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庭事苑卷第七
睦庵 善卿 編正
平心寺主 淨圓 譯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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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華峯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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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華峯 卽天台之別山 韶國師示寂之地 國師生處州龍泉 俗姓陳氏 年十五 有梵僧見而異之 因勸出家 具戒於信州 至後唐同光中 遊方 謁投子大同 龍牙居遁 疏山本仁 凡五十四過 皆未領旨 晚謁撫州崇壽文益 隨衆坐夏 忽聞僧問 如何是曹源一滴水 益曰 是曹源一滴水 師豁然知歸 後游天台 訪智者遺蹤 有若舊居 遂卜築焉 人皆謂之智者後身 師後於般若寺 開堂說法 僧問 櫓棹도俱停時如何 曰 慶汝平生 問 如何是三種病人 曰 恰問著 問 如何是古佛心 曰 此問不弱 問 如何是無憂佛 曰 愁殺人 問 如何是沙門眼 曰 黑似漆칠 問 絶消息時如何 曰 謝指示 如何是絶滲삼漏底지句 曰 汝口似鼻孔 後吳越國王 事以師禮 因扣法要 師志好岑잠寂 不游聚落 畢身林泉 王臣高之 所集禪要故 以韶國師蓮華峯語錄爲題 師終於開實四年 年八十二▶實은 마땅히 寶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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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華峯은 곧 천태산의 別山이며 德韶國師(890-971. 法眼文益의 法嗣)가 示寂한 땅이다. 국사는 처주 용천에서 탄생했으며 俗姓이 陳氏이다. 나이 十五에 어떤 梵僧이 보고는 奇異하게 여겨 인하여 권해 출가했고 信州에서 具戒했다. 後唐 同光中923-926에 이르러 遊方하여 投子大同과 龍牙居遁과 疏山本仁(疏山匡仁으로 의심됨)을 禮謁했으며 무릇 五十四人을 經過했지만 다 뜻을 領悟(領은 깨칠 령)하지 못했다. 늦게서야 撫州 崇壽院의 文益을 예알해 대중을 따라 坐夏(夏安居)했는데 홀연히 들으니 중이 묻되 무엇이 이 曹源(曹溪根源)의 한 방울 물입니까. 益이 가로되 이것이 조원의 한 방울 물이니라. 스님이 豁然히 歸處를 알았다. 후에 천태산에 노닐면서 智者의 遺蹤(남긴 발자취)을 探訪했는데 舊居(옛 거처)와 같음이 있었고 드디어 卜築(살 만한 땅을 가려 집을 지음)했다. 사람들이 다 그를 일러 智者의 後身이라 했다. 스님이 뒤에 般若寺에서 開堂하고 설법했다. 중이 묻되 櫓棹(櫓는 노 로. 棹는 노 도)가 다 멈췄을 때는 어떻습니까. 가로되 너의 평생을 慶賀하노라. 묻되 무엇이 이 三種의 病人(傳燈錄卷第十八 玄沙가 어떤 때 垂語하여 가로되 諸方의 老宿이 다 말하기를 接物利生한다 하거니와 그래 너희에게 묻노니 只如 맹인 귀머거리 벙어리의 세 가지 病人을 너희가 어떻게 接引하겠는가)입니까. 가로되 마침 묻는구나. 묻되 무엇이 이 古佛의 마음입니까. 가로되 이 물음이 약하지 않다. 묻되 무엇이 이 無憂佛입니까. 가로되 사람을 너무 근심스럽게 하는구나(愁殺 想殺 笑殺 등은 살로 발음하고 太殺 殺高 殺思 등은 쇄로 발음함. 殺은 程度가 甚함을 나타내는 글자). 묻되 무엇이 이 沙門의 눈입니까. 가로되 검기가 漆과 같다. 묻되 소식이 끊겼을 때는 어떻습니까. 가로되 지시에 감사하노라. 무엇이 이 滲漏(滲은 샐 삼)의 구절입니까. 가로되 너의 입이 콧구멍과 같구나. 뒤에 吳越(90 7-978. 五代 때 十國의 하나)의 국왕이 스승의 禮로 섬겼으며 인하여 법요를 扣問(扣는 두드릴 구. 물을 구)했다. 스님의 뜻이 岑寂(岑은 봉우리 잠. 곧 산의 고요함)을 좋아하고 취락에 노닐지 않았으며 林泉에서 몸을 마친지라 王臣이 그를 高潔하게 여겼다. 편집한 것이 禪要인 고로 韶國師蓮華峯語錄으로써 제목을 삼았다. 스님은 開寶四年971에 마쳤는데 나이 八十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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