巖退後
云看看 當作巖云退後著連後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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云看看은 마땅히 巖이 이르되 退後著(著은 助字)하라 連後著하라 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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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子
師名大同 舒州懷寧人也 姓劉氏 少從西洛滿禪師出家爲沙門 習安那般那 後謁京兆終南山無學禪師 問西來密旨 無學駐步少時 師曰 乞師垂示 學曰 更要第二杓惡水作麽 師由是領旨 晚歸里閈한 結茅於投子山 學者如輻복湊주 師謂衆曰 汝等來者裏覓箇甚麽 我老人家氣力稍초劣 脣순口遲鈍 且無攢花四六新鮮語句 終不說向上向下蹲坐繫縛汝等 師示衆凡此類也 唐昭宗乾寧四年示寂 壽九十六 諡慈濟大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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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이름은 大同(802-897. 翠微無學의 法嗣)이며 서주 회녕사람이며 성이 劉氏다. 어릴 적 西洛의 滿禪師를 좇아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으며 安那般那(從容庵錄一에 이르되 범어인 安那般那는 번역해 이르되 出息入息이다. 그 법이 여섯이 있으니 一은 數며 二는 隨며 三은 止며 四는 觀이며 五는 還이며 六은 淨이다. 갖추자면 天台止觀과 같다)를 익혔다. 후에 京兆의 종남산 無學禪師를 謁見현해 西來의 密旨를 묻자 무학이 걸음을 잠시(少時) 멈추었다. 스님이 가로되 스님의 垂示를 乞求합니다. 學이 가로되 다시 두 번째(第二) 구기(杓작)의 더러운 물(惡水)을 要해서 무엇하려느냐. 스님이 이로 말미암아 지취를 領悟했다. 만년에 里閈(閈은 里門 한. 곧 고향 마을)으로 돌아와 投子山에 茅庵을 엮었는데 학자가 輻湊(輻은 바퀴살 복. 湊는 모일 주. 곧 수레바퀴살이 가운데 있는 바퀴통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한꺼번에 모여드는 것)와 같았다.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등이 이 속에 와서 이 무엇을 찾느냐. 나는 老人家라 기력이 점점(稍는 점점 초) 약해지고(劣) 입술과 입이 느리고 둔한 데다가 또 꽃이 모인(攢은 모을 찬) 듯한 四六(四六文 또는 四六騈변儷文이니 漢文體의 하나. 四字 또는 六字의 對句를 많이 써서 읽는 사람에게 美感을 줌)의 新鮮한 語句가 없으니 마침내 向上向下를 설하며 쭈그리고 앉아 너희 등을 繫縛하지 않으리라. 스님의 示衆이 무릇 이런 종류였다. 唐 昭宗 乾寧四年897에 시적했다. 나이는 九十六이며 시호는 慈濟大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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湖州道場
師名如訥 得法於無學禪師 結茅道場山 學者依之 因構禪刹 杖屨구存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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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이름은 如訥이며 無學(翠微無學)禪師에게서 법을 얻었다. 道場山에 茅庵을 엮자 학자가 그에게 依附하는지라 인하여 禪刹을 構築했다. 주장자와 신(屨는 신 구. 가죽신 짚신 구)이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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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家
當作胡茄 見洞庭錄▶茄는 마땅히 笳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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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胡笳로 지어야 하나니 洞庭錄(위 卷第一)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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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雲
師諱志勤 受業於本州之長溪 訪道潙山 見桃花豁然開悟 求證於祐禪師 晚歸鄉里 住靈雲山 禪徒依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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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휘는 志勤(전등록엔 潙山靈祐의 法嗣로 記述했으나 후에 靈祐와 師兄弟之間인 大安의 法嗣로 밝혀져 諸書에 大安의 法嗣로 編入함)이며 本州의 長溪에서 受業했고 潙山에게 訪道(訪은 물을 방. 찾을 방. 곧 問道와 같은 뜻)했다. 桃花를 보고 豁然히 開悟했으며 靈祐禪師에게 증명을 구했다. 만년에 향리로 돌아와 靈雲山에 머물자 禪徒가 依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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