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別 擧 王常侍一日訪臨濟 同於僧堂看 侍云 一堂僧還看經麽 濟云 不看經 侍云 還參禪麽 濟云 不參禪 侍云 經又不看 禪又不參 畢竟作甚麽 濟云 總敎成佛作祖去 侍云 金屑雖貴 落眼成翳 又作麽生 濟云 我將謂是箇俗漢 師代別云 强將手下無弱兵 直饒臨濟全機 也較三千里 ○承天宗和上錄中誤收
代別 擧하다. 王常侍(王敬初니 潙山의 法嗣)가 어느 날 임제를 來訪해 함께 승당에서 보았다. 侍가 이르되 一堂의 승려가 도리어 看經합니까. 濟가 이르되 간경하지 않는다. 侍가 이르되 도리어 참선합니까. 濟가 이르되 참선하지 않는다. 侍가 이르되 경도 또 보지 않고 禪도 參하지 않는다면 필경 무엇을 짓습니까. 濟가 이르되 모두 成佛作祖하여 가게 한다. 侍가 이르되 금가루가 비록 貴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翳病(翳는 가릴 예)을 이룸은 또 어떻다 하겠습니까. 濟가 이르되 내가 장차 이르기를 이 낱 俗漢이라 할 뻔했다. 스님(설두)이 代別해 이르되(금가루가 비록 貴하지만 운운한 왕상시의 말에 대신해 다르게 이르되) 强將의 手下엔 弱兵이 없습니다 라고 했다면 바로 넉넉히 임제의 全機일지라도 또한 三千里가 어긋날(較는 差임. 不等임) 것이다. ○承天傳宗和上(설두의 法嗣)의 어록 중에 잘못 수록됐음.
行錄 師行脚時 問大龍和上 語者默者不是 非語非默更非 總是總不是拈却 大用現前 時人知有 未審大龍如何 龍云 子有如是見解 師云 者老漢瓦解冰銷 龍云 放你三十棒 師禮拜歸衆 大龍却喚適來問話底지僧 師便出衆 龍云 老僧因甚麽瓦解冰銷 師云 轉見敗闕 龍作色云 叵耐叵耐 師便休去 南嶽雅和上聞擧 云 大龍何不與本分草料 師云 和上更須行脚 ○師問廬山羅漢和上云 法爾不爾 如何指南 漢云 實謂法爾不爾 師云 且聽諸方斷看 漢云 道者更須子細 師云 喏야 喏 ○師到舒州四面和上處 才相見便問 古人道 千里無來却肯伊 卽今和上還肯却無 面云 識取來意好 師云 暫時不在 面云 知卽得 師云 大衆一時記取 ○師到蘄州回峯和上處 相見便問 舊時朋友忌諱總無 今日主賓若爲區別 峯云 老兄遠來不易 師云 將謂和上忘却 峯云 放一線道 師云 不與麽却與麽 峰云 且坐喫茶 師云 喫茶 喫茶 ○師問慧日和上 明知生不生相爲生之所流卽不問 頗有不知生不生相爲生之所流也無 日云 還見兩畔僧麽 師云 三十年後此話大行 日云 且禮拜著 來日師上問訊次 日云 上座問底지話甚奇怪 師云 也是尋常 日云 老僧未明上座問端 師云 某甲觸忤和上 日云 住持事繁 師遂辭去 日云 上座諸處去來 何不且住 師云 恩大難酬 日云 前去 善自保愛 師云 喏 喏 ○生不生相緣 見師子吼了義經 經云 爾時文殊師利問菴提遮曰 頗有明知生而不生相爲生所流者否 答曰 而雖自明見 其力未充 而爲生所流者是也 又問曰 頗有無知不識生性 有畢竟不爲生所流者否 答曰 無 所以者何 若不見生性 雖因調伏 少得安處 其不安之相常爲對治 若見生性者 雖在不安之處 而安相常現前 若不如是知者 雖有種種勝辯 說甚深典籍 而卽是生滅心 說彼實相密要之言 如盲辯色 因它語故 說得靑黃赤白黑 而不能見色之正相
行錄 스님이 행각할 때 大龍和上에게 묻되 語者와 默者는 옳지 않으며 非語와 非默도 다시 그르므로 總是와 總不是를 拈却(집어서 물리침)해야 大用이 현전하여 時人이 知有(向上事가 있음을 앎)하리니 미심합니다. 大龍은 어떠합니까. 龍이 이르되 자네가 이와 같은 견해가 있는가. 스님이 이르되 이 老漢이 瓦解冰銷(기와가 풀어지고 얼음이 녹음)로다. 龍이 이르되 너에게 三十棒을 놓노라. 스님이 예배하고 대중으로 돌아갔다. 대룡이 도리어 아까 화두를 물은 중을 불렀다. 스님이 바로 대중에서 나왔다. 龍이 이르되 老僧이 무엇으로 인해 瓦解冰銷인가. 스님이 이르되 더욱(轉) 敗闕(敗北虧闕이니 패하여 망가짐)을 봅니다. 龍이 作色(불쾌한 느낌이 얼굴에 드러남. 