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207쪽

태화당 2019. 11. 6. 09:44

師會(880-946) 五代僧 俗姓巨 薊門(今天津薊縣)人 幼年出家 禮溫泉院道丕爲師 二十歲於金臺寶刹戒壇受具足戒 後梁開平(907-910)年間 游河朔 江淮等地 於漢南遇觀音院嚴俊 互談道業 不覺時移 乃受示赴投子山參謁大同禪師 得了本源 遂嗣其法 乾化四年(915)秋 受寶積坊羅漢院志修之請 代任住持 後得檀越尙書左丞吳藹 兵部侍郞張袞等之歸依 吳張二人共發奉章 朝廷賜天壽禪院之匾 此後四海之僧翕然來歸 一住三十五載 徒衆甚多 天福七年(942) 晉高祖賞其德行 敕紫衣 開運元年(944) 賜號法相 師蔑其號而藏其衣 開運三年示寂 世壽六十七 法臘四十八 [宋高僧傳二十八]

사회(師會) (880-946) 오대승. 속성은 거()며 계문(지금의 천진 계현) 사람.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온천원 도비를 예알하여 스승으로 삼았고 20세에 금대 보찰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후량 개평(907-910)년 간 하삭ㆍ강회 등지에 노닐었고 한남에서 관음원 엄준을 만나 서로 도업(道業)을 담론하면서 시각이 이동하는 줄 깨닫지 못했음. 이에 교시(敎示)를 받아 투자산에 다다라 대동선사(大同禪師)를 참알하여 본원(本源)을 득료(得了)했고 드디어 그의 법을 이었음. 건화 4(915) 가을 보적방(寶積坊) 라한원 지수의 청을 받고 주지를 대임(代任)했음. 후에 단월 상서우승(尙書左丞) 오애(吳藹)와 병부시랑 장곤(張袞) 등의 귀의를 얻었는데 오ㆍ장 2인이 함께 봉장(奉章)을 발하여 조정에서 천수선원이란 편액을 내렸음. 차후로 사해의 승려가 흡연(翕然)히 내귀(來歸)하였고 한 번 거주하자 35()였으며 도중이 매우 많았음. 천복 7(942) 진고조(晉高祖)가 그의 덕행을 칭찬()하며 자의(紫衣)를 칙사(勅賜; )하고 개운 원년(944) 법상(法相)이란 호를 주었으나 스님이 그 호를 멸시하고 그 옷을 감추었음. 개운 3년 시적했고 세수는 67, 법랍은 48 [송고승전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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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泛指由於共同利益而互相聯系起來的人群 五燈全書七十六方爲戒 後過古南法嗣遠瞻幖社會處 見旁坐一客閉目觀心

사회(社會) 널리 공동의 이익으로 말미암아 호상 연계하여 일어난 인군(人群; 무리)을 가리킴. 오등전서76 방위계. 후에 고남의 법사 원첨표의 사회처(社會處)에 이르렀는데() 곁에 앉은 한 객이 눈을 감고 마음을 관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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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會四會縣 五燈會元一六祖慧能 忍大師一見 默而識之 後傳衣法 令隱于懷集四會之間

사회(四會) 사회현. 오등회원1 6조 혜능. 인대사(홍인대사)가 한 번 보자 묵묵히 그를 알았고 후에 의법(衣法)을 전하고 회집(懷集)ㆍ사회(四會)의 사이에 은거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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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會縣屬於廣東省 秦始皇三十三年(214) 平定嶺南置四會縣 [百度百科] 圓悟語錄十四 盧老以時緣未穩 復遁迹四會縣獵人中久之

사회현(四會縣) 광동성에 속함. 진시황 33(214) 영남을 평정하고 사회현을 설치했음 [백도백과]. 원오어록14. 노로(盧老)가 시연(時緣; 시절인연)이 온당하지 못해 다시 사회현(四會縣)의 사냥하는 사람 사이에 자취를 숨긴 지 오래였다.