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畫
工夫未到方圓處 幾度凭欄特地愁
今日是三明日四 雪霜容易上人頭 【天目明本雜錄上 爲道日損 明本偈】
공부가 방원처에 이르지 못해/ 몇 번이나 난간에 기대어 특지에 근심했던가/ 오늘은 이 三日이며 명일은 四日이니/ 雪霜이 용이하게 사람의 머리에 오르더라.
凭은 기댈 빙. 欄은 난간 란. 特地의 地는 助字.
學을 하면 날로 더하고 道를 하면 날로 던다. 그것을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러야 하나니 무위라야 하지 않음이 없다(爲學日益爲道日損 損之又損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矣) [道德經 日損章第四十八].
大夫錯會肇師宗 却謂森羅一體同
飜憶南泉無限意 庭前花發笑春風 【拈頌七 二○九則 南泉如夢相似話 承天宗頌】
대부가 肇師의 宗을 잘못 알아/ 도리어 이르되 삼라가 일체라서 한가지라 하는구나/ 도리어 남천의 무한한 뜻을 추억하노니/ 뜰 앞에 꽃이 피어 춘풍에 미소하도다.
南泉을 남전으로 발음함은 慣音이나 옳지 않음. 森은 나무가 빽빽할 삼.
천지가 나와 동근이며 만물이 나와 동체다(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同體) [肇論].
陸亘大夫(南泉의 法嗣)가 스님(南泉)을 향해 말하되 肇法師(僧肇法師)가 매우 奇怪합니다. 말하기를 만물이 同根이며 是非가 一體로다 했습니다. 스님이 뜰 앞의 牡丹華(모란화)를 가리키며 이르되 大夫여 時人이 이 한 그루의 꽃을 봄이 마치 꿈과 相似하니라 [傳燈錄卷第八].
王老師 池州의 南泉普願禪師(748-834)는 鄭州의 新鄭人이며 姓이 王氏임. 馬祖의 法을 얻고 곧 南泉에서 唱道했는데 늘 王老師라고 自稱했음. 일찍이 示衆해 이르되 온 대지에서 이 癡鈍한 사람을 찾았으나 가히 얻지 못했다 [祖庭事苑卷第三].
南泉 스님의 諱는 普願이며 鄭州 新鄭縣의 王氏家에서 태어났다. 大隗외山에서 得度했고 嵩嶽에서 受戒했으며 三乘敎를 배우고 中百門(中觀論 百法論 十二門論)의 觀을 닦았다. 후에 馬祖를 參見(찾아 뵘)하여 豁然하여 歸處를 알았다. 어느 날 行益(淨人이 한 堂에 모인 대중에게 빠짐없이 먹을 것을 차례대로 담아 주는 것)하는데 마조가 묻되 桶 속은 이 무엇인가. 스님이 가로되 이 老漢이 입을 닫고(合取의 取는 助字) 이러한 語話를 지음을 그만두어야 하리라. 마조가 그를 그렇게 여겼다. 德宗 貞元間785-805에 池州의 남천에 은거하며 내려 오지 않은 게 三十載였다. 文宗 大和初827에 宣城의 廉使인 陸亘(南泉의 法嗣)이 스님의 도를 흠모하여 請해 남천에서 내려왔다. 이로부터 道가 제방을 凌駕(무엇에 비교하여 그보다 훨씬 뛰어남)했으니 곧 마조의 高弟(高足弟子니 학식과 품행이 뛰어난 제자)이다. 八年834 臘月 二十五日에 示寂했으며 나이는 八十有七이다. 隗는 五罪切(외)임 [祖庭事苑卷第七].
大鵬一展九萬里 豈同春岸飛沙鷗
何如急駕千里驥 莫學鷦鷯戀一枝 【緇門警訓七 范蜀公送圓悟禪師行脚】
대붕이 한 번 펴매 구만 리거늘/ 어찌 봄 언덕의 나는 沙鷗와 같으랴/ 어찌 급히 천리기를 어거하고/ 一枝를 그리워하는 뱁새를 배우지 않음만 같으랴.
鷗는 갈매기 구. 駕는 馭車할 가. 탈 가. 驥는 천리마 기. 鷦는 뱁새 초. 鷯는 뱁새 료.
大鵬 步登切임. 北冥(冥은 바다 명)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가로되 鯤이며 곤의 크기는 그 몇 千里인지 알지 못한다. 변화해 새가 되나니 그 이름이 鵬이 된다. 붕의 등은 그 몇 千里인지 알지 못한다. 怒해서 날면 그 날개는 마치 垂天의 구름과 같다. 莊子(內篇 逍遙遊)를 보라 [祖庭事苑卷第三].
