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七 八方珠玉集 6 절짐(絶朕)

태화당 2019. 9. 8. 09:24

絶朕은 조짐 짐.

當作絶眹 兆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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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絶眹(은 조짐, 빌미 진이니 과 같은 뜻)으로 지어야 하나니 徵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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頑嚚은 미련할 완. 완고할 완. 은 어리석을 은.

五巾切 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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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巾切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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勔臔은 힘쓸 면. 권할 면. 은 살찔 현.

上彌兖切 下胡典切 肥也


彌兖. 胡典切이니 (살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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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山

師名惟儼 河東絳州韓氏子 少從潮陽慧照師出家 具戒於衡嶽希律師 晚參石頭遷 深明法要 師生於代宗之世 終於文宗之太和八年 臨滅之日 召衆曰 法堂倒矣 衆競至 師曰 汝等不會我意 嗒焉示寂 壽八十四 諡曰弘道 塔曰化城傳燈錄卷第十四로 지어졌음.


스님의 이름은 惟儼(751-834)이며 하동의 州 韓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조양 慧照스님을 좇아 출가했고 형악 希操律師에게서 具戒했으며 늦게서야 石頭希遷을 참배하여 法要를 깊이 밝혔다. 스님은 代宗(재위 763-779)의 시대()에 태어나서 文宗太和八年834에 마쳤다. 臨滅하던 날에 대중을 소집해 가로되 法堂이 무너진다. 대중이 다투어 이르렀다. 스님이 가로되 너희 등이 나의 뜻을 알지 못하는구나. 우두커니(은 우두커니 있을 탑) 示寂했다. 나이는 八十四며 시호를 가로되 弘道을 가로되 化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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毗陵芙蓉

師名大毓 金陵人 姓范氏 幼從牛頭忠禪師受業 具戒於長安 得馬祖之法 來居常州義興之芙蓉山 卽憲宗之元和十三年也 終於敬宗寶曆二年 宗太和年 諡大寶禪師 塔曰楞伽 毓與育同으로 의심됨. 五燈全書卷第六大和戊申八二八으로 지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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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이름은 大毓이며 금릉 사람이며 성이 이다. 어릴 적에 牛頭慧忠禪師(智威法嗣. 牛頭法融下五世)를 좇아 受業하고 장안에서 具戒했으며 馬祖의 법을 얻었고 常州 義興芙蓉山에 와서 거주했는데 곧 憲宗元和十三年818이다. 敬宗 寶曆二年826(寶曆寶歷과 같음)에 마쳤다. 文宗 太和年827-835(太和大和와 같음)에 시호해 大寶禪師라 했고 탑을 가로되 楞伽라 했다. 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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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心受施마음을 내어 보시를 받음.

維摩詰經 佛告須菩提 汝行詣彼問疾 曰 我不堪任 憶念我昔入其舍從乞食 時維摩詰 取我鉢盛滿飯 謂我言 唯須菩提 若能於食等者 諸法亦等 諸法等者 於食亦等 如是行乞 乃可取食 汝得無諍三昧 一切衆生亦得是定 其施汝者 不名福田 供養汝者 墮三惡道 與諸衆魔及諸塵勞 等無有異 於一切衆生而有怨心 謗諸佛 毀於法 不入衆數 終不得滅度 汝若如是 乃可取食 維摩詰 此言淨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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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힐경(維摩詰所說經上卷) 불타가 수보리에게 하시되 네가 그에게 行詣(가서 이름)하여 問疾하라. 가로되 나는 堪任(堪當)치 못합니다. 憶念컨대 내가 지난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좇아 걸식하였는데 때에 유마힐이 나의 발우를 취해 밥을 가득 담고는 나에게 일러 말하되 예(應答하는 소리임. 尊長에 대해 공경을 표시하는 데에 쓰임) 수보리여, 만약 능히 에 평등한 자는 諸法에도 또한 평등하며 제법에 평등한 자는 식에도 또한 평등하나니 이와 같이 걸식을 행해야 이에 가히 取食한다. 네가 無諍三昧를 얻었다면 일체중생도 또한 이 을 얻었으며 그 너에게 보시하는 자는 福田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너에게 공양한 자는 三惡道에 떨어진다. 모든 뭇 와 및 모든 塵勞(번뇌의 다른 이름)와 더불어 평등히 다름이 있지 않으며 일체중생에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며 제불을 비방하고 법을 헐뜯고 대중의 에 들지 않으며 마침내 滅度를 얻지 말아야 하나니 네가 만약 이와 같다면 이에 가히 取食하리라. 維摩詰은 여기 말로는 淨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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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髭는 윗수염 자. 코 밑 수염 자.

長髭曠和上 在潭州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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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髭曠和上(石頭希遷法嗣)이니 담주의 攸縣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