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六 風穴衆吼集 8 천참(天壍)

태화당 2019. 9. 7. 08:32

天壍(성 밖을 둘러싼 못) . 구덩이 참.

七艶切 壍 遶城水也

) --> 

七艶切. 은 성을 두른 물임.

) --> 

攙搶. 찌를 참. 은 찌를 창. 攙搶彗星.

上楚御切 下初庚切 天文志云 攙搶 棓彗 其殃一也 爲有破國亂軍 伏死其辜 餘殃不盡 爲旱 凶 飢 暴 疾 又漢書音義曰 妖星曰孛星 彗星 長星 亦曰攙搶 絶跡而去曰飛星 光跡相連曰流星 棓彗 音棒衛

) --> 

楚御切이며 初庚切. 天文志(漢書卷二十六)에 이르되 攙搶棓彗(는 별 이름 부)는 그 재앙이 하나다. 나라가 깨어지고 이 어지러움이 있으며 그 災難()伏死(엎드려 죽음)하고 餘殃이 다하지 않아 旱凶飢暴疾(가뭄 凶年 飢饉 暴風 疾病)이 된다. 漢書音義에 가로되 妖星을 가로되 孛星(彗星 ) 彗星 長星이며 또한 가로되 攙搶이다. 자취를 끊고 감을 가로되 飛星이며 光跡이 서로 이음을 가로되 流星이다. 棓彗는 음이 棒衛.

) --> 

智積

妙經 見寶塔品 爾時四衆見大寶塔從地涌出 住在空中 爾時佛告大衆說 此寶塔中有如來全身 號多寶佛 衆皆願見 佛以右指開七寶塔 出大音聲如關鑰 衆皆見之 時多寶世尊所從菩薩 名曰智積

) --> 

妙經(妙法蓮華經卷第四) 見寶塔品 이때 四衆大寶塔이 땅으로부터 涌出함을 보았는데 공중에 住在했다. 이때 불타가 대중에게 해 설하시되 이 寶塔 중에 如來全身이 있으니 호가 多寶佛이다. 대중이 다 보기를 원했다. 불타가 右指七寶塔을 여시자 大音聲이 나왔는데 關鑰(빗장의 자물쇠)과 같았다. 대중이 그것을 다 보았다. 때에 多寶世尊을 좇아온 바 보살은 이름을 가로되 智積이다.

) --> 

天王

今有狀毗沙門天王像 必右手擎寶塔 然它經無所出 而風穴正用此緣也 予嘗讀贊寧僧史云 唐天寶元年 西蕃五國來宼安西 二月十一日 奏請兵解援 發師黃里 累月方到 近臣奏 且詔不空三藏入內持念 玄宗秉香爐 不空誦仁王護國陀羅尼 方二七遍 帝忽見神人可五百員 帶甲荷戈在殿前 帝問不空 對曰 此毗沙門天王第二子獨徤 副陛下心 往救安西也 其年四月奏 二月十一日巳時 後城東北三十里 雲霧冥晦 中有神 可長丈餘 皆被金甲 至酉時 鼓角大鳴 地動山搖 經二日 蕃宼奔潰 斯須城樓上有光明 天王現形 謹圖樣 隨表進呈 因敕諸道州府 於西北隅 各置天王形像 於佛寺亦敕別院安置 蓋當時所現之像 手擎浮圖 今相習盡塑於州邑之城上 或伽藍營壘之間是也

) --> 

여금에 毗沙門天王像形狀함이 있으면 반드시 右手寶塔을 받들지만 그러나 다른 경에 나오는 바가 없는데 風穴이 바로 이 인연을 썼음. 내가 일찍이 贊寧僧史(宋高僧傳卷第一)를 읽었는데 이르기를 唐 天寶元年742 西蕃五國安西에 와서 겁탈()했다. 二月 十一日上奏하여 援兵으로 解援(포위를 풀기 위해 救援)하길 청했다. 軍士()黃里에서 발하면 몇 달이라야 비로소 도달했다. 近臣이 아뢰되 다만() 不空三藏(705-774)에게 조칙하여 내전에 들어 持念케 하십시오. 玄宗(재위 712-756)이 향로를 잡았고 不空이 인왕호국다라니를 외웠다. 바야흐로 二七遍(量詞. 十四回)을 하자 가 홀연히 神人을 보았는데 五百員(量詞. 五百名) 가량이었다. 갑옷을 두르고() 창을 메고 殿前에 있었다. 不空에게 묻자 대답해 가로되 이는 비사문천왕의 第二子獨徤(과 같음)입니다. 폐하의 마음에 副應하여 가서 安西를 구할 것입니다. 그 해 四月上奏하기를 二月 十一日 巳時에 성 뒤의 동북쪽 삼십 리에 雲霧冥晦하더니 가운데 이 있었고 가히 키가 丈餘였으며 다 金甲을 입었었습니다. 酉時에 이르자 鼓角(북과 나팔)이 크게 울리더니 땅이 움직이고 산이 흔들렸습니다. 이틀이 지나자 蕃宼(는 떼도적 구. 원수 구)奔潰(는 흩어질 궤. 무너질 궤)했으며 斯須(잠깐 사이)城樓 위에 광명이 있더니 천왕이 형체를 나타냈으므로 삼가 모양을 그려 表文을 따라 進呈합니다. 인하여 모든 에 칙령해 西北의 모퉁이에 각기 天王形像을 안치하게 했고 佛寺에도 또한 칙령해 別院安置하라 했다. 대개 당시에 나타낸 바의 形像이 손으로 浮圖()를 받들은지라 지금도 서로 익혀 다 州邑의 성 위와 혹은 伽藍營壘(堡壘 )의 사이에 塑像한 게 이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