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六 風穴衆吼集 6 장림산(杖林山)

태화당 2019. 9. 7. 08:30

杖林山

西域記云 昔摩竭陀國有婆羅門 聞釋迦佛身長丈六 常懷疑惑 未之信也 乃以丈六竹杖 欲量佛身 恒於丈端出過丈六 如是增高 莫能窮實 遂投杖而去 因植根焉 今竹材脩茂 被山滿谷

 

서역기에 이르되 옛적에 마갈타국에 바라문이 있었는데 듣기로 석가불의 身長丈六이라 함을 듣고 늘 의혹을 품어 믿지를 못했다. 이에 丈六竹杖으로써 부처의 신장을 재려 했는데 늘 죽장의 끝에서 丈六을 벗어났다. 이와 같이 높이를 더했는데 능히 실다움을 궁구하지 못해 드디어 죽장을 던지고 떠났으며 인해 뿌리가 심어졌다(이 얘기는 西域記卷第九에 나옴). 지금도 竹材脩茂(는 길 수)하여 산에 덮히고 골에 가득함.

 

無著問

見雪竇頌古文殊對談

 

설두송고의 文殊對談(卷第二)을 보라.

 

이를 흘.

許訖切 至也

 

許訖切이니 .

 

野盤

  方言 草宿也


  방언이니 풀 속에서 자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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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正作寱 音蓺 睡語也


바로 (잠꼬대 예)로 지어야 하나니 음이 며 잠꼬대임.

 

婆孽愛

未詳

 

미상임.

 

大昴는 별이름 묘. 二十八宿의 하나.

天文志云 昴畢間爲天街 昴 旄頭 胡星也

 

천문지(漢書 중의 天文志漢書卷二十六)에 이르되 昴星畢星(은 별 이름 필. 二十八宿의 하나) 사이를 天街라 한다. 旄頭(는 깃대 장식 모)胡星.

 

周天

本作同天

 

본래 同天으로 지어졌음.

 

騎牛穿市

三齊略記云 齊桓公夜出迎客 有寧戚者 騎牛疾擊其角而歌曰 南山矸 白石爛 生不値堯與舜禪 短布單衣適至骭 從昏飯牛薄夜半 長夜曼曼何時旦 公召與語 說之 以爲太夫 世說云 晉王愷 字君夫 有牛名曰八百里駿 常鎣其蹄角 與石崇出游 日晚 爭入洛城 崇牛迅若飛 愷牛絶走不能及 寧戚嘗著相牛經 矸 音岸 骭 下患切

 

三齊略記(伏琛이 창작한 中國史類書籍)에 이르되 齊桓公(재위 서기전 685-서기전 643)이 밤에 나가 객을 영접하는데 寧戚이란 자가 있어 소를 타고 빨리 그 뿔을 두드리며 노래해 가로되 남산의 돌(은 산의 돌 안. 깨끗한 돌 안)이여/ 白石이라 빛나는구나/ 살아서 에게 禪位(讓位)함을 만나지 못했고/ 短布單衣가 마침 정강이(은 정강이뼈 한. 갈비 한)에 이르네/ 저묾으로부터 소에게 밥먹이고 夜半에 닥치나니(은 다닥칠 박)/ 長夜가 멀고 길거늘(은 멀 만. 길 만) 어느 때가 새벽인가. 이 불러 더불어 얘기하고는 기뻤으며 太夫로 삼았다. 世說(世說新語下卷 汰侈第三十)에 이르되 晉 王愷君夫. 소가 있었는데 이름해 가로되 八百里駿이었으며 늘 그 발굽과 뿔을 갈았다(은 꾸밀 영. 갈 형). 石崇(249-300. 西晉富豪)出游했는데 해가 저물자 다투어 洛城에 들어갔다. 숭의 소는 빠르기가 나는 듯한지라 개의 소가 몹시() 달렸지만 능히 미치지 못했다. 寧戚은 일찍이 相牛經을 지었음. 은 음이 안이며 下患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