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八 語緣 2 미륵설법(彌勒說法) 빈두로견불(賓頭盧見佛) 다자탑(多子塔)

태화당 2019. 9. 8. 10:23

彌勒說法

西域記曰 無著菩薩與弟世親 弟子師子覺二三賢哲 每相謂曰 凡修行業 願覲慈氏 若先捨壽 得遂宿心 當相報語 其後師子覺先捨壽 三年不報 世親菩薩尋亦捨壽 時經六月 亦無報命 無著於初夜分 方爲門人敎授定法 忽空中大明 有一天仙乘空而下 卽進階庭禮無著足 著云 爾來何暮 名何謂 對曰 從此捨壽命 往覩史天慈氏內衆蓮花中 蓮花才開 慈氏曰 善來廣慧 善來廣慧 旋遶才周 便來報命 無著曰 師子覺者 今在何處 曰 我旋遶時 見師子覺在外衆中 耽著欲樂 無暇相顧 詎能來報 無著曰 慈氏何相 演說何法 曰 慈氏相好 言莫能宣 演說妙法 義不異此 然菩薩妙音淸暢和雅 聞者忘倦 受者無猒西域記으로 지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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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기(卷第五)에 가로되 無著菩薩이 동생 世親 제자 師子覺 二三賢哲과 더불어 매양 서로 일러 가로되 무릇 行業을 닦음은 慈氏를 뵙기를 함이다. 만약 먼저 목숨을 버려 宿心(묵은 마음)을 이룸을 얻는다면 마땅히 서로 알려 말해야 하리라. 그 후 사자각이 먼저 목숨을 버렸으나 三年 동안 알림이 없었다. 세친보살이 이윽고 또한 목숨을 버렸는데 때가 여섯 달을 경과했으나 또한 報命(명령을 받아 일을 한 뒤에 보고함. 復命)이 없었다. 무착이 初夜分(초저녁)에 바야흐로 門人을 위해 定法敎授하는데 홀연히 공중이 크게 밝더니 한 天仙이 있어 허공을 타고 내려와 곧 階庭에 나아가 무착의 발에 예배했다. 이 이르되 네가 옴이 왜 늦었는가. 지금의 이름은 무엇이라 이르는가. 대답해 가로되 여기로부터 壽命을 버리고 覩史天慈氏內衆蓮花 중에 갔는데 연화가 겨우 開花했더랬습니다. 자씨가 가로되 善來로다 廣慧. 선래로다 광혜여. 旋遶하여 겨우 돌고는 바로 와서 報命합니다. 무착이 가로되 사자각이란 자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내가 旋遶할 때 사자각이 外衆 중에 있음을 보았는데 欲樂耽著하느라 서로 돌아볼 여가가 없었거늘 어찌 능히 와서 알리겠습니까. 무착이 가로되 자씨는 어떤 모양이었으며 어떤 법을 연설하던가. 가로되 자씨의 相好는 말로 능히 宣說하지 못합니다. 묘법을 연설하는데 뜻이 여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살의 妙音淸暢하고 和雅하여 듣는 자가 倦怠를 잊으며 받는 자도 厭症(싫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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賓頭盧見佛

雜阿含云 無憂王集諸聖衆 問佛如何 賓頭羅漢以手擧眉 語王曰 佛如金山 巍巍堂堂 難可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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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卷第二十三)에 이르되 無憂王이 모든 聖衆을 소집했다. 묻되 불타는 어떠하십니까. 賓頭盧羅漢이 손으로써 눈썹을 치켜들고는 왕에게 말해 가로되 불타는 金山과 같아서 巍巍堂堂(風采가 의젓할 당. 곧 높고 우뚝하여 웅대한 모양)하시어 가히 이름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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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子塔

靑蓮目顧視迦葉處也 辟支論曰 王舍城大長者 財無量 生育男女各三十人 適游觀 到一林間 見人斫於大樹 枝柯條葉 繁美茂盛 使多象挽 不能令出 次斫一小樹 無諸枝柯 一人獨挽都無滯㝵 見是事已 卽說偈言 我見伐大樹 枝葉極繁多 稠林相鈎挂 無由可得出 世間亦如是 男女諸眷屬 愛繫縛心 於生死稠林 不可得解脫 小樹無枝柯 稠林不能㝵 觀彼覺悟我 斷絶於親愛 於生死稠林 自然得解脫 卽於彼處得辟支佛 以至現通入滅 時諸眷屬爲造塔廟 時人因名多子塔으로 지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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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蓮目(불타의 눈이니 꽃을 들어 가섭에게 보였다고도 하고 혹은 청련목으로 가섭을 돌아보았다고도 함)으로 가섭을 돌아본 곳임. 벽지론(辟支佛因緣論 二卷 失譯. 卷下)에 가로되 王舍城大長者가 재물이 풍부하여 무량하였으며 아들과 딸 各 三十人을 낳아 길렀다. 마침 가서 游觀하다가 한 林間에 이르러 사람들이 大樹를 쪼갬을 보았다. 枝柯條葉繁美하고 茂盛했으며 많은 코끼리를 시켜 당겼으나 능히 拔出하지 못했다. 다음에 한 小樹를 쪼개는데 모든 枝柯가 없어 한 사람이 홀로 당겨도 도무지 滯㝵가 없었다. 이 일을 보고는 곧 를 설해 말하되 내가 大樹를 벌목함을 보매/ 지엽이 극히 繁多하고/ 稠林(는 빽빽할 조)이 서로 鈎挂하여/ 가히 得出因由가 없도다/ 세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남녀의 모든 권속이/ 愛憎으로 마음을 繫縛하여/ 생사의 稠林에서/ 가히 해탈을 얻지 못한다/ 小樹枝柯가 없어/ 조림이 능히 장애치 않나니/ 그것을 보다가 나를 覺悟하여/ 친애를 단절하고/ 생사의 조림에서/ 자연히 해탈을 얻었다. 곧 그곳에서 辟支佛(舊譯緣覺. 新譯獨覺)을 얻었으며 따라서() 신통을 나타내고 入滅함에 이르렀다. 때에 모든 권속이 위하여 塔廟를 조성했는데 時人이 인하여 多子塔이라 이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