또는 그러한 느낌을 드러냄)하고 이르되 참지 못하겠네. 참지 못하겠네. 스님이 바로 쉬러 갔다. 南嶽良雅和上(洞山守初의 法嗣. 雲門下二世)이 擧함을 듣고 이르되 대룡이 왜 本分草料(天眞의 本分道理가 마치 말의 飼料와 같이 맛이 淡泊박한 것이니 곧 棒喝 등을 가리킴)를 주지 않았나. 스님이 이르되 화상은 다시 행각함을 써야 할 것이다. ○스님이 廬山 羅漢和上에게 물어 이르되 法爾不爾를 어떻게 指南(指示)하시렵니까. 漢이 이르되 실로 法爾不爾라 이르는가. 스님이 이르되 또 제방의 斷看을 들으십시오. 漢이 이르되 道者는 다시 子細함을 써야 하리라. 스님이 이르되 예. 예. ○스님이 舒州의 四面和上의 처소에 이르렀다. 겨우 상견하자 곧 묻되 古人이 말하되 千里에서 옴이 없어야 도리어 그를 긍정함이라 하니 즉금 화상은 도리어 긍정해 버리는가. 없는가(긍정함이 없는가). 面이 이르되 來意를 識取해야 좋으니라. 스님이 이르되 잠시 있지 않았다. 面이 이르되 알았으면 곧 옳다(得). 스님이 이르되 대중이여 一時에 記取하라. ○스님이 蘄州의 回峯和上의 처소에 이르렀다. 상견하자 곧 묻되 舊時의 붕우를 忌諱하면 다 없나니 금일 主賓을 어떻게 區別하겠는가. 峯이 이르되 老兄이 멀리서 오느라 쉽지 않았으리라. 스님이 이르되 장차 이르노니 화상이 망각했다 하노라. 峯이 이르되 一線의 道를 놓게나. 스님이 이르되 이러하지 않음이 도리어 이러하니라. 峰이 이르되 다만(且) 앉아서 차를 마시자. 스님이 이르되 차 마시자. 차 마시자. ○스님이 慧日和上에게 묻되 生이 不生의 모양임을 밝게 알았더라도 生에 流轉하는 바가 됨은 곧 묻지 않습니다. 자못 生이 不生의 모양임을 알지 못하여 生에 流轉하는 바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日이 이르되 도리어 兩畔(兩邊)의 승려를 보는가. 스님이 이르되 삼십 년 후에 此話가 크게 행할 것입니다. 日이 이르되 다만 예배하거라. 다음날 스님이 올라가 問訊하는 次에 日이 이르되 上座가 물은 화두는 매우 기괴하니라. 스님이 이르되 또한 이 尋常입니다. 日이 이르되 노승이 상좌의 問端을 밝히지 못했다. 스님이 이르되 某甲이 화상을 觸忤(닿아 거스르는 것)했습니다. 日이 이르되 住持의 일이 번잡하니라. 스님이 드디어 고별하고 떠나는데 日이 이르되 상좌는 여러 곳에 去來하였거늘 왜 또 머물지 않는가. 스님이 이르되 은혜가 커서 갚기 어렵습니다. 日이 이르되 앞으로 가면서 잘 스스로 保愛(保重慈愛)하라. 스님이 이르되 예. 예. ○生不生相緣은 師子吼了義經(長者女菴提遮師子吼了義經 一卷 失譯)을 보라. 經에 이르되 이때 문수사리가 菴提遮에게 물어 가로되 자못 生이 不生의 모양임을 밝게 알았더라도 生에 流轉하는 바가 있는가. 답해 가로되 비록 스스로 밝게 보았더라도 그 힘이 충분하지 못해서 生에 流轉하는 바가 됨이 이것이다. 또 물어 가로되 자못 生性을 無知不識함이 있으되 필경 生에 流轉하는 바가 되지 않음이 있는가. 답해 가로되 없다. 所以란 것이 어떠함인가 하면 만약 生性을 보지 못하면 비록 調伏으로 인해 조금 安處를 얻더라도 그 不安의 모양이 늘 對治가 된다. 만약 生性을 본 자는 비록 不安한 곳에 있더라도 安相이 늘 현전한다. 만약 이와 같이 알지 못하는 자는 비록 갖가지 勝辯이 있어 매우 깊은 典籍을 설하더라도 곧 이 生滅心이므로 저 實相의 密要한 말을 설함이 마치 맹인이 色을 辯明하면서 타인의 말을 인한 고로 靑黃赤白黑을 說해 얻지만 능히 色의 바른 모양을 보지 못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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