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四 雪竇拾遺 4

태화당 2019. 9. 6. 11:00

餞送 送一禪者歸越 禪者名思一 遁迹會稽華嚴 居常杜門 性介寡合 予嘗往見之 時年七十有五 出示頌 頌尾題云 慶曆八祀正月 乳峯隱之病中書 誰觀春草靑 誰對春雲白 若耶溪上寺 去去曾吾宅로 의심됨. 送祥禪者 禪客秋思生 攜筇復卷衲 或問何所來 不知若爲答 十萬迢迢非古今 一言會與風雲合 賦松拂送僧 落落歲寒枝 蒼蒼愧春色 對揚曾有規 助語忽無迹 殷勤將贈行 知意不知極 送曉嚴禪者之瑯琊 滁上有宗師 域中隱善賈 烏兎懸高明 風雲擬何藉 卞和未鑒玉 伯樂非辨馬 羨君遠去尋 斯意斯人也 送瓘禪者 野水輕舟 乘興分流 秋光不盡 誰也爭求 握松爲柄未極 析柳贈行豈休 休休 百川駭浪兮空悠悠 送僧 萬里迢迢離蜀國 四明得得訪禪家 林間相見又相別 惹裓亂飃松桂花 小師元聳再歸省覲以頌送之 黃金列國無影樹 曾泛龍舟振高古 我是躭源來豫章 西江吸盡對吾祖 斯之歸兮非如斯 寒空片段雲垂垂 十萬九萬復何者 一千一櫓休相隨 噫 爭之潮落潮生未遠朝

 

餞送 禪者로 돌아감을 전송함. 선자의 이름은 思一이다. 會稽華嚴에 종적을 숨기고 거처하면서 늘 문을 닫았다. 성격이 깔끔해(는 깔끔할 개) 投合하는 이가 적었다. 내가 일찍이 가서 그를 보았는데 때에 나이가 七十有五(七十五)였다. 이 송을 내어 보이고 송의 末尾에 이르기를 慶曆八祀1048 正月 乳峯隱之(설두의 )病中에 쓰다. 누가 春草의 푸름을 보는가/ 누가 春雲의 흼을 대했는가/ 若耶의 계곡 위 절에/ 빨리 가보게(去去는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말) 일찍이 나의 집이었다네. 祥禪者를 전송함. 선객이 가을에 생각이 나서/ 지팡이 가지고 다시 衲衣를 둘둘 말았네/ 혹은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는가 한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지 못하네/ 십만 리는 멀고 멀지만 고금이 아니며/ 一言에 알면 풍운과 합하리라. 松拂(소나무로 만든 拂子)을 주며(는 줄 부) 중을 전송하다. 落落(축 늘어져 있는 모양)歲寒(설 전후의 추위. 한겨울의 추위를 이르는 말)의 가지가/ 蒼蒼(시퍼렇게 무성한 모양)하여 春色에 부끄럽도다/ 對揚(상대하여 擧揚)하매 일찍이 規矩(法度)가 있으나/ 助語(語句를 더 보탬)엔 홀연히 종적이 없도다/ 殷勤(慇懃과 같음. 태도가 겸손하고 정중함. 은밀하게 정이 깊음)히 장차 游行贈呈하노니/ 뜻을 알지만 지극함은 알지 못하리라. 曉嚴禪者瑯琊에 감을 전송함. 滁上(는 강 이름 저)에 종사가 있나니/ 域中에 좋은 값을 숨겼도다/ 烏兎(해와 달)高明을 매달았는데/ 풍운은 어디에 藉賴하려 하는가./ 卞和(周代 楚王에게 寶玉獻上한 사람)가 옥을 鑑別치 못하고/ 伯樂(孫陽이니 전국시대 사람으로 말을 잘 감정했음)이 말을 분변함이 아니로다/ 멀리 떠나가 찾는 그대가 부럽나니/ 이 뜻은 이 사람이라야 하느니라. 禪者를 전송하다. 野水輕舟/ 을 타고 水流를 나누도다/ 秋光이 다하지 않았거늘/ 누가 또 구함을 다투는가./ 솔을 쥐어 자루를 삼아도 다하지 못하거늘/ 버들을 꺾어 游行에 줌을 어찌 그만두랴/ 休休하라/ 百川駭浪이여 공연히 悠悠하구나. 送僧(중을 餞送) 萬里迢迢(는 멀 초. 곧 아주 먼 모양)한데 蜀國을 떠나서/ 四明山으로 일부러(得得) 禪家를 탐방했네/ 林間에서 상견하고 또 相別하나니/ 옷자락을 끌며 松桂花를 어지럽게 흩날리네. 小師(구족계를 받은 지 十年이 안 된 비구. 제자. 중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一人稱 代名詞) 元聳이 다시 귀향해 省覲하매 으로써 그를 전송하다. 黃金列國에 그림자 없는 나무니/ 일찍이 龍舟를 띄워 高古(高尙하고 예스러움)를 떨쳤도다/ 나는 이 躭源에서 豫章으로 와/ 西江을 마셔 없애 우리 조사를 대했노라./ 이에 귀향함이 이와 같지 않나니/ 찬 허공에 片段의 구름이 드리웠구나/ 十萬九萬이 다시 어떤 것인가/ 一千一櫓(는 노 로)도 서로 따름을 그쳐라./ (한숨쉴 희)/ 이를 다투매 潮水가 떨어지고 조수가 나서 아침이 멀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