓棒). () 양사(量詞)니 명량(名量)으론 밥의 먹는 수()에 쓰이고 동량(動量)으론 끽반(喫飯)ㆍ척책(斥責)ㆍ권설(勸說)ㆍ타매(打罵) 등의 행위의 차수(次數. 次例의 수)에 쓰임. 혹은 설하기를 당토(唐土)의 형벌(刑罰)은 죄인을 때리면서 스무 방()을 일돈(一頓)으로 삼는다 하니 삼돈방(三頓棒)은 곧 육십 방임.

운문(雲門); 운문문언(雲門文偃). 문언(文偃. 864~949) 당말(唐末) 오대(五代)의 승려며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가 됨. 절강(浙江) 가흥(嘉興)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이며 법명은 문언(文偃).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품고 가흥(嘉興) 공왕사(空王寺)의 지징(志澄)을 좇아 출가했음. 오래지 않아 비릉단(毘陵壇)에 이르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여러 경을 편람(遍覽)하였고 사분율(四分律)을 깊이 연구했음. 후에 목주(睦州. 浙江省 建德)에 이르러 도명(道明. 睦州道明이니 黃檗希運法嗣)의 문하(門下)에서 참학(參學)해 몇 해가 지나 그 도를 다 얻었음. 또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알현(謁見)해 삼 년을 의지(依止)하며 머물고 그의 종인(宗印. 宗門印可)을 받았음. 후에 제방(諸方)을 다니며 고문(叩問)하면서 현요(玄要)를 참구(參究)하였고 명성(名聲)이 점차(漸次) 드러났음. 후량(後梁) 건화원년(乾化元年. 911) 조계(曹溪. 廣東省)에 이르러 육조탑(六祖塔)에 예배하고 뒤에 영수여민(靈樹如敏)의 회하(會下)에 투입(投入)했는데 여민이 추천(推薦)해 수좌(首座)가 되었음. 정명사년(貞明四年. 918) 여민이 시적(示寂)하자 스님이 그 법석(法席)을 이어 영수사(靈樹寺)를 주지(主持)했음. 동광원년(同光元年. 923) 운문산(雲門山)에 광태선원(光泰禪院)을 창건(創建)하자 도풍(道風)이 더욱 환해져 해중(海衆)이 운집하였고 법화(法化)가 사방으로 퍼졌음.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우원년(乾祐元年. 948) 남한왕(南漢王) 유성(劉晟)이 광진선사(匡眞禪師)로 칙사(敕賜)했으며 이년(二年) 사월 십일에 표()를 올려 왕을 고별하고 도중(徒衆)에게 훈계(訓戒)를 내리고는 단정히 앉아 시적(示寂)했음. 나이는 여든여섯이며 승랍(僧臘)은 예순여섯임. 북송(北宋) 건덕사년(乾德四年. 966) 태조(太祖)가 다시 추시(追諡)하여 대자운광진홍명선사(大慈雲匡眞弘明禪師)라 했음. 스님의 기봉(機鋒)이 험준(險峻)하고 문풍(門風)이 수절(殊絶)했으며 세칭(世稱)이 운문문언(雲門文偃).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眞禪師廣錄) 3권과 어록(語錄) 1권이 있어 행세(行世). [古尊宿語錄十八 傳燈錄十九 禪林僧寶傳二 釋氏稽古略三 釋氏疑年錄五].

문신(問訊); 합장(合掌)하고 입으로 안부(安否)를 물음임. 단지 경읍(敬揖)하면서 안부(安否)를 묻는 마음을 표시(表示)함도 또한 문신(問訊)이라고 이름. 설문(說文) () 물음()이다.

반대자(飯袋子); 여금(如今)에 밥통(飯桶)이라고 말함과 같음. 매우 욕하는 말임. ()는 조사(助詞). 뜻이 음식(飮食)에만 공력(功力)을 씀이 있고 식음(食飮)을 제한 밖엔 하나도 능한 바가 없는 자를 비유(比喩)로 가리킴임. 주낭(酒囊)과 같은 뜻임.

본분초료(本分草料); 초료(草料) 소나 말의 사료(飼料). 그 맛이 담담(淡淡)하고 무미(無味)하여 천진(天眞)의 본분(本分)에 비유(比喩). 선림(禪林)에선 곧 여실(如實)한 선법(禪法)의 시설(施設)을 가리킴. 일본(日本)무착도충(無著道忠)이 이르되 본분(本分)이란 것은 본래 자기에게 할당(割當)된 분량(分量)이다. 초료(草料)란 것은 말이 먹는 바의 물료(物料. 飼料). 그것은 하루에 먹는 바의 콩과 보리 등 자기에게 할당(割當)된 정분(定分. 定量)이니 이것이 말의 본분초료(本分草料).

생기(生機); 생존(生存)의 계기(契機). 생존(生存)의 희망(希望). 생명력(生命力)이 있음을 가리킴.

주파(注破); ()는 조사(助詞).

성조(性燥); 또 성조(性懆)ㆍ성조(性躁)ㆍ성조(性僺)로 지음. 상쾌(爽快). 영리(靈利). 다분히 능히 빠르고 막힘없이 선의(禪義)를 영회(領會)함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