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송구집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 七言四句以上 一畫(16-20) 一輪明月 一輪明月 一微空故 一法元無 一佛二佛

태화당 2019. 8. 28. 10:09

一輪明月映天心 四海生靈荷照臨

何必西風撼丹桂 碧霄重送九秋音 拈頌一 六則 世尊陞座文殊白槌話 佛鑑勤頌


일륜명월이 하늘 가운데 비추니/ 사해의 生靈照臨을 입었도다/ 하필 서풍이 丹桂를 흔들어/ 푸른 하늘이 거듭 구추의 음을 보내는가.


四海는 사방의 바다. 온 천하. 세계. 須彌山의 사방에 있는 큰 바다인 四大海. 生靈生命. 生民. 照臨은 비추어 임함. 은 흔들 감. 는 하늘 소. 九秋九十日의 가을.

세존이 어느 날 陞座하셨다. 대중이 集定하자 문수가 白槌하고 이르되 법왕의 법을 체관하라 법왕의 법이 이와 같느니라(諦觀法王法 法王法如是). 세존이 곧 하좌하셨다.

 

一輪明月照瀟湘 更不逢人問古鄕

自是天涯慣爲客 任他猿叫斷人腸 拈頌二十 八四七則 峩眉禮拜普賢話 霅溪益頌


일륜명월이 소상을 비추니/ 다시 고향을 물을 사람을 만나지 못했도다/ 스스로 이 천애에 객이 됨이 버릇 되어/ 저 원숭이 울부짖어 사람의 간장을 끊는 대로 맡기노라.


瀟湘은 중국 호남성 洞庭湖의 남쪽에 있는 瀟水와 湘江 을 아울러 이르는 말. 그 附近에는 경치가 아름다운 瀟湘八景이 있음.

大隨(法眞이니 福州大安法嗣. 南嶽下四世), 중이 고별하므로 인해 이에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는가. 이르되 峨眉山으로 보현에게 예배하러 갑니다. 스님이 주장자를 잡아 일으키고 이르되 문수와 보현이 모두 이 속에 있다. 중이 圓相을 지어 등 뒤를 향해 던지고 도리어 두 손을 폈다. 스님이 이르되 시자야 한 첩의 차를 가져다 이 중에게 주어라 [禪門拈頌卷二十 八四七則].


一微空故衆微空 衆微空故一微空

一微空中無衆微 衆微空中無一微 五燈全書三 跋陀語


一微한 고로 衆微했고/ 중미가 공한 고로 일미가 공했도다/ 일미가 공한 중에 중미가 없고/ 중미가 공한 중에 일미가 없도다.


道生法師에게 묻되 무슨 경론을 강설합니까. 생이 가로되 대반야경입니다. 스님(跋陀. 佛馱跋陀羅)이 가로되 어떻게 色空의 뜻을 설합니까. 가로되 衆微의 모임을 가로되 이며 중미가 자성이 없음을 가로되 입니다. 스님이 가로되 중미가 모이지 않아서는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罔措(罔知所措니 어찌할 바를 모름)했다. 스님이 또 묻되 달리 무슨 경론을 강설합니까. 가로되 대열반경입니다. 스님이 가로되 어떻게 열반의 뜻을 설합니까. 가로되 不生이며 不滅이니 불생불멸이므로 고로 가로되 열반입니다. 스님이 가로되 이것은 이 여래의 열반입니다. 어느 것이 이 법사의 열반입니까. 가로되 열반의 뜻에 어찌 둘이 있겠습니까. 某甲은 단지 이와 같거니와 未審합니다. 禪師는 어떻게 열반을 설합니까. 스님이 如意(爪杖)를 잡아 일으키며 가로되 도리어 봅니까. 가로되 봅니다. 스님이 가로되 이 무엇을 봅니까. 가로되 선사의 손안의 여의를 봅니다. 스님이 여의를 가지고 땅에 던지고는 가로되 봅니까. 가로되 봅니다. 스님이 가로되 이 무엇을 봅니까. 가로되 선사의 손안의 여의가 땅에 떨어졌음을 봅니다. 스님이 물리치며 가로되 의 견해를 보건대 常流를 벗어나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이름이 우주에 떠들썩함을 얻었습니까. 옷을 떨치고 떠났다. 徒衆이 의심을 품어 말지 않았다. 이에 스님을 쫓아가서 扣問(는 물을 구. 두드릴 구)했다. 우리 스님이 色空과 열반을 설했으나 계합치 못했습니다. 未審합니다. 선사는 어떻게 色空의 뜻을 설하십니까. 스님이 가로되 너희 스님이 설해 얻은 게 옳지 않다고 말함이 아니라 너희 스님은 단지 果上色空을 설해 얻었다. 그 도중이 가로되 무엇이 이 因中色空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一微한 고로 衆微했고 중미가 공한 고로 일미가 공했도다. 일미가 공한 중에 중미가 없고 중미가 공한 중에 일미가 없도다(一微空故衆微空 衆微空故一微空 一微空中無衆微 衆微空中無一微) [五燈會元卷第二].

 

一法元無萬法空 箇中那許悟圓通

將謂少林消息斷 桃花依舊笑春風 禪林僧寶傳十八 天寧道楷偈


일법이 원래 없는지라 만법이 했거늘/ 개중에 어찌 圓通 깨침을 허락하리오/ 장차 이르기를 소림의 소식이 끊어졌나 하렸더니/ 도화가 의구히 춘풍에 미소하네.


圓通은 지혜로써 眞如의 이치를 깨달음. 또는 그 이치. 그 본질이 원만하여 널리 모든 존재에 두루 통하고 그 작용은 自在하여 거리낌이 없이 모든 존재에 작용함.

少林 少林寺는 곧 沙門 跋陀가 지었다. 菩提達磨梁 大通元年527 큰 배를 띄워 이 땅에 이르렀다. 武帝(재위 502-549. 初代皇帝. 蕭氏이며 이름은 )를 만나 문답했으나 계합치 못했고 드디어 洛陽으로 가서 嵩山의 소림사에 居止하면서 面壁하고 앉아 종일 默然했다. 이와 같음이 九年이었으며 二祖慧可를 얻어 그 법을 전했다. 예전에 普通八年527(普通八年三月大通元年으로 改元했음)으로 지은 건 잘못이다 [祖庭事苑卷第三].

 

一佛二佛千萬佛 各各眼橫兼鼻直

昔年親種善根來 今日依前得渠力 金剛經 如來悉知悉見是諸衆生得如是無量福德話 冶父頌


일불 이불 천만불이여/ 각각 눈은 가로며 또 코는 곧도다/ 昔年에 친히 선근을 심은지라/ 금일에도 의전히 그의 힘을 얻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