賾幽▶賾은 깊을 색.
士革功 探賾也▶功은 마땅히 切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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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革切이니 탐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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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雨
梁僧傳 釋法雲 姓周氏 陽羨선人 晉平西將軍處之七世也 初産在草 見雲氣滿室 因以名之 七歲出家 更名法雲 大監中 極受隆遇 初雲年在息慈 雅尙經術 於妙法華 硏精累思 品酌義理 始未昭覽 乃往幽巖 獨講聖典 竪石爲人 松葉爲拂 自唱自導 兼通難解 所以垂名梁代 嘗一日講散 感天花狀如飛雪 滿空而下 延于堂內 升空不墜 訖講方去▶大는 天으로 의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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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僧傳 석법운은 성이 주씨며 陽羨선 사람이며 晉 平西將軍 處의 七世다. 처음 解産하여 풀에 있었는데 雲氣가 실내에 가득함을 보았으므로 인해 써 그를 이름했다. 七歲에 출가해 法雲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天監中502-519에 극도로 융성한 대우를 받았다. 처음 雲의 나이 息慈(三藏法數卷第七 梵語로 沙彌는 華言으론 息慈니 이르자면 惡을 쉬고 慈를 행함이다)에 있을 적 經術(경전에 관한 學術)을 雅尙(雅는 바를 아니 곧 바르게 숭상함)하였으며 묘법화경에 연구가 정밀했고 여러 번 사유하며 義理를 品酌(品評하며 酬酌함)했다. 처음 환히 열람하지 못해 이에 幽巖에 가서 홀로 聖典을 강설했다. 돌을 세워 사람으로 삼고 솔잎으로 拂子를 삼아 스스로 부르고 스스로 導引했다. 겸하여 難解를 통달한지라 소이로 梁代에 이름을 드리웠다. 일찍이 어느 날 講散(강설해 散布함)하다가 天花를 감응했는데 形狀이 飛雪과 같았다. 허공에 가득 차서 떨어지는지라 堂內로 맞이하매 공중에 올라 떨어지지 않았고 강설을 마치자 비로소 떠났다(위의 글은 續高僧傳卷第五에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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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馴▶馴은 길들 순.
四祖至牛頭峯見嬾란融 融引祖入後庵 唯見虎狼之類 祖乃擧兩手作怕파勢 融曰 猶有者箇在 祖曰 適來見甚麽 融無語 祖於融坐石上 書一佛字 融觀之悚송然 祖曰 猶有者箇在 融不之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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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祖(道信)가 우두봉에 이르러 嬾融을 보았다. 融이 祖를 인도해 뒤 암자로 들어갔는데 오직 범과 이리의 무리만 보였다. 조가 이에 두 손을 들며 두려워하는 형세를 지었다. 융이 가로되 오히려 이것이 있습니까. 조가 가로되 아까(適來) 무엇을 보았는가. 융이 말이 없었다. 조가 융의 坐石위에 한 佛字를 썼다. 융이 이를 보고 悚然(悚은 두려워할 송. 곧 두려워하는 모양)했다. 조가 가로되 오히려 이것이 있구나. 융이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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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詮▶稽는 머무를 계.
上古兮切 留止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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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은 古兮切이니 留止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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塚宿
十住論云 頭陀行 常住於塚間死人處 其有十利 一常得無常想 二得死想 三得不淨想 四一切世間不可樂想 五當得遠離一切所愛人 六常得悲心 七遠離戲調心 八心常厭離 九勤行精進 十能除怖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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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주론(十住毘婆沙論 十七卷 龍樹造 後秦 鳩摩羅什譯. 卷第十六)에 이르되 두타행은 늘 무덤 사이 죽은 사람의 처소에 머무나니 그에 十利가 있다. 一은 늘 無常想을 얻으며 二는 死想(죽었다는 생각)을 얻으며 三은 不淨想을 얻으며 四는 一切世間은 가히 즐길 게 아니라는 생각을 얻으며 五는 마땅히 일체 사랑하는 바의 사람을 멀리 여읨을 얻으며 六은 늘 悲心을 얻으며 七은 戲調心(調도 戱임. 곧 희롱하는 마음)을 멀리 여읨을 얻으며 八은 마음에 늘 厭離(싫어서 떠남)하며 九는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며 十은 능히 怖畏를 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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