大術胎中無伎倆 毗藍園裏逞風流
年年惡水難回避 煩惱皆因强出頭 【雜毒海一 佛誕 疏山如】
대술의 태중에선 기량이 없더니/ 비람원 속에서 풍류를 자랑하도다/ 해마다 惡水를 회피하기 어려움은/ 번뇌가 다 억지로 출두했기 때문이니라.
倆은 재주 량. 毗藍園은 迦毗羅城 藍毘尼園의 省稱. 逞은 자랑할(矜) 정. 환희 보일(顯示) 정. 통할 령. 원음이 정. 惡은 더러울 악.
摩耶는 唐言으론 大術이다 [西域記卷第六].
林微尼 혹은 流彌尼 혹은 藍毘尼 혹은 嵐毘尼니 여기에선 이르되 解脫處며 또한 斷으로 번역하며 또한 滅로 번역한다. 華嚴音義에 樂勝圓光으로 번역했다. 옛적에 天女가 왔기 때문에 고로 이 이름을 세웠다. 새로운 말로는 藍軬분扶晚尼니 여기에선 이르되 監이다. 곧 上古의 守園한 여자의 이름이다 [翻譯名義集七].
大圓鏡智性淸淨 平等性智心無病
妙觀察智見非功 成所作智同圓鏡
五八六七果因轉 但用名言無實性
若於轉處不留情 繁興永處那伽定 【壇經 慧能偈】
대원경지는 性이니 청정하고/ 평등성지는 心이니 無病하고/ 묘관찰지는 見이니 功이 아니고/ 성소작지는 圓鏡과 같도다/ 五八六七이 果와 因에 轉하나니/ 단지 名言을 쓰고 실성이 없거니와/ 만약 轉處에 情을 머물지 않으면/ 번흥하여도 영원히 나가정에 處하리라.
四智 前의 眼等五識(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은 이 成所作智며 第六意識은 이 妙觀察智며 第七末那는 이 平等性智며 第八阿賴耶識은 이 大圓鏡智임. 중생에게 있을 때는 智가 劣等하고 識이 强力하므로 단지 이름하여 識이지만 佛地에 當했을 때는 智가 강력하고 識이 열등하므로 단지 이름하여 智임. 六七(第六意識과 第七末那識)은 因中에 轉하고 五八(眼等五識과 第八阿賴耶識)은 果上에 轉하나니 이른 바 名은 轉하지만 그 體는 轉하지 않음임. 전등록(卷第五) 智通禪師가 楞伽經을 看閱한 게 約 千餘遍(遍은 量詞. 回)이었지만 三身四智를 알지 못해 드디어 曹溪에 나아가 六祖를 謁見현하고 그 뜻을 해석함을 求했다. 祖가 가로되 三身이란 것은 淸淨法身은 너의 性이며 圓滿報身은 너의 智며 千百億化身은 너의 行이다. 만약 本性을 여의고 달리 三身을 설한다면 곧 이름이 有身無智(身은 있으나 智가 없음)며 만약 三身의 自性이 있지 않음을 깨치면 곧 이름이 四智菩提이다. 나의 偈를 들어라. 가로되 自性이 三身을 갖추어/ 發明하면 四智를 이루나니/ 見聞의 인연을 여의지 않고/ 超然하여 佛地에 오르느니라./ 내가 이제 너를 위해 설하나니/ 諦信(諦는 살필 체)하여 영원히 迷함이 없어야 하고/ 馳求하는 자의/ 종일 보리를 설함을 배우지 말아라. 通이 가로되 四智의 뜻을 가히 얻어 듣겠습니까. 祖가 가로되 이미 三身을 알았다면 곧 四智를 發明(經書 및 史書의 뜻을 스스로 깨달아서 밝힘) 하거늘 어찌 다시 묻는가. 만약 三身을 여의고 달리 四智를 얘기한다면 이 이름이 有智無身(智는 있으나 身이 없음)이므로 곧 이 有智가 도리어 無智를 이루느니라 [祖庭事苑卷第七].
那伽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龍이며 혹은 이르되 象이니 그 大力을 말함이다. 고로 비유로 쓴다 [玄應撰一切經音義卷第三].
那伽 三義가 있다. 一은 이르되 龍이며 二는 이르되 象이며 三은 이르되 不來이다. 孔雀經에 부처를 이름해 那伽라 하나니 부처가 다시 生死에 오지 않음을 말미암는 연고이다 [玄應撰一切經音義卷第二十三].
契經에 설하되 那伽는 行이 定에 있고 나가는 住가 定에 있고 나가는 坐가 定에 있고 나가는 臥가 定에 있다 [俱舍論卷第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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