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居
師諱道膺 姓王氏 生幽州王田 出家習毗尼法 旣而曰大丈夫豈可桎질梏곡於律儀也 遂詣翠微 問道不契 聞洞山法席甚盛 因造焉 山問 名甚麽 曰 道膺 山曰 向上更道 曰 向上道卽不名道膺 山曰 與吾在雲巖時祗지對無異 山一日問 吾聞思大生倭國作王 如何 曰 若是思大 佛亦不作 況國王乎 洞山然之 師初止三峯 後開雲居 遂廣玄化 南昌鐘氏 尤所敬仰 唐昭宗天福元年 臘月二十八日示疾 越明年正月三日 跏趺長往 諡弘覺大師 倭 烏禾切▶王은 玉으로 의심됨. 福은 마땅히 復으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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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휘는 道膺(?-902. 洞山良价의 法嗣)이며 성은 王氏며 幽州의 玉田에서 태어났다. 출가하여 毗尼法을 익혔는데 이미 그러고선 가로되 대장부가 어찌 가히 律儀에 桎梏(桎은 차꼬 질. 梏은 수갑 곡)하리오. 드디어 翠微(無學)에게 나아가 도를 물었으나 계합하지 못했다. 洞山의 법석이 매우 성하다 함을 듣고 인하여 나아갔다. 山이 묻되 이름이 무엇인가. 가로되 道膺입니다. 山이 가로되 向上을 다시 말하라. 가로되 향상을 말한다면 곧 이름이 道膺이 아닙니다. 山이 가로되 내가 雲巖에 있을 때 祗對(祗는 適임. 正임. 곧 應對와 같음)함과 다름이 없구나. 山이 어느 날 묻되 내가 듣기로 思大(天台宗第三祖慧思尊者)가 倭國에 태어나 왕이 되었다고 하던데 어떠한가. 가로되 만약 이 사대라면 부처도 또한 짓지 않을 것이거늘 하물며 국왕이겠습니까. 동산이 그것을 그러히 여겼다. 스님이 처음엔 三峯에 머물다가 뒤에 雲居山을 열어 드디어 玄化(玄妙한 도리로 교화함)를 넓혔다. 南昌의 鐘氏가 더욱 敬仰하는 바이었다. 唐 昭宗 天復元年901 납월 二十八日에 示疾하여 넘어서 명년902 정월 三日에 跏趺하고 長往했다. 시호는 弘覺大師다. 倭는 烏禾切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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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厙▶厙사는 方言으로 村莊임.
當作田舍 詳見頌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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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田舍로 지어야 하나니 상세한 것은 頌古(위 卷第二)를 보라(厙字도 또한 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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沿臺盤
沿當作緣 與專切 因循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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沿은 마땅히 緣으로 지어야 하나니 與專切이며 因循(낡은 舊習을 고집하고 고치지 않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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麢羊話▶麢은 羚羊 영.
中有僧云 直得恁麽難會 此節誤收也 桉傳燈雲居傳新羅僧問 是甚麽得與麽難道 居云 有甚麽難道 曰 便請和上道 居曰 新羅新羅 此板自僧云至新羅 衍二十六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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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에 어떤 중이 이르되 바로 이러히 알기 어려움을 얻습니까. 이 節은 잘못 收錄된 것임. 전등록(卷第十七)의 雲居傳을 안험하니 新羅僧이 묻되 이 무엇이기에 이러히 말하기 어려움을 얻습니까. 居가 이르되 무슨 말하기 어려움이 있으랴. 가로되 바로 청하오니 화상이 말하십시오. 居가 가로되 新羅 新羅. 이 板의 僧云으로부터 新羅까지 二十六字가 衍(글귀 가운데 군더더기로 들어간 글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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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安
師名常察 嗣九峯虔건 本作處者 誤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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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이름은 常察이며 九峯道虔(石霜慶諸의 法嗣. 靑原下五世)을 이었음. 본래 處로 지은 것은 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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負笈▶笈은 冊箱子 급.
音及 負書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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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 及임. 책상자를 짊어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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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文
公當作攻 治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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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은 마땅히 攻(다스릴 공)으로 지어야 하나니 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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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閑▶閑은 익힐 한.
閑習也
閑은 習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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