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六 法眼 13 마승(馬勝)

태화당 2019. 9. 7. 11:12

馬勝初度五比丘 중의 하나 三藏法數卷第十六에 이르되 . 범어로 알비는 화언으론 馬勝이며 또 이르되 馬師니 곧 불타의 家族이다. 入衆須知에 이르되 古人이 이르기를 緩步를 써서 馬勝의 위의를 익히고 低聲을 요해 波離軌範을 배워라. 西域記卷第九에 이르되 醉象東北窣堵波가 있다. 이는 舍利子阿濕婆恃比丘唐言馬勝의 설법을 듣고 證果한 곳이다.

馬勝比丘入城乞食 威儀可觀 飛鳥爲之盤旋 奔馬爲之?足

) --> 

마승 비구가 入城하여 걸식하매 위의가 可觀이라 飛鳥는 이 때문에 盤旋(은 돌 반. 곧 빙빙 돎)하고 奔馬는 이 때문에 ?足(?은 말 걸을 반. 곧 걸음을 천천히 한다는 뜻)한다.

) --> 

驚懾은 무서워할 섭. 원음이 접.

質涉切 失氣貌

) --> 

質涉切이니 失氣한 모양임.

) --> 

다할 진. 죽을 진.

徒典切 盡也

) --> 

徒典切이니 .

) --> 

斟酌은 짐작할 침. 술 따를 침. 俗音이 짐. 은 술 따를 작. 잔질할 작. 斟酌은 술 따위를 따라 서로 주고 받음. 어림으로 헤아림.

音針灼 斟 勻也 酌 盛酒行觴

) --> 

음이 針灼. (고를 균)이며 은 술을 담아 잔(은 잔 상)을 행함임.

) --> 

名邈은 모뜰() . 그릴 막. 멀 막. 名邈은 이름하고 본뜸.

上彌正切 目諸物也 下當作貌 墨覺切 容也 名物之形容 故曰名貌

) --> 

彌正切이니 諸物名目. 는 마땅히 (모뜰 막. 멀 막. 모양 모)으로 지어야 하나니 墨覺切이며 . 사물의 형용을 이름하므로 고로 가로되 名貌(은 모뜰 막이므로 名邈).

) --> 

彌忒는 더할 미. 두루할 미. 은 의심할 특. 어긋날 특. 彌忒은 더욱 의심함.

上民卑切 益也 下惕德切 疑也

) --> 

民卑切이니 이며 德切이니 .

) --> 

我生太晚

道藏化胡經 天尊敬佛 說偈云 願採優曇花 願燒旃檀香 供養于佛身 稽首禮定光 佛生何以晚 泥洹一何早 不見釋迦文 心中常懊惱 辨正論桉西域傳云 老子至罽賓國 見浮圖 自傷不及 乃說偈供養 對像陳情云 我生何以晚 佛出一何早 不見釋迦文 心中常懊惱 裴子野高僧傳云 晉惠帝時 沙門帛遠 字法祖 每與祭酒王浮共諍邪正 浮屢屈焉 旣嗔不自忍 乃托西域傳 爲化胡經 以誣佛法 遂行於世 人無知者 殃有所歸 致患累載 幽冥錄云 蒱城李通死 來云 見道士王浮 身被鏁械 見沙門法祖 爲閻羅王講楞伽經 王浮求祖懺悔 祖不肯赴 孤負聖仁 死方悔也

) --> 

道藏(道敎藏書) 化胡經(老子化胡經이니 곧 노자가 부처로 변화해 胡人을 교화했다는 ) 天尊(道敎에서 神仙의 존칭. 흔히 老子를 일컬음. 불교에선 부처를 가리키는 말) 敬佛하여 를 설해 이르되 원컨대 優曇花(玄應撰 一切經音義卷第二十一에 이르되 烏曇跋羅花 옛날엔 말하되 優曇波羅花며 혹은 何雲婆羅花로 지었다. 이것의 잎은 배나무와 같고 열매는 크기가 주먹과 같으며 그 맛은 달다. 꽃이 없으면서 열매를 맺는다. 또한 꽃이 있음을 만나기 어려우므로 고로 經中에서 希有한 것에 비유한다)를 채집하고/ 원컨대 전단향을 태워/ 佛身에 공양하고/ 定光佛(妙法蓮華經義記卷第二에 이르되 燃燈佛이 곧 이 定光이다. 定光佛은 곧 이 석가의 스승이며 석가는 다시 이 미륵의 스승이다)에게 稽首하며 예배합니다./ 불타의 탄생이 무슨 까닭으로 늦으시며/ 泥洹이 한결같이 왜 일찍입니까/ 釋迦文을 보지 못해/ 심중에 늘 懊惱합니다. 辨正論(八卷 唐 法琳撰. 卷第五) 西域傳을 안험하니 이르기를 老子罽賓國(迦濕彌羅國이니 北印度境에 있음)에 이르러 浮圖(. )를 보고 스스로 미치지 못함을 傷心하다가 이에 를 설해 공양하고 佛像陳情해 이르되 나의 출생은 무슨 까닭으로 늦으며/ 부처의 出世는 한결같이 왜 일찍입니까/ 釋迦文을 보지 못해/ 심중에 늘 懊惱합니다. 裴子野高僧傳(釋氏稽古略卷二에 이르되 梁武帝御史 裴子野에게 칙령해 名僧傳二十卷을 지었다)에 이르되 惠帝(재위 290-306) 때 사문 帛遠은 자가 法祖. 매번 祭酒(官名) 王浮邪正을 함께 諍論했는데 가 누차 굴복했다. 이미 성을 내어 스스로 참지 못하고 이에 西域傳에 의탁해 化胡經을 지어 불법을 비방()했는데 드디어 세상에 행했고 사람들이 아는 자가 없었다. 殃禍가 돌아갈 바가 있는지라 병환을 앓은 게 여러 해였다. 幽冥錄에 이르되 李通이 죽었다가 돌아와 이르되 道士 王浮를 보니 몸에 鏁械(와 같음. 수갑 쇄. 쇠사슬 쇄. 는 형틀 계. 형틀에 채울 계)를 입었으며 사문 法祖를 보니 염라왕을 위해 릉가경을 강설했다. 왕부가 에게 참회를 구했으나 가 다다름을 허락하지() 않았다. 聖仁(孟子 盡心章句下에 이르되 이란 것은 이니 해서 그것을 말하자면 이다)孤負(는 저버릴 고. 배반할 고. 곧 배반함)하더니 죽어서야 비로소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